극이 하나뿐인 자석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전자기학 이론은 맥스웰이 쿨롱, 암페어, 패러데이의 법칙을 모아서 만든 맥스웰 방정식으로 표현됩니다. 신기하게도, 맥스웰 방정식은 자석은 반드시 극이 2개가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죠. 1개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걸까요?

극이 한개뿐인 자석은 물리학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고, 있을 법도 한데 발견이 안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맥스웰 방정식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모두 4개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개는 “균질한 방정식”이고 나머지 2개는 “균질하지 않은 방정식”입니다. 균질하다는 것은, 가령 ax=0과 같이 x가 만족하는 방정식이 0이 되는 것이고, 균질하지 않다는 것은 ax=b와 같이 x가 만족하는 방정식이 0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균질하지 않은 방정식에 들어간 b와 같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전기 전하”에 해당합니다.

만약, 균질한 방정식에 있는 0 대신에 다른 숫자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자리에 0이 아닌 다른 숫자가 온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전하”에 해당하고, 그 결과로서 반드시 “극이 1개뿐인 자석”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현재 우주에서는 극이 1개인 자석은 없거나, 혹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균질한 방정식 부분의 우변은 0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겠죠.

처음에, 극이 하나뿐인 자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과학자인 에렌하프트입니다. 그는 1945년에 피지컬 리뷰지에 자신의 실험에서 그것이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험은 설계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극이 하나뿐인 자석에 관한 이론을 가장 처음으로 완성한 사람은 유명한 물리학자 폴 디랙입니다. 1931년에 최초로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 1948년에 완성된 논문을 발표했죠. 이 논문에서 그는 만약 자기 전하가 존재한다면 그 크기는 전기 전하의 역수에 비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기 전하는 대단히 작기 때문에 자기 전하는 반대로 대단히 커지게 되겠죠. 대략 10000배 정도 커지게 됩니다. 또한, 자기 전하가 우주에서 어떻게 움직여 나가게 되는지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실험들이 계속되었지만 그 결과는 극이 하나뿐인 자석의 존재를 부정하는 실험뿐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2년에 이탈리아의 MACRO 입자 검출기에서 관측된 결과인데, 그 결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극이 하나뿐인 자석 입자가 우주에서 날아올 확률이 1년에 0.00000001개 정도, 즉 1억년~10억년 정도에 지구에 1개가 오는 정도의 결과라고 합니다. 또한, 빅뱅 이론과 인플레이션 이론으로부터 예측되는 밀도가 우주 전체에 1개 정도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못보고 지나갈 것 같군요.





블루 오션?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옛날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블루 오션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블루 오션이란, 아직 포화가 되지 않은 시장을 뜻하는데 이미 다른 사업자들이 모두 장악해서 더이상 먹을 것이 없는 레드 오션과 대비된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나라고 해서 블루 오션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이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냥 몇자 주절대볼 것이 있어서 몇글자 적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컴퓨터가 없을 때는 그냥 살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최초에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그것을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팔기 시작했을 때, 애플은 이미 그들의 블루 오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미 가득찬 시장을 탈출해서 아직 아무도 진출하지 않은 사업을 새로 시작해버린 것이다. 블루 오션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아무도 없으므로 나혼자의 독점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단점은 의외로 심각한데,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최초 시장 진입을 위한 모든 노력을 전부 나혼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디 참고할만한 것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으며 소비자의 요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대로 닫혀버리는 곳이 바로 블루 오션인 것이다. 더군다나 블루 오션에서 나혼자의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점점 커지면 다른 사업자들이 진입하기 위해서 도전한다. 만약 다른 사업자들이 나를 벤치마킹해서 나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면, 이건 말 그대로 죽쒀서 개주는 형국이 될 것이다. 즉, 블루 오션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내가 그곳에 처음 도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할뿐더러 어떻게든 개척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놓고나서도 독점을 놓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블루 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초기 사업자가 되어서 새로이 개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장을 급성장 시키면 안된다. 시장의 성장 속도가 맘대로 조절되는 건 아니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면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초기에는 가격이 올라가서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결과로 충족되지 못한 수요에 순식간에 다른 후발 사업자들이 들어앉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의 성장속도를 잘 조절해서 내가 공급할 수 있는 속도만큼, 그리고 내가 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속도만큼 시장을 성장 시켜야 한다. 마냥 시장만 크다고 블루 오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건 아니다. 수영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수십미터를 잠수할 수는 없으며 처음에는 얕은 곳에서 물장구치는 것 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블루 오션을 찾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그만큼 지켜내는 것은 훨씬 힘들다. 예를들어, 인터넷 전화라는 엄청나게 혁명적인 개념을 만들어서 수익을 창출해 냈던 다이얼패드도 지금은 망해서 사라져간 과거의 회사가 되었다.

만약 내가 블루오션에 진출하고 싶은데, 누군가 다른 사업자들이 그곳에서 이미 경쟁하고 있다면 그곳에 발을 들이지 마라. 그 경쟁자들을 전부 눌러버릴 자신감과 작전이 없다면 결고 그런 피터지는 블루오션에 진출해서는 안된다. 그곳은 그들이 흘린 피 때문에 곧 레드오션이 된다.

뭐, 다 좋다. 그럼 블루오션을 만드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나라고 딱히 뭘 아는 건 아니고, 더군다나 내 전공과는 아무 상관 없는 분야지만 그냥 몇자 헛소리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미친짓이다.

2. 지도가 한장 필요하다. 시장에 있는 물건들의 지배구조 지도인데, 모든 것에 대한 지도까지는 필요 없을 것이다. 내가 개발할 분야에서, 현재 무엇이 잘 나가고 있고 무엇이 잘 나가지 않고 있는지 파악한다.

3. 잘 나가지 않는 것들을 개선해서 더 잘나가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보는것도 좋다.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 보다는 개선/개량이 더 쉬운 과제가 된다.

4. 아니면 창의력을 발휘하여 시장의 지배구조 지도에 없는 상품을 하나 만들어 낸다. 사실 이게 말로 쓰면 쉬운데 아주 그냥 미친듯이 고민해야 허접한 아이디어 하나 나오는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이 작업은 브레인 스토밍 정도로는 안되고 브레인 허리케인 급의 초거대 상상력 실험을 해야 한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마인드 맵 트리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말로 쓰니까 무진장 쉽다. 자, 다들 성공하기 바란다.

라스 만차스 통신

*스포일러 있음

라스 만차스 통신 : ISBN = 89-952828-9-4

16회 일본 판타지 소설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 “링”의 작가인 스즈키 코지가 “심사위원이 된 이후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는데, 나 역시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이다. 판타지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는 진짜 사람같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런 류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개되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기묘한 대립 구도에 구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기묘한 대립 구도는 소설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얽혀있다. 기묘하다는 이유는, 명백한 대립 관계이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투쟁의 감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대놓고 싸우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러한 분노를 마음속에 눌러담고 있던 주인공이 완벽하게 왜곡된 세상을 향해서 확 저질러 버린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어느쪽이 더 좋은 세상이었는지는 모른다

. 다만 지금 있는 상황 자체가 싫었기에 분노를 폭발시킨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은 너무나 부조리한 일이 많이 있고, 말도 안되는 일이 진짜로 일어나고 있으며, 나쁜놈들이 득세하는 시대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훨씬, 명백하게, 객관적으로 옳고 착하며 바르고 권장할만한 길이 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을 다 바꾸고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폭력적이며 틀리고 나쁘며 아무도 권장하지 않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떤 현실이든간에, 바꿔야 할 부분이 있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죄수의 딜레마, 세번째

죄수의 딜레마를 주제로 한 세번째 글이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수능 시험은 대단히 쉬운 시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매년 문제를 새로 만들어서 내고 있으며, 매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흔치 않은 유형의 시험이라고 본다. 어째서 매년 난이도 조절이 실패하는 걸까? 문제 내는 선생님들이 바보일까? “이정도는 풀겠지?”라고 생각한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걸까? 짧게는 고3의 1년을, 길게는 초등학교 입학부터의 12년을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만을 해 온 애들이 전부 바보인가? 아니면 명문대학은 그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천재나 행운아들만이 가는 곳인가? 매년, 대학교 입시 요강이 발표되면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

어쩌라고…

문제의 난이도는 어떻게 하면 적절히 조절될까? 출제위원-수험생 한명 사이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출제위원이 문제를 쉽게 내면 수험생의 점수는 높을 것이고 어렵게 내면 점수는 낮아진다. 출제위원의 고민은 다음과 같다.

“아니, 이걸 내면 애가 너무 점수가 높고, 저걸 내면 점수가 너무 낮아지잖아? 어쩌지?”

반면에, 수험생의 고민은 이렇다.

“공부를 많이 해야만 점수가 나온다”

즉, 출제위원은 점수가 너무 높아도 고민이고 너무 낮아도 고민인 것이다. 예를들어, 100점 만점인 시험에서 자신이 낸 문제를 푼 학생이 50점을 받아야 자신이 낸 문제가 “잘 출제된”문제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50점에서 멀어질수록 괴로워진다. 수험생은 100점에 가까울수록 좋고 멀어지면 괴롭다. 이것은 연속 변수와 관련된 딜레마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분석하기는 곤란하지만, 개념적인 이해를 해볼 수는 있다. 수험생이 0점 근처의 점수를 받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이다. 따라서, 이렇게 되는 일은 모두 막기 위해서 노력한다. 즉, 출제위원이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는 일도 없고 수험생이 너무 공부를 안하는 경우도 없다. 이 협동은 수험생의 점수가 50점을 넘어가는 순간 깨진다. 수험생은 여전히 점수가 높을수록 좋지만 출제위원은 이제 수험생이 점수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험생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험생은 낮아지는 점수를 막기 위해서 더욱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과정이므로 수험생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문제는 어려워지고, 문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수험생은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결국 피터지는 수험 전쟁은 단 한명의 학생이 있어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험생은 한명이 아니라 집단으로 두고, 단 하나의 점수인 50점이 아니라 “표준정규화하지 않아도 표준정규화된 것 같아 보이는 성적분포”를 목표로 한다면 상황이 비슷해진다.


정규분포란?

이것을 죄수의 딜레마 문제로 표현하기 위해서, 3명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한명은 출제위원이고, 두명은 수험생이다. 다시한번, 앞서 출제위원-수험생1명의 딜레마와 같은 방법으로 분석해 보자. 두 학생의 평균 점수가 50점에 가까울수록 출제위원은 좋다. 두 수험생은 자신의 점수가 높을수록 좋다. 그다지 교육적이지는 못하지만, 수험생은 서로에게 공부를 하도록 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석하면 될까?

두 수험생의 점수가 둘 다 50점을 넘지 않는다면 출제위원은 수험생의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수험생들은 굳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적당히 공부해서 50점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느 한쪽이 50점을 넘었다면 어떻게 될까? 출제위원은 평균점수가 50점근처에 있는 한 결코 난이도를 조절하지 않을 것이다. 잘 내고 있는데 뭐하러 괜히 수고스럽게 난이도를 바꾸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두 수험생은 피말리는 경쟁을 하게 된다. 내가 쉽게 점수를 올리려면 난이도가 쉽게 나와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를 올리게 된다면 난이도는 어려워진다. 그럼 나 역시 피터지게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따라서, 나만 공부하고 저쪽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평균점수는 50점에 가까울 것이므로 난 손쉽게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공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공부를 못하도록 방해해야한다. 이상한 결론이라고? 당연한 결론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바보가 아니므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은 내가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쉽더라도 상대방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따라서 문제가 쉽건 어렵건 내가 공부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방해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도 문제다. 그럼 성적이 서로 잘 올라가서 문제가 어려워지므로 공부는 힘들어진다. 반대로, 서로 공부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 최소한 50점까지는 성적이 떨어질 것이므로 각자 손해다. 이때 한쪽이 배신 때리면 다른 한쪽은 작살나는 거다. 따라서 이런 연합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적절한 난이도 수준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과의 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심지어 문제가 어렵지 않아도 대학가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만약,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어렵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는 평균점수가 내려가게 될 것이므로, 서로가 방해하는 시간보다는 공부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공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쉽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서로를 방해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공부하기는 상대방의 방해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문제가 쉽게 나오건 어렵게 나오건 대학가기는 힘들고 공부하기는 어려우며 매년 수능 난이도 조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건 100만명의 수험생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균형을 이뤄서 모두가 잘 되는 길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공부를 똑같이 해서 잘 되기로 합의했다면 단 한명이 배신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에 모두가 배신하고 피터지게 공부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수능만을 분석했지만, 수능뿐만이 아니라 수험생들이 경쟁하는 모든 입시 시험에 같은 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대학가기가 힘들고, 수험생들이 고생하는건 대학교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어서도 아니고, 논술 비중이 커져서도 아니며, 학생부 위주의 선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도 아니다. 대학에 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수험생들이 피터지게 고생하고, 점점 더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수험생들의 피터지는 경쟁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대학교”로 한정해 버린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이 분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대충 배워서 분석한 사견임을 밝힌다.

누구나 읽어봤으면, 경험했을, 학창시절 이야기

꽤 독한 글을 읽었다. 나도 고등학교, 중학교때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었다. 지금도 그 관념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학교라는 집단은 어째서 획일화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대학 와서 일탈하다가 취업난에 시달리지. 물론 일탈 안하고도 취업난은 심각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독한 글이 심기를 거스를 것 같다면 읽지 않아도 좋다.




글 읽어보기


열정을 불태워라!

별들중에서, 크고 무거운 별들, 즉 불태울 수 있는 연료를 더 많이 가진 별들이 오히려 수명이 짧다는 걸 아는지? 크고 무거운 별들은 수소 핵융합을 훨씬 더 빠르게 일으키기 때문에 가벼운 별들보다 훨씬 빠르게 연료를 소모해서 아주 찬란하게 빛나다가 수십억년만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블랙홀이 되어 우주에서 안보이는 녀석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가벼운 별들은 천천히 연료를 소모해서 수백억년 걸려서 불타고 나중에 살짝 폭발해서 백색 왜성이 된다.

젊음을 불태우는 일은 사실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젊을 때 자신의 열정을 불사르며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 하지만, 주의사항 – 너무 빨리 불태우면 나중에 더이상 태울 열정이 남지 않는다는 점.

남겨놓고 태우자. 아니면 그렇게 빠르게 뜨겁게 불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열정을 가득 쌓아두던가.

GPS와 수학

모르는 길을 가다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건지 도저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 : GPS)이 발달되어 작은 GPS 단말기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나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GPS 장치의 실용화에도 수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GPS는 우주에 떠 있는 정지 위성 24개중에 4개로부터 신호를 받아서, 그 신호를 분석하여 위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원리로 알아내게 되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GPS로부터 받게 되는 신호는 오직 GPS 위성이 갖고 있는 시간 정보입니다. 즉, GPS 위성이 갖고 있는 시계가 몇시를 가리키고 있는지 알게 되죠. GPS위성이 가진 시간과 GPS단말기가 가진 시계 사이의 시간 차이를 알게 되면 GPS 위성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다음의 공식으로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거리 = 빛의 속력 x 시간 차이

어느 하나의 GPS위성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곳은 지표면 위에 타원 모양으로 표시가 됩니다. 쉽게 생각하려면 지도 위에 타원을 하나 그리면 되겠죠? 이 원 위에 나의 위치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두번째 GPS위성으로부터 받은 신호를 이용하면 타원을 하나 더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타원과 타원이 겹치는 점이 2개 나오게 되는데, 두 타원 위에 모두 나의 위치가 있어야 하므로 이 두개의 점 중에 한 곳에 내가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GPS위성을 이용하면 타원을 하나 더 그릴 수 있게 되는데, 이 타원은 반드시 두 점 중에 한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세개의 타원이 모두 겹치는 한개의 점이 바로 나의 위치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 위성을 이용하면 내가 있는 장소의 높이까지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여러곳에서 나온 신호를 이용해 특정한 한 점을 결정하는 문제는 수학에서 2차 연립 방정식을 푸는 문제와 같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거리를 측정하는 공식이 기본적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의 제곱이 나머지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정리인데, 여기서 나타나게 되는 제곱수들이 방정식으로 변하면서 2차 연립 방정식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소개된 방법은 GPS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됩니다. 지진관측소에서 지진의 근원지를 알아낼 때에도, 지진파의 속력과 지진계에 측정된 시간 간격을 이용하여 여러 곳의 지진 관측소의 결과를 비교하면 지진의 근원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개발중인 차세대 의료 영상기기인 컴프턴 카메라에서도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인체 내부의 사진을 수술하지 않고 정밀하게 찍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인식의 한계를 넘어가기

관계(Relations)

사람들은 항상 어떤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곧 그 집단에 아는 사람이 적어도 1명 이상 있다는 뜻이 된다. 이 정의에 의하면, 2명만 있어도 집단이 만들어진다. 또한, 모든 집단은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내가 아는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두 집단을 연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계의 연결은 사회 전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네트워크 이론에서 다루는 연구 분야중의 하나이다. 내 전공은 네트워크 이론이 아니므로 자세한 얘기를 할 수는 없으나, 내가 아는 바와 내가 생각한 것만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있으면, 나는 그 집단 안에서 집단에 지속적으로 포함되기 위해 요구되는 행동 양식을 지켜야 한다. 가령, 학교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매 학기 등록금을 제때 내야 하며,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우애를 지켜야 한다. (안그러면 호적에서 파이겠지…) 그러한 여러가지 집단으로부터 요구받는 행동 양식은 때로 나에게 모순되는 행위를 강요할 때도 있고, 불합리한 일을 강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런저런 모든 것들을 전부 지키면서 살아가려 하면 엄청나게 피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을 두고서 강요받는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고 어느정도는 무시하고 넘어가게 된다. 더군다나, 집단 안에서 서로 협동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과 적대적 경쟁을 모두 처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즉, 요구받는 것만 제대로 수행한다고 해서 나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는 이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도 물론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 요소들을 미리 피해가는 것 만큼 최선의 방법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위험 요소를 전부 피해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게다가 전부 예측 가능한 미래만이 나를 기다린다면 그것도 재미 없는 인생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측이 완벽하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일부마저도 완전히 추측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상은 비선형적으로 흘러가지만 아주 단기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선형적인 응답이 예상되는 것이다. 단, 내가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신뢰감이 얼마나 정확하느냐에 따라 그 예측 가능한 기간이 달라질 것이다.

위험 요소를 회피하는 방법은 일단 두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우선,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위험 요소를 실제로 피해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럼,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 바로 인식의 한계를 넓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식의 한계란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여러가지 사실들의 실질적 정확성의 한계를 뜻한다. 예를들어보자. 어떤 직장 동료가 나한테 잘해준다. 나한테 꾸준히, 지속적으로 잘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믿어도 좋은 사람일까?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 나한테 대하는 것만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평가하게 된다. 즉, 그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뿐만이 아니라 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관찰하거나 전해 듣고서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때에는 그 의견을 전달해 주는 사람의 신뢰성이 판단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내가 직접 본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포함하여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것은 인식의 한계를 늘린 예가 된다.

내가 나의 인식의 한계를 늘리기 위해서는 나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신뢰성도 높아야 한다. 신뢰성을 높이는 것과 나랑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알아서 잘 해주기 바란다.

위험 요소를 실제로 피해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것도 역시 사람들을 통한 방법이 된다. 위험한 상황이 닥쳐왔을 때 나를 구원해줄 단 한명의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은 친구여도 좋고, 경찰이어도 좋으며, 보험회사가 되어도 좋다. 그 존재가 나를 어떤 이유에서 도와주건 그것은 크게 생각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나에게 더 큰 해를 끼칠 것이 예상된다면 피해야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효과적으로 해 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나의 물리적 위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적인 위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즉,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와 얽혀 있는지를 보고, 나와 어째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집단과 집단들의 관계 속에서 아주 작은 한 개인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고 하는 한명의 사람은 내가 속한 작은 집단에서 작은 일들을 해낼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작은 집단을 조정하여 더 큰 집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힘과 영향력은 대단히 작기 때문에 커다란 집단을 한번에 조절할 수는 없다. 그정도 권력은 대통령도 없는 것이다. 여론 조작이 왜 가장 유용한 권력 통제의 수단인지 아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그렇지 않은것을 그렇게 되도록 하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즉, 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내 의도대로 바꾸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내 의도대로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모든 의견을 내 의도대로 바꾸는 일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가장 커다란 집단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가장 작고 소박한 일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그리고 순리대로 이루어지도록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럼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뢰성에 관하여

신뢰성(reliability, trust)에 관한 정책

신뢰성이란 뭘까? 남들이 나에게 어떤 요청을 했을 때, 나는그들에게 그들이 예측한 형태의 대응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예측되는 형태의 대응을 해줄 것이라고 그들이 나를꾸준히 믿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해 내려면? 당연히 성실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성실한거야 자기 하기나름이니까 알아서들 잘 하리라 믿고, 예측되는 형태의 대응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처음 만날 때는 그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두 사람이 서로 친해지든 말든간에, 서로 계속 만나다보면 서로의 행동 패턴에 대해서짐작가는 부분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것을 나는 신뢰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약속 시간에 항상 정확하게10분을 늦게 도착한다면, 이건 나름대로의 신뢰성이 된다. 즉, 다음번에 약속을 잡을 때는 일부러 10분 일찍 잡으면 된다.어머님을 강변에 모신 청개구리도 그 어머니에게 나름대로의 신뢰성이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유언을 남기고 안심하고 떠날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뢰성은, 그것이 나쁜 쪽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사람을 평가하는데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청개구리처럼 일관되게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것이다. 그때그때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은 다루기 힘들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예측 불가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는, 일을 반대로 하는 사람에게 반대로 얘기해서 제대로 하도록 일을 맡기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청개구리가 그때그때 기분에따라서 어머님 말을 들었다가 반대로 했다가 제멋대로였다면 어머님은 유언도 못 남기고 그냥 불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려면,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도움이 필요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제대로 도와줄 것이 기대되는 모습이어야 한다. 이것은 평소에 쌓아두는 신뢰성이며, 어느한순간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에도 나 역시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요청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요청을 받은 사람은 “내가 널 도와주면 넌 나에게 무엇을해줄건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건 그 사람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보답은 굳이 물질적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그가 원하는 보상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여기서중요한건, 난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서 그 정답을 알아맞춰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점이다. 가령, 친한 친구 사이에 부탁하는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해주어야 하는 보답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우정”이 될 것이다. 회사 동료들 사이에 부탁하는 것이라면”다음번에 필요할 때 도와줄게”라는 가능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형태의 보상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이미 조사되어 있는 것이좋다. 즉, 그 이전에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또한, 나 자신이 신뢰성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내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역시 신뢰성 있는 사람들일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삶이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신뢰성은 그냥 짧은 시간에 대한 신뢰성이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내 삶 전체가 타인의 만족에 끼어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내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내가 예측한 대로 행동해 준다면, 나는 그걸 이용해서 나에게 이득 되는 일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지속적으로 모여 있도록 나 자신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신뢰성은 내가 남들을 믿을 수 있고 남들이 나를 믿도록 만들면 나 혼자 할 수 없는 나의 성공을 위해 남들이 움직이도록 할 수 있다는 기본 원리를 말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

* 이 글은 대단히 당연한 소리만을 늘어놓을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뻔한 소리를 나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바꿔서 떠들어 댈 수도 있으니 주의.

관점, 그리고 메타 관점.

언젠가 친구인 C양에게 해 줬던 얘기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집단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집단 전체를 집단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적당히 설명을 해 보자.

노력하면 성공한다 – 반쯤은 개소리다. 이런 얘기를 진리라고 떠드는 사람은 무시해도 좋다. 그 사람이 실제로 성공한 것과 그사람의 노력 여하는 관련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다시말해서, “노력한 사람의 집합”과 “성공한 사람의 집합”이많이 겹치기는 해도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공한 사람의 집합이 노력한 사람의 집합의 부분집합도 아니다.즉, 노력하지 않고서 성공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들 알아둘 필요는 있다. (주목하지는 마라. 당신이 노력하지 않고서 성공할 사람이라는 건 당신이 성공한 다음에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사람들의성공론을 살펴보면, 대부분 열정, 노력, 운, 돈, 인맥, 재능, 뭐 이런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게다 있으면 성공이 보장되는가? 그랬다면 세상에 성공한 사람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것들을 전부 갖고 있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X같은 경우가 있으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나도 모른다. 성공을 보장하는 길을 알면 내가 여기에 이 글을 쓰겠는가. 나 혼자 성공하고 말지.

그렇다면 그나마 확실한 길은 뭘까? 내 생각은 실패하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실패하지 않는 것 조차도 대단히 힘든 일이다. 앞으로의 미래를 알 수 있는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아무리 실패하지 않는 길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실패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게마련이다. 즉,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열정과 노력을 다하여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으며 거기에 운까지 따라줬어도 결국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다. 모든게 완벽해 보이는데 왜 실패하는 걸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왜 실패하는지 알 수 없다는점이다. 실패의 이유를 알 수 없을뿐더러 성공하는 이유 역시 없다. 모든것은 그냥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맘대로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물론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므로 자기가 하고 싶은일들을 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성공을 위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세를 하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뉴스”에서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다. 삶은누구에게도 두번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 영화, 만화, 글, 수필, 성공담을 들어보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우리에게끝이란 무덤에서 편히 쉴때까지 결코 오지 않는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소설의 뒷얘기는 하나 마나한 이야기다. 그건 그냥그걸로 끝이다. 우리가 그런 여러가지 매체에서 배울만한 점도 물론 많이 있지만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는데, 바로우리에게는 엔딩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할 수는 있으나, 행복한 끝을 맞이할 수는 없다. 즉, 어느 한 시점부터 행복하기 시작해서그 상태로 죽을때까지 행복한 건 불가능하다는 거다. 행복해지는 순간,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하고 변화하는 세상에맞서서 행복을 지켜야만 한다. 그 자체로 고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있지만, 누구라도 정작 행복해지게 되면 자신이 행복한 상태에 있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에 젖어 살다가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서 불행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젖어들지 않는 것이다. 행복을 즐기고, 누리고, 함께 나누는 것은 좋다.하지만 행복에 젖어서 다른 것들을 잊는 순간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행복해지려고 할 때마다 계속 불행해질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이냐고? 그건 아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메타 관점”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행복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바깥에서 내가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럼, 메타 관점이 뭘까?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눈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관점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 어떤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나는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라는것이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이 있고, 각자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개인이기 때문에 가지고있는 특수한 특성이 있다. 그중,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 부분을 활용하여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물론 말은 쉽지만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로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에 대해서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습은 보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남들도 원하고, 반대로 남들이 원하는 것은 나 역시 원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앞의 것은 잘 알겠지만 뒤의 것은 잘 모를 것이다. 남들이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는가? 대부분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건, “따라서, 내가 원하게 되었으므로 남들도 이것을 원한다고 볼 수있다”는 결론을 적절하게 내리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들어, 내가 회사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럼같이 일하게 되는 동료가 있을 텐데, 그중에는 나랑 같은 직위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높은 자리에서 나를관리하면서 갈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아랫자리에서 나한테 갈굼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승진하고싶어하거나 연봉을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나만 있는게 아니다. 내 주변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있다. 게다가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같이 연봉이 올라간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나만이라도 어떻게안될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어차피 회사 다니는 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누구 돈 싫어한다는사람이 있을까. 이 경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남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것이다. 아무튼,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잠재의식 깊은곳에 있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무엇일까? 내가 제시하는 답은 “다른 사람들을 내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라”라는 것이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수 있으므로 뜻을 명확히 하자면, 내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나 역시 남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사람이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아니, 그럼 얻는게 없잖아?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건, 남들이 나를이용하고 내가 남들을 이용하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 속에서, 나는 앞질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철저하게!”

한명의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은 그 개인이 갖고 있는 소망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그게 가능했으면 사람은 혼자 살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존재 아닌가? 내가 하는 일을 남들이 도와준다면나는 도움을 받아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이 하는 일을 내가 도와준다면 그 사람이 그 일을 성공할 가능성은높아진다. 그럼 나는 남들의 도움을 받고 나는 남들을 안도와줘야할까? 그럴리가 있나. 내가 남들을 도와주지 않고서 남들이 나를돕기를 바라는 건 도둑놈이지. 더군다나 그게 항상 가능할 수가 없다. 남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들을 평소에 많이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남들의 부탁을 들어줄 때, 항상 실실 웃으면서 부탁을 잘 들어주는, 착한 동료가 되는 건괜찮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잊지 않아야 하는건 내가 다음번에 그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는 그 사람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진심으로 너를 돕고 싶어서 도와줬는데, 니가 날 안 도와주면 니가 나쁜놈이지”라는 상황을

암묵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건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메타 관점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데, 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도와주는 마음이 들어서 도와주면서, 동시에 내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들이 나를 도와주도록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일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들을 도와주는데도 몇가지 원칙이 있다.

1. 내가 도와줄 수 있는건 진심으로 도와준다.

2. 내가 도와줄 수 없는건 기분나쁘지 않게 거절한다. 도와줄 수 없는걸 웃으면서 해주겠다고 얘기했다가 결국 못해주면 처음에 거절한것보다 더 나쁘다.

3. 도와준 일은 반드시 성공하거나, 적어도 도움을 받은 당사자가 내 도움이 없었으면 이만큼조차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까지는 도와줘야 한다.

4.내가 남들을 도와줄 때, 그 도와주는 것이 그냥 돕는게 아니라 나의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서 도와준다.즉,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다음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만 얻는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에 대해 나 자신의발전이 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좋다.

5.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단, 도움을 요청할 때는 어떤 부분에 어느만큼의 도움이 필요한지 가능한 명확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는 것을 쉽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남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남들이 나를 도와줘야겠다는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은 남들이 나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나는 남들에게 신뢰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 글에서 자세히 논의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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