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의 죽음과 블로거들

soloman이라는 어떤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전하기보다는 기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penholic.tistory.com/31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54978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에 대해서,

fantastic902 님께서 한 블로거가 죽기까지

블로거는 뭐했나? 라는 글로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http://fantastic902.com/?p=2812

듣고보니 이상합니다. 블로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요?

우선, 경찰의 무성의함과 부패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soloman님의 선택이 너무나 극단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감정은 잠시 접고, 생각을 해 봅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http://soloman.tistory.com/


soloman님의 블로그를 가보면, 첫 글이 올라온 것이 6월 1일이고, 지금 26일이니까, 25일간 대략 10000여명이 다녀갔습니다. 하루에 400명꼴이군요. soloman님께서 검색봇을 막는 설정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실제 “사람”이 다녀간 수는 저 숫자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겁니다.

그에 비해, 댓글 올라온건 고인이 가신 후 달린 30여개를 제외하면 한달간 20개정도. 100명중 한명 정도가 댓글을 달았다고 보면 될 것 같군요. 공론화는 고인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나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빠른 정보 소비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말로 “냄비”라고도 하죠. soloman님의 소식 뿐만이 아니라, 공론화되지 못하고 스러진 수많은 억울한 사연도 많이 있을 겁니다. 즉, soloman님의 글들이 올블로그에 올라와서 공론화되기 전에 순식간에 다른 글에 밀려서 내려갔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soloman님께서 문제가 있음을 처음으로 이야기 했을 때 soloman님이 분신까지 하리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사고가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블로거로서 블로거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단 무관심했던 블로거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너무 빨리 내려가는 바람에 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떻든 남의 일이므로 안타깝긴 하지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읽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가는 속에서 모든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갖고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너무 심한 일이겠죠.

이전에 제가 작성했던 “이슈 활성화 패턴”을 참고합니다.


http://snowall.tistory.com/249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야 공론화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 두명으로 시작한 글은 점점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많은 관심은 다시 더 많은 글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어떤 임계 숫자가 있을 건데, 아마 작지는 않을 겁니다. 이 숫자를 넘으면 진짜로 공론화 되어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결국 블로거들이 할 수 있는 참여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고, 오직 그 방법에 의해서만 블로거로서 블로거가 하는 방법이 됩니다.

fantastic902 님은 ”
고인이 줄곧 블로그에서 호소하던 억울함에 대해 블로거들이 해준건 약간의 관심과 위로 뿐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군요. 그런데, 실제로 블로거가 인터넷에서 어떤 참여라는 것을 할 수 있는 형태는 글자나 사진, 동영상 등의 형태밖에 없고, 그중 가장 손쉬운 것은 댓글로 지지와 위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제, 블로거의 실질적인 행동론을 말해봅니다. 여기서 블로거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론화”입니다.



[각주:

1

]



공론화 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많은 글입니다. 즉, 블로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글 올리기를 통해서 공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은 강요되어야 할까요? 의무인가요? 그건 아닐겁니다. 아무리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이 있어도, 누군가의 강요로 공론화되고 억지로 띄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만 놓고 얘기하자면, 어떤 식으로든 강요에 의해서라도 공론화되고 주류로 떠오르게 되면 좋게 해결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마음에 반감을 갖게 만들 것이며, 결국 더 많은 자발적인 참여는 줄어들게 될 겁니다.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편리해서 좋긴 한데, 사람에게 인터넷 회선 저 반대편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 하나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까먹게 합니다. 저편에 사람이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고,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블로거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소식을 알려 가면서 공론화 해 나간다면 좀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뻔한 얘기를 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관심”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뿐이네요. 그러나 공권력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국민입니다. 어떤 문제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공권력이 끝까지 버틸 수는 없을 겁니다. 공론화를 통하여 커다란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최선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은 앞으로는 부디 soloman님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마시고, 문제가 잘 풀리기를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1.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행동 범위를 인터넷으로 한정했을 경우의 일입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도울 수 있다면, 그만한 관심이 있다면, 아마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도 걸거나 등등의 다른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을 이용한 방법은 아니므로 일단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본문으로]

누가 대답좀…

고민이…

유학을 가고 싶은데, 아직 군대를 안갔습니다. 군대 문제는, 전문연구요원쪽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쪽은 거의 확실하게 취업 될 것 같네요. 문제는 교수님께서 석사 마치고 바로 유학을 가는게 어떠냐고 권하시는군요. (강하게)

토플, GRE, SOP등등 준비할 게 많긴 한데, 문제는 학위 취득 후 진로입니다.

1. 전문연구요원 먼저하면 대략 3년 반 뒤에 유학을 갑니다. 현재 얻어둔 Award나 연구경력 등이 그때에도 쓰일 수 있을까요?

2. 유학을 먼저 가면 전문연구요원은 날아갑니다.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대하거나 다른 길을 찾거나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될까요?

3. 유학 갔다오고 현역 입대 하고나서 취직할 수도 있는데, 박사 받고 군대 갔다오는 순서를 선택한 경우, 적당한 연구원 자리나 교수직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쪽은 아무래도 Post-doc 경력이 있어야 할텐데, 그거까지 생각하면 이쪽은 길이 아닌 것 같군요.

외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건 그다지 원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좋아요.

어차피 취직할거 생각하면 돈 안되고 밥벌이 잘 안될것으로 강하게 예상되는 입자물리학 이론은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만, 뭐 그래도 취직을 하긴 해야 할 테니, 가능하면 취직 되는 쪽으로…

오렌지 소녀

요슈타인 가아더는 내가 작가 이름만 보고서 책을 선택하는 몇 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다.



[각주:

1

]



그의 철학책은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다.

오렌지 소녀는 사랑에 관련된 소설이다. 내용은, 아주 재미있지는 않고 잔잔한듯 느껴지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고, 자신의 존재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인생이 어째서 중요한지 묻는다.

누구에게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1. 마틴 가드너, 미하엘 엔데 등이 있다.

    [본문으로]

말하기, 상상하기

말하려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이 필요할까?

말하면서 무슨 상상력이냐고?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말하기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다. 우선 공기를 내보내는 것을 조절해야 하고, 여기에 턱의 움직임과 입술의 움직임과 혀의 움직임을 동시에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성대의 움직임도 조절해야 한다. 이 과정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만하니까 우리가 하고 있는거 아니냐고? 글쎄다. 왼손으로 글씨 쓰면서 오른손으로 컵에 물을 따르고 다른 사람이랑 TV를 보면서 얘기를 나누는 일을 연습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여러가지 단어를 들려주면서, 그 단어를 따라하려고 시도하다가 “엄마”라든가 “아빠”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기의 심리 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계속 옆에서 듣다보면 따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각주:

1

]



일단은 자기가 울 때 소리가 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우는 소리 말고 저 앞의 다른 사람이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대도 움직이게 되어야 하고, 혀도 굴려봐야 하고, 턱도 움직여 봐야 한다. 한 단어를 얘기하기 위해서, 그것과 똑같은 발음을 하기 위해서 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혀를 굴리는 것은 아니지만, 배운적이 없을 때 어떻게 움직이면 그 소리가 날까? 따라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문장구조는 따라할 수 있어도, 발음은 따라하기 힘들다. 나는 이것이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조금씩 공부해 봤지만 어떻게 해도 원어민과 비슷한 수준의 발음은 절대 나오지 않더라. 혀나 턱의 움직임이 똑같다면, 당연히 똑같은 소리가 나올 것이다.



[각주:

2

]



즉, 같은 단어를 얘기했으나 발음이 다르다는 것은 혀와 턱과 성대의 움직임이 원어민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혀와 턱과 성대의 움직임을 똑같이 하려면 아기때 했던 것과 같이, 어떻게 하면 그 발음이 나올 수 있는지를 상상해야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마당에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상상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연습이 관건이라는 당연한 소리를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인가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언어의 전체적인 구조는 발음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문맥으로부터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발음 하나하나가 의미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 다는 점이다. 물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발음에 의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치명적인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에는 명확하게 글자를 이용해서 표현해 두는 것이 좋겠다.

  1. 이것은 어떤 점에서는 아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고도의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문장이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아기가 생각한다”는 뜻은 아주 단순하고 본능적인 호기심 정도를 이야기한다.

    [본문으로]
  2. 이것은 물리학의 기본 원리인 상대성 원리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 물리적 상황이 똑같으면, 같은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본문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

시절이 시절이다보니 선거 글이 나오게 된다.

유권자 100명이 있다.

후보는 두명이다.

신은 안다. 기호 1번 지지자가 40명이고 기호 2번 지지자가 60명이라고.

선거날이 되어, 투표를 하는데 기호 1번 지지자가 30명 투표를 하고, 기호2번 지지자가 25명 투표해서, 55%의 투표율에 기호 1번 우세다.

물론 위의 내용은 아직까지는 신만 아는 내용이고, 모든 사람이 아는 내용은 오직 투표율이 55%라는 점이다.

나머지 45명은 딱히 투표하러 갈 생각이 없고 집에서 쉴 생각이었다.

그때, 누군가 “투표하러 갑시다!”라고, 물론 특정 후보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다, 해서 투표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100%투표율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아는바와 같이 기호2번 당선.

질문들

  1. 투표하러 가자고 외친 사람은 선거 결과를 조작했는가?
  2. 투표하러 가자고 외친 사람이 기호 1번 지지자와 기호 2번 지지자들의 각각 투표율을 알고 투표하러 가자고 외쳤다면, 그 사람은 선거 결과를 조작했는가?
  3. 위의 2번 질문에서, 그 사람이 기호1번 지지자와 기호2번 지지자들의 각각 투표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4. 반대로, 그 사실을 누군가 알고 선관위에 이야기 했다면, 그 사람은 결국 처벌 받는가?
  5. 투표하러 가자고 외친 사람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투표하러 가자고 했으나, 어떤 악의적 목적을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은 기호1번 지지자와 기호2번 지지자들의 각각 투표율을 알고서 투표하러 가자고 외쳤다며 고발한다면, 그렇게 외친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6. 또한, 그렇게 고발한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정답은 선관위에 물어보세요.

대략, 지난번 대선때 일어났던 일들이 생각나서 적은 문제들인데, 어쩌면 모르고 한 헛소리일 수도 있겠다.

MS의 홈페이지는 파이어폭스에서 제대로 보인다

이건 잡담 카테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략과 관련된 내용이다.


http://www.microsoft.co.kr


위의 링크는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홈페이지 주소다. 가보면 알겠지만, 익스플로러에서는 아주 깔끔하게 보인다. 아, 물론 파이어폭스에서도

동일한

화면이 보인다. 아마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제대로 보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자. 질문. MS홈페이지는 어째서 다른 종류의 웹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이도록 설계가 되어 있을까? MS의 홈페이지 웹 프로그래머/디자이너들이 웹 표준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뭐. 사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난 저것이 MS의 전략이라고 본다. MS 윈도우즈는 명백히 “운영체제”다. 따라서 이것을 팔기 위해서 “이미” 윈도우즈가 설치되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품 홍보를 위해서 홈페이지가 제대로 보여야 한다면, 당연히 그 페이지는 윈도우즈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웹 브라우저에서 제대로 보여야만 할 것이다. 생각해 봐라. 윈도우즈가 뭔가 알아보러 들어갔는데 글자랑 그림이랑 완전히 딴데 가서 붙어 있고, 뭐가 짝도 안맞고 그러면, 누가 사겠는가. 허접하다고 보지.

운영체제가 아닌 다른 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그 다음이 웹 브라우저 홈페이지이다. 대부분의 웹 브라우저를 배포하는 곳의 홈페이지는 자신들이 홍보하는 웹 브라우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깔끔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각주:

1

]



앞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당연히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최초로 일어난 곳은 생명체 내부의 화학 반응이다. 다들 알다시피 동물은 다른 생물을 먹어서 활동 에너지를 얻는다. 만약 어떤 동물이 다른 생물과 전혀 다른 단백질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그래서 사용할 수 없었다면, 이미 아주아주 오래전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즉, “호환 가능성”은 생존의 중요한 요소이다. MS의 예에서, “영양분”에 해당하는 것은 사용자가 되고, 그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회사의 수익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즉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만 이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른 곳에 있는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려면 그 에너지 종류가 내게 적합해야 한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식민지 통치를 할 때에도,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그쪽 국민들을 다 때려잡는 수 밖에 없다. 그쪽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하려면 그쪽 사람의 언어를 알거나, 그쪽 사람들에게 자기네 나라 언어를 가르치든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pdf포맷은 비록 어도비의 독점적 포맷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표준 문서 형태이다. 그것은 어도비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생성 가능하도록 포맷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hwp 포맷은 한국의 대표적인 포맷이지만, 그저 한국의 대표적인 포맷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 빼면, 아는 사람 별로 없다. 그것은 한소프트에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기술이라고, 진짜로 세계로 나가려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읽고 쓰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각주:

2

]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실제로 사용자가 써야 말이지. 어도비는 당장 수익을 내는 것 보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한소프트는 한국에서만 놀 것 같고.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술, 태권도가 있다. 태권도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국기이고, 전통 무예이며,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무술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세계 태권도 협회는 한국 협회랑 같은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질 뻔 했다. 태권도가 세계화 되기를 바라면서 한국인이 태권도 금메달을 못따면 쪽팔려한다. 말이 돼나? 물론 한국이 종주국이니까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진짜로 세계화가 잘 되었다면,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챔피언이 나오는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그래야 더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해봐라. 저기 어디 한국이 어딘지 잘 모르는 나라에서 출전한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하고, 한국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하고, 태권도는 어떤 경우에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걸까? 다른 나라에서 금메달이 나왔다면, 적어도 그 나라에는 태권도가 홍보가 되지 않을까? 진짜 태권도를 사랑한다면, 금메달에 목매지 말고 태권도 대회 자체를 즐기고, 좋아해야 한다.

자기가 아는 사람하고만 잘 지내는 것과, 자기를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어느것이 더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인가.

  1. 확인한 적은 없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건 MS 익스플로러, 윈도우즈 버전 파이어폭스, 리눅스 버전 파이어폭스 뿐이었지만, 사파리나 오페라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본문으로]
  2. 지금은 오픈오피스에서 한글97의 hwp형식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문으로]

거리에서 vs 지하철에는 그리운 사람이 있다

오늘은 시와 노래를 비교해서 감상해 보자.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은 날은 지하철을 탄다

– 조용우

미워라, 아름다운 사람아

눈빛을 보고도 몰랐더냐

그리운 사람이 보고싶은 날은 지하철을 탄다

책을 읽는 사람

생각에 잠긴 사람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조는 사람

저 무관한 흔들림 속에서 꼬옥 한 사람

산목련같고 수선화같은

물오른 4월의 꽃망울 닮은

내 그리운 그대를 만나네

일상사 늘 서러워 흔들거리면서 가던 길

날 위해 기도해주던 고운 손

드높고 귀한 분 우러러 갈망하던 눈빛 그대는

고단한 내 영혼에 빛나는 샛별이었네

이 세상 무성한 잡초 속에서

비비고 얼굴 내민 여린 풀꽃 한 송이

내 누이같은 그리운 사람아

버스 안에서도 합승택시에서도

어느 날은 미친 듯이 종일 거리를 헤매어도

내 그대를 영영 잃고 말았네

관객이 모두 떠난 텅빈 가설극장 쓸쓸한 외등불 밑

바람에 굴러가는 신문지조각처럼 외로운 이 도시에서

그대가 이리도 그리워져 지하철을 타면

꼬옥 한 사람 옛날 그대를 만나게 되고

나는 조용히 그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아련한 슬픔을 지낸채로

그러나 따뜩한 위로에 싸여 자리에서 일어나네

미워라, 그리운 사람아

사실 이 시를 처음 본 곳은 서울역 지하철 아케이드이다. 거기에는 일부만 소개되어 있는데 전체를 다 읽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느낌이 온다.

이 시에서 느끼는 것은,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을 때 밖으로 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서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부분씩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운 사람이기에, 그리워 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쪽에서 먼저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반가운 사람이기에 그대 모습의 일부분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지하철에 올라타는 것이다.

[성시경] 거리에서

니가 없는 거리에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마냥 걷다 걷다보면

추억을 가끔 마주치지 떠오르는 너의 모습 내 살아나는 그리움 한번에

참 잊기 힘든 사람이란 걸 또 한 번 느껴지는 하루

어디쯤에 머무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걷다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

이 거리가 익숙했던 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그리운 날들 오늘 밤 나를 찾아온다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가득해

막다른 길 다다라서 낯익은 벽 기대보면 가로등 속 환히 비춰지는

고백하는 내가 보여 떠오르는 그때 모습 내 살아나는 설레임 한번에

참 잊기 힘든 순간이란 걸 또 한번 느껴지는 하루

아직 나를 생각할지 또 그녀도 나를 찾을지 걷다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

이 거리가 익숙했던 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그리운 날들 오늘 밤 나를 찾아온다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가득해

부풀은 내 가슴이 밤 하늘에 외쳐본다 이 거리는 널 기다린다고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가득해

성시경의 거리에서 노래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헤어졌으나, 아직 나는 잊지 못한 그 사람이 그리워서. 그리움에 못이겨 무작정 밖으로 나갔지만 그리운 모습은 없다. 하지만, 사람으로 가득찬 길거리지만 그대가 없으면 텅 빈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한사람 한사람은 모두 그대의 모습이다. 추억을 되새기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이상, 간략하지만 나의 감상이다. 이 둘을 굳이 같이 비교하는 것은 두 노래의 모티브가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표절이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이 글은 둘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시사할 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베꼈다는 근거나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어떤 모습은 다른 사람의 어떤 모습과 닮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어떤 모습들을 모두 합치면, 내가 그리워하는 그 어떤 사람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와 닮았고, 다른 사람의 다른 모습을 합치면 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닮아가면서 살아간다. 획일화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모두 똑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닮기를 원하는 것이다. 닮아간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베낀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본질을 지키면서 비슷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다.

외로우면, 찾고싶은 모습을 그리자. 그리고 나면 길거리에 나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관찰해 보면, 각자 다른 모습에, 각자 무뚝뚝한 표정 속에, 내가 그리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당황스러운걸?

이런 신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에 개인정보가 떠돌고 있군요. 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서 구글에서 검색해봤더니 딱 뜨네요. 그것도 내껄 포함해서 몇몇 아는 애들 것 까지. 저거 리스트 딱 보니까 2001년도 경기도 과학경시대회 수상자 명단인데, 경기도 교육청을 족쳐야 하나요? (이 부분은

2007년 3월이면 상당히 최근인데, 어째서 6년전 자료가 해킹된채 버젓이 떠도는 건지 모르겠군요.

누구 대책 아시는 분. -_-;

일단 경기도 교육청에 신고했습니다.

추가 : 생각해보니, 동상 받은건 3회 한국과학창의력경시대회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느쪽이든, 해킹당한건 해킹당한거죠.

추가 : 처리되었습니다. 일단은.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는데, 저쪽은 중국 사이트기 때문에 한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 교육청에서 재발방지를 위해서 힘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했고, 아마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저 수많은 주민등록번호를 어떻게 하면 악용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양심선언(!?)

난 지난번 총선때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다. (이건 사실이다)

다음 중 올바른 이유는?

  1. 한나라당이 싫어서
  2. 열린우리당이 싫어서
  3. 민주노동당이 좋아서
  4. 후보가 여자라서

답은 나만 알고 있도록 하겠다. 물론 당신이 짐작하는 그 답이 정답이므로 내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Proudly powered by WordPress | Theme: Baskerville 2 by Anders Noren.

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