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관리자 메뉴 변경에 관한 snowall의 평가

1.전체적으로 맘에 든다. 좀 더 직관적으로 변한 것 같다.

2.특히 초대하기가 밖으로 빠진 건 티스토리 사용자 증가에 큰 영향을 줄 것이고, 자신이 초대한 사용자를 신고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티스토리 블로고스피어의 건전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또한 운영진이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조금씩 평가하게 되므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web2.0 방식의 운영법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덧붙여서, 초대해놓고 끝내는게 아니라 초대한 사람에게 한번 더 관심을 갖게 되므로 티스토리 사용자들끼리의 친목 도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티스토리 사용자가 다른 블로그 시스템으로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3.다만, 글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싶을 때 댓글/트랙백 탭이 분리된 것은 기능별로 탭을 모은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사용자가 가장 보고싶어하는 것이 자신의 글이 아니라 자신의 글에 달린 댓글과 트랙백이라는 점에서 클릭수가 1회 (= 50%



[각주:

1

]



) 증가했다는 점은 안좋은 것 같다.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로 들어오면 “글”탭이 최초로 노출되는데, 차라리 태터센터를 최초로 노출되게 하면 어떨까 싶다. 글 목록도 다 보이고, 댓글, 트랙백, 방명록도 얼추 다 보이고, 글쓰기 링크도 있으니 좋지 않은가? 태터 센터의 기능이 원래 관리자 페이지에서의 첫 페이지 기능 아니었던가 싶은데 말이다.

(그런데, 왜 “글”탭이 관리자 페이지의 첫 페이지인지 모르겠다. “센터”에 티스토리 공지사항이 뜨는데, 공지를 항상 늦게 발견하게 된다)

4.”분류”라는 용어를 “카테고리”로 바꾼 것은 한글을 영어로 바꿨다는 점에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카테고리와 분류라는 용어 사이에 의미상 차이가 있어서 이 관리자 메뉴에 어울리는 뜻이 카테고리여야만 한다면 카테고리로 쓰는게 좋겠지만, 굳이 그런 의미 차이가 없다면 한글을 쓰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건의사항1 : 글을 쓰면서 곧바로 트랙백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항상 글을 쓴 다음에 트랙백을 보내야 하는데 은근히 귀찮다. 글쓰기 화면에서 트랙백 주소를 넣을 수 있도록 하여 바로 트랙백을 보낼 수 있으면 어떨까? 이건 티스토리보다는 태터툴즈 건의사항이겠지만.

건의사항2 : 트랙백을 보내면, 이글이 어떤 글에 트랙백으로 보내졌는지도 표시되었으면 좋겠다. (또는 선택사항으로 표시) 내가 이 글을 공지사항에 대한 트랙백으로 보냈다면, 내가 굳이 표시해두지 않는 한 이 글이 공지사항에 대한 트랙백인줄을 어떻게 알겠는가. 원래 이것에 대해서 내가 처음에 냈던 아이디어는 트랙백에 대하여 자동으로 역트랙백이 붙는 것이었지만. 물론 상대편 블로그에서 자동 역트랙백을 지원할 수도 있으니 만일 추가된다면 둘 중 하나만 표시되도록 하면 되겠다. 물론 이것도 태터툴즈 건의사항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1. 50%는 관리자 페이지로 이동하는 링크를 블로그에서 한번 눌러야 하고, 다시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와서 댓글 링크를 눌러야 해서 2회였는데, 이제 3회로 증가했으니 50%가 증가한 것이다

    [본문으로]

OOXML, ISO 표준 통과 반대 서명

*

http://kldp.org/node/85862

에서 복사.

Microsoft가 자신들 만의 Office 문서 포맷을 국제 표준화 하려는 시도가 ECMA를 거쳐 ISO 국제 표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Microsoft가 6,000장에 해당하는 Office Open XML(OOXML) 표준안을 5개월 만에 심사를 하는 ISO Fast Track에 제출하고, 9월 2일 국가 대표별 투표를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피스 문서 표준으로 Open Document Format이 ISO 표준으로 제정되어 있으며 OOXML이 MS 만의 표준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한데 투표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투표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단에게 OOXML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줄 것을 요청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 합니다. 아래 링크에 글을 읽어 보신 후 서명을 부탁 드립니다.

OOXML의 ISO 표준 반대 서명

http://channy.creation.net/antiooxml

본 서명 결과는 9월 2일 투표 전 한국 대표단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알려 주십시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nowall의 개인적인 생각 : 생각해보니까, 이 논의는 activeX를 표준으로 만들자는 주장과 비슷한 것 같다.(실제로 그런 주장이 제기된 적은 없겠지만)

문제점

어제 친구가 자취방에 찾아와서 긴 얘기를 해줬다. 요점은 내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니까 쓴소리 해주는 건 정말 고맙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교수님이 나를 보는 시각, 후배들이 나를 보는 시각,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나를 직접 대면할 때와 나를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 다르겠지. 뒷담화가 내 귀에 들려오니 나로서는 사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져 있다. 그가 내게 물어봤다. 과학자는 왜 되고 싶은 거냐고. 그에 대해서 내가 대답하기를, “재밌잖아” 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사실 대인관계 잘 풀어 나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난 그냥 가식적이어도 다른 사람들이랑 대충 인사하면서 지내면 된다.

사람들은 가식적인걸 싫어하면서 내게 가식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가식적인걸 싫어하길래 내 마음을 그대로 내놓고 다녔더니 다들 그런식으로 살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다 감추고 조금씩 위장하고 다니면 그걸 가식이라 부른다. 그럼 결국 가식이 아니면서 그 사람들 맞춰주려면 나를 바꿔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사람의 마음에 관한 문제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깨우침의 문제지. 내 귀가 말을 들어 처 먹어야 내가 바뀔거 아닌가.

내가 초, 중, 고등학교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을 대학교 와서, 사회에 나와서 드러내서는 안되겠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 필요는 없는거잖아. 아는 얘기야. 근데 그게 쉽냐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얘기도 비수가 되어 가슴에 처박히고, 고민없이 툭 튀어나온 얘기는 사람 마음 속을 후벼파는데. 물론 내가 내 상처를 고쳐야겠지. 그래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 테니까. 나는 억울하다고. 이런 주장도 변명이지만. 세상에 상처 안받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나. 그런데 나만 어긋나서 남들에게 상처 주면서 사는건 이상하다는 거다. 그래. 이상하지. 근데 그건 나잖아. 내가 다른 사람과 같아야 할 이유도 없고 상황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는 얘기가 내가 권위적이라는 점이다. 이건 사실 나도 문제라고 느끼고 있다. 내가 남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줄 때, 사실 난 내가 그친구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점에 쾌감을 느끼며 가르쳐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남들에게 대답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공부한다. 어쩌면 강박관념인 것 같기도 하고. 좋게만 보면 베푸는 거지만, 그뿐만 아니라 사실 난 내게 질문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질문자는 기분이 나쁘겠지. 내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된 건 중,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 내가 만난 내 반 친구들은 모두 나한테서 숙제를 베껴갔다. 대학교 와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애들이 내 숙제를 베껴갔다. 별로 그걸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난 별로 힘도 없고, 주먹도 못 쓰는 아이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공부를 좀 잘했기에, 그런 힘좀 쓴다는 애들이 숙제 안해와서 나한테 보여달라고 부탁하면, 기분 좋지 않은가. 그런데서 우월감 느끼면서 숙제 다 보여줬다. 물론 숙제로 성적이 모두 결정되는 것도 아니니까 내 성적은 중상위권 정도를 유지했고. 물론 이런 우월감 느끼는 것들은 아주 유치한 정서이고, 대학교 와서도 그러면 안되고 다 커서도 그러면 안되지. 응, 나는 아직 어리다. 이걸 변명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나름대로 그동안 고민한, 내 성격이 지금 이런 상황이 된 원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나보다 웃어른인 사람들에게도 이런 알량한 권위적 심리를 내비친다는 것이다. 이건 앞서 얘기한 가식/비가식 문제하고도 맞물린다. 나는 나 자신을 감추는데 굉장히 서투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내 모습을 다 받아들여주는 착한 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사람하고만 만날 수 없다. 누구나 다 만나고 다녀야 한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인간 관계가 있고, 끊기 싫어도 끊기는 관계가 있다. 가급적이면 나하고 마음 맞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 친구는 내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마음을 고쳐서 이런저런 사람하고 다 잘 지내면 어떠냐고 묻는다. 그럼 좋지. 좋아. 그런데 조금 고치기기가 왜그리 힘드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본 건데, 난 불분명한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모든걸 다 규정해 버리려는 성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조금 안보이는 정도는 그냥 다니지만 나는 안경을 항상 쓰고 다닌다. 뿌옇게 보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도 작업 내용과 마감 날짜를 딱 정해놓고 그날까지 끝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도 얘기의 요점을 한문장 정도로 정리하고 싶어하고, 하지 않아도 될만한 얘기도 입밖으로 꺼내서 명확히 하고 싶어한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왜 이러고 있겠나. 속으로 담아두지 못하고 답답해서 어떻게든 명문화 시키고 싶으니까 그러는 거지.

사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성공하려면 대인관계도 상당히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건 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별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나를 맞춰 나가야 과학자도 되고 성공도 하지. 내가 칭찬받기보다는 남을 칭찬해야 하고, 내가 위에 있기보다는 남을 올려놓고, 내게 권위를 돌리기보다 남에게 돌리고. 중고등학교때 반 친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핑계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느끼고는 있으나, 느끼기만 하는, 그런 거다.

내 성격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나는 화를 못낸다는 것이다. 화가 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든다. 이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는데, 분명한건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내가 화를 낼 것을 기대하고 얘기하는데 내가 화를 내지 않게 되면 상대방이 더욱 화를 내는, 그런 악화되는 상황이 있더라. 그리고 이렇게 화를 내지 않고 화나는 일들을 쌓아두다보면 언젠가 터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홧병이라던가. 또한 스트레스 쌓이는 일을 요새는 스트레스를 기분 좋게 풀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친구는 내게 이런것이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뎌질 수밖에 없지. 내가 억울한 일들을 하나하나 모두 화내고 살다간 나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언제쯤 내가 원하는 공부만 하고 원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있을까. 그 친구는 내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암시하며 나 자신을 고쳐나갈 것을 권유하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이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심은 전해졌으나 내가 이미 지쳤다. 사실은 매일 사람을 만나서 웃고 떠드는게 일은 일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남들이 내게 간섭 안했으면 좋겠다. 난 그냥 재밌는 공부만 하고, 재밌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다. 안그런 사람이 없겠지. 그리고 다들 어쩔 수 없이 싫은 일도 하고 싫은 사람도 만나는 거겠지. 그렇다고 내가 그걸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닌데, 포기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짓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난 지금 과학자가 되겠다고 쇼를 하고 있으면 안되지. 빨랑 군대 갔다 와서 회사 들어가야지. 그럼 돈은 많이 벌잖아. 처자식 먹여살릴 수 있잖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지.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는데.

– 이 글에는 트랙백과 댓글을 금지합니다. 방명록에 남겨진 어느 누구의 조언도 양해 없이 삭제합니다. –

양자 관점에서 인간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임을 밝힌다. 좀 더 발전된 논의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 상태(Quantum state)”라는 것은, 우리가 이름붙인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추상적인 대상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기호로 $\mid state\rangle$이라고 쓰면 이것은 곧 state가 가진 특성을 모두 표현한 것이 된다. 여기다가 우리가 이 state가 어떤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해밀토니안 연산자를 적용하여 평균 에너지를 계산한다. $\langle state \mid H \mid state \rangle$ 이런 식으로. 어떤 양자 상태에 대해서,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여러가지 상태에 있을 확률이 단지 확률밀도 함수로 주어질 뿐이지만, 만약 우리가 이 상태를 특정 고유 상태로 측정해 버린다면, 다른 상태에 가 있을 확률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리가 측정한 상태로 고정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단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 적당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을 표현한 것이 된다. 가령 snowall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snowall이 가진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이 바로 snowall이다. 물론 이름과 실체 사이에는 대응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snowall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snowall에 대해서 말을 하면 된다. 가령 “snowall은 머리가 좋다”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snowall은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규정되며, 이것은 사실로 변하게 된다. 이 순간 “snowall은 머리가 나쁘다”는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고 한가지 가능성만 남게 된다.

엽기적인 뉴스


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7082911105814232

아니, 뭐, 보면 안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냥, 엽기적인 뉴스가 나온다는 것만 알고 클릭해 보시기를. (19금은 아니고, 임산부/노약자 등이 봐도 아무 상관 없다. 단지

엽기적인 뉴스

일 뿐이다. 단지…)

진짜,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별꼴을 다보겠다.


저기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인질은 “사람”을 붙잡아야 그게 인질로서 가치가 있거든요?

있을 곳이 없다…

사실 1 :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

사실 2 : 어제부로 연구실을 옮겼다. 이쪽방에서 저쪽방으로 옮긴 것이다.

사실 3 : 자취방은 길가 바로 옆이고, 하루종일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새벽 2시에 자취방으로 들어갔는데 창문을 못 열어두기에 항상 닫혀 있다. 덕분에 매연은 안들어오지만 요즘같은 날씨에, 드디어 찾아온 열대야 덕분에 잠이 안온다. 결국 아침 6시 30분에 깨서 나올까말까 30초간 고민하다가 그냥 씻고 나왔다. 덕분에 잠은 4시간밖에 못 잤다. 그건 뭐 그냥 버틸만한데, 문제는 더워서 연구실에 나왔더니 여긴 여전히 덥다. 가장 구석진 곳으로 들어왔는데, 에어컨에서도 멀어졌다. 그도 그렇지만 나 혼자 쓰자고 에어컨 켜는 것도 그렇고, 선풍기도 없고. 해서 여전히 덥다. 뭐, 이건 자취방보다는 나아서 창문을 열 수 있으므로 그럭저럭 참을만하긴 한데, 계속해서 콧물이 쏟아지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알레르기 원인물질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내 책상 바로 옆에 오래된 철제 서랍장도 있고, 그 안에는 먹다 남은 시바스리갈 17년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실험용 약품이 혼재한다.



[각주:

1

]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나서 머리도 아프지만, 콧물이 쏟아지는 것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 아니, 사실 집중이 안된다는 건 공부가 안된다는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런 핑계 댈 꺼리도 없어야 공부가 잘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밖에 있을 수도 없고 전에 있던 연구실로 갈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갈 곳을 잃어버렸다. 이곳의 공기가 깨끗히 정화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공부는 힘들 것 같다.

음, 아무튼 이런식으로 일단 핑계를 대 놓고, 이제 대놓고 놀자는 거지…

그러나 비염이 치료되거나 알레르기 원인물질이 없어지거나 하지 않는 한 놀기도 힘들다. 냄새가 나서 숨을 못쉬겠다는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숨을 못쉬겠으니, 원 난감할 따름이다.

  1. 둘이 혼합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본문으로]

제로존 이론 말인데…

음…

신동아 기사를 보니

양동봉 씨가 발견한 이론이라는게 모든 물리적 숫자를 표현할 수 있는 방정식을 찾은 거라는데…

이 기사의 문맥상으로만 보면, 별다른 이론적인 작업틀(Framework) 없이 그냥 “이렇게 하면 모든 숫자가 맞아떨어진다”로 읽힌다.

핵심은 모든 단위를 통합시켰다는 부분이 바로 그 작업틀이 될 것 같은데.

아무튼, 논문을 좀 읽어보고 싶다.

논문도 없이 신동아 같은 비과학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니 도무지 신뢰가 안간다. 물론 양동봉씨의 이메일이 공개되어 있긴 하지만, N.S. Joo, J.Y. Lee, Y.S. Kim 등의 가짜 과학자들의 예를 볼 때 그다지 이메일로 내 존재를 알리고 싶지는 않고.

유럽 물리학회지에 게제되면 좀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왜 arxiv.org에는 안올리는 거지?

pocket diary for physicists 2007-2008

올해는 신청도 안했는데 그냥 왔다. 애독자 서비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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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표지. 별로 볼건 없다. 제목이 적혀있고 어디서 배포하는지 써 있다. 그리고 50주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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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표지 안쪽. 받는 방법, 연락처, 저자 이름, 어디서 돈을 대주는지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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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표지. 인치 단위의 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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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표지 안쪽. 센치미터 단위의 자가 있고 2년치 달력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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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 전세계 입자 물리학을 연구하는 곳의 연락처가 적혀 있다. 한국도 있기에 그쪽을 찍었다. 그리고 그동네 시차가 적혀 있어서 무례하게 밤에 전화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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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부분에는 연락처를 적을 수 있도록 메모지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 메모지 부분은 인쇄의 효율성을 위하여 책자의 중간에 주간일정을 사이에 두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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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일정. 각종 정보가 적혀 있다. 전 세계 중요 기념일들이 들어가 있다. 한국과 인도의 독립기념일도 적혀 있길래 찍어보았다.

내용은 이게 끝이다. 일정은 2007년 9월 3일부터 2009년 1월 4일까지 딱 70주 분량의 일정을 기록할 수 있다. 받는 방법은 pdg.lbl.gov 가서 잘 찾아보시기 바란다.

리치리치

케이블 TV에서 아무 생각없이 방영되던 리치리치를 봤다.

사실 두번째 본거다.

벤도우가 리치네 부모님을 협박해서 리치모어 산의 금고를 털러 들어가서, 정작 돈이 없자…

“현금은? 금괴는? 무기명 채권은?”

이라고 묻는다. 그러자 부모님의 말씀.



주식



은행



부동산

에 투자했지”

명언이다.

그러자 벤도우가 화내며

“이 큼지막한 산에 그런게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 돼!”

할말이 없도다. 세기말 악당 중 가장 멍청한 인간중의 하나랄까. 어떤 멍청한 부자가 돈을 금고에 묻어두나. 땅과 주식을 사서 불리겠지. 그러니 넌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 이런

음…사실 연애에 있어서는, 4번 차이고 1번 찼다. (어쩌다보니)

지금은 솔로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쭉 고민하다가 느낀건데, 함부로 시작할 것도 아니고 시작할 때는 그만큼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생각이 옆으로 새서, 예수가 아무리 날 사랑하고 나때문에 괴로워해도 굳이 내가 그를 사랑하거나 의지해야 할 의무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오래전 일이다)

뭐 이런 얘기를 굳이 해야겠느냐 – 라고 한다면, 그럼 종교 있는 사람들은 누굴 좋아한다고 다 티 내고 다니는데 내가 누굴 싫어한다고 티내고 다니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의 자유란 신앙을 가질 권리도 있으나 싫다고 말할 권리도 있는 것인데.

신을 믿는데 아무 이유가 없이 그저 믿는 것이라면, 신을 믿지 않는데도 아무 이유가 없이 그저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그에 관한 글을 올릴 수 있다면, 나 역시 예수를 싫어한다고 매일매일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일 수 있다.

굳이 이런 말을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항상 마음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티끌이기에, 매일 뱉어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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