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예상

오래간만에 퓔 받아서 몇가지 미래 예측을 적어둔다.

무선 조종 드론

요즘들어 드론이 유행하고 있는데, 아마 드론은 조만간 유해조수와 반려동물처럼 다뤄질 것이다. 즉, 허가받은 구역에서 등록된 드론의 비행은 자유롭게 허락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드론이나 비행금지구역에서 하는 드론의 비행은 격추시켜도 재산권 침해를 배상받지 못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등록된 드론과 등록되지 않은 드론의 구분은 아마 드론마다 유심칩을 심어고 무선신호를 발신하도록 사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는 휴대전화망이 이미 가설되어 있다. 그리고 드론이 날아다니면 안되는 위험한 구역은 대체로 사람이 많이 사는 구역이다. 그리고 등록된 드론에는 반드시 배터리가 떨어지는 경우 근처의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가서 강제로 충천후에 다시 비행을 시작하도록 하는 기능이 들어갈 것이고. 참고로 등록된 드론을 구분하는 무선신호는 스마트폰 앱과 연동되어서 드론을 조종하는데 같이 사용될 것이다. 한국이라면 스마트폰이 없으면 국민이 아니니까 이런식으로 등록을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물인터넷

현재 IPv6로 충분한 수의 주소를 보유하고 있다.(물론 이것도 언젠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사물인터넷이 강력해지는 경우는 인터넷에 연결된 그 사물이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경우이다. 적어도 다른 사물과의 관계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면, 그 위치 정보와, 사물에 내장된 센서 또는 기능을 연동해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사람을 편리하게 한다면 집 주인의 생활패턴에 맞춰서, 또는 집 주인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항상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는 자동 조명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유치한 사례이고, 좀 더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내 본다면, 사물인터넷이 발달하는 경우 사람의 주거가 아무런 제한이 없게 된다. 지금 일부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스마트 오피스의 사례가 있는데, 회사에 출근해서 어느 자리든 앉아서 자신의 랩탑을 꺼내서 일을 한다거나, 자리에 있는 콘솔에 접속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기분 따라 창가에, 복도쪽에, 옥상에, 3층에, 어디든 앉아도 된다. 물론 아가씨 옆자리에 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사물인터넷이 더 발달하면 고정된 주거지가 크게 의미가 없게 될 수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취향, 장식, 실내 온도, 조도, 이런것들을 태그에 들고 다니면, 또는 생체 인식으로 확인시켜줄 수 있게 되면, 주거 구역의 아무 빈 집이나 들어가서 로그인하면 된다. 그럼 그 즉시 자신이 익숙한 환경으로 변한다. 집안 구조는 다를 수도 있지만 장식, 온도, 조도 등이 익숙하므로 크게 어색하지 않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유형의 주거지가 보급될 것이다. 만약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가족이 들어온다면 그 자리에서 벽을 없애고 두 집을 합쳐서 큰 한채로 개조하는, 변신하는 집이 보급될 수도 있다. 음, 그럼 출퇴근은 어떻게 하냐고?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의 집이 다른데 어떻게 하는가? 사람은 자기가 어디에 살고있는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 무인자동차에 타서 “퇴근”을 입력하기만 하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게 된다. 그 집이 내가 어젯밤에 잤던 집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익숙한 환경에 반가운 가족들이 있으면 되는거지.

어딘가 여행을 가더라도 거주지 예약이 필요 없다. 충분한 수량의 빈 집들을 공급해두면, 그냥 빈 집에 들어가서 쉬면 된다. 이 모든 비용은 은행에서 생체인식과 태그를 통해 자동으로 지출될 것이다.

이런 시대가 되면 뭐가 무섭냐면, 노숙자는 진짜(!) 갈데가 없다는 것이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 아무 빈집도 못 들어갈테니까. 복지정책은 뭐 이런 노숙자들이 무료로 집을 쓸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빈 집이라고 해도 공짜로 들어가서 자면 불법이다. (절도?!)

인공지능

요새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을 이기면서 인공지능이 뜨고 있는데 사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인공지능에 의존하느냐다. 지금도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데도 못가는 운전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참고로 난 차에 네비게이션이 아예 없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어떤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준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어떤 인공지능 채팅 봇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가 망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개가 짖었다고 인종차별로 욕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우리는 개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우연찮게도 인공지능 채팅봇이 내뱉은 말은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인공지능에게 그런 유형의 가치판단을 맡겼을 때 기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 판단해서 인간의 가치관에 맞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개발한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이 소설을 쓴다고 하는데, 기계가 소설을 쓰는게 문제가 아니다. 기계가 소설을 심사하게 되는 상황이 문제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면 판단을 인간이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아자 황이 알파고의 착수를 참고만 하고 두기는 자기 맘대로 두었다면 그것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아닌 아자 황과 이세돌의 대결이 되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보조적 역할이었을 것이고.

하지만 미래는 항상 바보들의 것이었고, 그 바보들은 아마 인공지능에게 수많은 판단을 맡길 것이다. 그 판단이 기계적인 일이라면, 가령 비가 내리는데 세차를 해야 하느냐, 운석이 우주에서 떨어지는데 어떻게 요격해야 하느냐, 그런 수준의 일이라면 인공지능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고 믿고 맡겨도 될 것이다. 하지만 범죄의 심판과 같은 윤리적 문제는 최종적으로 인간이 주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게 안되면 인간은 기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설마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처럼 인간을 억압하고 뭔가 인간에게 괴로운 것을 강요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에게 매우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뭐가 문제냐고? 그게 문제다. 등따시고 배부른데 뭔가 이상하다는 것.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자들도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귀찮을 수 있다. 돈을 아무리 벌어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가고싶은 곳을 마음껏 다니고, 먹고싶은걸 마음껏 먹고, 애인을 마음껏 만들고, 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가고싶은곳을 간다고 해도 멀리 가봐야 달나라, 먹고싶은걸 먹어봐야 한끼에 1인분이다. 애인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하룻밤에 몇 명이상은 안된다. 이 얘기는 내가 한게 아니라 수천년 전에 장자가 먼저 했던 이야기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걸 기계에게 맡긴다. 인간은 기계를 지배하고, 기계는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기계가 권력자의 속성을 그대로 받아서 지배한다면, 아마 그 밑에서 지배당하는 인간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냥 적당히 먹고살만 하므로 대충 살지 않을까.

수십년 안에 그렇게 될 것이다. 한가지 장점이라면 그 결과 제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일까? ㅎㅎ)

사회 변화

당신이 느끼는 사회는,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도, 컴퓨터가 나타나기 전에도,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도, 그 전에도,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편하게 잘 살아왔다. 사회의 계급 구조는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변해왔어도 계급 구조 그 자체는 없어지지 않았고, 계급에 매여있는 사람들은 그 계급 안에서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적당히 버티며 살아왔다. 하지만 드론이 날아다니고, 컴퓨터가 지배하고, 사물인터넷이 온 사방에 깔린 사회는 오히려 취약하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인터넷 여론에 더 신경쓰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대면은 아마 직장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와 학교 친구 정도가 될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인터넷 여론은 어느 강력한 권력자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중앙 권력자가 있는 경우, 언론은 그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언론의 존재 가치와 존재 의미는 그 권력자의 권력을 견제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에서 있는 것이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그 어떤 언론도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은 세상을 살고 있는 대다수의 관점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언론과 다르다. 언론을 장악하고 싶은 경우 권력자는 언론사의 간부와 임원진을 통제하면 된다. 즉, 계층 구조이기 때문에 상층부를 제어하면 그 아래도 같이 움직인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은 그 상층부가 없으므로 통제할 방법이 없다. 통제를 한다면 인터넷 전체를 끊어야 하는데 그럼 더욱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인터넷 여론의 강력한 힘을 알지만 통제할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 좋은거 아니냐고? 인터넷 여론은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지만, 그 강력한 힘을 결집시키는 일은 매우 쉽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대체로 그냥 외면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되고, 자기 주변 사람들의 일이 되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바로 여기에 개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불만이 쌓였을 때 목소리를 낸다. 따라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불만이 생기게 만들면 된다. 불만은 어떤식으로든 만들게 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의 세계에서는 더욱 간단하다. 사물인터넷이 센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절기, 스위치가 ƒˆ이 있는 경우, 이 조절기와 스위치는 분명 그 주인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미묘하게 오차가 생겨서 불만이 생기게 한다면?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사물인터넷 해킹이다. 사물인터넷은 아마 폭발적으로 보급될 것이다. 값싼 센서와 통신칩이 조만간 출시될 것이고, 그럼 전 세계의, 적어도 대도시 급의 동네에는 전부 보급된다. 모든 곳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하겠지. 사물 인터넷 보안은 반드시 뚫린다. 뚫기는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뚫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물인터넷은 분명 여기저기에 설치된다. 그럼 여기는 이 집단에 뚫리고, 저기는 저 집단에 뚫리고. 큰 세력이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작은 세력들이 서로 충돌한다.

어쟀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그냥 아무생각없이 편하게 살아갈 것이다. 점점 왜 사는지 잘 모르게 될 것이고. 아마 이런 생각 자체가 귀찮아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매우 행복한 미래를 안겨줄 것이다. 아무 걱정없이 살 수 있는 행복한 미래를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살다 못해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되는.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꿈과, 자신의 죽음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그런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다.

어떤가?

미래소년 코난

푸른바다 저 멀리

새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높이 하늘높이

뭉게꿈이 피어난다.

여 기다시 태어나

지구가 눈을뜬다

새벽을연다.

헤엄쳐라 거친파도 해치고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고향

달려라코난

미래소년 코난 우리들의 코 난

자료용.

알파고

알파고가 변칙적인 수를 두어서 이세돌을 이겼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 알파고가 학습한 기보에서 이런 변칙적인 수가 등장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수가 승리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수를 학습하면 (그 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더라도) 변칙적인 수를 두어서 승리할 수 있다. (중국어 방 문제를 생각해 보자.) 기보 학습 없이 기존의 고전적인 알고리즘으로 두었다면 아무리 빵빵한 알고리즘과 연산성능의 지원을 받더라도 알파고는 실수로 여겨지는 변칙적인 수를 둘 수 없었을 것이다.

현 시대의 인공지능은 일단 ‘흉내내기’ 차원에서는 많이 발달하였다. 울프람 알파, 신문기사 자동 작성, 아이폰 시리, 구글 자동운전차 등등. 문장을 분석해서 인간이 이해하는 의미를 찾아내고, 인간이 원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해한 그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직접 이해하지는 못한다. 추상적인 단계에서 인간이 이해하는 의미에 어떤 수치 또는 벡터를 만들고, 결과물이 그와 같은 벡터를 향하도록 수행하는 것이다. 이 벡터가 입력과 출력에 대해서 같으므로 인공지능이 수행한 결과물은 인간이 원하는 결과가 된다.

내 생각에 알파고는 바둑 잘 두는 기계지 ‘인공지능’의 레벨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적어도 강한 의미의 인공지능은 아니다.)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으려면 내가 보기엔 100년은 더 걸릴텐데 다들 괜히 설레발 치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

그보다, 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걱정을 하지 말고, 인공지능으로 절약한 인건비를 복지로 돌려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 물론 우리나라같은 추세로 가면 한 200년쯤 후에는 기계밖에 안 남아있겠지.

Cherry

Cherry – by Spitz

君(きみ)を忘(わす)れない 널 잊지않겠어

曲(ま)がりくねった道(みち)を行(ゆ)く 난 지금 굽이진 길을 가네

産(う)まれたての太陽(たいよう)と夢(ゆめ)を渡(わた)る 갓태어난 저태양과 꿈을 건너고있는

黃色(きいろ)い砂(すな) 저 노오란 모래

二度(にど)と戾(もど)れない 두번다시 돌아올 수 없는

くすぐり合(あ)って轉(ころ)げた日(ひ)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며 뒹굴던 그날

きっと 想像(そうぞう)した以上(いじょう)に 상상한 것 이상으로

騷(さわ)がしい未來(みらい)が僕(ぼく)を待(ま)ってる 혼란스런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을거야

愛(あい)してるの響(ひび)きだけで 사랑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强(つよ)くなれる氣(き)がしたよ 난 강해질수있을것같은 기분이 들어

ささやかな喜(よろこ)びを つぶれるほど抱(だ)きしめて 이 작은 행복을 으스러질만큼 꼭 껴안아줘

こぼれそうな思(おも)い 汚(よご)れた手(て)で書(か)き上(あ)げた

넘쳐버릴 것 같은 상상을, 더러워진 손으로 다 써내려갔지

あの手紙(てがみ)はすぐにでも 그 편지는 바로라도

捨(す)てて欲(ほ)しいと言(い)ったのに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少(すこ)しだけ眠(ねむ)い 冷(つめ)たい水(みず)でこじあけて 잠시 밀려오는 얕은졸음 차가운물로 씻어보네

今(いま) せかされるように 지금 재촉하듯이

飛(と)ばされるように 通(とお)り過(す)ぎてく 날아가듯이 지나쳐가네

愛(あい)してる」の響(ひび)きだけで 사랑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强(つよ)くなれる氣(き)がしたよ 난 강해질수있을것같은 기분이 들어

いつかまた この場所(ばしょ)で 君(きみ)とめぐり會(あ)いたい 언젠가는 여기서 다시 너와 만나고싶어

どんなに步(ある)いても たどりつけない 아무리 걸어봐도 다다를 수 없다네

心(こころ)の雪(ゆき)でぬれた頰(ほお) 마음속에 내린눈으로 촉촉히 적시어진 뺨

惡魔(あくま)のふりして 切(き)り裂(さ)いた歌(うた)を 악마인 체 하며 두쪽으로 찢어버린 이 노래를

春(はる)の風(かぜ)に舞(ま)う花(はな)びらに變(か)えて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로 바꿔보네

君(きみ)を忘(わす)れない 曲(ま)がりくねった道(みち)を行(ゆ)く 널 잊지않겠어 난 지금 굽이진 길을 가네

きっと 想像(そうぞう)した以上(いじょう)に 상상한 것 이상으로

騷(さわ)がしい未來(みらい)が 僕(ぼく)を待(ま)ってる 혼란스런 미래가 날 기다리고있을거야

愛(あい)してる」の響(ひび)きだけで 사랑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强(つよ)くなれる氣(き)がしたよ 난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ささやかな喜(よろこ)びを つぶれるほど抱(だ)きしめて 이 작은행복을 이지러질만큼 꼭 껴안아줘

ズルしても眞面目(まじめ)にも生(い)きてゆける氣(き)がしたよ 이기적이지만 착실하게는 살아갈수있는 기분이 들어

いつかまた この場所(ばしょ)で 君(きみ)とめぐり會(あ)いたい 언젠가는 여기서 다시 너와 재회하고싶어



가사도 좋고 노래도 좋다.

외로운 들장미소녀 캔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자료용.

서버 관리용

내가 관리하는 서버가 죽으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주는 스크립트. 물론 이 스크립트는 관리하는 서버가 아닌 다른 서버에서 cron을 이용해서 정해진 시간간격으로 실행된다.

#!/bin/bash

if wget your.domain.com

then

rm index.html

else

echo “helo melotopia

mail from: your@emailaddress.com

rcpt to: your@emailaddress.com

data

server should be down. Correct it!

.

quit” | telnet localhost 25

fi

물론 sendmail이 서버에 설정되어 있고 데몬이 돌아가고 있어야 한다.

sendmail 보안이 좀 걱정스럽지만 localhost에서만 보내도록 설정했으니 뭐 별일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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