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단상을 하나 적어둔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할 권리는 일반적으로 없지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할 자유는 있다. 물론, 그렇게 강요받는 당사자 역시 자신의 사상을 바꾸지 않을 자유가 있고, 관철시킬 자유가 있으며, 자신에게 사상을 강요하는 자에게 거꾸로 본인의 사상을 강요할 자유 역시 갖고 있다. 인간은 평등하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자유는 생각하면서 남들이 갖고 있는 자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상태를 생각하고나면 떠오르는게,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자기의 사상을 강요하면 서로 괴로우니까 자기 생각을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다듬어서, 서로 괴롭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규칙이 생각난다. 도덕, 예절, 윤리, 그런 것들이다.
이것들을 자신의 마음, 생각, 욕망, 사상에 솔직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그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 생각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는 것도 전달하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그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다못한 다른 사람이 그에게 닥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자유에 포함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게 기분나쁘더라도 화내지 말라는 것은 아닌데, 최소한 자신의 자유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의견을 관철하기

  • 잡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의 선택과,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두가지 원인을 바탕으로 미래가 결정된다. 선택은 필연이고 환경은 우연이다. 자신의 선택과, 그를 바탕으로 한 노력은 큰 이득을 볼 수 없지만 꾸준히 결과를 쌓아갈 것이고, 우연히 주어진 환경과 운 좋게 다가온 기회는 큰 이득을 주겠지만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운이 없다면 살면서 단 한번도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겠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자연현상을 연구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가설이 세상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며,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고, 그걸 왜 사용해야 하는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관철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한다. 온갖 방법을 써서 외친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의견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유사과학을 외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사기를 칠 수도 있다. 소수자 인권을 외칠 수도 있고, 돈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수많은 투쟁들 속에서 살아가다가, 어떤 사람은 힘이 없고, 어떤 사람은 소심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없어서 패배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시도와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이 포기하느냐 마느냐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포기할수도 없고 포기하지 않을수도 없는 절대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다.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세상에 내던져진 입장에서 이 모든 인생을 나 혼자 해내야 하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도와달라고 말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 또한 시도이고 도전이다.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도와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이 도와달라는 말에 도와주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물론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

다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말해도 된다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해내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해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인맥을 이용해 청탁을 한다거나, 뇌물을 주면서 행정적인 처리를 부탁한다거나, 그런 부탁도 하라는 말이냐? 내 주장에서는 그런 것 역시 포함될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에는 누군가 피해자가 있을 것이고, 그 피해자 역시 자신의 피해 구제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런 피해자를 도와주는 사람 역시 있을 것이다.

싸우자. 해야 할 일이 있고, 해내야 할 일이 있으면 끝까지 싸우자. 이기지 못해도 싸워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도와주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살 것이다.

인공지능과 자아복제의 문제

간단한 생각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여, 어떤 개인의 행동패턴, 언어습관, 지식 등을 학습시키면 그 사람처럼 행동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시간의 문제일 뿐 기술적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었을 때 그 개인의 자아는 그렇게 인격이 복사된 프로그램을 자아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만약 뇌-기계 인터페이스가 보다 진보된 형태로 나타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공각기동대에서는 ‘고스트’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해결하고 있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고스트라는 것이 실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해서 어떤 인격이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되면, 본인이 죽더라도 그 주변의 사람들은 본인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와 상호작용하면서 마치 그가 살아있는 것 처럼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에는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만약 기술과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여 위와 같은 인격적인 프로그램들만 다수로 남게 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 것인가.

블록체인의 미래

암호화폐가 화폐로써의 실질적 기능이 가능한가 아닌가는 블록체인에 분산저장되어 있는 거래내역을 정부 또는 법원이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 시스템으로써는, 그리고 알고리즘으로써는 블록체인의 무결성과 신뢰성이 확실하지만, 어쩄든 그걸 믿느냐 마느냐는 법원의 판단이니까. (그런점에서 미래의 법관과 공무원 꿈나무들 중에 코인판에 돈 좀 부어본 친구들이 많을 수록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미래는 “어쨌든” 밝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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