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절대론 – 특수상대성 원리의 수정 (고형석 저)

상대적 절대론 – 특수상대성 원리의 수정 (고형석 저)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제대로 된” 책이다. 저자인 고형석은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가 목회학과 선교학으로 전공을 바꾼 사람이다. 사실 종교인이 쓴 자연과학 계열 마도서 중에 종교를 끼얹지 않은 멀쩡한 책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 책의 경우에는 종교적인 부분은 전혀 없이 매우 건전하고 체계적으로 특수상대성 원리를 고찰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우리 우주의 물리 법칙과 잘 맞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특수상대성 이론이 틀렸다”이고 “절대적 관성계와 상대적 관성계가 공존한다.”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그렇게 결론을 낸 근거는 “특수상대성 이론의 근본 원리인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것이 틀렸다.”라는 것인데, 여기서부터 틀렸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저자는 “강체 자(rigid rod)”를 이용하면 갈릴레이 변환이 맞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원자시계와 빛을 이용하여 거리를 재면 로렌츠 변환이 맞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즉, 관성계를 구분하기 위한 방법이 두가지가 있으므로 절대적 관성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강체 자”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인데, 당연히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읽은 시점에서 그 이후의 논의는 전혀 살펴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어쨌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그게 전부고, 의외로 수식이 많긴 하지만 싹 다 틀린 내용이라 건질만한 것은 없다.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실제로 여러 물리 관련 학술지에 투고했던 논문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논문 답게(?) 참고문헌도 있는데,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참고문헌은 딱 두개다. 하나는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당신이 아는 그 책 맞다)이고, 다른 하나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대하여”(당신이 아는 그 유명한 논문 맞다)이다. 그 문헌들의 내용을 저자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특수상대성 이론을 제창한 그 논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인슈타인이 “어쩌다가” 빛의 속도가 관찰자에 상관 없이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되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단 전자기학을 깊이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해 없이 단순히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광속도 불변의 원리”가 틀렸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시작한다면 당연히 그 이후의 논의는 다 틀린 것이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는 갈릴레이 변환이 로렌츠 변환의 근사적 법칙이 아니라 둘 다 성립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사실 두 변환은 공존할 수 없으며, 만약 갈릴레이 변환이 성립한다면 로렌츠 변환은 성립할 수 없다. 빛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우리가 실생활에서 관측할 때는 로렌츠 변환과 갈릴레이 변환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만큼 충분히 정확하게 잴 수 없을 뿐이며, 실제로 우리 우주에서는 오직 로렌츠 변환만이 좌표변환으로 기능한다.

이 저자는 물리학의 근본이 우리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수학과 이론물리학의 중요한 차이인데, 수학은 공리계에서 출발해서 그 뒤의 논리적 결과들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충분하며 수학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과 잘 맞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의 기하학에서 사용하는 다섯개의 공리(또는 공준)이 수학적으로는 매우 의미있는 결론들을 이끌어 내고 있지만, 평행선 공리는 실제 우리 우주에는 적용할 수 없다. 반면, 이론물리학은 그 연구 과정과 결론을 찾아내는데 수학적인 기법들을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 현상과 맞아야 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물리학자들이 물리학 이론을 그냥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물리학자들은 물리학 이론이 실제로 측정할 수 있는 자연 현상과 잘 맞아떨어질 것을 기대하고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리학 이론의 채택과 기각은 오직 실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실험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물리학 이론은 채택되지도 않고 기각되지도 않는다.

11차원 우주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경고: 이 책은 반드시 금서로 지정되어야 하는 책이다. 어줍잖은 물리 지식과 종교적 신앙을 갖고 이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웃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신준호 교수가 쓴 책이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의 가벼운 책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어야만 하는 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마도서는 적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관점에서 쓰여져 있다. 일단 책 내용을 먼저 소개하자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블랙홀이 성서에 나오는 우주이고, 우리 우주는 홀로그램 우주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 우주는 진짜 우주가 아니며, 영적인 우주가 진짜 우주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예수는 11차원 우주로부터 부활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내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성경의 나오는 구절과 교양과학 도서(멀티유니버스(The hidden reality), 브라이언 그린 저)에 나오는 구절을 한 구절씩 비교해 가면서 “성서의 이 구절과 멀티유니버스의 저 구절은 이와 같은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령의 나타나심을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블랙홀, 양자얽힘, 홀로그램 우주, 엔트로피, 이런 개념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나타나심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힘들여 설명한다는 것이다. 뭐, 사실 과학이랑 신학을 제대로 공부했으면 그런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다들 알 것이고,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사람이라면 내가 여기서 저걸 비판해봐야 아무런 감흥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런 설명들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틀렸는지 지적하는 것은 그만두도록 하겠다.

그건 그렇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결국 우주의 아름다움과 위대한 구조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따라서 신앙을 갖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어느 불행했던 이웃이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는 그때도, 우리는 한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본문 101쪽)

이런 문장이 있는걸로 봐서는 분명한 것 같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를 알리는 책을 쓰는 건 내가 권장하고 싶지는 않아도 어떻게 방해하거나 말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시도는 신을 인간에게 이용당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는 것이다.

자, 이 책에서 언급된 대로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존재와 자연 현상들이 성경의 내용과 관련이 있고, 신의 권능이나 섭리 뭐 그런 것들과 실제로 연관이 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인간이 과학, 공학, 기술을 극한으로 추구할 경우 신의 권능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신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이 사후의 영광을 보장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해 보자. 그럼 그 다음으로 공학자들이 할 일은  신의 뜻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후의 영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최적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확실하게 사후의 영광이 보장되는지 최적 조건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런 교활하고 욕심많은 마음으로 신을 섬겨봐야 신은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겠지. 하지만 신이 인간의 마음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조차 속일 존재들이다.

과학과 공학은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호기심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장치를 필요하다는 이유로 창조하는 호기심이다. 그 결과, 신비한 현상과 신의 섭리로 설명되어 왔던 수많은 자연현상들의 작동 원리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용해서 현대 문명을 만들어 왔다. 초끈 이론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론적 영역에 있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험적으로 증명하거나 부정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과학 이론이다. 초끈 이론의 체계에 신의 섭리를 묶어서 설명한다는 것은 곧 초끈 이론과 신의 섭리를 한 배에 태우는 것이다. 즉, 초끈 이론이 틀릴 경우 신의 섭리도 부정당한다. 반대로, 초끈 이론이 맞을 경우 우리는 신의 섭리를 ‘공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신성 모독이라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고, 만약 신이 우리 우주에 실존하고 자연의 일부라 한다면 연구하면 안될 이유가 없다. 신이 실존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신성모독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신의 섭리’에 해당하는 법칙을 그때 그때 바꾼다면? 그건 ‘과학적’으로 연구할 대상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자연이란, 그 모습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작동 법칙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대상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도, 천년 전에도, 백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자연 법칙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변한 것과 변해갈 것은 자연 법칙을 설명하는 관점과 이론일 뿐이다. 과학자들에게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신을 연구하지 말라고 할 거면 신의 섭리와 과학 이론을 엮는 것 역시 신성 모독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신을 인간의 연구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은 누구인가? 과학자들인가, 아니면 이 책의 저자인가?

사족: 이 글 쓰는데 정말 어려웠던 것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 서두에 적어둔 경고문은 농담이 아니다!

계급 우주론, 물질 계급론

이번엔 두권의 책을 읽어보았다. 먼저 미리 말해 두는데, 계급 우주론과 물질 계급론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매우 얇은 책이다. 읽는데 10분도 안 걸렸다.

음,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데, 여기서 말하는 계급이란 그 크기다. 즉, 은하, 별, 원자, 광자, … 등등 존재의 크기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 자, 이쯤에서 떠오르는 책이 있다. 여러분들은 벌써 잊었겠지만, “티끌 속의 무한 우주”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그 내용에서 10의 30승이라는 계수 대신 그냥 “계급”이라는 단어를 쓰면 같은 내용이 된다.

이 책은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티끌 속의 무한 우주”보다는 보다 깊이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뭐 그렇다고 그 깊이가 엄청 깊어지는 건 아니고, 그냥 책 두께만큼 깊어졌다고 해야 하려나. 물질 계급론, 또는 계급 우주론에 따르면 입자들은 모두 회전하는 소용돌이 같은 입자인데 소용돌이의 방향이 같으면 서로 인력이 작용하고 방향이 반대라면 서로 척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일단 듣자마자 문제가 떠오른다. 소용돌이는 회전축이 존재하는데, 그럼 입자를 휙 돌려주기만 하면 인력과 척력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회전축이 우리가 사는 공간의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휙 돌릴 수 있어야 하고, 만약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한 회전에 대해 관련이 없다면 입자 내부에 추가적인 공간이나 차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추가적인 공간이나 차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있다. 그냥 이 책의 저자는 그런걸 모르는 것 같다.

사실 제임스 맥스웰이 처음에 전자기장의 통합 이론을 발표했을 때, 그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톱니바퀴가 공간의 각 지점마다 존재해서 전기장과 자기장에 해당하는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생각이 꼬이기 때문에, 그 이후 사람들은 톱니바퀴 모델을 버리고 그냥 공간을 퍼져나가는 파동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소용돌이 두개가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합쳐지거나 멀어지거나 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사실 물리학적으로 의미있는 이론이 나오고 있는데, 스커미온(Skyrmion)이 바로 그것이다. 스커미온에 대해서 깊이있는 얘기를 하기에 이곳은 적합하지 않고, 나 역시 전공이 아니라 자세히 다룰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저자가 차라리 이쪽으로 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3성 생식

현대 생물학에서 설명하는 개체의 번식 방법은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이 있다. 그리고 유성생식은 꼭 두 성이 만나서 번식을 하게 된다. 자, 그럼 이제 성이 여러개 있다고 해 보자. 인간의 유전자가 3중나선이라 3명이 모여야 번식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리고 지금 남자와 여자가 외형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듯이, 세가지 성별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 보자. 과연 이 상황에서도 성차별이 나타날 것인가? 가령, 어느 한 성이 다른 둘을 압도할까? 아니면 두 성이 연합해서 다른 하나를 압도하게 될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균형잡힌 상태가 될까?

티끌 속의 무한 우주

티끌 속의 무한 우주. 숫자만 갖고 우주를 바라보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일단, 조경철 박사님이 추천사를 쓴 책인데, 조경철 박사님은 ‘인간을 살릴 우주에너지’에도 추천사를 썼던 걸로 봐서, 아무래도 이 분(크흠…)

아무튼, “티끌 속의 무한 우주”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내용으로 적혀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쓴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입자와, 분자와, 행성과, 은하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의 크기에 약 10의 30승이라는 계수가 존재하여, 그에 해당하는 각 스케일마다 생명체가 존재하고 의미있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이 내용이 왜 문제가 되는가? 사실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럼 나는 이 책을 왜 문제삼고 있는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마다 과학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과학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설명은 어떤 형식이어야 할까? “A라는 현상은 B라는 원인에 의해 나타난다”가 적당할 것이다. 물론 B라는 원인이 어째서 나타나는지에 관한 질문이 뒤따라 올 것이며, 그에 대해서 다시 “B는 C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는 설명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식으로 현상에 관한 설명은 끝없이 이어지고, 그것이 바로 과학자에게 연구 주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제목과 관련 없는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잡다한 내용을 다 빼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 우주에는 10의 30승이라는 계수가 있어서 그 비율로 우주가 반복된다”이다. 즉, 우리 우주보다 10의 30승배만큼 더 큰 우주가 존재하고 거기에도 생명체가 있으며, 우리 우주보다 10의 30승배만큼 작은 우주가 있고, 거기에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0의 30승이라는 숫자는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존재들의 크기를 비교해서 유추한 수인데, 책에는 그 수가 유도된 원리가 적혀있지 않다. 10의 30승배만큼 더 큰 우주를 관찰할 방법이 있을까? 없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 법칙 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가 150억 광년 정도인데, 그보다 10의 30승배만큼 더 큰 우주는 관측할 수 없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바깥은 ‘관측 불가능한 우주’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10의 30승배만큼 작은 우주를 관찰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도 안된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얘기지만 초끈 이론에 의하면 초끈 이론에서 주장하는 여분차원은 원자핵 크기의 10의 22승배 만큼 작은 크기로 작게 축소화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일단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뭔가 실험장치를 만든다면 그 장치로는 초끈이론을 당연히 검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론은 우주의 구조와 입자의 크기에 대해서 10의 30승이라는 비례상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제시할 뿐,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인지,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되는지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알다시피 초끈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을 포함하는 이론이다. 어쨌든, 초끈이론도 검증하기 어려운데 그보다 1억배나 더 작은 우주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검증할 수 있을까?

작은 우주에 대한 토론은 이 글 http://melotopia.net/b/?p=8159 의 본문과 댓글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수집한 마도서 중에서는 그렇게 엄청 위험한 책은 아니다. (“계급 우주론”이라는 책도 있는데 뭘…)

인간을 살릴 우주에너지

오늘 살펴볼 책은 ‘인간을 살릴 우주에너지(채연석 저)’라는 책이다. 일단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주 회귀론’과 ‘인류를 구할 무한에너지’라는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직 못 구해서 읽어보지 못했다. 소장하신 분께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은 크게 네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무한에너지 2. 무한에너지를 통한 군산 발전론 3. 이순신 장군에 관한 사설 4. 국어와 한자 정책에 관한 사설이다. 과학적인 측면에 입각해서 난 지방 행정/경제 전문가가 아니고, 역사 전문가도 아니며, 국어, 한자 전문가도 아니므로 뒤에 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하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읽어보고 나면 이 책보다 더 긴 분량으로 깔 거리들이 산더미처럼 드러날 것 같지만, 내 취미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인륜적으로나 그 외 어떤 측면으로나 할 짓이 못 되므로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물론 이 페이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관리자가 되고 싶은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바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첨부파일로 올린 사진에 찍혀있는 표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한자어에 한자를 쓰고 그 위에 한글 독음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는 점이다. 내용은 됐고, 그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저자가 얼마나 한자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다른건 진짜 모르겠다.)
자, 책의 1부 내용을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가 보면 이렇다. 석유는 고갈과 환경오염 문제가 있다. 전기도 (그냥) 문제가 있다. 수소 핵융합은 너무 강력해서 문제가 있다. 수소-산소 반응 에너지는 ‘수소 에너지’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약해서 문제가 있다. 태양은 수소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근데 그 에너지를 받는 지구는 멀쩡하다. 왜 그런가? 지구가 하나의 큰 자석이다보니, 태양에서 온 에너지를 자기력으로 바꿔서 우주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부분에서 깔깔 웃으면 된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번개가 내려치면 거대한 전기 에너지가 흐르는데 땅에 떨어진 후 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더 웃으면 된다.) 우리가 이 에너지를 우주로 버리지 말고 이용하면 인류는 에너지 고갈 걱정 없이 환경오염 걱정도 없이 행복하게 번영할 수 있다. (박수를 칩시다.) 그리고 그 원리는 앞서 출간한 ‘우주 회귀론’과 ‘인류를 구할 무한에너지’에 자세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적어 두었다.(…카더라)
굳이 이게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있는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내용이라서 솔직히 글을 쓰기는 쉬웠다.
중간에 2500년동안 공자 이래 유학으로 대표되는 동양철학에서 밝혀내지 못한 우주의 작동 원리가 밝혀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동양철학에서는 우주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밝혀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별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음양오행설에서 그 이상 진전된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그 원리가 우주의 작동 원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명백백히 설명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숫자라고는 모서리에 적힌 쪽 수와 책 가격이 전부라는 것. (그리고 ISBN도…)
뒷 부분도 뭔 내용이 적혀있나 궁금해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부분을 읽었는데 눈에 띄는 첫 문장이 (이순신 장군이) “적을 섬멸하는 마지막 전투의 와중에서 우연히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 한 게 정말일까 하는 것이다.” 라니. 내용 파악이 끝났다. 허허… 난 역사 전공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야겠다.

빅뱅과 5차원 우주론

모 선배님께서 기증하셔서 얻게 된 “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권진혁 저)”을 읽어보았다. 일단 약력을 보면 서울대에서 “게이지 이론”으로 학사를 받고, 카이스트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는데,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한 비선형 광학을 개척했다는 걸로 봐서는 “그” 연구실 출신인 것 같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일단 제목을 잘못 붙인 책이다. 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제목을 붙여놨는데, 책 내용의 대부분은 “그냥 우주 창조론”에 관한 이야기이다. 5차원 얘기는 리사 랜들의 유명한 교양서 “숨겨진 우주”라는 책을 보고 인용한 것 같다. 물리학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분이 교양서 보고 인용하는 걸로 봐서는 이 사람은 초끈이론이나 그를 비롯한 우주론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닫고 볼 수 있다. 그냥 나랑 비슷한 수준이랄까?

뵈르너 교수가 “창조자 없는 창조”라는 모순적인 말로(96쪽) 자연주의적 기원론을 버리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178쪽에서 본인도 모순적인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써있다. “창조과학은 … 그 과학적 증거들에 오류나 한계가 밝혀지면 성경의 권위가 훼손될 수 있다”, “과연 성경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과학적 증거나 지지가 필요한가”, “성경의 권위는 성경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된다.” 아니 이보시오, 과학이란 “뭔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것과 저것 중 무엇이 사실인가”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학문이다. 자, 그런데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 권위가 있고 진리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창조론은 과학적으로도 옳다”고 말하고 싶으면 “창조론이 맞나 틀리나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건데, 그거는 곧 창조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물론 창조론이 틀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겠지만, 글쎄. 성경의 권위를 그렇게 높여서 보는 사람이 창조론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빅뱅 이론과 여러가지 우주론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그걸 풀 수 없으므로 창조론이 맞다고 하는데, 그런 헛점은 창조론에도 있고, 심지어 창조론에 더 많은 헛점이 있다. 초끈이론이나 다중우주론이 검증할 수 없다면, 창조론은 그보다 더 검증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책 저자가 물리학 전공자라서 우주론으로써의 창조론은 뭐 어떻게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으로써의 창조론은 절대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럴거면 생물학 박사랑 공저를 하든가 했었어야 한다. 물리학 전공자가 생물학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뭐 물리 전공했다고 생물학을 아예 모를거라고 하는 건 편견이지만, 관련 경력이나 논문 한줄 없는 사람이 진화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만 갖고 썰을 풀고 있다는 뜻이다.

232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속에는 인류가 쌓고 발전시켜온 모든 노력의 정당성이 부여되고 … 설계의 증거들이 타당한 논리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유리한 것은 하나님인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고 있다.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 노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어디가 어떻게 “논리적”인가? 논리적이라는 말은 “P이면 Q이다. Q이면 R이다. 따라서 P이면 R이다”와 같은 주장에 사용하는 것이다. “P이기 위한 노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Q이어야 한다. Q가 되면 R이 논리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라는 진술은 “논리적”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148쪽에서 연대측정의 문제를 들어서 빅뱅이론과 현대우주론을 반박하고 있다. “2세대 별들의 시대에…생성될… 우라늄의 납의 함량은 매우 불확실함으로 태양과 지구의 나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자, 그럼 창조론이 맞다고 합시다. 태양과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6천년? 1만년? 여러 모순되는 관측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현대우주론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럼 성경은 그 결과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 심지어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우주의 나이와 지구의 나이에 대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이론 중에서 어떤 창조론이 진리인가? 적어도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나이에 대해서는 대략 137억년, 태양의 나이는 50억년,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라는 학술적인 합의는 존재하며 오차 범위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관측결과들이 존재한다.

우연에 의한 생명체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하길래 나도 그럼 우연에 의해서는 성경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해 보겠다. 만약 전 세계에 있는 성경이 모두 사라졌다고 치자. 아니, 성경만 사라지면 불공평하니까 모든 책과 기록매체가 싹 다 사라졌다고 치자. 가능하면 인류도 멸종했다고 치자. 그리고 다시 인류 비스무리한 생명체가 창조되었든 진화했든 다시 나타났다고 치자. 이제 발견해보자. 성경과 현대 우주론 중 무엇이 “현재 이대로” 다시 발견될까? 답은 각자 생각해 보기를…

방사성 폐기물

막 내가 원전 찬성하고 탈원전은 막아야 하고 뭐 그런 원피아 그런 세력이 아니긴 한데. 방사성 폐기물을 2만 5천년동안 보관해야 하므로 후손들에게 그런 쓰레기를 넘겨줄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 인류의 기술 발전 속도를 너무 무시하는 주장이다.. 2만 5천년이면 인류가 현대 문명을 잃어버리고 구석기 시대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원전을 다시 발명하는 삽질을 5번정도 반복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다. 이게 믿기지 않는다면 인류가 2만 5천년 전에 뭐하고 살았는지 알아보자. 방사성 폐기물에서 남아있는 방사선이 나와서 문제가 된다면 그걸 활용하든 더 잘 묻든 2만 5천년이 다 지나가기 훨씬 전에 더 좋은 처리 방법이 개발될 것 같은데….

빠르게 계산하려면…

먼저 알고리즘을 최적화 해서 계산 복잡도와 공간 복잡도를 줄이고.

병렬화로 계산자원을 때려박아서 일 처리를 나눠서 하도록 하고.

최적화를 통해서 계산기들이 갖고 있는 이론적 최고 계산 속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간을 쥐어짜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실 인간을 저렇게 쥐어짜는건 기계 취급이겠지.

에너지 문제

날씨가 하도 더워서 에어컨을 집에다가 설치하고 나니, 시원한 바람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앞으로 계속해서 날씨가 더워진다는데, 에어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오지는 않을까?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론적인 답은 주어져 있다. 에어컨은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해서 온도차이를 만들어내는 장치이고, 이것은 에너지가 공급되는 한 영원히 작동한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에너지는 온도차이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지구에는 영원한 온도차이가 존재한다. 즉, 우주와 지표면 사이의 온도차이 말이다. 태양이 존재하는 한 에너지는 언제나 공급될 것이고, 에너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 태양이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은하에서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50억년 정도는 불타오르고 있을 거라고 했으니 그정도면 영원이라고 봐도 좋겠다. 그걸 어떻게 영원히라고 부를 수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겨우 1만년 전에 “인간”이 뭘 해서 먹고 살았는지 다시 공부해 보자. 지금 이 블로그 글을 읽고 있는 것이 굉장히 신기해 질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의 형태는 탄소화합물에 저장되어 있는 화학에너지이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는 서로 전환할 수 있으므로, 태양에서 에너지가 공급되는 한 우리는 그 에너지를 인체에 필요한 형태로 바꿔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른 모든 생명체가 멸종한다 하더라도, 적절한 기술이 있다면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물리학이 보증한다.

하지만 이걸 관점을 바꿔서 보면, 과연 그런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인류가 멸종할 것인가 아닌가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가 점점 가속화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는 극한의 온도까지 기온이 올라갈 수도 있다. 인간도 나름 진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고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해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진화는 매우 느리고 지구 온난화는 겨우 몇 백년 사이에도 관측되는 매우 빠른 현상이다. 그러므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정도로 빠른 인류의 진화 가능성은 없다. 생명 윤리를 내다 버린 극한의 인체 실험과 유전공학 실험을 통해서 신인류를 창조하면 모를까. 그리고 그것도 그렇게 창조된 신인류가 인류를 대체하는 것이지 현생 인류가 ‘살아남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지금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원인 화석 연료는 그 시기가 금방이든 늦게든 언젠가는 반드시 고갈된다. 이 시점이 되면 우리가 지금 ‘대체 에너지’라고 부르는 것들을 싫어도, 효율이 낮아도, 비용이 비싸도, 무조건 써야 한다. 화석 연료의 고갈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점이 되기 전에 대체 에너지 기술을 얼마나 충분히 개발해 두었는가가 인류 생존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기술은 얼마나 빨리 발전할 수 있을까?

기술 발전의 속도는 그 전에 개발되어 있던 기술이 발전되어 있을수록 더 빨리 발전한다. 이것은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기술이 에너지를 이용해서 어떤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작업”에는 임의의 작업을 집어넣을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를 더 많이 이용하고,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작업 자체를 집어넣어보자. 그렇다면 점점 이와 같은 기술 개발에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사용될 수 있고, 더 높은 효율로 에너지가 이용될 것이다. 물론 인류가 이런 기술 개발에 에너지와 같은 자원을 투입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인류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찾아내려 할 것이고, 이것은 곧 새로운 에너지원과 에너지 효율이 올라가는 기술이 개발된다는 뜻이다. 어떤 물리량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정도가 기존의 물리량의 크기에 비례한다면, 그 물리량은 시간에 따라 지수함수적으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인류의 기술 개발 속도는 구체적인 변화량 자체는 알 수 없더라도 그 변화하는 양상이 지수함수적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태양전지는 다양한 방향에서 연구가 되고 있다. 기판에 사용하는 물질의 종류와 조성, 구조적 특성, 제작 방법의 기술적 측면 등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축적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연구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에너지’란 연구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뿐만 아니라 연구원들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에너지까지 포함한다. 이런 시점은 어떤 에너지 기술에 대해서도 나타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관련 기술 전체에 대해서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즉,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외부에서 자원이 투입되지 않더라도, 또는 외부와의 에너지 교환이 실질적으로 없거나 에너지가 유출되는 상태가 되더라도 연구개발을 계속할 수 있으므로 지수함수적인 발전을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고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은 각 개인의 전망이나 진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도움도 주지 않는다. 에너지 기술이 미래의 희망이다! 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한 인간이 한번의 인생을 살면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력에는 한계가 있고, 지금 이 순간 진로를 정해야 하는 사람이 이 부분에 도전한다고 해서 과연 그 개인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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