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이야기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분단 이후 2000년도 까지 변한 것 보다, 2000년도 이후 지금까지 변한 것이 더 많고, 2000년도 이후 2017년까지 변한 것 보다, 2018년에 변한 것이 훨씬 많다. 그정도로 요즘의 한반도 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로의 가족과 친구를 죽이고 나라를 갈라먹은 불구대천의 원수였고, 그 이후에도 전면전이나 총력전의 형태가 아니었을 뿐 국지적인 도발과 무력충돌은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북한은 인류가 만든 가장 위험한 무기인 핵 탄두와 그것을 전 세계에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기술 개발에 거의 성공했다. 어쩌면 완전히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북한이 올해는 완전히 태도를 바꿔서 남북정상회담을 여러 번 하고, 북미정상회담도 하고, 그 결과로 핵무기 폐기, 미사일 개발 중단 및 폐기,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이런저런 평화 분위기를 내고 있다. 여기서 나는 방금 “북한”이라는 주어를 사용했다. 이 문장에서 “북한”이 주어가 될 수 있는가?

북한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제왕권국가다. 세습도 3대째 하고 있고, 국가 지도자에게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정 반대인 정치 체제를 갖고, 공화국이랑 양립할 수 없는 권력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북한”을 주어로 사용하는 것은 곧 “북한의 지도자”를 주어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경우 민주주의 공화국이고, 제도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그렇게 되어 있다. “남한”을 주어로 사용할 때는 “남한의 대통령”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남한의 시민들”이 주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둘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으며, 북한의 외교나 행정에 대해서 북한 주민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북한은 전제왕권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세력의 대립을 평화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할까? 두 세력이 서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확인하고, 또한 약속하며,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세력이 서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려면, 두 세력에 소속된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의 뜻이 중요할까? 남한의 경우 대통령을 뽑고 권력자를 교체할 수 있는 선거권자들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선거권자는 당연히 남한의 일반 시민이며, 다수가 평화를 바란다면 대통령은 평화를 대변해야 한다. 반대로, 다수가 전쟁을 원한다면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해야 할 것이고,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다음 번 대통령은 전쟁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북한의 경우 지도자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 주민이나 지도층의 의견이 지도자에게 전달되어 지도자가 뜻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하더라도 그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없다. 정권 교체라든가 탄핵과 같은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한이 제 3자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분쟁의 당사자인 입장에서, 남한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누구를 겨냥해야 할까? 당연히 북한의 지도자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원하면 평화가 이뤄지고, 북한의 지도자가 지시하면 전쟁이 일어난다. 북한의 주민이 평화를 원한다고 전쟁이 사라지지 않으며, 북한의 주민이 도발한다고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북한의 지도자는 대북 정책의 핵심이다. 그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하게, 적확하게 파악하여 그에 맞게 대처하고, 그 결과로 남한의 국익이 최대가 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 최적의 대북 정책이 된다.

역사속에 지나간 정권들, 대통령들의 대북 정책을 보면 다양한 정책들이 있었다. 무조건 점령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틈만 보이면 남침할 괴뢰집단으로 보기도 했으며, 화해와 협력으로 동반성장할 대상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냥 뭘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정책도 있었다. 그 모든 정책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고, 나 역시 맘에 드는 정책과 싫어하는 정책이 있으며,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올바른 정책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정책이 적용된 후 나타나는 결과에 따라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과거의 대북 정책을 요약해 보자면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 북한의 대외적인 경제 제제 등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 틀렸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맘에 들건 들지 않건 이 정책들은 당시의 실권자에 의해 채택되었고 추진되었으며 실제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남북관계의 악화, 한반도 위기 고조 등으로 나타났다. 이 조치들의 특징을 보면, 북한 주민에게는 친화적인 정책이고 북한 정권에게는 적대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정책을 채택한 사람들은 이 정책을 적용하면 북한 주민의 힘이 강해지고 북한 정권의 힘이 약해져서 북한 주민이 정권에 대항하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은 악화되었고, 남북관계는 더 나빠졌으며, 전쟁위험은 높아졌다. 이렇게 된 상황이 이런 정책을 사용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인지, 아니면 정책은 괜찮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경우든 결과는 그렇게 된 것이고, 이 정책을 계속 적용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그 정책이 유지되어 왔고, 결과는 다들 알고 있듯 더 나빠졌을 뿐이다.

2018년 현재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이와 반대로, 북한 주민 인권이나 상황 개선에 직접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대북 정책의 대상이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라는 뜻이다. 현재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비위를 맞춰주고, 그의 정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했을 때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이 얼마나 개선될지는 알 수 없다. 2018년 9월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15만명의 인민을 동원하여 집단체조를 선보였다. 그걸 보고 문재인이 웃으며 박수를 쳐야 했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걸 보고 문재인이 박수를 치건 치지 않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며, 또한 문재인이 거기에 기분 좋게 박수를 쳐 준다면 김정은의 기분이 좋아져서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북 제제를 해제하고,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킬 것이며, 통일을 더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북침 무력통일 뿐이다.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그 상황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을 의미하며, 운이 좋으면 한반도의 2차 한국전쟁으로 끝날 것이고, 제 3차 세계대전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 상황이다. 그 사태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아무리 탄압받는다 해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북한의 존재는 어떤 하나의 무력집단 정도로 치부할 수가 없다. 북한은 남한이 인정하느냐와 무관하게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기능하고 있으며, 국가의 성립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또는 정권의 정당성이 있느냐와는 상관 없이 북한은 한반도 북쪽에 자리한 하나의 독립국이다. 남한은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남한은 한반도 북쪽의 국토를 무단 점거한 괴뢰집단을 토벌하지 않고 지난 60여년간 그냥 두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가장 강했던 시절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북한을 토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이유에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와중에 북한은 세계 속에서 하나의 독립국으로 자리잡았고, 북한이 점령한 땅을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미국같은 강대국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뿐 그쪽이 우리 영토 맞다고 생각하는,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 미국을 설득할 생각을 해야지 어째서 그걸 핑계로 두고 가만히 있는가? 북한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독립국이다.

하나의 독립국으로 자리잡은 북한에 대해, 우리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과, 시리아 난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과, 소말리아 국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냥 걱정스럽다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만 그 대상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이고, 같은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보니 좀 더 애착이 가고 불쌍한 것 처럼 느껴질 뿐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북한 내부에서 확립되어야 할 문제고, 그걸 외부인인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걸 어떻게 하자고 하면 북한 인권 상황에 우리가 개입해야 하고, 독립국의 내정에 개입하려면 무력을 사용해야 하며, 그 무력은 군대가 담당한다. 그리고 군대가 다른 나라에 가서 무력을 사용하는 행위를 전쟁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건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결국 남한이 국가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정권과의 상호작용이며, 대북 정책의 목표는 남한이 원하든 원치 않든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 된다. 그리고 북한 정권은 남한이 무너뜨리기에는 쉽지 않은 권력과 세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힘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화와 타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일단 누구와 해야 할까? 이 글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북한의 권력은 지도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북한의 현재 주인은 김정은이다. 당연히 대화도 타협도 김정은과 해야 한다. 김정은은 북한의 대표자이자 지도자이므로 김정은과 대화를 하려면 남한도 대표자가 나서야 하고, 남한의 대표자는 대통령이다.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나는 상황을 남북정상회담이라고 한다. 타협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의견과 이익을 가진 둘 이상의 세력이, 모두가 의견을 고집한 결과 모두가 손해를 보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각자의 의견이나 이익을 포기하고 양보하여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방법이자 과정이다. 즉, 그 누구도 한치의 손해도 없이 타협할 수는 없다. 그건 타협이 아니라 고집이나 독선이다.

이번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을 비판하는 사람 중에는, 얻은 것도 없이 양보하기만 잔뜩 해주고 북한에 퍼주기만 하고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9월 선언문을 보면, 일단 형식적으로라도 양쪽이 서로 무언가를 포기하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무언가를 얻었다고 하면 남한도 무언가를 얻은 것이고, 남한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남한이 선언문을 지키면 북한도 그 선언문을 지킬 것이고, 북한이 만약 그 선언문을 깨트린다면 남한 역시 깨트려도 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 선언문의 구체적 이행 과정에서 남한이 조금 더 손해를 보거나, 북한이 조금 더 손해를 보거나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놓고 동등한 양보와 이익이 되지 않았으니까 선언은 깨졌고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할 것인가? 그걸 “대화와 타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할 때, 그 통일은 “평화 통일”을 뜻하지 “무력 통일”이나 “적화 통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평화 통일”이라는 두 단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평화”인가? 아니면 “통일”인가? 각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맺는다.

매트랩의 미친 문법

매트랩의 문법은 쉽지만 골때린다. 예를 들어, 함수에 키워드로 변수를 넘겨줄 때 fn(x,y,’kwdname’,keyvalue) 이런식으로, kwdname을 쓰고 “그냥 그 다음에”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써주는데, 다른 언어에서는 그런걸 지원하지 않거나, kwdname 다음에 쉼표(,)가 아니라 다른 기호(예를 들어 =라든가)를 써서 두 값이 이름과 값으로 짝지어진 것을 구별해준다.

그렇다. 한국어 중에는 알고도 헷갈리는 단어가 많다. “사과”라든가 “패자”라든가. 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그런게 있으면 굉장히 골때리는데… 매트랩에서는 작은따옴표를 여러가지 용도로 쓴다. ‘를 숫자 뒤에 쓰면 켤레복소수, 행렬 뒤에 쓰면 공액행렬, 행렬 뒤에 점 붙여서 .’ 이렇게 쓰면 전치행렬, 그리고 문자열 앞뒤에 붙이면 그냥 문자열. 물론 .도 여러가지 용도로 쓴다. 소숫점으로도 쓰고 프로퍼티 접근에도 쓰고 *와 .*를 구분하는 용도로도 쓴다.

이미지: 텍스트

함수를 function y=my_func_name(x)로 정의하는데 return이 있는게 아니라 끝부분 쯤에서 y=0.5 이런 식으로 값을 넘겨준다. 물론 값 여러개를 한번에 넘겨주는걸 “최대한 쉽게” 구현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함수가 언제 “끝나야”하는건지 알기가 어렵다.

연산자 ./의 양쪽에 둘 다 공백이 있느냐, 둘 다 없느냐, 한쪽만 있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모호성이 없도록 하려면 그걸 사용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할게 아니라 문법 수준에서 에러가 나도록 해야지….이걸….

이미지: 텍스트

save랑 saveas는 용도와 기능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둘 다 데이터를 파일에 저장하는 명령어이다. save는 파일 이름을 먼저 입력하고 변수를 그 다음에 지정한다. saveas는 변수를 먼저 입력하고 파일이름을 나중에 지정한다. 보통은, 이런 순서 정도는 통일해두지 않나…?

자동 대체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파이워터의 기적

물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현상의 근본 물질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온 굉장히 중요한 물질이다. 굉장히 중요한 물질 중 하나이면서, 유일하게 가장 중요한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물질이다. 그만큼 물은 우리의 생명과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이 어째서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물의 어떤 특성이 생명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밝혀내려고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은 자연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지금은 물의 특성이 많이 밝혀졌고, 그 특성들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이 비록 물의 특성을 완벽히 설명하고 생명현상을 완전히 규명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는 있으나, 물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 책에서 설명하는 파이워터란 무엇인가? 파이워터의 정의는 “생체수에 한없이 가까운 물이다”(45쪽) 라고 한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은 바로 이것이다. “생체수와 파이워터는 어떻게 다른가?” 생체수라는 것 역시 잘 정의된 학술적 용어는 아닌 것 같지만,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생명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이나 액체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파이워터는 생체수에 한없이 가까운 물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비슷하길래 “한없이” 가까운 것일까? 예를 들어, 생체수 그 자체는 파이워터인가, 아닌가? 생체수 그 자체가 파이워터라고 한다면 그것을 파이워터가 아니라 생체수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또는, 생체수와 파이워터가 다르다고 한다면 생체수에 한없이 가까운 파이워터는 생체수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생체수의 어떤 물질의 농도가 1%라고 할 때, 파이워터는 그 물질이 1.1%를 포함한 것인가 0.9%를 포함한 것인가? 알 수 없다.

그렇다 치고, 파이워터의 효능을 살펴보면 동식물의 건전성육, 물고기의 선도보전, 토양개질, 금속의 부식방지, 콘크리트의 강화, 엔진의 연비 개선, 정전기 방지, 수질정화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46쪽)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에 의하면 물에 섞여 있는 철 이온이 우주에너지를 받아서 철 원자의 핵 스핀과 전자 스핀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결과 높은 에너지 상태가 되고 따라서 그로부터 어떤 종류의 전자파가 방출된다고 한다. (46쪽) 그래서 50쪽을 살펴보면, 뫼스바우어 스펙트럼을 측정해서 뭘 알아낸다고 하는데, 뫼스바우어 스펙트럼은 원자핵에서 일어나는 감마선의 흡수와 방출에 관한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스펙트럼이고, 우주에너지랑은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책에서는 파이워터가 위에 적은 신비한 현상을 나타내는 그 이유로 물 분자들이 뭉쳐있는 덩어리(클러스터) 크기가 작기 떄문이라고 한다.(39쪽) 그리고 물 속에 들어있는 철 이온이 위에서 말한 에너지 방출 현상을 통해서 물의 수소결합을 끊고, 결과적으로 클러스터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55쪽에서는 생명의 유전현상에 철 이온이 관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DNA의 유전현상에서 실제로 정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철 원자라는 것이다. 56쪽에서는 이런 것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례를 하나 제시하고 있다. 무 씨앗은 원래 해가 긴 조건에서 싹이 트는데, 이 씨앗을 파이워터를 이용해서 처리하면 그 씨앗은 해가 짧은조건에서 싹이 튼다고 한다. 즉, 이것은 파이워터에 의해 씨앗의 유전정보가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며,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증명한 것은 파이워터가 발암물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씨앗에 끼얹은 정도로 유전물질을 바꾸는 화학물질이라면 그건 분명히 발암물질이다.

이 책에 의하면 파이워터의 효능은 굉장한데, 농작물에 뿌리면 영양분도 많고 빨리 자라고 크기도 커지고 수확도 많아지고 … 흙에 뿌리면 흙이 비옥해지고 토질이 개선되고 … 가축에게 먹이면 가축이 건강해지고 심지어 돼지가 비만을 탈출한다(!)는 부작용이 발생할 정도다. 자동차에 파이워터 시스템을 장착하면 연비도 좋아지고 매연도 줄어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이 마시면 모든 질병이 치료되고 암도 낫는다. 여기에 반복적인 실험, 시험 결과라면서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자료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실험값은 평균을 제시하고 있을 뿐 표준편차나 실험의 오차, 실험의 구체적인 방법, 실험 장치 등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심지어 저자가 “이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는데도 말이다. 교양서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해도, 학계에 보고된 내용도 없다.  있으면 인용하거나 자랑했을 것이다. 교양서라서 논문이나 전문서를 인용하는 것은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리학 교양서의 대명사인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뒷부분에 참고문헌이 몇 개 있는지 세 볼 것을 권한다.

아무튼, 이런 물 관련 사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굉장히 쉽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물은 “깨끗한 물을 갈증이 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마시면 된다. 이것 하나만 알고 지키면 여러분은 물과 관련된 건강 지식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깨끗한 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기관마다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깨끗한 물”이라면 충분하다. 깨끗한 물 보다 더 좋은 물은 없다.

Proudly powered by WordPress | Theme: Baskerville 2 by Anders Noren.

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