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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 body problem

    들어가기에 앞서. 빨갛다 님이 이전에 댓글 달았던 내용 중,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있다는, 즉 심신이원론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고활동의 교환뿐만이 아닌, 정신세계 전체에 대한 혼재된 상태를 상상했었기 때문에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쉬운 문제는 아니므로 일단은 여기서는 다루지 않고 어물쩡 넘어갈 생각이다. 다시 말해, 자아가 뇌
    안에 있는가 없는가, 자아는 뇌의 활동 그 자체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상위의 어떤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는 일단 덮어두고,
    지극히 기계론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법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기술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가정하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자. 사람 몸에는 손에서 뇌로 가는 감각 신경이 있다. 어떤 사람의 팔뚝을 지나가는 신경 줄기를
    따내서, 마치 전선 잇듯이 이어붙인 다음, 이 “전선”을 다른 사람의 팔뚝의 같은 부위에 접속한다고 가정하자. 이 전선이 끊어지지
    않는 한 어떤 사람이 손에서 느끼는 감각을 접속받은 사람이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이 없다.

    이번엔 이
    실험을 척수에 대해서 해 본다고 하자. 어떤 사람의 척수 아래에서 온 신호를 따내서, 다른 사람의 척수 위로 신호를 넣어준다면,
    이 사람은 저쪽 몸에서 온 신경 신호를 마치 자신의 몸인 것 처럼, 뭔가 어색하지만 느낄 수 있다. 만약, 척수 위에서부터
    아래로 가는 운동신호를 전송한다면 멀리 있는 몸이라도 자신의 몸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좌뇌와 우뇌는
    뇌량이라는 조직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뇌량은 마치 네트워크 허브(=>공유기) 같은 존재인데, 자세한 설명은 뇌 전문가에게
    듣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냥 좌뇌와 우뇌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중간 계층이라고 하자. 뇌량이 손상되거나, 또는 치료 목적으로 절제한
    경우, 그 사람은 좌뇌와 우뇌가 따로 놀게 된다. 즉, 왼쪽으로 본 어떤 사실을 오른쪽 뇌가 말로 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사례를 살펴볼 때, 인간의 인식 과정에는 “연결”이라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뇌의 어느 한 일부분만을 살펴본다면 아무리 살펴보아도 정신, 마음, 자아,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뇌 전체를
    살펴본다면 그제서야 실제로 살아있는, 생각하는 어떤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방금 알아보았듯, 뇌량에 의해서 좌뇌와
    우뇌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양쪽 뇌가 협동하여 몸을 조종할 수 있다. 또한, 두개의 뇌는, 알다시피, 그리고 느끼고 있다시피,
    하나의 인격(정신, 자아, 심리, 뭐 그런 것들)을 구성한다. 그럼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의 좌뇌를 서로
    바꾸어 이식한다면? 즉, 이 사람의 좌뇌를 저 사람의 좌뇌와 바꾸고 뇌량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윤리적으로 명백히 문제가 있는 실험이고, 기법상으로도 매우 곤란한 수술이기 때문에 실제로 해 볼 수는 없겠지만 상상해 볼
    수는 있다. 과연 그렇게 재조합된 뇌는 서로를, 또는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까?

    인터넷에 떠도는 뇌의 역할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

    http://2proo.net/950

    )


    뇌는 언어적 기능을 잘 하고, 언어로 기억한다고 한다. 우뇌는 감각적이고 비언어적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그럼, A의 좌뇌에 B의
    우뇌를 합친다면, 일단 기억은 둘 다 반반씩 갖고 있을 것인데, 가령 B가 경험한 일들을 A의 사투리로 말할 것이다. 뇌량에
    의해서 양쪽의 뇌가 서로 정보교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자기가 A였던 기억도 있고 B였던 기억도 있는, 둘 다 생생한 실재로
    느껴지는 인간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팔을 지나가는 신경에 마취가 되어 있는 경우, 나의 팔은 내 몸에
    붙어는 있지만 나의 팔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눈에는 보이지만 움직일 수도 없고 감각도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 상태에서
    수술을 하게 된다. 물론 대체로 큰 수술은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자기 몸에 대한 수술을 자신이 직접 보면서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의 몸을 결정하는 것은 물리적인 연결상태가 아니라 감각과 조작
    가능성이다. 즉, 감각적으로 느껴져야 하고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을 통틀어 앞에서 말한 “연결”이란
    이런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느껴지고 조작할 수 있다면 몸이 굳이 한개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러개의 몸을 동시에 인식하며 경험하고 뜻대로 조작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몸이 1개이기 때문에 몸이 여러개가 되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편견일 뿐, 그 본인(또는 본인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인간은 손이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손이 4개가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곤충들은 그런 상황이 매우 자연스럽고, 심지어 거미는 8개나 되는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만약 인간에게 처음부터 손이 4개였다면 아주 당연하게 4개를 모두 사용해서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키보드에 지금보다 단추 수가 두배는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200개쯤?

    몸이 여러개 있는 상황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지만, 이미 그런 여러개의 몸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또는 어떤 적당한 수단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경우라면, 작업 효율이 2배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여친은 없겠…


    제, 맨 처음의 논의로 되돌아가자. 나의 복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자.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랑 똑같이 생긴
    인간이 하나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논의한 적절한 시술을 해서 몸 두개를 동시에 나의 몸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하자. 두 몸은
    각각 뇌를 갖고 있지만, 원격 통신장치를 사용해서 모든 기억과 사고를 공유하고, 심지어 자신의 뇌가 두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원본”이었던 몸과 “사본”이었던 몸 중, 어느 한쪽이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절단”에
    가까울 것이다. 즉, 아프긴 하겠지만 사망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계속해서 복제 인간을 만들고 자신과 동기화
    시킴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복제인간을 만들었으나 위와 같은 기술이
    없어서 복제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하자. 복제인간에게는 나의 모든 기억과 사고방식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나와 복제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느낄 수 없다고 하자. 이
    경우, 원본이 죽든 사본이 죽든 타인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원본도, 사본도, 각자의 자아를 가진 독립된 개체로서
    살아가게 되므로 사본이 있다고 해서 원본이 죽을 수는 없다.

  • 서울대학교

    한국물리학회에서 발행하는 “물리학과 첨단기술”을 오래간만에 읽어봤다. 내용은 참 좋은데, 글쓴이들 약력이 매우 흥미롭다. 학부 기준으로 1명은 포항공대 출신, 1명은 텍사스A&M출신, 1명은 성균관대 출신이고, 나머지(90%쯤?)는 전부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학교에만 물리학과가 설치된 것도 아니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가 한국의 물리학자들을 모두 배출하는 것도 아닐텐데.

    이것은 그저 “흥미로운” 결과일 뿐일까?

    음. 아무래도, 저런데 글 좀 써보려면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나는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출신이니까.

  • 포기를 아십니까?

    고전명작만화 “슬램덩크”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 짤방생략 –

    우리나라에도 뭐 그런 분들은 많습니다. 포기를 모르는 분이 뭣도 모르면… 곤란하죠.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나는 내 꿈을 과연 언제 포기할까?


    제 40~50대의 연배에 들어선 분들을 보면 꿈을 이룬 사람도 있고,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네요. 또, 꿈을 이룬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꿈을 찾은 사람도 있고 그냥 그러고 사는 사람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꿈을 이루지 못했음을
    확정짓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도 있고, 아직 꿈을 이룰 수 있다며 여전히 열심인 사람도 있죠.

    나는 나의 꿈을 언제 포기하게 될까요? 사실 포기하는건 매우 쉬워요. 그냥 포기하면 되거든요. 반대로, 그걸 이루기는 매우 어렵죠. 심지어, 어쩌다보니 쉽게 이룬 꿈은 꿈 같지도 않을 정도니까요.

    꿈을 이루기 위한 퀘스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네요. 그럼? 다시 도전해 봐야죠. 또 실패했다면? 또 도전해요.

    언제 꿈을 포기할까요?


    이 꿈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포기하면 될까요. 그렇다면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거나,
    엎지른 물을 다시 담는다거나 하는, 불가능한 목표들만을 포기해야 할까요. 하지만 과거의 사례를 보면,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다고
    했지만 비행기를 만들고 로켓을 만들어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성공시켰죠. 누군가 너의 꿈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해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럼 꿈은 포기되지 않아요.

    그럼 죽기 전에나 포기할 수 있을까요.
    한 30분쯤 후에 죽는다고 하면, 그때는 포기하고 유언이나 남겨야겠네요. 그런 경우에는 내가 노력한 것들은 허무한 것일까요?
    이루지 못한 꿈들은 인생의 낭비에 불과했을까요? 타인에게 의미를 남기지 못한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요? – 저는 이
    질문들에 답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나름의 답은 있지만 독자들의 답은 아닐거예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의 사례는 많아요. 전설에 의하면, 에디슨은 999번 실패한 끝에 1000번째 시도에서 전구를 만들었다고 하죠. 과연
    1000번째에도 실패했다면 에디슨은 1001번 째의 시도를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에디슨이라면 아마 했을 거예요. 한 10만번
    했는데 다 실패했고 그러다 에디슨이 늙어서 죽었다고 하면, 에디슨의 그 노력은 어떤 의미일까요.


    디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난 999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구를 만들 수 없는 999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라고.
    그렇게 10만번 실패해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에디슨이라면 아마 똑같은 얘기를 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 또한 집념의
    사나이,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으니까요.

    절대로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예요. 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예요.

    포기는 오직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항분산

    주사위를 던져보자. 1~6까지 나올 확률은 같을 것이다.

    주사위 2개를 던져보자. 그래서 그 합을 살펴보자. 그럼 2~12까지 나오는데, 36가지 경우의 수가 있고, 그중 더해서 7이 되는 경우의 수가 가장 많다. (1+6~6+1까지, 6종.)

    주사위 n개를 던져보면, 주사위 n개의 합은 n과 6n사이에 있는, 그 합을 만드는 경우의 수는 3n또는 3n+1정도에서 가장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왜냐하면 주사위 1개를 던질 때 나오는 평균적인 기대값이 3.5이고, n개를 던지면 3.5*n이 되니까.

    멀리도 안 가고, 고등학교 통계에서 배우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걸 “기사”로 써서 “보도”하는 기자가 있다.


    http://n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65486&url=n


    로또에서 나오는 당첨 번호들의 합을 고려할 때, 최소 숫자가 1~6까지 더한 것이므로 21이고, 최대는 40~45이므로 255인데, 그 중간은 140 또는 141쯤 된다. 당연히 140을 전후한 구간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이건 오히려 140을 전후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나올 경우 조작을 의심해야 하는 매우 당연한 사실이다.

    당첨 번호의 “합”으로 당첨되는 복권이 아닌 한, 이 이야기는 당첨 가능성을 높이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내용이다. 당첨번호들의 합이 140에 아무리 가까워도, 1,2,3,4,5,6을 찍든 다른 번호 6개를 찍든, 각 번호의 당첨 확률은 모두 같다.

    수학을 배워서 어디다 쓰냐고 묻지 마시라. 이게 다 수학인데 아직도 속는가?

  • 사후피임약

    요즘들어 뉴스 보고 글 쓰는 비중이 많아 지는 것 같은데, 딱히 물리학 문제를 손대고 있는 것이 없고 손댈만한 시간도 없다보니 쉽게쉽게 글 쓰는 시간이라 그렇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3&sid2=241&oid=022&aid=0002407866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논란이 많다.

    기사를 보면, 일반의약품 전환을 찬성하는 쪽은 “원치않는 임신의 감소”를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은 “원치않는 임신의 증가”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두 주장은 모순이다.

    즉,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을 전환하게 되면 “원치않는 임신을 감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찬성하는 쪽이 있고. “원치않는 임신이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반대하는 쪽이 있다. 둘 다 사실이라면, 두 주장은 다른 통계와 다른 근거로 뒷받침되는 진술이며, 그럼 두 진영이 만나서 가위바위보를 하든 합의하는 통계치를 들고 오든 해서 하나로 결정을 봐야 한다.

    성병의 확대랑 관련해서는,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 그럴듯하다. 콘돔 대신 사후피임약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장 자체가 편견인 것이, 남자들이 언제나 콘돔을 쓰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교육과 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성문화 조장은 때늦은 주장인데, 나는 우리나라에 그들이 걱정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무분별한 성문화가 충분히 조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용시 여성의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사실이므로 사전피임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건전한 성문화 정착을 이룩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다. 어차피 할 사람들은 하고, 살 사람들은 사고, 저지를 사람들은 저지르기 때문이다. 음성적으로 만들어서 “범죄자”를 양산하느니 양지로 드러내고 “관리”와 “계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 급발진 대처


    http://news.donga.com/Economy/New/3/01/20120611/46914489/2

    국가에서 자동차 급발진에 대해 조사한다고 한다.

    급발진이 만약 정지상태에서 급가속되는 상황이라면, 사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가속되고 있다면 우선 시동을 끄려고 시도하고, 보조브레이크(풋 or 사이드)를 작동시키며, 동시에 속도가 더 가속되기 전에 사람이 아닌 다른 장애물과 충돌해서 차를 멈춰야 한다.

    차량이 운전자의 통제를 받지 않고 가속되는 경우에는 사람의 반사신경이 아무리 빨라도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즉, 앞에 등장하는 모든 장애물을 적절히 피하는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조건 사고는 나게 된다. 이 경우 사고의 피해를 줄이려면 속도가 느린 상태에서 충돌하는 것이 낫다.

    물론 급발진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 SRIM

    SRIM: Stopping Range of Ions in Material.

    간단히 말해서, 물질과 충돌한 이온들이 얼마나 깊이 들어가서 박히는지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http://www.srim.org/

    윈도우즈XP전용이라 그보다 이후에 나온 윈도우즈 운영체제에서는 에러가 난다. 따라서 호환성 설정을 해준 다음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쪽 업계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라 믿고 써도 된다.

  • 사상적 편향


    http://encyclopedia2.thefreedictionary.com/Space+Quantization

    예를 들어, 위의 글을 보자. 다음과 같은 경고가 붙어있다.


    Warning!

    The following article is from The Great Soviet Encyclopedia (1979). It might be outdated or ideologically biased.

    주의! 다음 글은 소련 대백과사전에서 온 것이다. 너무 구식이거나 사상적으로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

    물론 소련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므로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물리학 법칙은 소련이라고 해서 다를 수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걸 원하지 않지만, 어느 나라든지 (충분한) 돈과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물리학자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이 핵무기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아무리 미워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이용하는 물리 법칙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핵물리학 교과서와 핵 관련 서적의 수입을 차단해도, 인터넷을 차단해도, 북한이 있는 곳 역시 우리 우주이므로 우리 우주의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영역이다. 얼마든지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고, 필요하면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물리 법칙의 힘이다.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하고 북한 공산당에 의한 한반도의 무력 적화통일을 찬양하는 글이라고 오해하면 나도 누구처럼 확 명예훼손으로 고발해버리겠다.

  • 카카오톡 음성통화

    뭐든지 규모가 커지면 권력이 생기는 법이다. 35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카카오톡은 그 자체로 권력을 갖게되었다. 따라서, 카카오톡이 음성통화 기능을 추가할 경우 통신사에서는 이것을 막을 수 없다. 이 경우 통신사에서 선택해야 하는 전략은

    무료 – 불편함 < 편리함 - 유료

    가 되도록 편리함을 증대시키거나 요금을 내려야 한다.

    통화 품질이 어떻고 이용자 편의가 어떻고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사용자 관점에서는 카카오톡을 통한 무료 음성통화가 매력적이다. 고객은 이미 들어간 투자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통신사 관점에서는 3사가 치킨게임 하다가 다른 회사가 어부지리로 이득을 보게 되는 매우 멍청한 짓을 한 셈인데, 아마 지금 하고 있는 볼멘소리들은 시간끌기용이고 나름의 대책을 세워두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 대책을 공개하고 터뜨렸을 때, 사용자들은 여전히 카카오톡의 음성채팅을 선호할 것은 변함없다.

    만약, 카카오톡이 출시되기 이전이나, 또는 출시되었어도 폭발적 인기를 얻기 전에 통신사에서 문자요금을 건당 1원 정도로 확 낮추었다면 카카오톡은 지금과 같은 권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카카오톡은 통신사의 현금 송아지인 음성통화를 건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자요금에서 공짜로 꿀빨아먹는 재미에 맛들려서 카카오톡이 불러오고 있는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통신사들의,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잘못이다.

    추가.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07/2012060701110.html

    LGT에서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SKT와 KT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인데, LGT는 위기를 어떻게든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위험을 불사하겠다는 것 같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C13&newsid=01371046599559752&DCD=A01404&OutLnkChk=Y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선관위 수사 결과가 나왔다. LGU+가 허위로 보고하는 바람에 디도스 공격때 선관위의 대처가 늦을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건 LGU+가 잘못한 것이 맞는데,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2060802019931759003

    음성채팅을 시장 자율에 맡긴다고 했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it/201206/e20120605010525117740.htm

    하지만 통신사는 카카오톡을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만약 카카오톡이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된다면, 자체 기간통신망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카카오톡은 다른 통신사의 회선을 빌려서 사용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카카오가 돈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 만약 카카오가 돈을 지불한다면 통신사에서는 사용자로부터 받는 돈을 줄여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기간통신사업자로 지정되는 것도 웃긴것이, 기간통신망을 갖추고 사업하는 사업자를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음성통화를 제공하면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이 이상하다.

  • 냉장고 문을 닫아둔다

    냉장고는 전력을 매우 많이 잡아먹는 장치중의 하나다. 에어컨과 더불어 전기요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큰 가전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냉장고의 전력 효율을 높이면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냉장고 전력 효율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로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럴까?

    우선,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게 된다면, 열어둔 전체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 가령, “열고 있는 중”의 시간과 “닫고 있는 중”의 시간은 여닫을 때마다 거의 같은데, 같은 양의 물건을 꺼내기 위해서 한번 여는 것과 열번 열어보는 것 사이에는 완전히 열어둔 시간이 같다고 하더라도 열거나 닫는 동안에 걸리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냉기가 빠져나가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둘째로,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으면 더 저온인 냉기가 빠져나간다. 대체로 열 교환 속도는 온도 차이에 비례하는데 냉장고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으면 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바깥과의 온도차이가 더 크다. 따라서 냉장고 문을 열었던 초기 시점에 빠르게 빠져나간다. 문을 자주 여닫으면 그 “초기 시점”이 더 많고, 따라서 열이 더 빠르게 빠져나간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도에 관한 이야기라 대류에 의한 열교환이 대부분인 냉장고 문 여는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이정도 이유가 있다. 따라서 냉장고 문은 여러번 보다는 한번에 여닫고 볼일을 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