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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큰 영향은 부모님이고, 그 다음은 애니메이션 “슬레이어즈”이다. 작가인 칸자카 하지메가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스토리를 쓴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내가 거기서 발견한 의미는 아주 많이 있다. 시간만 있으면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은, 그런 애니매이션이다. 내가 블로그에 쓰는 많은 글들은 책을 읽고 생각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레이어즈의 철학에서 나타난 것들이 많다.

주인공 리나 인버스의 가치관은 참 흥미롭다. 악인에게는 인권이 없다거나, 사랑보다는 돈이 현실이라거나.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해를 미치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다. 슬레이어즈 시리즈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리나는 굉장히 이기적이다. 굳이 나쁜 짓을 하면서 살지는 않지만, 이기적인 쪽으로 선택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마왕을 퇴치하는 목적이다. 다른 여러가지 이유도 있지만, 리나가 마왕과 싸우고 끝내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세계 평화라든가 하는 멋진 이유가 아니다. 단지 마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아닌,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 마왕과 싸우고 그만큼 강한 집념과 집착으로 승리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왕 퇴치+세계 평화라는 위대한 결말이다.

사실 세계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커다란 사건들을 보면, 그 시작은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었던 일들이 많다. 위대한 목적이나 목표를 두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로부터 시작된 것도 있다. 가령, 구글은 원래 대학원생이 자기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서 만든 작은 서비스에서 시작되었다. 슬래시닷은 그냥 글 올리는 게시판에서 시작했다가 그렇게 성장했다. 리눅스는 한 개발자가 커널을 조금 만들어서 올렸다가 그렇게 커졌다. 이것들은 시작할 때는 그다지 커질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대단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어 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페르마가 여백에 적어놓은 “나는 답을 알지롱 ㅋㅋ” 대충 이런 요지의 낙서같은 것에서 시작된 문제고, 300년 동안이나 수학자들을 괴롭힌 문제가 되었다. 페니실린은 플레밍이 실수로 열어놓은 샬레에 곰팡이가 하나 떨어져서 발견되었다. 페니실린의 발견이 위대한 업적인 것은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대한 시작은 아닌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어릴 때 “빛의 속도로 달리면 거울에 내 얼굴이 보일까?” 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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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은 핵무기 개발하는 공장에서, 공장 설계도를 보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도면에 쓰여진 기호가 창문같기는 한데 그걸 물어보자니 유명 물리학자로서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파이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어봤다가, 설계상의 헛점을 발견해 버렸다고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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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예들 말고도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위대한 업적은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원대한 꿈을 갖고 시작되어 이루어진 위대한 업적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건, 위대한 일을 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목적이나 꿈이 꼭 그에 걸맞게 위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소해도 좋다. 가령, 6.25전쟁이나 임진왜란에 나가서 승리를 이끈 병사들은, 아마 불타는 애국심에 열심히 싸운 사람도 있겠지만 단지 당장 죽지 않기 위해, 단지 살고 싶기에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떻든 그들이 열심히 싸웠기에 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전기나 자서전, 평전 같은 걸 읽다보면 그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뭔가 달랐다. 업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인가 중학교 다닐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기를 다룬 책이 학교에 돌아다녔었는데, 그것만 읽으면 김영삼 아저씨는 무슨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을 하기 위해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정치에 뜻을 품은 것 외에는, 그냥 평범했다고나 할까. 물론 진짜로 평범했으면 대통령까지는 못했겠지만, 아무튼 처음부터 위대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코 위대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위대한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 어떤가. 사소한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위대해지는 사람도 있는걸.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사소하고 비굴해 보일지라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다 쓰고나서 느낀 점인데, 난 이런 글을 적고 나서 항상 나 자신은 내가 글에 적은 내용들을 그다지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뭐, 그렇다고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나야 실천 못하더라도, 아무튼 “멋진” 얘기를 적어놓긴 했으니까 누군가 이 글에 공감하고 실천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맘에 안들면 따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무슨 상관이랴.
  1. 진짜로 그게 모티브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는 분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본문으로]
  2. 이것도 정확한 버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본문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

시절이 시절이다보니 선거 글이 나오게 된다.

유권자 100명이 있다.

후보는 두명이다.

신은 안다. 기호 1번 지지자가 40명이고 기호 2번 지지자가 60명이라고.

선거날이 되어, 투표를 하는데 기호 1번 지지자가 30명 투표를 하고, 기호2번 지지자가 25명 투표해서, 55%의 투표율에 기호 1번 우세다.

물론 위의 내용은 아직까지는 신만 아는 내용이고, 모든 사람이 아는 내용은 오직 투표율이 55%라는 점이다.

나머지 45명은 딱히 투표하러 갈 생각이 없고 집에서 쉴 생각이었다.

그때, 누군가 “투표하러 갑시다!”라고, 물론 특정 후보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다, 해서 투표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100%투표율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아는바와 같이 기호2번 당선.

질문들

  1. 투표하러 가자고 외친 사람은 선거 결과를 조작했는가?
  2. 투표하러 가자고 외친 사람이 기호 1번 지지자와 기호 2번 지지자들의 각각 투표율을 알고 투표하러 가자고 외쳤다면, 그 사람은 선거 결과를 조작했는가?
  3. 위의 2번 질문에서, 그 사람이 기호1번 지지자와 기호2번 지지자들의 각각 투표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4. 반대로, 그 사실을 누군가 알고 선관위에 이야기 했다면, 그 사람은 결국 처벌 받는가?
  5. 투표하러 가자고 외친 사람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투표하러 가자고 했으나, 어떤 악의적 목적을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은 기호1번 지지자와 기호2번 지지자들의 각각 투표율을 알고서 투표하러 가자고 외쳤다며 고발한다면, 그렇게 외친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6. 또한, 그렇게 고발한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정답은 선관위에 물어보세요.

대략, 지난번 대선때 일어났던 일들이 생각나서 적은 문제들인데, 어쩌면 모르고 한 헛소리일 수도 있겠다.

MS의 홈페이지는 파이어폭스에서 제대로 보인다

이건 잡담 카테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략과 관련된 내용이다.


http://www.microsoft.co.kr


위의 링크는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홈페이지 주소다. 가보면 알겠지만, 익스플로러에서는 아주 깔끔하게 보인다. 아, 물론 파이어폭스에서도

동일한

화면이 보인다. 아마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제대로 보일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자. 질문. MS홈페이지는 어째서 다른 종류의 웹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이도록 설계가 되어 있을까? MS의 홈페이지 웹 프로그래머/디자이너들이 웹 표준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뭐. 사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난 저것이 MS의 전략이라고 본다. MS 윈도우즈는 명백히 “운영체제”다. 따라서 이것을 팔기 위해서 “이미” 윈도우즈가 설치되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품 홍보를 위해서 홈페이지가 제대로 보여야 한다면, 당연히 그 페이지는 윈도우즈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웹 브라우저에서 제대로 보여야만 할 것이다. 생각해 봐라. 윈도우즈가 뭔가 알아보러 들어갔는데 글자랑 그림이랑 완전히 딴데 가서 붙어 있고, 뭐가 짝도 안맞고 그러면, 누가 사겠는가. 허접하다고 보지.

운영체제가 아닌 다른 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그 다음이 웹 브라우저 홈페이지이다. 대부분의 웹 브라우저를 배포하는 곳의 홈페이지는 자신들이 홍보하는 웹 브라우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깔끔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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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당연히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최초로 일어난 곳은 생명체 내부의 화학 반응이다. 다들 알다시피 동물은 다른 생물을 먹어서 활동 에너지를 얻는다. 만약 어떤 동물이 다른 생물과 전혀 다른 단백질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그래서 사용할 수 없었다면, 이미 아주아주 오래전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즉, “호환 가능성”은 생존의 중요한 요소이다. MS의 예에서, “영양분”에 해당하는 것은 사용자가 되고, 그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회사의 수익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즉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만 이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른 곳에 있는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려면 그 에너지 종류가 내게 적합해야 한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식민지 통치를 할 때에도,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그쪽 국민들을 다 때려잡는 수 밖에 없다. 그쪽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하려면 그쪽 사람의 언어를 알거나, 그쪽 사람들에게 자기네 나라 언어를 가르치든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pdf포맷은 비록 어도비의 독점적 포맷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표준 문서 형태이다. 그것은 어도비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생성 가능하도록 포맷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hwp 포맷은 한국의 대표적인 포맷이지만, 그저 한국의 대표적인 포맷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 빼면, 아는 사람 별로 없다. 그것은 한소프트에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기술이라고, 진짜로 세계로 나가려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읽고 쓰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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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실제로 사용자가 써야 말이지. 어도비는 당장 수익을 내는 것 보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한소프트는 한국에서만 놀 것 같고.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술, 태권도가 있다. 태권도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국기이고, 전통 무예이며,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무술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세계 태권도 협회는 한국 협회랑 같은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질 뻔 했다. 태권도가 세계화 되기를 바라면서 한국인이 태권도 금메달을 못따면 쪽팔려한다. 말이 돼나? 물론 한국이 종주국이니까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진짜로 세계화가 잘 되었다면,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챔피언이 나오는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그래야 더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해봐라. 저기 어디 한국이 어딘지 잘 모르는 나라에서 출전한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하고, 한국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하고, 태권도는 어떤 경우에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걸까? 다른 나라에서 금메달이 나왔다면, 적어도 그 나라에는 태권도가 홍보가 되지 않을까? 진짜 태권도를 사랑한다면, 금메달에 목매지 말고 태권도 대회 자체를 즐기고, 좋아해야 한다.

자기가 아는 사람하고만 잘 지내는 것과, 자기를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 어느것이 더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인가.

  1. 확인한 적은 없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건 MS 익스플로러, 윈도우즈 버전 파이어폭스, 리눅스 버전 파이어폭스 뿐이었지만, 사파리나 오페라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본문으로]
  2. 지금은 오픈오피스에서 한글97의 hwp형식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문으로]

양심선언(!?)

난 지난번 총선때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다. (이건 사실이다)

다음 중 올바른 이유는?

  1. 한나라당이 싫어서
  2. 열린우리당이 싫어서
  3. 민주노동당이 좋아서
  4. 후보가 여자라서

답은 나만 알고 있도록 하겠다. 물론 당신이 짐작하는 그 답이 정답이므로 내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선택의 기로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윗분께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진실이 아니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잘못 안 것이고, 실제로는 다른 내용이었던 것이다.

선택은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하다.

  1. 내가 말한게 맞다고 우긴다.
  2. 모든것을 말하고 빈다.
  3. 진실이건 아니건 상관 없다고 우긴다.
  4. 틀렸지만 난 잘못 없다고 우긴다.



답이 없다.

블랙홀에 들어가면 정신 차려도 죽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8/2007061801142.html

딱히 조선일보라서가 아니라, 틀렸기에 적는다.

“블랙홀에 빠진 우주선 길만 잘 찾으면 산다…”는 제목을 놓고서 본문에 바로 “물론 이 연구결과 자체가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는 말이 나온다. 역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제목이다. 왜 제목과 본문이 모순인거냐…

제대로 된 제목은 “블랙홀에 빠진 우주선 길만 잘 찾으면

조금 더

산다…” 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부제목으로 들어간 것도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장 열어”인데, 내용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라든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아무리 좋게 봐줘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본문 내용 아닌가 싶다.

논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하기를, 블랙홀 내부의 공간에서 가장자리로부터 특이점까지 도달하는 최장 시간이나 최단 시간, 최단 경로 등등을 계산한 것 같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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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로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획기적인 논문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저 기사는 아무튼 제목 및 부제목과 내용이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블랙홀에 들어간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넌 이미 죽어있다.

  1. 논문을 읽지 않았으므로 이 얘기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며, 사실과 관련이 없다.

    [본문으로]

초대칭성(Supersymmetry)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입자로 표현된다. 이 말은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의 기본 가설이다.


http://snowall.tistory.com/8

우리 우주에 어떤 입자들이 있는지는 위의 글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간략히 보자면, 페르미온과 보존으로 나눠지고, 페르미온들은 쿼크와 렙톤으로 나눠진다. 보존은 빛, W, Z 보존, 글루온, 중력자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입자들은 모두 각각의 반입자를 갖고 있어서 그 종류가 두배로 뻥튀기 된다.

초대칭성은, 이 모든 입자에 초대칭 짝(Super Partner)이 있다고 하는 가정이다. 즉, 페르미온은 보존 짝들이 있고, 보존은 페르미온 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힘을 전달하는 게이지 보존들의 초대칭 짝들은 뒤에 ino를 붙인다. 즉, Photino, Wino, Zino, Bino, Gluino, Gravitino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가 아는 입자들의 초대칭 짝들은 앞에 s를 붙인다. 즉, squark, sup, sdown, scharm, sstrange(?), stop, sbottom, slepton, selectron, smuon, stau, sneutrino등등.

아무튼, 이걸 보고서 느껴지는 것.

사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페르미온으로 되어 있고, 우리가 “힘”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보존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모든 페르미온에 보존 짝이 있고, 모든 보존에 페르미온 짝이 있다면, 물질은 힘이고 힘은 물질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딱 떠오르는 말이 있는데, 일부 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바로 그 유명한 글귀이다.



色不異空 (색불이공)

空不異色 (공불이색)

色卽是空 (색즉시공)

空卽是色 (공즉시색)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은 공이며 공은 곧 색이다.

이때, “색”은 물질적 실체이고 “공”은 마음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양자역학이나 초대칭성 이론을 알았을리는 전혀 없지만, 어딘가 통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순수하게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만 접근해야 하고, 철학이나 다른 감성적인 비유들이 끼게 되면 오해의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인간세상의 일들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양자, 파동, 입자

양자역학을 배우다보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개콘의 “같기도”를 수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양자역학은 모든 입자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고 했다. 이건 정말 본질적인 “같기도” 스타일의 과학이다. 개그 코너가 웬 과학을 의미하냐고? 글쎄. 내 생각엔, 우주 만물은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아니, 입자인것 같기도 하고 파동인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게 둘 다 성립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설명을 해 주겠다.

파동은 소리이고, 입자는 덩어리이다. 소리, 하면 생각나는게 “노래”다. 내가 만약 노래를 부른다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파동의 특성이다. 내가 부른 노래를 듣고 감동해서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준다면, 그 동전은 반드시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와야 하며 다른 곳에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입자의 특성이다. 입자인 것 같기도 하고 파동인 것 같기도 하다는 뜻은 이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노래를 했는데, 내 주변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딱 한명만 들은 것이다. 그 사람이 내 노래를 들었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나의 노래를 들었으며 반대로 다른 사람은 그 어떤 누구도 내 노래를 들은적이 없다. 노래가 파동인 것은 맞긴 한데, 다른 사람은 내 노래를 들은 사람이 없고, 적어도 한명은 내 노래를 들었으며, 더군다나 정확히 한명만 내 노래를 들었다면, 내 노래는 입자의 특성을 갖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건 잘 모르겠다. 자연의 본질이 그렇다는 말 밖에는 모르겠다. 최근에 MS인가 하는 회사에서는 개방형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를 단 한사람에게만 들리도록 하고 그 주변에서는 들리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얘기한 입자-파동 이중성을 가지는 것이다.

입자는 발견되는 경우 단 한곳에서만 발견된다. 파동은 모든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입자-파동 이중성을 가졌다는 뜻은, 발견되기 전에는 어디서든지 발견될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발견된다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플랑크 상수가 조금 컸다면, MS가 지향성 스피커를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말하기와 글쓰기

누가 그랬더라, 사람이 귀가 두개고 입이 하나인건 말하기보다 두배 더 많이 들으라는 뜻이라고.

오늘은 교수님한테 미친듯이 혼났다.

내가 내뱉는 말은 하나하나가 독설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점에 대해서 한소리 들은 거니까 딱히 변명할 건 없다.

고치는 방법을 알고 싶다.

내가 블로그에 쓴 글들과, 그 글에 많은 분들이 달아주신 댓글을 보면, 나는 글은 잘 쓰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화내는 걸 보면, 나는 말하는 것은 최악인 것 같다. 다른건 모르겠고, 전부터 교수님이 계속 얘기해 왔던 점이 나랑 있다보면 화가 난다고 하시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의 나를 모를 것이고, 오프라인의 내 친구들은 온라인의 나를 잘 모를 것이다. 두 모습의 나를 모두 아는 사람은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딱히 이중인격인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나는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뿐이고, 말은 순간이고 글은 남기 때문이다. 아예 말을 말자.

그러나 내가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고치긴 고쳐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내가 말하는 습관이 바로잡힐지, 적어도 남들이 화를 내는 말투는 고쳐보고 싶은데, 이거 참 문제다. 솔직한 성격부터 바꿔야 하나. 꾸미고 입에 발린 말을 해야하나. 아, 이런식으로 블로그에 글로 남기면 내가 진솔한데 다른 사람들이 위선자인 것처럼 오해하겠다. 그런건 아니다. 나의 독설에서 독을 빼야 한다. 근데 단어 하나하나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단어가 튀어나오니, 난감할 따름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자연스럽게 그것이 가능할까. 남을 배려하는 말투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오늘 점심 먹으면서 잠깐 생각해봤던 건데, 나는 내 마음을 내놓고 다니는 것 같다. 마음을 감추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기 때문에 내뱉는 푸념일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그렇겠지. 위험한걸까.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 건가? 교수님한테 아주 많이 혼나고 나면, 일단은 반성하는게 아니라 화를 내나? 그렇다고 내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약간의 감정적 동요를 느끼면서, 고치긴 고쳐야 겠다고 진심으로 느끼고는 있지만, 진심으로 내가 큰 잘못을 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답답하긴 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그냥 교수님께 전해드리고 싶다. 그런데 그걸 말로 전할 수는 없다. 말로 전하면 또 기분이 나빠지실 테니까. 뭔가를 바꾸긴 해야 한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불가능하다지만, 난 지금 당장 내일 아침부터 나 자신의 바뀐 모습을 만들어 놔야 하는 강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다.

알고 있다. 난 “관습”이나 “예절” 같은걸 배운적이 없다. 나 스스로가 그것을 거부했다. 내가 잘난놈이어서 그런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이랑 똑같은건 다 싫었고, 남들이 하는걸 싫어했다. 그 결과, 사회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24년간 살았는데 난 아직도 사회가 어색하다. 내 관점에서 보면 참 세상은 이상하다. 나를 바꾸기도 힘든 일이고, 세상을 바꾸기도 힘든 일이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나? 자살? 자퇴? 근데 난 왜 극단적인 낙관을 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난 이 헛소리를 쓰면서도 미래를 낙관한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을 고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오늘 교수님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상처를 후벼 팠고. 아무튼 교수님께서도 화나시고 답답하시니까 말씀하셨겠지만, 나 역시 힘들다.

내가 소심하긴 한가보다. A형이라 그런가.

모르는 것은 보약이다

아이들이 창의력 문제의 답안이라고 쓴 글들을 쭉 읽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아이디어들이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수많은 아이들이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부분이랍시고 생각해낸 생각이 다 똑같다는 점이다. 어찌 그리 비슷할 수 있을까.

문제 유형이, 가령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세요”라고 했으면, 최소한 문제에 제시된 예제는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아니면 예제를 아주 확실하게 발전시키든가. 인터넷 검색이 아주 좋아진 것도 좋고, 지식인 사이트가 있어서 문제의 답을 물어볼 곳이 있는 것도 좋은데, 이건 문제를 우수답안을 선정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것 자체를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옳은 것이다. 그게 없으니 창의력이 죽지. 몰개성화 된 답안만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 푸는게 재미있다는 건 어디가야 배울 수 있을까. 그것도, 답안을 남들과 다르게 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건 어디가서 배우려나. 나만 해도 당장 너무 아는게 많아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구별한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해봐야 남들이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어디서 주워들어서 그에 대한 조금 발전된 답을 내놓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르는 초보들이다. 이런 때 아니면 창의력을 발전시킬 시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다들 똑같은 생각만 하는 걸까.

선행학습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몇년 이후에나 배울 내용을 미리 알아봐야 쓸데가 없다. 쓸 수도 없다. 어차피 몇년 후에 다시 배울 텐데. 의미도 없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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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줄 모르기 때문에 덤비는 것 아니던가. 젊을 때는 세상이 무서운 걸 모르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 아니던가. 창의력은 아직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의 뇌는 한번 알게 된 것을 모르게 되기는 힘들다. 이것은 기억과는 다른 얘기다. 기억은 잊혀질 수 있지만, 지식으로서 알게 된 것들은 모르는 상태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 그때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시기이다. 대부분 이 시기에 상상했던 것들이 평생 써먹는 상상력의 밑천이 될 텐데. 그것은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불가능한 것이다. 피터팬을 보자. 그는 모르기 때문에 날아다니는 것이다. 만일 그가, 사람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이후로는 날아다닐 수 없게 된다. 누가 그에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면 여전히 날아다닐수 있을까?



[각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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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남들과 같은 생각으로는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다. 남들과 같은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 뒤처질 따름이다. 무식한 건 죄가 될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 자체도 자신의 잇점으로 활용해야 진정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1. 야오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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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런점에서 후크는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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