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요약: 대학원 그만둡니다.
눈치채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자기소개가 “A quasi particle physicist”에서 “A quasi particle”로 바뀌었습니다. 많은 고민이 있었고, 많은 분들의 조언과 응원을 들었고, 내린 결론은 대학원을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것뿐이었나? 어떻게든 지도교수님이랑 쇼부를 쳐서 적당히라도 졸업할 수 없었는가? 연구실을 옮겨서라도 어떻게 안되나? 등등…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수십가지의 경우의 수를 검토해 봤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래서 더이상 저는 Physicist가 아니라, 그냥 조그마한 한 개인이라는 점에서 A quasi particle입니다.
지난 9년간의 대학원 생활에 있어서 제가 열심히 노력하지 못한 부분, 성실하지 못했던 부분, 재능이 부족했던 지점 등, 현재에 이르게 된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시점을 돌이켜 본다면 지금 이렇게 된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여러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심지어 충분히 많이 있었죠.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바꾸지 못한걸 전부 내 탓이라며 마냥 자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현실을 바꾸기에는 늦었고, 따라서 학자로써의 길은 여기서 멈추려고 합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충분히 했고, 논문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재밌는 연구를 했으며,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었으며, 좋은 경험도 여러가지로 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누구 때문에 대학원 생활이 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잘못이 있다면, 그 누군가는 저 하나입니다. 이런 결과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 원서접수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선택의 순간에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한 것은 저 자신이니까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상황은, 마치 국가대표 달리기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서 100미터 질주를 하는데, 중간에 넘어진거죠. 끝까지 뛰어갔는데 메달을 못 땄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중간에 넘어지면서 경기가 끝난 거예요. 당연히 넘어졌으니까 아프고, 까져서 상처도 나고, 끝까지 뛰지를 못했으니 억울하고, 끝까지 갔으면 내가 이겼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아쉽고 화가 나고 그러겠지만. 뭐 사실은 다음 대회도 있고, 다른 종목도 있고. 그때까지 노력하면서 얻은 실력은 어쨌든 자기 것이니까요. 저에게는 대학원 박사과정 도전이 올림픽 같은 큰 도전이었고, 중간에 이렇게 넘어져버렸네요. 그러니까 일단 넘어져서 아픈건 좀 문질러 주고, 크게 다친거 없이 괜찮은거 같으면 일어서서 경기장에서 비켜줄 겁니다. 저는 단지 다른 곳으로, 다음 경기장으로 가서 다음 대회를 준비할 뿐입니다.
저를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과, 그리고 응원해주지 않으셨더라도 아무튼 주위에 계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재밌는 일을 벌려볼 생각이 있어서, 아마 성과가 있으면 좋은 이야기로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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