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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라리 이기주의자가 되든가

숙제 공유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떠오른 잡념인데…

요즘 아이들은 자기만 아는 듯 싶지만 그렇게 똑똑하지도 못하다. 미래를 볼줄도 모르고 만족을 뒤로 미룰줄도 모른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시간적으로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가 커서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즉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아이는 실패한다고 한다.

나만 아는 이기심. 이게 멍청한 머리와 만나면 세상이 꼬인다.

차라리 진짜 이기적으로, 자신의 최종 성공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세상이 좀 더 편해질 것 같다.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서 무한 경쟁에서 어떻게 이기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차라리 그렇게 순진할거면 진짜 착하게 살던가. 죽도 밥도 안되고 다 태워먹는 듯한, 그런 모습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누군 뭐 편하게 살고싶지 않은가?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가?

당장 편하고, 당장 원하는 것만 구하는 것은 평생을 가지 못하기에 지금 조금 덜 편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편리함을 구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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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hs4.tistory.com/49

도 참고.

숙제 판매, 그것은 인터넷의 미해결 난제

이번엔 숙제 다운로드 시스템을 전격 해부하다 말아본다.

우선 숙제 다운로드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보자.

A는 숙제를 한다. B는 숙제를 해야 한다. A는 B에게 참고해서 쓰라고 숙제를 보여줄 수 있다.

이 과정을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이 인터넷 숙제 다운로드 시스템이다. 뭐, 이쯤 얘기했으면 어느 사이트인지 특정해주지 않더라도 독자 여러분들이 알아서 잘 찾아가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 A가 B에게 숙제를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얻을만한게 있으니까 보여주겠지. 즉, 이 사실의 원형은 다들 알다시피 술한잔, 밥한끼 얻어먹고 보자는 것이다. 현물거래가 된다. 그리고 이러는 과정에서 친구들 사이의 우정도 쌓이는 것이고, 학창 시절의 추억이 되는 거지. 여기까지는 그냥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이것조차 그다지 장려할만한 것은 아니다. 숙제라는 것은 교수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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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수업시간 외의 시간에도 공부를 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결과물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숙제를 베끼거나 참고하여 교수가 요구한 것 보다 적은 노력을 통해서 해결해 버린다면 교수가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수가 출제한 문제의 정답이 대략 정해져 있다면 사실상 원본과 사본은 구별하기 힘들 것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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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식으로 학교 안에서 돌고 도는 숙제라면 이미 베낄대로 베껴져서 모두가 똑같아지게 되고 더이상 평가의 의미가 없어진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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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숙제를 참고하여 자신의 숙제를 완성한다. 이것은 애초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아야 하며 사실상 꿈도 꾸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숙제라는 것이 항상 자신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 과목에만 매달릴 수 없을 만큼 과목마다 숙제가 대량으로 나오기에 어느정도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필요는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숙제를 참고한다거나 이미 해결한 사람에게 문제를 물어봐서 조언을 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것이다. 다른사람에게 질문하여 풀이를 얻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비슷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베꼈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풀이를 구하여 자신의 숙제를 해결한 경우, 그러한 풀이를 제공한 사람은 그것을 참고해간 사람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실제로 이 문제는 학술계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인데,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인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완성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용하는 경우 누구의 논문을 인용하였는지 명확하게 밝힘으로서, 인용된 논문의 원래 저자는 “명예”를 얻는다. 즉, 이것이 실질적인 수익 구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숙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수익은 명예가 아니다. 대부분의 숙제는 이미 과거에 해결되었던 문제 중에서 교육적으로 유용한 것들을 출제하기 때문에 숙제를 해결한다고 하여 그 학생이 얻을 수 있는 명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숙제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수익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앞서 예를 들었던 술한잔, 밥한끼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제 인터넷의 발달로 가상 공간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내가 해결한 숙제를 인터넷에 올리면, 같은 숙제를 받은 학생이 그 숙제를 받아서 참고하여 자신의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초기에는 인터넷에서 누군가 작성한 다른 자료를 참고하는, 즉 도서관에서 찾아야 할 참고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최근에는 완전히 발달하여 지식 거래라는 것으로 그 위상을 굳히고 있다. 인터넷은 현실세계와 달라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날 수가 없다. 물론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술한잔, 밥한끼처럼 직접 만나서 주고받는 정도의 거래를 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온라인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수익을 생각하게 되는데, 물론 다들 알다시피 이것은 현금이다. 즉, 내가 작성한 숙제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대신 나는 적당량의 돈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인터넷으로 중개하게 되면, 중개 사이트는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이 과정은 완전히 체계화 되어서 학생들이 숙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

우선, 숙제를 제공하는 학생들의 저작권 문제는 논외로 치자. 즉, 숙제를 제공하는 경우 그 숙제는 항상 자신이 직접 해결한 것이라고 가정하자. 만약 다른 사람의 숙제를 허락받지 않고 제공하여 자신이 수익을 얻었다면 이것은 일단 저작권법 위반이며, 동시에 내가 앞으로 논의할 모든 문제도 함께 얽히게 되므로 어차피 얽히는거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는 뜻이다.

그래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숙제를 인터넷으로 거래하는 것은 왜 나쁜가?

두가지 전제가 있다. 인터넷과 거래이다. 즉, 숙제를 거래하는 것은 나쁜가? 하고 숙제를 인터넷으로 하는 것은 나쁜가? 라는 질문을 동시에 해결하라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숙제를 거래하는 것은 나쁜가? 이것은 나쁘다. 숙제를 거래하여 풀이를 알게 된 경우, 대부분은 그 풀이를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베껴서 제출기한에 맞추는 데에 급급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은 그다지 심도있게 논의하지 않더라도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숙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스스로의 힘으로 모두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풀이를 참고한다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해결하는 것은 학생들이 토론하는 습관을 키우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의 풀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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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 기한에 맞추기만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익이 있거나 없거나 이것은 이것 자체로서 나쁜 일이다.

숙제를 인터넷으로 하는 것은 나쁜가? 이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인터넷은 아주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서 이제 겨우 21세기 된지 7%밖에 안됐는데도 지금까지 출판된 자료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그것이 설령 숙제와 관련된 자료라 하더라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숙제의 해결방법이 올라와 있는 경우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제출하는 것은 좋지 않다. 마찬가지 이유로서 교육적으로 무의미하다.

사실 숙제는 학생에게 그 과목에 대하여 이해하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줘서 학생이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 마주치게 될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기능이 있다. 설령 사회에 나가서 전공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문제 해결 능력은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 숙제를 베끼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것은 연쇄 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가 있다. 사회에 나간 학생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항상 어떤 문제를 해결해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가 특허를 하나 출원하여 특허료를 받는 것인데, 특허라는 것이 기존에 있던 어떤 실제적인 문제를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해결했고 그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공적을 인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특허를 내는 것은 곧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아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만 잘해도 이처럼 먹고 살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제출 기한에 맞추기에 급급하여 베끼기만 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숙제를 다운로드 받을 때 처럼 싼 값이 아니라, 남의 특허를 사용하기 위하여 비싼 특허료를 지불해야 하는 곳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벌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돈을 낸다. 이것이 바로 그 학생이 마주쳐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 베끼기만 했던 학생이라면 부디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해보기 바란다.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숙제를 인터넷으로 거래하는 것은 나쁜가? 이것은 앞서 논의한 두 질문의 교집합에 해당하므로 물론 나쁘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인터넷 숙제 거래 사이트가 나쁜 사이트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다. 인터넷 숙제 거래 사이트는 단지 중개만을 했을 뿐이고, 실질적으로 거래를 한 것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숙제 거래 사이트가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곧 멍석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형법에 의하면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의도가 있어야 하고 실제 행위가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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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손쉽게 숙제를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더라면 숙제 거래는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숙제 거래 사이트는 학생들에게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관념을 갖게 하여 올바른 사회의식 함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상에는 양심을 돈에 파는 사람도 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양심도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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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를 했으면 해결 방법을 제시하랬다. 이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이 있기에 요약하여 몇자 적어둔다.

우선 학생들은 좀 더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은,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고, 남이 하던 것을 따라 할 수밖에 없고, 남이 하는 만큼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남이 버는 만큼밖에 벌지 못한다. 심지어 남들보다 돈을 못 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진짜로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뭣하러 인터넷 사이트에 중개 수수료까지 떼이고 남에게 돈을 줘가면서 숙제를 베끼겠는가. 당장의 시간이 절약되니까? 글쎄. 숙제를 직접 노력하여 해결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문제 해결 능력의 배양인데 이건 직접 해보지 않고는 결코 얻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결코 얻어지지 않는 능력을 사회에서 요구하는데

, 아무리 순진해도 생각좀 해보고 숙제를 하면 안될까?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좀 더 창의적이 될 필요가 있다. 숙제로 내는 문제가 천편일률적이기에 하나의 풀이가 이곳 저곳에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교수들 각각이 모두 다른 숙제를 출제한다면 하나의 풀이는 그 교수가 낸 숙제만을 위한 해법일 수밖에 없으므로 인터넷을 통한 숙제 베끼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가끔은 교수님들도 숙제를 인터넷에서 참고하여 출제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해결된 문제인데, 사회가 냉혹해지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문제 해결력이 탁월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 그곳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학창시절 스스로 해결해본 숙제들로부터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미 냉혹해질대로 냉혹해진 사회는 이미 그런 인재를 원하고 있다.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고 노력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문제해결력은 학창시절에 가장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성공의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문제해결력이고, 따라서 숙제 베끼기는 당신의 성공에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된다.(심지어 독이다!)

  1. 대학 교육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기서 교수의 의미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보다 기초적인 학급에서는 교사(선생님)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2. 원본과 사본의 구별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숙제 복사를 근절하기 위하여 실질적으로 복제한 것이 분명한 숙제들은 양쪽 모두를 0점 처리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그 결과 채점조교가 학생과 교수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 얘기는 남의 일이 아닌것 같은 정도가 아니라 남의 일이 아니다.

    [본문으로]
  4.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번에는 참고하여 풀었으나 다음번에 비슷한 문제를 만났을 때는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5. 이것은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이라 정확한 말은 아니다. 혹시 정확한 성립 요건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란다.

    [본문으로]
  6. 아마, 많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본문으로]

반감기의 이해

반감기. Half Life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각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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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기는 시간의 단위를 갖고 있는데, 그 의미는 대략 반감기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주어진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을 지배하는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n을 갯수라고 하면

$-\frac{dn}{dt}=\lambda n$

물론 위의 방정식을 풀면

$n=n_0 e^{-\lambda t}$

가 답이 된다.

여기서 $n_0$는 최초에 존재하던 갯수. $\lambda$는 대략 반감기랑 비슷한 숫자이다.

문제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을 지배하는 방정식이 왜 저렇게 주어지는가이다. 저 방정식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방사성 동위원소가 줄어드는 속력은 현재 남아있는 양에 비례한다”이다. 아니, 왜그럴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원자핵이 있으면 그놈이 조금 있다 붕괴할 확률은 똑같을 텐데 어째서???

자. 이제 그럼 동전을 던져보자. 진짜로 이해하면 된다.

동전 100개를 놓고 한번에 던지는데, 그중 뒷면이 나온 애들은 다 붕괴한 것으로 치고 앞면이 나온 애들만 골라낸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첫번째 시행에서는 대충 50개정도가 살아남을 것이고, 두번째 시행에서는 대충 25개정도가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진짜 대충이지만 세번째 시행에서는 12개정도가 살아남겠지.

원자핵이 많이 모여있는 방사성 동위원소 덩어리에서는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지금 100개의 원자핵이 살아남은 상태일 때, 1초 후에 살아남을 확률이 절반이라고 하자. 그럼 1초 후에는 그 절반이 사라진다. 이 법칙은 모든 각각의 1초마다 적용된다. 따라서 원자핵들이 붕괴하는 속력은 일정한 속력이 아니라 남아있는 양에 비례하는 것이 된다.

  1. Half Life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 이름이기도 한데, 그 게임의 제목은 “반쪽짜리 삶”을 뜻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예고편 :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합니까

흠…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고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공략할지, 공략집을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다. (생각만!)

고생의 원인과 대책. 과연 완벽한 해법은 있을지.

대략,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싯다르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물론, 내가 부처가 될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동시성 : Simultaneous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책들을 보면, 아인슈타인이 최초에 설명할 때 기차 얘기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차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는 책이 많이 있다. 내가 보았던 어떤 책은 평화 조약을 맺는 얘기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나는 것을 물리적으로 올바르게 각색하여 적어본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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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가 전쟁을 하다가, 싸우다 지쳐서 평화 조약을 맺기로 했는데 그 접경지에서 만나서 조약에 서명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어느 한쪽도 지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대표들은 상대방이 먼저 서명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서명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해결방법이, 중앙에 신호등을 두고서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위치에 책상을 두고, 신호등이 켜지면 양쪽이 신호를 보고서 서명하는 방식이 제안되었다. 이 방식에 따라서 평화 조약에 서명을 하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아무튼 그래서 신호등이 켜졌는데, 그 순간 국경을 지나가던 정찰기가 이 광경을 보고 외쳤다. “동시가 아니다! 이 조약은 사기다!”

그래서 다시 전쟁을 하게 되었다는 비극적인 결말.

와우. 썰렁하다.

아무튼, 동시성의 문제는 위와 같이 함부로 따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물론 내가 물리 얘기를 하자고 이 얘기를 꺼낸건 아니고, 전략 얘기다.

이슈를 현대로 돌려서, 저렇게 싸우다가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집단은 많다. 예를들어 다음과 같다.

북핵 사태 -> 북한 vs. 미국 : 핵무기 포기와 대북 지원

이랜드 파업 -> 이랜드 사측 vs 이랜드 노조 : 고소고발 취하와 점거농성 해제

위의 두가지 예는 어느 한쪽이 약속을 이행할 경우 다른 한쪽이 약속을 어길 것이 의심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가령,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미국은 북한을 포용할 것인가. 반대로, 미국이 먼저 북한을 포용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 이랜드 사측이 고소고발을 취하하면 노조가 점거농성을 해제할 것인가, 노조가 점거농성을 먼저 해제하면 사측이 고소고발을 취하하겠는가. 사실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그냥 동시에 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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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 책에 있던 내용은 당연히 물리적으로 올바르지만, 내가 생각나는 내용이 물리적으로 올바르게 떠오르질 않아서 각색해 둔다.

    [본문으로]
  2. 물론 내가 이 문제를 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저 두가지 말고도 서로는 서로에게 요구조건이 너무 많다.

    [본문으로]

악성코드 vs. 일제침략

악성코드가 컴퓨터의 취약점을 찾아내어 침투하는 것과 일제가 우리나라를 먹을 때 썼던 방법은 유사한 점이 많다.

악성코드가 컴퓨터에 침입할 때, 우선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이거 좋아요”라고 사용자를 현혹하여 설치하게 한 후 결코 삭제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최고관리자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하며 컴퓨터의 자원을 마음대로, 야금야금 사용하며 스팸을 보내기도 한다. 다른 악성코드를 잡아준다며 돈을 쏙쏙 빼가기도 한다.

일제가 우리나라에 침략할 때, 일단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서 “지켜줄게”라고 우리나라 관리들을 현혹하여 일단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결코 나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관리들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일본의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도 있는데, 뭐 이 과정에서 땅 날아가고 자원 날아가고 우리나라의 국력이 낭비된 것은 말할것도 없다.

잘 생각해보면, “체계(system)”에 존재하는 가장 큰 보안 구멍은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인 것이다.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에 체계 자체가 허접하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변명될 수 없다. 항상 흐르는 물이어야 할 운영자의 의식이 한곳에 고여있으니 썩을수밖에.

중력의 원인

중력의 원인은 대칭성의 깨짐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확히 맞는 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아주 개략적인 이해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설명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아주 살짝 맛보기 하는 수준입니다)

우주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은 모든 부분이 대칭적입니다. 따라서 모든 점이 동등하고 어디에
있어도 가속도 같은걸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모든 점이 질량이 0이라는 겁니다. 어느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입자 한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빈 공간에 질량을 가진 입자 한개가 딱 놓여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순간 우주 전체의 대칭성이 깨지게 되죠. 왜냐하면, 적어도 그 입자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째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를 느껴야 하는가? 이것이 질문의 요점입니다. 결국, 중요한건 질량을 가진 입자A가 하나
있을 때, 그 근처에 있는 입자는 A를 봐야만 합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A근처에 B가 있으면 A와 B는 서로를
보는 거죠. 만약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서로 볼 수 있다고 합시다. 이렇게 약속 해 두고 나면, 같은
입자를 보더라도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겠죠. 따라서 가까이 있으면 영향이 크고 멀리 있으면
영향이 작아지게 됩니다. 여기서 두 입자가 서로 볼 수 있게 중간에 매개하는 입자를 중력자라고 부르는 것은 과학자들의
약속입니다. 중력자가 돌아다니는 공간을 중력장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실제로는 중력자와 중력장은 같은
대상이기도 하지만 너무 복잡해지므로 더 나가지는 않도록 하죠.

그럼, 영향을 받는다면 입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것이 그 다음 질문입니다. 관성의 법칙에 의하면, 힘을 받지 않는 입자는 그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입자의 경우, 다른 어떠한 것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증명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죠. 그렇다면,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는 입자의 경우, 관찰자가
똑같이 옆에서 달린다면 그 입자가 가만히 있는 것 처럼 보이겠죠. 따라서 가만히 있는 입자를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원리에 의해, 일정하게 움직이는 입자는 건드리지 않는 한 일정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것은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경우입니다. 만약 공간 어딘가에 다른 입자가 하나 존재한다면,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그 입자를 봐야 합니다. 따라서 이전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같이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얘기한다면, 공간에 입자 A가 존재할 때, A의 근처를
지나가는 입자 B는 A로부터 나온 중력자를 받기 때문에 A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하지만, 영향을 받는다면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할수 없습니다. 만약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한다면 이것은
영향을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것을 구별할수 없게 되므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여가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어차피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입자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밀거나 혹은 당기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때 미는 것과 당기는 것이라는 의미는, 입자A와 입자 B를 잇는 직선 방향으로 거리가 더 멀어지는 쪽이냐
가까워지는 쪽이냐를 뜻합니다. A와 B를 잇는 직선을 벗어나는 다른 방향은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A와
B를 잇는 직선의 양쪽은 서로 구별이 없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영향이 미쳤다면 다른 한쪽에서도 마찬가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정확히 상쇄되어야 할 겁니다. 따라서 A와 B가 받게 되는 영향은 항상 A와 B를 잇는 직선의 방향으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는 것과 당기는 것 중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상호작용의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데, 중력의 경우 당기는 힘을 받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아무것도 없었으면 그냥 앞으로 가게 되었을 입자들이 서로를 보기 때문에 경로가 바뀌게 되고, 이것이 중력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무엇을 규정하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흠, 프로그램 광고를 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아무튼 위의 그림은 스펀지라는 TV프로그램의 웹 페이지에서 화면저장하여 잘라낸 그림이다


http://www.kbs.co.kr/2tv/enter/sponge/

저 프로그램 이후로 “A는 xxxx이다” 라는 형식의 글귀가 난무하게 되었는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A를 xxxx라고 규정하였을 때, xxxx에 들어간 개념은 A를 충분히 표현하는 걸까? 즉, 다시 말해서 A는 xxxx이외의 다른 특성을 갖지 않고 오직 xxxx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일반적으로 “아니오”다. 어떤 경우에는 가능하겠지만, 많은 경우에 가능하지 않다.

저 네모칸의 위치를 바꾸면 어떨까?

“xxxx는 A다.”

라고 하면, A라는 특징을 가지는 대상 xxxx는 아주 많은 것이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말장난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데, 앞서 예를 들었던 것은 주어가 술어를 제한하는 것이고, 내가 새롭게 제안한 것은 술어가 주어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퀴즈

답과 인터넷과 전화와 선생님과 기타등등을 참고하지 않고 다음의 단답형 문제를 혼자서 풀어 보시오. 물론 가장 마지막에 정답을 밝힐테니 자신이 몇개 맞췄는지 댓글로 굳이 달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1.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말했다 (Yes / No)

2.천동설은 틀렸다 (Yes / No)

3.양자역학을 알면 고전역학은 필요없다 (Yes / No)

4.로보트 태권브이를 만든 남박사는 과학자다 (Yes / No)

5.해태가 태양과 달을 먹었다가 다시 뱉는다는 일식과 월식의 설화는 과학 이론이 아니다 (Yes / No)

6.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그리면 계산이 끝난다 (Yes / No)

7.초끈이론은 맞다 (Yes / No)

8.진화론은 신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Yes / No)

9.snowall은 천재다 (Yes / No)

10.과학 이론은 정확하다 (Yes / No)


정답


해설

10개의 문제 중에 9개 이상 맞춘 사람은 과학에 대해 편견이나 오해가 없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6개 이상 8개정도 맞춘 사람은 과학을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직 단편적인 사실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5개 이하로 맞춘 사람은 관심만 있는 사람이다


위 의 기준은 전적으로 내 주관적인 기준이며 무슨 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저런 말도 안되는 문제에 대한 말도 안되는 기준에 좌절하지 말고, 과학을 좋아하면 끝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저 기준이 싸그리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바란다.

양자 관점에서 인간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임을 밝힌다. 좀 더 발전된 논의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 상태(Quantum state)”라는 것은, 우리가 이름붙인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추상적인 대상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기호로 $\mid state\rangle$이라고 쓰면 이것은 곧 state가 가진 특성을 모두 표현한 것이 된다. 여기다가 우리가 이 state가 어떤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해밀토니안 연산자를 적용하여 평균 에너지를 계산한다. $\langle state \mid H \mid state \rangle$ 이런 식으로. 어떤 양자 상태에 대해서,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여러가지 상태에 있을 확률이 단지 확률밀도 함수로 주어질 뿐이지만, 만약 우리가 이 상태를 특정 고유 상태로 측정해 버린다면, 다른 상태에 가 있을 확률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리가 측정한 상태로 고정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단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 적당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을 표현한 것이 된다. 가령 snowall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snowall이 가진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이 바로 snowall이다. 물론 이름과 실체 사이에는 대응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snowall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snowall에 대해서 말을 하면 된다. 가령 “snowall은 머리가 좋다”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snowall은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규정되며, 이것은 사실로 변하게 된다. 이 순간 “snowall은 머리가 나쁘다”는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고 한가지 가능성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