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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입

    공부가 안되니 잡념만 떠오른다.

    요새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내신 죽이기, 수능 무시하기, 뭐 이런건가. 내신 1등급이 수능 7등급이면 이상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대학에 가는데,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뽑기를 원한다. 평가 기준은 세가지 정도가 있다. 고등학교에서 올라온 것, 국가에서 보증한 것, 대학 자체에서 평가한 것. 이른바, 내신, 수능, 본고사(및 면접, 논술 등등 포함)를 말한다. 그럼 어떤게 가장 믿을만할까? 당연히 대학 자체에서 평가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마다 갖고 있는 인재상이 있고, 그 인재상에 맞게 평가했을 테니까 당연히 대학 자체에서 평가한 것이 대학이 원하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데에는 가장 정확할 것이다.



    [각주:

    1

    ]


    그러나 본고사 금지. 대학 좌절.

    내신과 수능, 두가지 기준을 두고서 뭐가 더 정확하냐, 이걸 봐야 하는데. 수능은 전국구 줄세우기고 내신은 동네 줄세우기다. 당연히 수능이 더 정확하다.

    해서 수능을 보려고 했는데 등급제 전환. 대학 또 좌절.

    볼건 내신뿐이다. 교육부는 내신을 50%이상 반영하라고 친절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허나 내신은 대학에서 별로 보고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뽑을 수 있는 기준이 사라졌다.

    결론은 수험생 좌절.

    자, 누가 우수한 학생일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누가 대학에 가야 할까?

    생각해 보자. 학부모들은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한다. 자신이 키워낸 자식이기에, 자신이 얼마나 잘 키웠는지를 평가받고 싶은 것이다.



    [각주:

    2

    ]



    서울대에서 기준을 엄격하게 올려서 진짜 천재들만 진학하게 되면 서울대 수준은 확실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애들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애들의 고통은 올라간다. 애초에 서울대에 갈 생각도 없고, 서울대에 갈 능력도 없고, 또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아이들까지 모두 서울대에 갈 것을 요구받으며 고통속에서 살아간다. 운이 좋아서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그게 안되면 그동안의 노력은 누구한테 보상받나? 고등학교 3년간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텐데, 그걸 오직 대학교 합격이라는 엽기적인 목표 하나만 두고서 다른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그 학생의 잃어버린 3년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스스로가 원해서 그렇게 했다면 모를까, 유언 무언의 강요를 받아서 공부한 학생은 참 힘들지 않을까. 시간 낭비고. 반대로, 서울대가 시험 기준을 느슨하게 해서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게 되면, 어쩌다가 진짜 천재들이 못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건 국가적 손실이다. 그리고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토할 것이다.

    애초에, 서울대에 가야 한다는 것, 명문대에 가야 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심지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조차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을 갖고 개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 자체로 인생의 목적이다.



    [각주:

    3

    ]


    진짜로 세계 100대 대학이 나오려면, 대학은 진짜 천재들이나, 진짜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아무튼 될성 싶은 학생들만 입학하고, 들어와서도 베낀 레포트나 부정 시험같은 대충대충 넘어가는 공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 가는 것만이 지상 목표가 아니라,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줘야 한다. 이미 “대입”이라는 것으로 목표를 한정하는 순간, 다른 꿈은 모두 죽어버린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는 멀쩡한 대학 졸업하고서도 취직에 목을 매다가 자살하나?

    그리고 공교육. 고등학교 교육. 여기도 문제가 많다. 고등학교의 이름이 대학교 진학률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내신 부풀리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어느 한 고등학교가 시작하면 다른 모든 고등학교가 따라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가장 좋은 해법은 제대로 된 평가 문제를 내는 것이다. 학생들이 빵점을 맞건 5점을 맞건, 100점짜리 시험에 평균이 10점이 되든 말든, 학부모들이 욕하건 말건,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내용을 시험에 내라. 가혹하다고? 학생들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럼 진짜 쉬운 수능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10년정도 지나면 진짜 명문 고등학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피해보는 학생들은 어쩔 거냐고?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겠는가. 현 재학생들은 그냥 하던대로 하고.

    대학도 취업률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학점 부풀리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찬가지다. 제대로 가라.

    어중이 떠중이 대졸자를 생산하느니, 애초에 안될 사람들을 일찍 포기시키고 다른 길 찾게 하고, 그 고난을 이겨낸 악착같은 사람들만 성공하는 것이 더 낫다.

    1. 이 부분이 본고사를 부활시키자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원하는 학생 선발은 대학이 원하는대로 뽑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본문으로]
    2. 원래 그게 평가기준이 될 리가 없지만.

      [본문으로]
    3. …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 키보드 질렀다

    Targus의 접이식 미니 키보드를 질렀다. 기대와는 약간 다르게, 나름 불편하다.

    생긴건 HHKL2랑 똑같이 생겨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알파벳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너무 불편할 것 같다. 뭐, 그정도는 감수해 줘야겠지. 원래 내가 쓰던 노트북 키보드는 좀 큼직큼직한데, 이놈은 알파벳 부분만 풀 사이즈고 나머지는 절반 이상 작아져 있다. 심히 난감하긴 하다. 그러나 키감은 괜찮은 편이고, 그럭저럭 적응되면 쓸만해질 것 같아서 만족이다. 가격은 6만원이라 안습. 뭐, 작다보니 어쩔 수 없지만, 이거 가격이 왜 HHKL2보다 비싼거냐. 음…;

    방향키는 진짜 캐안습이다. 일반적인 키보드가 아니라 리모콘 버튼 같은 느낌으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정말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접어서 들고 다니는 걸 필요로 한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키감은 일반 펜터그래프와 비교할 때 딱히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키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표준이 아닌 부분 때문에 표준배열인 알파벳 부분에서도 오타가 나올 수 있으니,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지름이 있으니 이거 나름 스트레스가 풀린다. 지름신의 영향인가…

    근데, 이 키보드 하루동안 써 보며서 느낀 건데, 물음표 칠 때 상당히 곤란하다. 쉬프트를 가급적 왼쪽 쉬프트를 쓰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모음 ㅗ를 칠 때 모음 ㅓ하고 많이 오타가 생기게 된다.

    사용기 적어둔 곳들 보면 백 스페이스 키가 연타가 안되는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 그런 문제 없이 잘 되더라. 이만한 사이즈에 부담없는 키 크기면, 다른 부분들은 희생해야지 어쩔 수 있나. 지금 이 글도 미니 키보드를 이용해서 치고 있는 중이다.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스페이스 키는 두개로 쪼개져 있는데 스페이스를 치는 손가락인 엄지 손가락이 가장자리 하우징에 걸려서 정확하게 눌리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뭐, 익숙해지면 될 것 같다.

    생긴게 확실히 HHK와 같아서 그런지 적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편이다. 물론 HHK에 적응한 사람만 그렇겠지만. 그래도 화살표키는 여전히 안습…

    연습삼아서 잡담을 계속 적어내려가고 있다. ㅋㅋ

  • 지하철역에서 만났던 삐끼 아저씨

    대략, 고2때였던가.

    그땐 세상이 두려웠을 때니까.

    친구 Y군과, 구로역이었던가, 아무튼 외부로 노출된 지상역이었다. 거기서 집에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역에, 뻘쭘하니 둘이서 잡담 나누며 서 있는데, 저쪽, 우리 서있는 곳에서 두칸 옆에 벤치에 앉은 아저씨가(아니, 형이라 불러야 옳은가) 우리를 부르더라.

    “야, 거기, 일루 좀 와봐라”

    물론 우리는 쫄았다. 당연하지. 그 아저씨의 모습은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정장(상, 하의 모두 –;)에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담배 한대 물고 있었으니. 연약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든 겁먹게 마련이다.

    “삥뜯는거 아니니까 일단 와봐”

    우리가 주춤거리는 것의 원인을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친근하게(?) 얘기하며 우릴 부르는데 가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옆에 앉았다.

    우리가 앉자, 그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형이 나이트에서 일하는데, 지금 동생이 사람 하나 죽이고 교도소에 가 있다. 너넨 나나 내 동생처럼 나쁜길로 빠지지 말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라”

    …라는 취지의 신세한탄을 기차 올 때까지 했다.

    우리가 나쁜길로 빠질 것 같은 가출 청소년으로 오해받았던 것일까.

    아무튼, 나도 Y군도 그럭저럭 착하게 살고 있다. 그 형의 영향을 별로 받지는 않았지만.

    그 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 중국 갑니다.

    중국, 베이징으로 가요 -_-;

    9일부터 1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수학여행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가는건 교수님 모시고 가는 수행조교로서 가는 거죠. 부디 아무일 없기를 바라며.

    재밌기를 기대해 봅니다.

  • 시의 의미

    오늘, 문득 내 방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펼쳐져 있길래 시를 몇개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몇가지 느낀 점이 있어 적어둔다.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서 시를 읽으면, 시에서는 그가 갖고 있던 고민, 슬픔, 절망, 희망, 사랑, 이런 것들이 가슴 속에 전해져 오는 듯 하다. 참 힘든 시기였다. 윤동주 시인은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고, 부끄러워 한 사람이다. 그가 썼던 시는 그 구절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내 문장력이 약하여 감히 그 아름다움을 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글을 쓸 수 있는지.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현실이 나타나 있고



    [각주:

    1

    ]



    , 시대적 상황도 나타나고



    [각주:

    2

    ]



    , 자신의 고뇌도 나타나고



    [각주:

    3

    ]



    ,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의 희망도 있다



    [각주:

    4

    ]



    .

    만약, 그의 시들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읽게 된다면, 그 외국인도 나와 마찬가지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다.

    일단,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영시를 읽는다면? 이때 마침 떠오른 시가, 다세포 소녀에서 인용되었던


    W


    . B. Yeats의 ”




    H


    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이다.

    일단 읽어보자.



    H


    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W


    . B.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자. 어떤가. 느낌이 팍 오나? 아마 웬만큼 영어 하는 사람도 이 시를 보고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도 감동이 전해져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번역은 좀 괜찮다.






    는 하늘의 천을 소망한다.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여진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물들인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색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번역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걸 퍼왔기에 누가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일단 시의 아름다움이 전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의 시는 유명해서 그런지 여러 언어로 번역된 듯 하다. 영어와 일본어는 기사를 찾았는데, 독일어로도 번역되었다고 들은 것 같다.

    영어 관련 기사

    http://www.koreaembassyusa.org/han_newspress/korea_area_view.asp?korarid=135

    일본어 관련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4&n=200602220112

    물론 난 한국어를 아니까 윤동주 시인의 시를 원어(=한국어) 그대로 읽을 수 있고, 영어나 일본어로 읽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아무튼, 한국 문학의 번역이 많아진다면, 내가 느낌 감동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1. 대학 노트를 끼고 강의 들으러 간다

      [본문으로]
    2. 육첩방은 남의 나라

      [본문으로]
    3.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본문으로]
    4.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본문으로]

  • 안습! 장래희망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어릴 적에는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대통령이요!”라고 말하는 순진한 어린이가 많았다고 한다. 뭐, “과학자요!”라든가 “장군이요!”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지만.

    퀴즈.

    장래희망이 대통령이었던 사람 중에 꿈을 이룬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정답 확인은 여기서 :

    http://www.archives.go.kr/template/contents/kbHook.jsp?requestURL=http://www.archives.go.kr/kbHook.do

    그건 그렇고, 웬 보안모듈을 설치하라고 하는거지? 전엔 괜찮았는데 -_-;

    파이어 폭스는 보안에 헛점 있나?

    MS익스플로러도 만만치 않을텐데…-_-;

  • 뒷골이 땡긴다는 것

    교회에서 나에게 전도하는 일이 하루이틀은 아니건만, 내 본능은 아직도 과도하게 신경쓰고 있는 것 같다. 학교 정문에서 찬양 부르면서 전도지 나눠주며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이 약간 어지러워 지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를 싫어하고 지옥에 가겠다고 말하면 귀찮거나 하도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러는줄 아는데, 이쪽은 진심이다. 한 단어 들을때마다 울컥하고, 어지럽고, 토할것 같고, 죽도록 패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아 오른다. “왜”냐고 묻지 말기를 바란다. 그냥 넘어가면 안되냐고 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게 예수를 배신하라는 권유가 모욕이라면, 내게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하는 것 또한 같은 수준의 모욕이다.

  • APPC와 영어…

    8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포항에서 열리는


    The 10th Asia Pacific Physics Conference (APPC10)

    라는 국제 학회에 가게 되었다. 연구비가 없는 이유로 하여, 재정 지원을 받고 가고 싶다고 추천서를 교수님께서 보내주셨는데, 그중 한 문장.

    his background in physics and English skill are sufficient for participating advanced international activities.

    물리와 영어 실력이 고급 수준의 국제 학술 활동에 참여하기에 충분하다…

    물리학 공부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8월 중순까지는 고급 수준의 국제 학술 활동에 참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만들어 놔야겠군. 유학 가려면 그쪽에서 외국 아저씨들 안면 익혀놓는것도 중요할 테니깐. 팍! 하고 인상 심어 줘야지.

    음. 충분해져야해.

  • OS는 선택사양이오…쫌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7043002010932718002

    디지털 타임스에서 나온 기사를 읽어보자.

    한 노트북PC 사용자는 “운영체제도 탑재하지 않고 판매하는 PC는 사실상 불법복제를 방조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브랜드PC
    업체들도 번들 프로그램을 옵션으로 제공하고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얘기가 있는데, 이 사용자, 리눅스는 운영체제라는걸 모르나보다. (알 수도 있겠지만)

    불법복제를 하는 건 사용자들의 의식 문제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운영체제 없이 샀을 경우 윈도우를 불법복사해서 설치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건 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리눅스같은 오픈소스 운영체제들은 아무리 복사해서 깔아도 불법이 아닌걸.

    뭐, 뒤에 “…번들 프로그램을 옵션으로 제공하고…”라는 말은 공감하지만.

    리눅스를 깔아서 팔아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제발 윈도우를 빼고서도 팔았으면 좋겠다. 기사에 나와 있듯이 진짜 40만원은 싸게 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라면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원격 복구가 된다거나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모두 깔려 있는게 좋겠지만, 운영체제부터 입맛대로 골라쓰고 싶어하는 전문가들까지 쓰지 않을 프로그램을 돈 주고 산다는 건 웃기는 거다.

    애초에 모든 컴퓨터 가격에 윈도우를 포함시킨 채 운영체제로서 윈도우를 기본제공하니까 윈도우가 공짜인줄 알고 불법 복사가 만연하게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윈도우를 별도 구매하게 했어봐라. 누가 공짜로 알겠나.

  • 독의 근원

    얼마전, 친구와 맥주를 마실 때 얘기였다. 그냥 사는 이야기 하다가, 성격과 사상과 정체성과 자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사실, 내가 대화하는 스타일은 굉장히 싸가지 없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내가 내뱉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난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었는데,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듯이, 내가 얘기하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다. 생각해보니, 선후배 막론하고 나한테 말버릇 고치라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 그게 잘 고쳐지진 않는 것 같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듯 싶다. 이 점에 대해서 나 스스로는 또한 적절한 핑계를 내세우게 되었는데, 이걸 두고 자기합리화라고 하나보다. 물론 이런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한다고 그냥 넘어갈 성격의 단점은 아닌 것 같고, 꼭 고쳐야 할 것 같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더 잘 말할 수 있을테니까.

    난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즉, 어떤 사건이 미치는 미래의 영향을 최대한 나쁘게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이정도면 염세주의, 패배주의,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런것과는 다르게 나 자신은 상당히 낙천적인 편이다. 내가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유는, 과연 상황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습관적으로 걱정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인 발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난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악이 아닌 지금은 당연히 해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능력과 상황이 허용하는 최악을 바라보고, 그정도까지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만큼 악조건에서 성공한다면 악조건이 아닐때도 성공한다는, 나름대로의 희망과 자신감을 얻고, 그 속에서 나를 발전시켜 나간다. 문제는, 이걸 남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적용하게 되면 아주아주 안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넌 지금 상황이 안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근데 넌 이보다 더 안좋을 때도 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이런 상황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물음표까지만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더 듣지 않으려고 한다. 말하는 습관을 고쳐서, 앞에는 다 빼고 물음표 뒤의 본론만 얘기하도록 노력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 자신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때는 비관적으로 얘기해 버리는 것처럼 들리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내 속에 우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우울함의 근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랑 여자친구가 없는 것인데, 뭐 이정도 두가지는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외에 우울함에 대한 다른 원인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냥 그런거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자.

    나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사생활은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가진 능력과 그 사람들이 성공한 부분 사이의 연계성에 있어서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성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성공적인 사람이 있다. 가령,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열심히 학원을 다녀서 토익 점수를 900점을 받았다고 하자. 그럼 난 그 사람을 보고서 “저 사람은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데 공부해서 900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저 사람보다 영어를 못하지도 않고, 능력이 그다지 딸리는 것도 아니니까, 저 사람이 한 만큼만, 그만큼보다 좀 더 많이 공부한다면 나 역시 토익을 900점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꽤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과 나를 비교할 때, 진짜 천재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그런 천재들은 어차피 나랑 경쟁할 사람들이 아니라 괴물급 인재들과 경쟁할 사람이므로 나랑 상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열등감도 없다. 뭐, 이정도면 나름 괜찮은 사고방식 아닌가? 하지만 이 사고방식을 입밖으로 꺼내게 되면, 갑자기 나는 비교하게 되는 거고, 비교의 대상이 된 사람은 상당히 기분나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을 다른 두명을 비교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욱 안좋아진다. 이런 사실로부터 배운 점은, 남을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비교하는 건 그냥 속으로만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할 ‹š는 미리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준 후에 얘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형이 하는 얘기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라는 거랄까.

    부정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 비관적인 생각, 나쁜 생각, 이런 것들은 머릿속에 항상 돌아다닌다. 왜냐하면, 말했듯이 난 항상 최악을 상상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난 그런 생각들로부터 희망과 자신감을 만들어 낸다.

    얼마 전 이공계 장학금 신청했다가 선정되는 걸 거의 확신했는데 떨어진 적이 있었다. 나름 정신적으로 충격좀 먹고, 한시간 정도 울적해 있다가, 곧 회복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뭐, 어쩔거야.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그냥 공부나 하는 거다.

    그치만 머릿속에 좀 복잡해지기는 한다. 요점정리가 잘 안되면 난감하기도 하다. 뭐, 그래도, 덕분에 세상 재밌게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