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물리학 이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테크트리

입자물리학, 그중에서도 입자 이론 물리학은 예나 지금이나 물리학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로망인 것 같다. 특히,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비롯한 금서급 교양서적을 읽고서 물리학과를 진학하는 학생들은 입자물리학이 주는 그 멋있음과 기초 과학 중에서 끝판왕을 연구한다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고 싶어서 진학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이 글은 미래에 커서 입자물리학 이론을 연구하고 싶은 중, 고등학생들에게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그곳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적어둔다. 입자물리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글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무엇을 연구하나요?

입자물리학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입자들의 특성과 그 기본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연구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입자는 쿼크 6종, 렙톤 6종이 있고, 상호작용은 중력, 전자기력(광자 1종), 강한 상호작용(글루온 8종), 약한 상호작용(W, Z보손 3종)이 있다. 그 중 중력만큼은 그 연구를 입자물리학이 아닌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질량 그 자체를 생성하는 힉스 입자까지가 현재 입자물리학에서 연구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 입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끝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 입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는지 알기 위해서 양자장론을 이용한다. 대충 표준모형의 라그랑지안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구할 수 있다. 이 수식은 앞에서 말한 기본입자와 그 기본입자들의 상호작용을 나타내고 있다. 정확한지는 나도 검토를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이렇게 생겼으니 참고만 하자.

우리 우주의 표준 모형을 쓰면 대충 위와 같은 수식이 나오는데, 저 수식을 전부 다 동시에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저 중에서 서너개 정도의 항을 골라서 논문을 쓰게 된다.

그럼 이 쯤에서, 누군가는 “입자물리학 하면 파인만 다이어그램 그려서 계산하면 되는거 아니었나요?” 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계산해야 하는 파인만 다이어그램의 수가 무한하다는 것이겠지만. 참고로, 위의 그림에 있는 수식은 전부 파인만 다이어그램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당신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또는 과학동아에서 또는 그 외의 교양 서적에서 봤던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전부 위와 같은 수식으로 바꿀 수 있다.

이론에서 계산해야 하는 파인만 다이어그램의 수가 무한한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입자가 진행하면서 다른 입자를 생성하고, 그 입자가 없어지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수식 중 하나의 항을 선택해서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두 전자가 진행한다” – “둘 중 하나의 전자가 진행하다가 광자를 생성하고 튕겨난다” – “생성된 광자가 다른 전자와 만나서 그 전자를 튕겨낸다”

세개의 과정이 있으니까 이걸 A-B-C라고 써 보자. 그렇지만, 광자가 진행하다가 가상 전자와 가상 양전자 쌍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게 B와 C사이에 추가될 수 있고, 이걸 D라고 하자. 그럼 D에서 생긴 가상 전자와 가상 양전자 역시 A-B-C과정을 겪을 수 있고, 이런식의 끼워넣기는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계산은 일단 A-B-C를 계산하고, A-B-A-B-C를 계산하고, A-B-A-B-A-B-C를 계산하고, … 이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B가 하나 들어갈 때마다 적분이 하나씩 추가되는데, 그 적분은 4차원 시공간에서 정의된다. 즉, B를 하나 넣을 때마다 변수가 4개씩 추가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 현재 연구되는 과정에서 B가 3개인 것 까지는 다 풀려있고, 4개인가 5개인가짜리를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위의 우주의 표준모형에 관한 수식에서 왜 서너개 정도만 골라서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위의 A-B-C설명은 저 수식 중 단 1개의 항만 고른 것이다. 연구에 필요한 서너개 정도 골라서, 하나 계산하고, 제곱해서 계산하고, 세제곱해서 계산하고, 이 과정을 다 해야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입자 물리학은 머리가 좋다고 잘 할 수 있는 전공이 아니라 오히려 꼼꼼함과 참을성이 요구되는 전공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매스매티카 같은게 많이 발달해서 저런 계산은 자동으로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매스매티카로 계산을 많이 해서 엄청나게 간략화 시킨 다음에 남은것만 해도 충분히 어렵고 지루할 정도이니 매스매티카의 발달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입자물리학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일단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중, 고등학생이라고 가정하고 대답한다면, 그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 공부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절대 미리 공부할 필요 없이 영어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 영어를 공부해라. 입자물리학에 사용하는 수학이나 물리학은 중, 고등학교 수준에서 공부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에 사용하는 영어는 결코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전 세계 입자물리학 연구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이고, 어차피 한국에서는 입자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한 토대가 빈약하기 때문에 유학을 가든 포닥을 가든 외국으로 가야 할 텐데 거기서 당신은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논문과, 거의 모든 교재는 영어로 출판되고 있고, 모든 회의와 모든 학회는 다 영어로 토론한다. 물론 노벨상을 받은 어느 일본인 입자 물리학자는 영어를 잘 못해서 일본어로 노벨상 수상 연설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그 분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인 것이고, 그 분도 대화가 잘 안되서 그렇지 최소한 영어로 논문을 읽고 쓰는 건 잘 하셨다. 앞으로 학계에서 영어가 얼마나 그 패권을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받고 연구소에 들어갈 때 까지 향후 50년 동안은 영어를 쓸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

요구되는 영어 실력은? 좋으면 좋을 수록 좋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어느 영역에 한정하지 말고 다 잘 해야 한다. 겨우 수능 영어 1등급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토익 만점, 토플 만점에 만족해서도 안된다.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모든 교재와 논문이 영어라서 좌절하는 후배들을 많이 봤는데, 영어는 절대 좌절할만한 포인트가 아니다. 만약 진짜로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영어만 문제라면 당신은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대부분 그럴리 없다는게 함정이랄까.

영어는 어차피 평생 공부하고 사용할테니 어느정도 수준이 되었다면 독하게 하기보다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런 상태에서 그 다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입자물리학 이론가의 덕목은 끈기와 인내심이다. 게임을 할 때 한번 자리에 앉으면 서너시간씩 게임을 즐기고, 화장실 한번 다녀오고서 또 서너시간씩 앉아있지 않은가? 입자물리학 이론가는 공부를 그렇게 해야 한다. 어떻게 인간이 그래요? 라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그냥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든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만큼 입자물리학 이론이 재미있고 공부를 즐기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공부를 그렇게 해 보자. 좋아하는 과목이든 싫어하는 과목이든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좋든 싫든 공부하고, 문제를 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 고등학교 과학이랑 수학은 너무 쉬워요. 좀 더 이후의 내용을 선행학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그러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당신의 최종 목표가 입자 이론 물리학자라면 당연히 대학교를 가야 하고, 그 대학교의 물리학과를 가야 한다. 어느 대학이 좋다 나쁘다는 비교는 의미가 없겠지만,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어느 학교에 유명한 교수님이 계시고 어느 학교가 지원을 잘 해주는지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앞으로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학교에 진학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그 대학 물리학과에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금 물리와 수학을 선행학습하는 것이 아니고 내신과 수능을 철저히 준비하든가, 수시모집을 잘 준비하든가 해서 입시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입자 이론 물리학자가 되는데 “실패”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원 잘 해주는 학교에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입시에 성공할 수 있도록 과학, 수학 이외의 과목에도 충분히 신경을 써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싫어도, 관심 없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정신과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이제 대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미리 공부해 본다거나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입시에 성공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거나, 이미 대학교 물리학과 진학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의 내용은 물리학과 학부생에게 해주는 내용이 될 것이다.

물리학과 학부생으로서 입자물리학 대학원을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이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공과목은 전 과목 A+을 받기 위해 노력하자. (B가 나오더라도 좌절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리고 물리학과 학부 과목은 대학원 연구 과정에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가능하면 개설된 모든 전공 과목을 다 듣고, 좋은 성적을 받아두도록 하자. 농담도 거짓말도 아니고, 진짜로 학부 과목은 연구 과정에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 또, 각 과목들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되고, 그 속에서 통합적인 사고체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기학과 고전역학의 관계, 전자기학과 양자역학의 관계,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관계, 양자역학과 통계역학의 관계 등등. 과목을 수강할 때 강의 듣고 숙제 풀고 시험 보고 그냥 끝나면 안되고, 물리학 전반의 과목과 분야들을 종합적으로, 통합적으로 생각해서 깊이있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할 필요 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숙제 베끼지 마라. 그것도 스스로 못 풀 정도면 정답이 없는 연구 과정에서는 정말 답이 없다.

물리학과 전공 과목은 다 듣는다고 치고, 수학과를 복수전공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학과 과목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복수전공까지 할 필요는 없다. 수학도 좋아하는 경우에는 복수전공을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말해둔다.

수학과 전공 과목 중에 이후의 공부와 연구에 도움이 되는 과목이라면 해석학, 복소해석학, 실해석학, 함수해석학 같은 해석학 계열과, 선형대수학, 현대대수학 같은 대수학 계열이 있다. 또, 미분방정식과 편미분방정식 과목은 어쩌면 가장 실용적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미분기하학, 다양체기하학의 경우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두면 좋을 것 같다. 위상수학, 위상기하학, 대수위상 같은 위상수학 계열 과목은 필수적이지는 않은데 알아서 나쁠 건 없고 어쩌다 연구 과정에서 마주쳤을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목들을 다 듣고 나면 차라리 복수전공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에, 복수전공을 할지 말지는 신입생 때 잘 생각해서 설계해두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학부 4~5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면 이제 대학원에 갈 수 있게 된다. 대학원 입시와 관련된 내용, 그리고 대학원에 가서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는 것은 처음 생각했던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쯤까지 됐으면 굳이 조언이 더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연구에 깨달음이 함께하기를.

추신 – 써놓고 보니 후반부는 사실 입자물리학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 되었다. 뭐 어쩌겠는가. 물리학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2 Comments

  1. 박재현

    2017년 8월 4일 at 12:13 오후

    대단하십니다.. 아직 글을 쓰고 계시네요 ㅎㅎ 비록 예전의 물리학자라는 꿈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항상 멋있으십니다
    응원합니다

    1. snowall

      2017년 8월 4일 at 10:12 오후

      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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