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에너지

이 책을 보는 순간 제목에서부터 뭔가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피라미드 에너지다.

이 책은 첫 문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세계에 걸쳐 수십만의 사람들이 피라미드 모형을 이용함으로써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9쪽) 전 세계에 걸쳐 수십만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왜 나는 그런 연구와 성과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일어났으나 그런것들을 일일이 따지다보면 마도서를 읽는데 방해가 될 뿐이므로 무시하였다.

저자는 알렉시스 캐럴(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이 시대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의 문장을 인용하여 “… 공인된 과학의 범주를 넘는 어떠한 가설을 우리가 제기했을 때… 과학적인 발견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 이유만으로 가설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10쪽) 라고 쓰고 있다. 이 문장은 과학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가설을 지지하고 거부할지 정하기 위하여 과학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방법이란 무엇일까? 과학이란 잘 정의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면 피라미드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과학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미 피라미드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아는 과학의 범주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옛날엔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었나보다 하면 된다……… 라고 하기엔 이 책이 1999년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스럽게 한다. 20년은 옛날인가 아닌가. 그러면서 이 책은 서두에서 우리는 그런 사기꾼들과는 다르거든! 이라고 말하며 뭔가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별로 다르지 않다.

먼저, 1장에서 면도칼이 등장한다. 이 면도칼이 피라미드 에너지 연구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는 잠시 후에 논의하도록 하고, 17쪽에 좀 이상하게 적혀 있는데. 이 부분에서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라는 ‘앙뚜안느 보비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에서 ‘보리스’가 되어서 나온다. 그리고 그가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한 것이 ‘미라’처럼 바싹 마른 동물의 사체라고 한다. 문제는 ‘미라’를 영어로 ‘mirra’라고 적었다는 점이다. 미라는 영어로 ‘mummy’라고 한다. ‘mirra’는 검색을 해보니 포르투갈 어로 미라를 뜻하는 말인 것 같다. 미국인이 영어로 쓴 책에 프랑스인 이야기를 실으면서 포르투갈 어의 단어를 사용하다니 뭔가 이상하지만 아마도 번역이 틀린 것이라고 짐작된다.

면도칼이 왜 나왔느냐면, 피라미드 에너지의 존재와 유용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에 나온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물 안에 면도칼을 넣어두면 면도칼이 녹슬지 않고 오래간다. 심지어 닳은 면도칼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이것은 앞에 나왔던 보비스가 피라미드 안에서 바싹 마른 동물의 사체를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 현상으로, 수분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물의 쌍극자 구조, 자기장이나 전기장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물리학 전공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모든 것을 전부 잘못 설명하고 있다. 잘못 이해했거나.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물이 그 내부에 어떤 공명 현상을 일으켜서 물 분자를 물질로부터 뜯어낸다는 것이다. (20-21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라미드 모양의 내부에 면도칼을 둘 때 칼날의 방향을 지구 자기장 방향에 맞게 두어야 칼날이 예리해 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장이 피라미드 구조물의 내부에 공명 현상을 일으켜서 물 분자를 밖으로 끄집어 낸다고 한다.(22쪽) 내가 물리학 전공자다보니 이 부분만 봐도 굉장히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먼저, 동물의 사체에서 물 분자가 빠져나오는 것과 녹슨 면도칼에서 수분이 빠져나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반응이다. 동물의 사체에 있는 물 분자는 분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물 분자가 동물의 사체에 있는 세포에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는 세포를 구성하는 다른 분자들과 상호작용하는 분자력, 대체로 이 경우 쌍극자 결합이나 수소 결합 등에 의한 것이다. 면도칼이 녹이 슬게 되는 것은 면도칼의 주 성분인 철 원자가 산소와 결합하는 현상이다. 면도칼의 녹이 슬은 부분은 면도칼에 물 분자가 분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달라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물 분자의 산소 원자가 철 원자와 달라붙어서 산화철이라는 다른 화합물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유결합으로, 방금 말한 쌍극자 결합이나 수소 결합과 비교하면 매우 강한 화학적 결합이다. 동물의 사체에서 물 분자를 제거하려면 물 분자를 밖으로 뜯어내면 되지만, 면도칼에서 녹슨 부분을 제거하려면 산소 원자와 철 원자의 화학적인 결합을 끊어야 하며, 이 두가지 현상은 영역이 다른 현상이다. 물론 적당한 구조와 외부에서 적절한 에너지를 공급했을 때 세포에서 물 분자를 뜯어낼 수도 있고, 녹슨 산화철을 순수한 철로 환원시킬 수도 있다. 세포에서 물 분자를 뜯어낼 때 쓰는 장치는 전자레인지라고 하고, 녹슨 산화철을 환원시킬 때 쓰는것은 레이저 녹 제거기이다. 둘 다 전자기파지만 어쨌든 피라미드 구조물 안에서 지구 자기장 방향으로 물건을 놔뒀을 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 책은 22쪽에서 굉장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피라미드 모양 내에 … 탈수는 강철로 만든 면도칼의 분자 구조에 빈자리를 만들고, 자기장 내부에 흐르던 분자들이 면도칼의 끝으로 이동하여, 칼날의 날이 다시 서게 되는 것이다.” 란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오래 써서 닳아버린 면도칼을 피라미드 구조물에 넣어두면 면도칼이 저절로 날카로워진다는 뜻이다. 심지어 내부적으로 철 원자들이 이동해서!

철 원자들이 면도칼을 구성할 때 이루고 있는 금속 결합이 얼마나 단단한지, 거기서 철 원자가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한 학기 짜리 고체물리학 강의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피라미드 구조물 안에 있는 면도칼에서 철 원자가 칼날 부분으로 몰려가서 칼날이 날카로워진다면, 반대 방향으로 칼날을 두면 칼날이 저절로 무뎌지는 걸까?

어쨌든 바로 앞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피라미드 구조물과 지구 자기장이다. 25쪽에서는 피라미드 에너지가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전기적 자극을 피해야 된다고 한다. 냉장고나 텔레비전 위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4피트 이상, 대략 1.2미터 이상 멀리 떨어트려 놔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이 주의사항은 굉장히 황당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구 자기장과 막대자석의 자기장, 냉장고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의 자기장과 모두 같은 것이다.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알 수 있는 장치인 나침반을 가만히 두면 지구 자기장과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다. 그리고 그 주변에 다른 자석을 가져오면 나침반이 그 막대자석에 끌려가서 방향이 틀어지게 된다.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이 현상을 잘못(또는 일부러 잘못) 해석하고 있는데, 이건 막대자석이 지구 자기장을 방해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나침반 주변의 자기장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즉, 지구 자기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막대자석으로도 충분히, 또는 그보다 더 강하게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26쪽에서는 근처에 있는 강한 자성물체가 피라미드 구조물의 작용을 방해한다고 적혀 있다. 이게 무슨 …

27쪽의 주석에서는 피라미드 구조물의 면 부분에 덮개를 씌운 것과, 뼈대만 있는 것 사이에 효능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피라미드 구조물에 덮개를 씌운 것과 뼈대만 있는 경우에 대해서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뇌파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애초에 피라미드 구조물이 뇌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덮개를 씌우든 말든 뇌파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리가 없다.

어… 그리고 2장에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도 이 책 자체에서 반박이 되고 있다. 35쪽에서는 피라미드 구조물 안에 있던 음식물이 상하지 않고 오래 보존되는 현상에 대해서, 피라미드 구조물의 영향에 의해 미생물이나 박테리아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한페이지 넘겨서 37쪽에서는 와인을 피라미드 안에 넣으면 더 맛있어 진다고 한다. 왜냐면, 피라미드가 발효 과정을 재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35쪽과 37쪽을 비교해서 읽으면서 나는 정말 …

42쪽에서 본인들이 수행한 실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태양과 그것이 일으키는 폭풍의 유형, 달과 달의 위상, 그리고 떨어져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태양계 내 행성들 간의 영향들 등이 지구의 자기장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장이 그렇게 중요하면 왜 막대자석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건가요. 어쨌든, 42쪽에서는 우유에서도 발효가 잘 일어나서 치즈를 쉽게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43쪽에서는 치즈에서 곰팡이의 성장을 방해하여 치즈의 맛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만든다고 한다. 우유의 발효와 치즈의 부패를 방해하는 얘기는 둘째치고, 1장에서 동물의 사체에 들어있는 수분과 면도칼의 수분을 다 끄집어내는 강력한 에너지가 우유나 치즈를 말라비틀어지게 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어째서 이 책은 내부적인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이래서는 저자들이 피라미드 에너지를 아무리 잘 설명하고 싶다고 해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하나만 하자. 하나만…

47쪽에서 피라미드 구조물 안에 둔 사과에 대해 설명하기를, “그 사과의 껍질은 비록 쪼글쪼글했지만 그것을 잘라보았을 때 대단히 상태가 양호했고 수분이 많으면서도 바삭거림을 알 수 있었다.”라고 써 있다. 이 문장이 번역의 오류가 아니라면, 수분이 많으면서도 바삭거린다는 상태를 상상해야 하는데, 이건 뭐지 싶다.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사실 저자들은 48쪽에서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피라미드에 음식을 보관할 때 커버를 씌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만 비밀을 털어놓았다. 커버의 재질은 뭘 쓰더라도 상관 없지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투명한 비닐이다. 그것은 태양을 받는데에 있어서는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라고. 태양…이 답이네. 아, 그리고 아까 말을 안 하고 넘어갔는데, “플라스틱으로 커버링을 만든 피라미드 아래에서 식물이나 꽃들이 더 잘 자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30쪽)고 써있다. 그럼 왜 세균이나 박테리아는 못 자라는 것인가…

벌레가 피라미드 주변에 접근을 못했다는 얘기는 건너 뛰고, 피라미드가 담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피라미드 안에 담배를 넣어두면 피라미드 에너지가 담배에 적당한 습도를 유지시켜서 담배의 맛과 향을 좋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아니 책 첫 페이지에서 소개한게 피라미드 안에서 미라처럼 바싹 말라비틀어진 동물 사체가 발견된 얘기였는데요…

저자들은 “온실에서 녹색빛을 사용하는 것”…의 유용성이 대표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있다고 하며 이 책의 제 3장을 시작한다. …계속 읽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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