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718230
뭐 아이디어는 창의적이네. 예전에 영재교육 업체에서 일할때 느꼈던 그 교육받은 창의력.
취업하려고 대학을 가는 시대에 취업했는데 대학을 왜 가나요…-_-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718230
뭐 아이디어는 창의적이네. 예전에 영재교육 업체에서 일할때 느꼈던 그 교육받은 창의력.
취업하려고 대학을 가는 시대에 취업했는데 대학을 왜 가나요…-_-
중국에서 달에 기지를 짓는다고 하는데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2140361
옛날의 전설에는 달 뒷면에 외계인 기지가 있다고도 했었다.
http://blog.naver.com/askzone/90008606738
잘 생각해보면 아무리 외계인이라도 지구쪽을 바라보는 달의 앞면에 기지를 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달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감속되지 않고 그대로 꽂힌다. 외계인 기지가 이 운석에 맞는다면, 어쨋든 이런저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지구인이 거기에 기지를 지어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게다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공기까지 누출될테니 피해는 더 심각할 것이다.
만약 달의 앞면의 정 가운데, 즉 옥토끼의 심장부에 기지를 짓는다면 최소한 지구쪽에서 날아오는 운석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크기는 전체 입체각에 비해서 매우 작겠지만, 그래도 달 뒷면엔 아무것도 없으니 그보다는 조금 더 낫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구멍을 파고 들어가는데, 이 때 구멍의 깊이가, 구멍 바닥에서 봤을 때 구멍 입구가 지구보다 더 작아질 정도로 깊게 파들어가는 것이다.(즉, 지구만 보이도록.)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 안된다고 비판받는 것이 가장 억울하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5&aid=0000610424
하나씩 짚어보자.
1.
암초가 있다고 해서 물건을 실은 배가 목표지점을 두고 항해를 하지 말아야 하느냐? 라고 반문하는데, 그럼 암초가 있는걸 뻔히 알면서 가겠다는 건가?
암초가 있는걸 알면 돌아서 가든가, 가지 말든가. 지금 하는 말은 결국 암초가 있지만 가야 하니까 가자는 건데, 침몰하면 어차피 못간다.
2.
누군가 불편을 느낀다고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런 욕은 들어도 된다고?
계속 욕할테니 그럼 계속 듣고 있든가.
3.
사과하라, 하야하라, 누굴 경질해라, 이러는데 하야하지 않아서 불통이냐고?
사과하지 않아서 불통이다.
4.
공약 이행에 대해서 섣불리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중에 성과가 나오면 어쩔거냐고 하는데
정치인이 당연히 해야 하는걸 큰 선심쓰듯이 말하지 마라. 대통령이야말로 나중에 성과 안나오면 어쩔건가?
5.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 안보를 가장 잘했다니…
이건 도저히 뭐라 할말이 없다.
북한이랑 대화 시도를 하니까 소통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소통이 아니다. 북한을 꼬셔내든지 협박하든지 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혀놓고 얘기를 해야 소통이지.
—
‘소통’이란 자기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해서 서로 뜻이 통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번에 이명박도 그랬는데, 자기 할말만 하고 국민 얘기는 듣지 않는것은 소통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의 얘기를 듣기만 하고 자기 생각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것도 소통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자기 얘기를 열심히 하고, 남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시켜서 말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가 고집피우고 있으니까 난 잘못 없다고 우기는 것도 소통하는 자세가 아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자신에게 박수치는 지지자들만을 위해서 정책을 펼치겠다면 그것은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기려고 대통령을 뽑았다. 그 불가능한 임무를 못하겠다면, 능력이 없다면 려 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과연 일부의 선동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일까?
기독교인들 중 개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 만큼이나 일부의 극렬한 반응일 것 같다.
사쿠라이 양자책 읽다가 재미난 주석을 발견했다.
이제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 J. J. Sakurai의 Modern quantum mechanics revised edition의 390쪽 하단에 있는 주석을 보면 흥미로운 말이 적혀있다. 읽다보니 흥미로워서 진짜로 찾아봤더니.
http://prola.aps.org/abstract/PR/v40/i1/p40_1
진짜 그렇다.
유진 훼엔베르크 선생은 논문을 과거에 출판되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듯?
참고로, 위의 Sakurai 양자역학 책의 주석은 2판에서는 사라졌고, 더이상 볼 수 없다.
위의 주석에 적혀 있듯, 이 사실은 R. G. Newton이 지적했었다.
다음 논문이다.
http://scitation.aip.org/content/aapt/journal/ajp/44/7/10.1119/1.10324
“이 논문은 투고된 날짜보다 5개월 전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또한 주목할만하다”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정말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구나.
TV수신료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나 태블릿과 같이 TV영상을 시청 가능한 모든 기기에 물리자는 제안을 냈다. KBS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8&aid=0003171005
그게 수신료냐? 보유세지…
snowall 님 답지 않게 긴 글을 쓰셨네요. ^^
잘 읽고 갑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익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 이익은 돈이나 재산과 같이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나 즐거움과 같이 정신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다시 얘기하면, 사람의 이익이란 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모든 것들을 부른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주장하듯 우리나라의 분열을 선동하는 자들이 있는 듯 싶다. 종북 좌빨들인지, 수구 꼴통들인지, 친일파인지, 친미파인지, 하나의 조직인지 여럿의 조직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게 있다.
무언가의 민영화를 부르짖는 사람도,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사람도, 다들 자신의 행복과 국가의 이익, 발전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논리를 갖고, 자신의 생각을 굽힐 생각이 없이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의견이 갈리고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도중에 다툼은 항상 있는 일이다. 그리고 놓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소소해 보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안좋은 부분들을 다듬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처리해 나가기 위해서 의견의 대립과 서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우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넘어가야 할 과정이다.
지금 들려오는 여러 소식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런 다툼을 토론과 합의와 타협을 통해서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미치겠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철도 민영화 문제도, 의료 민영화 문제도, 예전에 한참 싸웠던 한-미 FTA 문제도, 광우병 소고기 문제도, 그리고 밀양 송전탑 문제와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라며 싸그리 무시하고, 지금부터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종북 좌빨들이거나 불법 폭력 시위를 선동하는 사람들에게 선동당한 불쌍한 바보들이라고 간주하며, 윗분들의 뜻대로 이루어져갔고, 그렇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시위하러 나오는 수천명 수만명의 사람들이 다 바보일리가 없고, 다 그렇게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이름을 걸고 반대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들이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고, 정말 잘 몰라서 그러는 사람들이라면 정성을 다해서 가르쳐야 할 것이고, 국가의 정책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라면 손해가 생기지 않도록 충분히 보상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안된다면 될 때 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추진해야 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니,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믿어줘야 한다고?
민주주의는 기계적으로 절차적으로 투표하는 것으로 달성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반대파에 대한 끊임없는 설득과 타협을 이끌어 내며,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뜻을 굽히고 늦출 수도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걸 시도하다가 결국은 망했지만…
51%의 득표율로 ‘과반’이 지지했다는 이유로 100% 믿어줄 수 없다. 그렇게 당선된 사람은 49%의 반대파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그들을 어떻게 해서 지지파로 만들까 고민해야 한다. 반대파를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을 민주주의라 하고, 반대파를 없애서 자신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을 독재라 한다.
밀양에서도 철도에서도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사람이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할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왜 생각하지 않을까? 까놓고 말해서, 철도 민영화를 찬성하는 사람중에, 민영화가 안되면 어딘가에서 뛰어내려서 목숨을 버릴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의 자식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10년전 사람이 죽은지 몇년이 지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벌써 40년전 사람과 사건이 아직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희한안 일이다.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 대통합을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가느냐이다.
누군가의 주장대로 우매한 민중들이 일부의 선동에 의해 들고일어났다면, 그 우매한 민중들에게 맞는 눈높이로 다가가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왜 선동되었는지 이해할 생각을 왜 안하는가? 못했다면 병신이고 안했다면 또라이다.
모든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모든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럼 도대체 집회 결사의 자유는 언제 어떻게 챙겨먹어야 하는 건데?
내가 지금 이렇게 대놓고 누구 욕하면서 멀쩡히 지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부에서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며 헌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지킬거면 헌법 1조도 좀 지키자.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잖냐.
요새는 대학에서 논리학을 잘 안배우나보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846230&cp=nv
자동차 연비를 과장해서 표시한 일에 대해 자동차 회사의 과실이 없다고 판결이 나왔는데, 너무 현실적인 판결이라 참 우습다.
판사의 주장은 실제 연비가 표시 연비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렸고, 다른 자동차 회사도 다 같은 기준으로 과장했으므로,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 (주장이라기보다는 판단이지만.)
예를 들어 자동차 제작사들이 진짜 연비를 20%씩 과장했다고 하면, 리터당 10킬로미터와 리터당 12킬로미터의 차이가 생긴다. 이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리터당 20킬로미터에서 보면 리터당 24킬로미터가 되므로 리터당 갈 수 있는 거리가 4킬로미터 차이가 난다. 리터당 2킬로미터 차이와 리터당 4킬로미터차이는 같은 기준으로 과장했어도 실제 기름값의 차이에서는 꽤 큰 차이가 생긴다. 그리고 이걸 기준으로 차값과 비교하여 선택을 하였다면, 과장하지 않았을 때와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판사의 판단이 그러하니,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수도 있겠다. 그런다고 해서 국민의 손해를 국회의원들이 책임질리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