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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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스테파니 케이브”라는 의사가 쓴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라는 책이다. 예방접종을 절대로 맞으면 안된다고 하는 다른 어떤 책에 비해서는, 웬만하면 맞지 말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주의해서 맞으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약간은 온건한 책이라고 할만하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비평할만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을 경우 백신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될 것이므로 주변에 이 책을 널리 추천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얻어갈만한 핵심 메시지는 “백신 접종 전 주의사항을 꼼꼼히 확인하시오”이다. 이건 무슨 약을 먹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튼 주의사항을 잘 확인한 후 백신 접종에 어떤 효과와 위험이 있는지 이해한 후에 접종하는게 좋다.

이 책의 문제점은 백신 접종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백신 접종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질만한 주장과 사례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충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백신 뿐만 아니라, 현대 의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든 약품, 수술, 시술 등은 부작용이 있다. 여기서 부작용이란 원하는 작용 뿐만 아니라 그에 뒤따르는 부가적인 작용이라는 뜻이다. 그 부가적인 작용 중에는 그 처치를 받은 개인에게 긍정적인 작용도 있고 부정적인 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그럼, 그중에 부정적인 부작용이 걱정되어서 처치를 포기해야 할까? 가령, 어떤 약을 먹으면 독감이 낫게 되지만, 드물게 정신착란이 일어나서 자해나 자살을 할 수 있다는게 알려져 있다고 하자. 그럼 그 약을 먹으면 안될까? 글쎄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 임상실험을 통해서 어느정도 알게 되었으면,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전염성 질병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서 가장 크게 의심하고 있는 부분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홍역 백신을 접종 했어도 홍역에 걸릴 수 있는데 어째서 효과가 있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럼, 의학은 과학적일 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의미에서의 “과학적”인 의학은 불가능하다. 의학, 의술은 근본적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특히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의 모음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아무 짓이나 하면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의사들은 아무도 살릴 수 없다. 백신의 효능도 마찬가지로, 엄밀하게 과학적인 실험을 하자면 임의로 10만명을 골라서 5만명에게는 진짜 백신을 주사하고, 나머지에게는 백신 성분이 없는 가짜 백신을 주사한 후, 2주쯤 후에 실제 바이러스를 주사해서 얼마나 감염되는지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을 여러번 반복해서 재현성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히 인권침해이며, 현재 시행하는 임상실험 방법이 아니다. 백신 허가에 있어서 임상실험의 설계가 잘못되었다거나, 실험 결과의 해석이 틀렸다거나 하는 부분을 지적하는건 좋은데,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을 넘어서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부분까지 증거를 제시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부족하므로 백신을 믿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엔, 이 책에서 백신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등한 정도로, 또는 그보다 더 심각한 정도로, 이 책 역시 과학적이지 않다.

이 책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백신의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백신 접종자수, 해당 백신에서 나타난 부작용 수, 질병의 발벙률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여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믿을만한지를 설명했었어야 한다.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단지 백신 접종 후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는지, 백신 접종 후 나타난 이상 반응이 백신 부작용이 아니라는 건 근거가 없다는 주장만이 실려있을 뿐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시간들여서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이걸 쓴 사람이 의사이고 의학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 간호학 박사를 받았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참 비과학적인 책이다. 물론 박사가 쓴 모든 책이 과학적이어야 하는건 아니겠지만 이 책의 저술 의도를 생각해보면 저자가 자신의 주장만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견해를 함께 제시하고, 그에 대한 반대 증거도 제시하면서 독자가 비교할 수 있도록 했었어야 한다.

물론 백신을 맞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접종에 반대되는 견해에 관한 책만 읽고 판단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난 지금까지 이 책에서 이야기한 백신 중 상당수를 접종했고, 어쨌든 부작용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의 “아무 일 없었다”는 사례는 이 책에서 “부작용을 겪었다”는 사례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 왜 부작용이 없었다는 사례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가?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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