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이동권보장 시위에 대한 짧은 생각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3&sid2=240&oid=421&aid=0005989278

장애인들의 이동권보장 시위에 대해서, 시민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시위를 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있는 것 같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84363?ntype=RANKING

사람의 이동권이란 여기서 저기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권리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이동권이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오죽하면 범죄에 대한 처벌로 감옥에 가둬서 이동권을 제한하는 것을 사용하고 있겠는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말은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함부로 제한될 수 없는 권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범죄자에게는 법적 절차를 거쳐서 제한하는 것이다.

이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보장시위는 바로 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하철의 운행을 방해해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이동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꼭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라도 그걸 알려야 하는가? 바로 이 부분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공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운행을 방해해서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도록 만든 것 자체는 타인에 대한 권리침해다. 하지만, 여기서 그 의도를 살펴본다면, 장애인들은 그런 권리를 누리기가 어렵다. 권리를 누린다기보다, 행사하기가 어렵다. 즉, 매일같이 숨쉬듯이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과 숨을 참는듯한 느낌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커다란 경험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말고 자신의 뜻을 알리라는 말이 정당화 되려면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충분히 많은 방법이 있어서 매우 일시적으로 제한된 이동권조차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그런 경우에나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이동권이 제한된 부분을 생각하면, 반대로 그런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매일 불편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99%정도의 사람들이 모두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자. 지하철이든 버스든 모두 휠체어 사용에 적합하게 개발되고 운용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왜 모두가 낸 세금을 소수자인 장애인들에게 사용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더 많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어찌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도 이상한 말이다. 세금은 바로 그런 곳에 쓰라고 걷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기업이라면 장애인들을 애초에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다. 장애인들도 국가의 시민이며,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빠짐없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장애인들은 국가의 시민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말이다.

시위를 하는건 좋은데, 왜 하필 사람들이 가장 바쁜 출퇴근 시간에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항의도 있을 수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숨쉬듯이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숨을 참듯이 이동해야 하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의 간극이 있다. 이건 마치 호흡기 전염병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에게, 바이러스 배출하지 않도록 숨을 쉬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만큼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는 뜻이다.

어딘가의 당대표는 장애인들이 자신을 선의로 포장하며, 남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앞에서 내가 이동권이라는 기본권은 숨쉬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을텐데, 그렇다. 장애인들은 지금 마치 “나도 숨을 쉰다”는 주장을 하는 중이다. 편하게 숨쉬고 싶다는 걸 배려에 대한 강요로 해석한다면, 어떤 사람들이 불편하게 숨을 쉬어야만 하는 기준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이 불편하게 이동해야만 하는 기준이 있을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는 그런 기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려면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닌 경우하고 범죄자에게 법적 절차를 통해 제한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동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주장은 따라서 타당하다.

한편, 일반 시민에게 장애인들이 배려를 강요한다며 이동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하는 주장도 굉장히 불평등한 주장이다.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장애인들의 이동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으며, 장애인들에게 배려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배려를 강요하고 있는데, 한 편의 강요는 정당하고, 다른 편의 강요는 부당하다는 주장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만약 99%의 인구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면, 이동권 보장을 주장해야 하는 쪽은 휠체어를 타지 않는 쪽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인구의 99%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상황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배려를 바라지도 않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해 보자. 그럼 모든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이동하는 바람직한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인구의 99%가 휠체어를 탄다는 그 사실이 중요할까? 이 때 중요한 부분은 휠체어를 타고 있든 아니든 모두가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누구도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고,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다른 불편함이나 다른 차별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으니, 다른 부분을 먼저 해결하고나서 여기에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사안의 우선순위에 대해 누구라도 그런 의견을 말할 수는 있으나, 장애인들에게 그런 의견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 자신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안 그런가?

나는 다른 의견 중에서, 모 버스회사에서 불편하게 만든 것을 왜 지하철에 가서 시위를 벌이며 엉뚱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느냐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이동권 보장시위다. 장애인들이 문제가 된 그 버스회사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었으면 애초에 이런 시위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장애인들이 이와 같은 시위를 하는 구간을 지나갈 때는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바쁘고 급한데 그렇게 길이 막히고 이동이 막히면 불편하다. 하지만 도로위의 교통체증으로 늦어지거나 지하철 기계장치의 고장으로 늦어지는건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누굴 탓하지 않으면서, 장애인들의 시위에만 그렇게 투덜대는 것은 이기적인 태도 아닐까? 좋다. 그렇다면 적어도 하나만큼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고 있는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그걸 알고도 계속 주장하는 사람은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장애인들의 시위를 돕지는 못해도, 적어도 비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이기적인 사람인데 장애인들이 이기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게시됨

카테고리

작성자

태그:

댓글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