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중의 하나는 동성애 관련 조항이다. 위의 기사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곽노현씨! 어여쁜 우리 십대 아이들을 상스럽게 타락한 ‘동성애 숭배자’로 만드지 말라. 동성애에 관한 도덕적 실험을 그토록 하시고 싶으시면 본인, 본인의 부인, 본인의 자제부터 실험하라. 그게 ‘교육감’으로서의 도리다.
박성현씨는 “사랑”이 “실험”으로 되는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박성현씨는 이성애를 “숭배”하는 사람인가? 이성애가 무슨 종교인가? 신적 대상인가?
혹시 몰라서,
난 뼛속깊이 이성애자임을 이자리에서 커밍아웃해 둔다
.(고민 많이해봤다.) 난 남자를 싫어하고 여자를 좋아한다.
동성애 관련된 인권 조항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 십대 아이들”이 “동성애 숭배자”가 된다는 근거는 없다. 더군다나, 인권조례에 동성애 관련 조항이 존재한다고 하여 모든 동성애자들이 일제히 동성간 관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사상을 가족 있다. 그럴리가 없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이성애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모든 이성애자들에게 모든 종류의 이성간 관계가 허용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성애자들이 아무데서나 아무하고나 관계를 갖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본인에게 실험해 볼 수 있다. 그 본인이 동성애자라면. 부인에게도 해볼 수 있다. 그 부인이 동성애자라면. 그 자제 역시 같은 얘기가 적용된다. 그런데 동성애자인가 아닌가는 본인의 성향이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누구를 사랑하느냐의 문제일 뿐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동성애 차별 금지의 본질은 “내가 누굴 좋아하든, 그게 동성이든 이성이든 신경쓰지 마라”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에서 동성애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동성애를 찬양할 것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망상이다. 그렇게 동성애자 비율이 많았으면 인권조례 얘기가 나오기 전에, 소돔과 고모라가 될 것이라고 겁먹기 전에, “이미” 보편화된 사회 현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을 일이다.
TV에서 로또복권 추첨하는거 보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첨금은 어디서 나온 돈일까. 로또는 과연 부의 재분배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부의 재분배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부자로부터 빈자에게로 돈이 흘러가야 한다. 그러나 로또는 부자로부터 빈자에게로 흘러가는 방향성을 줄 수 없고, 부자들은 굳이 로또를 살 필요가 없다. 로또는 결국 빈자들끼리 돈을 모아서 몰아주는, 일종의 친목계가 된다. 모든사람이 무한히 참가한다면 누구나 한번씩은 타게되는 바로 그 계. 물론 중간에 로또 사업자가 수익금을 떼어가고 국가에서 떼어가고 남은돈을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은 반드시 손해를 본다.
그래서 로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 수도 있는 아주 괜찮은 사업이다. 부자들의 저항을 뚫고 돈을 뜯어낼 필요도 없고, 빈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도 없다. 차라리 경마나 경륜같은 도박은 대놓고 도박이라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로또는 도박이 아닌 것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도박이다. 차라리 같은 도박이라도 주식이 더 유익한데, 주식은 최소한 “공부”라는 것을 해야 한다.
로또를 하느니 그돈으로 맛있는걸 사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더 낫다. 돈을 벌고 싶다면, 그 돈으로 일터에 나갈 차비를 대는 것이 낫다. 아니면 그냥 통장에 넣어놓고 모으는 것이 더 낫다. 최소한 수수료는 떼이지 않는다.
욕망에 관한 불교적 담론에서 시작하여 욕망에 대한 여러 관점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책이다.
“일상의 삶을 누리기 위한 하찮은 행위도 해탈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본다면, 그 행위는 곧 해탈의 즐거움을 아기자기하게 누리는 유희적 행위로 보일 것이다. 심지어 고통까지도 포함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들의 화합이 벌이는 삶은 우주적 시공간에서 볼 때 너무나 아름다운 한 편의 우주적 드라마가 되며, 그가 두번 다시 공연되지 않는 이 생생한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주인공이 되어 매순간마다 후회하지 않을 최선의 연기로 자기의 삶을 엮어가겠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엄 보살도의 실천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본문 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