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인간의 가능성

    인간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만을 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시도할 수 없다. 꼭 그만큼까지가 자신의 한계이다.

    과학은 자연이 무엇을 금지하는지 밝혀내고, 공학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낸다.

    공학은 과학에 의해서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공학이든 과학이든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상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해낼 수 없다. 도전할 수도 없고 금지할 수도 없다.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것을 시도할 수는 없다.

    단 한명이라도 어떤 것에 대해 상상해야만 그것은 이루어지거나 불가능해진다.

    불가능?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불가능하다는 그것을 상상이나 해보고 얘기하자.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면, 꼭 그만큼까지가 자신의 능력이 된다. 더이상 자신의 능력이 발전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 이상의 한계를 상상하라.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다면, 아직 당신은 당신이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한 것이 아니다. 도저이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하겠다면, 당신은 거기까지가 한계인 것이 맞다.

  • 소아암환자들을 위한 DONAS 프로젝트

    급해 보여서 일단 퍼왔음. 원래의 글 주소는

    http://newkoman.mireene.com/tt/1432

    이다. 리라쨩님께서 무단 퍼옴을 좀 봐주시기를…:)

    ‘구름’ 이라고 암환자를 위한 문화컨텐츠 사업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

    http://www.9room.co.kr

    )

    그리고 그 안에 몇몇 기획 중에서 DONAS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는데, ‘사진’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는

    모양입니다.

    일단 그 첫번째 걸음을 떼는 것이, 크리스마스 이브 때 약 다섯군데의 소아암병동을 순회하며, 그림자 인형극

    (밤고양이 극단에서 하는거에요, 이건)을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녹여줄 예쁜 사진을 기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약 2~30장의 사진을 기증할 생각입니다. 일단 사진의 주제는 ‘사랑’으로 통일합니다.

    꼭 잘 찍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예술 작품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암으로 심신에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이 방긋 웃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겁니다.

    기증을 원하시는 분은 (한 분당 우선 세장의 사진을 받기로 했습니다. 물론 한장만 주고 싶다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사진의 원본을 (최대한 큰 사진으로. 인화해서 액자에 걸어놓을거니까요~)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메일 주소는

    eveningcloud@nate.com

    입니다.

    기간은 12월 15일까지입니다.

    꼭 본인이 아니더라도, 이 뜻을 전해서, 다른 분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사진 한장으로 따듯함을 전하실 수 있을겁니다~

  • 해피 해킹 키보드 프로페셔널 2 사용기

    해피 해킹 키보드 프로페셔녈 2 – 통칭 HHKP2

    가격, 사진, 제원 등등은

    키보드 매니아

    를 참고.

    구입은 대략 8월 첫주에 했으니, 이제 4개월정도 사용한 셈이다. 그동안 이녀석은 나에게 20만 4500원이라는 아주아주 부담스러운 가격에 걸맞는 만족감을 선사하였다. 게임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언제나 최고의 키감을 보여준다. 사실 처음 두들길 때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그냥 가볍다는 느낌 외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단히 가벼운 키감을 보여주는 키보드다. 하지만 이 키보드를 사용하다가 다른 키보드를 10분정도 두들겨 봤더니 더이상 그 키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HHKP가 아닌 키보드를 손가락이 거부하는 것이었다. 다른 키보드를 한참 두들기다 보면 HHK를 쓸 때보다 빨리 피곤해 진다. 그나마 HHK는 장시간 두들기더라도 많이 피곤해 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타속이 50% 향상되었다. 대략 한글 기준으로 분당 500타정도 나오는 타수가 HHK를 사용하면 700~800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글을 실시간으로 옮겨 적을 수 있다는 것은 나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새끼 손가락으로 키를 누르더라도 부담 없이 키를 누를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새끼 손가락이 편하다. 타자 연습 프로그램에서는 Q, A, Z와 Tab, CpasLock, Shift를 새끼 손가락으로 치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 키를 누르는데 힘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실질적으로 새끼가 아니라 넷째 손가락을 이용해서 누르게 된다. 새끼 손가락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타속이 늘어난 것 같다. 물론 습관적으로 넷째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새끼 손가락을 이용하여 키를 누르는 것을 연습하는 중이긴 하다. 아무튼, 해피해킹을 사용하고 있다 보면 키보드 두들기는 것이 즐거워 진다. 문서 만들기나 코딩같은 것은 하다보면 짜증날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 자체만큼은 즐거운 작업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해피해킹을 이용하는 중인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이 키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낮은 키압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의 장점은 작은 사이즈와 숫자키와 일체된 펑션키, 그리고 컨트롤 키의 위치이다. 컨트롤 키를 새끼 손가락으로 누르기 위해서는 손목을 아주 많이 꺾어야 한다. 단축키를 사용할 때 손을 통째로 아래로 내리거나 양손을 이용해서 누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움직이는 것 자체를 귀찮아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리고 타자 칠 때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다면 아주 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컨트롤키가 일반 키보드의 CapsLock 자리에 있는 것은 아주 타당한 선택이라고 본다. 실제로 CapsLock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있을까? 난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키보드에 있는 100여개의 키 중에 가장 활용도가 떨어지는 키를 꼽으라면 CapsLock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필요성이야 있다고 하더라도, 잘 누르지도 않는 키를 손가락이 가장 잘 닿는 곳에 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펑션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손을 들어서 위로 옮기지 않으면 일반 키보드에서는 펑션키를 누르기가 힘들다. 물론 이것도 내 경우에만 귀찮다고 느끼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피해킹을 이용하면 Fn키와 숫자키의 조합으로 누를 수 있는데, 펑션키와 숫자키를 동시에 누를 일이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발전이다.

    편집키의 위치도 ㅑㅐㅔㅏㅣ;,./키들이 있는 위치로 옮겨져서 펑션키와 같이 누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편리하다. 일반적인 103키 키보드에서는 문서의 위치를 옮겨다닐 때 편집키를 이용하려면 손을 통째로 옮겨야 한다. vi에서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esc모드를 만들어서 사용하지만, HHKP는 그것을 펑션키를 통해서 해결해 버렸다. 그 결과 HHK는 일반 워드프로세서에서도 더 편리한 키보드가 되었다.

    잘 생각해 보면,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문서 작업을 할 때 편집키를 쓰기 위해서 손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편집키를 사용하여 커서를 움직인 후 다시 손을 글자키 위로 옮겨와야 하는데, 이것은 시간 낭비이다. 그것도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 해당한다. 이 짧은 순간이라도 절약할 수 있다면, 그 짧은 시간을 모아서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마우스를 이용하러 손이 움직이는 거리가 짧아진다. 이것도 마음에 드는 점이다.

    해피해킹은 더이상 다른 키보드를 사용하기 곤란해지는 키보드이다. 만약 이것을 구입하고 싶다면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키보드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 잠자는 한블련

    요새 한국 블로거 연합이 잠잠하다. 자나?

    시대적 위기감을 느끼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블로거들의 집중 공격받더니 바로 잠수?

    무슨 협회가 이래…-_-;;;;

    시작부터 막장…

    시작하기 전부터 임기말인 모 대통령 후보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뭐, 한블련이 그 후보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 전략적으로 신뢰하기

    요즘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건가.


    친구도 애인도 no! ‘나는 나만 믿는다’

    위의 기사를 읽고나니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 중에서 trustworthyness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trusworthyness는 “믿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뜻한다. trust는 “믿음”인데, trustworthyness가 더 중요한 개념이다.

    아무튼.

    게임 이론에서 말하기를, 협력-배신의 딜레마인 경우 가장 성공적인 전략은 “처음에 협력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대로 따라하기”라고 했다.



    [각주:

    1

    ]



    사실 누구나 알다시피 서로 협력하면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남들이 모두 착하게 살 때 나 혼자 약삭빠르게 살면 나는 더욱 성공할 수 있다. 물론 누군가 다른 한명이 손해를 보겠지만. 따라서 이 경우 모두가 배신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 버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지금, 현대에 살아남은 유전자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들이다. 서로 협력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또는 그렇게 하지 않은 유전자들은 이미 수억년 전에 사라진 상태다. 위의 기사를 읽어보면 배신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배신하고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만약 그런 전략을 모든 사람이 선택한다면 모두가 같이 멸망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만 살아남은 사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유전자 단계에서나 종 단위에서는 그런 것들만 살아남아 왔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서로가 이득을 보는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면 결국 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우선 협력하고 그 다음에 상대방의 전략을 따라하는 작전을 선택한다. 그 실천으로, 상대방의 말을 일단 믿는다. (웬만하면 -_-;)

    거짓말에 속는 것은 내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거짓말을 한 쪽이 나쁜놈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속지는 않는다. 믿는건 믿는거고 정보는 정보다. 앞서, 이재율씨와의 이메일에서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논문 심사의 과정은 신뢰성이 대략 보장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믿어도 좋다.

    사람들은 이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믿음을 가질 수는 있는데, 바로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대방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미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전혀 모르겠다면 나는 어떠한 전략도 수립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는 그에 따른 적절한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기사에 언급된 이야기는 오히려 “믿어도 좋음”에 가깝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내 얘기는 모순된 말처럼 들릴 것이다.

    상대방이 일관되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오히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진실이다. 커다란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얘기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수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시작과 끝이 다른 방향이 되었다. -_-;

    1. 죄수의 딜레마 (윌리엄 파운드스톤) 참고

      [본문으로]

  • 일단 맞고 보자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참 좋다.

    뭐가 좋냐하면, 일단 때리고 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경찰 수사를 하는데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A라는 사람이 용의자라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그 사람을 조사하여 처벌하게 된다. 근데 A가 용의자이긴 했으나 조사 결과 무죄인 것이 판명되었다면, 그동안 A가 받은 여러가지 피해는 어디서 구제받아야 하는 것일까? 단, 이 경우 절차상 모든 조사는 적법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오해받을만한 짓을 한 A가 오해받을만한 짓을 했으니까 참고 감수하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령 얼굴이 험악하게 생겼다고 오해받은 거라면 얼굴 뜯어고칠 돈은 한푼도 안주면서 남의 얼굴보고 뭐라고 하는 것 같으니 그것도 공평하지는 않다.

    A가 죄가 있는 경우와 죄가 없는 경우, 경찰이 A를 조사하는 경우와 조사하지 않는경우를 따져보면 4가지 경우로 나눠진다.

    1. A가 죄가 있고 경찰이 A를 조사한다.
    2. A가 죄가 없고 경찰이 A를 조사한다.
    3. A가 죄가 있고 경찰이 A를 조사하지 않는다.
    4. A가 죄가 없고 경찰이 A를 조사하지 않는다.

    위의 네가지 경우 중에서, 1번과 4번은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2번과 3번인데, 2번과 3번 중에서 어느쪽이 더 나쁜 경우일까? 말할것도 없이 3번이 더 나쁜 경우다. 단, 이 주장이 2번이 나쁘지 않다는 주장은 아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2번보다 3번이 더 나쁜 경우에 해당되므로 일단 최악에 해당하는 3번을 막기 위해서 A를 조사해야만 한다. 여기까지는 판단에 별다른 하자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2번의 경우에 A가 얻게 되는 실제적인 피해는 보상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론, 아주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죄가 없는 사람이 오해를 받을 필요도 없고, 오해를 받았다고 해서 죄가 없는데 처벌 받을 일도 없으며, 경찰서에 잡혀가서 몇가지 조사를 받고 무죄로 판명받아 풀려났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 오면 죄가 있건 없건 무조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안좋아진다. 경찰 역시 아무런 근거 없이 사람을 잡아다가 조사하지는 않겠지만, 조사를 받고 온 사람이 유형, 무형의 손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사건 자체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조사를 받는다면 정말 억울할 것이다.

    대책은 아직 모르겠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서, 경찰에서 무죄로 판단했다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 많아져야겠지만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를 별로 믿지 않는 사람들인지라 그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경찰서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 근거도 없다. 참 어려운 문제다.

    이 글의 아이디어는



    오늘은 네이버에서 전화오네요…


    를 읽고서 떠올랐다. 네이버를 경찰로 놓고, 위 글의 주인공을 용의자 A로 두면 내가 글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한 경우가 된다.

    이런 문제에 관하여, 과연

    대책

    은 존재할 수 있을까? 즉, 위의 4가지 경우에서 3번을 막기 위해 2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2번에서 발생하는 문제 조차도 피해갈 수 있는 대책은 존재하는가?

    일단, 나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 그는 누구를 이겼는가?

    아래는 승리를 나타내는 표식이다. 이 손의 주인공은 누구를 이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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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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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

    인터넷 여기저기에 돌아다니길래 퍼와봤다.

  • 인생은 소설인가

    자기가 했던 사랑 얘기를 쓰면 소설 하나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에 관한 소설은 인생을 실제로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 인생이 소설의 한 장면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산다.

    앞서 얘기했던 인생 대역전은 또한번의 반전이 있다. 또한번의 반전 얘기는 상황이 정리되면 올려보련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지만, 새옹의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말이 도망가서 그냥 도망가고, 아들 다리 부러진건 그냥 부러진 거고, 내 인생이 대충 이런식이다.

    비관?


    ㅋㅋㅋㅋ

    인생 공략집이 있어서 스킬트리 어떻게 찍고 렙업 어떻게 하고 아이템이랑 장비는 어떻게 구하면 되는지 쫙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게 사람마다 다 다른걸. 그나마도 요새는 정형화된 규칙이 생겨서 의대나 법대나 공무원이 되면 대략 성공적으로 사는 거라고 보는 것 같다.

    근데, 예전에 디아블로2를 할때도 느낀 거지만 난 공략집대로 노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략집은 그 자체로 무슨 하나의 소설처럼 읽었었다. 디아블로2의 세계에서 난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돌아다니는걸 좋아했다. 당연히 레벨은 오르지 않고 아이템도 좋은게 안 생겼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 그냥 재미있게 즐기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인생이 되니, 이건 인생은 인생일 뿐 그냥 재미있게 즐기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가 참 힘들어진다. 남의 것도 아닌 내껀데…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머리털 다 쥐어뜯는 고민을 매일매일 하루종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수없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내가 나의 고민을 생각하듯이 그 사람들의 고민을 하기는 힘든 일이고 그 사람들에게 내 고민과 고통을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많다. 근데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이상한 자격지심일수도 있지만. 아직은 혼자서 할만하다. 마치 필살기처럼, 누군가의 도움은 정말 꼭 필요할 때 크게 한방 써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설정한 장래희망이 원래 이루기 힘든 것일까, 내가 힘들게 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 더이상 쉽게쉽게 가는건 불가능해졌고, 한고비 한고비가 모두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그 순간들 중에 하나라도 포기하게 되면 나의 꿈은 접혀진다. 곱게 접히는 것도 아니라, 구겨져서 마음속 한켠에 버려둬야 할 수도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하는건, 앞으로 있을 5년동안 일어날 일을 변수를 바꿔가면서 시뮬레이션해서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값을 알아내는 것이다. 근데 결국 그게 소설가가 하는 일이지 뭐야. 근데 졸업논문도 힘든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창작의 고통은 변비를 밀어내는 것만큼 힘겨운 일이다.

    그래, 알았어.

    천재가 되어주마. ㅋㅋㅋ

    날로먹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누군가 도와주면 좋긴 하지만,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주저앉을 수는 없는 거고. 아직은 힘들어서 주저앉고 있지만 아주 많이 연습하다보면 스스로의 힘으로도 설 수 있겠지. 하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야겠지.

  • 초 긍정적

    교수님이랑 내 졸업논문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나왔다.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거지만, 교수님이랑 토론을 하고 있다보면 연구 의욕이 절반씩 깎여나간다. 다행인 것은 지수함수적인 감소라서 0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 내 졸업논문은 영어로 되어 있어서 아주 졸작이다.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졸작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졸작은 졸업작품의 줄인말이 아니다. 오늘 토론하는데 교수님이 “넌 왜 영어로 써서 너 스스로도 논리 흐름을 놓치냐”라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다. 백만번 되새겨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난 영어를 못한다. 근데 저 말을 들을 때의 내 감정은 상당히 속이 쓰린 상태였다. 왜냐하면 저런 말을 한두번 듣는게 아니라 석사 2학기부터 1년 반째 듣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 나에 대해 생각해 주시는 것과 뛰어난 과학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건 지난 2년간 석사 생활하면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교수님이랑 토론을 하다보면 연구 의욕이 반토막 나는건 내 감정 상태일 뿐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서 느낀 건데, 이 원인은 분명 연구 과정에서 그냥 건너뛰어버린 논문의 논리적 결함 때문이다. 그건 내가 직접 계산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이 얘기를 교수님께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결국 그 결함이 문제가 없다는 교수님의 생각을 고칠 수 없었다. 거기서 시작된 내 양심의 가책이랄까, 그런 것이 점점 증폭되어 생각을 정지시켜 버린 것 같다. 정확히는, 그 순간 “이건 과학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부터 흥미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한 책임을 내 감정적으로는 교수님께 떠넘기고 난 그냥 교수님이 시키는대로 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이미 이 연구가 나의 과제라는 책임감이 생긴 마당에 그냥 넘어가는건 그다지 옳다는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사실 지금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하자면, 졸업 논문 끝나고 나면 이 주제에 대해서는 평생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다. 입자물리학 말고 고체물리나 플라즈마같은 다른 주제를 하고 싶어지고, 입자물리를 하더라도 중성미자 물리학에 손을 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빨리 다른걸 하고 싶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교수님이 나한테 칭찬 한마디만 해 주셨으면 내 대학원 생활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섣부른 칭찬은 독이고 빗나간 자만심은 자살행위다. 내가 칭찬받을만큼 잘한 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대충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바랬었던 것이 단 한마디의 칭찬이었다고 본다. 물론 이 얘기를 교수님께 직접 할 수는 없었는데, 그건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결국 교수님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지 못했고, 그 관점에 따라 나는 별로인 학생이 되었고, 그에 따라 별로인 학생에게 칭찬이 오지 않는지라 나는 더욱 별볼일 없는 학생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교수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내 앞에서 대놓고 내 욕을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의 평가가 대부분 일치하는 것을 보면 나는 분명 꽤 괜찮은 인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교수님의 평가가 진짜이고 나는 그저 내 주변의 거품에 둘러싸인채 자만과 허영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을 뿐일까? 어느쪽이든, 내가 대학원에서의 2년간의 생활을 견뎌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나 자신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학생이었기 때문이어도 좋고, 교수님이랑 나랑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어도 좋다. 어쨌거나 대학원에 있었던 2년간의 생활은 정신적으로 대단히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 괴로운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으로 난 그냥 나 자신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도 여전히 물리학을 좋아하고 있는 내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던진다. 다른 선배들도 나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대단한 놈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이렇게 긍정해도 되는 걸까?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난 대학원에 들어와서 매일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번 했었고, 그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질 때마다 매번 이대로 버텨보자는 대답을 수백번 되새겼었다. 초등학교때 꿈꿨던 “과학자”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이제 12년정도 지나왔다.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능동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결국 세상에 항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멋진걸? 근데 그게 아니다. 이것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또다른 가치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가장 가치있는 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가장 가치있는 것을 포기한다면 난 그것들을 어째서 포기했던 것일까. 유학을 가기 위해서 필요한 추천서와 연구 경험을 얻기 위해서 들어왔고, 이제 그것들이 완성되어 간다. 어떻게든 버티고 나면, 그리고 몇년 후 군대 문제를 해결하면 그때 교수님께서 내게 그럭저럭 괜찮은 추천서를 써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뛰쳐나가면 다른데 가서 추천서 구할 곳도 없다. 더 잘할 수도 있었던 2년의 대학원 생활을 이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어떻게든 끝이 난다. 물론 내가 감당했던 정신적 고통이 일방적으로 교수님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내가 게을러져서 맨날 놀기만 했던 것도 있고, 그 덕에 교수님께서 시킨 일이 제때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럭저럭 했는데. 교수님께서 언제까지 해 오라고 시키셨던 일들은 정해진 날짜까지 거의 대부분 해냈었다. 막판에 졸업 논문 쓰는게 꼬여서 그렇지, 그다지 일을 못한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는 꽤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이상, 이 글은 나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자기변명이었다. 며칠째 밤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쌓이는건 나나 교수님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더 해볼까.

    그건 그렇고, 교수님이랑 마주앉아서 며칠 밤샌 퀭한 눈으로 보고 있으면 왜 교수님은 ”

    너 술마셨니?

    “라고 물어보실까. -_-; 하아…이게 제일 힘들다.

  • 아카펠라 공연

    오늘 인터넷으로 알게된 분이 아카펠라 공연을 한다고 해서 구경갔다. 잘 듣고 왔다.

    공연하신 분들 모두가 그냥 평범한 직장인, 학생, 백수 등이라는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참 힘들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만큼 실수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연습했을 것이고 더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아무튼 감상은 잘 했다.

    감상하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은, 모든 사람은 저렇게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곧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돈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학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화가

    자신이 연습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자신이 연습한 경기를 펼치는 운동 선수

    자신이 기획한 사업을 진행하는 직장인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 활동가

    등등등…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돈 때문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철학, 뜨거운 열정, 그런것 때문에 사는 게 아니다. 소박하게 밥벌어 먹고 싶은 것이 모든 것이고 그 소박함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