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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사전 집필 마무리

    1년간 삽질했던 국어사전 집필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한두개 정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다. 내 이름도 집필진에 올라간다고 하니, 열심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했으면 왠지 부끄러웠을테니까. 10개월간 대략 3000개 정도를 했으니, 하루 10개씩 꼬박꼬박 한 셈이다. 물론 실제로는 마지막 2개월 사이에 1000개 넘게 했다. ㅋㅋ

    1.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국어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다른 분야의 용어는 모르겠으나, 물리 관련 용어들 집필하면서 발견한 수많은 오류들은 제대로 된 용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단어는 완전히 틀린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다른 사전에서 베껴온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무관한 다른 단어의 뜻풀이를 가져온 것도 있었다. 예전에 집필했던 분들의 노력과 수고는 정말 대단하였지만 급해서 대충 집필한 몇몇 뜻풀이에서 그 노력이 퇴색되지는 말아야겠다.

    물론 나도 급하게 쓴 것이 있긴 하지만, 검색도 하고 공부도 해서 어려울 순 있어도 틀린 뜻풀이가 들어가지는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였다. 그리고 우리 교수님께서도 깐깐하신 분이라 내가 실수한 것이 있어도 다 잡아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2.

    전공자와 일반인 사이의 높은 벽을 느꼈다. 가령,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의 경우, 국어팀에서 교열되어 온 것을 다시 확인해보니 ‘중성 미자’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중성미자는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용어이고 교열하기 전에 찾아보았다면 그렇게 고치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일반인이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문화를 탓하고 싶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과학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것이고, 전공이 아니면 잘 모른다. 목표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전문용어 사전이었는데, 목적이 잘 달성되었을지 모르겠다.

    3.

    우리말 제대로 쓰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고에너지의 전자의 속도의 방향의 한 방향에 대한 성분의 크기] 처럼 ‘~의’로 이어지는 형태를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데 영어로 되어 있는 뜻풀이를 가져오다 보면 어느새 그런 표현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용어를 가능하면 우리말로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자어를 쓰고 있고, 우리말 용어는 오히려 학계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보니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나도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데 국어 교육이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해 배우는 언어 영역의 일부가 되어버린 후배들은 어떨지 걱정스럽다. 한국어가 국가 공식 언어인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보다 한국어, 한글 교육이 더 중요하다. 자녀들에게 조기영어교육을 시키는 부모님 중에 영어가 왜 중요하고 한국어가 왜 중요한지 비교 분석한 후 심각하게 고민하여 시키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4.

    덕분에 공부를 매우 많이 할 수 있었다. 고체, 광학, 플라스마 분야의 용어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뜻풀이를 쉽게 쓰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빠르게 공부해야만 했다. 역시 나에게는 세상에서 물리학 공부가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 요금 정산이 남았구나.

  • 상상력

    EBS에서 ‘어머니 전’이라는 프로를 봤는데 수학자 황준묵 교수님의 어머님이 주인공이셨네요.

    http://home.ebs.co.kr/motherstory/board/2/502432/view/10002396299?c.page=1&hmpMnuId=101&searchKeywordValue=0&bbsId=502432&fileClsCd=4&searchKeyword=&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Value=0&

    이참에 분야별로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봅니다.


    학 – 수학은 상상력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1+1=2라는 공식이 있죠. 1은 어디에 존재할까요?
    2는? =는? +는? 이 우주 어디를 찾아도 수학에서 다루는 1, 2, +, =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죠.
    그래도 하나, 둘 정도는 셀 수라도 있지만, 무한대, 무한소 같은 개념은 셀 수도 없습니다. 2차원까지는 그림이라도 그려보고
    3차원은 조각이라도 만들어 보지만 무한 차원은 뭘 만들어 볼 수도 없죠. 무한 차원에 존재하는 도형에 관한 문제를 푸는 방법은
    상상으로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물리, 화학 – 물리나 화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과 아주 커서 한번에 관찰할 수 없는 우주입니다. 수천조분의 1초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내야 할 때도 있고,
    수백억년동안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을 관찰해야 할 때도 있죠. 인간은 이것들을 관찰하기엔 너무 크고, 너무 작으며, 너무 느리고,
    너무 빨리 사라집니다.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히 규명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술 – 미술은 말이 필요 없이 상상력이 필요하죠. 상상하는 법을 잘 훈련받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도 보이는 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그것을 떠올려야 하고, 떠오른 것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야겠죠. 예를 들어, 조각가는 조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어 덩어리 안에 있는 작품을 찾아내는
    작업을 합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내나요. 상상으로 알아낼 수밖에 없겠죠.

    역사학,
    고고학 – 옛날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알아내나요? 남아있는 자료와 증거들을 바탕으로 상상해내야 합니다.
    기록이 있는 부분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기록이 없는 부분은 상상에 의존해서 밝혀내야 합니다.


    명 –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지만 꼭 필요한 무언가를 생각해 내야 합니다. 바퀴는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어디서나 사용되는 간단한 도구지만, 처음으로 바퀴를 발명한 사람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동그라미’와 그
    동그라미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필요한 무엇을 만들려면, 만들기 전에 그것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직 물건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루어 지는 일이므로, 상상력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틀릴 수는
    있지만, 최소한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해 봐야 실제로 만들게 되는 것이죠. 제대로 작동할지 상상조차 안 가는 장치를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상력은 그래서 매우 중요해요. 위에 말하지 않은 분야에서도 상상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Imagine, by John Len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 대선, 이후

    다음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명박근혜가 그저 개드립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높은 투표율에서 과반 이상 지지로 당선되었으니 민주당은 할말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점은, 경제 정책 관련해서는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잘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설마 그보다 못할까 싶다.

    복지 관련해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굶기지 않겠다고 했으니, 차별적 지원이라 하더라도 제대로만 한다면 어떻게든 복지 수혜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교육 정책, 과학기술 정책은 기대할 것이 없다. 문재인 후보에도 별로 기대할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박근혜 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민주당이 패배한 것은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디 다음 정권에서는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를 했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 5년간 해 왔던 것은 딴지 걸기지 비판과 견제가 아니었다.

  • 영문과 졸업 못함

    방송대 영문과 졸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6과목 중 4과목은 통과했는데 2과목에서 F가 나오는 바람에 안타깝게 졸업 불가. 두 과목 모두 58점으로 F를 받아서, 1과목 F였으면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딱 1문제 차이로 졸업이 안된 안타까운 사연이 되었다. 그것도, 4과목 중 3개는 수업도 못 듣고 시험공부도 시험 보는 날 아침에 시작했던 교양 3과목인데 가장 잘 본 세 과목이 되었고, 나머지 3개는 스터디까지 한 전공 과목들인데 결국 2과목이 F가 나왔다.

    내년에 1학년꺼 1과목 듣고 졸업해야겠다.

  • 이번 대선 에필로그


    더보기

    그냥 이런 느낌…

  • 노트북 수리



    원래 보라색이었는데 고장나서 수리받았다. 주문 착오로 흰색을 보내줬는데, 흰색도 맘에 들어서 그냥 흰색으로 해달라고 했다. 보라색 바탕에 검정색 키보드보다 흰색 바탕에 흰색 키보드가 조금 더 예뻐보이는 건 착각일까. 아무튼 이것으로 2년 정도 더 사용해야겠다. 역시 노트북은 LG전자!

  • 투표율

    어느 당이든 선거에서 자기 당의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투표율과 관련된 전략으로 가서는 안된다. 투표율이 높다고 걱정하는 어느 정당 관계자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투표율이 높았고, 그 결과 낙선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민심이다. 그에 있어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투표율이 높건 낮건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얻어 당선될 수 있는 정책과 후보를 내놓는 것이 당연하다. 걱정할 일이 따로 있지 투표율이 높은걸 걱정하는가?

  • 투표합시다

    난 하고왔다.

  • 여기까지

    요즘들어 대학원 입학하려고 인수인계 하는데, 인수인계를 하기 전에는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인수인계가 끝나가면서 점점 아쉬움보다는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물리를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행복해지는 걸 보면 나도 정말 미친 종류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대학교 입학하면서 물리학을 배워서 뭘 할 수 있을지 잘 몰랐지만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밥좀 굶더라도 이것을 재미 없을 때까지 공부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그때 내가 자연을 배웠는지 과학을 배웠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이었다. 물질의 성질을 탐구하는 수업이었는데 물질의 색을 알아본다거나, 만지고 느껴보는 실험들을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참 그것이 유치한 것들이었지만 확실히 다른 과목들보다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애들한테 내가 아는 과학에 관한 여러 지식들을 알려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른 아이들 눈에는 자랑질로 보였겠지만, 나는 순수하게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행위 자체를 즐겼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아는 무언가를 자랑하면서 나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 그때도 마찬가지로 친구가 없었던 나는 자주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특히 ‘뉴턴’ 잡지를 보면서 꽤 여러번 읽었던 것 같다. 뉴턴 하이라이트 중 몇권은 부모님 졸라서 사보기도 했다. 사와서는 정말 닳도록 읽었다. 알다시피 뉴턴 하이라이트는 말보다 그림으로 설명하는 분량이 더 많은데, 나는 거기서 보여주는 우주의 환상적인 모습에 넋이 나갔다. 이때 별을 보면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천문학과 천체물리학 사이의 차이를 잘 몰라서 천문학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는데 실제로 원했던 내용은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에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 친구 집에는 마이컴을 이용한 로봇 만들기 책이 있었다. MSX컴퓨터에 베이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마이컴에 올리고, 마이컴을 모터와 결합시켜서 이렇게 저렇게 작동하는 로봇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었다. 초등학생용이라 쉬웠었는데, 거기에 올라와 있는 프로그램 코드는 뭔 얘긴지 전혀 못 알아먹었지만 로봇의 작동 원리와 무엇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는 대충 이해했었다.

    마침 이 때에 아버지께서 공무원 가족 전산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에 나를 끼워넣으셔서 컴퓨터를 배우게 되었었다. 거기서 배운 것은 DOS명령어와 GW-BASIC이었는데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사실 이때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더 파들어갔으면 아마 나는 컴공과에 들어가서 지금쯤 개발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 관심있게 읽은 책은 ‘빈깡통공작’이다.


    http://blog.daum.net/dongdonglife/11

    이것도 정말 수십번은 읽었던 것 같다. 집에서 뭘 만들어보진 못했지만 여기에 설명된 깡통으로 만든 여러가지 장치들을 생각하면서 혼자 정말 재밌게 놀았었다.

    그 전까지는 정말 장난기 많은 개구장이였던 것 같은데, 4학년 넘어가면서부터는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과목에 흥미를 잃었다. 그 전에는 모든 과목에 별 흥미가 없었고 이때부터 과학에만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 시기에 교육청에 끌려가서 과학반 활동을 했었는데, 과학반에가서 배운 것 중에 기억나는건 알콜램프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성냥을 켜는 방법 뿐이다. 실험 기구 다루는 방법을 배웠는데, 실험 기구라고 해봐야 화학 실험 장치들이라, 알콜램프 불 붙이고 불 끄는 방법이나 비커에 담긴 용액을 유리막대로 저을 때에는 벽에 부딪치지 않도록 살살 저어줘야 한다는 것들을 배운 것 같다. 연구소 오니까 그냥 자석 막대 써서 자동으로 젓더만…

    내 개인 과학사에 있어서 초등학교 시기에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누구나 다 해본다는 개구리 해부 같은 생물학 실험을 단 한번도 안해봤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못 해봤다. 친구 실험실에 놀러가서 쥐 수술하는걸 직접 본 것 외에 생물힉이랑 관련된 실험은 별로 해보질 못했다.

    중학교 들어갈 때 까지만 해도 나는 화학을 더 좋아했었다. 이때 기억나는 실험 중 하나는, 사이다에서 이산화탄소 추출실험을 하고 남은 찌꺼기 사이다에서는 레몬맛이 난다는 것을 발견한 점이다. 레몬향이 들어가 있으니까 당연한 것인데, 사실 그냥 마실 때는 탄산 때문에 느끼기 쉽지 않은 것이다.

    중학교 때 과학이랑 관련해서 상 받은 것은 시 교육청에서 주최한 과학상자 대회에서 장려상인가 받은 것인데, 정말 이건 우습게 받은 상이다. 중학교 1학년때 출전해서 뭔가를 만들었었는데 그땐 상을 못 받았다. 대신 깨달은 것이 크고 멋있어 보이면 일단 상을 받고, 그 큰 것에 대하여 심사위원한테 침튀겨가며 열심히 설명하면 우수상이나 최우수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2학년때 또 나가서 아무 의미 없이 큰 기계장치를 만들었고, 그게 달나라에 가서 광물질을 캐 내는 일을 하는 기계라고 대충 말했더니 좋은 상을 주더라. 문제는, 상을 받았으니 학교에서 전시한다고 그걸 해체하지 말고 들고 오라고 한 데다가 집에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대회가 열린 학교에서 꽤 걸어나와서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오는데 비가 꽤 내렸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물리가 더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고등학교 공통과학 문제집을 큰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때 충격적인 사건은, 과학고를 가기 위해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를 다 잘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난 그때 과학을 꽤 잘했고, 수학은 그냥 그랬으며, 나머지 과목에는 아예 흥미가 없이 시험 기간에만 공부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내가 진짜로 물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잘한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다른 애들은 물리를 어려워 할 뿐만 아니라 혐오, 증오, 기피, 회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1때 처음으로 과학 경시대회 물리 부문 대회에 나갔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문제가 저항을 프랙탈 구조를 갖도록 무한히 연결한 후 그 합성저항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문제가 있었다. 이땐 이거 한문제 풀고 나머지는 하나도 손도 못 대고 그냥 돌아왔다.

    이때부터 과학 경시대회 준비를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보려고 경시대회 전문이라는 학원에 갔었다. 그 학원에 가보니
    한번 수업을 들어보라고 해서 체험 삼아 들었었다. 뭔가 대학 수준의 물리학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무슨 문제를 풀고 어떻게 답을
    구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강의가 뭔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관 두고 혼자 공부했다.

    고2때 드디어 과학경시대회 시 대회를 통과하여 고양시 대표로 경기도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이땐 상을 못 받았던가, 장려상을 받았던가 그랬다. 잘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제1회 한국과학창의력경시대회에 출전하여 은상을 받았었다.이때부터 창탐과의 인연이 시작되어서 나의 20대를 창탐과 함께하게 되었다.

    고2때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물리 담당이었다는 것. 그 분도 남씨여서 꽤 인상이 깊었고, 임용 통과한 파릇파릇한 선생님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첫 해 첫 중간고사의 물리 시험문제에 출제 오류가 있었는데, 내가 그걸 지적했고, 어쨌든 그래서 두 문제인가 재시험을 봤다. 그때 애들이 나때문에 물리 재시험 봤다고 해서 아주 진짜 욕봤다. 아니, 문제에 문제가 있으면 재시험 보는거지 왜 날…

    이 시기에, 수학 선생님이 델타 함수를 알려줬었다. 적분해서 그 안에 있으면 1, 없으면 0이 되는 함수라는데 그게 대체 뭔가. 그땐 그게 그렇게 중요한 함수일지는 꿈에도 몰랐다.

    고3때는 과학경시대회 도 대회에 나가서 장려상인가 받았었고, 당시 같이 출전했던 친구들이 다들 상을 받아서 은상, 동상, 장려상, 이렇게 화려한 성적을 냈었는데 한 학년 후배 녀석이 정보 올림피아드 전국대회에서 금상을 받는 바람에 이놈만 현수막이 걸렸었다. 참고로, 이 때 과학경시대회에서 상 받았던 애들은 거의 다 의대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나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애들은 다 의대 갔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 서버 털려서 이 때 상 받은 애들 (또는 과학경시대회 응시자 전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중국 웹 사이트에 흘러들어가 있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했더니 중국이라 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하더라.

    그리고 인하대 과학경시대회 물리 부문에서 입상을 했었다. 이걸 기반으로 중앙대랑 인하대 물리학과에 수시 모집 지원을 했다. 이 때 고3 과학경시대회에서 받은 상장이 도착을 안해서 수상 경력에 넣지를 못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면접날짜가 겹친 것이다. 중앙대는 일반 전형이라 30명 중 10명을 뽑는 것이었고 인하대는 과학경시대회 입상자를 대상으로 한
    특기자 전형이라 3명중 1명만 뽑는 전형이었다. 경쟁률은 똑같이 3대 1이지만, 당연히 10명 뽑는 중앙대를 선택했다.

    난 아직도 왜 내가 뽑혔는지 모르겠다. 중앙대 연감을 보면, 당시 수시모집 지원자 평균 내신성적이 4.7/5.0이고 합격자 평균이 4.9/5.0이다. 난 4.23인데, 왜 뽑힌 걸까. 의심가는 부분은, 면접때 물리학과 와서 뭘 하고싶냐는 질문에 핵융합을 연구해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는 점이다. 아마 핵 전공하신 교수님이 마침 그때 면접관으로 들어오셨던 것 아닐까 싶지만, 면접관 얼굴이 기억이 안나는 바람에 중앙대 가서 어느 교수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 때 최종 합격을 확인한 날이 2001년 6월 5일인가 그랬었는데,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수시 포기하고 정시로 지원하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난 정시에서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보장이 없었고, 물리 외에 다른 과목을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무조건 등록 해달라고 떼를 썼다. 결국은 그 다음날부터 대학교 입학할때까지 놀았다.

    고3때, 1학기 기말고사에서 내가 대형 사고를 쳤다. 물론 이건 물리 선생님에게만 대형 사고이지만. 애들이 물리를 하도 어려워하길래, 토요일 오후에 학교에다가 공부하겠다는 애들 10명정도 모아서 물리를 가르쳐 줬었다. 이것도 이해가 안되는 사건인데, 이 시험에서 우리반만 물리학 평균이 전체 평균보다 10점이 높았다. 물리 전체 평균이 61점인데 우리반 평균이 71점인가 했었다. 그럼 분명 얘들이 잘봐서 그렇게 된 것일텐데, 10명이 대체 얼마나 잘 봤길래 30여명인 우리반의 전체 평균을 무려 10점을 높인 것이었을까. 이 사건으로 물리 선생님이 교장한테 불려가서 갈굼당하고 시말서 썼다고 했다. 그리고 물리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뭘. 그 뒤로 더럽고 치사해서 애들한테 그렇게 강의를 해준 적은 없지만, 아직도 억울하다. 나보다 물리를 못 가르친게 내 잘못인가.

    그리고 나서 2학기 내내, 두가지 일을 했는데, 하나는 선생님 업무 보조를 했고, 다른 하나는 모 대학 화학과에 합격한 친구랑 둘이서 화학실험을 전부 해봤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고등학교 화학책에 나오는 화학 실험은 거의 다 했었고, 덕분에 좋은 추억이 되었다. 살리실산으로 아스피린을 만들었는데, 임상실험을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버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에 와서는 오히려 공부하기가 편했다. 물리학과니까 당연히 물리학만 공부하고, 난 물리가 좋았고 적성에 맞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 입학 이후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아직도 물리가 좋다. 내가 왜 물리를 선택했더라? 원래 이 글은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써놓고 보니 별 이유는 없어보인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가보다. 좋아하는 것이 물리학이고, 재미있는 것이 물리학이고, 할 줄 아는 것이 물리학이고, 지금까지 한 것이 물리학이고, 하고 싶은 것이 물리학이니, 나는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고 싶다.

  • 선거 포스터

    이번 토론회의 결론.




    아무래도 날짜는 지난번 선거 포스터 같긴 하지만…

    설마, A양이 P군을 사모해서 침흘리며 바라보고 있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우린 착각하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