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 연기가 항우연 원장이 고개를 숙여 사과해야 하는 일인가?
나로호 발사 연기가 항우연 원장이 고개를 숙여 사과해야 하는 일인가?
예전에
http://snowall.tistory.com/2199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동아일보에서 위와 같은 기사를 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1. 포인트를 많이 주는 것 보다 처음부터 깎아주는 것이 소비자에게 이득이다. 즉, 10000원에 팔고 100포인트 주는 것 보다 9900원에 파는 것이 소비자에게 더 이득이라는 뜻이다. 물론 전자는 판매자에게 이득이다.
2. 포인트는 어차피 쌓게 되는 법이다. 포인트를 쌓아놓지 말고 쓸 수 있으면 무조건 쓰는 것이 이득이다. 예를 들어, 만원짜리를 천 포인트를 써서 9천원에 샀다고 하자. 이렇게 다섯번을 하면 오만원짜리를 사만오천원에 사니까 오천원 이득이다. 그런데, 오만원어치를 한번에 사만오천원에 산다고 하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필요할 때 마다 만원짜리를 천원 할인받아서 산다면 나는 천원을 절약하므로 계속 천원은 내 손안에 있다. 만약, 오천포인트가 있어서 만원짜리를 처음 사는 시점에 오만원어치를 산다면 다섯번에 나눠 사는 것 보다 이득이다. 왜냐하면 오천원이 처음부터 남게 되고, 이에 대한 이자가 붙기 때문이다. 계속 천포인트씩 쌓여서 다섯번에 나눠 산다면 그보다는 손해다. 하지만 오만원어치를 나중에 한번에 사면 더 손해다.
지진을 예고하지 못한 과학자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이탈리아 법원은 302명이 숨진 대형 지진을 예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과학자 6명과 공무원 1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아래는 종합검진에서 이상없음이었으나 한달 후 폐암 말기로 사망한 환자에 관한 보도이다.
http://www.koreahealthlog.com/news/newsview.php?newscd=2012102200044
종합검진에서 흉부 엑스선 검사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는데, 한달 후 폐암 말기였고 치료 시기를 놓쳐서 결국 사망한 사건이다. 2010년과 2011년에 검사를 받았는데 정상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의료진이 판단을 잘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과제에 대하여 태만 없이 고의 없이 성실하게 실험과 분석을 수행했다고 하자. 그런데 결과가 틀렸다.
과학자는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 것일까?
나는 유행을 전혀 따라가지 않는다.
자전거.
8만원짜리 MTB사서 도심을 질주하던 아이는 커서 배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나)
근데 요새는 자전거 하나 탈까 하면 월급의 절반을 쏟아부어서 일단 시작하고, 매달 뭘 또 사고 달고 닦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출퇴근을 자전거 타고 다니면 살도 빠지고, 교통비도 아끼고 좋다. 내가 자전거를 탄다면 여전히 MTB 한대 사서 도심을 질주할 것 같다. 자전거로 도심을 달리면, 빨리 달릴수록 더 많은 매연을 먹게 되는데 가벼운 자전거는 무슨 소용인가. 비싼 자전거는 어디 그냥 묶어두지도 못하고 사무실로 갖고 올라가야 한다.
사진기.
그냥 똑딱이 카메라나 130만화소짜리 핸드폰 카메라로 적당히 찍으며 놀던 시절은 어디 가고 50만원짜리 DLSR이나 미러리스 사진기 몸통에 200만원짜리 렌즈를 달아서 찰칵 거리는 취미를 가져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대부분은 잘 보관되어 있지만, 단 한번도 다시 열어본 적이 없다. 나는 과거를 되돌아 보며 “그때 그랬지” 하며 추억에 잠기는 일이 없다. 좋았던 과거를 되돌아 보면 아픈 현실이 나를 찌르고, 아픈 과거를 다시 되새기면 현실이 되어 아플 뿐이다.
베스트셀러
소위 베스트 셀러라는 책들을 그렇게 막 찾아 읽지 않는다. 남들이 다 보는 무한도전을 단 한번도 본방을 본 적이 없다. 남들이 다 사는 갤럭시S를 사지 않는다. 아이폰도 싫어한다. 남들 다 다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심지어 남들 다 가는 군대도 안갔다.
커피
사무실에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한데, 물로 한번 세척하고 커피를 볶아서 믹서기에 갈은 후, 커피 머신에 커피 가루를 탈탈 털어넣은 후 물을 부어주고나서 버튼을 한번 누르면 아주 향기롭고 맛있는 에스프레소가 한잔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한번도 마셔 본 적은 없다. 귀찮으니까.
차
올해, SUV차량을 새로 샀다. 사람들이 물어본다. 가죽시트야? 몰라요. 파노라마 썬루프는? 없어요. 옵션은? 글쎄요. 차값은? 몰라요. 네비는? 없어요. 시트가 가죽이건 천이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썬루프는 필요 없는 기능이다. 나도 돈이 있으니까 샀겠지. 차값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 네비는 필요 없어서 안 샀다. 내 차 타보는 사람들은 다 한번씩 물어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들일까?
전공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물리학이 뭔지는 아시나요?
그럼 이렇게 물어보더라. “취직 잘 되냐?” 저의 학과 동기들 중에 70%가 대기업 들어갔고, 취직 안된 동기가 없는데 말입니다…
시계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명품 시계 브랜드가 있다. 내 노트북 가격의 시계, 내 차 가격의 시계, 우리 집 가격의 시계, 그리고 그보다 비싼 시계. 아주 정확한 전자시계보다, 매일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수동식 시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향이니까 뭐 나랑은 상관 없다. 문제는, 나랑 상관 없는데 나한테 시계 안 차고 다니냐고 물어보는 부분이다. 사방에 고개를 돌리면 어딜 봐도 시계가 있는데 왜 시계가 필요한 것인가. 그럼 그게 예쁜가? 내 생각에는, “안 예뻐요”
피부관리
요새는 남자도 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좋은 화장품도 소개시켜 주고, 좋은 피부관리점도 알려주려고 하고, 올바른 세안법도 막 가르쳐 주려고 한다. 난 물론 안쓰고, 안가고, 대충 한다. 내가 내 피부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데 뭐하러 하나.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아니지. 그건 아니지. 너가 너의 피부에 의미를 두고 관리하는 것을 말리지 않겠지만, 내가 나의 피부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을 말리지도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따로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파편화되어가는 인간관계와 반복되고 기계화되는 생활에 지쳐, 옛 것을 찾고, 아날로그를 지향하며, 뭔가 아련한 것을 그리워 하는 세상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작위적이다.
어떤 자동차 광고에서, 지금까지는 사람이 차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차가 사람을 사랑할 때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다. 사람은 차를 사랑해서도 안되고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정상이다.
자동차 껍데기에 흠집 생기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비싼 자전거를 훔쳐가면 가슴이 아프다. 그럼, 자전거를 그렇게 애지중지해야 하는 걸까?
세상을 둘러보면, 좋은 자전거 하나쯤 타 줘야 하고, 알 굵고 바늘 세개 달린 시계 팔목에 걸어줘야 하고, 이정도쯤은 다 해줘야 여유롭고 즐기는 삶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일에 치어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 자기도 로또 당첨되면 그렇게 여유롭게 살아야지 하며 생각한다. 그러나 당첨되지도 않을 뿐더러 당첨 되어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당첨금을 어떻게 해야 더 불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날려먹게 마련이다. 어차피 당첨금 없어도 잘 살던 삶이었다. 그런 당첨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느정도의 여윳돈이 있으니 필요할 때 적당히 쓰면 된다. 그러다 다 떨어지면 하던 일 하면서 사는 거고.
예전에 알던 친구가 화장실에 가면서 나에게 명품 가방을 잠시 맡기고 다녀왔었다. 그때, 생가죽이니까 물에 젖지 않도록 잘 보호해 달라고 하길래 그러마고 조심해 주었다. 그날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과연 명품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의 몇십년간 그 제품만 만든 장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해도, 물방울 튀는 것이 두려워 벌벌 떨어야 한다면 그것은 싸구려다. 그건 판매 가격에 상관 없이 싸구려다. 비싼 돈 주고 산 가방이니 상하면 자기 마음도 상하고, 나 역시 그런 가방을 쓰고 있다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 명품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마음가짐이라면 그 명품을 쓰면 안된다. 그냥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격의 가방을 사서 쓰는 것이 정상이다.
화를 내는 여러가지 경우 중에서 가장 멍청한 대사는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앙?” 그래서 그게 얼마짜린데 그러나. 그런 대사는 꼭 있는 놈들이 더 하더라. 내가 그렇게 화내면 또 나를 무시하며 “그깟거 물어주면 될거 아냐?”
저
기서 나에게 얼마짜린지 아냐고 화내길래, 내가 물어주면 될거 아니냐고 반문하면 그건 그쪽 입장에서는 참 어이없는 경우다. 꼭
그러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라더라. 내가 이러시면 안되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거기서도 그거 물어주면 될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넌
화내고 난 화 못내면 불공평하지 않나. 진정하시고, 서로 조심하기로 하고, 물적 손해만 물어주는 걸로 합시다. 아니, 그렇게 돈이 많으면 그게 얼마짜리든 그냥 쿨하게 넘어가면 안되는 것인가.
정말 제대로 돈을 쓴다면, 이것이 천원짜리간 100만원짜리이건 10억원짜리이건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별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어쩌다가 천원짜리 가방이 10억원짜리 유명 브랜드 명품 가방보다 편하고 튼튼하고 더 예쁘다면, 천원짜리를 사서 잘 쓰면 된다. 그게 진짜 명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의 소비 행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다. 이 경우에 남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사람은 생각하고 움직이고 감정이 있어서, 자신의 여러가지 말과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바꾼다. 사람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물건은 물건으로서 존재할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는 사람이다. 그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소유자가 아니라 노예일 뿐이다. 물건은 수동적인 존재인데, 수동적인 존재의 노예가 되었으니 그 노예인 인간도 수동적이 된다. 원래는 “난 대단한 사람이니까 이 물건을 갖고 있어”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 물건을 갖고 있으니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오류를 범한다. 알다시피 두 문장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행복과 불행도, 천국과 지옥도, 행운과 불운도,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하나에 뒤집을 수 있는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것들이다.
체코의 공동연구팀에 있는 Daniele가 Physical Review Letter에 썼다던 그 논문이 드디어 통과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Laser-driven proton acceleration enhancement by nanostructured foils” 이다. 난 그냥 테크니션으로 일 했을 뿐인데, 대충해도 되는걸 어쩌다보니 너무 성실하게 해 버려서 Daniele가 내 이름도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주는 바람에 내 이름도 저자 목록에 끼게 되었다. 내가 맡은건 양성자 데이터 획득, 양성자 데이터 분석, 입자 검출기 교정과 운용이다.
이제 곧 출판될 것이다. 링크는 곧…
나도 빨리 논문 써야 하는데…
친구랑 지난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일요일 저녁에 전화를 해 보니 자기가 일이 바빠서 언제 될지 모르지만 주중에 되는 날 연락을 주기로 했다. 난 어차피 약속이 없기 때문에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연락은 언제 올까?
만약, 목요일까지 기다렸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금요일날 연락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연락은 목요일날 올 것이다. 하지만, 수요일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위의 논리에 의해 목요일에 연락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연락은 수요일에 올 것이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당장 내일인 월요일에 연락이 올 것이다.
언제 연락이 왔을까?
뭐가 문제일까?
어제 점심때 대출 안내 전화가 왔었다. 천만원까지 당일 대출 가능하다는데 돈 필요없다고 하니까 그냥 끊는다. 프로페셔널 텔레마케터의 쉬크한 스팸 전화였다.
광고가 매출 증대를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점에 동의하고, 광고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알지만 광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자신의 상품을 사야 할 이유는 많이 제시하지만 사지 않아야 할 이유는 제시하지 않는다. 광고에서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보는 그런 상품이 있다는 사실 뿐이다.
사기의 경우는 좀 더 심한데, 사기 피해자들은 자신이 사기에 당할까 의심하지 않고, 사기꾼을 믿었다.
좋은 투자 껀수가 있다면 남의 돈 탐내지 말고 그 본인이 직접 투자해서 수익을 내라고 하면 된다. 그 본인이 돈이 없다고? 그럼 그 본인이 대출 받아서 투자하라고 하면 된다. 어차피 은행 수익률보다 몇배 큰 수익을 이야기할텐데, 그럼 대출 이자보다 수익이 더 클 것이다. 본인이 신용도가 작아서 못 빌린다고? 은행도 안 믿는 사람을 내가 왜 믿어야 하는건가.
높은 수익률을 내는 상품은 위험도 크다. 만약 높은 수익에 낮은 위험을 누군가 보장한다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이다. 둘 다 거짓말이거나.
당신의 소중한 돈을 몇배로 불려준다는 말은 누가 해도 다 거짓말이다. 자기 돈을 몇배로 불린 사람이 해도 거짓말이다.
이것이 왜 그런가?
시장에 나와 있는 돈은 장기적으로는 늘어나지만 단기적으로는 보존된다. 당신에게 돈을 벌어다 주려면 다른 누군가의 돈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럼, 그렇게 돈이 줄어드는 그 누군가는 가만히 있을까? 또는. 그 돈이 줄어드는 누군가가 당신이 아닐까?
좋은 거 있다고 먼저 당신에게 연락한다면, 그건 정말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는 그런거 안 당할 거고, 저 친구는 정말 믿을만한 친구이고, 꼼꼼하게 따져서 결정할 것이니 괜찮을 거라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본인이 그런 프로페셔널 사기꾼이거나, 사기꾼 급의 전략과 두뇌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1.
어떤 집단이든지 한번 만들어 지면 그 집단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집단이 리더가 조직한 집단이 아니라 만들어진 집단에서 리더를 뽑아야 하는 경우라면 서로 리더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어떤 집단을 이끄는 것은 매우 귀찮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2.
중고등학교의 반장이나 회장 같은 자리는 나중에 대학교 갈 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하려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렇게 반장을 했다고 해서 그 친구가 리더로써의 자격이 되는지, 그런 자격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교 학생회장은 바로 그 리더가 될 수 있는 자리다. 학과의 학년대표나 과 학생회의 학생회장 정도라면 적당한 크기의 집단이라 리더십을 키우기에 적합하다. 단과대 학생회장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은 할일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학과 공부에서 많이 양보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3.
하고싶어서 하는 리더라면 잘 할 수 있겠다.
4.
떠밀려서 하게 된 리더라면 그럼 사실 그렇게 떠밀어 버린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잘 되든 망하든 그것은 리더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리더를 뽑아서 일을 그르쳤고, 그래서 그 리더를 비난한다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리더인가 희생양인가.
5.
직장에는 아주 많은 리더들이 존재한다. 팀장, 과장, 부장, …
그러나 이런 리더들이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대체로 사원, 주임, 대리를 거쳐서 과장으로 올라가는데, 사람마다 편차가 크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야 하는데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일을 다 처리해 버리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결정하고 추진해야 할 일들까지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리더도 있다.
이게 다 못 배워서 그렇다. 앞에 나서서 일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운 적이 없으니 자신의 역할이 뭔지 잘 모른다
아마 잘 나가는 회사라면 승진 후 교육에서 이런 부분들을 잘 가르쳐 줄 것이다.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라는 부분이 회사의 위험 요소니까. –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커야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경우도 많지만.
6.
재직 기간이 길다고 해서 팀장 일을 잘 하라는 법은 없다. 재직 기간이 길어도 그 사람의 적성이 사원급이라면 그냥 사원급의 일을 시키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나이를 매우 중요하게 따지는 한국에서는 그것이 많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7.
리더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직이 있다고 하자. 그럼 그 리더는 그 조직을 잘 키운 것인가 못 키운 것인가, 아니면 잘못 키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