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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왜 배워야 하는가?

과학은 왜 배워야 할까요?

사람들이 눈치를 채건 말건 아주 많은 과학적인 주제들이 우리 주변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황우석 박사의 복제 소 논쟁, FTA와 광우병 파동, 구제역과 살처분, 전력위기와 원자력발전소, 후쿠시마
원전 사고, 4대강 정비사업과 환경오염, 구미 불산 유출 사고와 그 후속처리, 나로호 발사와 러시아… 당장 생각나는 굵직한
주제들만 놓고 보더라도 꽤 많네요. 그중 황우석 박사 얘기와 광우병 얘기를 빼면 전부 다 2012년에 문제가 되었던 주제들이죠?

과학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를 알려줍니다.


째로, 과학은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을 알려줍니다. 이 세상이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든지, 별에 작용하는 힘과 사람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다르지 않다든지, 이런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죠. 그리고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아주 많은 도구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지금 주변에 보이는 물건 전부가 과학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죠.


째로, 과학은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아마 과학이 믿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합니다. 당장, 내가 주장하는 것조차도 의심해야 하죠. 그래서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래서 더 정확하고 엄밀한 실험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 실험 결과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은 금방
들통나게 되죠. 과학 논문이 대체로 믿을만한 것은 그렇기 때문입니다. 논문으로 발표된 것들은 어느정도 믿을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믿어도 됩니다. 물론 누군가는 조작을 하고, 누군가는 잘 몰라서 틀리고, 그런 일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을
먼저 말하고 인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과학자입니다.

셋째로, 과학은 뭐가 안되는건지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외부 동력 없이 영원히 작동하는 영구기관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도 그게
가능하다며 이런저런 장치들을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구기관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현재의
이론은 그 외에 엄청나게 많은 사실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했고, 영구기관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아직까지 영구기관이 관찰된 적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성공적입니다. 그러므로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죠.


째로, 과학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도록 합니다. 어떤 현상과 관찰된 사실이 있을 때, 아는 것은 관찰된 사실이지만 모르는
것은 그 원인이죠. 그 원인에 대해서 난 이렇게 생각해, 넌 저렇게 생각해,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이론은 언제나
“가설”로 취급받으며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과학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자신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면, 실력이 있건 없건간에 분명히 헛소리하다가 혼자
나자빠질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나라 과학 교육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아요. 뉴턴의
세가지 운동 법칙이나, 멘델의 유전법칙이나, 일정성분비의 법칙,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들이지만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운동법칙이 어째서 우리에게 의미있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게 중요하다고 하면 또 교육 정책 만드시는 분들은 어떻게 의미가 있고 어떻게 써먹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교과서를 개편합니다만, 그게 아니죠.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내는 그 과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런건
가르치지 않아요.

내년에 대통령 되시는 분은, 노벨상이나 IT강국같은 헛소리는 그만하고, 세계
최초나 세계 최고같은 헛소리도 그만하고, 교육정책이나 잘 손봐서 제대로 된 과학교육이 이루지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교육
정책은, 비유하자면, 이번주에 씨뿌리고 다음주에 수확하려 하니 성과가 없다고 갈아엎고 또 씨뿌리는 삽질이나 하고 있는거죠.

어쩌다보니 얘기가 자연과학만 예를 들었지만, 사회과학, 심리학, 언어학 같은 인문과학 또한 과학입니다.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1초 #3

1초를 재는 방법은 지난시간에 말한 대로, 그냥 1초에 해당하는 기준을 정해놓고 비교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우리가 1초의
기준을 그냥 시계추에 맞추어 둔다면 재기 쉽겠지만, 프랑스에 있는 국제 도량형 표준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계추는 온도에
따라서 길이가 변할 수도 있고, 때가 타서 무게가 변할 수도 있고, 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10억분의 1초까지
정확한 1초의 길이를 재기 위해서 아주 좋은 재료는 아니기 ‹š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온도에 따라서 변하지도 않고, 때가 타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흔들림”을 이용해서 측정할 수 있다. 바로, 전자파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그 전자파의 주기를 재서 1초를 정의하게 된다. 그럼, 전자파의 주기를 어떻게 재는것인가?

가장 기본 원리는 우리가 매일 야식 먹을 때 쓰는 바로 그 장비,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제로, 국제 표준 시계로 사용하고 있는 세슘 원자 시계는 초정밀 장치이고, 모든 종류의 잡음과 오차를 막기 위하여 엄청나게 복잡한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거기서 시간 재는데 필요없는거 다 떼어내고 나면, 남는건 전자레인지 하나와 라디오 하나가 있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전자레인지 하나 사서 원자시계를 만들 수 있는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파를 라디오로 수신해서 맞추는 것이다. 헛소리라고 생각하기 전에 조금 더 상세히 설명을 하겠다.


자레인지는 전자파를 만들어 내는 장치이다. 물론 요리 하는데 쓰는 장치인데, 그 근본에는 전자파를 만들어 내는 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럼 전자레인지를 그냥 돌리면 될까? 그렇지 아니하다. 우리는 세슘 원자를 기준으로 쓰기로 했으니 세슘 원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전자레인지에서 방출된 강력한 전자파가 세슘을 쉐킷쉐킷 해준다. 전자레인지는
세슘 원자를 마구마구 흔들어 대는데, 이 과정에서 전자파가 나온다. 물론 전자파를 뿌려대고 있으니 당연히 전자파는 나오는
것인데, 우리가 넣은 것 말고 다른 전자파도 나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전자레인지에서
흔들어 주는 전자파는 진동수가 정해져 있다. 세슘은 그 전자파에 따라서 이리비틀 저리비틀 오락가락 할 뿐이다. 이 상태로는 그냥
받은 전파를 그대로 내보낼 뿐이다. 하지만 세슘은 그 전자파를 그냥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번 흡수했다가 내보낼 수도 있다.
??? 흡수??

여기서 말하는 흡수는 그네를 흔들어 주는 그 따스한 손길을 뜻한다. 그네를 흔들어 줄 때 박자 맞춰서 흔들어 주면 그네가 점점 크게 흔들리다가 확…

물론 여기서는 그네는 세슘이고, 흔들어주는 손은 전자레인지이다. 문제는, 그네를 흔들어 주는데 지 멋대로 흔들어 준다는 것이 문제일 뿐.


멋대로 흔들어 주고 있으니, 그네를 탄 사람은 정신이 없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와중에 확 뛰어 내리는
것이다. 세슘 원자의 경우에도 에너지를 그렇게 흡수하다보면 그만 흡수하고 확 뛰어 내리게 되는데, 사람은 그렇게 뛰어내리다가
다쳐서 비명을 지르지만 원자는 뛰어내릴 때 전자파를 방출한다.

이 전자파를 검출하면
되는데, 이걸 검출하는데 라디오를 사용한다. 우리가 라디오 주파수 맞춘다고 지지직 거리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잘 돌리면서 또르륵 맞춰가다보면 어느 순간 띠링 하고 세슘이 내지른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물론 귀에 들리지는
않겠지만.

이 방법을 이용해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데, 주파수는 1초에 흔들리는 횟수이고, 우리는 세슘이 90억번 흔들리면 1초가 지나갔다고 정했으니, 주파수를 맞추면 1초를 잴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인트 제도

예전에


http://snowall.tistory.com/2199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id=0002377279&mid=shm&oid=020&sid1=101&nh=20121025065241

동아일보에서 위와 같은 기사를 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1. 포인트를 많이 주는 것 보다 처음부터 깎아주는 것이 소비자에게 이득이다. 즉, 10000원에 팔고 100포인트 주는 것 보다 9900원에 파는 것이 소비자에게 더 이득이라는 뜻이다. 물론 전자는 판매자에게 이득이다.

2. 포인트는 어차피 쌓게 되는 법이다. 포인트를 쌓아놓지 말고 쓸 수 있으면 무조건 쓰는 것이 이득이다. 예를 들어, 만원짜리를 천 포인트를 써서 9천원에 샀다고 하자. 이렇게 다섯번을 하면 오만원짜리를 사만오천원에 사니까 오천원 이득이다. 그런데, 오만원어치를 한번에 사만오천원에 산다고 하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필요할 때 마다 만원짜리를 천원 할인받아서 산다면 나는 천원을 절약하므로 계속 천원은 내 손안에 있다. 만약, 오천포인트가 있어서 만원짜리를 처음 사는 시점에 오만원어치를 산다면 다섯번에 나눠 사는 것 보다 이득이다. 왜냐하면 오천원이 처음부터 남게 되고, 이에 대한 이자가 붙기 때문이다. 계속 천포인트씩 쌓여서 다섯번에 나눠 산다면 그보다는 손해다. 하지만 오만원어치를 나중에 한번에 사면 더 손해다.

과학자의 책임


지진을 예고하지 못한 과학자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aid=0005889187&mid=shm&oid=001&sid1=104&nh=20121023065048

이탈리아 법원은 302명이 숨진 대형 지진을 예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과학자 6명과 공무원 1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아래는 종합검진에서 이상없음이었으나 한달 후 폐암 말기로 사망한 환자에 관한 보도이다.


http://www.koreahealthlog.com/news/newsview.php?newscd=2012102200044

종합검진에서 흉부 엑스선 검사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는데, 한달 후 폐암 말기였고 치료 시기를 놓쳐서 결국 사망한 사건이다. 2010년과 2011년에 검사를 받았는데 정상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의료진이 판단을 잘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과제에 대하여 태만 없이 고의 없이 성실하게 실험과 분석을 수행했다고 하자. 그런데 결과가 틀렸다.

과학자는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 것일까?

유행

나는 유행을 전혀 따라가지 않는다.

자전거.

8만원짜리 MTB사서 도심을 질주하던 아이는 커서 배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나)

근데 요새는 자전거 하나 탈까 하면 월급의 절반을 쏟아부어서 일단 시작하고, 매달 뭘 또 사고 달고 닦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출퇴근을 자전거 타고 다니면 살도 빠지고, 교통비도 아끼고 좋다. 내가 자전거를 탄다면 여전히 MTB 한대 사서 도심을 질주할 것 같다. 자전거로 도심을 달리면, 빨리 달릴수록 더 많은 매연을 먹게 되는데 가벼운 자전거는 무슨 소용인가. 비싼 자전거는 어디 그냥 묶어두지도 못하고 사무실로 갖고 올라가야 한다.

사진기.

그냥 똑딱이 카메라나 130만화소짜리 핸드폰 카메라로 적당히 찍으며 놀던 시절은 어디 가고 50만원짜리 DLSR이나 미러리스 사진기 몸통에 200만원짜리 렌즈를 달아서 찰칵 거리는 취미를 가져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대부분은 잘 보관되어 있지만, 단 한번도 다시 열어본 적이 없다. 나는 과거를 되돌아 보며 “그때 그랬지” 하며 추억에 잠기는 일이 없다. 좋았던 과거를 되돌아 보면 아픈 현실이 나를 찌르고, 아픈 과거를 다시 되새기면 현실이 되어 아플 뿐이다.

베스트셀러

소위 베스트 셀러라는 책들을 그렇게 막 찾아 읽지 않는다. 남들이 다 보는 무한도전을 단 한번도 본방을 본 적이 없다. 남들이 다 사는 갤럭시S를 사지 않는다. 아이폰도 싫어한다. 남들 다 다니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심지어 남들 다 가는 군대도 안갔다.

커피

사무실에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한데, 물로 한번 세척하고 커피를 볶아서 믹서기에 갈은 후, 커피 머신에 커피 가루를 탈탈 털어넣은 후 물을 부어주고나서 버튼을 한번 누르면 아주 향기롭고 맛있는 에스프레소가 한잔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한번도 마셔 본 적은 없다. 귀찮으니까.

올해, SUV차량을 새로 샀다. 사람들이 물어본다. 가죽시트야? 몰라요. 파노라마 썬루프는? 없어요. 옵션은? 글쎄요. 차값은? 몰라요. 네비는? 없어요. 시트가 가죽이건 천이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썬루프는 필요 없는 기능이다. 나도 돈이 있으니까 샀겠지. 차값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 네비는 필요 없어서 안 샀다. 내 차 타보는 사람들은 다 한번씩 물어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들일까?

전공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뭐 전공했어? 물리학이요.

물리학이 뭔지는 아시나요?

그럼 이렇게 물어보더라. “취직 잘 되냐?” 저의 학과 동기들 중에 70%가 대기업 들어갔고, 취직 안된 동기가 없는데 말입니다…

시계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명품 시계 브랜드가 있다. 내 노트북 가격의 시계, 내 차 가격의 시계, 우리 집 가격의 시계, 그리고 그보다 비싼 시계. 아주 정확한 전자시계보다, 매일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수동식 시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향이니까 뭐 나랑은 상관 없다. 문제는, 나랑 상관 없는데 나한테 시계 안 차고 다니냐고 물어보는 부분이다. 사방에 고개를 돌리면 어딜 봐도 시계가 있는데 왜 시계가 필요한 것인가. 그럼 그게 예쁜가? 내 생각에는, “안 예뻐요”

피부관리

요새는 남자도 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좋은 화장품도 소개시켜 주고, 좋은 피부관리점도 알려주려고 하고, 올바른 세안법도 막 가르쳐 주려고 한다. 난 물론 안쓰고, 안가고, 대충 한다. 내가 내 피부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데 뭐하러 하나.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아니지. 그건 아니지. 너가 너의 피부에 의미를 두고 관리하는 것을 말리지 않겠지만, 내가 나의 피부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을 말리지도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따로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파편화되어가는 인간관계와 반복되고 기계화되는 생활에 지쳐, 옛 것을 찾고, 아날로그를 지향하며, 뭔가 아련한 것을 그리워 하는 세상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작위적이다.

어떤 자동차 광고에서, 지금까지는 사람이 차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차가 사람을 사랑할 때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다. 사람은 차를 사랑해서도 안되고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정상이다.

자동차 껍데기에 흠집 생기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비싼 자전거를 훔쳐가면 가슴이 아프다. 그럼, 자전거를 그렇게 애지중지해야 하는 걸까?

세상을 둘러보면, 좋은 자전거 하나쯤 타 줘야 하고, 알 굵고 바늘 세개 달린 시계 팔목에 걸어줘야 하고, 이정도쯤은 다 해줘야 여유롭고 즐기는 삶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일에 치어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 자기도 로또 당첨되면 그렇게 여유롭게 살아야지 하며 생각한다. 그러나 당첨되지도 않을 뿐더러 당첨 되어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당첨금을 어떻게 해야 더 불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날려먹게 마련이다. 어차피 당첨금 없어도 잘 살던 삶이었다. 그런 당첨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어느정도의 여윳돈이 있으니 필요할 때 적당히 쓰면 된다. 그러다 다 떨어지면 하던 일 하면서 사는 거고.

예전에 알던 친구가 화장실에 가면서 나에게 명품 가방을 잠시 맡기고 다녀왔었다. 그때, 생가죽이니까 물에 젖지 않도록 잘 보호해 달라고 하길래 그러마고 조심해 주었다. 그날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과연 명품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의 몇십년간 그 제품만 만든 장인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해도, 물방울 튀는 것이 두려워 벌벌 떨어야 한다면 그것은 싸구려다. 그건 판매 가격에 상관 없이 싸구려다. 비싼 돈 주고 산 가방이니 상하면 자기 마음도 상하고, 나 역시 그런 가방을 쓰고 있다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 명품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마음가짐이라면 그 명품을 쓰면 안된다. 그냥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격의 가방을 사서 쓰는 것이 정상이다.

화를 내는 여러가지 경우 중에서 가장 멍청한 대사는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앙?” 그래서 그게 얼마짜린데 그러나. 그런 대사는 꼭 있는 놈들이 더 하더라. 내가 그렇게 화내면 또 나를 무시하며 “그깟거 물어주면 될거 아냐?”


기서 나에게 얼마짜린지 아냐고 화내길래, 내가 물어주면 될거 아니냐고 반문하면 그건 그쪽 입장에서는 참 어이없는 경우다. 꼭
그러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라더라. 내가 이러시면 안되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거기서도 그거 물어주면 될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넌
화내고 난 화 못내면 불공평하지 않나. 진정하시고, 서로 조심하기로 하고, 물적 손해만 물어주는 걸로 합시다. 아니, 그렇게 돈이 많으면 그게 얼마짜리든 그냥 쿨하게 넘어가면 안되는 것인가.

정말 제대로 돈을 쓴다면, 이것이 천원짜리간 100만원짜리이건 10억원짜리이건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별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어쩌다가 천원짜리 가방이 10억원짜리 유명 브랜드 명품 가방보다 편하고 튼튼하고 더 예쁘다면, 천원짜리를 사서 잘 쓰면 된다. 그게 진짜 명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의 소비 행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다. 이 경우에 남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사람은 생각하고 움직이고 감정이 있어서, 자신의 여러가지 말과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바꾼다. 사람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물건은 물건으로서 존재할 뿐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는 사람이다. 그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소유자가 아니라 노예일 뿐이다. 물건은 수동적인 존재인데, 수동적인 존재의 노예가 되었으니 그 노예인 인간도 수동적이 된다. 원래는 “난 대단한 사람이니까 이 물건을 갖고 있어”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 물건을 갖고 있으니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오류를 범한다. 알다시피 두 문장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행복과 불행도, 천국과 지옥도, 행운과 불운도,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하나에 뒤집을 수 있는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것들이다.

나노 구조 박막에 의해 좋아진 레이저 유도 양성자 가속

체코의 공동연구팀에 있는 Daniele가 Physical Review Letter에 썼다던 그 논문이 드디어 통과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Laser-driven proton acceleration enhancement by nanostructured foils” 이다. 난 그냥 테크니션으로 일 했을 뿐인데, 대충해도 되는걸 어쩌다보니 너무 성실하게 해 버려서 Daniele가 내 이름도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주는 바람에 내 이름도 저자 목록에 끼게 되었다. 내가 맡은건 양성자 데이터 획득, 양성자 데이터 분석, 입자 검출기 교정과 운용이다.

이제 곧 출판될 것이다. 링크는 곧…

나도 빨리 논문 써야 하는데…

마더쇼크

EBS 다큐프라임 마더쇼크

1부 www.youtube.com/watch?v=ayRJJz5lRbU

2부 www.youtube.com/watch?v=-gkLPfMIY0c

3부 www.youtube.com/watch?v=PeVOwCLTYXM

진짜 성공을 위하여.

사형수의 역설

친구랑 지난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일요일 저녁에 전화를 해 보니 자기가 일이 바빠서 언제 될지 모르지만 주중에 되는 날 연락을 주기로 했다. 난 어차피 약속이 없기 때문에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연락은 언제 올까?

만약, 목요일까지 기다렸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금요일날 연락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연락은 목요일날 올 것이다. 하지만, 수요일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위의 논리에 의해 목요일에 연락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연락은 수요일에 올 것이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당장 내일인 월요일에 연락이 올 것이다.


언제 연락이 왔을까?


뭐가 문제일까?

광고와 사기와 금융

어제 점심때 대출 안내 전화가 왔었다. 천만원까지 당일 대출 가능하다는데 돈 필요없다고 하니까 그냥 끊는다. 프로페셔널 텔레마케터의 쉬크한 스팸 전화였다.

광고가 매출 증대를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점에 동의하고, 광고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알지만 광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자신의 상품을 사야 할 이유는 많이 제시하지만 사지 않아야 할 이유는 제시하지 않는다. 광고에서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보는 그런 상품이 있다는 사실 뿐이다.

사기의 경우는 좀 더 심한데, 사기 피해자들은 자신이 사기에 당할까 의심하지 않고, 사기꾼을 믿었다.

좋은 투자 껀수가 있다면 남의 돈 탐내지 말고 그 본인이 직접 투자해서 수익을 내라고 하면 된다. 그 본인이 돈이 없다고? 그럼 그 본인이 대출 받아서 투자하라고 하면 된다. 어차피 은행 수익률보다 몇배 큰 수익을 이야기할텐데, 그럼 대출 이자보다 수익이 더 클 것이다. 본인이 신용도가 작아서 못 빌린다고? 은행도 안 믿는 사람을 내가 왜 믿어야 하는건가.

높은 수익률을 내는 상품은 위험도 크다. 만약 높은 수익에 낮은 위험을 누군가 보장한다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이다. 둘 다 거짓말이거나.

당신의 소중한 돈을 몇배로 불려준다는 말은 누가 해도 다 거짓말이다. 자기 돈을 몇배로 불린 사람이 해도 거짓말이다.

이것이 왜 그런가?

시장에 나와 있는 돈은 장기적으로는 늘어나지만 단기적으로는 보존된다. 당신에게 돈을 벌어다 주려면 다른 누군가의 돈이 줄어들어야 한다. 그럼, 그렇게 돈이 줄어드는 그 누군가는 가만히 있을까? 또는. 그 돈이 줄어드는 누군가가 당신이 아닐까?

좋은 거 있다고 먼저 당신에게 연락한다면, 그건 정말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는 그런거 안 당할 거고, 저 친구는 정말 믿을만한 친구이고, 꼼꼼하게 따져서 결정할 것이니 괜찮을 거라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본인이 그런 프로페셔널 사기꾼이거나, 사기꾼 급의 전략과 두뇌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