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학술

  • 1미터

    우주의 크기를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크기”가 뭔지 따져야 한다.

    흔히 그렇듯,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했다. 이것은 속담이지만 물리학적으로 올바른 진술이다. 우리는 대보지 않으면 그 어떤 것의 길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대보는 기준으로 “자”라는 도구를 발명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를 발명한 것은 대략 기원전 2000년전 쯤인 것 같다.



    [각주:

    1

    ]



    그로부터 약 4천년이나 지난 후, 사람들은 자가 주변 온도에 따라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각주:

    2

    ]



    자의 길이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땅을 겨울에 사는 것과 여름에 사는 것이, 같은 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럼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여름 한철에, 그것도 대낮에만 땅을 사고팔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잘 늘어나지 않는 금속을 사용해서 자를 만들었다.



    금속으로 된 미터 원기. http://en.wikipedia.org/wiki/Metre

    하지만 이것도 온도 변화에 따라 전혀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학적 변화때문에 손상될 수도 있고, 만약 누군가 테러를 일으켜서 이 원기가 부숴지기라도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길이가 다 틀리게 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여기서 나는 “틀리다”라는 표현을 썼다. 왜냐하면 1미터는 미터 원기에 의해서만 정해지기 때문에, 미터 원기가 변한다면 그 밖의 모든 길이는 다 틀린 값이 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변하지 않는 정의를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빛을 쓰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빛의 속력을 “측정”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었는데, 결국은 그걸 포기했다. 그리고 빛의 속력을 “정의”했다. 즉, 빛의 속력은 정확히 1초에 299,792,458미터를 가는 속력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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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수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제 우리가 아는 과학,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빛의 속력은 더이상 측정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1미터는 다음과 같이 정해진다. “빛이 2억 9천 9백 7십 9만 2천 4백 5십 8분의 1초 동안 진행하는 거리”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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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새는 여기에 일반상대성이론을 고려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에서”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즉, 무중력 상태에서 재든가, 아니면 충분히 짧은 거리에서만 재보라는 뜻이다.


    무슨 수로 3억분의 1초와 3억분의 2초 사이에서

    조금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논리적 순서로는 시간부터 쟀었어야 했지만 글의 시작을 이렇게 했으니 어쩔 수 없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대략 100억분의 1미터 수준에서 길이를 맞출 수 있으니, 땅의 크기가 100억분의 1미터 커지거나 작아졌다고 해서 화를 내지는 않도록 하자.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깐깐하게 따지나? 하지만 따지자면 따질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시간에는 빛을 사용해서 실제로 길이를 어떻게 재는지 알아보자.

    1. http://en.wikipedia.org/wiki/Ruler

      [본문으로]
    2. http://en.wikipedia.org/wiki/Thermometer 온도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본문으로]
    3. http://en.wikipedia.org/wiki/Speed_of_light

      [본문으로]
    4. http://en.wikipedia.org/wiki/Metre

      [본문으로]

  • 레이저-플라즈마 가속기로부터 위치 불안정성을 고려한 상대론적 전자 빔의 절대적 에너지 교정


    http://rsi.aip.org/resource/1/rsinak/v83/i6/p063301_s1

    Rev. Sci. Instrum. 83, 063301 (2012); http://dx.doi.org/10.1063/1.4725530 (9 pages)

    Absolute energy calibration for relativistic electron beams with pointing instability from a laser-plasma accelerator

    H. J. Cha, I. W. Choi, H. T. Kim, I J. Kim, K. H. Nam, T. M. Jeong, and J. Lee

    이번에 쓴 논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내가 담당한 것은 그림 7번과 그림 9번을 그리기 위한 계산이다. 한 6개월간 삽질한 것 같다.

  • 진행형 성공담

    요즘들어 쏟아지고 있는 멘토, 힐링, 치유, 성공, 자기계발에 관한 책들을 구경하다보면, 나도 성공하려면 저런 책을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법복사를 방지하기 위해 블로그에는 퍼가도 별 의미가 없을 만큼 낮은 수준의 글들을 올리고 있지만



    [각주:

    1

    ]



    그런거 쓰려면 쓸 수 있어보인다. “넌 괜찮아”, “포기하지 마” 등등. 나도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평가해야겠지만, 그닥 읽고 싶지는 않다.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과학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을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고, 물리학 연구소에서 병역특례를 마쳤다. 그리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생각중이다.

    살아있는 한 도전도 끝나지 않고 실패도 끝나지 않는다. 박사과정에 들어갔으면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서 좋은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아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또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서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 과제도 따내야 하고 실험도 계산도 끝나지 않는다.

    다른 직종 다른 직업 다른 직장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가 끝인가?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대학교 졸업하고서 대기업에 취직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이제 사회생활 시작일 뿐이다. 시작은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시작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다. 유명 벤처기업 사장의 성공신화를 살펴보면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결정과 판단을 하였고, 실패를 성공의 초석으로 삼아 마침내 우량 기업을 일궈냈다. 끝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방심하면 회사는 망하고 사장은 신용불량자로 추락한다.

    시작도 못한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5번정도 수능을 봐서 서울대에 들어가면 그것이 “시작”인가? 서울대 졸업하고 모 대기업에 들어가서 연봉 3600을 받으면 그것부터가 “시작”인가?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거부할 자유도 없이 시작되어있다. 사는 것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어느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도 인생 전체의 성공은 이룰 수 없다. 작은 고비 하나하나를 넘어가면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를 아직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남을 성공시켜줄 수 없고, 누구도 나를 성공시켜줄 수 없다. 사실은 인생에 성공할 수도 없다. 당장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과 실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성공은 끝나지 않는다.

    1. 이것도 페르마 드립의 일부.

      [본문으로]

  • 이온화 경향

    자유인사전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가 이온화 경향에 대해 눈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을 찾았다. 이런건 자습서 같은데 들어가야 한다. (교과서는 안됨.)



    Creative Commons License BY-NC-SA 3.0

    출처: http://licentium.net/wiki/index.php/%EC%9D%B4%EC%98%A8%ED%99%94_%EA%B2%BD%ED%96%A5

  • 와이드 화면

    모니터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엄밀히 말해서 가로의 길이와 세로의 길이다. 가로의 길이를 w, 세로의 길이를 h라고 하자. 그럼 대각선의 길이d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해

    처럼 표현된다. 위에 붙은 숫자 2는 같은 수를 2번 곱한다는 뜻이다.

    또한, 16대 9니 16대 10이니 하는 가로세로비는 w와 h의 비율이다. 가령, 가로세로비가 m대 n이라고 하면,

    이렇게 된다.

    요즘은 모니터를 팔 때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아니라 대각선 길이와 가로세로비를 알려주기 때문에 가로와 세로의 실제 길이가 얼마인지 알기 위해서는 간단한 계산을 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삼각함수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있다. 또한, 동시에,

    이런 관계도 또한 성립한다.

    따라서, 가로와 세로의 실제 길이는

    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4:3, 16:9, 16:10의 세가지 잘팔리는 가로세로비 중, 대각선 길이가 같다면 어떤 제품이 가장 “큰” 넓이를 갖고 있을까?

    직사각형의 넓이는 (초등학교에서 모두 잘 배워서 너무나 잘 알고있듯이) 가로와 세로의 곱이다.

    대각선 길이 d는 고정된 것으로 가정하였으므로, 실제 면적보다는 대각선 길이의 제곱으로 나눈 값을 기준으로 두는 것이 편할 수 있다. m과 n에 각각 숫자를 넣어보면



    이렇게 계산된다. 면적은 4:3인 경우가 가장 크고, 16:10인 경우가 그 다음, 16:9가 가장 작다.

    다시 말해서, 같은 값에 같은 대각선 길이를 가지는 모니터라면 4:3비율로 사는 것이 가장 “큰” 화면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가로가 긴 영화를 볼 때는 오히려 위아래가 잘리고 작은 화면에서 봐야 하는 비극이 생긴다. 따라서 16:9와 16:10을 놓고 고민하는 경우에는 16:10이 조금 더 넓다. 물론 영화를 볼 때는 16:9가 더 적합한데, 대각선 길이가 같은 경우 가로 길이는 16:9가 더 길기 때문이다.

    이 비율의 문제는 최근에 나온 여러 액정 화면들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패드와 LG의 옵티머스뷰는 4:3비율을 선택했다. 이것은 문서를 보는데 최적화되어 있는 크기이다. 하지만 아이폰, 갤럭시S등 스마트폰은 한쪽이 더 길다. 이것은 동영상 보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대각선 길이만 보고 크기를 계산하는 법을 알아보았다.

  • 별이 빛나는 밤

    원본은 다른 곳에 올렸다. 이건 백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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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중에, 아주 어지러운 명작이 있습니다.

    빈센트 밤 고흐,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에) http://en.wikipedia.org/wiki/File:Van_Gogh_-_Starry_Night_-_Google_Art_Project.jpg


    버스에 펼쳐진 야경은 현실과 조금 다른, 어딘가의 먼 동네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입니다. 정말
    정신병원은 언덕위의 하얀집인가봐요. 언덕 위에서 그린 느낌이 나네요. 땅에는 집들이 어둠속에 묻혀있고, 하늘에 달이 떠 있고
    별도 몇개 보입니다.

    우리가 별을 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일단 하늘을 바라봐야겠죠. 그러나 하늘이 환하게 밝다면? 대낮에 별 안보이죠? 하지만 일식때는 별이 살짝 보이죠? 별 보는데 가장 중요한건 “어두운 하늘”이예요.

    올버스의 역설


    생각해 보세요. 밤하늘은 어두워요. 별을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어두운 밤하늘이어야 해요. 서울시에서 공기오염을 줄여서 제주도처럼
    맑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하늘을 보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럼 일단 불부터 다 꺼주세요. 어둡지 않으면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두운 밤에서만 별이 보이는 이유는 별빛이 너무 흐릿하기 때문이예요. 처음 출발할 때, 별은 우리의 태양보다 수십배에서 수천만배 더
    강력한 밝기로 빛을 낼 수도 있지만 너무나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희미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주변이 조금만 밝아져도 별빛이
    배경에 묻혀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밤하늘이 깜깜한 것도 당연히 당연한게 아니예요.
    왜냐하면, 우주는 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다 틀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우주가 무한히 크고, 무한히
    오래되었으며, 우주에는 별이 무한히 많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뉴턴이 제창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그 이름답게 이
    우주 어디에서나 잡아당기는 힘만을 제공합니다. 별이고 은하고간에 뭐든지 잡아당기면 당연히 끌려올 것이고, 그럼 우주는 한 점으로
    모여 있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알다시피 우주는 한 점이 아니라 아주 큰 공간이죠. 무한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매우 큰
    공간입니다.

    그래서 우주가 무한히 크고, 무한히 오래되고, 우주에 별이 무한히 많이 있다면 밤하늘은 낮과 다름없이
    아주 환하게 빛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주에 별이 무한히 많이 있고, 우주가 무한히 크다면, 하늘에서 어느 점을 찍어도
    거기엔 별이 있어야 하거든요. 우주까지 갈 필요도 없고, 명동에 나가보세요, 그 숨막히는 인파 속에서 사방을 둘러보세요. 어딜
    봐도 커플입니다. 단 한틈도 빼놓지 않고 사방이 커플로 가득 차 있어요. 거리는 멀고 가까움이 다를 수 있어도 그 끝에는 커플이
    있다는 것. 즉, 우주에서 어딜 봐도 별밖에 없다면 그 별빛에 의해서 우리의 밤하늘은 별천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새하얀 도화지처럼
    밝아야 한다는 뜻이죠. 대낮에도 파란하늘 따위는 볼 수 없어요. 새하얗게 빛나야 해요.

    올버스의 역설 설명. http://en.wikipedia.org/wiki/Image:Olber%27s_Paradox_-_All_Points.gif Kmarinas86, under CCL3 by-sa

    그러나! 잘 알다시피, 대낮에는 푸른하늘 심야에는 까만하늘이죠. 왜 이러는 걸까요?

    이것을 올버스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독일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버스가 제기한 문제라서 올버스의 역설입니다. 밖에만 나가봐도 커플로 넘쳐나는데 왜 밤하늘은 어두운가? 흥미롭죠?

    올버스의 역설에 의하면 어느 점을 보더라도 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한점을 찍어본 사진이 있습니다. 미국은 돈이 많아서 사진도 예쁘게 잘 찍는 것 같아요.

    울트라 허블 딥 필드. http://en.wikipedia.org/wiki/File:Hubble_ultra_deep_field_high_rez_edit1.jpg


    의 사진은 “울트라 허블 딥 필드”라는 사진이예요. 밤하늘의 화로 자리(=에리다누스 자리)를 허블 우주 망원경이 넉달 반동안
    집요하게 찍어서 만든 사진입니다. 보는 영역은 보름달 크기의 10분의 1정도 되는 좁은 영역이예요. 저기 보이는 밝은 점들은 별이
    아니라 은하들입니다. 은하처럼 생긴 모양이 있는 것 말고, 작게 찍힌 점들도 전부 은하들이라는 뜻이예요. 밤하늘에서 별이 없는
    어두운 부분을 골라서 찍은 사진이거든요. 네. 그 점 하나하나가 태양만한 별 2천억개 정도 되는 별들의 모임인 은하들이예요.
    예쁘죠?

    예쁘다고 넋놓고 있지 말고, 넋은 넣어두세요, 이 사진에서도 잘 보면 여전히 대부분이 까만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어딜 보더라도 거기에는 별이 있긴 있지만, 여전히 별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아요.


    버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별빛이 오다가 중간에 있는 우주 먼지에 의해서 흡수된다는 설명을 해 봅니다. 매연이 가득
    끼어있는 서울 하늘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고, 맑은 공기의 제주도 하늘에서는 별이 그냥 확 쏟아진다는 것과 같은 설명입니다.
    일단 불부터 꺼주세요.

    하지만 이 설명은 곧바로 반박당하죠. 별빛이 아무리 흐려도 우주 먼지에 흡수되다보면, 언젠가는 그 우주 먼지가 빛나게 되거든요. 먼지가 빛난다는 게 무슨 헛소리냐고요? 실제로 있습니다. 그 빛나는 우주 먼지.

    독수리 성운. http://en.wikipedia.org/wiki/File:Eagle_Nebula_from_ESO.jpg

    위의 사진은 독수리 성운을 찍은 사진입니다. 먼지구름 크기는 대충 60광년정도 합니다. 1광년은 9조 5천억킬로미터니까, 대략 600조 킬로미터 정도 되겠네요. 산수 틀렸다고 욕하지 마세요. 실제로는 77×55광년 크기예요.

    뿌옅게 빛나는 그 안개같은 부분이 “먼지”에 해당해요. 이 먼지는 그 주변에 있는 별들 때문에 가열되어서 빛이 나는 겁니다. 지렁이가 밟으면 꿈틀하듯 먼지도 열받으면 언젠가는 빛나게 되어 있어요.

    이 문제는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해결합니다. 즉, 허블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ㅎ결된 것이죠. 허블이 발견한 것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수식으로 쓰자면

    멀어지는 속도 = 은하까지의 거리 곱하기 허블 상수


    렇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허블 상수는 우주의 나이의 역수가 됩니다. 이 때쯤, 빛이 달려가는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었어요. 따라서, 우주에 나이가 있다면 빛이 아무리 오래 달려도 우주의 나이보다 오래 달릴 수는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빛이 우주의 나이만큼 달린 거리보다 더 먼 곳에 있는 별들로부터 출발한 빛은 아직 지구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허블 딥
    필드에 찍힌 사진들도 “우주 안쪽”에서 온 빛이니까 찍힌 것이죠.

    아무튼, 이러저러 하여 밤하늘이 어둡다는 것은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다행이죠. 안그러면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오빠 별 드립을 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별 드립을 칠 여자친구가 있는건 아닙니다.

  • 물리 시뮬레이션 모음


    http://phet.colorado.edu/ko/simulations/category/new

    물리 교육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잔뜩!

    학술 분류에서 물리와 수학을 떼어내서 분류를 다시 해야 할까 싶다.

  • 별 헤는 밤

    다른 곳에 올리려고 쓴 글. 초고. 완성판은 그 “다른 곳”에 올라갈 예정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고전역학 연습문제이므로 심심한 사람은 풀어보아도 좋다.

    —-

    별 헤는 밤.

    오늘은 시 하나 감상하면서 시작하죠.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 쟘”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헤는 밤”은 식민지 시절, 창씨개명을 하고 이름을 잃어버려야 했던 슬픈 역사가 담겨있죠. 제가 국어 전공자는 아니므로 정확히 아는지 모르겠지만, 시적 화자는 이 시에서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다 헤아리려고 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 가을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사실 그는 하늘의 별을 다 헤아릴 생긱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아침이 오기 때문이고, 내일도 밤은 찾아오기 때문이고, 청춘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는 내일은 별을 다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청춘을 다 썼다면 별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네… 죄송합니다. 시인에게는 미안한 단정이지만 그렇게 안됩니다. 우리 우주는 별이 너무 많아요. 일단 우리 태양계에만, 지구 빼고도 9개나 있죠. 태양계에는 태양,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태양계 안의 별은 세어보면 되니까 어렵지 않아요. 빤히 보이는거 하나, 둘, … 세어보면 되거든요. 그래서 수성에 추억을, 금성에 사랑을, 화성에 쓸쓸함을, 목성에 동경, 토성에는 시를 떠올릴 수 있죠. 어머니는 아련하게도 잘 보이지 않아요. 천왕성은 너무 희미해서 눈으로 볼 수가 없거든요.

    하늘의 별을 세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하늘을 잘게 쪼개서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별로 별 수를 센 다음 다시 합칩니다.

    태양계를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은하계인데,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기를 은하계에는 태양만한 질량의 별이 2천억개가 있다고 합니다. 은하계에 있는 별은 그럼 어떻게 셌을까요? 과학자들은 은하계의 별을 세기 위해서 은하 전체의 질량을 구하고, 이 수를 태양의 질량으로 나누어서 별의 수를 구합니다. 아니 그럼 은하 전체의 질량은 어떻게 구했냐고요? 또, 태양의 질량은 어떻게 구했냐고요?

    이걸 위해서 일단 지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선 지구 표면에서의 중력 가속도를 구합니다. 지구 표면에서의 중력 가속도는 집에서도 흔들이 추를 흔들어서 잴 수 있습니다. 길이를 정확히 알고, 진동 주기를 재면, 여기서 중력 가속도를 구할 수 있게 되죠.

    지구 표면의 중력가속도를 알았으면, 이제 지구의 크기를 알아야 해요. 지구의 크기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사용한 그림자 방법이 가장 유명합니다만, 요새는 인공위성이 있으니까 그냥 밖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네요.

    지구의 크기를 알아냈으면, 우리 발 아래에 있는 지구가 만들어 내는 중력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력의 크기로부터 지구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죠.

    이것을 위해서는 만유인력 상수도 알아내야 하는데, 만유인력 상수는 외트버스의 비틀림 저울을 사용해서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을 직접 측정해서 알아내죠.

    다행히도, 우리 발 아래에 있는 질량의 크기는 한 점에 모여있거나 우리 발 아래까지 가득 차 있거나 텅 비어있거나 상관 없이 지구 중심으로부터 우리보다 가까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지구의 질량을 알았으면, 태양의 질량을 알기 위해서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알아야 하네요. 왜냐하면 지구는 태양의 중력때문에 원운동을 하므로, 이때의 중력이 구심력이고, 따라서 거리를 알면 태양의 질량을 알 수 있어요.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알기 위해서, 일단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알아낼 수 있는데, 지구의 질량과 공전주기를 알고 있으므로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어요.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냈으면, 드디어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를 알아낼 수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달은 쟁반같이 둥근달도 아니고, 눈썹같은 초승달도 아닌 딱 반달이예요. 왜냐하면, 반달일 때는 태양-달-지구로 이루어진 삼각형에서, 달에 해당하는 꼭짓점의 각도가 직각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삼각함수를 사용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알 수 있게 되죠.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알았으면, 이제 지구의 공전주기는 잘 알고 있으므로 만유인력의 공식을 써서 태양의 질량을 알아내게 됩니다.

    태양의 질량을 알아냈으면, 이제 은하의 질량을 알아야 하네요. 답은 알고 있는데 방법이 궁금하죠. 도대체 과학자들은 태양의 2000억배짜리 물체의 질량을 무슨 수로 재 본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다음 시간에…

    별이 몇개나 있나 세어 보자고 한 것 뿐인데, 꽤나 복잡하군요.

  • 천문대

    별마로 천문대


    http://www.yao.or.kr/introduce.asp?location=001

    1인당 5천원.

    아마 가장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강원도 영월이라는 점. 서울에서 가기에 꽤 멀다.

    중미산 천문대


    http://www.astrocafe.co.kr/main/main.php

    1인당 2만원.

    꽤 괜찮다. 여긴 예전에 한번 가본적이 있다. 경기도 양평에 있어서 서울에서 가깝다. 그런데 비싸다…

    계속 조사중…

  • 나와 마주할 때

    과학자들의 로망, 낭만, 꿈, 그 무엇! 바로 시간여행. 영화 “백 투더 퓨처”를 보면 주인공이 과거로 가서 자기 아빠를
    만납니다. 그런데, 자기 엄마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어 버려서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는 위험에 빠집니다. 그래서 찌질이 아빠를 엄마랑
    엮어주기 위해서 갖은 삽질을 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죠.




    안타깝게도 제 아들놈은 미래에서 날아오지를 않네요. 이자식..



    .







    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은 수많은 문제와 역설을 만들어 냅니다. 그중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사람이 자신을 죽여버리는 경우입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데, 1. 그러므로 시간여행은 말도 안된다. 2.
    자기 자신을 죽인 그 순간 우주가 평행우주로 갈라진다. 3. 자기를 죽인 순간 자신도 없어진다.


    4. 뭔 개소리냐.





    떤 해석이 맞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건 타임머신을 개발한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저는 앞에서 지금까지 썼던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가서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동시간대에 자신이 둘 존재하는 경우이고,
    따라서 “나의 복사” 문제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서 얘기한 3가지 해석 중 어느 것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매우 오묘하게 되는데요, 여러 해석 중에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변한다는 3번 해석을 채택 해 봅니다. 그럼, 일단 과거의 나는 미래에서 온 나를 만났어요. 그럼 과거의 나의 관점에서는 또다른
    나를 만난 거예요. 그럼 그것을 “나”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아마 잘 안될 겁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나”로 인식하는
    것은 현재의 [현상]이지 과거나 미래와는 상관이 없어요. 즉, 지금 이 순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관점이지 보편적인 생각이나 인정받는 주장은 아닙니다. 과거의 나의 관점에서는 아무리봐도 미래에서
    온 나는 타인으로 간주됩니다. 미래에서 온 나의 몸을 내가 맘대로 조종할 수도 없고, 미래에서 온 내가 아파한다고 해서 현재의
    내가 아프지는 않을 테니까요.





    래에서 온 나 역시 과거의 나를 “나”의 일부나 그 자체로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과거의 내가 아파한다고 해서,
    아팠던 기억은 남아 있겠지만 지금 당장 아프지는 않을테니까요. 물론 과거의 내가 느끼는 생각이 그대로 자신의 “옛 추억”에
    떠오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떤 환상 같은 것이지 현재 느끼고 있는 “나”라는 인식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간의 인기를 잠깐 끌었던 화제의 소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아무도 눈치 못채게 등장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나름 외계인 나가토 유키는, 사실 정보 생명체인데, 뭐 어쨌거나 시공간을 넘어온 자신에 대해서 미래에서 왔든
    과거에서 왔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존재입니다. 이 아가씨의 경우는 존재 자체가 특이한 경우라서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시공간을 넘어온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런 상상 많이 하잖아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가장 알려주고 싶은 미래의 진실.


    로또번호.




    그런거, 과연 말해준다면, 나는 그 말을 믿고 자신을 바꿔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