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학술

  • YTN에서 새로운 우주론 등장


    http://www.ytn.co.kr/_ln/0104_200912171003472703

    YTN에서 새로운 우주론을 내놓았다.

    태양계 나이 1000배 증가, 우주 나이 300배 이상 증가.

    이거야말로 정말 후덜덜한데…-_-;


    영어 번역하다가 4.5billion에서 billion을 “조” 단위로 본 것 같다. 영국식 영어에서는 billion이 “조” 단위임. 미국식에서는 “10억”단위.

    http://endic.naver.com/endic.nhn?docid=116130

  • 소통의 문제

    친구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연구실 사람들이 자기가 자리에 없으면 놀러 간줄 안다고 불평했다. 자기는 분명히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것이고 일하는 시간에 놀러가지 않는 사람인데 오해받으니 불쾌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실제로 놀러 가는 주제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니 더 화가 난다고 한다.

    문제의 원인은 연구실의 다른 사람들이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즉, 무슨 연구를 하고 있고 그 연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불어, 그 연구실의 다른 사람들이 자기는 실제로 놀러 다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역시 놀러 다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두가지 부분이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원인 중의 하나를 잡아야 하는데, 첫번째 원인을 붙잡는 방법은 자신이 얼마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자랑하고 다니는 것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잘난척한다고 하는 뒷말을 들을 수 있으니 그 정도와 빈도에 주의하여야 한다. 두번째 원인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연구실의 다른 사람들이 놀러 다니지 않도록 되는 것과 다른 하나로 자신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처럼 놀러 다니는 것이다.

    두번째 원인을 해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데, 첫번째 방법인 다른 사람이 놀러다니지 않도록 하는 것은 처리해야할 대상이 많고 그 대상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부분이 문제다. 그 친구가 막내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방법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공부를 하지 않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공부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고 놀러다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 친구보고 장래희망 포기하고 대충 살라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해법이 없는 문제가 되었다. 모든 사회 문제의 모범답안이지만, 이런 경우에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조언 외에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출세라고 쉬운건 아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 역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 인체의 신비


    http://vkh3.kisti.re.kr/

    돌아다니다가 발견.

    인체 전신 CT 단층 사진을 공짜로 제공함. 인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들어가서 보기 바람. (연구용도로도 사용 가능.)

    (낚임을 방지하기위해 미리 말해주지만, 남성의 신체임.)

  • 마음가짐

    중고로 산 Kittel 고체물리학 책에, 그 책을 원래 갖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적어놓았다.

    “밖으로는 여유있게, 안으로는 냉정하게”

    이렇게 살면 성공할 수는 있어도 인생을 너무 딱딱하게 살게 된다. 밖으로 아무리 여유있게 보이려고 노력해봐야 자기 자신에게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여유가 생기겠나.

    그렇다고 해서 안으로는 여유있게, 밖으로는 냉정하게 해도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바라지 자신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을 바라지는 않는다.

    비슷한 이유로, 안으로도 냉정하고 밖으로도 냉정한 사람은 더 나쁘다.

    세상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변화하지 않고 한가지 관점만을 유지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다.

    여유로운 면과 냉정한 면을 모두 충분히 갖추고, 적절히 조화시켜서 세상에 맞춰서 적용하는 것이 좋다.

    그 말을 적어둔 페이지에, 같은 사람이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말자”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같은 유명한 말들을 적어두었다. 진짜?!

    이런 말들을 읽었을 때, 우와 멋지다. 나도 따라할거야.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왜?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서는 안되는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남에게 부끄러운 일과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은 다른가? 다를 수 있는가? 같아야만 하나? 달라야만 할까?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면 내가 손해를 보나? 이득을 보나?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좋은게 뭐지? 나쁜건?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란 도대체 뭐지?

    멋진 말을 보는 순간, 질문을 쏟아내고 그에 따른 자신만의 타당한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말자”는 문장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르려고만 한다면, 완전히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 심지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살면서, “난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으니까 잘 살고 있는거야”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건 안하느니만 못한 좌우명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후렴구에서 읽을 수 있는건 “그럼 결국엔 성공할거야”라는 낙관론이다. 하지만 인생이 과연 그렇게 쉬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 있는데,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인가?

    그 낙관론을 따지지 말고, 문장 자체로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있을까? 진짜로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멋진 말이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나한테 물어보면 “우와, 그거 정말 멋진데? 좌우명으로 쓰고 싶다”는 문장을 많이 알려줄 수 있다. 중요한건 그걸 안다는게 아니라 그중에 단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두가지 행동강령을 담고 있다. 우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니까 자신만이 그 답을 알 것이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실천하기로 정했으면, 별다른 이유가 없는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실패하건 성공하건 꾸준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실패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겠는가 싶다.

    그정도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멋진 말을 듣고 그 말에 감동하기 전에.

    이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글 :

    http://snowall.tistory.com/95

  • 공부하는 방법 3줄요약

    간단히 말해서

    스스로 바보라 생각하지 않으면 책을 빼먹고 읽게 되고

    스스로 천재라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를 놓치게 된다.

  • 실험일지

    실험 세팅이 다시 시작되었다.

    = 사무직 종료, 육체 노가다 시작.

  • 이론물리학의 즐거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3년전에 대학원 다닐 때 이해하지 못했던 Quark의 Mixing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되었다. 아울러 Lepton의 Mixing도 어느정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실험이었다면 실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서 이론을 도입해야겠지만, 아무튼 실험을 진행해야 하고 실험 진행은 버스 안에서는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난 입자물리학 이론을 해야 할 것 같다. 밥은 좀 굶더라도. 심장이 두근거리는걸.

    음…그렇지만 내가 재능과 노력이 좀 부족하여 미래의 내 배우자와 애들이 굶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긴장된다.

  • 운명의 조추첨

    스포츠 뉴스를 보다가 이제 2010년 월드컵의 조추첨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운명의 조추첨이랜다.

    아…이런 비겁한.

    조추첨 정도를 “운명적이다”라고 말하는 건 참 비겁하다. 조추첨에서 조가 결정되는 것은 순전히 확률에 따르는 것이고, 결국은 운에 맞춰서 결정되는 법이다. 강팀들과 편성되면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고 약팀과 편성되면 본선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약팀과 편성되서 편하게 본선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겁한 것 같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며 매일매일 경기력 향상을 위해 훈련하는 감독과 선수, 스탭진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약팀과 만나서 16강, 8강 등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비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약팀을 만나기를 바라고, 실력이 성장하지는 않더라도 성적이 좋기를 바라는건 비겁하다. 차라리 탈락하더라도, 강팀이든 약팀이든 좋으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가진 실력을 아쉬움 없이 발휘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각주:

    1

    ]


    브라질이나 독일같은 팀을 보면, 그들은 어느 조에 편성되는가는 신경쓰지 않는다. 실제로 굉장한 실력을 가진 팀들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에 어느 팀을 만나든 열심히 뛸 것이고 그만큼의 결과를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태도는 본받아야 한다. 월드컵 32년 연속 본선 진출인가, 뭐 그런걸 쾌거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브라질이나 독일은 우승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렇게 운에 맡기고, 약팀과 한 조가 되면서라도 본선 진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실력을 깎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 경기의 본질은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다는 것이고, 거기서 나타나는 승부는 그렇게 열심히 뛴 결과에 불과하다. 선의의 경쟁을 하는 운동 선수들에게 최대의 모욕은 “넌 나보다 못해”가 아니라 “나 대충 뛰었는데”가 될 것이다. 월드컵에서 약팀과 한조가 되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대충 뛰고서도 16강 진출이 가능할까? 그것이 가능한가 여부는 둘째치고, 그것은 상대팀을 무시하는 일이다. 차라리 독일같은 강팀한테 대충 뛰고서 져주면 독일이 황당해 하기는 하겠지만.

    방송으로 중계되는 스포츠의 본질은 결국 대리만족이다. 우리편 선수들이 승리를 하면 나도 승리한 것 같이 기쁘고, 패배하면 나도 패배한 것 처럼 슬프다. 하지만 대리만족은 대리만족일 뿐 그것이 나의 진정한 만족은 되지 않는다.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건 기원하는 것으로 끝내고, 그들이 열심히 뛰었으면 결과가 어떻든 충분히 재미있게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 축구에서 졌어도, 당신이 당신 자신의 현실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1. 물론 이 경우에도 탈락하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가진 실력을 모두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겠지만. 사실 이 얘기는 국가대표팀 소속 감독, 선수 등 외에는 하면 안되는 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정말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어떻게 짐작이라도 할까?

      [본문으로]

  • 김연아 충격

    서울로 올라오다가 버스 안에서 “김연아, 충격의 2위”라는 방송 보도를 봤다. 내용은 김연아 선수가 일본에서 있었던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2등을 했다는 건데, 난 전혀 충격이 없었다. 그게 왜 충격적이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걸 충격적이라고 보도하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김연아 선수가 우리나라 국가대표이고, 김연아 선수가 2등을 했다는 뜻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등이라는 뜻이다. 그게 뭐 어때서?

    충분히 잘한 것 아닐까? 김연아 선수가 최근 몇년간 계속해서 1등을 유지했고, 앞으로도 몇년간은 상위권에 있을 것이 예상되는 굉장히 잘하는 선수이지만 세상에 김연아 선수만 1등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김연아 선수보다 더 뛰어난 선수는 언제든지, 몇명이든지 등장할 수 있다.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고 점점 추격해서 더 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연아 선수가 노력이 부족했나? 그것도 아닐 것이다.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는 김연아 선수만이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좋은 결과는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서 그만한 결과를 이뤄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충분한 만큼 이상의 노력을 했고 공정하게 경기를 펼쳐서 얻은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이 설령 세계 최하위라 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물며 2등이다. 세계에서 2등을 한 것이다. 난 김연아 선수에게 더 열심히 해서 다음번엔 꼭 1등을 하라는 따위의 말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다. 2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상관 없으니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큼 노력하기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등을 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올림픽 중계를 봐도 은메달부턴 아쉬워한다. 물론 더 잘할 수 있는데 2등한건 아쉽긴 한데, 아쉬움은 경기를 직접 참가한 선수 본인이 아쉬워하면 되는 것이지 그걸 지켜보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아쉬움을 넘어서 그 선수를 좀 더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면 충분하다고 본다. 김연아 선수가 계속 1등 하다가 가끔 2등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부진”이라든가 “충격의” 같은 말을 들을 정도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원래 1등이란 1등에 도달하는 것보다 1등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1등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거기에 안주하면 순식간에 꼴찌로 떨어진다. 1등을 하면 좋지. 나쁜건 아닌데, 그래서 그렇게 아둥바둥 죽기살기로 노력해서 1등을 하면 뭘 어쩔건데?

    옛날에, 고려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장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칭찬해도 무참히 깨버렸다. 주변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이 생각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길을 묵묵히 간다면 그건 좀 바로잡아줘야겠지만, 그래서 스승이 있는 것 아닌가. 아무튼, 뭔가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그 분야의 1등을 할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만족하는 만큼 노력하였는가를 스스로 평가하고, 스스로 보기에 만족스럽다면 거기서 멈추면 된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만큼 더 노력하면 된다. 현재에 만족한다면 행복할 것이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발전할 것이다. 이것이 목표인 사람은 만족하느냐 아니냐에 관계 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위라고 하는, 지극히 드문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한계에 도달했는데도 무모한 노력을 할 것이며, 충분히 만족스러울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성공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1등을 포기해라. 꼴등을 겁내지 마라. 당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기준인데, “나는 어느 지점에서 만족할 것인가?”를 정하면 된다. 나머지는 누구나 다들 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추가 : 판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논란이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말끔히 해명되기를 바란다. 1등이든 2등이든 상관은 없으나, 평가는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