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학술

  • 중독은 나빠요

    마약, 술, 인터넷, 대학, 사랑, 시간, 담배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키워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중독(Addiction)이다.

    중독의 증상을 볼까?


    중독

    (中毒)은 상관 없이 한 가지 일을 반복해서 하는 충동을 말한다.


    1954년


    캐나다

    맥길 대학의 제임스 올즈와 피터 밀너는




    레버를 누르면 뇌 특정부위를 전기로 자극하는 실험장치를 고안하였다. 그러자 쥐는 탈진할 때까지 계속 레버를 누르는 일을
    반복하였는데, 이 때 뇌가 자극된 부위를 ‘쾌감회로’라 한다. 쾌감회로에는 복측피개부위(VTA), 미상핵, 전전두엽이 있으며,
    복측피개부위에서 생성된

    도파민

    이 미상핵과 전전두엽으로 들어갈 때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약물로 인해 쾌감회로가 변형되면 중독증상이 나타난다.


    금단증상

    때문에도 약물을 끊지 못하는데, 이 증상은 뇌의 다른 부위에서 일어난다.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EC%A4%91%EB%8F%85 에서 발췌.

    술, 담배, 마약에 중독되는 것은, 뭐 좋아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것들에 중독되는 것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나머지는? 인터넷 중독은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치자.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라든가, 인터넷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폐인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 인터넷 역시 문제다.

    시간의 중독성은 내가 예전에 적은 아주 짧은 단상(

    삶에 중독된다)

    에서 보여줬듯이, 분명히 중독성이 있다.

    사랑 역시 중독성이 있다. 사랑에 깊이 빠져 있던 사람들은 헤어지고 난 후에 허전함을 느끼는데, 이것은 마치 금단현상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중독 문제에 관한 얘기였다. 위의 예들은 전부 개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 자체만으로는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주:

    1

    ]



    하지만, 개인은 중독되지 않았지만 사회 전체가 중독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의 예로 대학과 윈도우를 들어보려고 한다. 작은 뇌세포들이 아주 많이 모여서 하나의 뇌 구조체를 이루듯이, 사람 하나하나가 모여서 사회 전체를 만든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대학은 우리 사회 안에서 일종의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이다. 의무교육이라서? 과연 그럴까.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패스한 천재들도 대학에 간다. 천재가 대학에 안가면 뭐하냐고? 글쎄,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유명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가령 우리의 우상 비스무리한 사람인 “빌 게이츠”는 대학을 자퇴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학에는 왜 가야 하는걸까? 물론, 나 역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긴 하다. 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정말 신기한 일들을 많이 봤다. 일단, 대학교에 애들이 들어오면 공부하기를 싫어한다. 난 공부가 정말 좋아서 대학에 왔고, 그래서 좋아하는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진짜 열심히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교수님이 문제를 어렵게 낸다고, 수업을 어렵게 강의한다고 불평하면서 레포트도 안내고 수업도 결석한다. 그럼 왜 다니는데? 어차피 안 나올거면, 등록금 내지 말고 그 돈으로 여행을 다니거나 학원을 다녀도 되잖아? 물론, 대학생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본 사람들중의 일부가 저런 행태를 보여줄 뿐이고, 다른 대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겠지.

    하지만 나를 좌절시키는 건, 대학생들이 고시공부나 공무원시험, 선생님 되기에 미친듯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전공이 어려운건 다 좋다 이거야. 전공 결정됐다고 누구나 과학자 되어야 하는것도 아니고 누구나 연구소 가야 하는거 아니다. 전과 하는것도 좋고, 교직이수 하는것도 좋다. 다 자기 선택이다. 근데, 그렇게 선택한건 나쁜게 아닌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을 선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다. 사람이 필요한 분야는 너무나 많은데, 그 하고많은 분야중에 한쪽으로 공급이 쏠리면, 한쪽은 공급 과잉이고 다른쪽은 맨날 공급이 부족하다. 당연히 취업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발생한다. 게다가 해결도 안된다. 왜냐하면 이미 공무원이 되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파묻혀서 시험공부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아래로 낮춰보자. 중고등학교에서는 지금 공교육 붕괴가 발생하고 있으며, 사교육을 맹신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잠깐! 공교육 붕괴를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살펴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학교 공부만 해서 어떻게 XX대나 YY대에 가나요? 논술도 공부해야하고 면접도 봐야 하는데, 그런거 제대로 챙기려면 아무래도 과외나 입시 전문학원이 낫죠.

    뭐, 다들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초점은 물음표 뒤에 있는 “논술도…면접도…”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앞에 있다. “학교 공부만 해서 어떻게 대학에 가나요?”라는 질문에서 숨어있는 전제조건이 있는 것이다. “대학에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YES”라고 이미 대답된 상태에서 모든 얘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누구도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각주:

    2

    ]



    여기서 우리는 이상한점을 느껴야 한다. 대학에 가는건 대체 언제부터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냐.

    공교육이 붕괴된다는 얘기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으니까 나오는 얘기였다. 그럼, 공교육의 목적은 대학에 가는 건가? 더군다나, 누구나 원하는 대학이 전부 다른것도 아니고 뻔히 몇몇 대학에 몰려있는걸 아는 마당에, 공교육이 성공하면 누구나 유명 명문대 가겠네? 드디어 우리는 공교육 내실화, 사교육비 지출 0%의 해법을 찾았다. 바로 그 유명 명문대의 입학 정원을 전국의 수험생 숫자와 똑같이 맞추면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대학이냐고? 글쎄, 우리나라의 유명 4년제 국립대중의 하나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재적생수가 27만명에 현재 재학중인 학생 수가 13만명이다. 이정도면, 전국 수험생인 50만명에서 100만명 정도가 모두 입학해도 가르칠 수 있는 기반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학에 가야 하는것이 중, 고등학교때 하는 공부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대학은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만들기 위하여 거쳐가야 할 수많은 거점중의 하나가 될 수는 있다. 모든 중, 고등학생이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대학을 가고 싶어한다는 건 알면서, 왜 가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술이 마시고 싶긴 한데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 “날씨가 좋으니까”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더군다나 대학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4년(적게는 2년, 많게는 6년)을 보내는 곳이다. 의무교육도 아닌데 이정도 고민도 없이 대학에 간다면, 막상 입학하고나서 느끼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수 없이 크다. 왜냐고? 별다른게 없으니까. 대학에 들어가면 자기 인생이 쫙 펼쳐지고, 탄탄한 성공이 보장될 거라고 생각하던 애들이 대학에 입학했더니, 명확하던 인생이 갑자기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1학년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왜? 공무원 시험이라는 목표는 명확하거든. 시험에 붙으면 OK고, 떨어지면 NO다. 얼마나 명확한가. 하지만 취직을 할려고 보니, 어디 대기업은 아무나 가는게 아닌것 같고 중소기업을 가자니 돈을 못버는거 같고 대학원을 가자니 돈이 없고 그냥 졸업하자니 백수다. 게다가 취직이 된다고 평생직장도 아니다. 몇년 지나면 짤릴 걱정을 해야 한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댄다. 사오정, 오륙도, 이런말이 난무하는데 겁먹지 않을 청년이 어딨겠나.

    내 생각에, 대학에 가야만 성공한다는, 또는, 대학에 가야만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학부모들의 막연한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리고 너무 어릴때부터 세뇌당해 오다보니 이젠 그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부모님이 젊으실때 경쟁하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그냥 남들 다 가니까 대학에 따라가는건 그 돈을 아껴서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 바보같은 짓이다. 과외비, 학원비, 대학교 등록금, 대충 고등학교+대학교 해서 6~7년간 쓰는 돈이 대략 5천만원정도 될 것이다.



    [각주:

    3

    ]



    대학 나오면 연봉 5천만원이 보장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좋은대학 가면 1년에 5천만원씩 버는 직장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정말 옛날얘기다. 연봉 4천만원 받는 직장인이 서울 어딘가에 자기 집사는데 10년 걸린다는 우울한 신문기사를 봤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24살이다. 바로 취직되면, 집사려면 34살까지 가야 한다. 근데 그마저도 대학 나왔다는 걸로는 보장이 안된다니깐요.

    대학에 와서도,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서 자기 갈 길 찾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으면 실패를 그냥 실패로 끝내지 않고 다음번 도전을 위한 디딤돌로 만들테니까. 사실 대학에 오건 안오건, 자기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서 미친듯이 달려가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성공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시기가 빠르건 늦건,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가 없이 그냥 무작정 들어와서 흘러가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 고생을 한다. 그리고 그 고생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목표 없이 들어온 것 까지는 좋은데, 들어와서도 자기 할일 못찾고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4년 있다가 졸업하는건 가장 나쁜 경우가 된다.

    중독은, 상관없이 한가지 일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대학에 들어오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에 들어오는 후배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꿈을 갖고, 남들 다 가니까 대학에 진학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명확히 하고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도 정신좀 차렸으면 좋겠다. 공교육의 목적은 대학교 입학 성공이 아니라 인성 개발이다. 입시 교육은 그냥 사교육에 맡기고, 공공 교육기관에서는 제발 학생들의 인성 개발과 인격 수양에만 힘써줬으면 좋겠다. 그것만 제대로 해 줘도 우리나라의 미래는 눈부시게 밝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개인의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되려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해야 한다. 가령, 담배가 그렇다.

      [본문으로]
    2.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꿈을 이루어 나가는 학생들,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소외당하고 있다. 소외당할 이유나 취직 등에서 차별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

      [본문으로]
    3. 과외비, 학원비를 한달에 50만원으로 치면 1년에 500만원정도, 3년간 1500만원이다. 대학교 등록금은 1년에 천만원이니까 4년간 4천만원이다.

      [본문으로]

  • 아날로그와 디지털

    Askhow에, 2001년 1월에 올라왔던 질문이었다.

    50대 주부입니다. 요즘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요.

    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말할 때 아날로그라 합니다.

    디지털시대의 감성.. 운운하며 모든 상품에 디지털이라는 접두사가 붙습니다. 많이 사용하는 고로 얼추 뜻도 알고 자주 사용하기도 하지만정작 어느 60대 아주머니가 알아듣게 설명해 달라고 해서 설명하려니 그제야 나 자신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이에 대한 나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사전적인 뜻만 말하자면…

    아날로그란 연속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디지털은 불연속적인 것을 이야기하죠.

    아무튼, 60대 아주머니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드리겠습니다.

    컴퓨터 = 디지털

    이것만 이해할 수 있다면 끝납니다. -_-;

    컴퓨터의 신호는 무조건 “전기가 흐른다”와 “전기가 안흐른다”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전기가 조금 흐른다” “전기가 많이 흐른다” “전기가 안흐른다” “전기가 흐르다가 만다” “전기가 흐를까 말까 한다” 등등등, 수많은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무조건 두가지로 생각합니다.

    흐르냐, 흐르지 않느냐.

    바로 이것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입니다.

    디지털은 무조건 “예” 아니면 “아니오”

    아날로그는 “적당히 하지” “할까말까” “안할래” “한번 해보고”

    …대충 감은 잡으셨죠?

    (디지털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설명하면 될겁니다)

    그래도, 역시 모르겠다면, “시계”를 생각해 보세요.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시계.

    아날로그 시계는 “10시 10분쯤”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디지털 시계는 “10시 10분”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저 “쯤”의 차이…

    아날로그 시계의 바늘은 9분에서 10분으로 넘어갈 때, 그 9분과 10분 사이에 있는 모든 부분을 다 휩쓸고 지나가잖아요 (연속적!!)

    하지만 디지털 시계는 9분에서 10분으로 넘어갈때, 숫자 1개가 바뀔 뿐이죠. (불연속적!!)

    디지털 시계를 개량해서 ‘초’까지 나타낼 수 있다고 해도, 결국 9초에서 10초로 “순식간에”넘어갈 뿐 9초와 10초, 그 사이의 영역은 건너 뛰고 맙니다.

    …이젠 아시겠죠…(후우…그래도 이해 못하시면 저는 방법 없습니다ㅠ_ㅠ)

    요즘을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컴퓨터가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겁니다. (삼성이 디지털을 선도한다고 자랑하는 것도 컴퓨터를 잘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이 컴퓨터를 대표한다면, 아날로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적인 것을 대표합니다. 자연적인 것 중에 딱 구분되는 것은 없죠. 선과 악도 어떤것이 선이고 어떤것이 악인지 엄밀히 구분할 수 없듯이.

    (뭐, 그래서 자연을 연구하기 위해서 카오스 이론이나 퍼지 이론 같은것이 나타났고, 그걸 컴퓨터에 적용시켜서 카오스 세탁기니 퍼지 세탁기니 하는게 등장한 겁니다)

    사실, 인간이 디지털화 된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넌 나쁜 놈이야!”라고 결정되면 두번다시 되돌릴 수 없듯, 디지털이라는 것은 그런 극도의 이분법적 사고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넌 나쁜 놈이지만 다시 착해질 수 있어”라고. 아날로그적으로 사고하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날로그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은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좀더 정밀하고 좀더 정확한 것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부정확한것은 살아날 수 없다는…

    “자로 잰 듯이”라고 말해도, 인간이 잰 것과 컴퓨터가 잰 것은 분명 다릅니다. 인간은 잴때마다 얼마정도의 오차가 생길 수 있겠지만 컴퓨터는 잴때마다 똑같습니다.

    나름 괜찮은 글이라 생각하여 올려둔다.

  • maple의 단점

    최근 잘 쓰던 Mathematica5.2를 버리고 Maple10으로 전향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뭐, 돌이킬 수는 없는 것 같고, 일단 Maple에 좀 익숙해져보고자 하는데 하도 답답해서 몇자 적어둔다. 졸업하면 다시 Mathematica로 바꿔야지.

    1.자바 기반

    최악의 단점이다. 자바 자체가 갖고 있는 범용성 등의 장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덕분에 메모리를 엄청 잡아먹는다. 펜티엄4 2.4GHzCPU에 1GB의 램을 갖고 있는, 나름 막강한 컴퓨터가 뻗어버린다. 그저 3×3 행렬에 변수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2.계산 시간

    Mathematica는 대충 처리할 부분은 대충 처리해서 확실히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처리된 부분을 그때그때 출력해서 체감속도도 빠르다 Maple은 반대다. 꼼꼼히 전부 계산하는데다가, 전부 처리된 다음에 한번에 출력해준다.

    3.사용자 정의 함수

    Mathematica에서는 별걸 다 함수의 변수로 넣을 수 있었다. 근데 Maple은 그게 난감하다. evaln이라는 함수를 쓰면 되긴 하는 것 같은데, 사용법이 직관적이지는 않다.

    4.행렬 계산

    Mathematica는 함수를 행렬에 넣어도 대충 알아서 eigenvector를 잘 계산해줬다. Maple은 에러를 내보낸다. 해서, 일단 변수로 넣고 나중에 합성함수로 만드는 방법을 쓰고는 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다.

    5.함수 계산

    내가 만든 함수에 숫자를 대입할때도 eval이라는 함수를 써야 한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그리고 방금 •쩐駭?-_-;

    6.클래식Maple과 그냥 Maple의 비호환성

    같은 버전의 maple인데 좀 호환 되게 해놓지 말이다. 두개의 저장 화일 형식이 달라서 서로 호환이 안된다. 게다가 저사양을 위해 만들었다는 클래식 maple은 마우스 휠이 안먹는다. 초난감한 상황이다. 그리고 클래식 maple이 방금 계산하다가 사라져버렸다. 나의 나름 막강한 컴퓨터의 뭔가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거냐.

    아아…구구절절이 단점이다. 저 그냥 mathematica 쓰게 해주세요…ㅜ_ㅜ

  • 라플라스 변환 VS 푸리에 변환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

    공학/물리학/수학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몰라도 사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부담도 문제도 없는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 가장 유명한 “적분 변환”중의 하나이다. 이건 어디에 쓰는 걸까? 아니, 일단, 왜 할까?

    두 변환의 공통점은 지수함수를 곱해서 적분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지수함수에 들어가는 숫자가 라플라스 변환에서는 실수이고 푸리에 변환에서는 허수라는 점이다. 어? 실수+허수는 복소수니까, 그냥 복소수를 지수에 올려서 곱해도 되지 않을까? 아이디어로 볼 때, 두 적분 변환은 완전히 똑같다. 게다가 라플라스와 푸리에의 생존 연도도 비슷하다. 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낸 걸까?

    이런 궁금증은, 풀려고 하면 끝이 없으므로, 난 그냥 내가 아는 수학적 지식을 통해서 그 아이디어를 유추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의 시작은 “자유”님께서 내 블로그의 방명록에 남긴 질문에서 시작한다. 인용하자면

    라플라스 변환법에 적분e^-st을 하는 이유 아십니까?

    왜 하필 e^-st를 곱해서 적분을 하는거죠?

    결과론적으로 라플라스를 이용해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대수적 기법으로 쉽게 푼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도저히 그 발상법 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

    누구나 해봄직한 질문인데, 왜 하필 e^-st인지는 나 역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함수들을 곱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적분 가능한 함수 f(x)의 적분변환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g(y)=Integral over x from -inf to +inf of L(y,x)f(x)

    이때 L(y,x)는 적분 가능한 2변수 함수이다. 물론 적분 가능하다는 건 제곱해서 적분했을 때 그 적분이 발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L(y,x)에 뭘 넣으면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까? 삼각함수나 지수함수는 빼자. 그건 이미 푸리에 변환과 라플라스 변환이라고 부른다.

    한가지 알아둘만한 점은, 푸리에 변환에 들어가는 삼각함수는 생각해보면 직교 함수 집합을 이루어서 완비집합이 된다.(complete set) 따라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함수라면 푸리에 변환을 통해서 완전히 표현할 수 있다. 근데 라플라스 변환은 그렇지가 않다. 직접 적분을 해보면 알겠지만 적어도 실수 변수 영역에서는 직교하지가 않는다. 어쩌지?

    이런식으로 직교하는 함수들의 집합은 여러가지로 찾아볼 수가 있는데, Legendre, Hermit, Bessel…등등, 듣기만해도 위대한 수학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Legendre함수나 Hermit함수 등이 갖지 못한 라플라스-푸리에 변환의 독특한 장점이 있다. 그것은, 미분과 적분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f(x)에 관한 푸리에 변환 표현식을 g(k)라고 하자. 그럼 f(x)를 미분한 것에 대한 푸리에 변환 표현식은 아주 간단하다. ik를 곱하면 된다. 물론 i는 허수단위이다. 라플라스 변환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변수 s를 곱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발상법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언뜻 이해할 법도 같은데…

    잘 생각해보면, 지수함수는 미분과 적분 연산에 대해서 불변이다. 다시말해, 지수함수는 미분연산자와 적분연산자에 대해서 고유함수가 되고, 그 고유값은 그대로 다시 변수가 된다. 다른 어떤 형태의 함수도 미분과 적분에 대해 불변인 함수는 없다. 이것은 선형 미분방정식을 라플라스 변환이나 푸리에 변환을 이용해서 나타냈을 때 미분방정식을 대수방정식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고유값 방정식의 의미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

    고유값 방정식이란 Ax=ax인 a와 x를 선형연산자 A에 대해서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걸 어디에 쓰냐고? Af=g를 만족하는 f를 알아내고 싶을 때, g를 고유값들에 대해서 표현하면 f에 고유벡터들의 성분들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f=x1+x2+x3이라고 할때, Ax1=a1x1등등인 관계가 있다면, Af=Ax1+Ax2+Ax3=a1x1+a2x2+a3x3이 되어서, g=b1x1+b2x2+b3x3인걸 알기만 하면 a1=b1, a2=b2, a3=b3인 것을 알게 되는, 대수방정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라플라스 변환이나 푸리에 변환을 해서 문제를 푸는 발상법은, 그 역사는 잘 모르겠지만, 미분연산자 자체를 연구하다가 미분연산자의 고유값 방정식을 만족하는 고유벡터를 알게 되어서 함수를 고유벡터를 이용해 표현하다가 나타나게 된 수학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버스 딜레마 2탄

    자, 딜레마에 빠져 봅시다.

    버스 정거장에서 예쁜 여자를 발견했다. 만약 버스 한대가 그냥 지나갔다면 내가 그 여자와 같은 버스를 탈 확률은 증가하는가?

    이것과 같은 문제인데, 변수를 연속변수로 바꿔보자.

    주의사항 : 이 문제는 절대로

    수학

    문제로서 보아주기 바란다. 실제 문제에서 이 문제의 답은 0%이고, 이 숫자는 99%신뢰구간에서 오차는 0%인 값이다.

    내가 버스 가장 뒷자리에 앉아있다. 어쩌다보니, 승객은 나 뿐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문에서 예쁜 여자가 타더라구. 그런데 그 여자가 첫번째 의자를 그냥 지나친거야. 그럼 그 여자가 내 옆에 앉을 확률은 증가했을까?

    어디서 많이 보던 문제다. 그렇다. 우리는 초등학교 소풍때 많이 즐겨보았다. 수건돌리기라는, 뱅뱅 돌면서 달려야 하는 그것을.

    꼼지락 님의 의견에 따르면, 위의 문제는 여전히 이산변수다. 진정한 연속변수 문제는 다음과 같다.

    버스에는 사람이 모두 앉아서 앉을 자리가 없다.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은 뒤쪽에 서 있는 나 뿐이었다. 앞에 있는 문에서 여자가 타더라구. 그 여자가 한걸음 앞으로 왔다. 그럼 그 여자가 내 옆에 설 확률은 증가했을까?

    정답은 나도 모른다.

    캠페인 : 딜레마 속에서 해탈하자.

  • 빛보다 빠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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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뭔가 낚였다는 느낌 들지 않았는가.

    아무튼 과학 관련 기사는 일단 논문을 봐야 뭔 얘기를 할 수 있으므로 논문을 찾아봤다. APL홈페이지 가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네이버 기사의 댓글은…”말도 안돼”가 주류인 것 같은데, 이정도의 수준급 논문을 고등학생이 실험해서 썼다는 건 왜 아무도 주목을 안하지? 우리나라에선 미친 고딩이 아닌 한 절대로 이정도의 논문은 안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더 부러운건 마지막에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NSF”이다. 국가 과학 재단의 지원금이라니. 우리나라 과학재단은 뭐했나 싶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라고 머리가 나쁠 이유가 없다. 지원만 해준다면 더 좋은 논문도 쓸 수 있고, 더 뛰어난 결과를 낼 수 있다. 다만 그걸 할 수 있다고 고등학생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을 뿐이다.

    해보라고 시키지도 않고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지도 생각 해본적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과학실의 최첨단 실험 기자재는 먼지만 쌓여간다. 왜 샀냐, 그건.

    본론으로 돌아와서, 논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험을 했는데, 긴 파이프 중간에 소리가 똑바로 가는 길과 옆으로 돌아서 가는 길을 만들었다. 이것을 Loop filter라고 부른다. 한쪽에서 스피커로 입력을 넣고 반대쪽에서 마이크로 출력을 붙잡아서 컴퓨터로 분석하는 거다. 그럼, 결과가 왜 이따위냐고? 상대성 이론이 틀린거 아니냐고? 글쎄? 실험 결과가 그렇다는데? 실험 결과도 맞고 상대성 이론도 맞다.

    자, 생각해 보자. 시간-공간 영역에서, 음파에 대한 함수를 생각해 보면 어느 한 영역에 몰려있다. 이것을 wave packet이라고 부른다. 이걸 공간 영역에서 푸리에 변환을 해 보면, 각종 속력에 해당하는 음파 성분들이 다양하게 모두 있다. 이것들이 전부 합쳐져서 하나의 wave packet을 구성하게 된다. 문제는, filter를 통과할 때 생기는 resonance이다. 특이하게 생긴 루프 필터 덕분에, wave packet의 성분 중에서 그냥 가던 애들 말고, 엉뚱한 애들이 공명을 일으켜서 증폭이 된 거다. 이렇게 되면 재구성된 wave packet의 생김새가 변하게 되는데, 이때 말하는 “변화”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여기에 있던 것이 저기까지 가버릴 수 있는, 순식간에 가버릴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음파를 구성하는 어떤 공기 분자도 빛의 속력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상대성 이론에 문제는 없다. 그리고 음의 군 속력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건 loop filter가 있는 구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고, 꽤 특수한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다지 실용적으로 쓰일 것 같지는 않다.

  • 로또 당첨 확률 10배 올리는 법

    로또는 재미있는 확률 게임이다. 천원 내고 한장 사면 800만명중에 1명 정도가 돈을 몰아서 받는다. 복권이 다 그렇듯이 “몰아주기”인데, 최근 로또 당첨 확률을 10배로 높여준다는 행운의 번호를 파는 사이트가 나타나서 나를 낚았다. 그 헛소리에 대한 내 지적을 적어둔다.

    일단 로또 1등 당첨 확률을 계산해 보자. 이건 45개중에 6개를 고르면 되므로

    8145060분의 1의 확률이다. 2등 당첨 확률은 45개중에 5개를 맞추고 보너스 번호를 맞추는 건데, 이건 6개중에 한개 틀려도 되므로 8145060분의 1에 6을 곱한 숫자이다. 1357510분의 1이다. 3등은 45개중에 5개 맞추는 거니까


    1221759분의 1이 된다. 4등은 148995분의 1이고, 5등은 14191분의 1이다. 1에서 앞의 숫자들을 빼면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된다. 그 확률은 0.9999999434231186이다.

    당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번호가 아닐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 99.99999434231186%이다. 까마득하게 100%에 가깝다. 당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번호가 아닐 확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건 아주 힘들지만, 당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번호일 확률을 두배로 높이는건 아주 쉽다.

    한장 더 사면 된다

    .

    이건 아주 당연한 얘기다. 당신이 만약 모든 가능한 조합을 전부 다 살 수 있다면 당신의 당첨 확률은 100%가 된다. 하지만 당신이 낸 돈을 당신만 가져가는게 아니라 다른 맞춘 사람들과 로또 수익자들과 나눠 가져야 하므로 당신이 낸 돈은 확실하게 되찾지 못한다. 너무 손실이 크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별 희안한 당첨 공식들이 난무하는데, 그냥 찍어라. 당첨확률 똑같다.

    당첨 번호일 확률을 10배로 높이는 방법은 이제 당신도 대답할 수 있다. 9장 더 사라.



  • 오래된 친구

    올해(2007)로 24살이다.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각주:

    1

    ]


    내 전화기에 들어있는 이름 갯수는 346개. 그중 회사나 가게 전화번호도 있으니까, 대략 300명 정도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치면 맞을 거다. 그중 내가 꽤 친한 친구들은 얼마나 될까? 이 얘기를 들으면 기분 나빠할 친구들도 있겠지만, 난 친구들과의 우정을 정량화 시키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더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를 구별한다.



    [각주:

    2

    ]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가장 소중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동시에 혹시라도 그가 나를 배신해도 그를 절대로 원망하지 않음.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더라도, 다시 연락된다면 언제라도 반가운 친구. 당연히 매일 만나도 반가운 친구.

    소중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가 나를 배신하면 좀 원망할 것 같음.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더라도, 다시 연락된다면 언제라도 반가운 친구. 당연히 매일 만나도 반가운 친구.

    친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역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기대하지는 않음. 그가 나를 배신하면 충격 먹을 것 같음.

    잘 지내는 친구 – 내가 그를 배신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깊은 사정은 잘 모름. 그가 나를 배신하면 약간 충격 먹을 것 같음.

    아는 친구 – 친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므로 배신 여부를 따지지 않음.

    싫은 친구 – 싫어함. 일부러 피해 다니며, 보더라도 굳이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음.

    여기서, 배신이란 그 친구의 어떤 행위나 발언으로 내가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받아서 그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소중한 친구는 지금 양군, 김양, 송양, 이렇게 셋이다. 원래는 한명 더 있었는데, 그는 꿈을 찾아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채 연락 두절이다. 다시 연락된다면 좋겠지만, 친구 목록에서 빼지 않으면 그리워 견딜수가 없으므로 일단 삭제했다.

    소중한 친구는 김군, 류군, 김양, 이양, 황양, 이렇게 다섯이다.

    나머지, 친한친구는 대략 10명정도, 대부분은 잘 지내는 친구에 해당한다. 싫은친구는 현재 딱 한명 있다.

    소중한 친구/가장 소중한 친구 그룹은 중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다. 이제 거의 10년정도를 알고 지내게 되는 친구들이다. 깊이있는 대화도, 속에 있는 얘기도 아주 많이 해봤고, 내 삶의 이야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1년에 한번이라도 가끔 전화를 걸었을 때 항상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는 친구들이다. 각자 알게 된 경로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그들끼리는 서로 잘은 모르고 대충 안면만 있는 사이지만, 내게는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다.

    내 친구들을 분석해보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내가 고등학생 시절 이후엔 의도적으로 여자에게만 접근했기 때문인데, 남자들은 굳이 접근하거나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술 같이 마시고 놀러다니다 보면 친해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여자애들이랑 친해봐야 결혼하면 다 떠나간다고 경고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를 이해해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라고 해서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들을 골라서 사귀는데 별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상, 그저 내 일방적인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과연, 나는 내 친구들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는지,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절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은 없겠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더 많이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더 많이 나를 얘기해주고 싶다.

    소중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부러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친구사이라는 인간관계는 일부러 만드는게 아니라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친해져서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1. 사실은, 교수님이 나보고 계산하라고 시키신게 더럽게 안풀려서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고 싶어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고 싶었다.

      [본문으로]
    2. 물론 이 구별은 나의 내부적인 관점이고, 평소에는 degenerate되어있다. 실제로 이것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는 다른 social interaction이 perturbation을 줄 때이다.

      [본문으로]

  • 배경과 전경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엄청난 명저 “괴델, 에셔, 바하”는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명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 인생과 물리 공부에 둘 다 도움이 되는 개념이 있어서 적당히 내 나름대로 소개를 해 보도록 하겠다.

    미국의 무슨 유명한 잡지에서 2006년을 빛낸 유명인사를 “너”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반말로 “너”라고 하지야 않았겠지만, 난 반말로 이해했고, 그쪽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2006년을 빛낸 사람이다. 그런데, 웬 헛소리냐고? 글쎄, 여기서 “너”는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뿐만이 아니라 나이기도 하고 내 친구이기도 하고 어딘가 습지에서 고생하는 누군가이기도 하다. “너”는 이 세상 사람 전부이다. 여기서 기가막힌 부분이 영어의 표현인데, YOU는 단수이면서 복수이다. 즉,그 잡지에서는 “너”라고 얘기하면서 동시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르킨 것이다. 만약 한국어였다면 “당신”과 “당신들”의 사이에서 고민해야했겠지만 YOU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각주:

    1

    ]




    그럼 그 잡지는 왜 그렇게 정했을까? 그 내부적인 사정, 혹은 진실이야 어딘가 진실이 있겠지만 중요한건 해석하는 사람 맘대로라는 점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그 전에도 수천년간 그랬지만,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다. 사회는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뜻하는데, 사회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사람은 사회를 구성한다. 한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를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각자의 사상이 모여서 사회가 존재하는 방식을 구성한다.

    이번엔, 딴 얘기를 해 보도록 하자. 뉴턴이 중력 이론을 만들었을 때, 그것은 단지 두 질점 사이에 힘이 작용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두 질점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을 장(Field)으로 바꾸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질량은 중력장을 만들어내고, 중력장은 질점에 힘을 작용한다. 뭐가 바뀐건지 잘 모르겠다고? 이것은 단순히 중력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질량이 중력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중력장이 생긴 형태는 그 이전에 중력장이 어떻게 생겼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질점의 위치만 알고 있으면 공간 전체에 대해서 중력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 있다.



    [각주:

    2

    ]



    반대로, 중력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다면 질점이 여러개가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질점 각각은 독립적으로 그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이 두가지 얘기의 공통점은? 사람(질점)은 사회(중력장)을 만들고, 중력장(사회)은 질점(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 여기서 명백한 것은 사람(질점)은 실제로 움직여 나가는 주체(전경=foreground)에 해당하고 사회(중력장)은 주체가 움직이게 되는 환경(배경=background)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좀 더 사회에 가까운 물리학적 구조가 있다. 바로 자석이다. 자석은 아주 작은 원자 자석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건데,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필요한게 바로 원자와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히 복잡해서, 제대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성공적으로 근사시켜서 그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는데 바로 “평균장(Meanfield) 근사 이론”이다.

    각각의 원자 자석은 위를 보고 있거나 아래를 보고 있다. 그런데 자석을 갖고 놀아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자석은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고 싶어 한다. 가령, 한 자석의 N극과 다른 자석의 S극을 붙여놓게 되면 두 자석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야 한다.



    [각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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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자석들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면 그건 모든 자기장이 합쳐져서 큰 자석이 되는 것이다. 이제, 자석 전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작은 원자자석들을 두개씩 골라서 같은 방향이면 위치 에너지가 낮아지고 반대 방향이면 위치 에너지가 높아진다고 해 놓고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는, 이걸 실제 자석에 적용하려면 이미 그 수가 아보가드로 수의 제곱만큼 많은 항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각주:

    4

    ]



    이건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풀릴만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좀 더 간단한 이론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평균장 근사이다. 평균장 근사는, 자석이 보고 있는 방향은 주변 자석들이 보고 있는 방향의 평균적인 방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들어, 주변에 4개가 있는데 그 4개중에 3개가 위를 보고 있고 하나가 아래를 보고 있다면, 가운데 둘러싸여있는 하나도 위를 보게 된다는 거다. 이 이론은 멀리떨어진 자석들 사이의 연결관계는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얘기를 훨씬 간단하게 만드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이용해서 계산을 하게 되면, 자석에서 나타나는 Hystersis현상이라든가, Curie온도라든가 하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회에서 똑같이 일어난다. 가령, 자석 원자들은 골고루 분포하는게 아니라 덩어리져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여러개의 영역으로 구별된다. 이것은 마치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가 서로 섞이지 않고 좌파들은 좌파들끼리 모여있고 우파는 우파들끼리 모여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하고 싶은 본론은 바로 이거다. 나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 속에서 성공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나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foreground이면서 내 주변 사람들의 background이다. 내가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몇명이지만, 그 작은 간섭이 사회 전체를 바꿀 수도 있다.

    주의 – 이 분야는 복잡계 연구에서 다루고 있다.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는 그쪽의 관련 서적들을 참고하기 바라며, 내가 이 글에서 다룬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1. 영어가 한국어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런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절대로 될 수 없다

      [본문으로]
    2. 물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경우에는 중력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하지만, 이건 잠시 후에 얘기하자

      [본문으로]
    3. 말굽자석은 잊어라 -_-;

      [본문으로]
    4. 아보가드로 수는 대략 10억의 제곱보다 1000배 크다. 따라서, 그 제곱이면 10억의 네제곱보다 100만배 크다고 보면 된다

      [본문으로]

  • 과학에는 국경이 없고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

    음…누가 했더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고.

    퀴리 아줌마

    파스퇴르 아저씨였던가…

    최근 불고 있는 우주인 선발 열풍, 노벨상을 받을것 같은 국가 과학 영웅 10명 등등의 소식을 접하면서,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고 있는 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주에 한번 갔다오는 거, 우리나라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보는 거, 이런게 과연 중요한 걸까?

    우주에 갔다 오는 건, 사실

    루이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 남기고 오면서 그 이상 더 멀리 간 적은 없었다. 그냥 대기권 벗어나는 것 정도는 미국의 NASA에서는 항상 다녀오는 일이다. 인공위성 수리도 하고 우주정거장 수리도 하러 다닌다. 인류 전체의 과학 수준 향상에는 한국에서 우주에 갔다온 사람이 나와봐야 별 도움이 안된다.



    [각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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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사실 체력 되고 머리 좋고 지식 수준 높고 항공기 조종 등에 적합한 사람은 공군 사관학교에 많이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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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인 선발 공개 경쟁이라는 것은 과학 문화를 활성화 시키고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모았다는 점에서는 대 성공이지만 실제 과학의 발전에는 직접 영향보다는 문화 발전에 의한 간접 효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을 받을 것 같은 국가 과학 영웅을 선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이 분들에게는 연구비는 고맙지만 관심은 부담스러울 것 같다. 우리는 벌써부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일을 까먹은 것일까? “연구비를 수억원씩 지원해 줬으니까 넌 빨랑 노벨상 받을 연구나 해라!”는 식으로 보인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하는게 아닌데 말이다. 그 분들이야 실력있는 분들이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연구비 수억원을 들여서 실험을 하고 연구를 진행한 후에 “연구 실패예요. 해봤는데 안되네요”라고 하면 어쩔텐가. 그건 실험 조작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그냥 열심히 성실하게 했는데 안되더라는 거다. 하지만 아마 그랬다간 그 과학자는 매장당해버릴 것이다. 원래 그런걸 겁내면 과학 하면 안되겠지만 겁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냐는 말이다.

    국가 과학 영웅에 선정되신 분들 모두가 노벨상을 받을만 하고, 그만한 실력자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순수하지 못하고 너무 국가의 홍보 정책에 좌지우지 되는건 아닌가 걱정된다. 그 분들이 국가 과학 영웅인 이유는 노벨상을 받을만한 과학자들이어서 영웅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영웅인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부에서 지원하는 이유 역시 노벨상 받으라고 지원한다기보다는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하자는 의도라고 강하게 믿고 싶지만, 대놓고 노벨상 받을만한 국가 영웅이라고 해 버리면 그 분들이 나중에 노벨상 못받으면 영웅 아니게 되는 건가? 글쎄? 그래도 영웅은 영웅이어야 하는거 아닌가?


    퀴리 아줌마

    파스퇴르 아저씨가 한 이야기를 좀 바꿔보겠다.

    이런 대중 홍보성 이벤트가 없더라도.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지만, 과학은 국경이 없다고. 애초에 과학에 관심좀 가져달라는 말이다.



    [각주:

    3

    ]


    1. 그 사람이 관광객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본문으로]
    2. 대학 동기에게 들은 얘기다

      [본문으로]
    3. 써놓고 보니 글에 논리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그냥 잡담으로 읽어주기 바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