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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이지 이론

    이번엔 게이지 이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적어 보려고 한다. 게이지Gauge라는 단어는 뭔가 측정을 하는 도구를 말하는데, 물리학에서 말하는 게이지 이론(Gauge theory)란 전혀 다른 헛소리를 얘기한다. 완전 다르다. 심지어 뭘 측정하지도 않으며 숫자도 아니고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게이지 변환 Gauge Transformation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자기학을 처음에 시작할 때, 맥스웰은 4개의 방정식을 적어놓고서 그걸 “맥스웰 방정식”이라며 자기 이름을 붙여놨다. 아무튼 맥스웰 방정식은 수학적으로는 2종류의 벡터 장에 관한 4개의 미분 방정식을 제공한다. 물론 이 맥스웰 방정식을 일반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며 과학자들은 그냥 그때그때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자, 생각해 보자. 미분이라는 건 변화율을 계산하는 거니까 미분해서 0이 되는 것들은 모두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맥스웰 방정식은 모두 미분 방정식이기 때문에 미분하기 이전에 해당하는 것들에는 우리가 “변하지 않는”, 즉 “미분하면 0이 되는” 것들을 더해도 상관이 없다. 즉, 맥스웰 방정식이 정확하다면 미분하기 이전의 값들에 우리가 어떤 “미분해서 0이 되는” 항들을 더하더라도 물리학의 실제 현상이 바뀌지 않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며, 이해해주기 바라는 중요한 키 포인트다. 미분해서 0이 되는 것들은 우리 맘대로 더하거나 빼도 된다. 우리가 맘대로 해도 물리학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는 “대칭적이다”라고 말한다.

    맥스웰 방정식은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는 전자기 장치들의 기본 법칙을 알려주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이 방정식을 열심히 풀었는데, 풀다보니 흥미로운 성질을 발견했다. 상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분하면 0이 되는 항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건 정말 신기한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바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맥스웰의 미분 방정식이 그냥 단순한 방정식이 아니라 3차원의 벡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벡터는 3개의 방향을 가진 성분으로 되어 있다. 맥스웰 방정식에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x성분을 y성분과 z성분으로 미분하는 항들이 몇개 들어 있는데, 자기장의 y성분을 x성분으로 미분한 것과 z성분을 x성분으로 미분한 것이 전기장의 x성분의 시간 변화율과 위치에너지의 변화율의 x성분의 합과 같다는 식이 있다. 그럼 자기장의 y성분을 x성분으로 미분한 것이 0이기만 하면 되니까 y성분을 y성분으로 미분한건 0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 뭐 이런것 등등이 가능해진 것이다.(단 2줄로 설명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여기서 우리가 상수가 아닌데도 미분해서 0이 되는 것들을 맘대로 더하거나 빼는 변환을 두고서 “게이지 변환”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물론 게이지는 우리가 맘대로 더하거나 빼는 바로 그것이 아니다.

    맥스웰의 방정식을 말로 쓰면 다음과 같다.

    1.전기장의 시간 변화율은 자기장의 꼬임 정도의 공간 변화율curl과 같다.

    2.전기장의 꼬임 정도의 공간 변화율은 자기장의 시간 변화율과 같다.

    3.전기장의 발산율divergence은 전하의 분포와 같다

    4.자기장의 발산율divergence은 0이다.

    한가지 물어보자. 전기장과 전기적 위치 에너지(전위, volt)는 어떤 관계일까? 전기장은 단위 양전하가 받는 힘의 크기를 나타내니까 적분하면 에너지가 되고 따라서 전위는 전기장의 적분이다. 전위는 그냥 숫자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스칼라 포텐셜(scalar potential)이라고 부른다. 벡터와 스칼라의 구분은 고2때 물리 시간에 배울 것이다. 반대로, 전기장은 전위의 미분이다. 그럼, 자기장은? 자기장은 뭔가의 미분이면 안돼?

    자기장도 물론 뭔가의 미분일 수 있다. 당연히 미분이겠지 생각하는 사람들, 맞췄다. 당연히 미분이다. 자기장은 벡터를 미분해서 얻는다. 즉, 자기장은 벡터 포텐셜의 미분으로 나타낸다. 벡터를 미분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 발산divergence을 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꼬임curl을 구하는 것인데, 벡터 포텐셜을 미분해서 벡터인 자기장을 얻으려면 벡터 포텐셜의 꼬임을 구하면 될 것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스칼라 포텐셜과 벡터 포텐셜을 이용해서 표현하게 되면 다음과 같다

    전기장 = 스칼라 포텐셜의 발산 + 벡터 포텐셜의 시간 미분

    자기장 = 벡터 포텐셜의 꼬임

    이러면 뭐가 되냐고? 아주 간단하면서도 유명한 정리가 있는데, “어떤 스칼라 함수의 물매gradient의 꼬임은 0이다”라는 것이다. 이건 편미분만 배우면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다루지는 않겠다. 아무튼, 위에 적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그렇게 해서 맥스웰 방정식에 대입하면 딱 들어 맞는다.

    예를들면

    전기장의 꼬임 = 스칼라 포텐셜의 발산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시간 미분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시간 미분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꼬임의 시간 미분 = 자기장의 시간 미분

    아주 간단하면서도 유명한 정리가 또 있는데, “어떤 스칼라 함수의 꼬임은 발산이 0이다”라는 것이다.

    그럼, 이제 벡터 포텐셜에 어떤 스칼라 함수의 물매를 더해보자. 그럼?

    자기장(바뀐거) = 벡터 포텐셜(바뀐거)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꼬임 + 스칼라 함수의 물매의 꼬임 = 벡터 포텐셜의 꼬임 = 자기장

    벡터 포텐셜을 바꿔서 넣었는데 자기장이 바뀌기 전과 바뀐 다음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전기장에는 스칼라 포텐셜을 벡터 포텐셜에 더했던 바로 그 스칼라 함수의 시간 미분을 빼주게 되면 마찬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

    바로, 여기서 벡터 포텐셜과 스칼라 포텐셜을 “적당한 스칼라 함수”에 의해서 더하게 되는 것이 “게이지 변환”이다. 중요한건, 정말로 우리 맘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령 스칼라 포텐셜을 미분해서 벡터 포텐셜이 나오도록 한 다음에, 벡터 포텐셜과 더하면 0이 되도록 정해도 물리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방금 증명했듯이) 이것은 물리학자들에게 강력한 도구를 주었는데, 바로 그것이 “게이지 장gauge field”이다.

    전자기장을 게이지 변환에 의해서 변하는 부분과 변하지 않는 부분으로 나눈 후, 우리가 맘대로 게이지 변환을 결정해도 되기 때문에 가장 풀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놓고서 문제를 해결한 후, 변하는 부분은 모두 없애버리면(그래도 된다. 왜냐고? 게이지 변환이 보장해 주니까.) 문제는 해결된다.

    전자기학에서 나오는 게이지 장이 가진 대칭성은 U(1)의 대칭성을 갖고 있다. U(1) 대칭성이라는 것은 2차원에서 크기가 변하지 않는 회전에 해당하는 대칭성이다. 2차원에서의 회전은 순서에 상관이 없기 때문에 U(1)대칭성은 가환 덧셈 군(abelian additive group)에 해당한다.

    (예를들어, 시계방향으로 10도 돌리고 20도 돌린거랑, 20도 돌리고 10도 돌린거랑은 아무런 차이가 없이 30도이다)

    문제는 양자역학이다. 전자기학을 양자화해서 만든 양자 전기 역학은 U(1)의 대칭성을 가진 게이지 장을 이용해서 아주 잘 기술할 수 있었다. 파인만이 자랑했듯이, 양자 전기 역학은 인간이 만든 이론중에서 가장 가장 가장 정확한 이론이라고 말해도 된다. 문제는 여기서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물리학자들이 처음에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을 발견했을 때, 뭐 대충 풀리겠지 하고서 대충 풀었을 땐 잘 맞았다. 아싸! 대충 풀어서 맞았으니까 이제 제대로 풀어야지 싶어서 이론적으로 방정식 잘 쓰고 풀려고 하는데, 무한대가 나오는 것이다. 이 무한대는 참 난감해서, 어떻게 다룰 방법이 없었다.

    뭐, 별 수 없다. 무한대는 무한대로 나누거나, 무한대만큼 빼거나 해서 유한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리학 이론에서 문제를 풀었을 때 무한대가 나오면 그건 명백한 오답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답에 끼워맞추려면 유한한 값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유한하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바로 가환이 아닌 대칭성을 가진 게이지 장을 도입하는 것이다.

    U(1)의 대칭성을 가지는 게이지 장은 이제와서 밝히는 것지만, 사실 빛이다. 가환이 아닌 대칭성은 SU(2)라는 대칭성이 있는데, 이건 3차원에서 크기가 변하지 않는 회전과 같다. SU(2) 대칭성을 가지는 군은 약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SU(2) 대칭군을 만들어내는 생성원(generator)는 3개가 있는데, 이 3개의 생성원은 물리적으로 3개의 입자인 W+, W-, Z 입자에 대응된다. (물론 이 세 입자는 “진짜로” 발견되었다. 수학적 대상이 물리적으로 눈에 보인, 뭐 그런 예라고나 할까)

    SU(3) 대칭군은 8차원에서 크기가 변하지 않는 회전과 같고, 물론 생성원은 8개가 있다.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고 8개의 생성원은 8개의 글루온Gluon에 대응된다.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지적 능력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내가 보증한다. 이건 사실 나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으며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 물론 나 말고는 이해한 사람이 아주 많이 있다. (안그러면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물어보겠는가)

  • 사실은…

    별다른 충격 고백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글이며, 나머지 하나는 행운의 편지 종류의 글이다.(굳이 따지자면 하나 더 있지만, 그건 거의 종교랑 같은 내용이므로 합쳐도 된다)

    종교는, 특정 종교를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또한 그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 굳이 숨길 생각이 없으며, 그 종교를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과학적인 어떤 부분때문에 그쪽 계열의 학생이랑 대판 싸운적이 있다. (물론 논리로서…;;)

    사실 난 진화론의 신봉자이며 진화론이야말로 모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궁극적인, 그리고 맞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들과 싸우다 보니 더 공부하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걸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시에 일종의 고정관념도 생기게 되었는데,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생겨 버렸다. 요새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지만, 사실 과학 이론이라는게 그냥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철저한 검증과 치밀한 논리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욕을 들어 처 먹어가면서 검증되기 때문에 잘 정립된 이론은 꽤 믿을만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한 욕도 먹어야 하고 훨씬 더한 검증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이 훨신 약하다. 그들은 “우린 당연히 맞거든”이 주 논리이고 “그건 말도 안돼”가 부 논리이다. 그럼 좀 과학적인 근거를 대 보든가. 이렇게도 말이 되고 저렇게도 말이 되는, 그래서 진화론에서도 설명은 하지만 직접적인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근거로 대고 주장하는 것은 참 어리석다. 최소한, 진화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무튼 종교 덕분에,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그” 종교인들 덕분에 난 세상에 더욱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조금 더 갖게 된 듯 하다.

    광고는, 사실 나는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누군가 나를 조작한다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광고는, 종류를 불문하고 나에게 뭔가를 강요한다. 나에게는 종교를 바꾸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광고이며, 그래서 난 종교가 없다. 물론 나라고 해서 광고를 봤을 때 낚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습의 결과, 낚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즉, 나는 나의 감정 상태를 느끼면서 동시에 외부에서 지켜볼 수 있다. 이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감정 조절이 굉장히 쉬워서 욱하는 김에 칠 수도 있는 사고를 대부분 방지하는 것이 있다. 단점은 연애에서도 이 사고방식이 발휘되어서 불쌍한 인생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난 내가 연애감정에 빠지는걸 느끼면서, 동시에 그걸 느끼고 있다는걸 자각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성공해 보지 못한 연애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 때문에 내 마음이 그쪽으로 확 불타오르는걸 자제해 버린다. 낚이지 않는건 좋은데, 연애마저 그렇게 되면, 사실 솔로인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고 있겠지만 안하다보면 계속 안하게 된다. 위험한것 같다.

    행운의 편지류의, “이 편지를 똑같이 복사해서 7일 내에 7명에게 보내면 당신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는 내용의, 어쩌면 우체국에서 수익 증대를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이 초대형 낚시밥에 수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그냥 걸리기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게 수십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던 적이 있다.

    그 변형된 종류로서,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내가 안해봤을것 같나? 엄청 해봤다. 한 10번쯤 하고나서, 그녀로부터 당연히 전화가 안온다. 내가 걸어도 안 받는 전화를 그녀가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없다.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지 않으면 새벽 3시에 귀신이 찾아온다” 이런 협박, 난 3시까지도 기다려 봤고 밤새 기다려도 봤다. 당연히 올 이유가 없다.

    “8억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건 미국에서도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8억 메일. 닥치시오 -_-;

    8억메일의 허구성은 이미 내가 다른 글에서 증명한 적이 있다.(지금 그 글을 찾는건 좀 힘들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련의 수행을 통해서, 난 저절로 비판적인 사고가 늘어났고, 무슨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왜?” “정말?” “그래서?” 등의 대답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과학 하는데는 참 좋긴 한데, 일상에서도 그러면 인생에 많은 걸림돌에 굳이 걸리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참 걱정되긴 한다.

    아,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 더 있다는 건, “무한 동력 기관”을 만들겠다는 헛소리를 하는 아저씨를 상대했다는 얘기였다. 그 아저씨, 제발 무한 동력 기관을 만들어서 돈좀 벌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거 실제로 만들면 특허권도 보호 못받고 곧장 국가 기밀로 몰수될 것이다. (물론 절대 그럴일이 없다)

  • 해피해킹 키보드 라이트 2

    키보드를 샀다. 가격은 5만 5천원. 비싼가?

    키보드의 특징은

    ESC가 한칸 아래로 내려와서 물결 표시 있는데로 가 있고, 물결 표시는 다시 백 스페이스 있는데로 가 있고, 백 스페이스는 한칸 내려와서 백 슬래시 있는데로 가 있으며, 백 슬래시는 물결표시 옆으로 가 있다. 그리고 컨트롤 키가 캡스 락 자리에 가 있다. 나머지는 화살표 키와 편집키, 옆에 따로 모아져 있는 숫자 키 등이 잘라져 있다는 것 정도.

    처음엔 엄청 불편하다. 일단 백 스페이스 위치가 표준과 다르기 때문에 오타가 날 때마다 “더 많은” 오타가 나는 시스템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눅스와 윈도우를 두대 다 쓰고 있기 때문에 컨트롤 키가 두칸이나 위로 올라와 있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리눅스의 수많은 단축키들은 컨트롤 키를 이용해서 쓰도록 되어 있고 더군다나 기본적으로 한/영 변환이 컨트롤+스페이스 조합이기 때문에 확실히 편해진다. 그리고 vi를 쓰다보면 esc를 습관적으로 자주 누르게 되는데 이것도 한칸 아래로 내려와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다. 게다가 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심플함은 사실 나를 타이핑하고 싶어 미치게 한다.

    물론 단점이 있다. 일단 내가 쓰던 HP키보드랑 비교할 때 굉장히 뻑뻑한 수준이다. 물론 힘껏 눌러야 들어갈 정도로 뻑뻑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 손가락이 살짝 눌러도 들어가는 키보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선배들은 조용해 졌기 때문에 별로 신경 안쓴다.

    사실 이 키보드를 처음 샀을 때 선배들의 반응은 “변태녀석!”이었다. 뭐, 좀 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이 키보드는 옆이 없기 때문에 마우스로 손이 자주 가는 작업을 할 때도 좀 더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배열에 익숙해지면 다른 키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엄청난 단점이 있어서 사실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키보드다.

    아무튼 질렀고, 잘 써야겠다.

  • 죄수의 딜레마, 재탕

    세상을 살아가는데 경쟁과 투쟁과 싸움은 항상 있는 일이다.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난 학교 옆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수도 요금이 나왔다고 해서 돈을 내러 갔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과는 달리 수도요금은 주인집에만 계량기가 달려있고 각 자취방에서 쓰는 물값이 전부 일괄적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누가 얼마나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람 수 대로 n등분해서 내게 되고, 이 방법이 대체로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난달까지는 내가 친구랑 같이 살았고 이번달부터는 혼자 산다는 점이다. 지난달 요금은 2인분을 내는게 맞고 이번달부터 1인분을 내는게 맞긴 한데, 주인집 할머니는 우리집을 1인분으로 쳐서 n등분을 했다(약 8천원). 그러더니 2인분을 내라면서 8천원을 더 받아갔다. 나야 수학도 전공했으니 n분의 2가 아니라 n+1분의 2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지만, 귀찮아서 일단 냈다. 물론 앞으로도 그거 갖고 따질 생각은 없다.

    자, 그럼 이제 내가 얼마나 더 냈는지 따져보도록 하자.

    우리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몇명인지 모르므로 그냥 n명이라고 가정하자. 난 n등분된 돈을 2인분을 냈으니 n분의 2를 낸 것이고, 원래는 n+1분의 2를 내야 한다. 즉, 난 원래 낼 돈의 n분의 n+1을 더 낸 것이다. 약분하면 1과 n분의 1이다. 즉, 내가 낸 돈을 a원이라고 한다면, 내가 낸 돈 a원은 원래 낼 돈을 n등분한 것 중의 하나 만큼 더 낸 셈이 된다. 따라서 내가 원래 내야 할 돈은 a원의 n+1분의 n이다.

    아무튼 이런 수도요금 체계를 가진 상황에서 각 자취방 사람들의 생각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건 자취방이 2명있고, 수도요금을 딱 절반씩 나눠내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도 일반성을 잃지 않는다.

    예를들어 수도요금이 10000원이 나왔다면 나는 5000원을 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저쪽이 실제로 5천원어치 이상을 썼는데 저쪽은 5천원만 내고 내가 나머지 부분을 낸다면, 이건 억울한 일 아닌가? 확실히 억울하지? 그럼 내가 억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 : 저쪽보다 많이 쓰면 된다.

    문제는 이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쪽이라고 해서 머리가 딱히 나쁠 이유도 없고,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경쟁이 시작된다. 서로 상대방보다 더 많이 써야만 내가 사용한 요금을 상대방이 내 주는 폭이 커지기 때문에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수도 요금은 한도없이 많이 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서로가 이것을 미리 생각하고, 서로 협력해서 어느정도 이상을 쓰지 않기로 자제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까? 한달에 한번도 마주치기 힘든 옆집 사람을 믿는다는건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물론 이런 현실이 안타깝긴 하다.)

    이 상황은 곧장 죄수의 딜레마로 연결된다. 서로 협력하면 둘 다 같은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배신하면 배신을 한 쪽은 큰 이익을 얻고 배신 당한쪽은 손해를 본다. 그리고 둘 다 배신하면 둘 다 손해를 본다. 선택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둘 다 배신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죄수의 딜레마의 변형된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을 참고하여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물론 내 맘대로 각색하였다.

    둘이서 수도요금을 나눠 내는데, 더 많이 쓴 사람이 전액을 부담한다면? 이 경우는 서로 수도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아무도 물을 사용하지 않는 건조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반대로 더 적게 쓴 사람이 전액을 부담하는 경우는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예의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앞서와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규칙을 바꿔보자. 둘이서 수도 요금을 내야 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으며 서로 의견 교환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고지서가 두 자취방의 공통 대문 앞에 꽂혀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감일까지 요금 전액을 낸다면 연체료는 없다. 하지만 아무도 내지 않으면 다음달에 연체료가 가산되어 청구될 뿐만 아니라 계속 안내면 수도가 끊긴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을 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딜레마는 “겁장이의 딜레마”의 변형인데, 가장 좋은 것은 둘 다 “동시에” 대문 앞에서 만나서 반반씩 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어느 한쪽이 확 내버리는 거고, 가장 나쁜경우는 둘 다 안내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있다.

    수도요금 중에서 자신이 몇%를 낼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서로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고 요금의 총액만 알고 있다. 즉, 1호실 사람과 2호실 사람이 있으면, 1호실 사람이 “난 10%를 낼 수 있어”라고 선언하고 2호실 사람이 “난 14%를 낼 수 있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선언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 각자 10%와 14%를 일단 낸다. 남은 돈에 대해서 다시 이 일을 반복해서, 낸 돈의 합이 수도요금 총액이 되면 그만 둔다. 이런 경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 50%씩 내는게 최종 결과일것 같긴 한데, 난 게임 이론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정답을 아는 분께 댓글좀 부탁드린다. 이건 “달러 경매”의 변형된 버전이다.

    아무튼, 죄수의 딜레마의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들은 실생활에서 이런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수도 요금은 서로 사용한 만큼 내는게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 행복에 관하여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다.

    행복하면 좋은가?

    남들이 다들 찾는다고 해서 유행처럼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남들이 가진 행복이 부러워서 나도 행복하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각자가 갖고 있는 행복함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언제 행복할까?

    난 사실 행복하지만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거나, 불행한데도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건 아닐까?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행하다는 증거는 아닐까?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왜 행복해야 하는가?

    사실, 남에게 행복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 고민해 봐야 한다. 내가 남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행복하라는 말이 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 사람이 “내 기준”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강요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행복이 절대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들도 자신의 행복을 따라서 행복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두에게 개성이 있듯이 각자가 원하는 행복도 모두 다를 것이다.

    남들이나 또는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이전에,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왜 행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런 고민이 없다면, 행복하다가 행복을 잃어버렸을 때 너무나 큰 절망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럼 불행한건가?

    사실 행복해지는 일은 대단히 쉽다. 행복함의 기준을 바꿔서 현재의 자신의 상황이 행복한 상태가 되도록 조정하면 된다. 인생 뭐 있겠는가.

    당신이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한 당신은 불행하다.

    찾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불행해지라는 뜻도 아니다. 현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덜 행복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찾아 지금 상황에서 떠난다면 그것이 또한 불행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찾아 떠나라. 그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떠날 것이다. 중요한건 “모른다”는 부분에 관한 정확한 이해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 말해주는 것은 그 원하는 것이 멀리 있을 가능성도 있고 가까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미 여기에 있을 가능성조차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뭐, 멀리 있는 걸 찾기 위해 멀리 떠나서 결국 찾았다면 좋겠지만 여기에 있는 걸 모르고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발견한다면 찾긴 찾았어도 아쉽지 않을까?

    그러므로, 떠날 때는 신중하게 떠나야 할 일이다.

  • 전부 더하기 -적분

    미적분학에서 자세한 계산은 미적분학 책이나 수학의 정석에 잘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오직 핵심 개념의 이해이다.

    미분은 지난 시간까지 대충 해 보았다. 이번에는 급수와 적분에 대한 설명을 해 보겠다.

    적분은 어떤 것의 “크기”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방법이다. 크기는 무엇일까? 내가 지난번에 크기를 재는 것이 심오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심오한 방법을 가장 간단하고 짧게 설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될 것이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숫자는 원래 물건의 갯수에서 일반화되어 출발한 것이므로, 물건의 수가 많을수록 숫자가 커지도록 배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물건만 세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뭐라 말하기가 참 곤란하다. 그러므로, 최소한 여러분들이 1보다 2가 크다는 정도의 크기 비교는 할줄 안다고 생각하고서 이 글을 진행시켜 나가야겠다.

    크기를 재는데 가장 쉬운 것이 바로 “벡터”이다. 벡터는 두 점을 이어주는 화살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벡터의 길이는 자를 대고 그 크기를 재면 끝난다. 벡터가 (2,3,5,6)등으로 좌표로 나타나 있으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해서 각 좌표의 제곱을 더하고, 다시 그 제곱근을 계산하면 크기가 된다. 그런데, 좌표가 무한히 많이 주어져 있다면? 즉, (a,b,c,d,…)해서 끝없이 무한히 많이 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거 잘 보면, 지난번에 봤었던 수열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 1,2,3,4…번째 좌표에 대해서 각각 숫자가 하나씩 주어져 있다면, 이건 역시 수열이잖아? 만약 이 수열이 발산해버린다면, 수열의 제곱도 발산할 것이고, 그럼 그 합도 발산할 테니까 당연히 이런 벡터의 크기는 무한대가 될 것이다. 이런 무한대가 나와버리면 우리는 이 벡터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럼, 이건 무한대로 발산하지 않는다고 하자. 즉, 좌표가 무한히 이어지는 벡터를 수열이라고 생각하면, 이 수열이 수렴한다고 해 보자.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만약 이 수열이 1로 수렴한다면, 이 수열의 제곱은 어느 항 이후부터는 1의 근처에 있을 것이고, 당연히 이걸 전부 더하면 여전히 무한대다. 그러므로 이런 벡터도 곤란하다. 즉, 좌표의 값들이 수렴할 뿐만 아니라 그걸 전부 더한 것도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그러면 우린 이 벡터의 크기가 무한대가 나오기 때문에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이제, 크기가 유한한 벡터들만 갖고서 생각을 해 보자. 크기가 유한한 벡터이면 이런 벡터는 좌표가 무한히 많이 있어도 그 크기를 잴 수가 있다. 이런식으로 무한히 숫자가 많은 것들을 다 더하는 것을 무한급수(Infinite Series)라고 부른다. 물론 급수의 수렴성을 판단하는 건 많이 어려운 문제가 되겟지만, 그런건 교과서에서 배우도록 하고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자.

    그런데 만약 좌표가 연속적으로 변한다면?

    전에 수열에서 함수로 갈 때 불연속적으로 주어진 항 번호를 연속적인 숫자로 바꿔나갔었다. 그럼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을 해야 할 건데, 크기를 재려면 각각의 항을 제곱해서 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항이 무한히 많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작은 구간을 잡아도 무한히 많은 항이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발산한다. 어쩌지?

    여기서 바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숫자들을 전부 더하는 것을 하는 방법이 “적분Integral”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각각의 항에 아주 작은 숫자를 곱해서 전체가 발산하지 않고 유한하도록 조정해주는 것이다.

    예를들어, 0부터 1까지 어떤 함수 f(x)의 크기를 잰다고 해 보자. 그럼 f(x)는 벡터의 좌표를 말해주는데, 벡터의 크기를 재야 하므로 제곱해서 다 더해야 할 것이다. 제곱은 하겠는데, 무슨수로 다 더할까? 그럼, 일단 구간을 n개로 잘라보자. 그럼 n개의 수열이 나올 것이다. 그걸 다 더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게 정확한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f(x)라는 함수를 0부터 1까지 딱 그려놓고서, 이걸 n조각으로 잘랐어. n개의 조각중에서 k번째 조각 하나만 봐도, 이건 그럼 다시 m조각으로 자를 수도 있잖아? 그럼 대체 어쩌라는건가?

    헷갈린다. 그러니까, 규칙을 좀 바꿔보자. 그냥 더하는게 아니라, n개의 조각을 냈으면 0과 1사이에는 n개의 구간이 있을텐데, 각각의 구간의 크기를 더할 값에다 곱해주는 것이다. 예를들어, d(k)가 k번째 구간의 길이를 말해주고, f(k)가 k번째 구간의 함수값이라고 한다면 f(k)*d(k)를 다 더해주면 될 것이다.

    잠깐! k번째 구간에서 함수값이 일정한것도 아닌데 그렇게 막 넘어가도 돼?

    그렇다. 그냥 넘어갈 뻔 했다. 뭐, 좋다. 그럼 이렇게 해보자. k번째 구간에서 가장 큰 값이 있고 가장 작은 값이 있을것이다. 두가지 경우를 생각하는데, f(k)를 항상 가장 큰 값으로 정하는 것과 항상 가장 작은 값으로 정하는 경우일 것이다. 나머지, 다른 함수값인 경우들은 항상 그 사이에 있을 것이므로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가장 큰 값으로 정하는 경우와 가장 작은 값으로 정하게 되면, 함수가 일정하지 않으므로 아마 가장 큰 값과 가장 큰 값 사이의 차이에 구간의 길이를 곱한만큼의 차이가 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구간을 맘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n조각을 낸 것을 다시 각각 m조각을 더 낸다면? 구간은 더 짧아질 것이고, 각 구간은 더 짧아졌으므로 그 구간에서 가장 큰 값과 가장 작은 값 사이의 거리는 아마 짧아졌을 것이다. 이런식으로 구간을 무한히 많이 잘라 나가면 가장 큰 값으로 정해서 덧셈을 계산한 것과 가장 작은 값으로 정해서 덧셈을 계산한 것 사이의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다시 잠깐! 정말??

    이건 사실 모르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 수학자들은 다시 정의를 한다. 구간을 임의로 나눠서, 위에서 설명한 방법중에 각 구간에서 가장 큰 값을 이용해서 덧셈을 계산한 것과 가장 작은 값을 이용해서 계산한 것 사이의 차이가 0으로 수렴하면, 우리는 이러한 함수를 “적분 가능”하다고 하고, 그 계산값을 “함수 f(x)의 적분”이라고 부른다.

    중간에 뭔가 어물쩡 넘어간 부분이 많긴 하지만, 아무튼 적분은 이렇게 탄생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금 얘기한 적분은 리만Riemann 적분이다.

    적분이론은 적분이 안되는 것들의 크기를 재기 위해서 발전해 왔는데 리만-스틸체스(Riemann-Stieltjes) 적분론, 르벡Lebesgue적분론 등을 수학과에 오면 배울 수 있다.

    그중에서 구간을 임의로 자르지 않고 단순히 n개의 조각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우게 된다.

    미적분에서 가장 중요한 정리인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만 소개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정리 : 어떤 함수가 적분 가능하면, 그 함수를 적분한 것을 다시 미분하면 원래의 함수와 같다. 반대로, 어떤 함수가 미분 가능하면 그 함수를 미분한 것을 다시 적분하면 원래의 함수와 상수 차이를 제외하면 같다.

    증명은 생략.

  • 미분하기 – 기울이기?

    뭐…사실 미분이라는건 계산만 놓고 따지면, 숫자랑 영어를 조금 읽을 줄 안다면 누구라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y=ax의 기울기가 a인 이유는 y를 x로 나누면 a이기 때문이다.

    “기울기”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뭘까?

    질문에 대한 답은 알아서들 하시라. 내가 이 글에서 밝힐 것은 대단히 추상적인 이야기가 될 테니, 각자 이해한대로 기울기의 뜻을 알면 될 것이다.

    다른 얘기는 다 빼고, x가 y하고 관련이 있다고 하자. 수학을 할 때는 항상 뭔가 가정을 하고서 시작하는데, 지금 이 말이 바로 그 가정이다. x는 y하고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럼 어떤 관련일까? 궁금하지? 여기서 수학을 하는 태도는, “뭐야, 모르는게 당연하잖아!”라는 것이다. 다 알면 뭐하러 미적분을 공부하냐…

    잘 모르지만, 아무튼 x랑 y가 관련이 있다고 했으니까, 가장 먼저 궁금하게 여겨야 할 것은 x랑 y가 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당연히 숫자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내가 얘기한건 x랑 y이지 그게 뭔지는 아직 말을 안했다. 그럼 뭐냐니깐…?

    사실 아무거나 들어가도 상관없다. 다만, x는 한두개가 있는게 아니라 여러개가 있고, 그중 두개를 고르면 둘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모아둔 것이다. y도 마찬가지다. “거리를 잰다”는 말의 심오하고 깊은 뜻은 일단 넘어가자. (미적분학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거리를 재는 거다) 잘 모르면 그냥 자로 잰다고 치자.

    아무튼, x를 두개 골라보자. 그걸 a랑 b라고 부를 수 있겠다. a랑 b사이의 거리를 d(a,b)라는 숫자로 나타내 보자. 이제 별 이유 없이 d라고 하면 그냥 방금 나왔던 두 점 a,b의 거리를 말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d(a,b)는 그냥 우리가 아는 평범한 숫자를 나타낸다. 물론 거리를 표시하고 있으므로 0이거나 양수만 된다. d(a,b)가 작아진다는 뜻은 a랑 b가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x가 y하고 관련이 있다고 했으니까 x대신에 a랑 관련이 있는 y는 b랑 관련이 있는 y하고는 다를 것이다. 같아도 상관 없다. 각각을 y(a)랑 y(b)라고 써 보도록 하자. 저 기호의 뜻은 y중에서 a랑 관련이 있는 것(딱 1개)과 y중에서 b랑 관련이 있는 것(딱 1개)을 나타낸다.

    지난번 글에서 나는 함수의 연속성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는데, d[a,b]가 작아질 때 d[y(a),y(b)]도 작아질까? 글쎄…안그럴수도 있겠지?

    지난번 얘기를 한번 더 반복하자면, d[a,b]가 작아질 때 d[y(a),y(b)]도 작아지는 관련성이 “y(x)가 연속이다”는 말의 정의이다.

    내가 여기서 관련이 있다는 말을 써서 혼동될 수도 있는데,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 헷갈리면 그냥 함수라고 써도 상관 없다. 사실은 함수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 없지만, 그럼 아마 본인도 헷갈릴 것이므로 그다지 권하는 바는 아니다.

    y(x)가 연속인 관련성이라고 하자. 그럼 a와 b가 가까워질 때 y(a)와 y(b)는 얼마나 빨리 가까워질까? 아마 a와 b사이의 거리가 확 줄어들면 y(a)랑 y(b)사이의 거리도 확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관련성 z라는걸 찾았을 때 z(a)랑 z(b)사이의 거리도 확 줄어들으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간단한 건 “비교”가 될 것이다.

    d[y(a),y(b)]와 d[z(a),z(b)]를 비교하면 된다. 비교하는 방법은 두가지를 고를 수 있는데, 한가지는 둘을 빼 보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나눠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누자.

    는 이제 둘 사이에 어떤 것이 더 빨리 줄어드는지를 알려주는 숫자가 된다. 이 숫자가 1보다 크면 y가 더 빨리 줄어들 것이고 그 반대면 반대겠지.

    이제, z(x)라는 관련성을 너무 쉬운 관련성으로 주는데, 그냥 x에 x가 다시 나오는 관련성이다. 즉, 모든 x에 대해서 z(x)=x인 관련성이다. 이런 관계는 당연히 연속이다. (직접 증명해 보시라!)

    이제 둘중 어떤 것이 더 빨리 줄어드는지 나타내는 숫자는

    이라고 쓸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기울기”의 의미가 된다.

    그런데, a랑 b가 매우 가까이 있다면? 예를들어, a를 고정시켜놓고서 b를 여러가지로 바꿔보는데, b가 a에 가까이 갈 수록 d[y(a),y(b)]도 작아질 것이다. (연속이랬으니까) 그렇다면 y’도 작아질까? 진짜?

    대답은 No – 작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작아질 수도 있다)

    y’는 b가 a에 가까이 갈수록 어떤 값으로 수렴할 수도 있고, 0으로 나눈 숫자가 되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때,

    만약 b가 a에 가까이 갈 수록 y’이 어떤 숫자로 수렴한다면, 우리는 y(x)를 a에서 미분 가능하다

    라고 말한다. 드디어 미분을 정의했다.

    그리고 y’가 수렴하는 바로 그 값을 y(x)의 a에서의 미분계수 라고 부른다.

    더군다나, 미분계수 자체가 또한 x에서 다른 어떤 숫자로 가는 함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식으로 만들어진 함수를 “y의 x에 관한 도함수derivative”라고 부른다.

    이런 미분은 한번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위에서 얘기한 기울기가 수렴하기만 한다면 몇번이든 더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함수들은 무한히 많이 마음껏 미분할 수 있다. 물론 미분할 수 없는 함수들이 “훨씬” 더 많이 있긴 하지만…

  • 행복은 죄의 향기

    しあわせは つみの におい (행복은 죄의 향기)
    from OST of Neon Genesis Evangelion
    노래: 타카하시 요코

    What is the dream.
    We have a dream now.
    What is the dream.
    We make the dreams come true.
    꿈이란 무엇인가요?
    우리에겐 지금 꿈이 있어요.
    꿈이란 무엇인가요?
    우린 지금 꿈을 실현시키고 있어요.

    まっていれば ゆめは かなうはずと
    ただ しんじてた おさない ひ
    기다리고 있으면 꿈은 실현될거라고
    마냥 믿고있었던 어린 시절.
    whan I was young, I just believe that dream shall come true

    そらを ながれる ひかりに ねがいを かけ
    ほほえみながら いまを つむいでいた
    하늘을 흘러가는 빛에 소원을 빌고
    미소지으며 지금을 만들고 있었지요.
    having wished on a shooting star and smiled, I weaved present.

    まっていても ゆめは かなわないと
    そう しったのは いっのころ
    기다려봐도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그걸 알게된것은 언제쯤이었을까요.
    When did I know dream couldn’t come true even wating

    やさしい ひとは かなしみ ばかり せおい
    おもいでと いう やみに うもれてゆく
    상냥한 사람은 슬픔을 짊어진채
    추억이라는 어둠속으로 파묻혀가요.
    tender one is charged sorrow. He fades away into the dark, the memory

    こぼれる つみの におい
    넘치는 죄의 향기
    overflowing the fragrance of sin

    どうして なにも きずつけずに
    あいを まもれないの
    어째서,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고
    사랑을 지킬수 없나요?
    Why can’t one held his love without hurting someone?

    あふれる うその かけら
    넘치는 거짓의 파편들
    overflown pieces of lies

    このてに だいた しあわせには
    だれかの なみだ しみてる
    이 손에 쥐고있는 행복엔
    누군가의 눈물이 베어있어요.
    Happiness in my hands is drenched with somone’s tears

    けがれのない こころだけを もって
    この せかいへと おりたのに
    순수한 마음만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Even though we were born only with pure hearts

    とった ときから うしなう ことに おびえ
    무언가를 얻은 순간부터,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After getting something, afraid of losing it

    やすらぎさえも いつか てきに まわす
    평안함조차도 언젠가는 적으로 돌리고 말지요.
    we shall even have tranquility become an enemy

    にじんだ つみの におい
    베여나는 죄의 향기
    stinking of the fragrance of sin

    どうして なにも ほしがらずに
    いきては ゆけないの
    어째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아갈수는 없나요.
    Why can’t one live with wanting nothing

    ゆがんだ うその かけら
    비뚤어진 거짓의 조각들.
    distorted pieces of lie

    まぶしい あすを おもいながら
    ねむれぬ よるを かぞえる
    눈부신 내일을 생각하며,
    잠들지 못했던 밤을 헤아려요.
    Counting nights sleepless with imagine bright tomorrow

    こぼれる つみの におい
    넘치는 죄의 향기
    overflowing the fragrance of sin

    どうして なにも きずつけずに
    あいを まもれないの
    어째서, 누구도 상처입히지 않고서는
    사랑을 지킬수 없나요?
    Why can’t love be held without hurting someone?

    あふれる うその かけら
    넘치는 거짓의 조각들
    overflown pieces of lies

    このてに だいた しあわせには
    だれかの なみだ しみてる
    이 손에 쥐고있는 행복엔
    누군가의 눈물이 베어있어요.
    Happiness in my hands is drenched with somone’s tears

    What is the dream.
    We have a dream now.
    What is the dream.
    We make the dreams come true.
    꿈이란 무엇인가요?
    우리에겐 지금 꿈이 있어요.
    꿈이란 무엇인가요?
    우린 지금 꿈을 실현시키고 있어요.

  • 수렴성에 관한 쫌 쉬운 이해

    어떤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 그리고 그 중간의 어딘가에서 보는 방법이 있다.

    수학적인 대상을 관찰할 때에도 마찬가지 방법이 적용되는데, 그중에서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이 미적분학이 된다. 그리고 그 논리의 핵심에는 “수렴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특성이 생긴다.

    수열은 아주 기본적인 건데, 수열이 가진 특성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몇번째 항 까지 추적해 나가다 보면 수열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수렴하는 수열을 추적하다보면 대충 몇번째 항 이후부터는 추적할 필요가 없다. 왜냐고? 어디에 있는지 뻔히 다 알기 때문이다. 수렴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한히 많은 수열의 항들을 전부 조사할 필요 없이, “적어도 여기 근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수열을 한단계 확장한 것이 함수이다. 수열은 자연수n을 하나 말하면 n번째 항에 대한 숫자가 하나 있는 것이었다. 함수는 실수x를 하나 말하면 그것에 해당하는 숫자가 하나 있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자연수는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적당히 구간을 작게 잡으면 그 안에 자연수가 단 1개만 있도록 할 수 있지만 실수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구간을 잡더라도 실수는 무한히 많이 들어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학자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에라, 모르겠다!” 라는 거다. 우리가 실수에 대해서는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그중에 아무거나 적당히 고르자는 거다. 무한히 많은 실수 중에서 적당히 띄엄띄엄 떨어져 있도록 골라서 수열에서 했던 것처럼 얘기를 하면 되잖아? 사실 우리가 아는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정도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맞는지 어떻게 알까?

    가령, 어떤 함수를 분석하는데, 내가 잡은 수열이랑 너가 잡은 수열이 다를 수도 있을 거고, 여러번 수열을 다르게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마다 결과가 다를텐데, 뭐가 맞는거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학자들은 다시 “아무거나 골라도 상관 없다”는 정리를 증명하게 된다.

    예를들어, 이런 것이다.

    f(x)를 실수에 대해 잘 정의된 함수라고 하자. 즉, 실수 x를 아무거나 고르더라도 그에 해당하는 숫자 f(x)를 말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실수 x를 아무거나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수열 {X}를 만들 수 있다. 이제 질문은 다음과 같다. {X}가 a로 수렴한다고 하면, f(x)는 f(a)로 수렴할까?

    좀 더 쉽게 말을 바꾸면 {X}는 x를 무한히 많이 골라내서 적당히 만든 수열이다. 그런데 이 수열은 n번째 항 이후로는 x의 근처에 전부 다 몰려 있다. {X}에 있는 항을 하나씩 대입하면 f(x)에 해당하는 숫자들도 수열이 될 것이다. 과연 n번째 항 이후로는 f(x)들이 모두 f(a)의 근처에 전부 몰려 있을까?

    답은 “글쎄요”

    함수는 무진장 많이 있고, 위에서 말한 성질이 성립하는 것도 있고 성립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이런 경우 수학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은 “정의”이다.

    x가 a로 접근할 때 f(x)가 f(a)로 접근하는, 그런 종류의 함수를 “연속함수”라고 정의한다.

    이것이 바로 연속성의 정의가 된다.

    물론, 그림으로 그렸을 때 매끈하게 이어져 있는 함수들은 모두 연속함수이다. 연속함수의 종류는 무한히 많이 있다. 다만, 연속이 아닌 함수들(불연속 함수)이 훨씬 더 많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연속함수가 얘기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우린 항상 연속함수만 갖고 얘기를 진행할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만나는 함수중에서는 1/x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연속함수일 것이다.

  • 덧셈과 곱셈

    사칙연산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가장 기본적으로 덧셈을 잘 정의해야 합니다.

    사칙연산은 모두 이항연산(Binery Operation)이라고 부르는 계산법에 들어가는데, 이항연산은 집합에서 원소 두개를 골라서 그 집합의 원소 하나를 대응시키는 규칙을 말합니다.

    +(a,b)=c

    라는 형식으로 덧셈을 정의하게 되는데, 이것을 간단하게 쓰기 위해서 a+b=c라고 적습니다.

    “덧셈이 어떤 집합 A에서 잘 정의되었다”는 말은 집합 A에서 아무 원소 두개를 골라서 덧셈을 했을 때 항상 다시 A로 그 결과가 들어가는 경우에 사용합니다.

    만약 어떤 원소 e가 있어서 집합의 아무 원소 a에 대해서 +(a,e)=+(e,a)=a를 만족한다면 e를 항등원(Identity)이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덧셈에 관한 항등원의 이름을 “영,0,zero”이라고 부릅니다.

    줄여서 적으면 a+e=e+a=a인 e를 0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특정 a에 대해 어떤 원소 n이 있어서 +(a,n)=+(n+a)=e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n을 a의 덧셈에 관한 역원이라고 부르고, -a라고 적습니다.

    곱셈도 똑같은 방법으로 정의하는데,

    x(a,b)=c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곱셈에 관한 항등원을 1이라고 부릅니다. a에 대한 곱셈의 역원은 1/a라고 적습니다.

    아무튼, 이항연산 하나가 잘 정해져 있고, 결합법칙이 성립하면서, 항등원과 모든 원소에 역원이 존재하면 그런 집합을 군Group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교환법칙이 성립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교환법칙도 성립하는 군은 가환군, 또는 아벨 군이라고 부릅니다.

    교환법칙은 a+b=b+a가 모든 a, b에 대해서 성립할 때 교환법칙이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숫자”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교환법칙이 잘 성립하는 가환군을 이루고 있고, 덧셈과 곱셈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잘 정의됩니다. 물론 숫자 0과 숫자 1은 각각 덧셈과 곱셈에 대한 항등원입니다.

    하지만 숫자가 아닌 여러가지 대상들도 군을 이룰 수 있는데, 숫자 말고도 이런 것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알아두면 됩니다. 그리고 그런 대상중에서는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결합법칙은 이항연산을 처리하는 순서를 바꿀 수 있다는 법칙인데, 굳이 쓰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a,+(b,c))=+(+a,b),c) 이고, 이것을 간단하게 쓰면 a+(b+c)=(a+b)+c라고 씁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이항연산들과 대부분의 집합은 결합법칙을 잘 만족합니다.

    분배법칙은 이항연산이 두개 이상 정의된 경우에 이항연산의 순서를 바꿀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군은 이항연산이 1개만 정의되어도 되기 때문에 이항연산이 두개가 잘 정의된 집합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덧셈과 곱셈을 한꺼번에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집합을 환Ring이라고 부릅니다.

    정확히는, 어떤 집합이 환이 되기 위해서는 덧셈에 대해서는 가환군이고 곱셈이 잘 정의되어야 하고, 분배법칙이 잘 성립해야만 합니다. 한가지 특징은, 곱셈에 대해서 역원이 존재할 픽요가 없고 곱셈에 대해서는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분배법칙은 덧셈+과 곱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습니다

    *(a,+(b,c))=+(*(a,b),*(a,c))이고 간단하게 쓰면 a*(b+c)=(a*b)+(a*c)라고 씁니다.

    만약 곱셈에 대해서 교환법칙이 성립하고 덧셈의 항등원을 제외한 모든 원소에 대해서 곱셈에 대한 역원이 존재한다면 이런 집합을 체FIeld라고 부릅니다.

    유리수, 실수, 복소수 등은 모두 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칙연산중에서 두가지를 정의했는데, 뺄셈은 어떤 수의 덧셈에 관한 역원을 더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나눗셈은 어떤 수의 곱셈에 관한 역원을 곱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정의됩니다. 단, 덧셈에 대한 항등원은 곱셈에 관한 역원이 없기 때문에 0으로 나누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질들을 이용하면 숫자들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