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뭐랄까, 매주 만난다는 느낌…-_-;

오늘은 “업보”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했다.

토론 내용은 둘째치고…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진리가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이에 대한 질문에,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있는 곳에 와서 공부를 많이 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면 뭔가 얻을 것이 있을 것이다” 라고 답변했다. 그럼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진정한 나를 찾고 싶지 않느냐고 내게 물어본다. 자신들은 그 방법을 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통해서 찾아낸 “진정한 나”라고 부르는 것은 진짜로 “나”인가? 내가 나라고 깨닫는다면, 그것은 “나”인가? 그것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 “나”인가?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는 주체는 또한 “나”인가?

이러한 질문이 말장난으로 들리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떠한 진리도 끝없이 의심하는 한 진정한 진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에 대해서 뭔가를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아는 것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의심을 멈추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진리”를 진리로서 인정하고 의심을 멈추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차피 진리를 향한 끝없는 탐구 과정의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추는 것일텐데, 여기서 멈추든 저기서 멈추든 무슨 상관일까.

이번에 만난 아가씨는 지난주에 만났던 2인조 여자분들보다는 예쁜 편이었지만, 내게 말을 거는 여자들은 어쨌든 왜 “도”를 공부하는 사람들 뿐인 것일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이 궁금할 따름이다. 그게 운명인가? 인연이라는 건가? 나의 업보인가?

12 thoughts on “12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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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뭐…사기당했다고 생각하면 사기를 당한 것이고,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1.조상님의 업은 실제로 풀어졌는가? (확인 방법 필요)

    2.집안이 실제로 잘 되고 있는가? (확인 방법 필요)

    3.조상님의 업이 풀린 것과 집안이 실제로 잘 되고 있는 것 사이에 원인과 결과 관계가 성립하는가? (확인 방법 필요)

    이 3가지 질문에 대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확인 방법이 제시되어야 하며 또한 그 확인 방법에 의한 답이 YES가 되어야만 레지나 님은 사기를 당하지 않으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저는 전공이 철학이 아니므로 용어의 정확한 정의는 잘 모릅니다…알려주시면 좋지요. ^^

    아무튼, 비슷한 얘기가 동양에서도 나왔던 것 같네요. 윤리 시간에 배웠던 바로는, 이기일원론과 이원론이었던 것 같아요.

    현재 생각하는 것이 불완전하게 육체에 속해져 있는 실재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나”라고 부르는 것은 육체의 속성으로서의 “나”인가요?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나”라는 것의 정의인가요?

    반대로, 현세계와 동떨어진 “어떤 존재”가 있고, 그것이 내 육신을 통해서 나를 나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서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나의 육신이 죽게 되면 그 “어떤 존재”는 현세계에 대한 나의 육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므로 “나”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닐까요? 즉, 내가 죽고 난 이후에도 생각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이 결코 “나”를 생각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겁니다. 그럼, 이 경우에도 이성주의는 승리하는 걸까요?

    말이 복잡해 지는군요…-_-; 저도 일단 줄입니다.

  3. 그 논의에 대해선 서양 철학에선 두가지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매우 유명하고, 근대 철학의 기초이죠.

    이성주의와 실존주의입니다.

    (참고로 존재와 실재의 철학에서의 용어차는 분명히(!) 다르다고 합니다. ‘실재’란 것이 어떤때에

    ‘존재’게 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나중에 해도 늦진 않을 것 같습니다. ㅎ)

    약 17세기 부터 전해져 오던 이성주의Rationalism는 20세기에 와서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인간의 이성을 극도로 신뢰하던 이들이 제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다시한번 인간의

    이성에 극단주의적 회의주의 시각을 던지게 됩니다. 여기서 생긴것이 실존주의Existentialism입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각으로 인해 ‘이성’즉 ‘존재’의 비중은 줄어들고, 그에 비해

    ‘직감’즉, ‘실재’에 의존하는 비중이 늘어나게 되죠.

    (여기서 실재=실존 입니다. 혼용어휘로 알고있습니다.)

    그로인해 snowall님이 하시던 고민이 사람들 사이에서 늘어나게 됩니다.

    ‘나’란 무엇인가. 인지하는 대상으로서의 실재인가, 아니면 판단의 주체로서의 자아인가.

    물론 옛날이야,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였죠 ^^ 행복했었죠.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염려해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러나 실존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은 ‘판단의 주체’에서 ‘인지 되어지는 대상’으로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snowall 님이 말하시던 ‘생각하는 존재’에 대한 회의주의적 입장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인식 모든것을 부정할수 있을때 ‘나’를 지금 현세계와 동떨어진 ‘관찰자’가 ‘육체’라는 ‘관계’로 받아들여야 할지 < - 이성주의
    ‘나’를 육체에 불완전하게 ‘육체’에 ‘속해져’ 있는 ‘실재’로 받아들여야 할지 < - 실존주의 물론 아주 간단하게 답이 주어질려면 그냥 ‘죽어보면’ 알게 되겠죠.
    그때도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이성주의의 승리입니다.(웃음)

    그이후, 포스트 모더니즘과 기타 등등은 말을 아끼겠습니다. 나중을 위하여~

    snowall님과 나누고 싶은 말이 많네요 ^^

    아 참, 실존주의는 결국 인간존중사상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 그 이유는 글쎄… 아마도

    각자의 실재를 직관화 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이상화하기 위해 ‘남’을 이상화해야 할 필요

    성을 인정한것 이겠지요.

    이만 긴 글을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

  4. 제 생각이라고 해서 딱히 길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생각하고 있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 존재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존재가 그냥 “나”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느쪽이든 “나”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나”와 모종의 관계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제 글을 읽고 생각하신게 있다면 댓글이나 트랙백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언제든 환영입니다.

  5. 에이~ 이런 철학적인 것은 몇번이고 되물어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런걸 보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간극이라고 할까나요?! ㅎㅎ

    서양철학에서의 ‘나’는 지구상의 한 객체가 아닌 그야말로 ‘인지의 주체’, ‘판단의 주체’로 본 ‘자아’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에 반면 동양철학에서 ‘나’는 서양철학에서 봤을때는 매우 실존적이어서 ‘생태학적 나’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저는 서양적, 주로 ‘나’라는 개념을 ‘정신의 주체’즉 자아로 본 것입니다. ^^;

    누가 틀리고 옳은 것보단 ‘최선의 것’을 찾기위한 길중 하나라고 생각되네요 🙂

    우와 snowall님과 대화하니 정말 재밌군요 ^^; 링크에 등록해 놓고 자주오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과연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snowall님 생각처럼 ‘보는 시각마다’ 다르게 정의하고 있네요 ^^;

    역시 인간 즉 ‘나’의 한계인것 같습니다. 모든것을 사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유를 멈출수도 없는 존재.

    자주 찾겠습니다. 생각할 주제를 주시니 정말 흥미롭네요 ^^; 역시 제 생각은 항상 짧습니다.

  6. 그렇다면 다시한번 질문이 튀어나오게 되죠. 말꼬투리 잡자는 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생각하고 있는 그 자아로서의 존재는 나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존재가 나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은 과연 나인가, 어딘가 다른 존재가 있어서 그냥 그것이 나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발생합니다.

    요새 장자를 읽었더니 세상이 살짝 다르게 보이네요 -_-;

  7. 상당히 난해한 언어로 써있음에도 불구하고 (-_-;;) 이해하려고 노력해 봅니다.

    snowall님 말처럼 진리란 것은 그 말 정의 자체에 ‘절대불변’이라는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인식론적 관점에서 봤을때,

    ‘모든 인간은 다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인식하는 관점과 방향은 다르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러므로 진리란 없다’

    라는 생각까지 진행되네요 ^^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한가지 사실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의 의미 입니다.

    이미 실존주의적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그 가치가 약간 바래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여기서 한가지 진리가 나옵니다.

    데카르트는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자신의 인식을 모두 부정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모든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즉 자신(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 즉 자아가 인식할수 있는 모든 실존에 대한 ‘부정’을 취할수(결론은 실패지만)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오직 한가지의 진리는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입니다.

    물론 이것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주의적 입장이 들면서 ‘실존주의’가 나타나면서

    그 빛이 바라긴 합니다만, 여전히 이성주의적 체계안에선, 절대 불변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별것도 모르는 넘이 너무 나대는 듯 느끼실것 같아서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ㅎ;

    snowall님이 생각하신걸, 쓰신걸 보니 저도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저도 생각해 보아야 겠군요 ㅇㅅㅇ

    저의 생각이 짧다는 것이 많이 느껴지는 군요 ;;;

  8. 저기요 진짜 죽겟어서 물어보는건데요

    제가 어제 사람을 공부하는 사람한테 거의 끌려가다시피 갔거든요

    그래서 결국에는 하는말이 조상님의 업을 풀어들려야 제 집안이 잘된다고

    준나 귀팔랑해서 넘어갔죠..

    수중에 있던 9천원중 7천원을 털렸죠…

    그리고 민증번호랑 집번 전번 가족이름 주소까지 다›㎢쨉?

    이건 뭐죠?ㅠㅠㅠ

    저 사기당한거죠??????

    맞죠?

  9. ‘도를 아십니까’ 무리에서 쥔장님은 이미 스타??

    아니면 누가 설득에 성공하는지 시합중??

    -_-;;

  10. “어떠한 진리도 끝없이 의심하는 한 진정한 진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란 말이 참 인상적이네요~,

    어짜피 우리들은 결국 어디서든 멈춰서서 진리라고 믿고 살아야겠죠 ㅎㅎ

    근ㄷㅔ, 정말 자주 만나시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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