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ple의 단점

최근 잘 쓰던 Mathematica5.2를 버리고 Maple10으로 전향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뭐, 돌이킬 수는 없는 것 같고, 일단 Maple에 좀 익숙해져보고자 하는데 하도 답답해서 몇자 적어둔다. 졸업하면 다시 Mathematica로 바꿔야지.

1.자바 기반

최악의 단점이다. 자바 자체가 갖고 있는 범용성 등의 장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덕분에 메모리를 엄청 잡아먹는다. 펜티엄4 2.4GHzCPU에 1GB의 램을 갖고 있는, 나름 막강한 컴퓨터가 뻗어버린다. 그저 3×3 행렬에 변수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2.계산 시간

Mathematica는 대충 처리할 부분은 대충 처리해서 확실히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처리된 부분을 그때그때 출력해서 체감속도도 빠르다 Maple은 반대다. 꼼꼼히 전부 계산하는데다가, 전부 처리된 다음에 한번에 출력해준다.

3.사용자 정의 함수

Mathematica에서는 별걸 다 함수의 변수로 넣을 수 있었다. 근데 Maple은 그게 난감하다. evaln이라는 함수를 쓰면 되긴 하는 것 같은데, 사용법이 직관적이지는 않다.

4.행렬 계산

Mathematica는 함수를 행렬에 넣어도 대충 알아서 eigenvector를 잘 계산해줬다. Maple은 에러를 내보낸다. 해서, 일단 변수로 넣고 나중에 합성함수로 만드는 방법을 쓰고는 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다.

5.함수 계산

내가 만든 함수에 숫자를 대입할때도 eval이라는 함수를 써야 한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그리고 방금 •쩐駭?-_-;

6.클래식Maple과 그냥 Maple의 비호환성

같은 버전의 maple인데 좀 호환 되게 해놓지 말이다. 두개의 저장 화일 형식이 달라서 서로 호환이 안된다. 게다가 저사양을 위해 만들었다는 클래식 maple은 마우스 휠이 안먹는다. 초난감한 상황이다. 그리고 클래식 maple이 방금 계산하다가 사라져버렸다. 나의 나름 막강한 컴퓨터의 뭔가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거냐.

아아…구구절절이 단점이다. 저 그냥 mathematica 쓰게 해주세요…ㅜ_ㅜ

방문객수를 없애다

오늘까지 이 블로그를 개설한 이후로 대략 15000명의 손님이 내 블로그에 다녀갔다. 한달에 4000명정도 들어오는 것 같다. 문제는, 나를 점점 숫자에 집착하게 만드는 블로깅의 중독성이다. 따라서, 첫 화면에서는 내 블로그에 몇명이나 들어왔는지 알 수 없게 했다. 굳이 알고 싶다면 난 관리자 페이지에서 알아볼 수 있을테니. 그리고 눈에 안보이게 되면 집착하지도 않게 되겠지. 이것으로서, 좀 더 재미난 글들을 쓸 수 있게 되려나 모르겠다. 방문자수는 내 나이와 마찬가지로 숫자에 불과하다. 하루에 몇명이 오느냐가 내 블로그의 품질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하하! 댓글로 승부하겠다!! (누구랑??)

내 블로그의 의미

내게 있어 블로그란, 내 마음속에 있는 잡다한 것들을 전부 꺼내놓는 곳이다. 원래, 나란 인간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그 속은 굉장히 외로워 하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항상 칭찬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고, 적어도 하나는 자랑하고 싶고, 누구보다 뛰어나고 싶다. 남들이 볼 때는 잘난척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게다가 머리는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이라, 생각의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상상들은 정말 많다. 전공이 물리학이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도 엄청나게 상상하고, 사회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역시 무진장 많이 상상한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구별이 거의 없다. 다만, 이것들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때 적당히 걸러져서 현실에 가까운 것들만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걸러져서 남은 찌꺼기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있게 되는데, 이걸 그냥 쌓아두면 썩어서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 같다. 따라서, 그런 생각들의 일부를 꺼내서 블로그에 남겨두는 것이다. 이것들은 점점 쌓여서 썩어가고, 결국 내 사상에는 악과 독과 아집과 편견만 남았다. 그리고 이것이 내 종교이자 신앙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쌓여가는데 이것을 막아내서 나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상당히 힘든 작업이다. 물론 이 모든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힘든건 나뿐이고, 해결하기는 그냥 간단하게 내가 생각을 고쳐먹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어디 쉬운 일인가. 애인이라도 있으면 털어놓겠는데, 친구라도 있으면 얘기하겠는데, 어디에도 그럴만한 친구가 없으니 블로그에 정제해서 내려놓는다. 이런 생각들을 얘기할 정도로 친한 친구는 그 또한 자기 삶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한번 만나자고 날짜 잡는것도 일이다. 따라서 내 블로그는 내 마음속에 있는 독들을 내려놓는 공개의 장이다. 방문하는 손님들이 남기고 가는 여러 댓글들은 내 정신에 칭찬으로 받아들여져서 스스로의 위안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같은 쓰레기같은 글들은 쓰고싶지 않다. 일부러 낚시를 위한 글 역시 쓰고싶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거대한 판타지가 구축되어 있어서, 견고한 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 우울증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해 보긴 했다. 실제로 우울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우울증이, 아직은 정상적인 생활을 위협할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일단 놔두고 있다. 언젠가는 치료되었으면 좋겠다.

대학원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 내 천직은 물리학자라는 느낌과 동시에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다. 어느 대학원에 갔더라도 똑같은 느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뭐 다른 대학원에 간 친구들 보면 피차 비슷해 보이긴 한데, 내가 다른 데 갔으면 좀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약간 있다. 누군가가 내 마음속을 따뜻하게 위로해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내 정신은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와닿지가 않는다. 아니, 내가 거부해 버린다. 하고싶은 말 중에서 할 수 있는 말보다 하지 못하는 말이 더 많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블로그라고 해서 내가 모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 보다는, 간접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다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소한 여유때문에 블로그에 글을 쓸 정도로 답답하다.

요새 드는 생각은, 내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계속 실패하고 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하는 말들의 뜻을 알아주지만, 내가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과 만나야 할 사람과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나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그냥 툭 내뱉으면 그 즉시 오해한다. 시차도 없이 그 즉시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불만이 많고, 그걸 나한테 직접 얘기해서 충고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 충고가 날 진심으로 걱정해서 해준다는 것도 알고, 틀린 충고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실제로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고쳐 나가는 건 너무나 어렵다. 결국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 자체가 조금식 두려워지고 있다. 아니, 실제로는 두렵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고 완전히 포장해서 그 가면쓴 모습만 보이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자기 내면을 보이지 않고 가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그 가면을 내 앞에서 벗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역시 내게 나의 속마음을 보일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면을 쓰고 다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난 어쩐일인지 그게 어색하다. 내게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일이다. 모든 문장을 검열해서 내보내는 건 아직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물리학이랑 수학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물리와 수학은 가려서 말할게 없다. 그냥 내 생각을 얘기하면 되는 거고, 논리적으로 맞으면 된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면 그냥 그걸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 사람들과 평범한 얘기를 할 때는, 배워야 할 배경지식도 산더미같이 많고 각 문장을 얘기할 때마다 그 대답을 예상하면서 얘기를 해야 한다. 물론 이런걸 실제로 의식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 경우, 이런걸 아주 신경써서 의식하지 않으면 대화의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분위기 파악이 안된다. 결국, 왕따라는 거다. 실제로도 어릴때는 상당히 따돌림을 당했었다. 하지만 과학이나 수학은 내가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그냥 듣고 있으면 된다. 왜 말 안하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궁금하면 물어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TV드라마 얘기, 가령 “주몽”이나 “환상의 커플”얘기를 하면, TV를 즐겨 보지 않는 내게 그 얘기는 그냥 역사 얘기, 커플 얘기 정도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른다. 거기서 송일국이 고구려를 건국했는지 말았는지는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즐겨서 하고, 그런 대화에 끼어있지 않으면 나는 역시 소외된다. 그렇다고 내가 TV를 챙겨서 볼 정도로 시간이 남는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내가 하는 말은 대부분 달아오른 분위기를 깨서 그 판을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 그냥 가만히 듣고있으면 되는데, 앞서 얘기했듯이 난 나서기 좋아하고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냥 그렇게 듣기만 하는 것도 곤욕이다.

이런 사람이, 차라리 철저하게 물리학에 미쳐있으면 또 모를까, 그건 아니다. 삶 자체에도 꽤 관심이 있고, 세상에도 궁금한것이 너무 많으며, 해보고 싶은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물리학은 그중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것일 뿐이다.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하고, 사회운동도 참여해보고싶다. 화학이나 생물학도 재미있어보이고, 복잡계연구도 흥미롭기만 하다. 판타지 소설도 좋아하고 무협지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을 쓰는 것 역시 좋아한다. 썩어돌아가는 정치판을 보면 내가 확 바꾸고 싶기도 하다. 관심가는 건 너무 많은데 현재는 그걸 다 해볼만한 능력도 시간도 없다. 이럴때마다 드는 생각은 빨리 커서 자리잡고 여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고 했다. 계속 맞다보면 나도 언젠가는 둥글둥글해지지 않을까?

내 머리가 좋긴 하지만, 실제로 천재는 아니다. 그냥 단지 물리와 수학 쪽으로 약간의 재능이 있던 걸 갈고 닦았을 뿐이다. 얻은건 학점이고 잃은건 사회성인걸까.

스스로가 힘든걸 알고, 계속 스스로를 다독여주면서,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며 계속 버티고 있다. 버티기만 할 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실제로는 잘 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잘 할 거다. 하지만 그런다고 힘든게 안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괴로운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익숙해져서 모르게 되더라도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결국, 내 정신은 성장하지 못했는데 사회에서는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거다. 어른스러운척을 하든 실제로 어른이 되었든, 아무튼 겉보기에는 어른이 되어서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가야만 한다. 아주, 힘든 작업이다. 수만번의 실패와 연습이 필요하다. 부디, 그 실패 속에 치명적인 실패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라플라스 변환 VS 푸리에 변환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

공학/물리학/수학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몰라도 사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부담도 문제도 없는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 가장 유명한 “적분 변환”중의 하나이다. 이건 어디에 쓰는 걸까? 아니, 일단, 왜 할까?

두 변환의 공통점은 지수함수를 곱해서 적분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지수함수에 들어가는 숫자가 라플라스 변환에서는 실수이고 푸리에 변환에서는 허수라는 점이다. 어? 실수+허수는 복소수니까, 그냥 복소수를 지수에 올려서 곱해도 되지 않을까? 아이디어로 볼 때, 두 적분 변환은 완전히 똑같다. 게다가 라플라스와 푸리에의 생존 연도도 비슷하다. 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낸 걸까?

이런 궁금증은, 풀려고 하면 끝이 없으므로, 난 그냥 내가 아는 수학적 지식을 통해서 그 아이디어를 유추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의 시작은 “자유”님께서 내 블로그의 방명록에 남긴 질문에서 시작한다. 인용하자면

라플라스 변환법에 적분e^-st을 하는 이유 아십니까?

왜 하필 e^-st를 곱해서 적분을 하는거죠?

결과론적으로 라플라스를 이용해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대수적 기법으로 쉽게 푼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도저히 그 발상법 자체가 이해가 안됩니다.

누구나 해봄직한 질문인데, 왜 하필 e^-st인지는 나 역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함수들을 곱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적분 가능한 함수 f(x)의 적분변환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g(y)=Integral over x from -inf to +inf of L(y,x)f(x)

이때 L(y,x)는 적분 가능한 2변수 함수이다. 물론 적분 가능하다는 건 제곱해서 적분했을 때 그 적분이 발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L(y,x)에 뭘 넣으면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까? 삼각함수나 지수함수는 빼자. 그건 이미 푸리에 변환과 라플라스 변환이라고 부른다.

한가지 알아둘만한 점은, 푸리에 변환에 들어가는 삼각함수는 생각해보면 직교 함수 집합을 이루어서 완비집합이 된다.(complete set) 따라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함수라면 푸리에 변환을 통해서 완전히 표현할 수 있다. 근데 라플라스 변환은 그렇지가 않다. 직접 적분을 해보면 알겠지만 적어도 실수 변수 영역에서는 직교하지가 않는다. 어쩌지?

이런식으로 직교하는 함수들의 집합은 여러가지로 찾아볼 수가 있는데, Legendre, Hermit, Bessel…등등, 듣기만해도 위대한 수학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Legendre함수나 Hermit함수 등이 갖지 못한 라플라스-푸리에 변환의 독특한 장점이 있다. 그것은, 미분과 적분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f(x)에 관한 푸리에 변환 표현식을 g(k)라고 하자. 그럼 f(x)를 미분한 것에 대한 푸리에 변환 표현식은 아주 간단하다. ik를 곱하면 된다. 물론 i는 허수단위이다. 라플라스 변환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변수 s를 곱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발상법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언뜻 이해할 법도 같은데…

잘 생각해보면, 지수함수는 미분과 적분 연산에 대해서 불변이다. 다시말해, 지수함수는 미분연산자와 적분연산자에 대해서 고유함수가 되고, 그 고유값은 그대로 다시 변수가 된다. 다른 어떤 형태의 함수도 미분과 적분에 대해 불변인 함수는 없다. 이것은 선형 미분방정식을 라플라스 변환이나 푸리에 변환을 이용해서 나타냈을 때 미분방정식을 대수방정식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고유값 방정식의 의미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

고유값 방정식이란 Ax=ax인 a와 x를 선형연산자 A에 대해서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걸 어디에 쓰냐고? Af=g를 만족하는 f를 알아내고 싶을 때, g를 고유값들에 대해서 표현하면 f에 고유벡터들의 성분들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f=x1+x2+x3이라고 할때, Ax1=a1x1등등인 관계가 있다면, Af=Ax1+Ax2+Ax3=a1x1+a2x2+a3x3이 되어서, g=b1x1+b2x2+b3x3인걸 알기만 하면 a1=b1, a2=b2, a3=b3인 것을 알게 되는, 대수방정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라플라스 변환이나 푸리에 변환을 해서 문제를 푸는 발상법은, 그 역사는 잘 모르겠지만, 미분연산자 자체를 연구하다가 미분연산자의 고유값 방정식을 만족하는 고유벡터를 알게 되어서 함수를 고유벡터를 이용해 표현하다가 나타나게 된 수학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버스 딜레마 2탄

자, 딜레마에 빠져 봅시다.

버스 정거장에서 예쁜 여자를 발견했다. 만약 버스 한대가 그냥 지나갔다면 내가 그 여자와 같은 버스를 탈 확률은 증가하는가?

이것과 같은 문제인데, 변수를 연속변수로 바꿔보자.

주의사항 : 이 문제는 절대로

수학

문제로서 보아주기 바란다. 실제 문제에서 이 문제의 답은 0%이고, 이 숫자는 99%신뢰구간에서 오차는 0%인 값이다.

내가 버스 가장 뒷자리에 앉아있다. 어쩌다보니, 승객은 나 뿐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문에서 예쁜 여자가 타더라구. 그런데 그 여자가 첫번째 의자를 그냥 지나친거야. 그럼 그 여자가 내 옆에 앉을 확률은 증가했을까?

어디서 많이 보던 문제다. 그렇다. 우리는 초등학교 소풍때 많이 즐겨보았다. 수건돌리기라는, 뱅뱅 돌면서 달려야 하는 그것을.

꼼지락 님의 의견에 따르면, 위의 문제는 여전히 이산변수다. 진정한 연속변수 문제는 다음과 같다.

버스에는 사람이 모두 앉아서 앉을 자리가 없다.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은 뒤쪽에 서 있는 나 뿐이었다. 앞에 있는 문에서 여자가 타더라구. 그 여자가 한걸음 앞으로 왔다. 그럼 그 여자가 내 옆에 설 확률은 증가했을까?

정답은 나도 모른다.

캠페인 : 딜레마 속에서 해탈하자.

빛보다 빠른 소리?


논문 보기



라이브 사이언스 기사 보기



연합뉴스 기사 보기

당신, 뭔가 낚였다는 느낌 들지 않았는가.

아무튼 과학 관련 기사는 일단 논문을 봐야 뭔 얘기를 할 수 있으므로 논문을 찾아봤다. APL홈페이지 가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네이버 기사의 댓글은…”말도 안돼”가 주류인 것 같은데, 이정도의 수준급 논문을 고등학생이 실험해서 썼다는 건 왜 아무도 주목을 안하지? 우리나라에선 미친 고딩이 아닌 한 절대로 이정도의 논문은 안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더 부러운건 마지막에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NSF”이다. 국가 과학 재단의 지원금이라니. 우리나라 과학재단은 뭐했나 싶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라고 머리가 나쁠 이유가 없다. 지원만 해준다면 더 좋은 논문도 쓸 수 있고, 더 뛰어난 결과를 낼 수 있다. 다만 그걸 할 수 있다고 고등학생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을 뿐이다.

해보라고 시키지도 않고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지도 생각 해본적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과학실의 최첨단 실험 기자재는 먼지만 쌓여간다. 왜 샀냐, 그건.

본론으로 돌아와서, 논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험을 했는데, 긴 파이프 중간에 소리가 똑바로 가는 길과 옆으로 돌아서 가는 길을 만들었다. 이것을 Loop filter라고 부른다. 한쪽에서 스피커로 입력을 넣고 반대쪽에서 마이크로 출력을 붙잡아서 컴퓨터로 분석하는 거다. 그럼, 결과가 왜 이따위냐고? 상대성 이론이 틀린거 아니냐고? 글쎄? 실험 결과가 그렇다는데? 실험 결과도 맞고 상대성 이론도 맞다.

자, 생각해 보자. 시간-공간 영역에서, 음파에 대한 함수를 생각해 보면 어느 한 영역에 몰려있다. 이것을 wave packet이라고 부른다. 이걸 공간 영역에서 푸리에 변환을 해 보면, 각종 속력에 해당하는 음파 성분들이 다양하게 모두 있다. 이것들이 전부 합쳐져서 하나의 wave packet을 구성하게 된다. 문제는, filter를 통과할 때 생기는 resonance이다. 특이하게 생긴 루프 필터 덕분에, wave packet의 성분 중에서 그냥 가던 애들 말고, 엉뚱한 애들이 공명을 일으켜서 증폭이 된 거다. 이렇게 되면 재구성된 wave packet의 생김새가 변하게 되는데, 이때 말하는 “변화”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여기에 있던 것이 저기까지 가버릴 수 있는, 순식간에 가버릴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음파를 구성하는 어떤 공기 분자도 빛의 속력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상대성 이론에 문제는 없다. 그리고 음의 군 속력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건 loop filter가 있는 구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고, 꽤 특수한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다지 실용적으로 쓰일 것 같지는 않다.

로또 당첨 확률 10배 올리는 법

로또는 재미있는 확률 게임이다. 천원 내고 한장 사면 800만명중에 1명 정도가 돈을 몰아서 받는다. 복권이 다 그렇듯이 “몰아주기”인데, 최근 로또 당첨 확률을 10배로 높여준다는 행운의 번호를 파는 사이트가 나타나서 나를 낚았다. 그 헛소리에 대한 내 지적을 적어둔다.

일단 로또 1등 당첨 확률을 계산해 보자. 이건 45개중에 6개를 고르면 되므로

8145060분의 1의 확률이다. 2등 당첨 확률은 45개중에 5개를 맞추고 보너스 번호를 맞추는 건데, 이건 6개중에 한개 틀려도 되므로 8145060분의 1에 6을 곱한 숫자이다. 1357510분의 1이다. 3등은 45개중에 5개 맞추는 거니까


1221759분의 1이 된다. 4등은 148995분의 1이고, 5등은 14191분의 1이다. 1에서 앞의 숫자들을 빼면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된다. 그 확률은 0.9999999434231186이다.

당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번호가 아닐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 99.99999434231186%이다. 까마득하게 100%에 가깝다. 당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번호가 아닐 확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건 아주 힘들지만, 당신이 찍은 번호가 당첨번호일 확률을 두배로 높이는건 아주 쉽다.

한장 더 사면 된다

.

이건 아주 당연한 얘기다. 당신이 만약 모든 가능한 조합을 전부 다 살 수 있다면 당신의 당첨 확률은 100%가 된다. 하지만 당신이 낸 돈을 당신만 가져가는게 아니라 다른 맞춘 사람들과 로또 수익자들과 나눠 가져야 하므로 당신이 낸 돈은 확실하게 되찾지 못한다. 너무 손실이 크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별 희안한 당첨 공식들이 난무하는데, 그냥 찍어라. 당첨확률 똑같다.

당첨 번호일 확률을 10배로 높이는 방법은 이제 당신도 대답할 수 있다. 9장 더 사라.



영어교육 효과 있다?없다? – “모순”


‘초등학교 영어수업 10년’…효과 있었다



초등영어교육 “도움 안됐다”

같은 연구를 갖고 기사를 썼는데 이건 뭐지…

자세히 읽어보니, “효과 있었다”는 쪽은 애들 성적이 올랐으니 효과가 있다는 얘기고, “도움 안됐다”는 쪽은 애들 자신감이 떨어졌으니 별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다. 기사 내용은 비슷한데, 제목을 이렇게 뽑아놓으니까 전혀 다른 기사가 되어버렸다. 이런것을 두고 중국어로 “모순”이라 한다. 영어로는

confilction

contradiction이라고 하면 되겠다.

기사 내용은 애들이 실력은 올라갔는데 자기들이 영어를 잘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얘기다.

하기사, 애들에게 영어 못하면 취업하기 힘들다는 얘기만 잔뜩 해주고, 어딘가의 초등학생이 토플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그렇다고 한국어를 제대로 교육받는 것도 아닌데 무슨 자신감이 생기겠나 싶다. 이 기사를 분석하면, 학생들에게 지금 필요한 “영어교육”은 충분히 효과적이며, 여기서 더 열심히 하라고 시키는 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것과 같다. 더 잘하긴 하겠지만 빨리 지칠 것이다.

내 경험에 미루어 보면, 난 중학교때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웠고, 고등학교때 까지 영어시험은 전부 외워서 봤다. 대학에 와서 전공을 원서로 배우니 읽기는 금방 늘더라. 강요에 의해 배운 것 보다 재미있고 필요해서 배운게 훨씬 빨랐다. 중고등학교때 영어학원 다닌건 문법 단과를 들은 것 뿐이다. 난 무조건 문법만 했다. 레포트를 전부 영어로 썼더니 쓰기도 늘었다. 쓰기의 기본은 한국어로 잘 쓰면 영어로도 잘 쓴다고 한다. 영어 공부보다 소설 쓴게 영어 쓰기에 훨씬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쓰기가 대충 되니 말하기도 얼추 된다. 다만 듣기가 아직 곤란하다. 어릴때부터 막연히 잘하면 좋겠지라는 기대감에 억지로 배우는건 별로 도움이 안된다. 차라리 외국인 친구랑 놀러다니는게 훨씬 영어에 도움 되겠더라. (돈도 안 든다)

오래된 친구

올해(2007)로 24살이다.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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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화기에 들어있는 이름 갯수는 346개. 그중 회사나 가게 전화번호도 있으니까, 대략 300명 정도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치면 맞을 거다. 그중 내가 꽤 친한 친구들은 얼마나 될까? 이 얘기를 들으면 기분 나빠할 친구들도 있겠지만, 난 친구들과의 우정을 정량화 시키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더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를 구별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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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가장 소중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동시에 혹시라도 그가 나를 배신해도 그를 절대로 원망하지 않음.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더라도, 다시 연락된다면 언제라도 반가운 친구. 당연히 매일 만나도 반가운 친구.

소중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가 나를 배신하면 좀 원망할 것 같음.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더라도, 다시 연락된다면 언제라도 반가운 친구. 당연히 매일 만나도 반가운 친구.

친한 친구 – 내가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역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기대하지는 않음. 그가 나를 배신하면 충격 먹을 것 같음.

잘 지내는 친구 – 내가 그를 배신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깊은 사정은 잘 모름. 그가 나를 배신하면 약간 충격 먹을 것 같음.

아는 친구 – 친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므로 배신 여부를 따지지 않음.

싫은 친구 – 싫어함. 일부러 피해 다니며, 보더라도 굳이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음.

여기서, 배신이란 그 친구의 어떤 행위나 발언으로 내가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받아서 그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소중한 친구는 지금 양군, 김양, 송양, 이렇게 셋이다. 원래는 한명 더 있었는데, 그는 꿈을 찾아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채 연락 두절이다. 다시 연락된다면 좋겠지만, 친구 목록에서 빼지 않으면 그리워 견딜수가 없으므로 일단 삭제했다.

소중한 친구는 김군, 류군, 김양, 이양, 황양, 이렇게 다섯이다.

나머지, 친한친구는 대략 10명정도, 대부분은 잘 지내는 친구에 해당한다. 싫은친구는 현재 딱 한명 있다.

소중한 친구/가장 소중한 친구 그룹은 중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다. 이제 거의 10년정도를 알고 지내게 되는 친구들이다. 깊이있는 대화도, 속에 있는 얘기도 아주 많이 해봤고, 내 삶의 이야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1년에 한번이라도 가끔 전화를 걸었을 때 항상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는 친구들이다. 각자 알게 된 경로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그들끼리는 서로 잘은 모르고 대충 안면만 있는 사이지만, 내게는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다.

내 친구들을 분석해보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내가 고등학생 시절 이후엔 의도적으로 여자에게만 접근했기 때문인데, 남자들은 굳이 접근하거나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술 같이 마시고 놀러다니다 보면 친해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여자애들이랑 친해봐야 결혼하면 다 떠나간다고 경고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를 이해해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라고 해서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들을 골라서 사귀는데 별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상, 그저 내 일방적인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과연, 나는 내 친구들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는지,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절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은 없겠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더 많이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더 많이 나를 얘기해주고 싶다.

소중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부러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친구사이라는 인간관계는 일부러 만드는게 아니라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친해져서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1. 사실은, 교수님이 나보고 계산하라고 시키신게 더럽게 안풀려서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고 싶어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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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물론 이 구별은 나의 내부적인 관점이고, 평소에는 degenerate되어있다. 실제로 이것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는 다른 social interaction이 perturbation을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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