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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4213&CMPT_CD=P0000
한반도 어딘가에는 21세기가 12%를 지나는 이 시점에 아직까지도 병신들이 살고 있다.
세인트 영맨
결정론
부업을 하다보니 “결정론”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아, 참고로 제 부업은 국어사전 편찬입니다. -_-;
“결정론”이라는 말은 정의하기는 쉽죠. 그러나 그 용어의 뜻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결정론이라는 말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아요.
1.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2. 어떤 일은 다른 결과의 원인이다.
3. 따라서, 일단 처음에 어떤 일이 시작되었다면 그 일은 끝없이, 무한한 미래까지, 모두 다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다.
4.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은 과거는 어떤지 몰라도 현재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5. 그러므로 우리 사는 세상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을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언
뜻 보기에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다른 동물들은 몰라도, 적어도 인간은 자유 의지라는
것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거든요. 밥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 않고. 취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죠. (물론 이 예제를 보신 많은 분들은 이 시점부터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결정론을 믿으실지도 모릅니다만.)
결정론 얘기를 떠올리면,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것이 운세, 점괘 같은 점복술이예요. 10년전, 친구와 함께 찾아간 사주까페에서 거기 주인장님이 저의 손금과 사주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자네는 연애운만 빼고 다 좋아.” 라고.
저
는 점과 예언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정말이예요. 모든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고, 운과 불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그 이후의 결과는 어떻든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30살이 되어가도록 연애는 텄네요…
제
가 점과 예언을 믿지 않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미래를 예언하는 말을 들었다면,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인간에게 영향을 주어서 예견된 미래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요
즘 영국문학 수업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맥베스”를 강독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또한 예언이 매우 중요하게
나옵니다. 맥베스는 세 마녀가 지나가다가 던진 “넌 왕이 될거야!”라는 예언을 철썩같이 믿고 일을 저질러 버리죠. 그래서 왕이
되긴 되었는데, 왕이 되고나서 결국은 심리적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튼간에 맥베스의 반란으로 예언은 실현되었지만, 만약 맥베스가 일을 저지르지 않고 쭉 기다렸다면 늦더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겠죠.
이런 종류의 예언은 “자기 실현적 예언” 이라고 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elf-fulfilling_prophecy
예언이 그냥 그렇게 될 것이다 수준의 약한 의미를 넘어서, 마치 그렇게 되는 것이 절대 법칙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예언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강제로라도 예언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죠.
자
기 실현적 예언은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여러가지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운동 선수들이 자기암시를 걸어서 좋은 성적을 낸다거나, 가짜
약을 먹더라도 진짜 약이라고 믿고 병이 나을거라고 믿은 환자가 실제로 병이 낫는다거나. 그러나 부정적으로 사용된다면 맥베스의 예도
있고, 종말론자들의 집단 자살같은 비극도 일어나죠.
그리고 “꿈꾸는 다락방”이나 “시크릿”같은 책에서는 자기 실현적 예언을 무슨 맥가이버 칼 처럼 포장하고 있기도 하죠. 틀리진 않지만, 맞다고 스스로가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증명하지 않는 한 증명할 수 없는 예언들이죠.
이
런 생각을 해 봐요.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짜장면을 먹기로 결정한 것이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원인으로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또는, 짜장면을 먹기로 한다는 사실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번엔 짬뽕을 먹기로 선택하는 것 조차도 결정되어 있다고. 게다가 여기까지 눈치챈 후 볶음밥을 시켜먹기로 하는 것
또한 이미 엄격한 인과법칙에 따라 내정된 일이라고.
당신은
자유
로우십니까?
스팸의 진화
아는 사람 블로그에 post lift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이것은 명백히 스팸인데, 이름 눌러서 들어가보면 뭔가 중장비 회사의 온라인 매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스팸은 다음 댓글의 일부를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였다.
최근에 “영어 환자”와 “영어 중환자” 플러그인 등 영어만으로 이루어진 댓글을 기피하는 기능을 가진 비영어권 게시판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전략인 듯 싶다. 즉, 자신이 달려고 하는 게시판의 본문을 인식해서 글 일부를 복사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당 게시판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올바른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광클 금지
YTN -[생생 과학현장] 찰나를 잡는다, 팸토과학
http://www.sciencetv.kr/program/program_view.php?s_mcd=0184&s_hcd=01&key=201204171556427600
언론 탔다. ㅋㅋ
배경으로 보이는 연구원B가 나임.
주소에 오타가 있었음. -_-;;
조선일보 칼럼, 체육학자를 모독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6/2012041602483.html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8674.html
두 기사를 읽어보자.
김대중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대성의) 논문 표절의 경우는 그가 학자가 아니고 체육인 출신이라는 점 등이 확인되고 고려돼야 한다.” 라고.
학자가 아니라니?
http://www.kookmin.ac.kr/site/ecampus/new/people.htm?mode=view&submode=scrap&num=336
국민대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 문대성은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는 학자로서 독립적인 연구가 가능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학위이고,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해당 전공 분야의 전문가로서 일정한 자격을 갖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았는데도 학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체육학이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 발언은 문대성이 논문 표절을 하지 않았고 학문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완전무결하게 떳떳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학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체육인 출신이라고 해도 문제가 있다. 체육인은 표절을 해도 된다는 뜻인가? 이 또한 체육인들이 들으면 기분나빠할 소리이다.
감싸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전국구 일간지의 고문씩이나 되시는 분이 이런 소리를 하시면 좋다가도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