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었다. 꽃이 피어나고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바로 그 봄. 진저리 왕국 수도 데이지 시티의 중앙대로에는 거리를 질주하는, 그렇다기보다 폭주하는 마차가 있었다.
“비키시오~ 이럇! 다쳐도 몰라요!”
마부의 외침에 힘입은 거친 말발굽소리와 채찍소리가 시내의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그 뒤로 매달린 마차가 돌부리에 걸려 연신 비명을 지른다. 그리 고급 마차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마차라는 물건이 본래 부유층의 전유물인지라 길 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소란에 서둘러 길가로 비켜서면서도 마차를 향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낼 뿐 크게 고함을 지르지는 못했다. 그런 마차안에는 마차를 타고 있는 것치고는 굉장히 수수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둘 앉아있었다. 그 중 왜소한 체격의 성인 남성이 나지막히 한숨을 쉰다. 그 한숨소리가 세번을 넘어가자, 창밖을 구경하며 들떠있던 소년이 인상을 팍삭 구기고는 한소리하고 만다.
“아빠, 그러게 마차는 굳이 안 빌려도 된다니까? 걸어가도 괜찮다니깐, 없는 형편에 굳이 빌리자고 했던 건 아빠잖아? 한숨 그만 쉬어~”
“아니 그래도 학교가는 첫날인데, 다른 귀족 집안 애들에게 기죽을 수는 없잖냐.”
“그럼 후회를 말던가! 아니 한숨을 왜 쉬고 있는거야? 대체.”
그렇게 불평하는 아빠와 투덜대는 아들을 태운 마차는 진저리 왕국 왕립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이 학교의 입학식은 매년 3월 첫번째 월요일에 열린다. 진저리 왕국의 변두리 시골 마을에서 살던 부크스 씨와 그 아들인 아레스는 바로 이 입학식에 참여하기 위해 마차를 빌린 것이었다. 한참 아버지에게 틱틱대다보니 창 밖으로 학교의 담장이 보였다. 담장이라고 부르긴 하겠지만, 마치 성벽처럼 높고 웅장하여, 중압감을 내뿜었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왕실의 인장이 찍혀 있는 입학 허가증을 보여주고 들어가니 두 사람의 눈앞에 웅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입학식이 이루어지는 대강당 근처에는 수많은 마차가 정렬해 있었고, 멋있게 빼입은 마부들이 마차에 앉아서 늘어지게 담배를 한대씩 태우고 있었다. 아마 다들 입학생들을 태워온 마차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마차들은 아레스가 타고 온 것보다 번쩍번쩍해서, 부크스 씨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돈 내서 빌려봐야 소용 없구먼… 하이고.”
“아빠, 그러니까 기죽지 말라니까?”
마차에서 내려서 들어간 입학식장의 풍경은 보통의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새로 산 교복을 빼입고 자신이 들어가게 될 반의 대열에 선 채 입학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도, 외곽에 설치된 자리에 착석하여 다 똑같아 보이는 학생들 중 제 자식을 찾아 눈에 담고 있는 학부모들도 말이다. 그래봐야 12살 정도의 앳된 소년 소녀들이지만, 부모들의 눈에는 위대한 기사나 대마법사의 새싹으로만 보일 것이다. 입학식에 늦지 않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레스도 그 신입생들의 대열의 앞으로 가서, 한칸 비어있던 자기 자리를 찾아서 섰다.
빵빠빰~~!
경쾌한 나팔의 연주와 함께, 국왕과 왕비가 연단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왕립학교의 교장, 수석 기사단장, 수석 마법대장이 들어왔으며, 그 뒤를 이어 교수들이 입장했다. 입학식장에 커다란 박수소리가 울려퍼지고, 몇몇 사람들의 환호성도 들려왔다. 아마도 최근 몇년간 세금을 올리지 않은 관계로 국민들 사이에서 국왕의 인기는 하늘에 닿을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배경에는 이곳 왕립학교의 졸업생들의 활약이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에 함성과 박수소리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빵빠바빰빰빰빰~
“일동 기립!”
크게 울려퍼지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착석해있던 학부모들도 모두 일어서고, 박수소리가 더욱 커졌다. 국왕은 이에 손을 들어서 화답하며 연단 위의 정해진 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다른 내빈들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이어서 박수가 멈추고 장내는 곧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일동 착석! 지금부터 제 342회 진저리 왕국 왕립학교 입학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왕국의 대마법사이자 왕립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그란델 법사가 학교 소개를 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를 치는 가운데, 국왕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진저리 왕국 왕립학교 입학식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우리 왕립학교는 342년 전, 초대 국왕이셨던…”
역사가 긴 만큼 학교 소개도 길었다. 기대와 흥분에 부풀어서 오긴 했지만 들뜬 마음에 전날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던 학생들은 피곤함에 하품을 하기도 했고, 하객으로 온 학부모들 역시 조금씩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있었다.
“…이후로 12명의 영웅을 비롯한 84명의 대마법사와 153명의 왕실기사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학교로서…”
우우웅…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낮은 흔들림이 강당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느끼지 못했고, 입학식장 가운데에 가득 차 있는 학생들만이 이를 느끼고 하나둘 속닥거릴 뿐이었다.
우웅…우우웅…
계속해서 들려오는 불쾌한 소음이 점점 커지자, 아이들은 교장의 말에 집중하지 않은 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인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여러분, 그만 떠들고 입학식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학교 소개를 마칩니다.”
교장이 학교 소개를 마치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자기가 하는 말에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은 것이 굉장히 불쾌했던지, 뭔가 맛없는 것을 씹은 표정으로 앉아서 작은 소리로 투덜댔다.
“이어서, 입학생 대표이자 우리 나라의 공주이신 멜리나 공주님의 입학 선서가 있겠습니다”
우우우우우웅.
예식용 녹색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소녀가 연단 앞으로 나와서 국왕과 교장 앞에 섰다. 이 소녀는 입학생 중에서도 단연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는 왕족임을 나타내는 문장이 새겨진 금빛 펜던트가 특히 반짝이고 있었다.
“선서!”
쿵.
공주가 선서를 하기 위하여 오른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마치 공주가 어떤 능력을 쓴 것처럼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입학식장 전체가 흔들렸다. 강당의 지붕에서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벽에 실금이 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툭. 툭툭.
강당 여기저기서 가루가 아닌 돌조각이 떨어지는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악!” “뭐야! 돌이 떨어진다!”
이 때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돌조각을 맞기 시작했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쿵! 투투툭!
천정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돌조각은 점점 그 수가 많아지고, 크기도 커져서 더이상 조각이 아니었다.
“폐하!”
콰지직!
국왕과 왕비가 있던 자리로 떨어지던 돌덩어리는 두 사람의 몸에 도달하지 못했다. 옆에 자리하던 기사단장이 돌덩어리들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집어들어서 돌덩이들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나무로 된 의자는 여러 조각으로 산산히 부서져서 떨어져 나갔다. 기사단장은 국왕과 왕비의 어깨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이어서 뒤에 줄줄히 서있던 호위대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방패를 잡아채서 두 사람의 머리 위를 가렸다.
“폐하를 보호하라!”
기사단장의 지시에 호위대가 방패를 들고 둘의 사방을 감쌌다.
“괜찮소?”
국왕이 걱정스런 얼굴로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름진 얼굴을 국왕에게 보이며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은 폐하와 왕비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옵니다.”
쿵! 쿵!
강당의 천정은 파란 하늘과 구름이 보일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건물은 이제 그 자체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고, 강당 출입구는 밖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뒤섞여 엉망이었다. 강당 가운데 서 있던 학생들 중에도 많은 수가 위에서 떨어진 돌덩어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운이 좋게 피한 학생들은 제각각 살 길을 찾아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비켜!” “우왓!”
그 와중에, 다들 밖으로 도망치려는 인파를 헤치고 복면을 쓰고 검은 망토를 두른 일련의 사람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들은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강당 중앙의 공주를 향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그 사이, 입학식장은 혼란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여기저기서 뒤엉켜서 넘어졌다. 관람식에서 입학식을 참관하던 부모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강당으로 달려들었고, 그 위를 무너져 내리는 돌덩이들이 덮치면서 사상자들이 늘어났다.
쿵!
여기저기서 천정이 무너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잠깐 정신없이 있던 아레스는 복면을 쓴 한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공주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아레스는 공주를 향해 달려가면서 크게 외쳤다.
“공주님! 피해요!”
아레스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공주는 자신에게 다가오던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해서 자신의 길다란 드레스를 밟고 넘어졌고, 뒤이어 달려든 복면인 하나가 공주를 어디서 꺼내들었는지 모를 큼지막한 자루에 넣으려고 했다.
“공주님을 놔드려!”
이 광경을 보며 있는 힘껏 달린 아레스는 그 복면에게 달려들어 공주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공주를 자루 안에 넣으려는 복면인과, 공주를 붙잡은 아레스의 손과,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대는 공주의 발길에 채여서, 뒤엉킨 세사람의 시도는 모두 실패가 되었다. 복면인은 둘을 떼어놓기를 포기하고 다시 자루 입구를 크게 벌려서 두 사람을 모두 한번에 넣어버린 후, 입구를 밧줄로 묶었다. 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다들 무너지는 건물을 피해 도망치느라 이들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그가 두 사람을 담은 자루를 어깨 위에 들처메고 강당 밖으로 달렸다. 그는 강당 입구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고, 곧이어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놈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
“조용히 해!”
자루를 붙들고 있던 남자가 발로 자루를 몇번 밟았다. 어른의 힘으로 밟힌 두 아이는 자루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차에 탄 복면인들은 복면을 벗고 자루에서 한명씩 꺼내서 손과 발을 묶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손과 발이 묶인채 자리에 앉혀진 공주가 날카롭게 외쳤다.
“넌 알 필요 없다.”
“감히! 내가 누군줄 알고? 당장 마차를 멈추고 날 내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릴 테다!”
“이년이… 닥쳐!”
철썩! 퍽.
손바닥에 뺨을 맞은 공주가 마차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더니 기절한 듯 축 늘어졌다.
“계속 시끄럽게 굴면 확 다 죽여버릴거니까 조용히 해!”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아레스 역시 일부러 맞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기절한 척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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