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예외상황때문에 나오는 오류 처리하기

    VB에서는 예외상황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면 된다.

    try

    해봐야할것들()

    catch 붙잡아올예외상황 as type [when 이럴때만]

    예외처리를위해할것들()

    fianally

    어쨌든할것들()

    end try

    try 밑에 있는 것들은 일단 실행된다. 예외가 안나오면 그냥 가고, 예외가 나온다면 그 예외를 catch에 던져준다.

    catch는 여러개가 있을 수 있는데, 그중 자기가 처리할 예외를 받은 catch 안에 있는 것들이 실행된다. when은 조건인데, 어떤 경우에는 그 예외를 처리해주고 어떤 경우에는 처리하지 않을지 결정한다. 물론 when의 조건이 참일 때 처리하고 거짓일때 처리하지 않는다.

    fianally는 try하고나서 예외가 발생하든 말든 무조건 실행되는 부분이다.

    사용설명서에 보면 catch가 하나도 없으면 fianally는 반드시 있어야 한댄다. 물론 catch가 하나라도 있으면 fianally는 필요없다.

    나는 이 구문을 유용하게 쓰고 있는데, 예외가 발생하면 무조건 try-catch에 넣어버리고, 예외가 발생하면 그 부분을 그냥 건너뛰어 버린다. 그래도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VB의 조건문

    비주얼 베이직(이하 VB)은 꽤 잘 만든 것 같은 언어지만 의외로 대단히 허접한 구석이 있다. 조건절을 평가할 때,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if P and Q then

    something()

    end if

    위와 같은 경우 P가 참이고 Q가 참이면, 즉 둘 다 참이어야만 그 안의 구문이 실행되고 그 외에는 실행되지 않는다. 따라서 P가 거짓인 경우 Q를 평가할 필요 없이 그냥 실행을 안해도 된다. 하지만 VB에서는 굳이 Q까지 평가한다. 이래서 난감한 경우가 있는데…

    P에는 “A라는 변수가 메모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malloc같은걸로 잘 잡혀 있느냐는 질문)”가 들어가 있고, Q에는 “A가 10보다 큰 수인가?”라는 질문이 들어가 있다고 하자. 그럼 P가 안되면 Q는 평가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냥 잘 넘어가면 되지만 VB에서는 실행하다가 오류가 난다(Q에서 평가해야 할 A가 메모리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if구문을 2중으로 써야 한다.

    if P then

    if Q then

    something()

    end if

    end if

    이게 VB에서만 그런건지 VC++에서도 그런건지 모르겠다. 난 VC++는 배워본적이 없다.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이라는 과목에서 구경은 했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C에서는 위와 같은 경우 2중으로 쓰지 않아도 되지만 VB에서는 2중으로 써야 한다.

    이것때문에 하루동안 삽질한 날이 많아서 기록해 둔다.

    *추가 : and 대신에 andAlso를 쓰면 중지연산이 된다. 즉, 앞에 있는게 false면 뒤쪽을 판정하지 않고 곧바로 전체를 false로 해 준다. 하지만 이미 늦은… 중지 연산 써야 할 부분은 대부분 잘 구현되었다.

  • Engrish.com 에서

    흥미로운 사이트를 발견했다.

    http://www.engrish.com

    원문 :

    http://adult.engrish.com/2009/08/28/this-shit-is-crazy/


    주의 : 19세 이상 성인용 게시물이므로 19세 이하는 안보는게 좋음…

    일본의 한국 음식점 차림표인듯 싶은데…

    함흥 비빔 냉면의 번역이 흥미롭다.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낸 매운 국수”

    추가 : 사실 육개장도 소고기에 해당하는 “Beaf”는 틀렸다. “beef”가 맞다.

  •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 리뷰

    나는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 사용자, 윈도우 Vista SP2 사용자, 인터넷 익스플로러 8 사용자의 교집합에 들어간다.

    윈도 비스타+익스플로러8에서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을 쓰려면 어떻게 삽질 해야 하는지 기록해 본다.

    우선 프로그램의 버전 확인부터 해 보자.

    윈도우즈 Vista 홈 베이직 SP2가 설치되어 있다. 보다시피 윈도우 비스타는 출시된지 2년이 넘었다.

    익스플로러 8은 8.0이다. 출시된지는 1년인 것 같다.

    이제, 우리은행에 접속하자. http://www.wooribank.com 이다.

    그럼 뭔가 나온다. ㅋㅋ

    이제, 개인 인터넷 뱅킹 로그인을 눌러보고 싶다. 당신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 믿는다.

    곧바로 에러 하나 떠 준다. 그리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액티브X를 설치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페이지로 이동한다.

    물론 난 이전에도 여러번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으므로 설치가 안되어 있을리 없다. 확인해 볼까? 메뉴에서 도구->추가기능 관리로 들어가자.

    여기에 가면 뭐가 나오냐면, 다음과 같은 화면이 뜬다.

    우리은행에서 설치 안되어 있다는 놈이 보란듯이 설치되어 있고 사용함 상태이고 무려 “현재 로드된 추가 기능”이다.

    어쩌라고…

    여기서 당황하면 당신은 우리은행에서 평생 인터넷 뱅킹을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당신은 패배자. 대한민국의 인터넷 뱅킹은 보안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잘 모르면 인터넷 뱅킹을 아예 못쓰는 기능이 추가되어 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 화가 조금 덜 난다.)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붙이자면, 그 로드된 추가기능은 방금 로드된 것이다. 즉, “그 모듈이 로드 되었는가?”를 체크하는 부분이 “그 모듈을 로드해라”는 부분보다 앞에 나오기 때문에, 체크 할 때는 로드가 안 되어 있고, 체크 한 다음에는 로드가 되어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고침을 하거나 다른 페이지로 가서 다시 로그인을 시도하면 로드가 되어 있으므로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 순서를 바꿔주면 되는데, 바꾸지 않는 이유는 보안 때문이거나 모르고 있거나 전산 담당자가 우리은행 안티거나, 그런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시 초기화면으로 되돌아와서 아무 생각 없이 다시한번 “개인 인터넷 뱅킹 로그인”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주의 : 만약 보안 프로그램 설치 화면의 좌측 상단 부근에 있는 “로그인” 버튼을 그 자리에서 누른다면 다음과 같이 새 탭이 뜨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역시 당황할 필요가 없는데, 새로 생긴 탭을 닫아주고 (X자를 클릭하면 된다) 다시 “로그인” 버튼을 누르거나, 초기화면으로 되돌아와서 “개인 인터넷 뱅킹 로그인” 버튼을 누르면 잘 된다.

    그럼 로그인 할 수 있는 화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키퍼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도 되는지 UAC가 나타나서 물어보게 되는데, 여기서 “예”를 선택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물론 여기서도 당신은 당황하면 안된다. “그냥 닫아도 되나? 디버그를 해야 하나? 해결 방법을 확인해 볼까?” 이러면서 고민할 시간에 그냥 닫아주기만 하면, 저절로 다시 창이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안 프로그램을 실행중이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공인인증서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원래는 보안을 위해서 창을 한번 닫았다가 새로 열어주는 과정인데, 윈도 비스타에게 그걸 알려주지 않고 무작정 종료시켰다가 비스타가 화들짝 놀라서 이렇게 경고를 내보내는 것이다.

    당신만이 아는 비밀의 문자를 정확히 잘 넣어주면 된다. (딴사람도 알고 있다면 낭패.)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컴퓨터를 켜고 나서 처음으로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에 로그인하는 게 아니라, 두번째나 세번째 되었다면 로그인이 한번에 되지 않는다. 난데없이 우리은행 새 창이 하나 떠오르고, 로그인이 되는 척 하면서 계좌 조회 하면이 뜨더니 갑자기 새로고침 되면서 결국 로그인은 안 되어 있다. 고객을 우롱하는게 절대 아님에 유의하자. 이건 다 보안을 위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로그인조차 안되게 하는 우리나라 인터넷 뱅킹의 보안 프로그램 때문이다. (고객을 위한 거라니깐…) 일단 이렇게 되면 원래 쓰던 창에서는 로그인이 안된다. 새로고침 되면서 새로 떠오른 인터넷 창에서 로그인을 하면 된다. 만약 그래도 안되면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시키자.

    물론 새로 띄운 거니까 처음부터 다시 로그인 하면 된다.

    참고로, 관리자 모드에서 사용하면 지금까지 얘기했던 모든 에러/경고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다. (모두 “예”를 선택한 것과 같은 결과이다.)

    이제 로그인에 성공했다.

    계좌 이체를 바라는가? 그럼 오른쪽의 “이체” 버튼을 눌러보자.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타날 것이다. 적당히 잘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아래와 같이 한번 더 확인해준다.

    이제, 이체실행을 해 보자. 나는 나름 우수고객이라 수수료 면제이므로 안심하고 이체한다.

    물론, 보안카드는 당신만의 그것이 있을 것이다. 입력하고나서 확인 버튼을 누르면,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서 다시한번 서명해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비밀번호는 당신만이 알고 있는 그것을 입력하면 된다.

    그럼 결과를 알려준다.

    이것으로, 우리은행 인터넷 뱅킹 리뷰를 마친다.

    직접 써보면 알겠지만, 보다시피 꽤 불편하다. 발표된지 2년이나 지난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건데 왜 이렇게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UAC때문에 클릭을 많이 해야 하는건 이해하겠는데 (찬성하는건 아니지만…) 이용자를 당황스럽게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그런 사소한 오류는 좀 잡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내 컴퓨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이전에 수없이 일어났던 일이고, 앞으로도 수없이 발생할 것이다.

    다음번엔 기업은행 인터넷 뱅킹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시간낭비

    누구나 그렇듯, 모든 사람은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살아있는건 언제나 현재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과거를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면서 추억이라고 이름붙여두었다. 그럼, 이렇다할 추억이 없는 것은 그동안의 삶을 낭비한 것은 아닐까? 문득, 행복한 순간이나 재미있는 순간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는데도 누구 하나 그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낭비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전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이렇게 글로 남겨서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은 알아낼 방법도 없다.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내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서, 그것이 내가 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이유다. 물론 죽기는 싫다. 세상은 구경하는 것도 재밌고 뭔가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사는건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모두 다 시간낭비다. 그래도 괜찮다. 사람이 살아있는 시간은 뭔가를 좀 해보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보내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결국 어물어물하다가 그냥 다 흘려보내게 된다.

  • 배틀스타 갤럭티카

    장황한 SF 드라마인 배틀스타 갤럭티카를 드디어 전부 감상했다.

    아주…길었다.

    근데 가이어스 박사는 전공이 뭔지 모르겠다.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정치와 철학 뭐 이런거 대충 버무려놓은 닭가슴살 샐러드 같은 느낌.

  • 우리가 잊어버린 열가지 질문

    인생의 참 의미를 찾고 싶다면 다음의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1. 나는 누구인가?

    2. 돈은 왜 벌고 있는가?

    3. 죽은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4. 신은 존재하는가?

    5. 나는 왜 시간이 없을까?

    6. 나는 왜 인터넷을 하고 있을까?

    7.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가?

    8.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가?

    9. 죽느냐 사느냐가 과연 문제인가?

    10. 이효리가 핑클이었던가?

    답변은 댓글/트랙백으로 모두 환영합니다.

    10개의 답변을 모두 완성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신 분께는 제가 직접 트랙백을 쏴 드리고 답글 달러 갑니다.

  • 정면 돌파

    슬레이어즈 Evolution-R의 오프닝 테마곡은 Front Breaking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게 과연 노래의 주제에 맞는 “정면돌파”라는 뜻일까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http://endic.naver.com/search.nhn?query_euckr=&dic_where=endic&mode=all&query=%C1%A4%B8%E9%B5%B9%C6%C4&x=0&y=0


    네이버 영한사전은 나에게 Frontal Breakthrough라는,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숙어구를 알려주고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정면돌파”라는 뜻의 영어 숙어가 “go to Korea”라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52년에 그랬다고 한다.

    By the time Kevin went to Korea, he finally solved the problem.

    위의 문장을 예문으로 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전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케빈이 그 문제를

    정면돌파

    하자, 마침내 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직역은 다음과 같다.

    케빈이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그는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선거를 할 때쯤이라는 52년도에 한국전쟁이 있었는데, 한국으로 가자는게 왜 정면돌파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그런 뜻으로 보이는 것 같다. 한국이 미국의 정면이었나보다.

    오늘의 숙어 :

    go to Korea : 정면돌파하자.

    ——-

    트랙백 하신 분의 글에 별로 안쓰인다는 의견이 있어서 직접 검색을 해 보았다.


    http://www.google.co.kr/search?hl=ko&client=firefox-a&rls=org.mozilla%3Ako%3Aofficial&hs=617&newwindow=1&q=%22go+to+korea%22&btnG=%EA%B2%80%EC%83%89&lr=&aq=f&oq=

    정말 정면돌파라는 의미로는 별로 안쓰인다. 그냥 “한국에 간다”는 원래의 뜻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어쨌든, 검색하다가 미국 역사에 관한 글 한토막을 발견했다.


    http://tucnak.fsv.cuni.cz/~calda/Documents/1950s/Ike_Korea_52.html

    영어 공부도 할 겸 해서 번역을 해 보았다. (번역은 개판으로 했으므로 의미전달이 안되는 것 같으면 원문 읽고 생각해 보기 바람.)

    D. D. 아이젠하워의 “나 한국 가야겠어” 연설. 1952년.

    1952년 10월 25일.

    In this anxious autumn for America, one fact looms above all others in our people’s mind.

    미국이 화가난 이번 가을에,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은게 하나 있다.

    One tragedy challenges all men dedicated to the work of peace. One word shouts denial to those who foolishly pretend that ours is not a nation at war.

    한가지 비극이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한가지 단어가 우리가 전쟁중인 나라가 아닌척 하는 사람들을 거부하라고 외친다.

    This fact, this tragedy, this word is: Korea.

    이 사실은, 비극인데, 그 단어는 바로 “한국”이다.

    A small country, Korea has been, for more than two years, the battleground for the costliest foreign war our nation has fought, excepting the two world wars. It shall been the burial ground for 20,000 America dead. It has been another historic field of honor for the valor and skill and tenacity of American soldiers.

    작은 나라인 한국은, 벌써 2년 이상, 두번의 세계대전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미국)이 가장 큰 희생을 치루며 싸워온 외국의 전쟁터이다. 그곳은 이미 2만명 이상의 미국인의 무덤이 되었다. 미국 전사들의 용기와 기술과 집념에 대한 영광을 돌려야 하는 또다른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All these things it has been-and yet one thing more. It has been a symbol-a telling symbol-of the foreign policy of our nation.

    이 모든 것에 아직 하나가 더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외국에 대한 정책의 (말하는) 상징이다..

    It has been a sign-a warning sign-of the way the Administration has conducted our world affairs.

    그것은 우리 세계가 해온 일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경고) 표시이다.

    It has been a measure-a damning measure-of the quality of leadership we have been given.

    그것은 우리가 받은 지도력의 품질에 대한 (빌어먹을) 척도이다.

    Tonight I am going to talk about our foreign policy and of its supreme symbol-the Korean war. I am not going to give you elaborate generalizations-but hard, tough facts. I am going to state the unvarnished truth.

    오늘 밤, 나는 우리의 외국 정책과 그 최종적 상징인 한국 전쟁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난 여러분들에게 복잡한 일반화 같은게 아니라 힘들고 거친 사실을 전하려고 한다. 난 포장되지 않은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

    What, then, are the plain facts?

    그럼, 뭐가 사실인가?

    The biggest fact about the Korean war is this: It was never inevitable, it was never inescapable, no fantastic fiat of history decreed that little South Korea-in the summer of 1950-would fatally tempt Communist aggressors as their easiest victim. No demonic destiny decreed that America had to be bled this way in order to keep South Korea free and to keep freedom itself-self-respecting.

    한국 전쟁에 대해서 가장 분명한 것은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니다. 1950년의 여름, 작은 남한(남한 사람들) 이 급진적 공산주의자들을 그들의 가장 쉬운 희생자가 되도록 유혹했다는 어떠한 역사적 당위성도 없다. 미국이 남한을 자유롭게 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기서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악마같은 운명도 없다.

    We are not mute prisoners of history. That is a doctrine for totalitarians, it is no creed for free men.

    우리는 역사의 입 닫은 죄수가 아니다. 이것은 전체주의자들의 강령이다. 자유로운 사람을 위한 신념은 없다.

    There is a Korean war-and we are fighting it-for the simplest of reasons: Because free leadership failed to check and to turn back Communist ambition before it savagely attacked us. The Korean war-more perhaps than any other war in history-simply and swiftly followed the collapse of our political defenses. There is no other reason than this: We failed to read and to outwit the totalitarian mind.

    몇가지 간단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싸우고 있는 그 한국전쟁이 생겨났다. 자유로운 리더십이 공산주의자들이 기습하고 우리를 공격하는걸 감시하고 반격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은, 역사에 있는 다른 전쟁보다도, 간단하고 빠르게 우리의 정치적 방어의 붕괴의 결과이다. 이외의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는 전체주의자들의 생각을 읽고 속이는데 실패한 것이다.

    I know something of this totalitarian mind. Through the years of World War II, I carried a heavy burden of decision in the free world’s crusade against the tyranny then threatening us all. Month after month, year after year, I had to search out and to weigh the strengths and weaknesses of an enemy driven by the lust to rule the great globe itself.

    내가 전체주의자들의 생각을 좀 아는데, 2차 세계대전 동안, 난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폭군에 대항하는 자유 세계의 성전에 대한 결정에 대해 큰 짐을 지고 있었다. 몇달 동안, 몇년 동안, 나는 이 세계 자체를 지배하려는 거대한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적의 강점과 약점을 찾아내고 평가해야만 했다.

    World War II should have taught us all one lesson. The lesson is this: To vacillate, to hesitate-to appease even by merely betraying unsteady purpose-is to feed a dictator’s appetite for conquest and to invite war itself.

    That lesson-which should have firmly guided every great decision of our leadership through these later years-was ignored in the development of the Administration’s policies for Asia since the end of World War II. Because it was ignored, the record of these policies is a record of appalling failure.

    2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게 한가지 교훈을 남겨다. 바로, 망설임, 부끄러움이 – 비록 단지 불안정한 목적을 배신하여 진정되더라도 – 독재자의 정복욕과 전쟁욕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교훈은, 우리의 지도력이 지난 몇년간 모든 큰 결정을 내리는데 안내자가 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 아시아에 대한 관리 정책의 개발에서는 무시되었다. 그것이 무시되었기 때문에, 이 정책의 기록은 오싹한 실패의 기록이다.

    The record of failure dates back-with red-letter folly-at least to September of 1947. It was then that Gen. Albert Wedemeyer-returned from a Presidential mission to the Far East-submitted to the President this warning: ”The withdrawal of American military forces from Korea would result in the occupation of South Korea by either Soviet troops or, as seems more likely, by the Korean military units trained under Soviet auspices in North Korea.”

    실패의 기록은 적어도 1947년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알버트 웨데마이어 장군(극동의 대통령 임무에서 돌아온 후)이 대통령에게 이런 경고를 했다. “한국에서 미국 군대를 빼오는 것은 소련 군대 또는 적어도 소련에서 훈련받은 북한의 한국군에게 남한이 점령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That warning and his entire report were disregarded and suppressed by the Administration.

    그 경고와 그의 모든 보고서는 감독기관에 의해 무시되었다.

    The terrible record of these years reaches its dramatic climax in a series of unforgettable scenes on Capitol Hill in June of 1949. By then the decision to complete withdrawal of American forces from Korea-despite menacing signs from the North-had been drawn up by the Department of State. The decision included the intention to ask Congress for aid to Korea to compensate for the withdrawal of American forces.

    이 해의 무시무시한 기록은 1949년 6월에 캐피톨 힐의 무시할 수 없는 장면의 연속에서 극대점에 도달한다. 미군의 완전한 철수에 대한 결정 – 북으로부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 은 국무성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결정은 미군의 철수에 대한 보상으로 한국에 대한 원조를 의회에 질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This brought questions from Congress. The Administration parade of civilian and military witnesses before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was headed by the Secretary of State. He and his aides faced a group of Republican Congressmen both skeptical and fearful.

    이에 대해 의회에서 질문이 나왔다. 외무부 이전에 시민과 군 지도부의 통치적 행렬이 국무장관에 의해 조직되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회의적이고 공포에 쩔은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마주쳤다.

    What followed was historic and decisive.

    그 뒤로 따라온 것은 역사적이고 결정적이다.

    I beg you to listen carefully to the words that followed, for they shaped this nation’s course from that date to his.

    Listen, then:

    이 다음을 주의깊게 들어주길 바란다. 그날 이후로 이 나라가 만들어진 내용이기 때문이다.

    First: Republican Congressman John Lodge of Connecticut asked ”(do) you feel that the Korean Government is able to fill the vacuum caused by the withdrawal of the occupation forces?”

    The Administration answered: ”Definitely.”

    첫째 : 코네티컷의 민주당 의원인 존 롯지가 물어보기를 “당신, 한국 정부가 미군이 철수하고나서 생긴 공백을 채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국무장관 “응”

    Second: A very different estimate of the risk involved came from Republican Congressman Walter Judd of Minnesota. He warned: ”I think the thing necessary to give security to Korea at this stage of the game is the presence of a small American force and the knowledge (on the Soviet side) that attack upon it would bring trouble with us.”

    ”I am convinced,” Representative Judd continued, ”that if we keep even a battalion there, they are not going to move. And if the battalion is not there”-listen now to his warning-”the chances are they will move within a year.”

    둘째 : 미네소타의 월터 주드로부터 추정되는 위험에 대한 너무나 다른 추정치가 나왔다. 그가 경고하기를 “내 생각에, 이 시점에서 한국에게 안보를 주기 위해서 필요한건 소수의 미군과 우리랑 문제가 될수도 있는 소련측에서의 공격에 대한 지식이야. 내 생각에는, 만약 우리가 하나의 대대라도 남긴다면, 걔들은 움직이지 않을거야. 만약 1개 대대조차 없다면” – 여기서부터 그의 경고다 – “그들이 1년 내에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What a tragedy that the Administration shrugged off that accurate warning!

    이런 정확한 경고를 행정부가 무시했다는건 정말이지 엄청난 비극이다!

    Third: The Secretary of State was asked if he agreed that the South Koreans alone-and I quote-”will be able to defend themselves against any attack from the northern half of the country.” To this the Secretary answered briskly: ”We share the same view. Yes, sir.”

    Rarely in Congressional testimony has so much misinformation been compressed so efficiently into so few words.

    셋째 : 국무장관이 질문받기를, 그가 남한이 혼자서 북한인으로부터의 어떠한 공격에도 방어할 수 있는 것에 동의하냐고 질문받았다. 여기에 대해 장관이 기분 좋게 대답하기를 “우린 같은 시각을 갖고 있네. 그렇다니깐”

    의회 기록에서, 이렇게 많은 잘못된 정보가 단지 몇개의 단어로 그렇게까지 효과적으로 압축된 것은 거의 없다.

    Fourth: Republican Congressman Lodge had an incisive comment on all this. ”That,” he said, ”is wishful thinking . . . I am afraid it confesses a kind of fundamental isolationism that exists in certain branches of the Government, which I think is a very dangerous pattern. I think the presence of our troops there is a tremendous deterrent to the Russians.”

    넷째 : 민주당 의원 롯지가 여기에다가 예리하게 한마디 했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생각이긴 한데, 난 그게 정부의 일부 부서에서 존재하는 기본적인 고립주의 같은것이라고 말하기가 두렵다. 난 그게 대단히 위험해 보이거든. 내 생각에 우리 군대의 존재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 엄청난 전쟁 억지력이 있을 것 같은데”

    Finally: This remarkable scene of the summer of 1949 ends with a memorable document. The minority report of five Republican members of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on July 26, 1949, submitted this solemn warning.

    마지막 : 이러한 1949년 여름의 마지막 장면은 기억해둘만한 문서로 끝난다. 1949년 7월 26일의 다섯명의 외국 정책 위원회의 민주당 의원들의 소수 의견은 다음의 엄숙한 경고를 이야기한다.

    Listen to it:

    ”It is reliably reported that Soviet troops, attached to the North Korean puppet armies, are in position of command as well as acting as advisors . . . This development may well presage the launching of a full-scale military drive across the Thirty-eighth Parallel.

    소련 병사들이 북한 괴뢰 군대에 붙어서 그들에 대한 조언자 뿐만 아니라 명령하는 위치에 있다. 이건 38선을 넘어서 전면전을 펼치기 위한 전조일 수 있다.

    ”Our forces . . . have been withdrawn from South Korea at the very instant when logic and common sense both demanded no retreat from the realities of the situation.”

    논리와 상식이 둘 다 현 상황에서 퇴각을 요구하지 않는데 우리 군대는 남한에서 한순간에 철수해 버렸다.

    The report continues: ”Already along the Thirty-eighth Parallel aggression is speaking with the too-familiar voices of howitzers and cannons. Our position is untenable and indefensible.

    보고서는 계속된다. “이미 38선 합의는 곡사포와 대포 소리가 너무 친숙하다. 우리의 위치는 유지할 수 없고 방어할 수 없다.

    ”The House should be aware of these facts.”

    “우리 위원회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These words of eloquent, reasoned warning were spoken eleven months before the Korean war broke.

    Behind these words was a fervent, desperate appeal. That appeal was addressed to the Administration. It begged at least some firm statement of American intention that might deter the foreseen attack.

    이 연설의 합리적인 경고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11개월 전에 말한 것이다. 이 얘기들은 격렬하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은 국무부에 전해졌다. 그것은 예측되는 공격을 단념시키는 미국의 의도에 대한 분명한 진술이다.

    What was the Administration answer to that appeal?

    여기에 대해 국무부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The first answer was silence-stubborn, sullen silence for six months.

    첫번째 대답은 6개월간 침묵이었다.

    Then, suddenly, came speech-a high Government official at long last speaking out on Asia. It was now January of 1950. What did he say? He said,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will not provide military aid or advice to Chinese forces on Formosa.”

    그리고나서, 갑자기, 고위 정부 관리가 아시아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1950년 1월이다. 뭐라고 했냐고? 미국 정부는 대만에 있는 중국 군대에 조언하거나 군대 원조를 제공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Then, one week later, the Secretary of State announced his famous ”defense perimeter”-publicly advising our enemies that, so far as nations outside this perimeter were concerned, ”no person can guarantee these areas against military attack.” Under these circumstances, it was cold comfort to the nations outside this perimeter to be reminded that they could appeal to the United Nations.

    그로부터 1주일 후, 국무장관이 그의 유명한 얘기를 한다. “방어 경계선” 인데, 이 경계의 바깥에 있는 우리의 적에게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 어떠한 사람도 군사 공격에 대응하는 이 영역에 대해 보증할 수 없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미국에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이 경계선의 바깥에 있는 나라에게는 차가운 위로만이 있었다.

    These nations, of course, included Korea. The armies of communism, thus informed, began their big build-up. Six months later they were ready to strike across the Thirty-eighth Parallel. They struck on June 25, 1950.

    On that day, the record of political and diplomatic failure of this Administration was completed and sealed.

    The responsibility for this record cannot be dodged or evaded. Even if not a single Republican leader had warned so clearly against the coming disaster, the responsibility for the fateful political decisions would still rest wholly with the men charged with making those decisions-in the Department of State and in the White House. They cannot escape that responsibility now or ever.

    이 나라중에는 물론 한국도 포함된다. 공산주의 군대는, 따라서 알았는데, 군세를 키우기 시작했다. 6개월 후 그들은 3선을 넘어서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에 그들은 공격을 시작했다. 그 날, 국무부의 정치와 외교의 실패의 기록은 끝났고 봉인되었다. 이 기록에 대한 책임은 피하거나 면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한명도 아닌 민주당 지도자들이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 그렇게나 분명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치명적인 정치적 결정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국무부와 백악관에서 이 결정을 만든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When the enemy struck, on that June day of 1950, what did America do? It did what it always has done in all its times of peril. It appealed to the heroism of its youth.

    1950년의 그 날, 적이 공격했을 때, 미국은 뭘 하고 있었나? 그것은 위협의 시대에 그들이 언제나 해왔던 것이다. 젊은날의 영웅주의를 나타냈을 뿐이다.

    This appeal was utterly right and utterly inescapable. It was inescapable not only because this was the only way to defend the idea of collective freedom against savage aggression. That appeal was inescapable because there was now in the plight into which we had stumbled no other way to save honor and self-respect.

    The answer to that appeal has been what any American knew it would be. It has been sheer valor-valor on all the Korean mountainsides that, each day, bear fresh scars of new graves.

    이러한 행동은 절대적으로 올바르고 빠져나갈 수 없다. 그것은 공격에 대항하는 자유 진영의 사상을 방어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또한 이제는 명예와 자긍심을 지킬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는 곤경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어떤 미국인이라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그것은 모든 한국의 산지에서 매일 새로운 무덤에 새로운 상처를 남기는 순수한 용기이다.

    Now-in this anxious autumn-from these heroic men there comes back an answering appeal. It is no whine, no whimpering plea. It is a question that addresses itself to simple reason. It asks: Where do we go from here? When comes the end? Is there an end?

    이러한 분노의 가을에, 이 영웅들은 대답하러 돌아왔다. 푸념은 없다. 울먹임도 없다. 그것은 그 자체에 단순한 이유를 주는 질문이다. 묻는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언제 끝나나? 끝이 있나?

    These questions touch all of us. They demand truthful answers. Neither glib promises nor glib excuses will serve. They would be no better than the glib prophecies that brought us to this pass.

    이 질문은 우리 모두를 건드린다. 그들은 진실된 답을 요구한다. 그럴듯한 약속도 그럴듯한 용서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는 그럴듯한 예언보다 나을 것이 없다.

    To these questions there are two false answers-both equally false. The first would be any answer that dishonestly pledged an end to war in Korea by any imminent, exact date. Such a pledge would brand its speaker as a deceiver.

    이 질문에 대해, 두가지 오답이 있다. 하나는 절박한 한국의 전쟁을 끝내겠다는 불성실한 약속이다. 그러한 약속은 그걸 말하는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The second and equally false answer declares that nothing can be done to speed a secure peace. It dares to tell us that we, the strongest nation in the history of freedom, can only wait-and wait-and wait. Such a statement brands its speaker as a defeatist.

    두번째는 분명한 평화를 빨리 이룰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히 우리에게, 자유의 역사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우리가 단지 기다려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말은 그 발언자를 패배자로 간주하게 한다.

    My answer-candid and complete-is this:

    The first task of a new Administration will be to review and re-examine every course of action open to us with one goal in view: To bring the Korean war to an early and honorable end. This is my pledge to the American people.

    나의 답은 – 솔직하고 완전한 – 이것이다. :

    새로운 행정부의 첫번째 일은, 한국 전쟁을 초기에 명예롭게 끝내기 위한 시각에서 우리에게 하나의 목표를 열어주는 모든 경로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에 대한 나의 맹세이다.

    For this task a wholly new Administration is necessary. The reason for this is simple. The old Administration cannot be expected to repair what it failed to prevent.

    이걸 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낡은 정부는 그걸 방지하는데 실패한 부분을 고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Where will a new Administration begin?

    새 정부는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It will begin with its President taking a simple, firm resolution. The resolution will be: To forego the diversions of politics and to concentrate on the job of ending the Korean war-until that job is honorably done.

    That job requires a personal trip to Korea.

    그 대통령이 간단한 해법을 갖고 시작한다. 해법은 이렇다. 정책의 다양성을 앞서가고, 한국 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기 위한 일에 집중한다.

    그 일은 한국으로 떠날 것을 필요로 한다.

    I shall make that trip. Only in that way could I learn how best to serve the American people in the cause of peace.

    난 떠날 것이다. 오직 그래야만 미국인들이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배울 수 있다.

    I shall go to Korea.

    난 한국으로 가야한다.

    That is my second pledge to the American people.

    이것은 미국인에 대한 두번째 맹세이다.

    Carefully, then, this new Administration, unfettered by past decisions and inherited mistakes, can review every factor-military, political and psychological-to be mobilized in speeding a just peace.

    그리고, 주의깊게, 새 정부는, 물려바은 실수와 과거의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군사적, 정치적, 정신적 요소를 공간으로부터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할 것이다.

    Progress along at least two lines can instantly begin. We can-first-step up the program of training and arming the South Korean forces. Manifestly, under the circumstances of today, United Nations forces cannot abandon that unhappy land. But just as troops of the Republic of Korea covet and deserve the honor of defending their frontiers, so should we give them maximum assistance to insure their ability to do so.

    즉시 적어도 두가지 선 위에서 진행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린 일단 남한의 군대를 훈련하고 무장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다. 분명히, 오늘의 환경에서, 미국 군대는 그 불행한 땅을 배신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군대들이 그들의 적을 방어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린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어야 한다.

    Then, United Nations forces in reserve positions and supporting roles would be assurance that disaster would not again strike.

    그래서, 정해진 위치에서 도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군은 이 재난을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할 것이다.

    We can-secondly-shape our psychological warfare program into a weapon capable of cracking the Communist front.

    둘째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을 분열시킬 수 있는 무기로 정신적 복지 프로그램을 조직할 것이다.

    Beyond all this we must carefully weigh all interrelated courses of action. We will, of course, constantly confer with associated free nations of Asia and with the cooperating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Thus we could bring into being a practical plan for world peace.

    이 모든것을 넘어서, 우린 작전의 모든 상호관계를 평가해봐야 한다. 물론, 우린 아시아의 자유 국가와 미국의 동맹국과 꾸준히 연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 평화의 실질적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That is my third pledge to you.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하는 세번째 맹세이다.

    As the next Administration goes to work for peace, we must be guided at every instant by that lesson I spoke of earlier. The vital lesson is this: To vacillate, to appease, to placate is only to invite war-vaster war-bloodier war. In the words of the late Senior [Arthur H.] Vandenberg, appeasement is not the road to peace; it is only surrender on the installment plan.

    다음 정부가 평화를 위한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린 반드시 내가 이전에 말한 교훈을 언제나 지침으로 삼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살아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머뭇거리거나, 참거나, 달래는 것은 오직 거대한 전쟁을 불러올 뿐이다. 고인이 된 선배 아서 반덴버그가 말하기를, 나약함은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랬다. 그것은 오직 할부판매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번역자 주 : installment plan이 할부판매라는 뜻이다. -_-;)

    I will always reject appeasement.

    난 언제나 나약함을 물리치겠다.

    And that is my fourth pledge to you.

    이것이 나의 네번째 맹세이다.

    A nation’s foreign policy is a much graver matter than rustling papers and bustling conferences. It is much more than diplomatic decisions and trade treaties and military arrangements.

    국가의 외국 정책은 가벼운 신문이나 알랑대는 회의보다 훨씬 위엄있어야 한다. 그것은 외교적 결정과 무역 협정이나 군사 조약보다 더 크다.

    A foreign policy is the face and voice of a whole people. It is all that the world sees and hears and understands about a single nation. It expresses the character and the faith and the will of that nation. In this, a nation is like any individual of our personal acquaintance; the simplest gesture can betray hesitation or weakness, the merest inflection of voice can reveal doubt or fear.

    외국 정책은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세계가 하나의 나라에 대해서 보고 듣고 이해하는 것이 전부다. 그건 그 나라의 의지와 진실성과 특징을 나타낸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는 우리 친구와 비슷하다. 단순한 행동이 약함이나 부그러움을 배신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한 목소리 억양이 거짓말과 두려움을 밝힐 수 있다.

    It is in this deep sense that our foreign policy has faltered and failed.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외국 정책은 비틀거리고 실패해왔다.

    For a democracy, a great election, such as this, signifies a most solemn trial. It is the time when-to the bewilderment of all tyrants-the people sit in judgment upon the leaders. It is the time when these leaders are summoned before the bar of public decision. There they must give evidence both to justify their actions and explain their intentions.

    민주주의에서, 위대한 투표는, 이처럼, 가장 엄숙한 시도임을 의미한다. 지금은 – 모든 독재자의 당황함에 대해 – 국민이 지도자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때이다. 지금은 이 지도자들이 대중의 결정 앞에 불려나올 때이다. 거기에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그들의 의도를 설명하는 증거를 내놓아야만 한다.

    In the great trial of this election, the judges-the people-must not be deceived into believing that the choice is between isolationism and internationalism. That is a debate of the dead past. The vast majority of Americans of both parties know that to keep their own nation free, they bear a majestic responsibility for freedom through all the world. As practical people, Americans also know the critical necessity of unimpaired access to raw materials on other continents for our own economic and military strength.

    이 선거의 위대한 시도에서, 판사들 – 국민들 – 는 고립주의와 세계주의 사이에 선택이 있다는 믿음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죽은 과거의 논쟁이다. 양쪽 당에 소속된 미국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전 세계에 자유에 대한 당당한 책임을 지고 있다.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미국인들은 또한 우리가 가진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에 다른 대륙에 있는 원자재에 감소되지 않은 접근의 분명한 필요성을 알고 있다.

    Today the choice-the real choice-lies between policies that assume that responsibility awkwardly and fearfully-and policies that accept that responsibility with sure purpose and firm will. The choice is between foresight and blindness, between doing and apologizing, between planning and improvising.

    오늘날 현실적인 선택은 어색하고 겁먹은 책임을 가정하는 정책과 분명한 목적과 확고한 의지를 가진 책임을 받아들이는 정책 사이에 놓여있다. 이 선택은 예견과 맹복 사이에 있다. 실천과 사과 사이에 이다. 계획과 즉흥 사이에 있다.

    In rendering their verdict, the people must judge with courage and with wisdom. For-at this date-any faltering in America’s leadership is a capital offense against freedom.

    그들의 평결을 보면, 사람들은 용기와 지혜로 선택을 내린다. 이 시점에서,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어떠한 머뭇거림도 자유에 대한 공격이다.

    In this trial, my testimony, of a personal kind, is quite simple. A soldier all my life, I have enlisted in the greatest cause of my life-the cause of peace.

    여기서, 나의 증언은, 정말 단순하다. 난 일생동안 군인이었다. 평화를 만들어 내는 군인이었다.

    I do not believe it a presumption for me to call the effort of all who have enlisted with me-a crusade.

    난 내가 참여해서 노력해온 그 모든 것들을 성스러운 전쟁이었다고 부르는 것을 추측이라고 믿지 않는다.

    I use that word only to signify two facts. First: We are united and devoted to a just cause of the purest meaning to all humankind. Second: We know that-for all the might of our effort-victory can come only with the gift of God’s help.

    난 오직 두가지를 의미하는 단어를 쓴다. 첫째, 우린 단지 가장 모든 인류에 순수한 의미로 뭉쳤고 헌신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 대해서, 승리는 오직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In this spirit-humble servants of a proud ideal-we do soberly say: This is a crusade.

    이 자랑스러운 사상의 겸손한 하인이, 진심으로 말하는데, 이건 성스러운 전쟁이다.

    ——

    번역하느라 끝까지 읽어봤는데, 왜 한국으로 가는게 정면돌파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