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알파고

    알파고가 변칙적인 수를 두어서 이세돌을 이겼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 알파고가 학습한 기보에서 이런 변칙적인 수가 등장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수가 승리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수를 학습하면 (그 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더라도) 변칙적인 수를 두어서 승리할 수 있다. (중국어 방 문제를 생각해 보자.) 기보 학습 없이 기존의 고전적인 알고리즘으로 두었다면 아무리 빵빵한 알고리즘과 연산성능의 지원을 받더라도 알파고는 실수로 여겨지는 변칙적인 수를 둘 수 없었을 것이다.

    현 시대의 인공지능은 일단 ‘흉내내기’ 차원에서는 많이 발달하였다. 울프람 알파, 신문기사 자동 작성, 아이폰 시리, 구글 자동운전차 등등. 문장을 분석해서 인간이 이해하는 의미를 찾아내고, 인간이 원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해한 그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직접 이해하지는 못한다. 추상적인 단계에서 인간이 이해하는 의미에 어떤 수치 또는 벡터를 만들고, 결과물이 그와 같은 벡터를 향하도록 수행하는 것이다. 이 벡터가 입력과 출력에 대해서 같으므로 인공지능이 수행한 결과물은 인간이 원하는 결과가 된다.

    내 생각에 알파고는 바둑 잘 두는 기계지 ‘인공지능’의 레벨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적어도 강한 의미의 인공지능은 아니다.)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으려면 내가 보기엔 100년은 더 걸릴텐데 다들 괜히 설레발 치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

    그보다, 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걱정을 하지 말고, 인공지능으로 절약한 인건비를 복지로 돌려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 물론 우리나라같은 추세로 가면 한 200년쯤 후에는 기계밖에 안 남아있겠지.

  • Cherry

    Cherry – by Spitz

    君(きみ)を忘(わす)れない 널 잊지않겠어

    曲(ま)がりくねった道(みち)を行(ゆ)く 난 지금 굽이진 길을 가네

    産(う)まれたての太陽(たいよう)と夢(ゆめ)を渡(わた)る 갓태어난 저태양과 꿈을 건너고있는

    黃色(きいろ)い砂(すな) 저 노오란 모래

    二度(にど)と戾(もど)れない 두번다시 돌아올 수 없는

    くすぐり合(あ)って轉(ころ)げた日(ひ)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며 뒹굴던 그날

    きっと 想像(そうぞう)した以上(いじょう)に 상상한 것 이상으로

    騷(さわ)がしい未來(みらい)が僕(ぼく)を待(ま)ってる 혼란스런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을거야

    愛(あい)してるの響(ひび)きだけで 사랑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强(つよ)くなれる氣(き)がしたよ 난 강해질수있을것같은 기분이 들어

    ささやかな喜(よろこ)びを つぶれるほど抱(だ)きしめて 이 작은 행복을 으스러질만큼 꼭 껴안아줘

    こぼれそうな思(おも)い 汚(よご)れた手(て)で書(か)き上(あ)げた

    넘쳐버릴 것 같은 상상을, 더러워진 손으로 다 써내려갔지

    あの手紙(てがみ)はすぐにでも 그 편지는 바로라도

    捨(す)てて欲(ほ)しいと言(い)ったのに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少(すこ)しだけ眠(ねむ)い 冷(つめ)たい水(みず)でこじあけて 잠시 밀려오는 얕은졸음 차가운물로 씻어보네

    今(いま) せかされるように 지금 재촉하듯이

    飛(と)ばされるように 通(とお)り過(す)ぎてく 날아가듯이 지나쳐가네

    愛(あい)してる」の響(ひび)きだけで 사랑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强(つよ)くなれる氣(き)がしたよ 난 강해질수있을것같은 기분이 들어

    いつかまた この場所(ばしょ)で 君(きみ)とめぐり會(あ)いたい 언젠가는 여기서 다시 너와 만나고싶어

    どんなに步(ある)いても たどりつけない 아무리 걸어봐도 다다를 수 없다네

    心(こころ)の雪(ゆき)でぬれた頰(ほお) 마음속에 내린눈으로 촉촉히 적시어진 뺨

    惡魔(あくま)のふりして 切(き)り裂(さ)いた歌(うた)を 악마인 체 하며 두쪽으로 찢어버린 이 노래를

    春(はる)の風(かぜ)に舞(ま)う花(はな)びらに變(か)えて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로 바꿔보네

    君(きみ)を忘(わす)れない 曲(ま)がりくねった道(みち)を行(ゆ)く 널 잊지않겠어 난 지금 굽이진 길을 가네

    きっと 想像(そうぞう)した以上(いじょう)に 상상한 것 이상으로

    騷(さわ)がしい未來(みらい)が 僕(ぼく)を待(ま)ってる 혼란스런 미래가 날 기다리고있을거야

    愛(あい)してる」の響(ひび)きだけで 사랑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强(つよ)くなれる氣(き)がしたよ 난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ささやかな喜(よろこ)びを つぶれるほど抱(だ)きしめて 이 작은행복을 이지러질만큼 꼭 껴안아줘

    ズルしても眞面目(まじめ)にも生(い)きてゆける氣(き)がしたよ 이기적이지만 착실하게는 살아갈수있는 기분이 들어

    いつかまた この場所(ばしょ)で 君(きみ)とめぐり會(あ)いたい 언젠가는 여기서 다시 너와 재회하고싶어



    가사도 좋고 노래도 좋다.

  • 외로운 들장미소녀 캔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자료용.

  • 서버 관리용

    내가 관리하는 서버가 죽으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주는 스크립트. 물론 이 스크립트는 관리하는 서버가 아닌 다른 서버에서 cron을 이용해서 정해진 시간간격으로 실행된다.

    #!/bin/bash

    if wget your.domain.com

    then

    rm index.html

    else

    echo “helo melotopia

    mail from: your@emailaddress.com

    rcpt to: your@emailaddress.com

    data

    server should be down. Correct it!

    .

    quit” | telnet localhost 25

    fi

    물론 sendmail이 서버에 설정되어 있고 데몬이 돌아가고 있어야 한다.

    sendmail 보안이 좀 걱정스럽지만 localhost에서만 보내도록 설정했으니 뭐 별일 있겠나…

  • 시간과 시각

    Do you have some time?

    너 시간 좀 있냐?

    Do you have the time?

    너 시계 있냐? (지금 몇시냐)

    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중간에 멍 때리다가 some인지 the인지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는 적절히 시계를 꺼내서 바쁜척을 하면서 “어 지금 오후 세시구나”까지 일단 읊고 “잠깐 볼까?”라고 물어봐주면 딱.

  • 후레쉬맨 오프닝

    옛날 아주 먼 옛날

    5명의 아이들이 우주밖으로 사라졌다.

    그로 부터 20년뒤

    그들은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이름은!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1)옛날 옛날 한 옛날에 다섯아이가

    우주 멀리 아주 멀리 사라졌다네

    이제 모두 용사되어 오~ 돌아왔네

    후레쉬맨 후레쉬맨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후레쉬맨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나간다 지구를 지켜라

    후레쉬맨 우리의 평화의 수호자

    후레쉬맨

    고!고!고!고! 우리에겐 적이 없다.

    고!고!고!고! 나가서 싸우자

    고!고!고!고! 평화의 후레쉬맨

    고!고!고!고! come on

  • 마크로스 오프닝

    마크로스 국내판 오프닝 가사

    새까만 허공을 지나쳐가면

    아름다운 우리의 지구가 있다

    아빠는 철없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친구라고 말씀 하셨다

    마! 크! 로스 마! 크! 로스

    착하고 용맹한 젊은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눈물과 고통을 마다 하지를 않고

    다부진 마음으로~

    밤하늘을 날으면서 날아가는 저 끝은

    멀리 반짝이는 작은 별 하나~


    마크로스 마크로스 마~크~로~스

    저장용. 보관용.

  • 공주 석정리 박물관

    동생이 가자고 해서 가게 되었다.

    사진은 어쩌다보니 찍은 순서의 역순.



    매머드를 사냥하는 원시인들의 모습. 근데 매머드가 땅에서 소환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산이 부족해서 앞쪽 절반만 만들어야만 했나보다…



    금강을 뚫고 올라온 태양의 모습.



    막집은 집터에 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은 집이고 움집은 구덩이를 판 집이다. 막집은 구석기 시대의 특징이고 움집은 신석기시대의 특징이다. 근데 내가 가장 궁금했던건 저 움집을 짓는 각도이다. 피라미드의 경우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연스러운 각도가 있었는데, 과연 그것이 여기에도 적용되었을 것인가. 저건 현대에 재현된 모습이라 어떤 적당한 각도를 갖고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과거에 선사시대에도 그렇게 적당한 각도를 만들었을지…



    매머드 뼈로 만들었다는 집. 물론 저 뼈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가짜다.



    악마의 열매(…)를 따고 있는 구석기인.



    감시카메라 위치에 감시하고 있는 원시인 모형을 가져다 두었다. 큐레이터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센스쟁이.



    왠지 원시인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지 않겠는가(…)

    박물관 직원중에 덕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마법으로 화이어볼을 창조한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저 불꽃을 악마에게 던지겠지(…)



    생각하는 사람.

    재밌는 여행이었다.

  • 요령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273

    미디어오늘의 칼럼이다. 백종원이 요리가 아니라 요령을 가르친다는 것과,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하기보다는 빠르게 하는 요령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그보다는 그런식으로 빠르게 요령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진 세상이 된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고 나 역시 그럴 필요가 없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니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이 요령이다. 요리든 뭐든 그렇게 잘하게 되는데에는 엄청난 고생이 필요하다. 그럼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건가? 또, 그런 고생을 하지 않은 지식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단순히 따라하기만 하는 따라쟁이는 의미가 없는건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그런 수준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그런 고통을 강요한다는 것은 폭력이다.

    솔직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외식비가 쌌으면 사람들이 집에서 자기의 허접한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 따위 하지 않고 밖에 나가서 사먹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재료 사기도 귀찮고 요리도 귀찮고 설거지는 더 귀찮다. 이런데 쿡방이 흥할리가 없다. 여기에 뭔 요령 타령이냐. 물가가 비싼거고 밥값이 비싼거지.

  • shall과 should의 차이


    http://www.nytimes.com/interactive/projects/cp/climate/2015-paris-climate-talks/at-climate-talks-three-letters-almost-sunk-the-deal


    https://www.washingtonpost.com/politics/anatomy-of-a-deal-how-the-climate-accord-was-won–and-nearly-lost/2015/12/13/2a9b3416-a1df-11e5-b53d-972e2751f433_story.html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의 두 기사를 한번 읽어보시면 shall과 should 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상언어에서는 크게 구분하지 않고 쓸 수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shall은 1인칭에서 미래시제를 나타낼 때 쓰이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죠. should는 의무적인 사항을 이야기 하고요.

    이게 국제 규약에서는, shall을 쓰면 법적인 구속력이 생기게 되고, should를 쓰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법으로 정할 필요까지는 없고) 의 뜻이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shall이 더 강력합니다.

    should를 써야 하는데 shall을 쓰는 바람에, 아무도 못 지키는 쓰레기 협정이 될 뻔하다가 (발표하면 빼도박도 못하므로) 발표 직전에 발견해서 후다닥 고쳐썼다고 하네요. 그냥 실수였다고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