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죄수의 딜레마 : 광고편

    난 광고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상업성 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내 블로그에는 광고가 없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애드센스나 애드클릭스 같은 광고를 이용하여 수익을 100불이니 10만원이니 벌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귀가 솔깃한다. 뭐 그 자체도 이미 애드센스와 애드클릭스의 광고이므로 딱히 큰 유혹을 받지는 않지만 말이다. 애드센스같은 건 이제

    공략집

    도 있어서 어떻게 하면 유효 클릭 수를 늘리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악성 사용자(Abuser)를 낳는다.

    블로그에 애드센스 등의 클릭 광고를 올리고, 인기검색어를 이용한 검색 게시물 자체를 블로그에 올리게 되면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고리로 편입되어 엄청나게 많은 방문자 수를 자랑하게 된다. 어떤 블로그를 보니까 하루에 10만명이 오더라. 내가 10개월간 블로그 운영하면서 기껏 온 사람들이 6만명인데.

    문제는 블로그에 광고를 올리는 사람들 모두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유형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볼까?

    가장 쉬운 문제로서, 2인 딜레마 게임을 생각해 보자. 전 세계에 블로거가 2명뿐이다! A와 B는 둘 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광고를 게제하고 있다. 두 블로그의 수익률은 현재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A가 B의 좋은 글들을 퍼와서 수익률을 두배로 올렸다고 하자. 당연히 B는 이 상황을 좌시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B 역시 같은 전략을 사용하여 자신의 수익률을 두배로 올릴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지는 않지만 상대편이 돈을 더 벌었다면 자신도 벌 수 있는

    바로 그 돈

    을 못 벌었으니 손해라고 생각하는 심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A와 B가 둘 다 수익을 두배를 내게 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제 더이상 새로운 글은 만들어지지 않고 무한 펌질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뭐, 결국 2인으로 이루어진 블로고스피어는 멸망해 버린다.

    • 협동하는 경우(둘 다 퍼오지 않음), 일정 수익률 보장이 된다.
    • 한쪽이 배신하는 경우(배신하는 쪽은 퍼오는 곳), 두배 수익률이 나오고 나머지는 수익률 그대로.
    • 둘 다 배신하는 경우 멸망.

    2인 게임이 아니라 다자 게임이라고 해도 좋다. 모든 블로거가 광고 수익률 극대라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가정하면, 블로고스피어는 확실하게 멸망한다. 물론 나처럼 아예 광고를 올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광고가 원래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블로그도 얼마든지 많다. 따라서 전원 배신이라는 결말은 나지 않으므로 블로고스피어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분석인데, 그럼 현 상황은 합리적인가? 즉, 퍼온 글을 이용해서 많은 수익을 내는 블로거가 있고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어내서 수익을 내는 블로거가 있고, 둘이 공존하는 상황은 합리적인가?

    이에 대한 판단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이러한 일로부터 퍼온 글에 의한 수익을 막기 위한 방법은 배신하는 경우 수익보다 더 큰 불이익을 주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자는 법이 저작권법이다.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정당한 허가 없이 무단으로 복제하여 사용한 경우에 불이익을 주자는 취지의 법이다. 즉, 이 법이 시행된다면 위와 같이 배신하는 블로거는 합리적 선택에 의해서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럼, 퍼온 글들을 모아서 많은 수익을 낸 블로거가 직접 컨텐츠를 만든 블로거들과 공존하는 상황이 합리적인지 어떤지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보자. A가 1을 만들었고 B가 2를 만들었는데, 어느날 C가 나타나서 1과 2를 복사해서 12라는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었다. A와 B는 C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럼 C는 A와 B에게 너네도 퍼다가 글 만들라고 한다. 그래서 A와 B가 서로 퍼다가 각각 12를 만들었다. 결국 A, B, C는 모두 12라는 컨텐츠를 가진 개성없는 블로거들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네이버 전설(?)이다. 뭐, 네이버는 수익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요점은, 결국 허락을 받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인터넷에 올린 글은 “읽으라고” 올린 것이지 그걸 가져다가 맘대로 사용하라고 올리지는 않는다. 책을 샀다고 해서 책 자체의 사용권은 인정되지만 책을 복사해서 복사본을 팔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았다면 얼마든지 복사해다 팔아도 된다. 내 입장은, 그러므로 퍼가는 것에 대해서 제제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인터넷이 너무 넓다는 점이다. A가 B의 컨텐츠를 복사했다고 해도 A가 출처를 밝히지 않는 한 이용자들은 A가 직접 만든 컨텐츠로 알 것이고, 저작물에 대한 B의 업적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이 문제는 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문화를 바꿔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 GPL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GPL의 요점은 “이 소설을 읽든 복사해서 갖다 팔든 니 맘대로 하는데, 1. 아무튼 저작권자는 나고 2. 덧붙인 내용이 있으면 그것도 GPL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난 이 소설이 재밌을지 없을지 결코 보증 못한다”는 단서도 붙어있긴 하지만.



    [각주:

    1

    ]



    1. GPL에 대한 이 해석은 틀릴 수도 있으므로 정확한 해석은 자유소프트웨어재단(http://www.fsf.org/)에 물어보시기를.

      [본문으로]

  • 과거를 듣기, 미래에 말걸기

    최근 읽고 있는 책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랑 움베르토 에코의 “칸트와 오리너구리”이다. 지독하게 안읽히는 책들인데, 아무튼 나름 재밌기에 읽고 있다. 벽초 선생은 이미 작고하셨고(1968) 움베르토 에코는 나이가 아주 많은 분이다. (1932년생) 이런 분들의 책을 읽다보면, 아주 오래전에 작가가 말해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분들은 반대로 미래 세대인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이 있어, 내가 글을 남긴다면 그것이 작가의 귀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난 무언가 대답을 한 것이고 그건 이제 하나의 대화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지금 모르겠다면, 미래에 물어보자.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잘 설명하고, 마지막에 궁금한 것이 무엇인가 밝혀둔다면 미래에 어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서 거기에 대답해 주지 않을까? 비록 그 대답을 내가 들을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대답이 갈 것이니 그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실 책이라는 것은 집단 지성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새로운 책은 항상 작가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은 작가가 그간 경험한 과거 지식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진 작가의 새로운 의견이 있으니, 책이 출판되고 그것이 쌓여갈수록 인류의 지식도 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낸 듯 하지만, 오래된 작가나 너무 멀리 있는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궁금한 것이 있어도 작가에게 물어볼 수가 없으니 나는 작가가 남기고 간 작품을 해석해서 작가의 뜻을 알 수밖에 없고, 그 나름대로의 대답을 적어둔 것은 또한 누군가 읽고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 독서와 독후감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미래에 질문을 던져라. 아니면 미래에 나올 질문에 대해 대답부터 하거나.



    [각주:

    1

    ]



    1. 슈뢰딩거인가, 누가 그랬더라, “우리는 이제 답은 알았다. 남은 것은 옳은 질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라고. 더불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닥치고 정답이 42라고 알려준다. 질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답은 42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질문하기 전에 답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질문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그리고 의미있는 지적 활동이 될 것 같다.

      [본문으로]

  • 문자 메세지는 언제 멈추지?

    요새는 휴대전화의 기본 기능인 통화기능보다 많이 쓰이는 통신 수단이 단문 메시지 전송(SMS)기능이다. 이른바 “문자” 보내기인데, 이거 생각보다 만만한 통신 수단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화 통화는 실시간(Real-time) 쌍방향(Duplex) 통화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끊으면 끊긴다. 하지만 문자 메시지 보내기는 실시간이 아니고 심지어 단방향이다. 즉, 어느 한쪽이 문자를 무시하더라도 상대방은 계속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보면 계속 답장에 답장을 해줘야 하는 상황을 양쪽이 경험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왜냐하면 내가 보낸 문자를 상대방이 무시한다면 나는 기분이 나쁠 것이고, 그걸 아는 나 역시 내가 상대방의 문자를 무시한다면 상대방이 기분이 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그렇다고 “이제 문자 그만 보내자”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낼 수가 없다!

    즉 무한정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문자메시지 중독에 쉽게 빠지는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 나의 질문이다. 어떤 시점이 문자를 그만 보내기에 괜찮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정답은 나도 모른다.

  • 위대한 사람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큰 영향은 부모님이고, 그 다음은 애니메이션 “슬레이어즈”이다. 작가인 칸자카 하지메가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스토리를 쓴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내가 거기서 발견한 의미는 아주 많이 있다. 시간만 있으면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은, 그런 애니매이션이다. 내가 블로그에 쓰는 많은 글들은 책을 읽고 생각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레이어즈의 철학에서 나타난 것들이 많다.

    주인공 리나 인버스의 가치관은 참 흥미롭다. 악인에게는 인권이 없다거나, 사랑보다는 돈이 현실이라거나.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해를 미치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다. 슬레이어즈 시리즈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리나는 굉장히 이기적이다. 굳이 나쁜 짓을 하면서 살지는 않지만, 이기적인 쪽으로 선택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마왕을 퇴치하는 목적이다. 다른 여러가지 이유도 있지만, 리나가 마왕과 싸우고 끝내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세계 평화라든가 하는 멋진 이유가 아니다. 단지 마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아닌,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 마왕과 싸우고 그만큼 강한 집념과 집착으로 승리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왕 퇴치+세계 평화라는 위대한 결말이다.

    사실 세계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커다란 사건들을 보면, 그 시작은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었던 일들이 많다. 위대한 목적이나 목표를 두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로부터 시작된 것도 있다. 가령, 구글은 원래 대학원생이 자기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서 만든 작은 서비스에서 시작되었다. 슬래시닷은 그냥 글 올리는 게시판에서 시작했다가 그렇게 성장했다. 리눅스는 한 개발자가 커널을 조금 만들어서 올렸다가 그렇게 커졌다. 이것들은 시작할 때는 그다지 커질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대단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어 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페르마가 여백에 적어놓은 “나는 답을 알지롱 ㅋㅋ” 대충 이런 요지의 낙서같은 것에서 시작된 문제고, 300년 동안이나 수학자들을 괴롭힌 문제가 되었다. 페니실린은 플레밍이 실수로 열어놓은 샬레에 곰팡이가 하나 떨어져서 발견되었다. 페니실린의 발견이 위대한 업적인 것은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대한 시작은 아닌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어릴 때 “빛의 속도로 달리면 거울에 내 얼굴이 보일까?” 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각주:

    1

    ]


    파인만은 핵무기 개발하는 공장에서, 공장 설계도를 보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도면에 쓰여진 기호가 창문같기는 한데 그걸 물어보자니 유명 물리학자로서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파이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어봤다가, 설계상의 헛점을 발견해 버렸다고 한다.



    [각주:

    2

    ]


    아마 이 예들 말고도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위대한 업적은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원대한 꿈을 갖고 시작되어 이루어진 위대한 업적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건, 위대한 일을 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목적이나 꿈이 꼭 그에 걸맞게 위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소해도 좋다. 가령, 6.25전쟁이나 임진왜란에 나가서 승리를 이끈 병사들은, 아마 불타는 애국심에 열심히 싸운 사람도 있겠지만 단지 당장 죽지 않기 위해, 단지 살고 싶기에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떻든 그들이 열심히 싸웠기에 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전기나 자서전, 평전 같은 걸 읽다보면 그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뭔가 달랐다. 업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인가 중학교 다닐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기를 다룬 책이 학교에 돌아다녔었는데, 그것만 읽으면 김영삼 아저씨는 무슨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을 하기 위해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정치에 뜻을 품은 것 외에는, 그냥 평범했다고나 할까. 물론 진짜로 평범했으면 대통령까지는 못했겠지만, 아무튼 처음부터 위대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코 위대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위대한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 어떤가. 사소한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위대해지는 사람도 있는걸.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사소하고 비굴해 보일지라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다 쓰고나서 느낀 점인데, 난 이런 글을 적고 나서 항상 나 자신은 내가 글에 적은 내용들을 그다지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뭐, 그렇다고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나야 실천 못하더라도, 아무튼 “멋진” 얘기를 적어놓긴 했으니까 누군가 이 글에 공감하고 실천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맘에 안들면 따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무슨 상관이랴.
    1. 진짜로 그게 모티브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는 분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본문으로]
    2. 이것도 정확한 버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본문으로]

  • 저작권 법 관련하여

    저작권법이 강화되었다고 하도 난리를 치길래, 일단 퍼온 노래 가사와 음원들은 모두 비공개 처리하였다. 상황 봐서 지우거나 가사만 올리거나 해야겠다. 아니면 작곡해서 올리거나 해야겠다.

    아무튼 다행인건, 노래 가사 외에는 퍼온게 하나도 없다는 점. (위키피디아는 GFDL을 따르므로 괜찮다)

    참고로 cranky씨의 곡들은 “상업적 용도가 아닌 경우”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안심하고 사용하고 있다.

    “거리에서”와 “지하철에…”를 비교한 글의 경우 고민되기는 하는데, 일단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이것도 안되려나?

    nasa에서 사진 한장 퍼온거 있고, 립튼 아이스티 제품사진을 하나 퍼온게 있는데, 뭐 딴지 걸린다면 -_-; 어쩔 수 없다.

    나머지는 CC나 GFDL등을 따르므로 상관 없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내 블로그에 올리는 자료 중 저작권이 나에게 있는 모든 자료는 복사(퍼가는 것) 할때 허락을 받고 가져가야 한다. (허락하는건 전혀 까다롭지 않음)

  • 안티스팸 : Spam Poison

    오, 이런곳이 있다.


    http://korean-19006240539.spampoison.com/

    가보자.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스팸봇들이 이메일 주소를 열심히 수집한다면, 거기에 “아주 많은” 이메일 주소를 주는 것이다. 즉, 원래는 100% 순수한 진짜 이메일 주소였을 DB에 작동하지 않는 이메일 주소를 확 부어버리면 진짜 작동하는 이메일 주소는 파묻혀서 DB가 쓰레기 더미가 되고, 이 DB를 이용해서 스팸을 보내게 되면 반송 메일 때문에 메일 서버가 정지되어 버리는 알고리즘이다.

    쉽다.

    가보면 소스코드 한줄을 보여주는데, 그냥 붙여넣기만 하면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그림이 하나 생길 것이다. 맘에 안들면 이미지 크기를 0px로 지정해 버리면 된다. 물론 그럼 사람들에 대한 홍보효과는 없겠지만.



    아무튼, 유용해 보인다.

  • 이뭐병

    이거야 원…피해망상이라도 걸릴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주까지, gcc에 math.h에서 연결해서 쓰던 atan



    [각주:

    1

    ]



    하고 log



    [각주:

    2

    ]



    함수들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나한테 헛소리를 한다. nan



    [각주:

    3

    ]



    이라든가, inf



    [각주:

    4

    ]



    라든가.

    그럼 대체 지지난주까지 잘 작동했던 그 함수는 어디갔는데…

    결국 나만 교수님한테 개갈굼 받게 생겼네. “넌 정신이 있는거니?”

    내가 지금까지 환상을 봤나? Maple 결과랑 잘 맞춰봤었는데…

    미치겠다. 젠장.

    추가

    square root, cubic root, log, arc tan, arc cos함수를 전부 새로 코딩했다. 미쳤지. 애초에 시작하는게 아니었는데 -_-;

    그러나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거.

    산수공부는 많이 하게 되었다. C언어에서 연산자 여러개 겹쳐쓰면 빡(=nan)난다는 것도 알았고

    추가2

    전에는 나눗셈 때문에 골치아팠는데.

    Maple은 왜 지맘대로 3차방정식 근의 순서를 바꾸는 것일까.

    아무튼, 내 코드에서 3차방정식도 제대로 풀리는 것으로 보인다.

    추가3

    문제의 원인은 놀랍게도 #include를 빼먹어서였다. 왜? 왜 빠져 있었지??

    그러나 atan이 가진 부호 문제때문에 그냥 내가 직접 작성한 함수를 쓰기로 했다. log는 math.h에 있는걸로 쓴다. 제곱근은 괜찮은데, 세제곱근에 문제가 있어서, 세제곱근도 직접 작성했다. 에휴. 삽질.

    추가4

    atan의 부호 문제를 해결한 함수가 atan2더라. 역시 난감하다 -_-;

    아무튼,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가 나왔으니, 이제 오늘만 밤새면 된다. 결국 직접 만든 함수 쓰는건 세제곱근 뿐.

    1. arc tangent, 탄젠트의 역함수

      [본문으로]
    2. 지수함수의 역함수

      [본문으로]
    3. Not A Number. “이건 숫자가 아닌겨”

      [본문으로]
    4. infinity. “이건 숫자가 아닌것도 아닌겨”

      [본문으로]

  • 블로거의 죽음과 블로거들

    soloman이라는 어떤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전하기보다는 기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penholic.tistory.com/31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54978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에 대해서,

    fantastic902 님께서 한 블로거가 죽기까지

    블로거는 뭐했나? 라는 글로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http://fantastic902.com/?p=2812

    듣고보니 이상합니다. 블로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요?

    우선, 경찰의 무성의함과 부패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soloman님의 선택이 너무나 극단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감정은 잠시 접고, 생각을 해 봅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http://soloman.tistory.com/


    soloman님의 블로그를 가보면, 첫 글이 올라온 것이 6월 1일이고, 지금 26일이니까, 25일간 대략 10000여명이 다녀갔습니다. 하루에 400명꼴이군요. soloman님께서 검색봇을 막는 설정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실제 “사람”이 다녀간 수는 저 숫자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겁니다.

    그에 비해, 댓글 올라온건 고인이 가신 후 달린 30여개를 제외하면 한달간 20개정도. 100명중 한명 정도가 댓글을 달았다고 보면 될 것 같군요. 공론화는 고인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나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빠른 정보 소비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말로 “냄비”라고도 하죠. soloman님의 소식 뿐만이 아니라, 공론화되지 못하고 스러진 수많은 억울한 사연도 많이 있을 겁니다. 즉, soloman님의 글들이 올블로그에 올라와서 공론화되기 전에 순식간에 다른 글에 밀려서 내려갔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soloman님께서 문제가 있음을 처음으로 이야기 했을 때 soloman님이 분신까지 하리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사고가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블로거로서 블로거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단 무관심했던 블로거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너무 빨리 내려가는 바람에 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떻든 남의 일이므로 안타깝긴 하지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읽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가는 속에서 모든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갖고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너무 심한 일이겠죠.

    이전에 제가 작성했던 “이슈 활성화 패턴”을 참고합니다.


    http://snowall.tistory.com/249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야 공론화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 두명으로 시작한 글은 점점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많은 관심은 다시 더 많은 글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어떤 임계 숫자가 있을 건데, 아마 작지는 않을 겁니다. 이 숫자를 넘으면 진짜로 공론화 되어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결국 블로거들이 할 수 있는 참여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고, 오직 그 방법에 의해서만 블로거로서 블로거가 하는 방법이 됩니다.

    fantastic902 님은 ”
    고인이 줄곧 블로그에서 호소하던 억울함에 대해 블로거들이 해준건 약간의 관심과 위로 뿐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군요. 그런데, 실제로 블로거가 인터넷에서 어떤 참여라는 것을 할 수 있는 형태는 글자나 사진, 동영상 등의 형태밖에 없고, 그중 가장 손쉬운 것은 댓글로 지지와 위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제, 블로거의 실질적인 행동론을 말해봅니다. 여기서 블로거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론화”입니다.



    [각주:

    1

    ]



    공론화 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많은 글입니다. 즉, 블로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글 올리기를 통해서 공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은 강요되어야 할까요? 의무인가요? 그건 아닐겁니다. 아무리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이 있어도, 누군가의 강요로 공론화되고 억지로 띄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만 놓고 얘기하자면, 어떤 식으로든 강요에 의해서라도 공론화되고 주류로 떠오르게 되면 좋게 해결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마음에 반감을 갖게 만들 것이며, 결국 더 많은 자발적인 참여는 줄어들게 될 겁니다.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편리해서 좋긴 한데, 사람에게 인터넷 회선 저 반대편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 하나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까먹게 합니다. 저편에 사람이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고,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블로거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소식을 알려 가면서 공론화 해 나간다면 좀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뻔한 얘기를 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관심”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뿐이네요. 그러나 공권력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국민입니다. 어떤 문제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공권력이 끝까지 버틸 수는 없을 겁니다. 공론화를 통하여 커다란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최선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은 앞으로는 부디 soloman님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마시고, 문제가 잘 풀리기를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1.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행동 범위를 인터넷으로 한정했을 경우의 일입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도울 수 있다면, 그만한 관심이 있다면, 아마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도 걸거나 등등의 다른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을 이용한 방법은 아니므로 일단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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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대답좀…

    고민이…

    유학을 가고 싶은데, 아직 군대를 안갔습니다. 군대 문제는, 전문연구요원쪽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쪽은 거의 확실하게 취업 될 것 같네요. 문제는 교수님께서 석사 마치고 바로 유학을 가는게 어떠냐고 권하시는군요. (강하게)

    토플, GRE, SOP등등 준비할 게 많긴 한데, 문제는 학위 취득 후 진로입니다.

    1. 전문연구요원 먼저하면 대략 3년 반 뒤에 유학을 갑니다. 현재 얻어둔 Award나 연구경력 등이 그때에도 쓰일 수 있을까요?

    2. 유학을 먼저 가면 전문연구요원은 날아갑니다.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대하거나 다른 길을 찾거나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될까요?

    3. 유학 갔다오고 현역 입대 하고나서 취직할 수도 있는데, 박사 받고 군대 갔다오는 순서를 선택한 경우, 적당한 연구원 자리나 교수직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쪽은 아무래도 Post-doc 경력이 있어야 할텐데, 그거까지 생각하면 이쪽은 길이 아닌 것 같군요.

    외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건 그다지 원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좋아요.

    어차피 취직할거 생각하면 돈 안되고 밥벌이 잘 안될것으로 강하게 예상되는 입자물리학 이론은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만, 뭐 그래도 취직을 하긴 해야 할 테니, 가능하면 취직 되는 쪽으로…

  • 오렌지 소녀

    요슈타인 가아더는 내가 작가 이름만 보고서 책을 선택하는 몇 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다.



    [각주:

    1

    ]



    그의 철학책은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다.

    오렌지 소녀는 사랑에 관련된 소설이다. 내용은, 아주 재미있지는 않고 잔잔한듯 느껴지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고, 자신의 존재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인생이 어째서 중요한지 묻는다.

    누구에게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1. 마틴 가드너, 미하엘 엔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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