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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찾는다는 뜻의 영어 동사는 많다.
find = 우연히 발견하다. 기본적으로 ‘어쩌다보니 내 눈 앞에 나타났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열심히 연구하다가 알아냈다는 뜻도 있지만, 연구하다가 알아낸 것을 우리는 ‘발견’이라고 한다.
look for = 의도적으로 찾아보다. 뭘 찾아야 하는지 알고,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다 아는 상황에서 찾아본 것은 어쩌다 보니 찾은게 아니다. 이건 그냥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을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물론 거기에 꼭 있을 필요는 없고.
search = 수색. 샅샅히 뒤져서 원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이 잡듯이 뒤지는 걸 뜻한다.
seek = 탐색. 찾아보는것. 그게 뭔지는 대충 알고, 어디에 있는지도 대충 알고, 그래서 찾아보는 것도 대충 찾아본다.
pursue = 추구하다. 내가 찾는게 뭔지 안다. 사실은 눈앞에 빤히 보이는 그것인데, 잘 잡히지는 않는 것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 그래서 갈데까지 가보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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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국어정책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채팅이나 SNS등에서 비속어와 욕설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입력 내용을 검열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해서 근본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한가지 장점과 세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번째 문제점은 이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욕설과 비속어가 없으면 대화가 안되는 사람으로 커 왔는데 이런다고 애들이 욕설을 안쓸까?
두번째 문제점은 입력 내용 검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씨발”은 검열했다 치자. “sibal”은 어떻게 할 거임? 이것도 차단해 보자. 그럼 Ssibal, cibal, ccibal, scibal, sival, ssival, 10al, sib-al, si-bal, ……. 무한한 수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당장 내가 방금 생각한 것만 여러개가 있고, 원한다면 수십개도 찾아볼 수 있을 듯 싶다. 다 차단하려는 것인가? 그리고 표준어인 ‘시발’을 차단할 생각인가? http://krdic.naver.com/search.nhn?dic_where=krdic&query=%EC%8B%9C%EB%B0%9C
세번째 문제점은 그 결과 아이들의 외계어 사용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장점은 아이들의 창의력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창의력은 그대로이고 변한 것은 문화이다. 두가지 사건이 일어날텐데, 하나는 더욱 창의적인 외계어 용법이 나타날 것이고, 어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나타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의 컴퓨터 해킹 실력이 급성장할 것이다. 기존에 있던 천재 해커들은 닥치고 있어야 할 무시무시한 청소년 해커들이 나타나리라고 본다.
매일 매일 근본 대책을 요구하고, 수립하고, 추진하지만 정작 결과물을 보면 임기응변, 임시변통밖에 안된다. 욕설과 비속어 관련 정책은 청소년 전문가와 국어 전문가가 합심해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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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집필 마무리
1년간 삽질했던 국어사전 집필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한두개 정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다. 내 이름도 집필진에 올라간다고 하니, 열심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했으면 왠지 부끄러웠을테니까. 10개월간 대략 3000개 정도를 했으니, 하루 10개씩 꼬박꼬박 한 셈이다. 물론 실제로는 마지막 2개월 사이에 1000개 넘게 했다. ㅋㅋ
1.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국어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다른 분야의 용어는 모르겠으나, 물리 관련 용어들 집필하면서 발견한 수많은 오류들은 제대로 된 용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단어는 완전히 틀린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다른 사전에서 베껴온 것도 있고, 어떤 단어는 무관한 다른 단어의 뜻풀이를 가져온 것도 있었다. 예전에 집필했던 분들의 노력과 수고는 정말 대단하였지만 급해서 대충 집필한 몇몇 뜻풀이에서 그 노력이 퇴색되지는 말아야겠다.
물론 나도 급하게 쓴 것이 있긴 하지만, 검색도 하고 공부도 해서 어려울 순 있어도 틀린 뜻풀이가 들어가지는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였다. 그리고 우리 교수님께서도 깐깐하신 분이라 내가 실수한 것이 있어도 다 잡아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2.
전공자와 일반인 사이의 높은 벽을 느꼈다. 가령,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의 경우, 국어팀에서 교열되어 온 것을 다시 확인해보니 ‘중성 미자’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중성미자는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용어이고 교열하기 전에 찾아보았다면 그렇게 고치지는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일반인이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문화를 탓하고 싶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과학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것이고, 전공이 아니면 잘 모른다. 목표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전문용어 사전이었는데, 목적이 잘 달성되었을지 모르겠다.
3.
우리말 제대로 쓰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고에너지의 전자의 속도의 방향의 한 방향에 대한 성분의 크기] 처럼 ‘~의’로 이어지는 형태를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데 영어로 되어 있는 뜻풀이를 가져오다 보면 어느새 그런 표현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용어를 가능하면 우리말로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자어를 쓰고 있고, 우리말 용어는 오히려 학계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보니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나도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데 국어 교육이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해 배우는 언어 영역의 일부가 되어버린 후배들은 어떨지 걱정스럽다. 한국어가 국가 공식 언어인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보다 한국어, 한글 교육이 더 중요하다. 자녀들에게 조기영어교육을 시키는 부모님 중에 영어가 왜 중요하고 한국어가 왜 중요한지 비교 분석한 후 심각하게 고민하여 시키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4.
덕분에 공부를 매우 많이 할 수 있었다. 고체, 광학, 플라스마 분야의 용어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뜻풀이를 쉽게 쓰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빠르게 공부해야만 했다. 역시 나에게는 세상에서 물리학 공부가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제 요금 정산이 남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