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otopia 1-16

“여기부터는 조심해야합니다. 가능하면 제가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오도록 해 주세요.”

그레이스가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에게 다시한번 주의를 주며 앞을 비추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숲은 마을보다 더 빠르게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어둠이 내린 숲에는 구출대를 빼면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낙엽에 바스락 거리는 그들의 발소리만이 숲을 자극하고, 지팡이에 있는 빛만이 나무들을 비추었다. 그레이스가 가장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민트가 그 뒤에서 따라가며, 시에나가 다시 불을 비추고 가장 뒤에는 루카가 뒤쪽을 경계하며 따라갔다.

철퍽.

앞서가던 그레이스가 뭔가를 밟고 멈춰섰다.

“뭐지?”

뭔가 철퍽거린다는 것은 바닥에 뭔가 물 같은 것이 고여있다는 뜻이다. 그레이스가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혈흔이군.”

피웅덩이에서 비릿한 피냄새가 올라왔다.

“대장, 저거!”

검을 뽑아들고 주변을 살피던 민트가 나무 옆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우웁… 이건 뭐지?”

신발이었다. 그 신발의 주인은 발을 신발에 남겨둔 채 사라지고 없었다.

“이리로 갖고 와 봐.”

루카의 지시에 민트가 신발을 손끝으로 집어들어서 들고 왔다.

“공주님의 것은 아니군. 남자용 신발이야. 전사들이 신는 신발이군. 무릎 아래에서 끊겨있고, 끊긴 부분이 지저분한걸로 봐서는 이빨 같은것에 뜯긴 것 같다. 괴수에게 당했나 보네.”

“다행이군요!”

“글쎄, 아직은. 공주님의 직접적인 흔적을 찾을 때 까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시에나의 환호를 무시하며 루카는 그 신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변을 좀 더 살폈다.

“일단 큰 발자국이 있고, 이건 아마 괴수의 것이겠지. 괴수가 이 남자를 잡아먹었고, 그런데 왜 이 왼쪽 발을 못 씹어먹었을까? 이 발자국은 저쪽에서 와서 이쪽으로 향하고 있군.”

루카가 괴수의 발자국이 향한 곳을 쳐다보았다.

“대장, 여기 뭐가 또 있어요.”

그 근처를 조금 더 살펴보던 시에나가 루카에게 다시 뭘 들고 왔다. 이번에도 신발이었다.

“또 신발? 이리 줘봐.”

루카는 시에나가 가져온 신발을 살펴보았다.

“적어도 두 사람이 있었군.”

“어떻게 알아요?”

“둘 다 왼발이거든. 그리고 전사 셋이었다면 아마 괴수 하나 정도는 잡을 수 있었겠지 싶은데. 그레이스, 저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오지?”

“그루밍 왕국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그렇군. 그럼 그 두 사람은 공주님을 납치한 자들일거야. 서두르자.”

루카는 잠시 멈췄던 일행을 재촉하여 움직였다.

그러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그들은 다시 멈추었다. 아까의 피웅덩이와 신발을 발견한 곳에서 멀어지려나 싶었던 순간, 그레이스가 다시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대장님, 이상한게 또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다시 뭔가를 주워들었다. 이번엔 후라이팬이었다.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휘어진 것이 바위라도 후려친 모양이었다.

“후라이팬?”

“그리고 이것도 있네요.”

옆에 떨어져 있던 팔찌 조각들을 주워서 같이 가져왔다.

“이게 뭔지 아는가?”

“엘프의 팔찌 같아 보이는데요. 아마 이곳에 사는 갈란다 가족 중 누군가 이곳에 왔었나 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분명 이건 공주님이 들고 있던 후라이팬일거야. 역시, 아직 살아 계신 것 같다. 그리고 그 엘프가 공주님을 데려간 듯 싶은데?”

“아, 그렇군요! 그럼 서둘러서 가시죠!”

그레이스가 기쁜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출발했다.

Melotopia 1-15

“너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야?”

“그래. 여기서 231년째 살고 있지. 사람은 아니지만.”

“231년?”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에 놀란 공주는 다시 물어보았다.

“음, 왜 놀라지?”

오히려 레스톨은 그런 반응에 반문했다.

“아저씨는 오래 살았구나.”

거기에 대고 아레스가 덧붙였다.

“저는 이제 열두살이라서, 백년이 넘는 시간은 상상도 안돼요.”

“아, 너희들은 인간이지. 인간이랑 비교한다면 오래 살기는 했지. 나한테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셋은 어느덧 통나무로 만든 오두막에 도착했다. 오두막은 작은 창문과 문이 있었고, 굴뚝은 보이지 않았다.

“우와, 이런 숲 속에 집이 있다니!”

“숲 속의 집을 처음 보는 건가?”

“응, 처음 봐. 사실 왕궁에서 이렇게까지 멀리 나와 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거든.”

“하하.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마을로 데려다 주마. 넌 어디서 왔지?”

“나는 진저리 왕국의 공주, 멜리나 패트리시아 스피네린이다.”

“공주님이었구나?”

“놀라지 않는거야?”

“공주든 왕이든 꽤 여럿을 봐 왔으니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 그쪽은?”

그가 이번에는 아레스를 보며 물어보았다.

“저는 아레스 부크스, 평민이에요.”

“그렇구나. 너희들은 평민인가 공주님인가가 이름만큼이나 중요한 모양이네. 자, 들어가자.”

레스톨이 오두막의 문을 열고 셋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쉬도록 해.”

오두막은 방이 나눠져 있지 않고 한칸이었다. 은은한 향이 나는 약초가 들어있는 자루와, 그 자루들이 놓여있는 진열대가 있고, 그 옆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침대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쉬는 거야?”

“그래, 여기서 쉬면 돼.”

그 말에 공주가 두리번 거렸다.

“그럼 난 좀 자야겠다. 침대 위로 올라왔다간 아바마마께 혼내달라고 말할거야!”

공주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경고를 하고는 침대 위에 털썩 누워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피곤했던지 잠들어 버렸다.

“네에… 알겠사옵나이다.”

아레스는 작은 소리로 투덜대고는 침대의 반대쪽 벽으로 가서 기대면서 털썩 주저 앉았다.

“아저씨, 저도 좀 쉴게요.”

Melotopia 1-14

숲에 한밤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용맹한 전사나 마법사들도 달가워 하지 않는 일이다. 어둠이 모든 위험한 것들을 감추기 때문에 웬만큼 경험이 많은 자들이 아니고서는 힘들고 아프게 죽고 싶은 자들이 흔히 들어가는 곳이다.

이제 해가 모두 지고, 본격적으로 어두워진 숲 길 앞에서 공주 구출대의 세사람은 빵을 씹고 있었다.

“저, 실례합니다.”

그때, 일행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누구시죠?”

“왕궁에서 오신 분들 맞으시죠?”

말을 건 사람은 끝이 각진 수정으로 장식된 흰색 법사용 지팡이와 검정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수녀복을 입은 어느 젊은 수녀였다.

“저는 이곳 성당에서 파견나온 그레이스라고 합니다.”

“파견? 요청한 적 없는데.”

루카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다시 물었다.

“누가 파견했지?”

“성당의 주임 신부님께서, 여러분이 숲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저에게 길 안내와 혹시 부상이 있으면 치료를 부탁하셨습니다.”

“오호… 길을 아는가?”

“저희 성당은 신의 가호만으로 구할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하여 약물치료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약물들 중 인간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을 구하기 위해 이 숲의 엘프들과 교류하고 있어서 길을 알고 있습니다. 엘프들은 인간세계로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군. 전투 경험은?”

“종군 치료사 과정은 이수했지만 실전 경험은 아직 없습니다.”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지만, 여기부터는 국경을 넘어가서 임무를 수행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고맙다. 그럼 길 안내를 부탁하지. 숲의 괴물들이 있다는데, 괜찮은 건가?”

“그 점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숲에는 괴수들이 출몰합니다만, 저는 엘프의 문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 근처에 있는 한은 그들이 접근하지 않을 겁니다.

그레이스가 지팡이 끝의 수정 장식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투명한 수정 장식 안에는 역시 투명하지만 구분되는 모습으로 어떤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그럼 들어가자. 공주님께서 헤매고 계실거야. 괴수들에게 벌써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부디 그런 최악의 경우는 피했기만을 바라야겠지.”

그레이스와 시에나가 각자의 지팡이에 마법으로 불을 밝혔다.

Melotopia 1-13

성당에서는 신의 가호를 구하여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을 낫게하는 치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50개 정도의 침대를 운영하는 병실은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루카 일행이 병실에 들어서자, 저녁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수녀들이 환자들에게 식사를 배급하고 있었다.

“대장, 우리는 밥 안 먹어요?”

민트가 출발 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루카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군. 나는 지금 뭘 먹고싶은 기분이 아니지만… 식사를 좀 부탁해야겠군.”

루카가 치료실에서 식사를 나눠주고 있는 수녀를 보고 말을 걸었다.

“우리 대원들이 허기를 채울만한 분량이 혹시 남는다면 부탁하고 싶네만.”

“아, 물론입니다. 그레이스! 여기 왕궁에서 오신 분들께도 식사를 드려요!”

그 수녀가 느닷없이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식사하고 있던 환자들이 모두 일제히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루카는 공연히 시끄럽게 굴었다는 생각에 환자와 수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병실에는 수녀와 환자들 외에도, 환자의 보호자들도 같이 와서 간호를 돕고 있었는데 남자 하나가 아레스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자기 환자만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환자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어라? 시에나! 민트!”

루카가 배고프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둘에게 그 남자와 환자를 붙잡도록 했다.

“우왓!”

시에나와 민트가 달려들자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던 식기와 그릇을 집어 던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퍼엉! 쨍그랑! 퍽!

“윽…”

“가긴 어딜가?”

미리 길을 봐두었던 민트가 도망치려던 남자의 뒷덜미를 금세 붙잡아서 바닥에 눕혀놓고 있었다. 그 사이 시에나는 그가 돌보고 있던 환자에게 다가가서 뒤집어 엎고 목에 칼을 들이댔다. 민트가 칼을 꺼내서 남자의 목에 겨누고 루카에게 데려왔다.

“크윽…죽여라!”

그 남자가 벗어나려는지 꿈틀거렸지만, 민트가 양 팔을 붙잡은 채 체중을 실어서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너희들이 우리가 찾던 그 자들인 것 같은데. 지금부터 알게 되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넌 내가 죽으라고 할 때 죽게 될 테니까. 여기 수석 간호 수녀 있는가?”

“말씀하십시오.”

“이 자와 같이 온 자들이 누구인가?”

루카는 그가 간호하고 있던 세명의 부상자를 추가로 붙잡았다. 그 셋은 모두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아놓아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채 묶여서 끌려왔다.

“이보게, 혹시 여기 조용한 빈 방 하나 있나?”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루카 일행은 수석 간호 수녀의 안내를 받아서 성당의 한쪽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원래 순례자들이 하루 쉬어 가는 곳입니다만, 지금은 순례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방이 모두 비어있습니다. 편한 대로 사용하십시오.”

“알겠네. 물러가도록. 그리고 지금 시간부로 성당 폐쇄는 해제하니, 문을 열어도 좋다.”

“감사합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종을 울리십시오.”

그리고 그 수녀는 방 문을 닫고 나갔다.

철컥.

루카는 수녀가 방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문으로 가서 문을 잠궜다.

“자, 일단 어디 면상들을 살펴 보실까?”

멀쩡한 남자 한명을 제외하고, 붕대를 감은 셋의 붕대를 풀었다.

“으으윽…”

“조용히 안해?”

“으으…”

부상당한 셋은 아주 조화롭게 부상을 입었다. 한명은 왼쪽 귀가 터지고 얼굴의 왼쪽 전체에 멍이 들어 있었다. 한명은 코가 뭉개져 있었고, 아래턱에서 인중을 지나 이마로 올라가는 검붉은 피멍이 비쳤다. 나머지 하나는 턱이 왼쪽으로 꺾인 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다.

“음… 보아하니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너 뿐인 것 같은데, 그렇지?”

“죽여라!”

“아냐, 여긴 성당이잖아.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면 안돼. 넌 곧 왕궁으로 가야 할건데, 거기 가면 아마 국왕 폐하께서 적절한 처분을 결정하실 것이다. 내가 감히 너의 처분을 결정할 수는 없지. 어떤게 적절한 처분일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여기서 죽여라.”

“안된다니까.”

“흐으읍! 터헙!”

와그작.

그 남자가 혀를 깨물고 죽으려는 것을 민트가 구둣발로 턱을 옆으로 차버리면서 무산시켰다.

“대장, 이 사람 말하기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니, 이정도에 말을 못하진 않을거야.”

우두둑.

“우욱!!!”

루카가 빠져서 덜렁거리는 그의 턱을 붙들어서 끼워 맞췄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 아는대로 대답한 것 같으면 일단은 더 다치지는 않을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면 많이 다칠거야. 속일 수 있으면 속여봐. 공주님을 납치한게 너 맞지?”

“죽여라…”

우두둑.

“으으으아아아아아아악!!!!!”

루카는 그의 오른손 손가락을 모두 거꾸로 꺾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왜 그랬는지, 누가 시켜서 그랬는지는 나중에 왕궁에 가서 대답해도 돼. 나도 널 죽이고 싶지만, 설마 폐하만큼 널 죽이고 싶겠어? 내가 지금 널 죽이면 죄를 짓는 거야. 그러니 말해. 공주님은 지금 어디에 있지?”

“모…모른다.”

우두둑.

“으아아아아아악!!!!! 지…진…짜…”

그의 나머지 왼손 손가락도 마찬가지로 뒤집어 꺾였다.

“아, 그래? 미안. 한번은 봐줄게. 그러니까 다시한번 물어볼게, 공주님은 지금 어디에 있지?”

“으…모…모른…”

“뭐라고? 이런식으로 그 한번을 날려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

그때, 왼쪽 귀가 터진 남자가 뭔가 소리를 냈다.

“내…내가 봤다…”

“어라? 혀는 살아있었구나?”

올렸던 발을 내려놓고 루카는 왼쪽 귀가 터진 남자를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다시 얘기해봐. 알아들을 수 있게.”

“그…그녀니…”

“뭐라고?”

“고…고주가…우리…치고…가서…”

“아니, 그건 왕궁에 가서 얘기하라고. 내가 궁금한건 공주님이 어디에 있느냐야. 너도 저렇게 해줘?”

“수…”

“어디?”

“수…”

“뭐라고 하는거야? 들리게 얘기하란 말야!”

루카가 그를 멱살째로 들어올렸다.

“케케켁…수우…프…컥…컥…”

“대장, 숲이라는 것 같은데요”

시에나가 그의 말을 알아듣고 루카에게 전달했다.

“음, 여기서 숲이라면 국경을 가로막고 있는 <깊은 잠의 숲> 뿐인데. 시에나, 깊은 잠의 숲에 가본 적 있어?”

루카는 다시 그를 내려놓고 시에나에게 물었다.

“그곳은 엘프족 중 갈란다 가족이 통치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어요. 특히, 자생하는 괴수들이 있는데 마침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토벌하고 있지는 않아요. 만약 공주님이 그곳으로 들어가셨다면…”

이것은 아무래도 안좋은 소식인 듯 싶다.

“이봐, 맞아? 그곳으로 들어간 것이?”

루카가 아직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죽여…커헉!”

계속해서 죽여달라는 남자의 입을 다시 발로 틀어막으며 루카가 다시 이야기했다.

“확인 안해줘도 돼. 우린 공주님을 찾기 위해서는 지옥이라도 갈 생각이니까. 민트, 시에나, 이것들 잘 묶어.”

땡땡땡!

그리고 루카는 방 한켠에 걸려있던 종을 울렸다.

똑똑똑.

그러자 금방 누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 루카는 잠궜던 문을 열고 밖에 있던 수녀를 들어오도록 했다.

“이자들, 반역죄로 처리할 거니까 죽지 않을 만큼만 치료하고, 혹시라도 스스로 죽지 못하도록 하게. 내일 날이 밝는대로 국경 수비대에 연락해서 왕궁으로 압송하도록. 그리고 빵과 물을 가져다 주게나. 곧바로 떠날 참이니.”

“알겠습니다.”

Melotopia 1-12

공주와 아레스가 숲으로 걸어들어가자 한낮의 무더위는 사라지고 상쾌한 숲의 바람이 그 둘의 몸을 휘감았다. 공주는 문득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더 늦기 전에 되돌아 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아까 그 위험한 남자들이 다시 자신을 붙잡아 갈 것 같았기 때문에 마을로 다시 되돌아 가기는 싫었다. 두 사람이 숲으로 들어오는 것을 그 사람들이 보지 못했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그건 틀린 것 같았다.

“저 사람들, 어디까지 쫒아오려는 거지?”

“왜?”

“저쪽에서 아까 그 아저씨들이 오는 것 같아서.”

“공주님 귀 좋네. 난 안 들리는 것 같은데.”

숲으로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용한 바람 소리에 섞여서 사람들의 말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공주는 그들이 뒤따라 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제 숲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바스락 소리에 뒤섞여서, 발걸음과 박자가 맞지 않는 다른 소리들이 들렸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어두울 정도로 햇살을 가리고 있었고, 한낮의 온기에 적응되어 있던 두 사람은 이제 오히려 서늘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안돼!!!!”

“끄아아아아!!!!”

저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비명 소리를 들은 공주는 놀란 바람에 그 자리에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뭐… 뭐야?”

무서움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지만, 곧 자신에게는 아직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천천히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 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숲 속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나름 꽤 걸었다고 생각이 드는데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또한 불안했다.

“비명소리였어… 괴물이라도 있는 걸까? 누군가 잡아먹힌걸까?”

“그런 얘기 하지 마. 무섭잖아.”

살짝 떨리는 아레스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상상하며 공주는 다시 천천히 일어섰다.

“아… 휴우…”

하지만 다리가 아팠다. 하루종일 도망다니느라 뛰어다녔더니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가 아파왔다.

“흐응…”

분명 어제 밤까지만 하더라도 루카가 이야기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잠들었었다. 왜 오늘은 아무 예고도 없이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옆에 있는 얘는 누구지.

“흑흑…”

공주는 다시 주저앉아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지만, 아까 그 비명이 만약 괴물에게 잡아먹힌 사람이 지른 것이라면 소리를 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손으로 가리고 울었다.

“이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공주의 어깨를 툭 쳤다.

“꺄악!”

공주는 드디어 괴물이 자기 울음소리를 듣고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왔을 거라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이번에도 팔목을 붙들리면서 좌절되었다. 공주는 다시 한번 손에 쥐고 있던 후라이팬을 보지도 않고 휘둘렀다.

까앙!

“이런 이런, 위험하잖아.”

그 말에 공주는 눈을 뜨고 자신의 팔목을 붙들은 존재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일단 사람처럼은 생긴 것 같았다. 그 사람은 공주의 후라이팬을 자신의 손목에 있던 팔찌로 막아낸 상태였다.

깡그랑.

그리고 그 때 후라이팬이 휘어지면서 손잡이가 떨어졌다.

“어맛! 미안해!”

그제서야 공주는 후라이팬을 버리고 그에게 사과했다.

“그건 다시 안 휘두를거지?”

그가 공주의 팔목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공주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아까 자신을 뒤쫒아오던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환하게 빛나는 눈부신 피부를 아까 그 남자들에게 비교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죄를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야?”

“나는 레스톨, 이 숲에 살고 있어. 너희 인간들은 나를 엘프라고 부르지.”

“응? 레스톨?”

Melotopia 1-11

슬슬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두워 지기 전에 구출대 세사람은 성당으로 향했다. 검문소를 빠져나온 루카는 빠른 걸음으로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루카는 길바닥에 뿌려진 붉은 자국을 보았다.

“이건… 핏자국 같은데.”

루카는 손가락으로 굳어버린 자국을 문질렀다. 아주 완전히 굳지 않아서 약간 끈적거리는 느낌과, 검붉은 색을 띠는 액체는 그리 많지 않다.

“아저씨,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뭐요?”

루카는 옆에 가게에서 남은 상품을 정리하고 있던 상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아까 낮에 이 앞에서 싸움 같은게 있었습니까?”

“싸움? 아아, 그래. 그거 있었지. 그래서 이 앞에 곡물거래소 사장이 아주 화를 냈었어.”

“어떤 싸움이었죠?”

“여자애 하나가 거기 사장한테 아주 반말을 하는거야. 지가 공주라나 뭐랬다나. 하여튼, 사장이 아주 화가 나서 그 여자애를 저기로 집어 던졌거든.”

“네? 그 아이는 다쳤습니까?”

“아니, 몇바퀴 구르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그 다음에 갑자기 웬 남자들 여럿이 그 여자애를 붙잡으려고 달려들더라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붙잡혔나요?”

“아니지. 그 여자애가 갑자기 옆에 있던 후라이팬을 붙잡더니 정말 쾅! 하는 느낌으로, 알겠지? 그 남자 머리를 후려 친거야. 여기 피는 그 때 튄 것들이고.”

“그리고 어디로 갔죠?”

“모르겠어. 저쪽으로 달려가긴 했는데 나야 가게 봐야 하니까 그 다음은 못봤지.”

“감사합니다!”

루카가 보기에 머리를 그렇게 다쳤다면 분명히 치료를 받으러 성당으로 갔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단서를 찾아낸 듯 싶다.

성당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었다.

“헤엑…헤엑…”

성당의 정문에 도착한 루카는 시에나와 민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장, 이제 오시는군요.”

“오래 기다렸나?”

“아닙니다. 얼마 안 기다렸어요. 그보다 술집에서 들은 얘긴데요…”

“아니, 그보다는 일단 이 안으로 들어간다.”

“네?”

이야기를 하려는 민트를 제치면서 루카는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왕실에서 나왔다.”

“네에?”

왕실에서 나왔다는 말에 문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수녀는 루카가 내보인 왕실의 문장을 확인하더니 바로 고개를 숙이고 예를 취했다.

“일단 우리가 여기 왔다는 것을 알리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급한 일이다. 이유는 나중에 알려줄테니, 혹시 아까 낮에 머리를 다친 자가 찾아오지 않았는가?”

“네, 마침 그런 환자가 있었습니다.”

“여럿인가?”

“네, 머리를 다친 환자가 오늘따라 꽤 들어왔습니다.”

“그 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성당의 모든 문을 폐쇄한다. 내 허락 없이 아무도 빠져나가서는 안된다.”

“이 성당의 문은 이곳 뿐입니다. 봉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수녀는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경비병에게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도록 지시한 후 세 사람을 병실로 안내하였다.

Melotopia 1-10

작정 달리기 시작한 공주는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과, 점점 다가오는 마을의 끝을 보게 되었다.

“내가 잡힐줄 알고? 절대로!”

숨이 턱에 차오르고 있었지만, 여기서 잡히면 더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들고 있는 무기는 후라이팬 하나. 저쪽은 건장한 남자 둘이다. 그리고 점점 길의 끝도 공주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막다른 골목이다.

“헉..헉… 너, 이제 도망 못가니까 포기해라! 하아…하아…”

세사람 모두 지쳤지만, 남자 중 하나가 공주에게 말했다.

“싫어! 베~”

공주는 혀를 내밀며 거부한다는 뜻을 보였다.

“이게! 너 잡히면 보자!”

잠시 숨을 고른 두 남자가 공주에게 달려들었다. 공주는 다시 있는 힘껏 후라이팬을 휘둘렀다. 하지만 도망치느라 너무 힘들었는지 손에 힘이 풀리면서 후라이팬이 날아갔다.

“아앗!”

날아간 후라이팬은 앞에 있던 남자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깡!

그리고 뒤에서 같이 달려들던 남자의 안면에 명중했다.

“윽…”

후라이팬을 얼굴에 세로로 얻어맞은 남자는 고통을 못 이기고 쓰러졌고, 앞서서 달려들던 남자는 잠시 주춤했지만 자신이 맞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 순간, 뒤에서 다시 날아온 아까 그 후라이팬이 그의 뒤통수를 때렸고, 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제서야 흐릿하게 자기 뒤에 소년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공주님?”

“너? 음…너, 일단 이쪽으로 가자!”

두 소년 소녀의 재회는 나눌만한 추억은 없었고, 상황은 긴박했다.

“잡아라!”

두 사람이 무작정 뛰어서 골목을 벗어나자 마자 또다시 다른 두명이 공주를 발견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공주는 그 두사람을 피해서 다시 골목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일단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계속 달려가던 공주는 문득 길가의 집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을 알았다.

“숲이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선 두 사람에게 길거리는 너무 더웠다. 분명히 오전에는 학교 입학식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지금 왜 이 무더운 길거리를 뛰고 있는 것인지. 오후의 태양에 이성이 살짝 마비된 공주는 시원한 숲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면 저 나쁜 아저씨들이 자기를 찾기도 어려워질 것이고, 어쩌면 샘물이 있어서 목을 축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들어가자.”

그녀는 울창한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옆에 서 있던 아레스는 영문도 모르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숲으로 끌려갔다.

Melotopia 1-9

“저희가 누군지는 나중에 알려드리죠.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잖아요?”

민트가 그 아저씨의 팔에 조금 더 달라붙으며 물어봤다.

“아, 음…”

“누굴 보셨다고 한 것 같은데…”

“지가 공주라고 하는 미친년을 봤어.”

“어디서 보셨죠?”

“가게 앞에서 봤는데, 그건 왜…”

“오빠, 지금 왜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민트가 그 아저씨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줘 봐요.”

시에나가 그에게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러니까, 아까 낮에, 가게 앞에서 웬 꼬마애가 나한테 반말로 물어보더라고. 여기가 어디냐고. 그래서 웬 미친년인가 거지인가 싶어서 밖으로 내던졌지. 그랬는데, 걔가 갑자기 도망쳤어. 그러더니 남자들 여럿이 그 뒤를 쫒아가던데. 내가 본 건 여기까지야. 더는 몰라.”

“아, 그랬군요. 고마워요.”

더 이상 말이 나올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자기가 본 것을 본 대로 이야기 한 아저씨는 자기에게 말을 걸던 아가씨의 손목을 붙잡았고, 뒤이어 팔이 빠진듯한 아픔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덕분에 본인의 몸이 두바퀴 정도 굴러가고 있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한편, 검문소에 들른 루카는 검문소 병사들을 만나서 낮에 수상한 일이 없었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낮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요만한 여자애가 여기를 지나가지 않았는가?”

“여자애가 여기를 지나간 일은 없습니다. 기록에도 없고요. 아이들은 보호자가 없이는 혼자서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규정이라, 그런 아이가 있었다면 분명히 돌려보냈을 겁니다.”

“놓치거나,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 간 것도 없는가?”

“일단 여기 검문소를 지키던 병사들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는가? 막내 공주님께서 납치되셨다.”

“네에? 아니 그런!”

“아무튼, 공주님을 보지 못했다면 여기서 더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겠군. 자네들은 보다 철저히 짐을 수색하고, 의심스러운 자들이 있으면 일단 붙잡아 두도록. 특히, 열 두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있다면 반드시 붙잡아 둔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왕궁에서 파견나왔다는 이야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검문소 소장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아직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루카를 사무실 입구까지 배웅하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꼭 공주님을 찾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수고하게.”

Melotopia 1-8

역참에서 말을 바꾸고 다시 반나절을 달린 루카 일행은 지평선에 걸쳐지려고 하는 태양을 보며 서쪽 국경의 무역시장에 도착했다. 무역시장은 시장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이다. 높은 건물이 없는 대신에 넓은 땅에 시장 전체가 펼쳐져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 중에서 성당은 높은 첨탑으로 둘러싸인 건물이어서 시장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면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나누어서 찾아보자. 민트와 시에나는 술집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고. 나는 검문소에 들러서 알아보고 성당으로 갈테니, 조사가 끝나면 성당에서 보자.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해도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는 성당으로 오도록.”

“네, 대장님.”

말을 입구의 마방에 맡기고 입구에서 둘로 나누어진 구출대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민트와 시에나는 입구에서 가까이 있던 술집 <지친 거래자들의 쉼터>로 들어갔다.

“맥주 두잔이요”

두 사람은 바에 앉아서 바텐더에게 맥주를 주문했다.

“아저씨, 혹시 공주님에 관한 소문 들은거 없어요?”

민트가 바텐더에게 공주의 이야기를 물었다.

“글쎄, 요새 들은건 없는데? 본적도 없는 공주님의 이야기라니”

“민트, 방법이 틀렸어. 이렇게 물어봐야지”

시에나가 바텐더의 손을 붙잡으며 다시 물어보았다.

“오빠, 혹시 공주님에 관한거 알면 알려주세요~”

바텐더는 시에나의 부드러운 손이 자신의 손을 붙들자 살짝 놀랐다. 그리고 손을 놓았을 때, 자신의 손에 묵직한 무언가가 쥐어져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더 놀랐고, 손을 바 아래로 내려서 몰래 손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을 때 많이 놀랐다. 손에서 느껴진 것으로 예상한 것 보다 많은 돈이었다.

“뭐 이런걸 다… 하지만 정말 모르겠는걸.”

“그렇다면, 뭔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들은건 없나요?”

“음… 그러고보니, 아까 한낮에 곡물거래소 쪽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여긴 국경이라 그런 소동은 일상이거든. 이상한 일은 아니지.”

“곡물거래소요? 그게 어느쪽이죠?”

“여기서 아주 멀지는 않아. 가보고 싶으면 길은 알려줄 수 있지.”

그 때, 두 사람 옆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땀냄새를 풀풀 풍기며 와서 앉았다.

“여기, 맥주 한잔, 빨리”

바텐더에게 맥주를 재촉하며 자리에 앉은 남자는, 바텐더가 내놓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곁눈질로 민트의 몸을 훑었다.

탁!

“후아! 시원하다. 이봐, 내가 오늘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거품을 조금 남기고 맥주를 들이킨 그 남자는 맥주잔을 바에 거세게 내려놓으며 바텐더에게 자기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니 글쎄 아까 바빠 죽겠는데 쬐끄만 꼬맹이 하나가 나한테 반말을 하는거야? 나 원, 어느 집 자식인지. 살다 살다 그런 애는 또 처음 봤잖아. 누구 집에서 컸는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공주라데? 진짜 공주처럼 키웠나봐?”

이 말에 귀를 쫑긋 세운 민트와 시에나는 남자의 말이 끝나자 마자 양쪽에서 그의 팔짱을 끼우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 얘기 조금 더 자세히 해주시겠어요? 누굴 보셨다고요?”

“아니, 이건 뭐야?”

그는 갑자기 양 옆에서 다가온 두 여자에게 당황했지만, 양쪽 팔에 느껴지는 은근한 부드러움이 싫지는 않은지 두 사람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Melotopia 1-6

그 사이에

일단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공주는 곧바로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서 헤메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옷도 입학식 때 입은 예복이라 서민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국왕의 유람을 따라서 왕궁 밖으로 몇 번 구경 나왔던 것을 빼면 바깥에 나온 것이 처음이다. 즉, 있어서는 안되는 매우 어색한 장소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이 혼자 내던져진 상황이다.

“저기, 이봐, 물어볼게 있는데. 여기는 어디냐?”

“여긴 서측 무역시장이고 이 가게는 곡물 거래소이고, 그래서 넌 누군데 어른한테 반말이냐?”

“나는 공주 멜리나다. 사정상 여기에 오게 되었다.”

“너가 공주? 너가 공주면 난 국왕이다. 장사 방해하지 말고 저리 꺼져”

“무엄하다! 어디서 감히 국왕폐하를 사칭하느냐?”

“너야말로 어디서 감히 공주마마를 사칭하는거냐? 맞아야 꺼질거야? 빨랑 안꺼져?”

“난 진짜 공주라고!”

“이년이 미쳤구나?”

공주가 별 생각없이 말을 걸었던 아저씨가 공주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이… 이거 놔! 놓지 못하겠느냐!”

“이 아저씨가 착해서 그냥 보내주는거야. 빨리 꺼져!”

이 아저씨는 착했기 때문에 공주를 후드려 패지는 않았고, 단지 가게 문 밖의 길거리로 공주를 휙 내던졌다.

“으악!..”

두바퀴 정도 굴러서 거리에 나동그라진 공주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흑흑…”

“저기 뭐야! 쟤다! 잡아!”

갑자기 저편에서 아까 마차에서 봤던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본 공주는 여기서 곡물 거래소 아저씨와 더 싸우고 있거나 눈물을 질질 짜고 있어봐야 이 위기를 벗어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주는 일단 더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쫒아오는 사람들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으악!”

그러나,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공주는 다시 길 위로 넘어지며 굴렀다. 방금 흘린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길 가에 세워져 있던 수레를 보지 못하고 충돌했기 때문이다. 넘어지면서 부딪친 것도 아팠지만, 저 괴한들이 다시 덮쳐 올 것이란 생각에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크크 드디어 잡았다!”

결국 공주는 가장 먼저 달려온 남자에게 왼팔을 붙들리고야 말았다.

“이거 놔! 안놔? 앙!”

팔을 뿌리치려고 애를 썼지만, 어른 남자의 힘을 12살짜리 여자애가 이겨낼 수 있을리 없었다.

“이거 놓으라고!”

깡!

공주가 아직 붙들리지 않은 오른팔을 휘저어서 아무거나 손에 걸리는 것으로 그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크윽…!”

“놓으라고!”

깡! 깡!

공주가 휘두르고 있는 것은 후라이팬이었는데, 모서리로 맞으니 어린 아이의 힘이지만 제법 아프다.

“크으윽…”

하지만 결국 어린 아이에게 얻어맞은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한,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에 결국 머리에서 피를 뿜어내며 손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동료들이 접근한 상태. 공주는 그대로 손을 뿌려치고 시장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힌 길이었지만, 공주는 작은 몸집에 힘입어 쉽게 사람들 틈으로 끼어들 수 있었고, 납치범들은 사람들을 헤치고 가느라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

“저쪽으로! 너 저쪽!”

“네!”

납치범들은 패거리를 나누어 공주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Proudly powered by WordPress | Theme: Baskerville 2 by Anders Noren.

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