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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거 재기 #4 – 태양의 크기

달의 크기와 달까지 거리를 알아냈으면, 이제 그 다음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차례다. 비례식을 두번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이 복잡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실 비례식이나 도형의 닮음 같은 개념들은 중학교 때 다 배우는 것들이라 이게 어렵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더 쉽게 하려면 초등 수준으로 가야 할텐데, 그럼 자로 대서 재보는 수밖에 없고, 1억 5천만 킬로미터는 자로 재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지구 크기까지는 자로 쟀었다.)

우선, 천문학 공부를 간단히 해야 한다. 별까지 거리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천문학 공부이긴 하지만.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식과 월식 현상을 조사해야 한다. 일식(Solar eclipse)은 태양이
달에 가려지는 현상이다. 당연히(!) 낮에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밤에는 가려질 태양이 없으니까.) 반대로, 월식(Lunar
eclipse)는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이다. 물론 밤에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천만 다행으로, 인간을 위해서 그런건 아니었겠지만, 지구 주변에는 아주 적당한 크기를 가진 달이 아주 적당한 거리에서 아주 적당한 궤도로 돌고 있다. 여기서 아주 적당한 궤도란, 지구의 공전면과 달의 공전면이 거의 같은 평면에 있기 때문에 적당하다는 뜻이다.

일단 월식을 먼저 알아보자.



월식은 부분월식과 개기월식이 있다.

특히, 개기월식 때는 위와 같은 과정으로 달이 지구를 통과하게 되는데, 대충 지구 그림자의 크기는 달 크기의 2.5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B%94%EC%8B%9D

지구 그림자의 크기가 달 크기의 2.5배 정도 된다는 사실은 다음의 개략도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



from

http://eclipse.gsfc.nasa.gov/OH/OH2007.html

Eclipse map/figure/table/predictions courtesy of Fred Espenak,
NASA/Goddard Space Flight Center.

For more information on solar and lunar eclipses, see Fred
Espenak’s Eclipse Web Site:

sunearth.gsfc.nasa.gov/eclipse/eclipse.html

지구의 본그림자 안에 달이 대충 2개 반 정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지구의 그림자가 멀어질수록 작아지는데, 지구와 달 까지의 거리 정도로 멀어지면 저만큼으로 작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와 같은 그림을 그려보자. 우리는 B와 r과 C를 알고 있다. 그럼 초등학교와 중학교때 배운 간단한 비례식을 사용해서 R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수능에도 나왔을지도 모른다. 일단 삼각형의 닮음만을 생각한다면, 달이 있는 위치인 C의 오른쪽에 있는 꼭지점을 보자. 이 꼭지점을 기준으로 하면, 달이 지나간 지구의 그림자(C)가 이 꼭지점과 함께 삼각형을 만들 수 있고, 지구(B)의 지름을 한 변으로 해도 삼각형을 만들 수 있고, 태양(A)을 한 변으로 해도 삼각형을 만들 수 있다. 이 세개의 삼각형은 모두 닮음이다. (각 하나가 닮았고, 변 세개가 모두 평행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각 삼각형의 거리의 비율이 각 삼각형의 밑변(=각 천체의 지름) 비율과 같다는 뜻이다.

그리고 삼각형을 만들지 않더라도, 사다리꼴만 만들어도 비례식을 세울 수 있다. 이것도 일단은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간다. 이런게 궁금한 독자라면 직접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C:B=r:(r+R)이 된다. 여기서 C와 B와 r을 알고 있으니, R을 구할 수 있다. 이 비례식으로부터 Br=Cr+CR이 되므로, 우리가 원하는 R은 (B-C)r/C가 된다.

이렇게 하면 태양의 크기를 대충 알아낼 수 있다.

그림자

그래서, 우선 그림자에 대해 알아보자. 그림자(shadow)란 다들 알다시피 빛이 물체에 가로막혀서 그 뒤에 나타나는 어두운 부분이다. 그런데 그림자를 자세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큰거 재기 #3 – 달의 크기

달까지 거리를 알아냈으면 달의 크기를 재는 방법은 아주 쉽다.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으면 간단히 알아낼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도형의 닮음과 비례식의 성질을 이용하면, 지구에서 달을 바라보고 서서 오백원짜리 하나를 들고 있으면 된다. 오백원짜리로 달을 가리고 점점 멀리 떨어트리면서 달이 오백원짜리와 딱 같은 크기로 보이는 그 시점에 멈추고 눈과 오백원짜리 사이의 거리 a를 잰다. 그리고 오백원짜리의 크기 r을 잰다. b는 알고 있다. 따라서 R을 구하면 되는데, 다음과 같은 비례식이 성립한다.


http://www.topianet.co.kr/topia/6/6s/6s040002.htm

안쪽 것들끼리 곱한 것과 바깥쪽 것들끼리 곱한 것이 같다는 비례식의 성질을 이용해서, 다음과 같은 공식을 얻어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달의 크기는 대략 3476킬로미터 정도 된다.

큰거 재기 #2 – 달까지의 거리

지구의 반지름을 알았으면 그 다음은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볼 차례다.

달까지 거리는 현대에 와서는 아주 간단히 알아볼 수 있는데, 레이저를 달에 쏘아서 되돌아오는 시간을 재면 된다.



속력 = 거리 / 시간

우리는 빛의 속력이 299,792,458m/s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시간만 정확히 재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Lunar_Laser_Ranging_experiment



모서리거울의 원리.



들어온 곳으로 빛을 되돌려 보내는 거울. Retro-reflector.

http://en.wikipedia.org/wiki/Lunar_Laser_Ranging_experiment Copyright@NASA

예전에 미국 사람들이 달에 여행갔을 때 두고온 모서리거울이 있는데, 이 거울에 레이저를 쏘면 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므로 꽤 강력한 레이저와 측정기만 있으면 누구나 달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 시간은 매우 정확하게 잴 수 있기 때문에 달까지의 거리를 매우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일단 달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인간이 달에 다녀오기 전에 달까지의 거리를 재는 방법은 시차 측정이었다. 시차(示差)는 서로 다른 두 위치에서 하나의 물체를 바라보면, 물체의 위치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이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손가락을 눈 앞에 세우고 바라보면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배경이 두개로 보이든가 손가락이 두개로 보이든가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시차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달은 그 뒤에 아주 많은 별들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따라서, 동시에 달을 바라보더라도 위치가 다르면 그 뒤에 보이는 별들의 위치가 달라 보이는데 이 때의 각도를 알아내면 달까지 거리를 알 수 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3s2175b001



직접 찍은 달 사진.

땅에서 봤을 때 어떤 천체를 올려다 본 각도를 그 천체의 고도라고 한다. 이 각도를 a라고 하자.



그럼, 지구에서 달을 바라보면, 위와 같은 사각형을 그릴 수 있다. 지평면에 대해서 올려다 본 각도를 잰 것이므로 a는 지평면과 달 사이의 각도가 된다. 그리고, 지평면과 지구 중심에서 관찰자 위치까지는 90도의 각도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지구 저편의 어딘가에서 같은 관찰을 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잰 달의 고도를 b라고 하자. 그럼 두 관찰 지점 사이의 각도를 c라고 할 수 있다. c는 지구 반지름을 알고 있으므로, a지점과 b지점 사이의 거리를 재면 호와 원주각 사이의 관계로부터 각도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럼, a, b, c, d는 사각형을 이루므로 a+90도+b+90도+c+d = 360도가 되어야 한다. 간단한 산수를 통해서, d = 180-(a+b+c) 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각도 d를 알아냈으면 이제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를 알아낼 수 있는데, 고등학교 때 배운 간단한(!) 삼각함수 공식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다.



먼저, 두 지점 사이의 거리 H를 알아내야 한다. 간단히 제2코사인 공식을 사용하면 된다. 제2코사인 공식이 기억나지 않아도 별로 상관은 없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되니까 모르고 사는 것이고, 아는 사람은 아니까 된 것이고.

중요한건, 그렇게 해서 H를 구한 다음에, 다시 제2코사인 공식을 사용해서 D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D는 d에서 a로 간 것과 c로 간 것이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어차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므로 둘이 같다고 가정해도 된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각도a와 각도b가 같아지는 지점에서 이 관측을 수행하면 된다. 어쨌든 삼각형 adb는 이등변삼각형이라고 치자.

이렇게 된다. 그럼 우리가 필요한건 D일 뿐 H가 아니므로, 위의 공식과 합치고, 관찰한 a와 b를 이용해서 한번에 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달이 얼마나 높이 떴나 관찰하는 것 만으로 달이 얼마나 멀리 있나 알아낼 수 있다.

사람들이 여러번 나의 이런저런 행동습관에 대해 걱정해주는 내용 중 하나는 한숨쉬는 것이랑 어깨 움츠리고 다니는 것이다. 한숨쉬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고, 어깨 움츠리고 다니면 안좋은일 있냐고 물어본다. 난 단지 코막힘이 심해서 심호흡하는 것과 추워서 움츠리고 다니는 것 뿐인데도.

한숨쉬면 뭐 복 나간다나…

그러나 한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 숨막혀 죽을 것 같으니, 이쪽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박사님이, 내가 카이스트에 간다고 하니까, 카이스트에 자살한 학생들 많으니 조심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살을 뭘 어떻게 조심하나.

두 부류의 인간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과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


행복한 사람들은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으며


,


그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또 굉장한 노력을 한다


.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또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역시 노력을 한다


.


이렇게


,


행복을 위해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행복하면 참 좋기 때문이다


.


사실 이 세상에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러나


,


행복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


불행해지면





이건 꿈일거야





라며 빨리 꿈에서 깨고 싶어하지만 이것은 이미 현실이다


.


차라리 행복한 꿈속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바로 이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다


.


어떻게 해도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고


,


노력한다고 해도 힘들다


.


불행은


,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


그것은 이미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억울하겠지만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노력은 그렇게 큰 환영을 받지 못한다


.


어떻게든 해서 이 불행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면 더욱 더 깊은 불행에 빠질 뿐이다


.


노력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


.


그것을 믿자


.


불행하게 되고 싶어서 불행해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


그러나 불행해 졌다


.


자기 탓일 수도 있고


,


어쩌면 다른 사람의 탓일 수도 있다


.


그러나 남의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사람이 대신 책임져 줄 때까지 마냥 주저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불행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


나의 불행을 바꿀 사람은 바로 나밖에 없다


.


나의 인생을


,


나의 한번뿐인 인생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무엇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힘이고 나 자신의 노력이다


.


인생 속에는


,


일생동안 단 한번뿐인 엄청나게 큰 행운이 있다


.


아직 않았을지도


,


또는 벌써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


언제 올지도





모른다


”.


미래는 우리에게 있어서 모르는 것 투성이인 미지의 세계이다


.


미래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것이다


.


불운을 행운으로


,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은 어쩌면 평생동안 노력해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그렇지만


,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


불가능하지만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희망에 기대고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죽는 그날


,


즉 심장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살아있어야 한다


.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이 아까우니까


,


기껏 태어났는데 불행해지면 억울하니까


.


다른 사람 때문에 불행해 졌다고 그래서 책임져 줄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


원인이 무엇이든


,


어떤 이유에서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고 아이처럼 울어보기도 하지만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


나 자신이 변해서 그것을 시작으로 이 세상을 바꿔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


다른 누가 사는것도 아닌


. “








의 삶


.


아직도 남아있는 그 수많은 꿈들을 버리기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깝다


.


지금까지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


사람들은 모여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다


.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


물론


,


사람들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나 하나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의 불행까지 도와줄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


남을 도와주는 것도 결국은 여유가 있어야 도울 수 있는것이다


.

하고싶었던 이야기

*왜 적었는지 모르겠는 글 중의 하나.




제가 하고싶은 말은 별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


다만


,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에게


,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조금은 두서없이


,


그렇지만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을 뿐입니다


.


결코 풀수없는 방정식을 늘어놓고 낙제 시키는 걸 자부하는 사회


.


지금의 세상은 의문투성이의 비를 내리게 하고선


,


우산도 받쳐주지 않죠


.


병을 주고서 약은 주지 않는


,


이런 세상 속에 묻혀있으면


,


몽땅 어디론가 휩쓸려 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


이렇게 흐린 나날속에서 도대체 무얼 찾아 꿈을 그리라고 하는건지


,


참 안타깝습니다


.


다들 검은 캔버스를 눈앞에 두고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겠죠


.


그러나


,


이대로는 숨쉬기만 할 뿐인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


그래서 서두르는 마음에


,


발을 잡혀 넘어져도


,


혼자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지만


,


그 속에서 내 존재를 외치고 싶어지죠


.


그래서 결국은 상처입는 것도


,


더럽혀지는 것도


,


피할 수 없습니다


.


이런 어둠을 빠져나가서


,


밝은 곳으로 가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


당신이 원하는 미래


,


여기 서서 주저주저 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


자존심이라든가 장래를 생각했다면 도망치겠지만


,


오늘에 지고 싶지않다고 중얼거렸던 당신이 차라리 좋아요


.


세상은 넓고


,


할 일은 많고


,


인생은 짧습니다


.


하고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죽기 직전에 아마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그때 후회해 봤자 아무 쓸모 없습니다


.


죽기 전에


,


적어도 죽을 때까지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가장 즐겁게


,


가장 후회 없이


,


가장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삶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삶입니다


.


다른 사람을 위해서 평생을 봉사하면서 사는 것도 결국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봉사입니다


.


그렇게 봉사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죠


.


어떤 인격을 갖고 있든


,


사람은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할 때 가장 기쁨을 느낍니다


.


돈이 많으면 기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하고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돈이 제공해 준다는 것이겠죠


.


돈이 많아도 아무런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면 누가 돈을 가지려 하겠습니까


?


돈 역시 자기만족의 도구일 뿐이죠


.


인생 속에는


,


일생동안 단 한번뿐인 엄청나게 큰 행운이 있습니다


.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


또는 벌써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


언제 올지도





모릅니다


”.


미래는 우리에게 있어서 모르는 것 투성이인 미지의 세계


.


미래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


불운을 행운으로


,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은 어쩌면 평생동안 노력해도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겠죠


.


불가능하지만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겠죠


.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희망에 기대고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


죽는 그날


,


심장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살아있어야 해요


.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이 아까우니까


,


기껏 태어났는데 불행해지면 억울하니까요


.


다른 사람 때문에 불행해 졌다고 그래서 누군가 책임져 줄 때까지 기다려서는 그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아요


.


원인이 무엇이든


,


어떤 이유에서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거니까


,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고 아이처럼 울어보기도 하지만 변하는 건 결국 없죠


.


나 자신이 변해서 그것을 시작으로 이 세상을 바꿔 버려야 해요


.


다른 누가 사는 것도 아닌


. “








의 삶


.


아직도 남아있는 그 수많은 꿈들을 버리기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


고독하다고 느낄 때가 있겠죠


.


삶을 살다보면 세상에 나 혼자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겠죠


.


그 외로움은 다른 상처나 아픔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만


,


그 고독을 이겨내면 그 뒤에 실은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


믿을 수 없겠지만


,


누군가 있습니다


.


가족일 수도 있고


,


친구일 수도 있고


,


또 다른 누구일 수도 있습니다


.


고독의 끝에는 반드시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아무도 나를 몰라준다고 생각해도


60


억의 사람 중에는 반드시 나와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


아직 만나지 못할 뿐


,


분명 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


사람들은 모여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혼자서 살아가고 있어요


.


다들 알다시피


,


다른 사람은 절대로 나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


나는 다른 사람의 진심을 절대로 알지 못해요


.


다만


,


대충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그 얼굴 속에 가려진 진실된 모습은 어떤지 알 수 없죠


.


이런 사회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





입니다


.


내가 믿고 있는 상대방에게


,


나는





이런 마음





을 갖고 있다고 믿게 한다면 상대방이 나를 믿게 되고 우리 둘은 친한 친구가 됩니다


.


물론


,


그 마음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


적어도 믿고 있는 동안은 친한 친구가 됩니다


.


세상을 사는건 정말 힘들지만


,


그래도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친구가 한두명 정도 있다면 가끔은 기대서 쉴 수도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게 조금은 덜 힘들게 됩니다


.


친구를 사귑시다


.


친구가 없다고 해도


,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


!


쓰러질 것 같은


,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더라도 혼자서 일어서서 다시 앞으로 나갑시다


.


겨우


100



년뿐인 삶

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낸다면 당신 자신이 굉장히 비참해지지 않나요


?


죽고싶은 때가 있더라도


,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끝내는 문제가 해결될텐데 여기서 포기해 버리고 말 건가요


?


정말로


,


겨우


100


년입니다


.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더라도


,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


그래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


이렇게 말한다면 곤란하겠지만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있어야 합니다


.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


죽어서 행복해 진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므로 죽어서 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


살아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거예요


.


아직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미래를 향해 열심히 추구해야 할 것이고


,


꿈도 희망도 없이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가장 재미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


그렇게만 한다면


,


아마도 죽을 때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왔으면


,


절대로 후회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거든요


.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


그 길을 선택하세요


.


그리고 일단 선택했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마십시오


.


후회하면 그 순간 당신은 불행해 집니다


.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더라도 그 나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을 생각해야지 후회만 하고 주저앉아 있다가는 상황은 더 악화되어갈 뿐입니다


.


더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서고


,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


포기하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있어야 해요


.


갖추지 못했다면 지금 결심하세요


.


이 글을 읽는 바로 지금 결심하세요


.


그러면


,


아마


100


년뿐인 인생에서 하고싶은 일을 하나씩 해 가면서 후회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 겁니다


.


그리고


,


동시에 행복해집니다


.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


사람의 삶은 깊은 수렁 속에 빠지기도 하고 가끔은 행복하기도 하다면


,


이 세상은 그저 살만합니다


.


만일


,


항상 고난만 계속된다면 그 고난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되고


,


오히려 고난이 행복보다 더 즐거운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


반대로


,


항상 행복하다면 그 행복에 익숙해져서 그 행복이 행복인줄을 모르고 행복하지 않게 되겠죠


.


이것은 마치 마약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어서 행복만 계속되면 더 큰 행복을 찾게 되고


,


그 행복이 끊어지면 금단증상이 나타나서 이 세상이 곧 끝날 것처럼 좌절해 버리고


,


작은 고난도 이기지 못 할 만큼 나약해 지기도 합니다


.


그러므로


,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은


,


당신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당신 스스로를 더 강하게 해서 더 큰 고난이라도 헤쳐나갈 용기와 능력을 줍니다


.


그리고


,


사실


,


이제껏 이겨낸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오더라도


,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어차피 살아있을 거라면


,


죽을 생각을 했던 바로 그 각오로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아요


.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


,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


,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내면서 더욱 강해지고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죠


.


당신은 지금까지 누군가에 조종당하고 있었겠죠


.


인생따윈 꿈도 희망도 없고


,


그런 지금의 생활에 만족합니까


? ‘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바꿀수있다





는 그런 드라마 같은 얘기는 정말 훌륭해요


.


그렇지만 이제는 말세처럼 여겨지는 매일매일에 대비해 슬슬 준비를 시작하는 건 어떤가요


?


쓸모없는 자존심


,


녹슬어버린 상식은 모두 벗어 던지고 당신을 위한 준비를


.


온 세상의 인기인이 되고싶고


,


빛나는 미래도 갖고싶고


,


정말 모든 꿈을 다 이뤄 버리고 싶다면



,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겁니다


.


더 미루다가는 그때는 늦습니다


.


지금 당장 주눅들어있는 자신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신 있는











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


닫힌 마음을 열고


,


서로 뜨거운 정열로 의지를 불태우며


,


어린시절에 꿈꿔온 나의 미래를 하나씩 이뤄가는 겁니다


.


후회하는건 절대 싫으니까


,


포기해서도 안되고 방해하게 할 수 없습니다


.


나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뭐든지 할거니까요


.


그러나


,


조금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기분만 들떠서


,


하고싶다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살다보면 그때는 꿈이고 뭐고 다 포기해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자유의 의미를 착각하지 말아요



.



혼란스러운 지금의 이 상황


,


꿈을 잡고 싶다면 지금 당장 전력을 다해야 해요


.


기회는 한눈팔고 있으면 도망쳐 버린답니다


.


약간의 눈물을 번쩍이는 용기로 바꾸는


,


그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언젠가는 기적을 부를 거예요


.


당신만의 꿈


,


당신만의 미래


,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


용기있는 사람이 기회를 잡습니다


.


단 한번뿐인 기회를 용기가 없어서 포기해 버릴 겁니까


?


좋은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


,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


용감하게 도전해 보십시오


.


성공하고 싶다면


,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져야 해요


.


라이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까지의 나 자신


.


스스로가 결정한 한계를 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아요


.


상처입는걸 두려워 하지 맙시다


.


상처가 다 낫고 나면


,


더욱 강해진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상처를 입을 때마다 강해지니까요


.


상처입었을 때야말로


,


스스로가 싫어질 때야말로


분명 사람은 내일을 발견하게 되요


.


너무 힘들다면


,


때로는 멈춰서서 쉬는것도 나쁘지 않죠


.


다시 걸어나갈수 있는 그 날까지 쉬세요


.


인생의 주인공은 어차피 나 자신


.


강한 모습으로


,


영화도 그냥 단순한 해피엔딩은 재미없다는거 알죠


?


때로는 울고


,


상처입고


,


또 넘어지더라도


,


다시 일어서서 달려나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 겁니다


.


기도하세요


,


말은 모습을 바꾸는 법입니다


.


달려나가세요


,


믿고 있는 이 길을 바꾸지 말고서


.


그리고 붙잡으세요


,


당신이 원하는 그 꿈을


,


쓸모없는 자존심 같은건 저 멀리 던져버리고


,


눈앞의 그 꿈을


,


생생한 그 꿈을 붙잡는 거예요


.


행복의 모습은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달라요


.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


그것이 당신에게도 과연 행복할까요


?


다른 사람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


지금 말하는 저의 말에도 현혹되지 말고


,


당신만의 행복을 찾아서 길을 떠나십시오


.


모처럼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


하고싶은 일


,


즐거운 일을 해야겠죠


?


다음에 돌아올 생애


,


내세 같은걸 기대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현실인 겁니다


.


혹시 모르죠


.




울분을 삭이며 걷어찬 돌맹이가 튀어서 되돌아올땐 다이아몬드가 될수도 있어요


.


당장 이룰수 있는 꿈따윈 꿈이 아니예요


.


하지만 그 꿈이 분명 이뤄질거라 믿고있어요


.


좌절하지 않는 당신의 모습이 참 좋아요


.


사람은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되죠


.


지금 만난 건 우연같지만 우연이 아니니까요


.


당신이 강해지고 싶다면


,


상냥해지고 싶다면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


그리고 다른 사람이 다정하게 대해주길 원한다면 좀 더 자신부터 남을 사랑하면 되요


.


쉬운 일이죠


.


그렇지만 또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


당신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


,


아마 어려운 일일 겁니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


많은 이유와


,


많은 추억 때문에 먼길을 돌아왔지만


,


그 무엇도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후회하지는 마세요


.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에 왔잖아요


?


나의 선택을 믿을 수 있다면 웃을수 있는 날이 올테니까


,


후회하지는 마세요


.


끝으로


,


심장이 멈출때까진 힘빠졌다는 말을 하면 안돼요


!






색칠한 부분들은 노래 가사에서 따온 부분이다. 이래놓고 보니 꽤 많구나. 옛날엔 남의 표현을 빌어오지 않으면 나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나보다.

대체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노래를 가져온 것 같은데, 원전을 찾으려고 하니 10여곡 정도가 되어서 포기.

한국인의 흑백차별

*왜 썼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글.



한국 사람들이 백인에게 호의적인 이유는 역사적인 이유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 6.25


사변 이후 황폐해진 한국에게 식량을 지원해 주고 그 이후로도 엄청난 원조를 해 준 국가의 주 인종이기 때문이다


.


국가 발전 과정에서 서양의 여러 가지 문물들을 받아들이며 당시의 한국의 제품보다 훨씬 좋은 서양의 제품을 보게 되었고 그런 제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서양의 백인들을 우월한 존재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때 받아들여진 감각이 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





,


황인종인 한국 사람에 비해서 더 하얀 색의 피부를 가진 백인들을 보면 그에 비해 한국 사람은 좀 더 지저분해 보였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백인들은 깨끗하다는 인상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


그리고 주로 백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양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


그들은 흑인에 비해 높은 수준의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이런 내용을 접하는 한국 사람들은 그 뒷면에 숨어있는 인종차별과 노예제도의 희생자인 흑인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백인들이 누리고 있는 멋진 문화만을 바탕으로 우리도 그렇게 그런 문화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백인들을 좋게 생각하고 백인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갖게 된 것이다


.


한국 사람들이 흑인이나 동남아 지역 출신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후진국 출신이라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


물론 그들이 후진국 출신일 수도 있고 반대로 선진국 출신일 수도 있다


.


그러나 흑인들의 경우에는 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이 많지만


,


학교와 방송에서는 흑인들이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미개한 사람들인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





,


동남아 지역은 한국에 비해서 후진국이며 아직도 개발이 많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낮은 지역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


그리고 그런 오지인 곳에서 온 사람들은 당연히 한국인보다 미개한 사람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 지역 출신의 사람들은 한국인에 비하여 피부 색깔이 짙은 색이다


.


이런 색깔의 피부색은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정상적인 세면을 하지 못한 경우에 나타나는 색이어서 더욱 경멸하는 감정을 심하게 갖게 된다


.


한국사람이 스스로도 유색인종이면서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


백인도 아니면서 백인 우월주의와 그에 의해 비롯된 열등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


백인은 백인일 뿐 그들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


한국인은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으며 백인을 경배할 필요도 없다


.


그들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 중 장점이 있으면 배우고 단점이 있으면 안 배우면 그뿐


,


다른 인종을 배척한 채로 그들에게 특별히 잘해준다거나 해서 좋을 이유가 없다


.


마찬가지로


,


흑인과 동남아 출신 사람들에게도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그들에게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배우지 않으면 된다


.


우리 민족 역시 그들보다 나을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


.


백인 입장에서 보자면 황인이든 흑인이든 똑같은 유색인종이고


,


흑인 입장에서 보면 황인이든 백인이든 싫어하는 인종들이다


.


그러므로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피부 색깔에 영향을 받지 말고


,


어떤 피부색을 갖고 있던지간에 서로를 알려고 노력하며 백인에 대한 환상과 흑인에 대한 선입견


,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모두 똑같은 인간으로써 대우하며 공존하면 그들과 우리들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

과학의 날 글쓰기


2000년에 썼었던 과학의 날 글쓰기.


1.


과학은 못하는 것이 없다


.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고


,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편리하게 해 주었다


.


심지어는


,


전혀 손댈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인간에 마음에 관하여서도 과학은 그 손을 대고 있다


.


우울증 치료제와 같은 정신에 작용하는 약이 등장하였으니 머지않아 인간의 감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약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


아니


,


이미 기분이 좋아지는 약은





마약





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


아무튼


,


이렇게 볼 때 과학은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으며 인간을 최상의 존재로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하였다


.


그러나


,


이러한 과학이 기술로 변하고 다시 이 기술이 공공복리가 아닌 사리


(


私利


)


를 추구하는데 악용된다면 과학은 인간을





인간이 최상의 존재로서 최상의 존재인 인간을 해치는





최악의 존재로 끌어내리게 된다


. ‘


과학





은 인격이 없기 때문에 오직 과학이라는 것만을 두고 본다면 책임을 따질 수 없다


.


그런데 이것을 개발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쁘게도 될 수 있고 좋게도 될 수 있는 것이다


.


앞으로 과학의 힘은 계속해서 강력해질 것이다


.


이제까지 계속 그렇게 되어 왔고


,


과학이 오히려 퇴보한 일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에 앞으로도 과학이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그러나 발전해 나가는 과학 만큼 인간의 도덕수준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


그때는 원자폭탄 때의 수십만명의 수준이 아닌 인류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이런 관점에 대해서 좋은 예가 하나 있다


. ‘


라엘리안





이라는 일종의 종교인데


,


인류 외계인 창조설을 주장하는 집단이다


.


이들은 현재의 인류보다


2





5


천년이나 앞선 외계 문명이 인류를 창조하고


,


이제 다시 인류에게 돌아와 그들의 앞선 문명을 전수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


다만


,


그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인간들이 아직





우매하여





서 그들의 진보된 과학을 받아들일 경우 그것을 이용하여 발전을 계속해 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투다가 공멸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아직 전수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들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것은 어린아이에게 핵폭탄 발사 스위치를 넘겨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


이들의 주장은 곧


,


도덕이 완전히 바로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과학이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다


.


이제


,


앞으로 과학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


그러나 그에 걸맞는 도덕수준이 발달하지 못하고 과학을 개발


,


이용하는 자들이 공익을 위해 과학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과학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


.


인간이 인간을 위해 발전시켜온 과학이 오히려 인간을 멸망케 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












2.


생명공학의 발전에 의해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


그리고 이제 개발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인간을 복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


내가 마음만 먹으면


,


그리고 세포 몇 개만 제공하면 나와 똑같이 생긴 인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


모두 똑같은 유전형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복제





들 사이에서는 장기이식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그런데


,


이러한 인간복제라는 기술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더욱 잘 치료할 수 있다는 의료적인 면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


그러나


,


생명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


우선


,


가장 큰 문제이면서 사람들이 곧잘 오해하는 개념이 있다


.





,


복제를 하면 세포를 제공한 것도











이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복제





들도











라는 것이다


.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


복제된 인간은 절대로











일 수는 없다


.


왜냐하면


,


우리는 그 복제된 인간들을 나라고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는


,


손끝에서 발 끝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신경이 퍼져 있으며 이 신경에 의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신체 부위에 있는 그 감각들을 느낄 수 있다


.


그러나


, ‘


복제





에서는 그런 것을 움직일 수 없다


.


아무리 나의 복제라고는 하지만


,


내가 그 복제들을 나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


불가능하다


.


신경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것은 결코











로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





,


나는











의 생각을 알 수 있지만





복제





의 생각은 절대로 알 수 없다


.





,


아무리 유전자적으로 똑같은 형질을 갖고 겉모습도 완벽하게 똑같다 하더라도 복제된 것은





나의 모습





일 뿐





나의 영혼





은 아닌 것이다


.


그리고 복제인간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또한 문제가 있다


.


체세포에서 핵을 꺼내서 수정란에 이식하는 과정은 말로 쓰자면 매우 간단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은 매우 불안정한 작업이다


.


그래서 동물의 경우는 한 마리의 정상적인 복제가 태어나기 위해서 그 전에 무수히 많은 기형이 일어났다


.


만일


,


이대로 인간을 복제하려 한다면 한 명의 정상적인 복제인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형인간들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


나의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개체이므로 그 복제인간들 역시 하나하나가 생명을 갖고 있다


.


게다가 인간이다


!


중간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형인간들을 어떻게





처리





해야 할 것인가


?


아무리 기형이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그들을 죽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인





이다


.


아무튼


,


이 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을텐데


,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간복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


그러나


,


아무리 똑같은 인간을 찍어낸다 하더라도 그 머릿속에 들어가게 되는 생각들은 모두 다른 것들이다


.


그리고 결국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인간들이 되는 것이다


.


인간복제는 이렇듯 윤리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


다만


,


미래에는 이러한 기술들을 더욱 발전시켜서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