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학술

자동차를 타고…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1021110654§ion=01

기름값이 5800만원이 나오기 위해서 몇km를 주행해야 하는가.

1L에 2000원이라 가정하면 58000000/2000 = 29000L

연비를 대략 10km/L라고 하정하면 29000×10 = 290000km

대충 반올림 해서 2년간 30만킬로미터를 달렸다.

많이 깎아줘도 1년간 10만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랬다는 얘기다.

난방비와 냉방비


http://media.daum.net/society/environment/view.html?cateid=100002&newsid=20110722205020360&p=hani


여름철 권장온도는 26도이다.


http://news.kbs.co.kr/forecast/2011/05/30/2299138.html


여름철 낮 최대기온은 30도 안팍이라고 한다. 더울때는 40도 근처까지 갔던 것 같다.


http://www.enet.or.kr/info03


겨울철 권장온도는 18도이다.

겨울에도 대체로 영하-5도까지는 내려가는 것 같다.

여름철의 권장온도와 최대기온은 약 10도~14도 차이 정도이고, 겨울철의 권장온도와 최대기온은 18도~23도 차이 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렇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여름철에 가장 온도차이가 많이 나는 시간에 냉방을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겨울철에 가장 온도차이가 많이 나는 시간에 난방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중에서 어느쪽이 더 많이 필요할까?

필요한 적당한 수치들은 적당히 가정하자.

물리학회

부산에 와서 물리학회에 참가하였다. 늦게 오는 바람에 뭐가 뭔지도 모르고 몇개의 세미나를 들었다.

1. 물리학이 어려워요 ㅜ_ㅜ 세션

유명하신 정하웅 교수님의 세션이었다. 물리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세션이었다.

“물리학 절대 어렵지 않아요~”

알고보면 유명한 “과학자”는 대체로 “물리학자”였다는. ㅋㅋ

2.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틀렸는가? 세션

최근 CNGS실험에서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관찰하였다는 것 때문에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세션이었다. 일단은 보수적으로 아인슈타인이 틀렸다고 결론짓는 것은 아직 이르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달려갔다면 물리학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3. 그래핀에서의 스핀과 유사스핀 세션

그래핀은 최근에 발견된 탄소 단일층 구조물인데, 여러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내부적 자유도에 의해 생기는 양자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리학의 형태가 고에너지 입자물리학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디랙 방정식을 따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를 위해 고체물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입자물리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고체물리학자들보다 입자물리학자들이 좀 더 흥미로운 고찰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아무튼 흥미로운 녀석이다.

들은게 저거 세개 뿐이라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들이었고, 앞으로 공부하는 즐거움이 더 할 것 같다.

트위터와 여론조작

트위터를 이용한 여론조작은 어렵다.

가령, 어떤 진술 A가 사실이라고 해 보자. “진술 A는 사실이 아니다”(=진술B)라는 허위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인지하도록 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트윗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일단 진술 B를 올린 본인(C)은 그 트윗을 보는데 문제가 없다. 이 진술B가 트위터 세계에 퍼지려면 C를 많은 사람들이 팔로우 해야 한다. 즉, C는 평소에 팔로워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자, 그럼 진술 B가 C를 떠나서 어디로 갈까? C의 팔로워들이 리트윗을 하면 퍼져나갈 것이다.

그런데 진술B를 보고서 A를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진술A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C의 팔로워를 팔로우 해야 한다. 그러나 트위터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만 골라서 팔로우 할 수 있다. 애초에 진술A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연결망은 진술B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연결관계가 깊지 못하다.

즉, 진술B를 받아들인 사람들과 진술A를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는 연결이 없기 때문에, 트윗을 교환한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규모에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게 된다. 진술B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중심에 C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진술 A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중심에 D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D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D가 그렇게 쉽게 C의 의견을 받아들일까? 서로간에 팔로우 할 수는 있겠으나,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어떤 합의가 생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트위터의 소통 방식은 엄밀히 말하면 단방향이다. 양방향으로 연결된 관계는 존재할 수 있지만, 각각의 연결 자체는 단방향 연결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합의 없이 연결을 끊을 수 있고, 나머지 한쪽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진술B를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C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진술A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자신의 팔로워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진술 A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D를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의 성향은 D와 같다는 것이다. 그럼 C가 이 사람들을 팔로워로 만들기 위해서는 D와 같아져야 한다. 그런데 D는 C와 반대 성향이고, C는 D처럼 행동할 수 없다. 따라서 진술A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D만 팔로우 하고 C는 팔로우 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C가 아무리 B를 주장해 봐야, 이미 B를 받아들인 사람들만 C의 의견에 공감할 것이고 그 수는 더이상 늘지 않게 된다.

트위터는 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으면서, 남의 의견을 골라들을 수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의견만 골라듣게 되면, 완전한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점점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여론조작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일단 신뢰받는 트윗을 많이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순간, 그는 허위사실을 올리기가 매우 부담스러운 트위터 사용자가 되어 있다. 반대로, 부담없이 허위사실만을 올릴 수 있는 트위터 사용자라면, 여론에 대한 영향력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를 팔로우 하는 사람들은 그의 사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또는 귀가 매우 얇아서 어떤 의견이든지 – 모순된 의견이라도 – 들을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사람일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은 진지한 고민 없이 짧은 단상에 의해 쓴 것이다. 아마 틀린 내용일 것이다.

유령 입자

21g중에 다는 아니라도 일부는 혈류가 멈춰서 발생한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 죽는다의 정의가 뭔가? 숨쉬면 질량은 계속 변하지 않나?

최근 snowall의 가을-겨울 콜렉션에 하나를 추가했다. 자켓인데, 옷 치수100와 105사이에서 고민하다가, 100을 입어봤더니 팔 길이는 딱 맞는데 어깨가 너무 좁아서 105사이즈로 샀는데,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입으면 멍청해 보인다고 옷을 작게 입으라고 한다. 옷은 편하게 입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나를 멍청하게 본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의 99.9%는 날 멍청하게 보든 똑똑하게 보든 상관 없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0.1%는 나랑 친한 사람들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내가 그린 망치 그림

어른들은 이 그림을 망치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봐도 망치같긴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리는데 2시간인가 걸렸다. 문제는, 저건 굉장히 대충 그린 거고, 한 100배 정도는 더 정밀하게 그려야 한다는 점. 100배 빠른 컴퓨터를 써야겠다.

스티브 잡스

아주 유명한 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바란다.

전 세계에 여러모로 큰 영향을 준 건 사실인데, 그렇게 큰 영향을 준 것이 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했을까?

나는 그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인생에서는 어떤 선택이라도 올바를 수 있다. 물론 틀릴 수도 있다.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증명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명언따위는 얼마든지 남길 수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언제나 증명이 어렵다. 하물며, “대충 살자”는 말조차 증명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들여야 한다. “하면 된다”라든가. “최고보다 최선을” 다한다거나.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데카르트처럼, 생각만 하면 증명이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