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학술

  • 지성, 지능 vs 방사성, 방사능

    방사선(radiation)은 원자핵의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종류의 입자 빔을 말한다. 그래봐야 알파, 베타, 감마, 중성자, 이렇게 네 종류밖에 없다. 알파선은 헬륨의 원자핵과 똑같은 녀석



    [각주:

    1

    ]



    인데, 중성자 두개와 양성자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베타선은 전자(electron)이고, 감마선은 그냥 광자(photon)다. 중성자는 남들이 다 아는 그냥 중성자다.

    방사선을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을 방사능(radioactivity)이라고 한다. 방사능을 가진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고 한다. 이런 물질들은 기본적으로 이온화를 많이 일으키기 때문에 화학 반응에 관여할 수 있고, 따라서 생명 활동을 하는 생화학 반응에도 관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 활동을 하는 세포에 쬐이게 되면 일단 그 세포가 죽거나, 미치게 된다. 세포가 그냥 죽으면 괜찮은데, 미쳐버리게 되면 암으로 변신해서 자기 몸을 공격하게 되므로 방사성 물질 근처에는 되도록 가지 말자.

    지식은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종류의 창작물을 말한다. 그래봐야 사람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형태의 정보로만 기록될 수 있다. 시각 창작물은 그림과 문자로 구성되어진다. 청각 창작물은 음악이라고 부른다. 음악은 악기 소리와 사람 목소리로 구성된다.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능이라고 한다. 지능을 가진 동물을 인간이라고 부른다



    [각주:

    2

    ]



    . 이런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욕심을 많이 부리기 때문에 지식 생성에 관여할 수 있고, 따라서 지적 활동을 하는 다른 인간의 사상에도 관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적 활동을 하는 인간과 만나게 되면 일단 그 인간이 도망가거나



    [각주:

    3

    ]



    , 미치게 된다. 인간이 그냥 도망가는 건 괜찮은데, 미쳐버리게 되면 독재자



    [각주:

    4

    ]



    로 변신해서 자기 나라를 공격하게 되므로 지식인



    [각주:

    5

    ]



    근처에는 되도록 가지 말자.

    *이 글에 대한

    논리적

    비평은 사절입니다. 농담으로 받아들이세요. 꼭이요!

    1. 헬륨의 원자핵이라고 부른다. 이런 이유로 헬륨의 원자핵을 알파입자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2. 이런식의 분류에 대해서, 외계인도 지능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어차피 외계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그의 지능은 나의 지성과 상호작용 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본문으로]
    3. 내게 도를 아느냐고 묻는 도인을 만났을 때, 내가 Lagrangian을 아느냐고 되묻자 그는 도망갔다.

      [본문으로]
    4. 히틀러, 박정희 등의 독재자를 염두에 두어 보았다.

      [본문으로]
    5. 지식in에 관한 얘기다.

      [본문으로]

  • 절대 권력자는 착해야 하는가?

    “철학으로 반지의 제왕 읽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최초로 나온 주제는 “톨킨의 반지들과 플라톤 : 힘, 선택, 그리고 도덕성에 관한 교훈들”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당신에게 절대 권력이 있다. 당신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제시된 답은 다음과 같다. : 절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당신의 행복을 위해 좋을 것이다.

    책 내용의 아주 일부만을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오해나 왜곡의 소지가 있으므로, 관심있는 사람은 꼭 책 전체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내가 생각하는 답을 논의해 보려고 한다.

    위에서 나온 절대 권력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뜻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과 비슷한 수준의 권력이고, 실제 현실에서 내가 그런 힘을 갖게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통령도 욕먹는 시대에 어떻게 가능할까. 아무튼, 그런 권력이 있는 경우 나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쉽게 생각하면 내가 힘이 있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입 싹 닦아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의 경우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답이 제시될 것이다. 사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비도덕적으로 행동해도 상관 없다는 대답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도덕적인 행동은 답이 되지 않는걸까?

    자, 우리 주변에도 몇가지 예가 있다. 굴지의 대기업 S그룹의 부정 축재, 마찬가지 대기업 H그룹 회장의 폭행 사건, 그리고 그 외에도 지금 당장 기억은 안나지만 들으면 알것 같은 아주 많은 사건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

    권력기관이나 재벌기업으로부터 저질러진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는 그들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립 가능한 것이다. 자, 이로부터 고통받는 일반 대중이나 피해자들의 입장은 잠시 외면해 두자. 그를 비난할 어떤 이유를 찾을 때, 남의 불행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라는 건 그냥 떼쓰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당신에게 절대 권력과 엄청 많은 돈



    [각주:

    1

    ]



    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별장도 지을 수 있고, 세계 곳곳을 놀러다닐 수도 있고, 여자들이랑 원하는대로 놀 수도 있고



    [각주:

    2

    ]



    사람들이 다들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내 밑에서

    굽신

    굽실대면서 나한테 좋은 말만 해준다. 그럼 안돼나? 아, 돈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 글쎄, 그건 그냥 돈이 없으니까 하는 얘기지. 억울하면 나처럼 돈 많이 벌든가, 돈 없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시던가. 억울하다고? 그건 당신 얘기고, 난 억울한게 없는데? 게다가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많이 쓰겠다는데 불만 있어?



    [각주:

    3

    ]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거냔 얘기다.

    이제, 그에게 질문해보자. 그래서 좋아? 당연히 좋지. 싫은 사람이 어딨겠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이 싫은 사람도 있을까? 글쎄. 아마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그 욕망은 아무리 충족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무한한 욕망을 채우기 위한 무한한 권력을 가지는 것을 어째서 싫어하겠는가. 물론 이쯤에서 “난 그런거 싫어.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절대 권력이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욕망까지도 실현 가능한 진정한 절대 권력이다. 그 사용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으면 얼마든지 천국으로 만들 수 있고, 자신의 뜻대로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착한 사람이 그런 힘을 사용하면 물론 착한 일만 할 것이다. 그걸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그런 위대한 힘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착하게 행동해야 하는가?

    내가 결론짓고 싶은 것은, 그런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는 아무리 착한 사람이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항상 세상을 올바르게 몰고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더라도 세상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한, 자기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본인은 결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며, 스스로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할 수 있다.



    [각주:

    4

    ]



    권력을 가진 그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을 뿐더러,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핵무기의 사용? 비극적인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사용한 것까진 좋은데, 그래서 수십만명이 죽었지. 무엇을 무엇의 정당화로 볼 것인가.

    나는, 만약 나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진다면



    [각주:

    5

    ]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그때 가서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내가 도덕적으로 행동할지 내맘대로 행동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다 쓰고나니까 역시 내용이 없는 글이 되었다.

    1. 현대 자본사회에서 권력과 돈은 동의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둘 다 갖고 있다고 하자.

      [본문으로]
    2. 남성 편향적인 시각이라 여성 분들께는 죄송하게 되었다. 뭐, 여성 분들도 미남들 잔뜩 데리고 노는 것을 상상하시면 될 듯.

      [본문으로]
    3. 돈의 출처가 부정적인 경우도 있으나,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사실 이 얘기 하면서 예전의 서울시 시장을 하고서 요새 대통령 하려고 나서는 어떤 아저씨가 떠올랐다. 열심히 해보셈. -_-;

      [본문으로]
    5. 가령, 로또 당첨같은 일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0%가 아니다. 로또를 잘 사지 않는 내게는 불가능하겠지만, 당신이라면?

      [본문으로]

  • 빅 브라더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를 읽다보면, 몇가지 단어를 치환하는 것만으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그려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해킹, 크래킹, IP추적, 통신검열, 인터넷 실명제, CCTV, 위치추적 기술…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놓을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블로그? 공개다. 싸이월드? 해킹됐다더라.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혼자 알고 있다가 미쳐 죽기 전에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 얘기하고 쓰러진 이발사, 그가 믿었던 대나무 숲이 임금님에게 말해줄 줄이야.

    인터넷은 현대의 대나무 숲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번 소문이 나면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게 되어 있다. 게다가 그것이 좋건 나쁘건 일단 한번 걸리면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결정되어버린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빅 브라더는 누가 될까? 모든 것을 검색해주는 구글? 인터넷 실명제로 모든 사람을 확인하려는 네이버?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어보면, 빅브라더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세상을 통치하는 간부들도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잘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고 믿는거다. 중요한건 그가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알고 있다는 공포를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다 보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존재할리가 없다. 하지만 그 공포에서 벗어나는 순간, 주인공처럼, 벗어난 사람은 세뇌되어 버리고 자신이 믿는 현실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혼란 속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요즘의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 물어보면 모든 정보가 모두 나온다.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에 물어보면 “뭔가” 답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 답은 진실인 것으로 간주된다.

    빅브라더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그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모든 통신수단을 감청한다는 비밀기관 에셜론(Echelon)을 운영한다는 소문도, 그게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통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거짓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거짓과 진실은 서로 뒤섞여 있고, 특히 현대처럼 초대량의 정보가 미친듯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에서, 완전히 뒤엉켜 있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X-Files의 결론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하면, 진실은 없다. 단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울고있는 피해자가 현실에 하나, 둘 존재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내가 접속한 인터넷 저편 어딘가에는, 현실에서 인터넷으로 접속한 또다른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의 누군가를 말했지만, 인터넷의 누군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상처받는건 그 인터넷의 누군가를 만들어내는 실제 인간인 것이다.

    댓글, 악플, 선플, 인터넷 실명제, 검열, 불법복사, 뭐 이런 것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최근에 대두되는 문제들이다. 이것들이 가져오는 악영향을 막아내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미래에는 모두가 인터넷의 인격과 실제 세상의 인격을 분리해서 어떤 악플도 인터넷의 인격에만 영향이 가고 실제 인격에는 영향이 없는, 이중인격 상태로서 무덤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빅브라더는 더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세상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 임산부와 비만녀 구별하기

    *이 글에서 여성 비하적인 부분이 느껴지시는 분은 바로 댓글 등의 방법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자리에 앉아있다보면 참 난감한 경우가 꼭 있는데, 바로 눈앞에 배가 나온 여자가 서 있는 경우이다.

    일단, 임산부, 노약자, 아이를 업은 어머니 등등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 분들에게 내가 자리를 양보하는 건 좋다. 연세가 있으신 분이나 아이를 업은 사람 등등은 아주 구별하기 쉽다.

    문제는 임신한 사람의 경우이다. 이게, 요새 비만 문제가 있다보니까 배가 많이 나온 사람



    [각주:

    1

    ]



    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게 곤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한 사람에게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냥 비만인 사람에게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아무말 없이 내리는 척 하면서 자리를 피하면 되기도 되겠지만, 이 경우 반드시 내가 의도한 사람에게 자리가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약간 곤란하기도 하다.

    아무튼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단순히 배나온 여자와 임신한 여자를 구별할 수 있는, 공중도덕 및 보편적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물론 나는 답을 모른다.

    1. 물론 여성의 경우일 것이다.

      [본문으로]

  • 집단지성

    위키 백과사전 :

    http://www.wikipedia.org


    노스모크 :

    http://no-smok.net/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될까. 지식이 되기에 필요한 조건은 기록 가능한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기록의 형태는 사람의 기억에 의해 입으로 재생될 수도 있고, 문자가 될 수도 있고, 영상이나 녹음된 것이 될 수도 있다. 사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매체라면 뭐든지 기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어서, 평생 한명이 만들 수 있는 지식의 양이라고 해 봐야 책 여러권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를 찍는다면 수십편 정도? 그리고 아무리 지혜와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후대에 남기지 않으면 결국 그 후대 사람들은 다시 밑바닥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인터넷에 위키 백과사전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백과사전이 운영되는 구조를 사람들은 집단지성이라고 부른다.

    위키 백과사전은 어떤 하나의 항목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내용을 추가하여 그 항목에 대한 설명을 완성해 나가는 운영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어떤 한두명의 전문가가 아니라 그 항목에 대해 추가할 내용이 있는 사용자라면 누구나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 오타나 오류가 발견되면 누구한테 얘기할 필요가 없이, 그냥 직접 고치면 된다. 물론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대충 낙서를 적어둔다거나, 악의적인 목적을 갖고 항목을 엉뚱하게 편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위키 백과사전의 보험은 엄청나게 많은 사용자 그 자체이다. 사용자들의 대부분은 올바른 정보를 원하고, 올바른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오류의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기가 없는 항목의 경우 오류가 몇개월에서 몇년동안이나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요새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전문가가 검증하여 항목을 올리는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키 백과사전의 오류 가능성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위키 백과사전이 정확하지 않다거나 하는 건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집단 지성은 마치 어떤 커다란 백과사전을 사용자들이 만들어 나가는 방법론으로서 다뤄지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시간에 대한 보존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진리와 지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평생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의 양은 한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미래에 전달한다. 이것을 모두 모으는 것이 바로 집단 지성이다. 집단 지성을 이용한 지식 구조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식을 점점 추가하면서, 그 지식을 공부하여 더 추가하는 방식을 통해서 집단 지성은 실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에 대해서,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가 한 멋진 얘기가 있다.

    진짜 남자들은 백업같은건 하지 않죠. 그냥 ftp 사이트에 올려서 다른 사람들이 받아서 백업하게 만들어야죠

    – Linus Torvalds

    그렇다. 진짜 남자들은 백업따위 하지 않는 거다. 진짜 지식인이라면 암기따위 하지 않는다. 그냥 남들에게 알려줘서 남들이 암기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죽음이라는 것 그 자체로서도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죽고나서 내가 해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또한 더욱 아쉬워 하는 법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그 수많은 지식이 단지 나만 알고 끝난다는 것은 억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쉬운만큼 내가 아는 지식을 남들과 공유해야 한다. 예수, 공자, 석가 등등을 보자.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남겼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지식과 지혜가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인공지능의 문제가 있다. 잠시 딴 얘기를 하겠다. 옛날에, 공학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을 시절에 “체스 두는 로봇



    [각주:

    1

    ]



    “이 개발되었던 적이 있다. 체스 두는 로봇은 실제로 체스 챔피언들을 하나하나 굴복시키면서 인간이 만든 새로운 생명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나중에 그 실체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뭐냐고? 뻔하다. 그냥 로봇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직접 체스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나 인공생명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진짜 사람이 체스를 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은 월급 받고 연기를 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로봇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은 계속 안에 들어가 있다보니 자신이 로봇인지 사람인지 혼란스럽게 되었다. 원래 체스 두는 로봇이 있는데 자신은 그냥 그 로봇을 작동시키는 연료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오게 된 곳이다.

    이 아이디어가 확장된 것이 질문-대답 형태의 지식 공유 사이트



    [각주:

    2

    ]



    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궁금한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 다른 누군가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준다. 이때, 질문한 사람은 대답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고, 단지 그는 인터넷에서 대답을 얻은 것이다. 즉, 인터넷은 마치 체스 두는 로봇처럼 인공지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위키피디아 같은 경우에도, 누군가 단편적인 지식을 올리면, 또다른 누군가는 그 자료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잘못된 정보를 고치고, 누군가는 그걸 이용해서 공부한다. 즉, 위키피디아에 틀린 정보가 올라오는 것은 위키피디아의 한계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만약 위키피디아에서 틀린 정보를 발견했다면, 부끄러워 말고 고쳐라. 틀린건 알겠으나 정확한 정보를 모른다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해라. 그것이 바로 인터넷을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당신의 기여가 된다.

    1. “살아있는 인형”이라는 책을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Naver의 지식in 이 있다.

      [본문으로]

  • slashdot 평가 시스템, 번역

    이 글은

    http://jcmc.indiana.edu/vol10/issue2/poor.html

    에서 본 Mechanisms of an Online Public Sphere를 적당히 요약+번역 한 글이다. (건너뛴 부분도 상당히 많다)

    글의 원 저자에게 정식으로 허락을 받지는 않았음을 미리 밝힌다. 또한, 필자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므로 오역의 우려가 크다는 점 또한 미리 밝혀둔다.

    모든 주석은 역자의 주석이다. 별도로 표기한 경우에는 원저자의 주석이다.

    *”선별”과 “평가”는 둘 다 moderation의 번역이다. 문맥에 따라 바꾸었으나,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도 좋다.

    Mechanisms of an Online Public Sphere : The website Slashdot

    Abstract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전 세계의 다른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는데, 그렇다면 인터넷은 공공 토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토론장은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이 논문은 공공 토론장이 인터넷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과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본 연구에서는 컴퓨터 매니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slashdot.org 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Introduction

    공공 토론장의 개념은 하버마스가 처음으로 주창했는데, 이 개념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생각을 토론하며 이것이 다시 정책과 민주적인 이상향에 연계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런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인터넷은 온라인 공공 토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이 글은 slashdot



    [각주:

    1

    ]



    (news for nerds



    [각주:

    2

    ]



    라는 표식을 달고 있다.) 의 작업을 상세히 설명해 본다. 여기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슬래시닷을 공공 토론장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온라인 게시판으로, 컴퓨터 뉴스 사이트로, 거대 블로그로 존재하게 한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오프라인 사회 운동과는 다르게, 슬래시닷은 애초에 온라인으로 시작했고,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슬래시닷의 사용자층은 더 커지고 다루는 범외도 넓어졌다.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오프라인 그룹도 슬래시닷만한 온라인 포럼



    [각주:

    3

    ]



    을 갖고 있지는 않다. 슬래시닷 이면에 숨은 중심적인 문화적 힘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정신은 공공 토론장의 아이디어와 대단히 유사하다.

    이 논문은 슬래시닷을 온라인 공공 토론장으로서 분석한다. 우선, 공공 토론장의 개념을 살펴본다. 그리고 인터넷과 공공 토론장이 어떻게 연계되는지 논의한다.

    The public sphere

    하버마스는 처음에 18~19세기 유럽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식으로 공공 토론장을 묘사했다. 이러한 담론은 살롱이나 커피˜乍【, 그리고 신문과 다른 인쇄된 형태를 통해, 그리고 정책결정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었다. 공공 토론장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공공 토론장은 광고와 유흥을 통한 언론의 상업화에 의해 일부 망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버마스가 묘사한 공공 토론장은 실질적으로 “부르주아” 공공 토론장이다. 많은 논의가 양화사 없이 공공 토론장이라는 단어를 좀 더 일반적인 형태로 논의한다. 비록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로울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여 가능한 부르주아 계급과 성에 대해서 제한된다. 하버마스의 원래 개념은 세가지 중요한 점을 담고 있다. 하나는 공공 토론장은 토론을 통해 형성된다. 둘째, 이전에 소외되었언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가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공공 토론장에 올라온 의견들은 제안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바로 그 의견 자체의 가치로 평가된다.

    이 세가지는 이 논문의 분석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의견의 토론은, 때로 3자에 의해 전달되는 형태로서도, 슬래시닷의 중요한 특성이다. 토론장 자체를 존재하게 한다는 점에서, 토론이 없는 공공 토론장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러한 새로운 토론 장은 또한 이전에 정책 결정으로부터 자기 의견을 반영하는데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손쉽게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제안된 의견들은 민주적인 결투장에서 그 의견이 가지는 잇점에 의해 좀 더 공평하게 평가된다. 슬래시닷은 어떤 사용자가 작성한 글들이 사용자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 글 자체에 의해 평가받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공공 토론장의 “공공”이라는 말은 그러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적인 사람으로서 행동하지 않고 공적으로 말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여론과 정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갖고 있다. 공공 토론장의 “토론장”이란 어떤 공간을 말한다. 이것은 형식적, 비형식적인 생각과 조직들이 섞여 있는 곳이다.

    하버마스가 처음으로 논의한 이래, 공공 토론장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각주:

    4

    ]


    The public sphere online

    하버마스의 원래 개념을 개략적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공공 토론장은 담론의 장이며, 때로 중개된다.

    2. 공공 토론장은 이전에 소외되었던 토론자들을 허용한다.

    3. 논의된 의견들은 정치적일 수 있다.

    4. 의견은 발제자의 지위가 아니라, 그 의견 자체로 평가받는다.

    여러개의 공공 토론장이 있다고 해 보자. 그럼 아마 인터넷에서 연구할 수 있는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슬래시닷은 위의 네가지 기준을 만났다. 위의 네가지 판단 기준은 “공공”이 온라인이기 때문에 용서되지는 않는다. 온라인 공공 토론장은 온라인이거나 아니거나 여전히 공공 토론장을 만들고, 따라서 반드시 위의 공공 토론장 판단 기준을 마주치게 된다.

    다양한 공공 토론장을 보면,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준에 따라 나눠질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또는 흥미에 따라 나눠진다. 인종, 성향, 성, 계급, 언어, 국적, 종교 등에 따라 나눠진다. Dahlgren의 용어를 따르면, issue publics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흥미의 issue에 따라서 형성된 공공 토론장을 뜻한다. 하버마스의 공공 토론장은 당시의 부르조아들의 관심에 따라 만들어진 issue public라고 할 수 있다. 슬래시닷은 컴퓨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인 issue public으로 볼 수 있다.

    첫번째 판단 기준에 따르면, 슬래시닷은 컴퓨터 소식과 관련된 주제의 논의에 민감한 웹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의 핵심은 사용자들의 글과 댓글이다. 토론의 경우, 명백히 이것은 인터넷 위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중개”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정의에 따르면, 어떠한 온라인 공공 토론장도 반드시 “중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토론하는 것은 공공 토론장의 원래 개념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두번째 판단 기준에 따르면, 슬래시닷은 원래 예전에 나눠져 있던 컴퓨터 사용자들이 많이 모여서 토론하는 공간이었다. 슬래시닷은 1997년에 생겼고 더이상 새롭다고 간주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논의로부터 소외되었던 멤버들이 있다.

    세번째 판단 기준에 의하면, 슬래시닷에 올라오는 주제들은 그 대부분이 소비자 지향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다. 슬래시닷은 법에 영향을 줬는데, 미국, 유럽, 호주 등지에서의 저작권 법과 투쟁한 것 등이 있다.

    네번째 판단 기준은 중요하다. 인터넷에 등장한 많은 공간과 의사소통 형태가 네번째 판단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 기준은 두가지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의견(논의 안에 있는 글들) 이 반드시 평가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 글 자체의 잇점에 의해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슬래시닷은 첫번째와 두번째를 모두 충족시켰다.

    Slashdot

    News for Nerds, Stuff the Matters

    1997년 초반에, 미시간에 있는 홀랜드의 호프 대학에 다니던 롭 말다는 “칩스 앤 딥스”라는 웹 사이트를 자기 대학교 계정에 만들었다. 그 해 겨울, 롭하고 그 친구인 제프 배이츠는 “slashdot.org”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 그리고 친구들을 동원하여 사이트가 자동으로 굴러가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했다. 슬래시닷은 여전히 말다와 배이츠에 의해 운영되지만, 그들은 현재 Open Sourge Technology Group(OSTG)에 의해 확장되었다.

    슬래시닷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이곳이 뉴스 사이트같다고 생각될 것이다. 칼럼이 가운데서 내려가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양쪽에 있고, 꼭대기나 가장자리에 광고도 있다. 소식들은 머릿글이 있고, 개요가 있고, 주제와 관련된 아이콘도 있다. 하지만, 방문한 사람들이 글을 읽기 위해 클릭하면, 슬래시닷이 가지는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글들이 모두 관리자나 기자가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에, 다른 글을 읽고 반응하는 사용자들이 자기 생각을 직접 쓴 글로 구성된다. 이건 예전의 BBS식의 게시판이나 유즈넷 뉴스그룹과 비슷하다. 글의 처음 시작은 보통 다른 웹 사이트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은 뉴스 사이트, 언론 보도, 아니면 개인 사이트 같은 곳이다. 슬래시닷은 그곳을 온라인 토론장으로 남겨둔 채 이 글의 개요와 그 글로 가는 링크를 제공한다. 때때로, 이러한 내용 자체가 슬래시닷에 있을 수도 있는데, 리뷰나 인터뷰 같은거, 일반적인 내용은 아니다. 슬래시닷이 온라인 담론으로 구성된다는 점이 요점이다.

    글들은 다양한 주제들을 포함한다. 슬래시닷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다.

    Open source

    (건너뜀)

    Demographics

    (건너뜀)

    Mechanisms

    Slashdot’s moderate system

    선별(moderation



    [각주:

    5

    ]



    )과 메타 선별은 슬래시닷을 굴러가게 하는 여러 방법중의 하나다. 하버마스의 커피˜事?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맞춰질 수는 있겠지만, 온라인 게시판은 같은 제한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슬래시닷에 매일 올라오는 엄청나게 많은 글들은 걸러질 필요가 있다. 선별은 글을 평가하는 사용자들에 의해 돌아간다.

    애초에, 슬래시닷이 작았을 땐, 슬래시닷 순찰꾼(Slashdot guys)들이 선별을 했었다. 하지만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선별 작업은 점점 많아지고 어려워졌다. 현재는 선별자(moderator)들의 그룹이 있다. 그리고 로그인 한 사용자는 선별작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말다에 의하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점점 많은 글이 작성되면서 매일 성장했다. 그러자, 많은 사용자들이 시스템을 악용하는(abuse) 새롭고 엽기적인 방법들을 찾아냈다. 단 하나의 선택만 가능하다. “글 지우기”이다. 하지만 사이트가 커지면서 그게 계속하기가 힘들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숫자가 너무 많다.

    사용자에 의한 악용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왜냐하면, 슬래시닷이 닫힌 사회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별은 열린 사용자 기반과 익명의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다. 선별이 짜증나는 글들을 쓸어낼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말다의 말을 들어보자.

    그래서, 난 사람들을 골랐다. 대략 25명정도. 이들은 그냥 글에 점수를 주거나 뺄 수 있는 단순한 권한이 주어졌다. 이 용감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역할은 스팸, 초보의 글, 그리고 낚시글을 막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그들은 좋은 글들을 골라내서 갖고 오기도 했다.

    말다의 선별 기능 구성은 아무도 원하지 않고, 발전적이지도 않은 글들과 좋은 글을 모두 표시한다. 처음에는 쉬웠지만, 사이트가 커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처음에, 슬래시닷은 400명 이상의 영구 선별자들을 고르려고 했다. 처음에 25명을 고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그들은 바로 짤렸다. 왜냐하면, 선정 되자마자 권한을 남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다는 25명 이상의 선별자들이 필요했지만, 동시에 그중에 쓰레기같은 사람들을 골라낼 방법도 필요했다.

    선별은 공공 토론장에 적합한데, 글의 잇점에 의해서만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선별자들이 글쓴이의 이름을 볼 수 있는도 불구하고 슬래시닷의 글들은 평가된다. 글의 점수는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선별은 누구나 선별자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말다는 통제와 접근의 이슈를 알아차렸다. 통제는 선별 시스템에 의해 “관리”에서 “사용자”로 이동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엔 균형이 필요하다. 말다가 말하길, “나는 각각의 사람들의 권력이 제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배웠다” 즉, 그들 중에는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공공 토론장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각각의 사람들의 말은 오직 그가 말한 바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하며 그가 누군지에 의해서 평가되면 안된다. 하지만, 여전히 슬래시닷의 평가 시스템을 악용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예를들어, 어떤 사용자가 선별자가 되었을 때 그 사용자는 그의 친구가 쓴 글에 점수를 몰아줄 수가 있다. 이러한 잠재적인 악용을 막기 위하여 메타 선별이 생겼다.

    Metamoderation

    메타 선별은 원래의 선별 시스템이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어떤지 볼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그것은 나쁜 선별자들을 적합한 선별자들 속에서 골라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메타 선별은 글에 대한 평가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므로 “메타”이다. 선별이 글을 평가하하지만, 메타 선별은 그 평가를 평가한다. 글의 유용성을 따지는게 아니라 그 평가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평가한다.

    메타 선별은 모든 선별 작업에 접근 가능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최근 가입한지 10%에 들지 않는 회원들만이 메타 선별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반드시 로그인 해야 한다. 또한, 한 사용자는 하루에 한번만 메타 선별을 할 수 있다.

    메타 선별 통계에 따르면, 92-93%의 선별이 공정하게 평가되었다. 물론 오차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이 메타 선별은 코더들 사이의 신뢰성과 비슷하다. 비록 메타 선별 통계가 분석하기에 좀 대충이긴 하지만 92%정도면 excellent라고 할 수 있겠다.

    Scoring

    글들이 평가되면, 이 글들은 (각각의 선별자들은 단지 1점만 바꿀 수 있지만) -1점에서 5점까지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은 다른 점수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익명의 사용자가 쓴 글인 경우에는 0점에서 시작한다. 로그인 한 사용자가 쓴 경우 1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사용자의 기록이 이것을 0에서 2점까지 바꿀 수도 있다.

    선별 작업의 접근 권한을 얻기 위해서, 다섯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사용자는 반드시 로그인 해야 한다. 이것은 선별 작업이 메타 선별을 통해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선별 시스템을 악용하여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접근 권한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별자들은 또한 반드시 보통의 슬래시닷 독자여야만 한다. 즉, 그들은 반드시 글을 읽어야 한다. (미친듯이 읽을 필요는 없다) 말다가 말하기를, “의무적으로 새로고침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시스템은 선별 작업의 접근 권한을 신참 슬래시닷 사용자에게는 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특히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계정을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반드시 그들이 선별작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지를 알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사용자 옵션에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은 기본적으로 “알림”으로 되어 있다.

    공공 토론장에 대한 하버마스의 개념에서, 글들은 반드시 그 잇점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슬래시닷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좋은 업보karma(후에 설명한다) 를 갖고 있으면 그가 쓴 글이 좀 높은 점수에서 시작하겠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다. 슬래시닷의 익명 글쓰기 옵션은 공공 토론장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상적이라는 걸 반영한다. 익명의 글은 겁장이가 쓴 것처럼 보이고, 그런 글의 점수는 누군가 자신을 밝히고 쓴 글보다 낮은 점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누가 쓴 건지 모르기 때문에 글이 글 자체의 잇점에 의해서 평가받는다는 것은 달라질 바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계정 이름을 통해서 누군지 알게 되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질 가능성은 있다.

    Karma

    업보(Karma)는 슬래시닷이 사용자의 행동을 반영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세가지로 구성된다. 만약 당신의 글들이 평가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당신은 업보에서 마찬가지로 점수를 얻거나 잃는다. (2002년까지는 이게 숫자로 표시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점수를 깎이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메타 선별 또한 업보에 영향을 준다.

    사용자가 평가한 것 중에 나쁘게 평가된 평가

    도 업보를 낮춘다. 하지만 사용자의 업보는 대부분 그가 쓴 글에 대한 평가에서 반영한다.

    업보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업보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너무 대놓고 점수를 올리는 사람들을 “업보 앵벌이(Karma Whores)”라고 부른다. 그런 작업중의 하나는, 어떤 글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칭찬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칭찬댓글은 좋은 평가를 받기 쉬울 거고, 그 뒤로 너무 많은 댓글이 붙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반 댓글은 점수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부터, 얼마나 사람들이 업보를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면서, 말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업보는 선별자들의 그룸에서 위험한 사람들을 골라내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리고 슬래시닷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는 보너스 점수를 주기 위해서 사용된다. 업보는 사람들이 어떤 글을 쓰느냐, 그 글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 그 평가가 어떤 메타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거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라. 그건 그냥 숫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슬래시닷은 업보 점수를 숫자로 표시하는걸 중단하고 6단계의 단어로만 구별하게 되었다. (쓰레기, 나쁘다, 보통, 괜찮다, 좋다, 엄청나게 좋다)

    Moderation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좋은 글을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것은 선별 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선별은 사람들이 사이트에 자주 들어올 것을 요구하고, 인터넷 문화에 더 익숙해질 것을 요구하며, 슬래시닷 커뮤니티의 가치를 지키며 가치를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갓 선별 권한을 얻게 된 사용자들은 5점의 평가 점수를 갖고 있다. 이것은 며칠간 사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다 쓸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글들이 받는 점수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보를 담고 있는” “재미있는” “좋은데 과소평가된” 글은 +1점이고, “주제에서 벗어난” “말싸움 붙이는” “낚시글” “장황한” “과대평가된” 글은 -1점을 받는다.

    이러한 구별중 몇가지는, 가령 “재미있는”의 경우, 그 자체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것들, 가령 “낚시글”이나 “말싸움 붙이는” 글의 경우는 인터넷 문화라는 점을 이용해서 설명해야 한다.

    선별 작업은 도전이 될 수 있다. 각각의 사용자에게는 권력의 균형을 위하여 겨우 5점만 주어지지만,

    이것은 5개의 점수를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결정할 것을 요구하는 효과가 있다. 새로 올라온 글들이 평가하기 쉽다. 평가는 또한 가장 처음으로 붙은 평가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것은 슬래시닷 사용자들이 글이 평가되지 않았을 때 높은 점수가 붙은 것을 먼저 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하 생략)

    1. 이하 슬래시닷

      [본문으로]
    2. nerd는 geek과 비슷한 뜻인데, geek을 “어중이”로 생각하면 nerd는 “떠중이”에 해당하는, 대략 “오타쿠”랑 비슷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막장 인생은 아닌, 정상적인 사람중에 매니아를 뜻한다.

      [본문으로]
    3. 공공 토론장이라는 뜻이다. public sphere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4. 번역에서는 생략한다.

      [본문으로]
    5. 네이버 영어사전을 살펴보니, 컴퓨터 용어로서 뉴스중에 의미있는 것을 고르는 작업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 운영, operation

    내가 자주 가는 리눅스 커뮤니티 사이트에, 최근 rosebuntu라는 트롤이 나타났다. 이 트롤은 모든 사용자의 원성을 한몸에 받으며 사이트 전체를 휘저어 놓고 있는데, 현재는 차단당한 상태이다. 흐트러진 흙탕물이 다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만약 내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 트롤이 나타났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한, 사이트 운영 방침과 규칙의 헛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악성 이용자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우선, 완벽한 운영 시스템이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자. 실질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운영 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그 헛점은 꽤나 크고, 더군다나 악의적인 목적을 위하여 작정하고 헛점을 파고드는 경우에는 관리자가 아무리 신경쓰더라도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강화하면 악성 이용자는 줄어들 수 있지만 실제 선의의 사용자



    [각주:

    1

    ]



    가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은 법이 많을 수록 범죄자가 늘어난다는 것과 통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인터넷 뱅킹은 이런저런 보안 장치를 마련했으나, 그 결과 윈도우 운영체제에 종속되는 불편함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다고 완벽한 보안이 되어서 금융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악성 이용자와 선의의 이용자를 구별하는 체계가 필요하지만 이것은 상당한 고수준의 지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계에게 맡겨서 자동화시킬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도배 금지라든가, 특정 단어 검열 등의 방법을 통해서 기계적으로 어느정도 막을 수는 있겠으나, 인간이 직접 걸러내는 것 만큼의 효율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둘째로, 관리의 효율성 문제이다. 내 생각에는, 관리자가 사이트 관리를 편하게 하려면 최대한 수고를 덜어야 한다. 사이트 관리를 하기 위한 정신적인 수고를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관리자가 피곤하여 이성적인 대처가 아니라 감정적인 대처를 하게 될 가능성이 생기는 법이다. 따라서 많은 것들을 자동화 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이트 관리자는 직접 관리해야 할 다양한 사항들을 믿을만한 다른 판단장치로 넘겨야 한다. 판단이 가능한 장치라는 것은 결국 기계 또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두가지 모두 적절하게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 장치의 문제는 기계적인 판단과 인간의 이성에 의한 판단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계적인 판단은 값싸고,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반면에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에 선의의 이용자가 걸러지는 일이 생긴다. 가령, “야동”이 금지단어이기 때문에 “야동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하기 위해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것을 검색할 때마다 사람이 판단한다면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적인 판단 방법과는 다르게, 사람이 직접 판단하는 것은 값이 비싸고 그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사이트 관리자는 이 두가지 자원을 적절히 조합하여 관리를 최대한 편하게 만들어야 사이트가 발전하는 전체적인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slashdot의 평가-메타평가 시스템을 응용해 보고자 한다.

    일단 사이트는 회원제 사이트로 정하고, 최고 운영자는 회원을 탈퇴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이 있다. 이 사이트에서 활동은 사이트에 있는 여러가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고 하자. 이제, 내가 제안하려는 것은 사이트의 운영 권한을 이용자들에게 일부 주는 것을 뜻한다. 사이트의 운영 권한이란 다른 사람의 글을 조작



    [각주:

    2

    ]



    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하자. 이 사이트의 운영 권한은 누가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모든 이용자들은 애초에 평등하다. 아무 이유 없이 특정 이용자가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누구나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특정한 이용자가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웹 사이트에 오는 이용자들은 이 불평등 시스템을 굳이 이용할 이유가 없게 된다. 따라서 모두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통해서 특정 이용자를 선택해야 하고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투표로서 실현될 수 있다. 간접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고,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집단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제, 여기에 평범한 이용자를 관리자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사이트 운영에 참여한다는 자부심 정도로는 평범한 이용자를 끌어들일 수가 없다. 사이트를 관리한다는 것은 사이트가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책임지고 어떤 일들을 하겠다는 것이므로, 그만한 책임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원칙은 위와 같고, 이제 어떤 사람이 관리 권한을 가질 수 있는지 논의해 보자. 이 부분은 사실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뻔하다. 이때, 우수 회원은 사이트에서 권장하는 덕목을 많이 수행하는 회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판단하려면 오랜기간동안 지켜보고 직접 면담도 해봐야 하는데 인터넷 기반의 웹 사이트의 회원 중에서 뽑는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시점부터 이미 회원에 의한 우수 회원의 선발이 필요하게 된다. 관리자가 1만명의 회원을 1시간동안 지켜본다면, 한명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1만분의 1시간, 즉 겨우 0.3초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만명의 회원이 1천명의 우수회원을 1시간동안 바라본다면 적어도 1000명중의 각 회원은 100시간씩의 노출 시간을 갖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관리자가 회원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회원이 다른 회원을 관찰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관리자가 일부 회원을 보고 판단하는 것 보다 회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것은 그로부터 따라오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회원은 다른 회원들이 “좋은 회원”인지 “나쁜 회원”인지 모든 회원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적 집단이 될 수 있다. 관리자가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해당 회원들의 모든 면모를 살펴볼 수도 없다.

    이 시스템은 회원에 의한 회원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여, 관리자에 의한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고, 동시에 사이트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게 의식있는 회원들이 운영해 나가도록 할 수 있어서 소속감을 함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상되는 단점은 다음과 같다.

    1. 관리 권한을 가진 회원의 권한 남용

    2. 칭찬의 반대쪽 끝, 악평만 받은 회원의 정신적 충격

    권한을 남용하는 회원은 그 사실이 즉시 운영에 반영되여 권한을 상실하도록 실시간으로 선거가 운영되어야 한다.

    악평을 받은 회원의 정신적 충격 문제는, 내가 운영하려고 하는 사이트가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트기 때문에 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는데, 어느정도 반성을 하라는 의미에서, 일단 논외로 두도록 한다.

    1. 여기서 “선의”란 “아무런 의도가 없는”으로 해석해야 한다.

      [본문으로]
    2. 편집, 삭제, 공개, 비공개 등

      [본문으로]

  • 화장실에서 발견한 Poisson 분포

    나도 미쳤지. GRE시험보러 가서 이런거나 생각하고 있으니. -_-;

    남자화장실 얘기다.

    화장실 문에서, 소변기는 문에서부터 일렬로 서 있다. 남자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소변기 바닥을 보면 앞선 사용자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흔적의 분포는 푸아송 분포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 화장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사람이 문에서 가장 가까운 칸에서 볼일을 보는 경우가 가장 클 것이다. 심지어 두번째 칸을 가는 일도 드물 것이다. 따라서 문에서 멀어질수록 확실하게 확률이 작아진다. 이 확률은 대략 지수함수로 떨어지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이 한번에 두명 이상 찾아온다면, Homosexual Exclusion principle에 의해 두번째 칸 이상으로 가게 될 확률이 급격히 커지게 되고, 이 경우에는 앞선 사람이 사용중인 칸에서 가급적 멀어지려는 척력과, 급해 죽겠는데 문에서 멀어질수록 늦게 볼일을 보게되는 포텐셜이 작용하기 때문에 대충 문쪽과 반대편 끝의 가운데쯤에서 평균이 나오는 Gauss 분포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는, 이제 Degenerate Male gas 상태에서 다들 자기 칸을 찾아가지 못하고 Band를 이루어서 들떠있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Hole이 생겨도 금방금방 채워지며, 모든 자리에 흔적이 많이 남게 된다. 심지어 큰일 보는데도 가득 차게 된다.

    자, 아무튼.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뿐만이 아닙니다

    .

  • 우주는 수학인가?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서, 1시간 40분이 걸리기도 한다. 이 긴 거리를 오가며, 보통은 음악을 듣지만 심심할때는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 녹음을 듣기도 한다. 오늘은 사실 연구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해서 들었다.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강의를 듣다보면 딴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 연구가 잘된다.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르고. 근데, 이걸 들으면서 연구하는 것도 생각하다보니까, 강의 내용중에 불확정성 원리가 나온다. 전자는 뿌옇게 퍼져 있고,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을 뿐 정확히는 모른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대충 이해하고 있는 원리이긴 하다만, 파인만이 그렇다고 하니까 뭔가 색다르게 들린다.

    우리가 입자라고 부르는 대상은 물리적인 걸까 아니면 수학적인 걸까?

    물리 이론을 기술하는 방법이 수학적인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은 물리학을 공부하든 수학을 공부하든 동의하는 내용일 것이다. 정작 물리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입자라는, 그 물리적 실체는 수학적인 대상일까? 이게, 말도 안되는 면이 있다. 옛날에 뉴턴이 살던 시대에는 입자를 무한정 딱딱한 공으로 생각했었고, 그것의 위치를 그것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되었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설명이 안되는 현상이 일어나자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수학적인 대상을 끌어다가 써야 했는데, 바로 파동함수이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그 크기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파동함수를 이용해서 입자를 기술하면, 그게 왜 그런진 몰라도 기가막히게 딱 떨어지더라는 거다. 이것도 괜찮다. 그런데 이놈이 진짜 파동이냐는 거다. 아니, 파동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그 파동은 물리적 대상인지 수학적 대상인지 진짜 헷갈리는 거다. 실험을 통해서 검증 가능하다는 것을 보면 입자라고 쓰고 파동으로 해석하는 바로 그놈의 실체는 물리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그게 그놈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놈의 실체는 말 그대로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에 살고 있고, 우리는 그 그림자만을 얼추 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초끈이론은 이데아에 사는 그놈의 실체를 밝혀줄지도 모르는 강력한 수학적 도구일 수도 있다



    [각주:

    1

    ]



    . 수학적인 대상이 되려면, 어떤 공리계에서 출발해서 그놈이 가진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입자들의 파동함수는 적분이 잘 되는 L2공간



    [각주:

    2

    ]



    에 사는 녀석들 중에,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족하는 녀석들로 고르는 것이다. 물론 아직 공리계는 아니다. 이것들은 공리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좀 더 단순한, 근본적인 공리계가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을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과연 초끈이론일까?

    고체물리를 하는 선배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백질 접힘 연구를 하는 그룹 중에, 가장 큰 그룹은 CPU 512개를 병렬연결해서 계산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걸로 6개월간 계산헤서 1ps(1조분의 1초)동안 어떤 단백질이 움직여가는 양상을 계산했다고 한다. 반대로, 양자컴퓨터는 어떤 계산을 하는데 보통의 컴퓨터로 수개월~수년간 계산할 양을 수분 이내에 끝낸다고 한다. 이러한 연결관계는 수학적 구조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결국, 컴퓨터에서 대수 계산을 하는 것과 우리가 종이에 써서 계산하는 것이 동등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우린 이 좋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주:

    3

    ]




    한쪽에서는 실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을 계산으로 알아내고, 다른쪽은 계산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걸 실험으로 알아내는 일을 한다. 이런 일들은 무진장 흥미롭다. 아마 내가 입자물리를 하지 않았다면 양자 컴퓨터나 고체 이론을 공부했을 것이다. 이쪽도 너무나 재미있는 분야니까. 아무튼, 우주가 갖고 있는 이러한 기초적인 구조는 어쩌면 아주 단순할지도 모른다. 대수적이든, 기하학적이든, 해석적이든, 뭐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학은 방대하니까. 그중에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 같다. 아직 증명되지 않았을 뿐.

    1. 물론, 초끈 이론은 20세기에 우연히 발견된 21~22세기형 물리학이다.

      [본문으로]
    2. “소화가 잘되는 고기”와 같은 느낌으로 읽기 바란다.

      [본문으로]
    3. 물론 증명 됐으니까 쓰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 중성미자

    중성미자는, 아주 작은, 이미 우리 몸을 1초에 수백만개가 통과한다고 알려진, 그러나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할만큼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입자이다. 전설에 의하면



    [각주:

    1

    ]



    , 질량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아니,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태양, 초신성, 대기권에서 출발한 중성미자가 원래 나타나야할 녀석들이 사라지고 엉뚱한 녀석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물통을 이용한 실험



    [각주:

    2

    ]



    이나 초고속 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이것을 중성미자 진동 현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정은 무려 2개나 된다.

    •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져야 한다.
    • 중성미자가 서로 섞여야 한다.

    응? 이런 엽기적인 가설이 말이 되냐고? 다른 방법으로 중성미자 진동현상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 가설들을 도입하는 것이 현재까지의 자료를 가장 깔끔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심있는 사람은 A. Strumia의 Review인 arXiv:hep-ph/0606054를 참고해 보기 바란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가는 매개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위의 두가지 가설을 검증하려면, 실험을 통해서 중성미자의 종류 수, 각 중성미자 종류별 질량, 중성미자의 섞인 정도를 모두 결정해야 한다. 그중, 대략 결정된 것은 다음과 같다.

    • 중성미자 종류 수 : 3개 – Electron neutrino, Muon neutrino, Tau neutrino
    • 중성미자의 질량 차 : 질량 고유상태에 대한 1번-2번 질량값의 차이, 2번-3번 질량값의 차이의 절대값
    • 섞인 정도 : 1번-2번, 2번-3번 섞임의 절대값

    남은건 1번-3번 과 CP-phase를 결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1번-3번 섞임각이 엄청나게 작다는 것이다. 그리고 CP-phase는 1번-3번 섞임각 항이랑 붙어 있어서, 그 영향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1번-3번 섞임각은 지금 하한선은 0이고, 상한선이 0.10인데, 이게 0.10이 실험적으로 알아낸게 아니라 “전혀 결과 없음”에 대해서 오차가 0.10이라는 것이다. 즉, 그 숫자가 0.10보다 작기 때문에 결과가 없다는 것 까지밖에 말할 수 없다.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 하는 실험이 원자력발전소 반응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이용한 실험이다. 작다는 걸 알아내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는데, 이게 굳이 작아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작은건 알겠는데 왜 작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또한 다른 질문을 하는데, “이거 원래 0아냐?”이다. 원래 0이면 백날 정확하게 재봐야 0.0이 나올테니, 결과가 나올리가 없다. 사실, 이런식으로 결과가 없을 것이 예상되는 실험을 Null Experiment라고 한다. 텅빈 실험이라는 건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이 마이켈슨-몰리의 간섭계 실험이다.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수행되었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너무나 정확해서 더이상 정확하게 하기도 힘든 실험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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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실험을 할땐 정말 속터지는게, 결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없으니까 미치는 거다. 계속해서 정밀도를 올려서 실험을 해도, 그 결과가 정말 0이라는 보장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몇%의 신뢰구간 내에서 오차범위가 얼마인데, 그 오차범위가 작기 때문에 0에 가깝다는 것밖에 안나오는 것이다. 이게 정말 0이냐 0에 가깝냐는 물리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수학적으로는 문제가 되는데, 수학적인 0이랑 물리적인 0이랑은 정말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수학적인 0은 진짜 0이다. 아무리 정밀하게 해도 절대로 0이 아닌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물리적인 0은 실험으로 관찰된 값이기 때문에, 실험 방법을 좀 더 정밀하게 되도록 개선하면 0이 아닌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이러한 1번-3번 섞임 정도를 결정하는 일인데, 연구 방법은 거꾸로이다. 1번-3번 섞임 정도가 어떤 특정한 값이라고 가정하고, 다른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나머지 값들이 결정되는 범위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설정한 가설이 다른 값들을 설명할 수 있으면 이론적으로 OK인 가설이 되고, 논문을 쓸 수 있다.

    뭐, 이게 말이 쉽지, 실제 연구는 안습이라는 점. 에휴…

    1.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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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슈퍼 카미오칸데 실험이다. 물이 100만톤정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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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령, 100미터 밖에서 자동차가 지나가서 생긴 진동때문에 오차가 생길 정도로 정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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