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물리학을 공부했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그 터무니 없는 결론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과학계에서 수많은 논란 끝에 받아들여진 것도 잘 알고 있다. 그와 같은 수준에서, 수많은 논란 끝에 백신의 효용성이 받아들여진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연구라는 것도 돈 벌자고 하는 것이다보니 양심과 돈을 저울질 한 결과로 논문 한두편, 보고서 한두편, 통계 몇 개, 언론사 보도 몇 건, 이런 정도는 어떻게든 조작해 볼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논문과 보고서 전부를 조작하고 수천만명의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의 연구 결과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그 연구 결과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하는가를 알아본다면, 함부로 못 믿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구라는 행위는 이루어진 결론과 결과만 보면 고상해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 연구자 한 명, 연구그룹 한 팀 수준에서 바라본다면 남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열심히 해놓은 연구의 오류와 단점을 신랄하게 비판 또는 비난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백신에 관한 연구 역시, 남들이 개발한 백신 연구에 문제가 있었다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백신 개발사가 그걸 물어 뜯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기들이 만든 백신이 더 잘 팔릴테니까.(게임 이론은 이런 거 설명할 때 쓰는 이론이다.)
의사와 과학자들을 무조건 믿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그들이 발표한 논문과 보고서를 좀 읽어보자는 뜻이다. 이해가 잘 안되면 뭘 아는 사람한테 좀 물어보고. 자기가 안 읽어보고, 읽었는데 이해 안된다고 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뭐 어쩌라는건가.
처 맞으면 아프다는 건 믿으면서 백신을 안 믿는 분들은 제발 없길 바란다. 처 맞았을 때 아프다는거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물리학부터 화학을 거쳐 생물학까지,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훑어야 한다고….
위의 뉴스 기사를 보면, 김영곤 교수는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연구 분야가 프리라디칼과 항산화제 부분이다. 그렇다면 백신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쉽게 말하면, 아무 관련이 없다.
다음의 설명을 통해서 쉽게 이해해 보자. 우리 몸 속에서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애초에, 인간이 먹고 자고 싸고 움직이고 숨쉬는 것 자체가 모두 화학반응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화학반응이란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와 원자들이 서로 달라붙거나 쪼개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재료가 좀 남거나 부족하거나 할 수 있는데, 그 때 남은 것들 중 반응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들을 프리라디칼(Free radical)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그냥 놔두면 그 반응성 때문에 주변에 있는 멀쩡한 분자들을 부수거나 변형시킬 수가 있으므로 반응성을 없애줘야 하는데, 그 때 사용하는 것이 항산화제이다. 전공 수준으로 들어가면 좀 더 엄밀한 설명이 있겠지만, 일단 대충 이정도로만 알아둬도 좋다. 이게 백신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물론 거의 관련이 없다.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실험 기구와 화학물질들이 사용된다는 것 정도가 억지로 맞춰본 관련성이다.
그러므로, 어느 대학의 무슨 교수가 감수를 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뭔가 책의 진실성, 진리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면 이런 책의 감수는 부탁을 받자마자 거절했을 것 같지만, 아무튼 그건 개인의 선택이므로.
그럼 이제, 책을 펼쳐보자. “제 1장 백신을 맞은 아이들과 맞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첫 장이 시작된다. 1장에서는 안소니 모슨 교수팀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백신을 맞은 아이들이 병에 더 많이 걸린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 일단 그 주장이 맞는지는 둘째치고 이 연구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슨 교수팀의 연구비는 백신으로 피해를 본 아이의 부모들이 제공했다”고 한다.(42쪽)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정부와 공공재단에서 이 연구에 돈을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문제는, 연구비가 어디서 나왔는가는 연구 결과가 얼마나 믿음직한가에 대해 중요한 척도라는 것이다. 즉, 이 연구의 결론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연구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단체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라면 연구의 결론을 믿기 어렵다. 예를 들어, 담배회사에서 연구비를 지원한 담배의 유해성 연구의 경우, 대부분 별로 유해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논문을 인용하는데 있어서, 오로지 저자는 본인의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들만 가져오고 약점은 가져오지 않고 있다. 내가 의학 분야 전공자가 아니어서 전부 다 의심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 빈틈이 보인다. 먼저, 어떤 종류의 백신을 맞았는지 안 보인다. Fully-vaccinated라고 하는 걸로 봐서, 국가에서 권장하는 백신의 종류가 있고 그걸 전부 다 맞은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이어서 Partially vaccinated의 유병률을 비교하고 있는데, 백신을 전부 다 맞은 경우와 일부만 맞은 경우에 대한 비교이다. 이 수치를 보면 흥미로운게, 백신을 다 맞은 경우랑 일부만 맞은 경우에 유병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백신 전부가 문제가 아니라, 많이 맞은 특정 백신의 유병률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연구를 근거로 하면 어떤 백신이 문제가 있다고 의심할 수는 있어도, 백신 전체가 문제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이 책의 저자 오로지는 그러면서, 이 연구에서 병으로 이야기한 아토피, 자폐증, 신경발달장애 등이 위험하다고 하고 있는데, 정작 어떤 백신에 대한 효과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백신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질병보다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 걸리는 질병이 훨씬 위험하다면, 백신을 맞는게 더 낫다는 점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 즉, 이 논문을 근거로 해서 백신이 아이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백신을 맞을 때와 안 맞았을 때 부작용으로 걸릴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고, 백신이 어떤 병을 걸리지 않도록 돕는지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럼 백신이 아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결론을 낼 수 없다. 즉, 저자의 주장대로 백신에 맞지 않은 아이들이 자폐증에 안 걸릴 수는 있다고 쳐도, 이 책에서는 그보다 더 위험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46쪽을 보면 “모슨 논문의 암시는 부모의 판단이 전문가보다 낫다”고 적혀 있다. 물론 백신을 맞은 후, 아이들이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경우, 그 부모들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리고 백신에 대해 불신이 생기는 것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백신을 비롯한 방역 전문가들은 굉장히 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백신에 의한 부작용을 얼마나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통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모가 본 사례는 자신의 자식들, 몇몇이지만 전문가들이 국가 단위로 수집한 자료에서 보는 사례는 수백만에 달한다. 각 자녀들의 개별적인 건강 상태는 부모가 더 잘 알겠지만, 백신의 효용에 대해서는 방역 전문가들이 당연히 더 잘 안다.
자, 아무튼 첫 장의 결론은 “백신은 문제가 심각한데, 백신회사와 정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모든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몬산토가 GMO의 유해성을 알리는 걸 방해하는 공작을 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모슨의 논문도 방해받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둘은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백신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는 논지로 채워져 있다. 그에 대해서, 백신의 부작용 사례를 모아서 제시하고 있으며, 부작용으로 나쁜 일이 일어난 사례를 연구한 논문으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자료조사를 열심히 해서 이 책을 썼다는 점은 인정할만하다. 다른 마도서에 비해서 이것만큼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서 조심해 보자는 단순한 발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백신의 효용과 장점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신을 맞은 경우 몇 배나 높은 유병률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인용한 논문들은 대체로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것들이다. 그리고, 백신의 표적이 되는 질병이 어떤 것들인지, 그 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서 별다른 논의 없이 부작용만을 일방적으로 다루고 있다.
224쪽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의료저널에 발표되는 논문의 90%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백신에 문제가 있다는 논문의 90%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결과 아닐까? 225쪽에 적혀 있듯이, “근본적인 문제는 연구비를 제공하는 측과의 과학자외의 이해상충이다”라고 한다. 그럼 백신에 문제가 있다는 논문은 이해상충이 없나?
세상을 음모론의 틀에서 해석한다면 어떤 사건, 어떤 주제로도 흑막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당연히, 제약회사든 과학자들이든 다들 돈 때문에 일하고, 돈 때문에 약을 만들고, 돈 때문에 백신을 만들어서 팔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 다른 회사의 연구 결과를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의심하며, 오류와 잘못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즉, 회사들 전체가 연합해서 약을 적당히 팔아먹는것보단, 다른 회사의 부정한 사안을 저격해서 몰락시키는게 훨씬 더 이익이 된다.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럴만한 껀수가 없으니까 그렇다. 거짓말은 더 큰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매우 이기적이고 욕심많은 사람들이 굴리고 있기 때문에 뭔가 음모가 있을 것 같지만, 모든 놈들이 다 이기적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담합해서 적당히 나눠먹는다는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이 책을 직접 읽어보려는 분들은 굉장히 비판적인 자세로 읽기를 바란다. 비판적인 고민 없이 이 책의 결론만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이나 당신 주변인들의 건강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아마 2002년 입시일 것이다. 예전에 모교 법대 면접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면접관이 수험생에게 “검찰의 독립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보았고, 수험생은 대한민국의 권력체계는 삼권분립이 중요하여 입법, 행정, 사법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물론 이 답변의 취지는 삼권분립을 위해 검찰은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면접관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네”
그 수험생이 붙었는지 떨어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난 그 얘기를 합격한 친구로부터 전해들었고, 그 친구는 자기 옆에서 면접 본 친구의 이야기를 해 주었을 뿐이라.검찰이 법무부의 지휘를 따라야 하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운 논쟁이 오고가는데, 문득 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검찰은 입법부 소속도 아니고 사법부 소속도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따르든 말든,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은 나겠지. 난 그냥 지금의 이 시끄러운 상황 자체가 좋다. 아무도 생각 안해본 문제를 들쑤시고 있는 거잖아? 이 논란에 의해서 이해와 생사가 갈릴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충 나보다 나이도 많고 권력도 많고 돈도 많은 분들일 것 같으니 어떻게 되든 불쌍할 일도 억울할 것도 없어보이고 말이다.
나에게 이게 과잉대응이었는가 묻는다면, 과잉대응이긴 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적절한 수준의 대응이 어떤건가 하면, 그건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시위 참가자가 누군지 알 수가 없고, 숨은 감염자도 골라낼 수가 없고,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혹시 이 상황에서 적절한 수준의 대응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제보 바란다. 나한테 말고 방역당국에 말이다.
적절한 수준의 대응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응을 약하게 해서 방역에 실패하는 것 보다는 대응을 과도하게 해서 일단 틀어막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다른 유원지, 관광지 등 사람 모이는데는 왜 가만히 뒀냐고 비난한다면, 그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거기도 틀어 막았어야지.
그러니까, 나는 다른 지역 가만히 두고 왜 광화문만 틀어막았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그러니까 광화문도 풀어줬어야지!”로 결론지으려는 시도에 대해서 반대한다.
세계 선진국 어디서 집회를 이렇게 막아가면서 방역을 하느냐고 하는데, 그래서 집회 전면차단 못한 동네는 다들 역병이 창궐하고 있는데 세계 최상급 방역이 별다른 문제 없이 그냥 되는줄 아는건가.
모든 문제제기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항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방역조치가 뭔지 말할 수 없으면서 과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면, 적어도 “과도한 방역조치보다는 집회의 자유가 훨씬 중요한 가치이므로 방역조치를 완화했었어야 한다” 정도의 주장은 해야하지 않겠나. “방역이 매우 중요하지만 집회의 자유도 엄청 중요하므로 둘 중 하나라도 놓치면 놓친걸로 비난해주마”라는 태도는 치사하고 비겁하다. 그럼 자기들이 정권 잡았으면 더 잘했을거라는 기대감이라도 줘야 하는데, 진짜 그건 털끝만큼도 기대가 안된다.
ずっとずっとこのまま変わらず 계속, 계속 이대로 변하지 않고 時が過ぎると思っていた 시간이 흐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でも違うね 毎日何かが 하지만 달라요, 매일 무언가가 少しずつ変わっていく 조금씩 변해갔어요
僕は永遠なんていらない 난 영원따위 필요 없어요 君とココで過ごす瞬間 당신과 여기서 지내는 순간 熱く 痛く ときめいていたい 뜨겁게 아프게 두근거리고 싶어요 鼓動を感じてたい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어요
守りたいよ でも守られてる 지키고 싶어요, 하지만 지키지고 있었죠 あたたかい瞳に 뜨거운 눈동자에 力が強さじゃない 힘이 강함이 아니라고 心の奥に 刻もう 마음 속 깊이 새겨져요
※ 信じている 信じられる 믿고 있어요, 믿어줘요 これから歩くこの道を 지금부터 걸어갈 이 길을 君がいるよ 僕がいるよ 당신이 있어요, 내가 있어요 それ以上何もいらない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生まれた意味探すよりも 태어난 의미를 찾기보다는 今生きてること 感じて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고 答えよりも 大事なもの 해답보다 중요한 것을 1つ1つ見つけていく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요 ※
いつも 何かうまくいかないと언제나 무언가 잘 안된다고 置いていかれるとあせっていた 잘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안타까워했죠 でも違うね 毎日何かが 하지만 달라요, 매일 무언가가 少しずつ変われるんだ 조금씩 변해갔어요
君はいつも笑顔をくれるね 당신은 언제나 웃어주었죠 僕は君に何ができるの 난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ごめんねより伝えたい言葉 미안하다는 말보다 전하고 싶은 말 kokoroからありがとう 진심으로 고마워요
守っている でも守られてる 지켜주고 싶어요, 하지만 지켜지고 있었죠 一緒に支えあおう함께 가봐요 涙が弱さじゃない 눈물이 약함이 아니라고 心の奥で 知ってる 마음 깊이 알고 있어요
一人でいる 二人でいる 혼자 있어도 둘이 있어도 みんなと過ごす それぞれの 모두 함께 하는 모든것들이 時間の中につまっている 시간의 흐름 속에 전해져요 心が震える瞬間 마음이 넘쳐나는 순간 求めている 求められる 추구해요, 추구해줘요 幸せはそこにあるはず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아요 答えよりも 大事なもの 정답보다도 소중한 것 1つ1つ見つかるから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니까
4대강 사업에 대해서, 개인적인 평가로는 실패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번에 홍수 피해가 발생한 사실에, 4대강 사업의 결과물들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앞으로의 치수 정책에 반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4대강 사업의 결과물들을 보강하고 보수해서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인데…
땅과 댐의 구조와 모양이 물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밝히는 건 굉장히 복잡한 작업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원인과 결과가 있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단 하나의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사람들이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 나타난 결과와 과거의 기록만 갖고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를 찾아내야 한다. 그럼, 뭐가 설득력있는 시나리오인지 누가 정하는가? 여기서 싸움이 발생한다.
어떤 전문가가 객관적인 증거를 여러개 가져오고, 증거들을 엮어서 설득력 있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치자. 그럼 사람들이 그걸 믿을까? 4대강 사업에 찬성했던 사람들, 반대했던 사람들, 그 외의 사람들, 각각 자신이 정해둔 답을 놓고 보고서의 내용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보고서가 얼마나 객관적인가, 얼마나 엄밀한가에 상관 없이 자신의 신념과 믿음에 따라 보고서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고서의 제목과 결론만 볼 것이다. 그리고 맞다 틀리다로 다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내용을 좀 읽어보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 이해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보고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보고서가 허술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사람들의 전문지식이 부족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 따지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원하는 결론이 아니라면, 보고서의 작성자가 정치적 반대편에 편향된 의견을 갖고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우길 것이다. 그나마 나은 경우라면 논리와 증거를 들이대면서 주장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우길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전문가의 의견이 제시되었다면 믿어주고, 결론을 믿을 수 없다면 어디가 문제인지 반론을 제기하고, 이런 건전한 토론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물론 어딘가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떤 자료와 나름의 논리로 주장을 할 것이고,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는 또다른 전문가를 모셔다가 주장을 검증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은 경우 객관적 논리나 증거보다는 이미 결론을 정해두고서 그 결론을 지지하는 증거와 논리만 모아서 반박하며, 그 결론을 부정하는 증거는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회적 사건에 대해 자신의 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지만, 불리한 증거까지 소개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私になれキラリとsailor diamonds 나답게 되어, 반짝이는 세일러 다이아몬드 夜明けにうまれるガーディアン 새벽에 일어나는 수호자 私だからかなうよ 나라서 이뤄질거야 Starlight prayers 별빛의 기도자 メイクアップしようよ 메이크업 하자 きらめきは胸に 반짝임은 가슴에 セーラー戦士それは 세일러 전사, 그것은 ムーンライトリアルガール 달빛의 리얼 걸
まつげはふせて無口に 조용히 휘날리는 눈썹 細い足からtears rain 가느다란 다리에서 눈물의 비 あのコの見てた遠い道 그아이가 본 머나먼 길 きっと見つかる強い未来 꼭 찾아낼거야, 강한 미래
ぜんぜんヘイキでもね 전혀 걱정하지 마 ハートはしょげちゃうんだ 낙담해버렸어도 そんな時だれよりも 그런때, 누구보다도 アイビームであなたに 사랑의 빔을 당신에게
私になれキラリとsailor wings 나답게 되어, 반짝이는 세일러 윙 大地をかけぬけるガーディアン 대지를 달려가는 수호자 私だからできるよこのバトル 나라서 되는거야, 이 싸움 メイクアップしてきらめきは額 메이크업 하고, 반짝임을 이마에 セーラー戦士それは 세일러 전사, 그것은 ムーンライトフォーチュン 달빛의 행운
私になれキラリとcatch me kiss again 나답게 되어, 반짝임과 나를 붙잡고, 다시 입맞춰 セーラー服のリボンほどいて 세일러복에 리본을 풀어버리고 私だからいらないもうなにも 나라서, 아무것도 필요 없어 メイクアップその時 메이크업 하는 그 순간 きらめきをあげる 반짝임을 주는 セーラー戦士 세일러 전사 그것은, それはエバーラスティングラブ 영원한 사랑
“夜明けにうまれるガーディアン”의 번역을 “새벽에 일어나는 수호자”라고 했는데, 이것만 보면 뭔가 성실한 느낌으로 새벽에 일어난다는 뜻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건 아니고 별빛이나 새벽녁처럼 어두운 하늘을 밝히려고 나타난다는 느낌이다. 마땅한 번역문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대로 두었다.
세일러문 라이브 쇼에서 주제가로 쓰인 곡이다. 노래는 ‘사에’가 불렀다. 작사는 타케우치 나오코, 작곡은 하바 히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