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이한 실재론
그레이엄 하먼 지음.
H. P. 러브크래프트의 공포소설들은 매우 기이하다. 예를 들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떤 상자 안에 손을 넣었더니, 뭔가 물컹한 것이 잡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컹한 촉감이 손에 들러붙을 때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생각은 그 물컹한 것이 전혀 해롭거나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 것이다.
그의 에세이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미지에 대한 공포가 가장 강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독자에게 마치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서 만져지는 물컹한 물체가 위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서 존재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존재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여러 문학비평가들이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대해 높은 평가를 주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책의 저자인 그레이엄 하먼은 자신의 철학 이론인 객체지향 철학을 사용하여 그의 소설을 분석하고, 어떤 점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잘 쓰여진 소설인지 다른 비평들을 반박한다. 아무래도 작가가 러브크래프트의 팬인 것 같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만한 내용이다. 러브크래프트가 뭘 어떻게 잘 썼다는 것인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뚜렷히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철학책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쉽지 않은 내용이다. 펄프 픽션에 실린 공포소설이라는 아주 저렴한 대중문화에 아주 고상해 보이는 철학의 관점을 들이대서 분석을 하다보니, 두가지 맛이 동시에 느껴진달까. 마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은 다음 곧바로 민트맛 치약으로 양치질을 하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