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우선순위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에 대해, 이란의 무고한 시민이 죽었으니 이스라엘이 나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B는 A가 북한, 중국같은 더 가까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은 신경쓰지 않으면서, 이란이나 이스라엘처럼 멀고 먼 중동의 인권만 신경쓰는 것이 불공평하다며, A가 인권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란-이스라엘 분쟁을 끌어들였을 뿐이라는 취지로 조롱한다.

이 논리는 무한회귀로 갈 수 있는데, 왜냐하면 B가 북한이나 중국같은 외국 사람들의 인권을 신경쓰자면서 대한민국에 있는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은 신경쓰지 않는 점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무슨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종교의 자유가 없어진다거나, 종교를 믿는 것도 천부인권인데 왜 인권을 말살하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랑 인권중에 뭐가 먼저 발생했고, 뭐가 더 기본권이냐 한다면, 나는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내일 판자촌에서 쫒겨나게 생겼는데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고, 다 계획이 있다고 말해봐야 그게 귀에 들어오겠나.

B는 다시 대한민국의 약자에 대한 인권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그럼 약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일방적인 배려와 도움을 받는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공평, 공정, 평등의 가치도 중요한데 왜 그렇게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 쯤 되면, 그럼 북한사람들 인권과 아프리카 사람들 인권과 이란 사람들 인권에 차이를 두는건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다시 짚어주고 싶지만, 일단 넘어가자.

A든 B든, 누구든, 약자를 돕자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다들 거기에 자신의 뜻을 넣고, 거기에 상대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런데, 약자를 돕고 인권을 챙기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의 인권이 더 중요하니까 저쪽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어디에 사는 누구든 인권은 있고, 그중에 돈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그 인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든 이란이든 아니면 어디든, 누굴 먼저 돕느냐, 그리고 그 누구를 먼저 돕기 때문에 다른 누구가 배제되는가는 윤리의 영역을 넘어간다. 이건 단순히 인간이 가진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분배의 문제일 뿐이다. 예를 들어, 돈이 아주 (충분히) 많은 떼부자가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서 한국에 사는 모든 빈자, 약자들을 먹고살 수 있게 해줬다고 하자. 절차적, 법적 문제는 다 때려치고, 그럼 이 떼부자는 북한 사람들을 돕지 않았고 아프리카 빈민을 구제하지 않았으니 나쁜 사람인가? 악행을 저지른 것일까? 그건 아니지 싶다.

그렇다면, 또한, 그 떼부자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을 돕기로 결정했을 때 아프리카의 빈민들, 또는 세계에 넘쳐나는 난민들의 존재를 몰랐을까? 그걸 모르고도 떼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고, 떼부자가 되고나서도 그걸 모르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빈민을 한국의 빈민보다 낮춰 본 것인가? 차별한 것인가? 또는, 실제로 그렇게 낮춰보고 차별했다고 해서, 한국의 빈민을 도운 그의 선택이 악행인가? 어려운 문제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로 한 결정은 윤리적 결정이지만, 그 도움을 누가 받는가 결정하는 것은 윤리적인 기준 외에 다른 가치관들이 결합된다. 비용, 효용같은 객관적인 지표도 있을 것이고, 민족, 인종, 문화, 정치색 같은 주관적인 지표도 있을 것이다. 윤리적 기준 말고 다른 것들을 결합해서 누굴 도와줄지 정하는 것이 비윤리적일까? 나쁜짓일까? 제한된 자원을 갖고, 누굴 먼저 돕고 누구를 나중에 도울지 결정하는 것이, 그 결정에 어떤 기준을 들이대야 하는지에 관한 윤리적 기준이 있을까? 윤리적 기준만으로 도움의 선후를 정할 수 있을까?

심지어, 세상 사람들 중에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서 누굴 돕는다거나 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까지 설득해서 약자와 빈자를 돕도록 하려면, 누굴 도울 것인가에 대해 그 사람을 도우는 것이 어떤 효용이 있는지,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상식적인 윤리로 생각하면, 아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선행을 베풀 때 댓가를 바라는 순간 그 선행은 악행으로 변질되는가?

결국 누굴 먼저 돕느냐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귀결되고, 거기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그것을 악행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그런 결정과정에서 등장한 정치적, 경제적 논리나 근거가 틀렸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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