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백
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2119487_2769.html
외국에는 최저가 차량인 베르나에도 에어백이 6개씩 달려 있고 그랜저 같은 건 6개나 달려 있습니다.
이명박 이펙트
황당한 초대권
청각장애인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집에 갈 수 있게 천원만 도와주세요”
라는 말을 꼬깃꼬깃 접었던 종이에 써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했으나 지갑속에는 만원짜리와 오천원짜리 한장씩밖에 없는지라 도와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거슬러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진짜 거슬러주면 정말 도와주기 싫어질 테니까.
그래서 궁금한 점.
일단, 집에 갈 수 있게 천원만 도와달라고 하였으니 최소한 집에까지 가는데 사용할 교통비가 천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천원은 전철 1구간 값이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 – 올 때는 어떻게 왔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을 예측하며 집을 나선다. 다시말해서,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서는 사람은 없으며, 집을 나설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면 돌아올 것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치매 환자나 기타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은 제외하자. 어쨌건 구걸을 할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집에 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집을 나설 때 자신에게 교통비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나섰을 것이다. 확인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그는 자신에게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교통비가 남아있었다고 착각이라도 하고 있어야만 한다. 만약 집에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의를 좀 더 진행시켜보자. 그는 분명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 볼펜으로 글씨를 적었었다. 물론, 자세히 관찰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인데, 접혀서 생긴 칸마다 한 글자씩 작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글씨의 칸을 맞추기 위해서 접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종이를 미리 준비했다는 의심을 벗기 힘들다는 것이다. 좀 더 관대하게 가정해서 그가 종이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최소한 어딘가에서 펜 한자루와 종이 한장을 구할 수 있었어야만 했다. 이것은 그가 집에서 갖고 나왔거나 또는 근처의 가게에서 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집에서 갖고 나왔다고 가정하면 그는 집에 가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천원을 빌릴 것을 예측하여 준비해 왔을 것이다. 근처의 가게에서 빌릴 수 있었다면, 청각장애인에게 펜과 종이를 빌려줄 정도의 친절한 시민이라면 천원을 빌려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너무 잔인하고 냉정하게 바라본 것이다. 그는 청각장애인이고 우리나라의 수화 보급율은 그다지 높지 않으므로 그가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닐 수 있다. 종이를 잘 접어서 작게 보관하고 다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볼 때 그는 가방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의사소통을 위한 종이를 단 한장만 들고 다녔을 수 있다. 물론 여러장의 종이를 곱게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다니다가 한장씩 꺼내서 펼쳐서 거기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화를 위해서 여러장의 종이를 갖고 다녀야 하는 경우라면 수첩이나 노트를 구해서 들고 다니는 것이 더 편리하다. 내가 본 종이는 수첩크기가 아닌 A4종이의 크기였으므로 그는 수첩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트를 사용할텐데 노트를 넣을 수 있는 가방은 없다. 따라서 그는 그 종이를 단 한장만 들고 다녔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의 결론은 그가 종이와 펜을 미리 준비해서 집에서 나올 수 있는 교통비인 단돈 천원만 들고 집을 나왔다는 것이다. 왜?
한번 생각해보자. 집에서 나와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분명히 그 목표 지점에 볼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볼일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면, 교통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된다. 아무리 사람이 각박해졌다고 하지만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시점에, 그리고 그가 돈이 없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알만한 사람이 천원이 없어서 집에 못간다는데 그냥 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다음에 갚을 것을 약속받고 빌려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만나려고 했던 사람 역시 가난하여 돈을 빌려줄 수 없는 처지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청각장애인은 그 친구를 꼭 만나기 위해서 집에 갈 것을 걱정하지 않고 집안을 탈탈 털어서 긁어모은 단돈 천원을 들고 집을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정도로 가난한 사람이라면, 단돈 천원이 수중에 있을 때 빵을 사먹을까? 아니면 교통비로 사용할까? 가령, 그 친구가 밥을 먹여준다고 하여 천원을 털어 내방역까지 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 해도 친구에게 밥을 먹여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친구가 단돈 천원이 없었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그는 그 볼일이 사람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그럼 세상사중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볼일을 생각해 보자. 집이 아닌 어딘가의 특정 장소에 반드시 가서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 사람은 만나지 않고 그냥 가서 혼자 뭔가를 하다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역시 그런 일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그는 집에서 나올 이유조차 없었다.
물론 장애인이 밖으로 나다니기 힘든 세상이라는 것은 장애인의 교통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 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따라서 내가 결론짓고 싶은 것은, 그는 교통비를 구걸하고 있으나 교통비를 구걸해야 할 만큼 절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 나에게 그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심지어 그가 수화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강력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 단지 수화를 사용할 수 있다면 청각장애인일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 뿐이기 때문이다.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도 있을 수 있으며,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수화를 사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는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어야 할까?
실질적으로, 사람의 감각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그 사람이 실제로 그 감각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지는 다른 사람이 알아낼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감각기관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을 흉내낼 수는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청각이라는 감각은 우선 듣고 해석을 한 후에 사람에게 의식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듣고 해석을 한 후 사람이 변화하지 않겠다고 의식한다면 겉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위의 몇가지 증거에 따라서, 나는 그가 청각장애인으로서 집에 갈 차비가 없어 구걸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의심을 제시하는 바이다.
이 글은 청각장애인을 차별하거나 모욕하는 글이 아님을 밝혀둔다.
덧붙이자면, 어떤 사람을 도움을 요청할 때 실제로 도와줄지 도와주지 않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내 판단에 의해 그를 도울 수도 있고 돕지 않을 수도 있다. 네가지 경우가 있다.
그가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도와준다
그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내가 도와준다
그가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돕지 않는다
그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내가 돕지 않는다.
이 네가지 경우 중에서, 돕지 않는 경우가 돕는 경우보다 좀 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내가 그를 돕지 않은 것인 전체적으로 손해일 수 있다. 사람들 중에서는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면 무조건 도와주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로 돕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중간정도에 있으며, 돕거나 돕지 않는다. 돕지 않았다고 욕할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도와주었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그는 지하철 입구에서 그 쪽지를 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매표소 앞에서 그렇게 들고 있었어야 했다. 그것은 실제로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아마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시너지 이명박
참고 :
http://blog.empas.com/coreai84/26040770
사실 2. 인수위원회에서 각 부처의 장관들을 외국인으로 뽑는댄다.
참고 :
http://blog.daum.net/jinbocorea/6810065
이 두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 외국인 장관의 취임 후 첫 업무는 일단 부서 이름부터 바꾸는 것이겠다. -_-;
이명박, 당신 시너지? 응?
웃는 방법
잊어먹은 사람을
위해 웃는 법을 알려준다.
0. 기본기
웃음은 눈과 입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근육을 조여주는 활동이므로 얼굴에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웃으면서 얼굴에 주름이 생기면 웃는 표정으로 인상이 굳어지므로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다.
1. 눈웃음
눈웃음은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가늘어지고 입꼬리(입의 양쪽 끝)가 살짝 올라간다. 사실 이건 나도 잘 못한다.
2. 미소
미소와 눈웃음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미소는 눈웃음보다 눈에 힘이 덜 들어간다.
3. 환한 미소
일단 미소짓는 상태에서 입꼬리를 더 당겨지도록 해서 치아가 살짝 드러나도록 한다. 앞니가 절반 높이까지 드러나면 된다.
여기까지는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이다.
4. 폭소
“와하하하하!”라고 소리치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뱃살을 진동시키며 웃는다. 중요한 건 “와하하하하!”의 목소리에 저음은 적게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5. 앙천광소
팔짱을 끼고 고개를 뒤로 크게 젖히고 입을 벌리고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소리친다. 보통 미쳤을 때 나타난다. (옛날에는 세계를 정복하면 이렇게 웃는다 하였으나…)
여기까지는 소리가 나는 웃음이다.
하면 안되는 것
6. 비웃음(코웃음)
눈동자는 상대방을 향해 바라보고 코의 방향은 상대방을 향하는 방향에서 약 10~20도 정도 벗어나게 하여 입을 다물고 있다가 “큭!”하고 코로 소리를 내면 된다. 얼굴은 미소와 같은 상태이나 소리가 난다는 점이 다르다.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하면 맞는다.
7. 썩소(썩은 웃음)
얼굴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눠서 한쪽은 무표정, 한쪽은 미소를 지으면 된다. 어느쪽이든 상관 없다. 기분나쁜일이 있을 때 저절로 나오는 표정이지만 의도적으로 하기도 한다.
자. 어쨌건.
잘 안되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양치질할때랑 세수할때 자기 얼굴보고 웃는 것을 연습하자.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웃는 법을 잊어먹은 사람을 위한 얼굴 근육 기본 사용 설명서이다. 다 할줄 아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음을 밝힌다.
오류가 있거나 보완할 점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철학 개론서인데, 정말정말 쉽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준이면 철학을 왜 하는지는 몰라도 무슨 얘기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신, 도덕성, 정치, 인식, 마음, 과학, 예술등의 분야를 나눠서 철학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과 대답에 대한 비판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철학자들만 사용하는 은어(=전문용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만한 일반언어로 되어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에 더욱 더 좋다.
서점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걸 끄집어 내서 사왔는데 아주 보람차게 읽었다.
사는데 절정도 없고 위기도 없고 의미도 없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셋중 한개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일
윈도우즈 비스타 사용중
XP에서 되던건 다 된다. 따라서 더 좋아진건 없다. 다행히도 나빠진 것도 없다.
검색기능의 강화
시작메뉴에서 명령 입력했을 때 바로 프로그램이 뜨는 것은 좋아보인다. 만능검색이다. 비스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이랄까.
화려해진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는 XP보다 화려해진 것은 맞긴 맞는데, 리눅스의 컴피즈 퓨전 따라가려면 10년은 멀었다. 컴피즈 퓨전 데모 동영상 보고 윈도우의 에어로 인터페이스를 보니 허접해 보인다. 시각적 효과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데, 정말 딱 한단계만 업그레이드 되었다고나 할까.
추가:MS에서 기술이 없어서 못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쨌건 내 눈앞에 보이는 에어로 인터페이스는 내가 눈앞에서 본 컴피즈 퓨전과 비교할 때 내 관점에서 보면 10년정도 뒤떨어져 있다.
추가:1주일쯤 쓰다가 지겨워서 껐다.
UAC는 귀찮다.
얼마나 귀찮냐면, 인터넷에서 무슨 액티브X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인터넷 강의 프로그램이라 네트워크 포트를 열려고 시도했다. 일단 여기서 한번 걸려주고, 네트워크 포트를 열려고 시도했으니 방화벽이 뜨는데 방화벽 프로그램을 한번 걸고 넘어간다. 방화벽이 작동했으니 방화벽은 이미 실행된 상태였는데 대체 뭘 막겠다는 것인가. 응? 뭐, 이건 그냥 귀찮기만 하고 불편하지는 않다.
추가:어차피 관리자 아이디로 사용하기 때문에 클릭만 하면 넘어간다. 결국 XP와 비교할 때, 철학적으로 바뀐건 없고 클릭할 횟수가 늘어났다는 점이 달라진 것이다. 그냥 일반 사용자 아이디로 사용한다면, XP와 비교하면, 새로 로그인 할 필요 없이 권한 상승만 하면 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수많은 XP유저들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관리자 아이디로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MS는 유저들에게 어째서 관리자 아이디로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지는 그다지 홍보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보안용 액티브X가 어째서 관리자 아이디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키로거 등의 프로그램이 설치되려면 관리자 아이디가 필요한데, 이미 사람들이 관리자 아이디로 사용하다가 키로거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그걸 막는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 관리자 아이디가 필요해진 셈이다. 결국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를 낳을 뿐인 그냥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대부분의 업무에서 관리자 아이디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일 복사와 이동이 느리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복사하기 전에 예상시간을 계산하는데 예상시간을 계산하는 시간이 실제 복사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길다. -_-;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아주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댓글을 읽어보니 이것은 버그이고, 예상시간을 계산하면서도 복사는 진행중이라고 한다. object님 감사합니다. 🙂
아주 멋진 창 간 전환
그러나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Alt+Tab을 대체하지도 않는 놈이 Alt+Tab이랑 똑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냥 멋있으려고? 빠른실행에 들어가 있으니 사람들이 마우스로 창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좋다. 그러나 어차피 그거 눌러서 뭐있나 목록을 “멋지게” 살펴보려는 사람보다는, 그냥 작업표시줄에서 하나 찍어서 창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냥 멋있으려고 달아둔 기능같다.
추가 : Windows키+Tab을 누르면 이것이 된다. Alt+Tab을 대체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 그러나, 동일 기능이 거의 비슷한 위치에 두개씩이나 있어야 할 이유는? 실수로 Alt를 누르든 Windows키를 누르든 상관 없다는 점 정도?
사이드바
처음 설치하고 가장 먼저 껐다.
RSS피드, 시계, 시스템 모니터 등을 기본 개짓으로 제공하는데, 하루종일 뉴스에 중독되서 사는 사람 아닌한 그다지 의미는 없다. 시스템 모니터야 어차피 버벅댈만한 프로그램 돌릴 일이 없으니 필요가 없고, 시계는 작업표시줄에 있는게 더 낫다. 그리고 사실 버벅댈때만 바라보는 시스템 모니터를 버벅대는것을 모를까봐 달아둬야하나.
*혹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추가해 둔다.
난 리눅스도 한 3년정도 썼었고, 리눅스를 윈도우처럼 쓴다고 놀림받은 리눅스 유저이다. 물론 윈도우를 리눅스처럼 쓴다고 놀림받은 유저이기도 하다.
위의 평가는 전적으로 내 주관적인 평가이고, 기술적인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