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와 비만녀 구별하기

*이 글에서 여성 비하적인 부분이 느껴지시는 분은 바로 댓글 등의 방법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자리에 앉아있다보면 참 난감한 경우가 꼭 있는데, 바로 눈앞에 배가 나온 여자가 서 있는 경우이다.

일단, 임산부, 노약자, 아이를 업은 어머니 등등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 분들에게 내가 자리를 양보하는 건 좋다. 연세가 있으신 분이나 아이를 업은 사람 등등은 아주 구별하기 쉽다.

문제는 임신한 사람의 경우이다. 이게, 요새 비만 문제가 있다보니까 배가 많이 나온 사람



[각주:

1

]



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게 곤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한 사람에게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냥 비만인 사람에게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아무말 없이 내리는 척 하면서 자리를 피하면 되기도 되겠지만, 이 경우 반드시 내가 의도한 사람에게 자리가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약간 곤란하기도 하다.

아무튼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단순히 배나온 여자와 임신한 여자를 구별할 수 있는, 공중도덕 및 보편적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물론 나는 답을 모른다.

  1. 물론 여성의 경우일 것이다.

    [본문으로]

집단지성

위키 백과사전 :

http://www.wikipedia.org


노스모크 :

http://no-smok.net/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될까. 지식이 되기에 필요한 조건은 기록 가능한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기록의 형태는 사람의 기억에 의해 입으로 재생될 수도 있고, 문자가 될 수도 있고, 영상이나 녹음된 것이 될 수도 있다. 사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매체라면 뭐든지 기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어서, 평생 한명이 만들 수 있는 지식의 양이라고 해 봐야 책 여러권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를 찍는다면 수십편 정도? 그리고 아무리 지혜와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후대에 남기지 않으면 결국 그 후대 사람들은 다시 밑바닥부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인터넷에 위키 백과사전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백과사전이 운영되는 구조를 사람들은 집단지성이라고 부른다.

위키 백과사전은 어떤 하나의 항목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내용을 추가하여 그 항목에 대한 설명을 완성해 나가는 운영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어떤 한두명의 전문가가 아니라 그 항목에 대해 추가할 내용이 있는 사용자라면 누구나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 오타나 오류가 발견되면 누구한테 얘기할 필요가 없이, 그냥 직접 고치면 된다. 물론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대충 낙서를 적어둔다거나, 악의적인 목적을 갖고 항목을 엉뚱하게 편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위키 백과사전의 보험은 엄청나게 많은 사용자 그 자체이다. 사용자들의 대부분은 올바른 정보를 원하고, 올바른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오류의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기가 없는 항목의 경우 오류가 몇개월에서 몇년동안이나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요새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전문가가 검증하여 항목을 올리는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키 백과사전의 오류 가능성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위키 백과사전이 정확하지 않다거나 하는 건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집단 지성은 마치 어떤 커다란 백과사전을 사용자들이 만들어 나가는 방법론으로서 다뤄지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시간에 대한 보존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진리와 지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평생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의 양은 한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미래에 전달한다. 이것을 모두 모으는 것이 바로 집단 지성이다. 집단 지성을 이용한 지식 구조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식을 점점 추가하면서, 그 지식을 공부하여 더 추가하는 방식을 통해서 집단 지성은 실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에 대해서,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가 한 멋진 얘기가 있다.

진짜 남자들은 백업같은건 하지 않죠. 그냥 ftp 사이트에 올려서 다른 사람들이 받아서 백업하게 만들어야죠

– Linus Torvalds

그렇다. 진짜 남자들은 백업따위 하지 않는 거다. 진짜 지식인이라면 암기따위 하지 않는다. 그냥 남들에게 알려줘서 남들이 암기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죽음이라는 것 그 자체로서도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죽고나서 내가 해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또한 더욱 아쉬워 하는 법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데, 그 수많은 지식이 단지 나만 알고 끝난다는 것은 억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쉬운만큼 내가 아는 지식을 남들과 공유해야 한다. 예수, 공자, 석가 등등을 보자.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남겼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지식과 지혜가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인공지능의 문제가 있다. 잠시 딴 얘기를 하겠다. 옛날에, 공학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을 시절에 “체스 두는 로봇



[각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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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발되었던 적이 있다. 체스 두는 로봇은 실제로 체스 챔피언들을 하나하나 굴복시키면서 인간이 만든 새로운 생명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나중에 그 실체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뭐냐고? 뻔하다. 그냥 로봇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직접 체스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나 인공생명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진짜 사람이 체스를 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은 월급 받고 연기를 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로봇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은 계속 안에 들어가 있다보니 자신이 로봇인지 사람인지 혼란스럽게 되었다. 원래 체스 두는 로봇이 있는데 자신은 그냥 그 로봇을 작동시키는 연료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오게 된 곳이다.

이 아이디어가 확장된 것이 질문-대답 형태의 지식 공유 사이트



[각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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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궁금한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 다른 누군가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준다. 이때, 질문한 사람은 대답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고, 단지 그는 인터넷에서 대답을 얻은 것이다. 즉, 인터넷은 마치 체스 두는 로봇처럼 인공지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위키피디아 같은 경우에도, 누군가 단편적인 지식을 올리면, 또다른 누군가는 그 자료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잘못된 정보를 고치고, 누군가는 그걸 이용해서 공부한다. 즉, 위키피디아에 틀린 정보가 올라오는 것은 위키피디아의 한계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만약 위키피디아에서 틀린 정보를 발견했다면, 부끄러워 말고 고쳐라. 틀린건 알겠으나 정확한 정보를 모른다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해라. 그것이 바로 인터넷을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당신의 기여가 된다.

  1. “살아있는 인형”이라는 책을 참고하였다.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Naver의 지식in 이 있다.

    [본문으로]

중국 갑니다.

중국, 베이징으로 가요 -_-;

9일부터 1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수학여행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가는건 교수님 모시고 가는 수행조교로서 가는 거죠. 부디 아무일 없기를 바라며.

재밌기를 기대해 봅니다.

시의 의미

오늘, 문득 내 방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펼쳐져 있길래 시를 몇개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몇가지 느낀 점이 있어 적어둔다.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서 시를 읽으면, 시에서는 그가 갖고 있던 고민, 슬픔, 절망, 희망, 사랑, 이런 것들이 가슴 속에 전해져 오는 듯 하다. 참 힘든 시기였다. 윤동주 시인은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고, 부끄러워 한 사람이다. 그가 썼던 시는 그 구절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내 문장력이 약하여 감히 그 아름다움을 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글을 쓸 수 있는지.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현실이 나타나 있고



[각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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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적 상황도 나타나고



[각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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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고뇌도 나타나고



[각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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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의 희망도 있다



[각주:

4

]



.

만약, 그의 시들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읽게 된다면, 그 외국인도 나와 마찬가지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다.

일단,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영시를 읽는다면? 이때 마침 떠오른 시가, 다세포 소녀에서 인용되었던


W


. B. Yeats의 ”




H


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이다.

일단 읽어보자.



H


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W


. B.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자. 어떤가. 느낌이 팍 오나? 아마 웬만큼 영어 하는 사람도 이 시를 보고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도 감동이 전해져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번역은 좀 괜찮다.






는 하늘의 천을 소망한다.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여진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물들인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색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번역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걸 퍼왔기에 누가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일단 시의 아름다움이 전해지는 것 같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의 시는 유명해서 그런지 여러 언어로 번역된 듯 하다. 영어와 일본어는 기사를 찾았는데, 독일어로도 번역되었다고 들은 것 같다.

영어 관련 기사

http://www.koreaembassyusa.org/han_newspress/korea_area_view.asp?korarid=135

일본어 관련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4&n=200602220112

물론 난 한국어를 아니까 윤동주 시인의 시를 원어(=한국어) 그대로 읽을 수 있고, 영어나 일본어로 읽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아무튼, 한국 문학의 번역이 많아진다면, 내가 느낌 감동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1. 대학 노트를 끼고 강의 들으러 간다

    [본문으로]
  2. 육첩방은 남의 나라

    [본문으로]
  3.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본문으로]
  4.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본문으로]

안습! 장래희망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어릴 적에는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대통령이요!”라고 말하는 순진한 어린이가 많았다고 한다. 뭐, “과학자요!”라든가 “장군이요!”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지만.

퀴즈.

장래희망이 대통령이었던 사람 중에 꿈을 이룬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정답 확인은 여기서 :

http://www.archives.go.kr/template/contents/kbHook.jsp?requestURL=http://www.archives.go.kr/kbHook.do

그건 그렇고, 웬 보안모듈을 설치하라고 하는거지? 전엔 괜찮았는데 -_-;

파이어 폭스는 보안에 헛점 있나?

MS익스플로러도 만만치 않을텐데…-_-;

뒷골이 땡긴다는 것

교회에서 나에게 전도하는 일이 하루이틀은 아니건만, 내 본능은 아직도 과도하게 신경쓰고 있는 것 같다. 학교 정문에서 찬양 부르면서 전도지 나눠주며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이 약간 어지러워 지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를 싫어하고 지옥에 가겠다고 말하면 귀찮거나 하도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러는줄 아는데, 이쪽은 진심이다. 한 단어 들을때마다 울컥하고, 어지럽고, 토할것 같고, 죽도록 패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아 오른다. “왜”냐고 묻지 말기를 바란다. 그냥 넘어가면 안되냐고 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게 예수를 배신하라는 권유가 모욕이라면, 내게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하는 것 또한 같은 수준의 모욕이다.

APPC와 영어…

8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포항에서 열리는


The 10th Asia Pacific Physics Conference (APPC10)

라는 국제 학회에 가게 되었다. 연구비가 없는 이유로 하여, 재정 지원을 받고 가고 싶다고 추천서를 교수님께서 보내주셨는데, 그중 한 문장.

his background in physics and English skill are sufficient for participating advanced international activities.

물리와 영어 실력이 고급 수준의 국제 학술 활동에 참여하기에 충분하다…

물리학 공부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8월 중순까지는 고급 수준의 국제 학술 활동에 참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만들어 놔야겠군. 유학 가려면 그쪽에서 외국 아저씨들 안면 익혀놓는것도 중요할 테니깐. 팍! 하고 인상 심어 줘야지.

음. 충분해져야해.

My sweet darlin’ (by Yaida Hitomi)

My Sweet Darlin’

daiya-monde



Words, music & Vocal by: Yaida Hitomi

No good to have lots of beautiful things, because I’m scared to lose them

but…I want you I want you I want you even if you love someone else

I don’t care if you don’t know why the clear sky is blue,

but I want you to know why, why my cheeks are pink…

Darlin’, Darlin’ please come here my baby can’t you see? yes, it’s me

Darlin’, Darlin’ don’t you rememeber? those kisses you get to remember

Darlin’, Darlin’ can I hope your profile, look at me please look at me

I hope all buildings in street in this world will explode them be gone

because there is nothing, then I can find you easily

there is no god because I prayed prayed tell him my heart touch you

I’ve prayed, I’ve prayed

Darlin’, Darlin’ please come here my baby can’t you see? yes, it’s me

Darlin’, Darlin’ whatever happen at that day, you can forget it, I don’t care

Darlin’, Darlin’ everything in my mind, isn’t it just my imagination?

I wish you walking toward me

I tell myself don’t be shy and don’t look away

Without my action nothing’s gonna change

I don’t need a filter in my heart

Darlin’, Darlin’, can I come close to you?

and can I talk to you?

Darlin’, Darlin’, can I hope you love me?

but if you say NO! I will love you.

Darlin’, Darlin’, can I come close to you?

and can I talk to you?

Darlin’, Darlin’, can I hope you love me?

but if you say NO! I will love you.

—————-

내가 들은 곡은 완전 영어 버전 곡이다. 보통 영어+일어 버전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완전 영어로 된 버전의 가사는 어쩐일인지
인터넷에 없다. 듣고 받아적으려고 했는데, 중간에 나래이션 부분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나중에 집에 가서 보충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I don’t care if you don’t know why the clear sky is
blue, but I want you to know why my cheeks are pink” 라는 부분. 안타깝게도, 난
하늘이 왜 푸른지 알지만 누군가의 뺨이 붉어지는걸 몰랐다.

OS는 선택사양이오…쫌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7043002010932718002

디지털 타임스에서 나온 기사를 읽어보자.

한 노트북PC 사용자는 “운영체제도 탑재하지 않고 판매하는 PC는 사실상 불법복제를 방조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브랜드PC
업체들도 번들 프로그램을 옵션으로 제공하고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얘기가 있는데, 이 사용자, 리눅스는 운영체제라는걸 모르나보다. (알 수도 있겠지만)

불법복제를 하는 건 사용자들의 의식 문제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운영체제 없이 샀을 경우 윈도우를 불법복사해서 설치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건 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리눅스같은 오픈소스 운영체제들은 아무리 복사해서 깔아도 불법이 아닌걸.

뭐, 뒤에 “…번들 프로그램을 옵션으로 제공하고…”라는 말은 공감하지만.

리눅스를 깔아서 팔아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제발 윈도우를 빼고서도 팔았으면 좋겠다. 기사에 나와 있듯이 진짜 40만원은 싸게 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라면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원격 복구가 된다거나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모두 깔려 있는게 좋겠지만, 운영체제부터 입맛대로 골라쓰고 싶어하는 전문가들까지 쓰지 않을 프로그램을 돈 주고 산다는 건 웃기는 거다.

애초에 모든 컴퓨터 가격에 윈도우를 포함시킨 채 운영체제로서 윈도우를 기본제공하니까 윈도우가 공짜인줄 알고 불법 복사가 만연하게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윈도우를 별도 구매하게 했어봐라. 누가 공짜로 알겠나.

독의 근원

얼마전, 친구와 맥주를 마실 때 얘기였다. 그냥 사는 이야기 하다가, 성격과 사상과 정체성과 자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사실, 내가 대화하는 스타일은 굉장히 싸가지 없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내가 내뱉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난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었는데,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듯이, 내가 얘기하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다. 생각해보니, 선후배 막론하고 나한테 말버릇 고치라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 그게 잘 고쳐지진 않는 것 같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듯 싶다. 이 점에 대해서 나 스스로는 또한 적절한 핑계를 내세우게 되었는데, 이걸 두고 자기합리화라고 하나보다. 물론 이런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한다고 그냥 넘어갈 성격의 단점은 아닌 것 같고, 꼭 고쳐야 할 것 같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더 잘 말할 수 있을테니까.

난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즉, 어떤 사건이 미치는 미래의 영향을 최대한 나쁘게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이정도면 염세주의, 패배주의,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런것과는 다르게 나 자신은 상당히 낙천적인 편이다. 내가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유는, 과연 상황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습관적으로 걱정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인 발언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난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악이 아닌 지금은 당연히 해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능력과 상황이 허용하는 최악을 바라보고, 그정도까지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만큼 악조건에서 성공한다면 악조건이 아닐때도 성공한다는, 나름대로의 희망과 자신감을 얻고, 그 속에서 나를 발전시켜 나간다. 문제는, 이걸 남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적용하게 되면 아주아주 안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넌 지금 상황이 안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근데 넌 이보다 더 안좋을 때도 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이런 상황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물음표까지만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더 듣지 않으려고 한다. 말하는 습관을 고쳐서, 앞에는 다 빼고 물음표 뒤의 본론만 얘기하도록 노력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 자신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때는 비관적으로 얘기해 버리는 것처럼 들리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내 속에 우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우울함의 근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랑 여자친구가 없는 것인데, 뭐 이정도 두가지는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외에 우울함에 대한 다른 원인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냥 그런거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자.

나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사생활은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가진 능력과 그 사람들이 성공한 부분 사이의 연계성에 있어서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성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성공적인 사람이 있다. 가령,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열심히 학원을 다녀서 토익 점수를 900점을 받았다고 하자. 그럼 난 그 사람을 보고서 “저 사람은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데 공부해서 900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저 사람보다 영어를 못하지도 않고, 능력이 그다지 딸리는 것도 아니니까, 저 사람이 한 만큼만, 그만큼보다 좀 더 많이 공부한다면 나 역시 토익을 900점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꽤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과 나를 비교할 때, 진짜 천재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그런 천재들은 어차피 나랑 경쟁할 사람들이 아니라 괴물급 인재들과 경쟁할 사람이므로 나랑 상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열등감도 없다. 뭐, 이정도면 나름 괜찮은 사고방식 아닌가? 하지만 이 사고방식을 입밖으로 꺼내게 되면, 갑자기 나는 비교하게 되는 거고, 비교의 대상이 된 사람은 상당히 기분나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을 다른 두명을 비교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욱 안좋아진다. 이런 사실로부터 배운 점은, 남을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비교하는 건 그냥 속으로만 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할 ‹š는 미리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준 후에 얘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형이 하는 얘기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라는 거랄까.

부정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 비관적인 생각, 나쁜 생각, 이런 것들은 머릿속에 항상 돌아다닌다. 왜냐하면, 말했듯이 난 항상 최악을 상상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난 그런 생각들로부터 희망과 자신감을 만들어 낸다.

얼마 전 이공계 장학금 신청했다가 선정되는 걸 거의 확신했는데 떨어진 적이 있었다. 나름 정신적으로 충격좀 먹고, 한시간 정도 울적해 있다가, 곧 회복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뭐, 어쩔거야.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그냥 공부나 하는 거다.

그치만 머릿속에 좀 복잡해지기는 한다. 요점정리가 잘 안되면 난감하기도 하다. 뭐, 그래도, 덕분에 세상 재밌게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