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판타지 소설을 하나 써보고 싶었다. 사실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의 4년정도 판타지 소설을 쓰는데 심취하여 책 10~15권 분량의 단편, 장편 소설들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쓴 글들을 지금 다시 읽어보면 굉장히 유치하지만, 당시의 내 정신세계를 탐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고, 내가 혹시라도 잊거나 잃어버릴 수도 있는 나의 순수함을 지키는데 유용한 도구일 수 있기에 아직도 잘 갖고 있다. 어딘가에 공개해두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보내줄 의향은 있다.

내가 쓸 판타지 소설은, 아마 평범한 다른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용, 엘프, 드워프, 마족, 신족, 인간 등등이 사는 세상이고, 사용하는 언어는 물론 한국어다 -_-; 엘프어나 용족어, 그런거 모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판타지 소설의 백미인 마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가장 큰 상상력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물론 다른 소설적 장치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라 상상력이 중요한 요소겠지만 말이다.

판타지 소설은 완전 허구인 세상을 다룬다. 하지만 결국은 어떤 “정신적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 소설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판타지 소설의 제목은 다 쓰고나서 정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주 내용이 되겠다. 나는 이 소설에서 뭔가 특별히 재미를 추구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다만 내가 상상하는 어떤 세상, 이상향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에 나는 나의 몽상들을 글로 풀어야 한다.

내가 이 소설에서 지키기로 생각한 유일한 규칙은 논리성이다. 딱딱하게시리 무슨 논리성을 소설에서 추구하느냐고 물어보겠지만, 나는 나의 상상속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인과율이 지켜지기를 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Success)

성공하고싶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일 것이다. 물론 그런 욕심 없이 자신의 현재 위치와 상태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있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성공을 거두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했다면 세상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나 성공하지는 않는다. 무슨 광고글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사실이다. 분명히 현재 실패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일부러 실패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신만큼은 성공하기를 바랬지만, 그중에는 능력이 부족해서, 운이 없어서, 자원이 부족해서,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실패하는 사람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은 실패한 사람을 잘 봐주지 않는다. 정부의 복지 정책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실패할 수준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성공하고 싶어서 여러가지 성공 방법에 관한 글을 읽어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깊은 것은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가장 치열한 생존 경쟁이 일어나는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명체들이 갖게 된 속성, 특징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자연에서 가장 치열한 생존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계의 경쟁은 적어도 실패가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실패해서 굶어죽는 일은 있어도 실패해서 죽는 일은 인간계에서는 더이상 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전쟁은 제외하자) 하지만 자연에서는 여전히 실패가 죽음과 자손 번식의 실패로 이어진다. 토끼가 여우에게 ?길 때, 도망치는데 성공하면 토끼는 살아남아서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고 실패하면 바로 여우의 밥이 된다. 반대로 여우가 사냥에 성공하면 살아남아서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지만 사냥에 계속 실패한 여우는 굶어 죽게 된다.

성공에 필요한 조건은 자연에 살아남은 동물들과 멸종된 동물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고 멸종한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만약 경쟁자가 없으면 아무런 발전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닷속 깊은곳에 있는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곳에서 사는 세균들이다. 이들은 주변 환경에 적응한 이래, 다른 생물들이 살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수억년간 거의 변화없이 살아오고 있다.

먹이 사슬의 고리에서는, 어느 한 고리의 개체가 급격히 변화할 경우 먹이사슬에 얽힌 동물들 전체가 휘청하는 일이 벌어진다. 즉, A-B-C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B가 급격히 늘어난다면 A가 급격히 줄어들고 C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물론 가만히 놔두면 급격히 늘어난 C가 B를 줄이고 B의 먹이인 A가 줄어들어서 균형을 찾아오겠지만, 만약 너무 변화가 커서 A가 완전히 멸종해버렸다면 B와 C도 연쇄적으로 멸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실제 인간의 경제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아니, 곧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무슨 얘기냐하면, 석유자원의 얘기이다. 화석 연료 매장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인간의 연료 사용량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니 A가 급격히 줄어들고 B가 급격히 늘어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C는 그에 따라 발생된 공해에 해당한다. 공해는 인간의 숫자를 줄이는 요인이 될 것이므로 인간의 개체 수는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C가 인간의 숫자를 줄이는 속도보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고갈시키는 속도와 인간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이 화석연료를 사용할수록 공해 역시 늘어나니까 함께 늘어나고 있긴 하다. 이러한 것이 만약 어떤 임계점을 넘게 된다면, 인간은 단숨에 확 줄어들어 버릴 수 있다. 다행히도 A가 줄어든다고 해서 B의 먹이인 에너지 자원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 연료를 개발하고 있으므로 그다지 충격이 크지는 않을 수 있다. 공해가 인간을 잡아먹는 속도와 인간이 공해를 줄이고 연료를 늘이는 속도중에 어느것이 더 빠르겠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모든 생물은 주변 환경에 적응해서 자라나가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두가지 감정이 “모험심/호기심”과 “소심/조심성”이다. 만약, 모험심이 없다면 자신이 정착한 자리의 자원이 모두 떨어져가도 다른곳으로 떠날 수가 없다. 따라서 멸망한다. 반대로 조심성이 없다면 자신이 다른곳으로 가면서 발생하는 위험 요인을 무시하여 멸망한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미네랄 멀티를 뜨면서 본진을 충실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끄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성공해봐야 “아, 그랬구나” 정도일까? 하지만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몇가지 성공 비결을 응용할 수 있다면, 어쩌면 성공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 풀리는 문제

마틴 가드너의 “아하!”라는 책에 보면 위와 같은 원통형 카펫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가 나온다. 주어진 정보는 단 하나인데, 안쪽 원에 접하는 접선의 길이가 100미터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사실만 알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럴까?

원래 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들 알다시피 바깥쪽 원의 넓이와 안쪽 원의 넓이를 구해서 빼줘야 한다. 원의 넓이는 원의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리고 한가지, 원에 접하는 직선은 반지름과 그 접점에서 수직으로 만난다는 것. 그럼 이제 우리는 직각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 접선의 절반과, 작은 원의 반지름과, 큰 원의 반지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접선의 절반 길이의 제곱과 작은 원의 반지름의 제곱을 더하면 큰 원의 반지름의 제곱이 나온다.

이 말을 바꾸면, 큰 원의 반지름의 제곱에서 작은 원의 반지름을 빼면 접선의 절반 길이의 제곱이 나온다는 것이다.이렇게 놓고서 각각의 항에 원주율을 곱하면? 우리가 원하는 값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답은 2500pi가 된다.

이 문제야 웬만큼 잔머리 굴릴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풀 수 있다. 중요한건 힌트가 어떻게 주어져 있는가이다. 힌트가 “이걸 해봐라” 라든가 “이런것을 이용하면 된다”가 아니라 “이 문제는 쉬운 문제다”라는 것이 힌트라는 점.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왜 그것이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다. 내 주변에는 머리가 아주 좋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정도의 천재는 아니다. 그냥 탁월하게 좋은 것일 뿐 나보다 아주아주아주아주 좋은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조차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쉽다”는 힌트가 주어지기 위해서는 이 문제는 정말로 쉬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문제를 어렵게 해석하는 한 내게는 해결 방법이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쉽게, 가장 간단하게, 단순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는 원론적인 부분부터 돌아가자. 대부분의 수학 문제는 주어진 수준에서 그보다 더 어려운 수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중학생 수준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힌트라는 것은 “그게 무슨 힌트냐!”라고 출제자를 원망하기 이전에 자신이 가진 기초적인 지식을 다시한번 돌아봐야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영재교육 열풍?

요즘, 회사에서 시켜서 전국 영재교육원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은 25개인가 28개인가 되고 각 시, 군 교육청 단위의 영재교육원은 250개인가 된다. 그런 속에서 1년에 수만명의 “영재”라는 애들이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쁜게 없다. 뭐 나도 어릴때 좀 더 난이도 있는 걸 배우고 좌절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으니까.

문제는 열성 학부모들이다. 자기 아이가 영재교육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애가 바보판정을 받은걸로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굳이 어딘가의 영재교육원에 넣으려고 한다. 물론 자기 자식이 머리 좋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째지지. 문제는, 아이들은 그냥 자기 나름대로 흥미있는게 있고 관심있는게 있고 좋고 싫은게 있는데, 그걸 부모의 관점에서 재단하려 들면 애 하나 버리는 길이다. 얼마전 인하대 물리학과에 들어간 송군의 경우도 아이가 좋아하는걸 부모가 좋아하게 놔뒀다. 일부러 더 시킨다기보다는, 알아서 잘 하니까 해보겠다고 도전하는 선에서 지원해준 것이다.

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하라고 시키는 건 모두 나쁘다. 그리고, 아이는 모든 면에서 만능이 아니다. 어릴때는 못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어쩌다 특정한 영역에 두각을 나타낸다고 해도, 그게 아이가 좋아하는 걸 수도 있고 싫어하는 걸 수도 있다. 어릴때 말 빨리한다고 언어에 재능이 있고, 숫자 빨리 익혔다고 수학에 재능이 있고, 뉴턴의 운동법칙을 술술 외운다고 해서 과학에 재능이 있는건 아니다. 그럼 난 겔만이게?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은 7개 언어를 모국어처럼 말하고 수학과 과학을 매우 잘한다)

부모로서의 역할은 자식이 혼자서도 밥벌어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키워놓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가 늙었을 때 자식이 부모를 버리지 않도록 키우는 것이다. 이정도면 부모 역할은 충분하다. 나머지는 각자, 아이가 가진 꿈과 재능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이가 남들 보기에 바보같아보여도, 그걸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부모가 도와줘야 아이가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장점과 단점은 모두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어서, 장점이 아무리 좋아도 단점이 치명적이면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성실해도 실수를 자주 한다면 성공하기가 힘들것 아닌가?

영재교육이란 원래 학교 수업이 너무 쉬워서 지겨워하는 애들을 위한 수업이다. 그런 애들은 그냥 빨리 배워서 사회에 나가서 빨리 직장 잡고 일 시키면 된다. 그걸 왜 부러워할까? 그게 부러워서 “학교 수업이 너무 쉬운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과외비와 학원비와 유학비를 부담하면서 그렇게 아이를 고생시키는 걸까? 아이는 너무 빨리 크지도 않고 너무 천천히 크지도 않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자라지도 않고 모두가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빨리 크고 조금 늦게 크는 아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다 커서는 거의 다 거기서 거기다. 다 자기가 커야할 만큼은 큰다. 그걸 조금 늦게 큰다고 조급해 하면 안되는 일이다.

그렇게 어릴때 죽어라고 수학, 과학 공부하고서 “이제 지겨워!”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결국 수학, 과학을 포기하고 문과로 한다. 하지만 문과는 이미 “인문학의 위기”. 그곳엔 길이 없다. 인문학은 위기니까 인문계에서 돈 잘 되는 행정, 법학, 사범대, 경영 등등으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행정고시나 임용고시나 사법고시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순간 수년의 인생을 포기하고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 경영은? 그곳엔, 문과로 와서 두번다시 펼쳐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수학이 당신을 기다린다.

수학, 과학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위의 사정을 아는 아이들은 이공계로 오겠지. 하지만 이공계로 와도 별로 희망은 없다. “이공계의 위기”는 이미 고등학생들을 짓누르고 있다. 더군다나 수학, 과학은 무작정 외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이들은 돈 잘 되는 의대로 자기 진로를 결정한다. 의대로 가지 못한 애들은 공대로 가고, 공대도 못가면 재수를 한다. 물리학과로 와서도 대부분 공대로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 부전공 등으로 아예 그쪽으로 빠지거나, 완전히 다른 일을 하거나 하지 대부분이 물리학에 자신의 직업을 걸지는 않는다. 왜?

부모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은 부모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가치가 바로 최고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모두가 돈을 바라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건 문제가 있다. 100명중에 1등만 살아남고 나머지 99명이 죽는 상황에서, 1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건 바보짓이다. 그 100명의 집단을 빠져나와서 혼자 살아남으면 된다. 왜 모두가 경쟁하는 곳에서 같이 경쟁하고 있는거냐. 버스 터미널의 표파는 곳에서 항상 자기가 서 있는 줄이 가장 늦게 빠진다는 걸 알면서, 왜 자기 자식은 “성공”이라는 곳으로 가는 표를 굳이 “모두가 다 서 있는 가장 긴 줄”의 맨 끝으로 보내려고 하는 거냐. 다른데는 표 안판대? 성공으로 못간대?

생각을 바꿔라. 조급해하지도 말고, 느긋해하지도 마라. 이래뵈도 부모쯤 됐으면 다 큰 어른이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지, 왜 남들이 좋다는대로 다 따라가는걸까? 남들이 좋다는대로 다 따라가는 것 자체가 나쁜일은 아니다. 문제는, “모두가 다” 따라가면 그 “좋다는 곳”에 사람이 몰려들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그 결과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모두가 “하나의 길”로서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모두가 “각자의 길”로서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지금처럼 경쟁이 심각해질 필요도 없고 교육정책이 실패할 이유도 없으며 무능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짤릴 일도 없다. 좀 생각좀 바꿔라! 자기 자식이 남들 안하는 걸 하겠다고 우기면 그냥 하게 놔둬라. 굳이 남들이 몰리는 “성공이 보장되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 길은 남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식이 남들 다 하는걸 굳이 하겠다고 한다면 뭐 그냥 놔둬도 상관 없다.

덧붙임 : 위의 글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되는, 자신의 열정과 진실로서 자기 전공을 선택한 건실한 청년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어느쪽이되었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 괜히 고생하는 사람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그 고생이 괜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극이 하나뿐인 자석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전자기학 이론은 맥스웰이 쿨롱, 암페어, 패러데이의 법칙을 모아서 만든 맥스웰 방정식으로 표현됩니다. 신기하게도, 맥스웰 방정식은 자석은 반드시 극이 2개가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죠. 1개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걸까요?

극이 한개뿐인 자석은 물리학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고, 있을 법도 한데 발견이 안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맥스웰 방정식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모두 4개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개는 “균질한 방정식”이고 나머지 2개는 “균질하지 않은 방정식”입니다. 균질하다는 것은, 가령 ax=0과 같이 x가 만족하는 방정식이 0이 되는 것이고, 균질하지 않다는 것은 ax=b와 같이 x가 만족하는 방정식이 0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균질하지 않은 방정식에 들어간 b와 같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전기 전하”에 해당합니다.

만약, 균질한 방정식에 있는 0 대신에 다른 숫자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자리에 0이 아닌 다른 숫자가 온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전하”에 해당하고, 그 결과로서 반드시 “극이 1개뿐인 자석”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현재 우주에서는 극이 1개인 자석은 없거나, 혹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균질한 방정식 부분의 우변은 0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겠죠.

처음에, 극이 하나뿐인 자석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과학자인 에렌하프트입니다. 그는 1945년에 피지컬 리뷰지에 자신의 실험에서 그것이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험은 설계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극이 하나뿐인 자석에 관한 이론을 가장 처음으로 완성한 사람은 유명한 물리학자 폴 디랙입니다. 1931년에 최초로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 1948년에 완성된 논문을 발표했죠. 이 논문에서 그는 만약 자기 전하가 존재한다면 그 크기는 전기 전하의 역수에 비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기 전하는 대단히 작기 때문에 자기 전하는 반대로 대단히 커지게 되겠죠. 대략 10000배 정도 커지게 됩니다. 또한, 자기 전하가 우주에서 어떻게 움직여 나가게 되는지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실험들이 계속되었지만 그 결과는 극이 하나뿐인 자석의 존재를 부정하는 실험뿐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2년에 이탈리아의 MACRO 입자 검출기에서 관측된 결과인데, 그 결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극이 하나뿐인 자석 입자가 우주에서 날아올 확률이 1년에 0.00000001개 정도, 즉 1억년~10억년 정도에 지구에 1개가 오는 정도의 결과라고 합니다. 또한, 빅뱅 이론과 인플레이션 이론으로부터 예측되는 밀도가 우주 전체에 1개 정도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아무래도 못보고 지나갈 것 같군요.





블루 오션?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옛날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블루 오션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블루 오션이란, 아직 포화가 되지 않은 시장을 뜻하는데 이미 다른 사업자들이 모두 장악해서 더이상 먹을 것이 없는 레드 오션과 대비된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나라고 해서 블루 오션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이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냥 몇자 주절대볼 것이 있어서 몇글자 적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컴퓨터가 없을 때는 그냥 살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최초에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그것을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팔기 시작했을 때, 애플은 이미 그들의 블루 오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미 가득찬 시장을 탈출해서 아직 아무도 진출하지 않은 사업을 새로 시작해버린 것이다. 블루 오션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아무도 없으므로 나혼자의 독점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단점은 의외로 심각한데, 앞서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최초 시장 진입을 위한 모든 노력을 전부 나혼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디 참고할만한 것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으며 소비자의 요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대로 닫혀버리는 곳이 바로 블루 오션인 것이다. 더군다나 블루 오션에서 나혼자의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점점 커지면 다른 사업자들이 진입하기 위해서 도전한다. 만약 다른 사업자들이 나를 벤치마킹해서 나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면, 이건 말 그대로 죽쒀서 개주는 형국이 될 것이다. 즉, 블루 오션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내가 그곳에 처음 도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할뿐더러 어떻게든 개척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놓고나서도 독점을 놓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블루 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초기 사업자가 되어서 새로이 개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장을 급성장 시키면 안된다. 시장의 성장 속도가 맘대로 조절되는 건 아니지만, 시장이 급성장하면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초기에는 가격이 올라가서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결과로 충족되지 못한 수요에 순식간에 다른 후발 사업자들이 들어앉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의 성장속도를 잘 조절해서 내가 공급할 수 있는 속도만큼, 그리고 내가 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속도만큼 시장을 성장 시켜야 한다. 마냥 시장만 크다고 블루 오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건 아니다. 수영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수십미터를 잠수할 수는 없으며 처음에는 얕은 곳에서 물장구치는 것 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블루 오션을 찾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그만큼 지켜내는 것은 훨씬 힘들다. 예를들어, 인터넷 전화라는 엄청나게 혁명적인 개념을 만들어서 수익을 창출해 냈던 다이얼패드도 지금은 망해서 사라져간 과거의 회사가 되었다.

만약 내가 블루오션에 진출하고 싶은데, 누군가 다른 사업자들이 그곳에서 이미 경쟁하고 있다면 그곳에 발을 들이지 마라. 그 경쟁자들을 전부 눌러버릴 자신감과 작전이 없다면 결고 그런 피터지는 블루오션에 진출해서는 안된다. 그곳은 그들이 흘린 피 때문에 곧 레드오션이 된다.

뭐, 다 좋다. 그럼 블루오션을 만드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나라고 딱히 뭘 아는 건 아니고, 더군다나 내 전공과는 아무 상관 없는 분야지만 그냥 몇자 헛소리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미친짓이다.

2. 지도가 한장 필요하다. 시장에 있는 물건들의 지배구조 지도인데, 모든 것에 대한 지도까지는 필요 없을 것이다. 내가 개발할 분야에서, 현재 무엇이 잘 나가고 있고 무엇이 잘 나가지 않고 있는지 파악한다.

3. 잘 나가지 않는 것들을 개선해서 더 잘나가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보는것도 좋다.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 보다는 개선/개량이 더 쉬운 과제가 된다.

4. 아니면 창의력을 발휘하여 시장의 지배구조 지도에 없는 상품을 하나 만들어 낸다. 사실 이게 말로 쓰면 쉬운데 아주 그냥 미친듯이 고민해야 허접한 아이디어 하나 나오는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이 작업은 브레인 스토밍 정도로는 안되고 브레인 허리케인 급의 초거대 상상력 실험을 해야 한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마인드 맵 트리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말로 쓰니까 무진장 쉽다. 자, 다들 성공하기 바란다.

라스 만차스 통신

*스포일러 있음

라스 만차스 통신 : ISBN = 89-952828-9-4

16회 일본 판타지 소설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 “링”의 작가인 스즈키 코지가 “심사위원이 된 이후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는데, 나 역시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이다. 판타지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는 진짜 사람같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런 류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전개되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기묘한 대립 구도에 구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기묘한 대립 구도는 소설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얽혀있다. 기묘하다는 이유는, 명백한 대립 관계이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투쟁의 감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대놓고 싸우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러한 분노를 마음속에 눌러담고 있던 주인공이 완벽하게 왜곡된 세상을 향해서 확 저질러 버린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어느쪽이 더 좋은 세상이었는지는 모른다

. 다만 지금 있는 상황 자체가 싫었기에 분노를 폭발시킨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은 너무나 부조리한 일이 많이 있고, 말도 안되는 일이 진짜로 일어나고 있으며, 나쁜놈들이 득세하는 시대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훨씬, 명백하게, 객관적으로 옳고 착하며 바르고 권장할만한 길이 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을 다 바꾸고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폭력적이며 틀리고 나쁘며 아무도 권장하지 않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떤 현실이든간에, 바꿔야 할 부분이 있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죄수의 딜레마, 세번째

죄수의 딜레마를 주제로 한 세번째 글이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수능 시험은 대단히 쉬운 시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매년 문제를 새로 만들어서 내고 있으며, 매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흔치 않은 유형의 시험이라고 본다. 어째서 매년 난이도 조절이 실패하는 걸까? 문제 내는 선생님들이 바보일까? “이정도는 풀겠지?”라고 생각한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걸까? 짧게는 고3의 1년을, 길게는 초등학교 입학부터의 12년을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만을 해 온 애들이 전부 바보인가? 아니면 명문대학은 그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천재나 행운아들만이 가는 곳인가? 매년, 대학교 입시 요강이 발표되면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

어쩌라고…

문제의 난이도는 어떻게 하면 적절히 조절될까? 출제위원-수험생 한명 사이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출제위원이 문제를 쉽게 내면 수험생의 점수는 높을 것이고 어렵게 내면 점수는 낮아진다. 출제위원의 고민은 다음과 같다.

“아니, 이걸 내면 애가 너무 점수가 높고, 저걸 내면 점수가 너무 낮아지잖아? 어쩌지?”

반면에, 수험생의 고민은 이렇다.

“공부를 많이 해야만 점수가 나온다”

즉, 출제위원은 점수가 너무 높아도 고민이고 너무 낮아도 고민인 것이다. 예를들어, 100점 만점인 시험에서 자신이 낸 문제를 푼 학생이 50점을 받아야 자신이 낸 문제가 “잘 출제된”문제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50점에서 멀어질수록 괴로워진다. 수험생은 100점에 가까울수록 좋고 멀어지면 괴롭다. 이것은 연속 변수와 관련된 딜레마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분석하기는 곤란하지만, 개념적인 이해를 해볼 수는 있다. 수험생이 0점 근처의 점수를 받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이다. 따라서, 이렇게 되는 일은 모두 막기 위해서 노력한다. 즉, 출제위원이 너무 어려운 문제를 내는 일도 없고 수험생이 너무 공부를 안하는 경우도 없다. 이 협동은 수험생의 점수가 50점을 넘어가는 순간 깨진다. 수험생은 여전히 점수가 높을수록 좋지만 출제위원은 이제 수험생이 점수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험생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험생은 낮아지는 점수를 막기 위해서 더욱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과정이므로 수험생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문제는 어려워지고, 문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수험생은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결국 피터지는 수험 전쟁은 단 한명의 학생이 있어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험생은 한명이 아니라 집단으로 두고, 단 하나의 점수인 50점이 아니라 “표준정규화하지 않아도 표준정규화된 것 같아 보이는 성적분포”를 목표로 한다면 상황이 비슷해진다.


정규분포란?

이것을 죄수의 딜레마 문제로 표현하기 위해서, 3명의 딜레마를 고려해 보자. 한명은 출제위원이고, 두명은 수험생이다. 다시한번, 앞서 출제위원-수험생1명의 딜레마와 같은 방법으로 분석해 보자. 두 학생의 평균 점수가 50점에 가까울수록 출제위원은 좋다. 두 수험생은 자신의 점수가 높을수록 좋다. 그다지 교육적이지는 못하지만, 수험생은 서로에게 공부를 하도록 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석하면 될까?

두 수험생의 점수가 둘 다 50점을 넘지 않는다면 출제위원은 수험생의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수험생들은 굳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적당히 공부해서 50점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느 한쪽이 50점을 넘었다면 어떻게 될까? 출제위원은 평균점수가 50점근처에 있는 한 결코 난이도를 조절하지 않을 것이다. 잘 내고 있는데 뭐하러 괜히 수고스럽게 난이도를 바꾸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두 수험생은 피말리는 경쟁을 하게 된다. 내가 쉽게 점수를 올리려면 난이도가 쉽게 나와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수를 올리게 된다면 난이도는 어려워진다. 그럼 나 역시 피터지게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따라서, 나만 공부하고 저쪽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평균점수는 50점에 가까울 것이므로 난 손쉽게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공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공부를 못하도록 방해해야한다. 이상한 결론이라고? 당연한 결론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바보가 아니므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은 내가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쉽더라도 상대방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따라서 문제가 쉽건 어렵건 내가 공부하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방해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도 문제다. 그럼 성적이 서로 잘 올라가서 문제가 어려워지므로 공부는 힘들어진다. 반대로, 서로 공부를 안하기로 연합하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 최소한 50점까지는 성적이 떨어질 것이므로 각자 손해다. 이때 한쪽이 배신 때리면 다른 한쪽은 작살나는 거다. 따라서 이런 연합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적절한 난이도 수준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과의 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심지어 문제가 어렵지 않아도 대학가기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만약,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어렵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는 평균점수가 내려가게 될 것이므로, 서로가 방해하는 시간보다는 공부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공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출제위원이 괜히 문제를 쉽게 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서로를 방해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공부하기는 상대방의 방해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문제가 쉽게 나오건 어렵게 나오건 대학가기는 힘들고 공부하기는 어려우며 매년 수능 난이도 조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건 100만명의 수험생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균형을 이뤄서 모두가 잘 되는 길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공부를 똑같이 해서 잘 되기로 합의했다면 단 한명이 배신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에 모두가 배신하고 피터지게 공부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수능만을 분석했지만, 수능뿐만이 아니라 수험생들이 경쟁하는 모든 입시 시험에 같은 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대학가기가 힘들고, 수험생들이 고생하는건 대학교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어서도 아니고, 논술 비중이 커져서도 아니며, 학생부 위주의 선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도 아니다. 대학에 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수험생들이 피터지게 고생하고, 점점 더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수험생들의 피터지는 경쟁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대학교”로 한정해 버린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이 분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대충 배워서 분석한 사견임을 밝힌다.

누구나 읽어봤으면, 경험했을, 학창시절 이야기

꽤 독한 글을 읽었다. 나도 고등학교, 중학교때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었다. 지금도 그 관념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학교라는 집단은 어째서 획일화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대학 와서 일탈하다가 취업난에 시달리지. 물론 일탈 안하고도 취업난은 심각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독한 글이 심기를 거스를 것 같다면 읽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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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불태워라!

별들중에서, 크고 무거운 별들, 즉 불태울 수 있는 연료를 더 많이 가진 별들이 오히려 수명이 짧다는 걸 아는지? 크고 무거운 별들은 수소 핵융합을 훨씬 더 빠르게 일으키기 때문에 가벼운 별들보다 훨씬 빠르게 연료를 소모해서 아주 찬란하게 빛나다가 수십억년만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블랙홀이 되어 우주에서 안보이는 녀석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가벼운 별들은 천천히 연료를 소모해서 수백억년 걸려서 불타고 나중에 살짝 폭발해서 백색 왜성이 된다.

젊음을 불태우는 일은 사실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젊을 때 자신의 열정을 불사르며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 하지만, 주의사항 – 너무 빨리 불태우면 나중에 더이상 태울 열정이 남지 않는다는 점.

남겨놓고 태우자. 아니면 그렇게 빠르게 뜨겁게 불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열정을 가득 쌓아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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