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한계를 넘어가기

관계(Relations)

사람들은 항상 어떤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곧 그 집단에 아는 사람이 적어도 1명 이상 있다는 뜻이 된다. 이 정의에 의하면, 2명만 있어도 집단이 만들어진다. 또한, 모든 집단은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내가 아는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두 집단을 연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계의 연결은 사회 전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네트워크 이론에서 다루는 연구 분야중의 하나이다. 내 전공은 네트워크 이론이 아니므로 자세한 얘기를 할 수는 없으나, 내가 아는 바와 내가 생각한 것만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있으면, 나는 그 집단 안에서 집단에 지속적으로 포함되기 위해 요구되는 행동 양식을 지켜야 한다. 가령, 학교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매 학기 등록금을 제때 내야 하며,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우애를 지켜야 한다. (안그러면 호적에서 파이겠지…) 그러한 여러가지 집단으로부터 요구받는 행동 양식은 때로 나에게 모순되는 행위를 강요할 때도 있고, 불합리한 일을 강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런저런 모든 것들을 전부 지키면서 살아가려 하면 엄청나게 피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을 두고서 강요받는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고 어느정도는 무시하고 넘어가게 된다. 더군다나, 집단 안에서 서로 협동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과 적대적 경쟁을 모두 처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즉, 요구받는 것만 제대로 수행한다고 해서 나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는 이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도 물론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 요소들을 미리 피해가는 것 만큼 최선의 방법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위험 요소를 전부 피해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게다가 전부 예측 가능한 미래만이 나를 기다린다면 그것도 재미 없는 인생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측이 완벽하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일부마저도 완전히 추측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상은 비선형적으로 흘러가지만 아주 단기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선형적인 응답이 예상되는 것이다. 단, 내가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신뢰감이 얼마나 정확하느냐에 따라 그 예측 가능한 기간이 달라질 것이다.

위험 요소를 회피하는 방법은 일단 두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우선,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위험 요소를 실제로 피해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럼,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 바로 인식의 한계를 넓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식의 한계란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여러가지 사실들의 실질적 정확성의 한계를 뜻한다. 예를들어보자. 어떤 직장 동료가 나한테 잘해준다. 나한테 꾸준히, 지속적으로 잘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믿어도 좋은 사람일까?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 나한테 대하는 것만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평가하게 된다. 즉, 그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뿐만이 아니라 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관찰하거나 전해 듣고서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때에는 그 의견을 전달해 주는 사람의 신뢰성이 판단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내가 직접 본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포함하여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것은 인식의 한계를 늘린 예가 된다.

내가 나의 인식의 한계를 늘리기 위해서는 나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신뢰성도 높아야 한다. 신뢰성을 높이는 것과 나랑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알아서 잘 해주기 바란다.

위험 요소를 실제로 피해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것도 역시 사람들을 통한 방법이 된다. 위험한 상황이 닥쳐왔을 때 나를 구원해줄 단 한명의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은 친구여도 좋고, 경찰이어도 좋으며, 보험회사가 되어도 좋다. 그 존재가 나를 어떤 이유에서 도와주건 그것은 크게 생각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나에게 더 큰 해를 끼칠 것이 예상된다면 피해야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효과적으로 해 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나의 물리적 위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적인 위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즉,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와 얽혀 있는지를 보고, 나와 어째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집단과 집단들의 관계 속에서 아주 작은 한 개인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고 하는 한명의 사람은 내가 속한 작은 집단에서 작은 일들을 해낼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작은 집단을 조정하여 더 큰 집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힘과 영향력은 대단히 작기 때문에 커다란 집단을 한번에 조절할 수는 없다. 그정도 권력은 대통령도 없는 것이다. 여론 조작이 왜 가장 유용한 권력 통제의 수단인지 아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그렇지 않은것을 그렇게 되도록 하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즉, 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내 의도대로 바꾸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내 의도대로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모든 의견을 내 의도대로 바꾸는 일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가장 커다란 집단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가장 작고 소박한 일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그리고 순리대로 이루어지도록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럼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뢰성에 관하여

신뢰성(reliability, trust)에 관한 정책

신뢰성이란 뭘까? 남들이 나에게 어떤 요청을 했을 때, 나는그들에게 그들이 예측한 형태의 대응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예측되는 형태의 대응을 해줄 것이라고 그들이 나를꾸준히 믿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해 내려면? 당연히 성실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성실한거야 자기 하기나름이니까 알아서들 잘 하리라 믿고, 예측되는 형태의 대응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처음 만날 때는 그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두 사람이 서로 친해지든 말든간에, 서로 계속 만나다보면 서로의 행동 패턴에 대해서짐작가는 부분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것을 나는 신뢰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약속 시간에 항상 정확하게10분을 늦게 도착한다면, 이건 나름대로의 신뢰성이 된다. 즉, 다음번에 약속을 잡을 때는 일부러 10분 일찍 잡으면 된다.어머님을 강변에 모신 청개구리도 그 어머니에게 나름대로의 신뢰성이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유언을 남기고 안심하고 떠날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뢰성은, 그것이 나쁜 쪽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사람을 평가하는데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청개구리처럼 일관되게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것이다. 그때그때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은 다루기 힘들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예측 불가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는, 일을 반대로 하는 사람에게 반대로 얘기해서 제대로 하도록 일을 맡기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청개구리가 그때그때 기분에따라서 어머님 말을 들었다가 반대로 했다가 제멋대로였다면 어머님은 유언도 못 남기고 그냥 불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려면,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도움이 필요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제대로 도와줄 것이 기대되는 모습이어야 한다. 이것은 평소에 쌓아두는 신뢰성이며, 어느한순간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에도 나 역시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요청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요청을 받은 사람은 “내가 널 도와주면 넌 나에게 무엇을해줄건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건 그 사람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보답은 굳이 물질적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그가 원하는 보상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여기서중요한건, 난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서 그 정답을 알아맞춰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점이다. 가령, 친한 친구 사이에 부탁하는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해주어야 하는 보답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우정”이 될 것이다. 회사 동료들 사이에 부탁하는 것이라면”다음번에 필요할 때 도와줄게”라는 가능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형태의 보상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이미 조사되어 있는 것이좋다. 즉, 그 이전에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또한, 나 자신이 신뢰성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내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역시 신뢰성 있는 사람들일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삶이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신뢰성은 그냥 짧은 시간에 대한 신뢰성이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내 삶 전체가 타인의 만족에 끼어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내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내가 예측한 대로 행동해 준다면, 나는 그걸 이용해서 나에게 이득 되는 일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지속적으로 모여 있도록 나 자신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신뢰성은 내가 남들을 믿을 수 있고 남들이 나를 믿도록 만들면 나 혼자 할 수 없는 나의 성공을 위해 남들이 움직이도록 할 수 있다는 기본 원리를 말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

* 이 글은 대단히 당연한 소리만을 늘어놓을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뻔한 소리를 나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바꿔서 떠들어 댈 수도 있으니 주의.

관점, 그리고 메타 관점.

언젠가 친구인 C양에게 해 줬던 얘기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집단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집단 전체를 집단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적당히 설명을 해 보자.

노력하면 성공한다 – 반쯤은 개소리다. 이런 얘기를 진리라고 떠드는 사람은 무시해도 좋다. 그 사람이 실제로 성공한 것과 그사람의 노력 여하는 관련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다시말해서, “노력한 사람의 집합”과 “성공한 사람의 집합”이많이 겹치기는 해도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공한 사람의 집합이 노력한 사람의 집합의 부분집합도 아니다.즉, 노력하지 않고서 성공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들 알아둘 필요는 있다. (주목하지는 마라. 당신이 노력하지 않고서 성공할 사람이라는 건 당신이 성공한 다음에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사람들의성공론을 살펴보면, 대부분 열정, 노력, 운, 돈, 인맥, 재능, 뭐 이런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게다 있으면 성공이 보장되는가? 그랬다면 세상에 성공한 사람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것들을 전부 갖고 있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X같은 경우가 있으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나도 모른다. 성공을 보장하는 길을 알면 내가 여기에 이 글을 쓰겠는가. 나 혼자 성공하고 말지.

그렇다면 그나마 확실한 길은 뭘까? 내 생각은 실패하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실패하지 않는 것 조차도 대단히 힘든 일이다. 앞으로의 미래를 알 수 있는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아무리 실패하지 않는 길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실패하고야 마는 사람이 있게마련이다. 즉,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열정과 노력을 다하여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으며 거기에 운까지 따라줬어도 결국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다. 모든게 완벽해 보이는데 왜 실패하는 걸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왜 실패하는지 알 수 없다는점이다. 실패의 이유를 알 수 없을뿐더러 성공하는 이유 역시 없다. 모든것은 그냥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맘대로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물론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므로 자기가 하고 싶은일들을 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성공을 위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세를 하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뉴스”에서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다. 삶은누구에게도 두번 주어지지 않는다. 소설, 영화, 만화, 글, 수필, 성공담을 들어보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우리에게끝이란 무덤에서 편히 쉴때까지 결코 오지 않는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소설의 뒷얘기는 하나 마나한 이야기다. 그건 그냥그걸로 끝이다. 우리가 그런 여러가지 매체에서 배울만한 점도 물론 많이 있지만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는데, 바로우리에게는 엔딩이 없다는 것이다. 행복할 수는 있으나, 행복한 끝을 맞이할 수는 없다. 즉, 어느 한 시점부터 행복하기 시작해서그 상태로 죽을때까지 행복한 건 불가능하다는 거다. 행복해지는 순간,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하고 변화하는 세상에맞서서 행복을 지켜야만 한다. 그 자체로 고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있지만, 누구라도 정작 행복해지게 되면 자신이 행복한 상태에 있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에 젖어 살다가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서 불행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젖어들지 않는 것이다. 행복을 즐기고, 누리고, 함께 나누는 것은 좋다.하지만 행복에 젖어서 다른 것들을 잊는 순간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행복해지려고 할 때마다 계속 불행해질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이냐고? 그건 아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메타 관점”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행복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바깥에서 내가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럼, 메타 관점이 뭘까?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눈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시야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관점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 어떤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나는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라는것이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이 있고, 각자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개인이기 때문에 가지고있는 특수한 특성이 있다. 그중,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 부분을 활용하여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물론 말은 쉽지만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로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에 대해서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습은 보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남들도 원하고, 반대로 남들이 원하는 것은 나 역시 원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앞의 것은 잘 알겠지만 뒤의 것은 잘 모를 것이다. 남들이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는가? 대부분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건, “따라서, 내가 원하게 되었으므로 남들도 이것을 원한다고 볼 수있다”는 결론을 적절하게 내리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들어, 내가 회사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럼같이 일하게 되는 동료가 있을 텐데, 그중에는 나랑 같은 직위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높은 자리에서 나를관리하면서 갈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아랫자리에서 나한테 갈굼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승진하고싶어하거나 연봉을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나만 있는게 아니다. 내 주변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있다. 게다가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같이 연봉이 올라간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나만이라도 어떻게안될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어차피 회사 다니는 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누구 돈 싫어한다는사람이 있을까. 이 경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남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것이다. 아무튼,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잠재의식 깊은곳에 있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무엇일까? 내가 제시하는 답은 “다른 사람들을 내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라”라는 것이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수 있으므로 뜻을 명확히 하자면, 내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나 역시 남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사람이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아니, 그럼 얻는게 없잖아?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건, 남들이 나를이용하고 내가 남들을 이용하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 속에서, 나는 앞질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철저하게!”

한명의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은 그 개인이 갖고 있는 소망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 그게 가능했으면 사람은 혼자 살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존재 아닌가? 내가 하는 일을 남들이 도와준다면나는 도움을 받아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이 하는 일을 내가 도와준다면 그 사람이 그 일을 성공할 가능성은높아진다. 그럼 나는 남들의 도움을 받고 나는 남들을 안도와줘야할까? 그럴리가 있나. 내가 남들을 도와주지 않고서 남들이 나를돕기를 바라는 건 도둑놈이지. 더군다나 그게 항상 가능할 수가 없다. 남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들을 평소에 많이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남들의 부탁을 들어줄 때, 항상 실실 웃으면서 부탁을 잘 들어주는, 착한 동료가 되는 건괜찮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잊지 않아야 하는건 내가 다음번에 그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는 그 사람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진심으로 너를 돕고 싶어서 도와줬는데, 니가 날 안 도와주면 니가 나쁜놈이지”라는 상황을

암묵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건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메타 관점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데, 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도와주는 마음이 들어서 도와주면서, 동시에 내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들이 나를 도와주도록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일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들을 도와주는데도 몇가지 원칙이 있다.

1. 내가 도와줄 수 있는건 진심으로 도와준다.

2. 내가 도와줄 수 없는건 기분나쁘지 않게 거절한다. 도와줄 수 없는걸 웃으면서 해주겠다고 얘기했다가 결국 못해주면 처음에 거절한것보다 더 나쁘다.

3. 도와준 일은 반드시 성공하거나, 적어도 도움을 받은 당사자가 내 도움이 없었으면 이만큼조차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까지는 도와줘야 한다.

4.내가 남들을 도와줄 때, 그 도와주는 것이 그냥 돕는게 아니라 나의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서 도와준다.즉,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다음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만 얻는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에 대해 나 자신의발전이 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좋다.

5.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단, 도움을 요청할 때는 어떤 부분에 어느만큼의 도움이 필요한지 가능한 명확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는 것을 쉽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남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남들이 나를 도와줘야겠다는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은 남들이 나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나는 남들에게 신뢰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 글에서 자세히 논의해 볼 생각이다.

장난감 총도 약자를 겨눈다


수동 트랙백

“일다”라는 곳에서 “장난감 총도 약자를 겨눈다”라는 기사를 봤다. 기사 원문은 위의 링크를 눌러보기 바란다. 사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친구가 쏜 BB탄 총알에 왼쪽 눈을 맞아서 실명할 뻔한 적이 있었다. 약 2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맞았는데,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기 때문에 눈꺼풀 위로 맞았던 것이다. 그 충격에 이틀정도 눈이 흐릿하게 보여서 안과 병원에 갔더니 방법이 없고, 국립 의료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봐야 안다고 하는 것이다.




국립 의료원에 갔더니, 진찰 결과가 난감하다. 안구 안쪽에서 혈관이 터져서 출혈이 일어났는데, 만약 이 혈액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면 상황은 종료되지만 그 안에서 굳어버리면 그대로 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치료방법도 별거 없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절대 안정 유지”였다. 1주일간 입원하게 되었는데, 정말 절대 안정 유지였다. 멀쩡한 한쪽 눈으로 책이라도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양쪽 눈을 모두 감고 있어야만 했다. 사람의 눈은 카멜레온과는 달리 양쪽 눈이 동기화되어서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한쪽 눈동자를 돌리게 되면 반대쪽도 돌리게 되어 치료에 부정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주일간 잠을 자건 말건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들이 얼마나 불편하게 지내는지, 그걸 정말 체험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아주 약간 체험했다고는 생각한다.

다행히도, 안정을 이루긴 했었는지, 1주일 뒤 시력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사실 위험했던건 총알을 맞은 그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운동회 날이어서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완전 절대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아무튼, 친구는 장난이었겠지만 난 왼쪽 눈을 잃어버릴 뻔 했다. 그 전에도 별로 그런일은 안했지만, 난 장난으로라도 누굴 때리거나 돌을 던지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살고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 법이다.

좋은 말

김성일(金成一)의 《학봉집(鶴峯集)》에 보면 “배우는 사람이 근심할 것은 오직 입지가 성실하지 않는가에 있고 재주가 혹 부족한 것은 근심할 것이 아니다.(


學者所患 惟有立志不誠. 才或不足 非所患也

.

)” 라는 문장이 있다.

내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을까 한다. 뜻을 세우지 못하는 날, 아마 난 학문을 그만둘지도 모른다.

해피해킹 키보드 중독

원래 살던 고향집에 와서 키보드를 쓰고 있다. 참고로 내가 연구실에서 쓰는 키보드는 해피해킹 키보드 라이트2이고 지금 두들기는 키보드는 아론의 106S 블랙 우레탄 버전이다. 이쪽이 확실히 짤깍대는 맛도 있고 두들길 때 힘이 덜 들어가서 좋긴 한데, 문제는 ESC키의 위치랑 백스페이스 키의 위치이다. ESC야 어차피 잘 안 누르니까 상관 없는데, 백스페이스는 오타가 날 때마다 엔터를 쳐 버려서 여전히 오타가 나고 있는 상황이다 -_-;;

나 원…

양쪽의 장점을 같이 갖고 있는 키보드는 정녕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손가락 힘을 키워서 키보드를 두들겨 패야 한다는 것인가…

누구냐, 넌

난 저런 종류의 글을 쓴 적이 없단 말이다!

…해서, 대체 저걸로 검색하면 뭐가 나오나 싶어 따라가 봤다.

-_-; 다음에서 자동으로 필터링 된 모양이다. 저런걸 찾으려면 다른데서 알아보지 왜 다음에서…

그건 그렇고, 내 글이 클릭해서 읽어볼만큼 자극적인 내용이었나?

별거 없는데…;

2006년 2학기 수업 소개~

자랑이다 -_-;

대학원 물리학 전공 2번째 학기에는 무엇을 듣게 돼나요?

뭐, 아무도 이런 질문은 하지 않지만, 자문자답이다.

양자역학1, 전자기학2, 핵물리학을 듣습니다. (제 경우)

양자역학은, 사실 난 지난 학기에 양자역학2를 이미 들어버렸다. 그래도 되냐구? 물론 상관없다. 수업은 있을때 들어주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양자역학과 학부 양자역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실 크게 달라지는건 없다. 대학원 온다고 해서 물리학이 바뀌는 것도 아닐뿐더러, 학부때 제대로 배웠다면 대학원이라고 해서 더 배울게 생기지는 않는 법이다. 하지만 대학원까지 진학한 사람이 학부때 배운 양자역학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리 없다. (내 경우 그렇다는 거다.) 따라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대학원에서 양자역학을 듣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물론 졸업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교재는 J. J. Sakurai의 Modern Quantum Mechanics를 사용한다. 이분은 책을 완성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현재의 판본은 다른 동료 교수가 그의 강의 노트를 참고하여 완성한 Rivised Edition이다.

전자기학은 좀 어려워졌다. 지난학기에 전자기학1을 들었는데, 확실히 델타 함수가 많이 나오긴 하더라. 우리 과의 J교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대학원 전자기학이라고 별거 없슈, 델타펑션이 좀 많이 나오긴 해도 학부랑 똑같아유” 라고. 물론 전자기학도 마찬가지로 대학원에 온다고…(생략). 교재는 Jackson의 Classical Electrodynamics를 본다. 음…이 책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아무튼 어렵다.

핵물리학은…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교수님이 발표 수업을 시킨다고 하시긴 하는데…음음…아무튼. 학부때 핵물리학은 2학기꺼만 들어서, 사실 전혀 모른다. 그냥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세상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봉천동S대에서 강의하는 양자장론 수업을 청강하고 있다.

양자장론은 말 그대로 “장 이론”을 양자화시킨 이론이다. 물론 양자역학을 장 이론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난이도는 내가 들어본 수업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뭔얘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듣는 이유는, 그래야 책이라도 한번 더 펴보고 물리 공부를 하지 않겠는가.

회전에 관하여



mixing.c

mixing.c

계속해서 3차원에서 벡터들 돌리는 걸 생각하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꼬여버렸다. 꼬인 두뇌구조를 풀어내기 위해 잠시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어떤 점이 있고 어떤 직선이 있다. 직선을 회전 축으로 해서 점을 돌리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 당연한 일이지만, 직선에 수직이 되는 평면중에서 점을 포함하는 평면을 하나 고른 다음에, 그 평면과 직선이 만나는 점을 원점으로 하여 주어진 점을 원하는 만큼 돌려주면 된다. 즉, 말은 쉽다.

실제로 이걸 주어진 좌표계에서 시행하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대는 인터넷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 적당한 검색어(rotation, real, vector 등등) 를 사용하여 검색한 결과 간단하고 짧은 논문을 찾을 수 있었다.

Glenn Murray, “Rotation About an Arbitrary Axis in 3 Dimensions”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공간 전체를 평행이동한다. 얼마나? 주어진 회전축이 원점을 지나가도록.

2. 공간 전체를 회전시킨다. 어떻게? 주어진 회전축이 xz평면에 포함되도록 z축을 중심으로.

3. 공간 전체를 회전시킨다. 어떻게? 주어진 회전축이 z축과 같아지도록 y축을 중심으로.

4. 주어진 점을 z축에 대해 원하는 각도만큼 회전시킨다.

5. 3번에서 했던걸 반대로 한다.

6. 2번에서 했던걸 반대로 한다.

7. 1번에서 했던걸 반대로 한다.

간단하다.

물론 이걸 실제로 구현하는건 살짝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꽤 길다. 내가 필요한건 회전축이 원점을 지나가는 것이고, 따라서 간단해진다. 그 간단해진 소스는 첨부화일로 올려두었으니 뭐 혹시 필요한 사람은 구경해 봐도 좋다.

도덕경 : 내가 좋아하는 책

난 종교가 없다. 다만, 종교 비슷하게 뭔가 갖고 있는 관념같은건 있는데, 그중 하나에 영향을 미친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다. 도덕경에는 그냥 뜬구름 잡는 소리가 5천글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 뜬구름 잡는 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읽는 사람들마다 다들 자기 맘대로 해석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노자는 책을 한권 지었으나 그 책을 읽는 사람이 각자가 전부 맘대로 해석할 수 있으니 그 각각이 모두 한권의 책이요, 따라서 노자는 책을 읽은 사람만큼의 책을 지었다고 해도 된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되겠다. 아무튼, 나는 노자의 책을 읽고서 인생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중 몇가지를 이 글에서 적어 보고자 한다.


주의사항 : 어느 장의 전부를 인용하지 않고 일부만을 이용할 것이다. 따라서 장 전체를 읽었을 경우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내가 적은 글은 다만 나의 생각일 뿐이며, 도덕경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직접 원본이나 번역본을 찾아서 읽기 바란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영원 불변의 도가 아니다. (1장)

말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말은 사람과 함께 살아있으며, 사람이 변하면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영원 불변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영원 불변이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이 문장은 도덕경의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말이나 글자로 기록되어서 남에게 전달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영원 불변의 도를 표현할 수 없다. 심지어 도덕경조차 그것은 불가능하다. 노자 스스로도 도덕경에 도를 본질 그대로 적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도덕경에 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몇자 적어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찾아볼 수 있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것은 찾을 수 없는 곳에 적당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무엇이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관철해 나가는 것이다.

발끝을 제껴 디딘 자는 설 수 없고. 가랑이를 한껏 벌린 자는 걸을 수 없다. (24장)

가랑이를 한껏 벌려봐라. 걸어갈 수가 없다. 똑바로 서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가랑이를 벌린 것은 힘든 자세이다. 즉, 부자연스러운 자세이다.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자세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서, 자연스러운 상태일 때 모든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일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가 없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은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사람의 본성은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무엇이 자연스러운지는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물어보면 될 것이다.

앞으로 그것을 약하게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우선 그것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그에게서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선 그에게 주어야 한다. (36장)

음? 이상한 말이다. 풍선은 불면 불수록 커지지만 너무 많이 불게 되면 터져버려서 결국 쪼그라들어 버린다. 그 어떠한 세력도 영원할 수는 없다. 너무 강한 세력은 더 강해질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게 되고, 그 한계를 넘게 되면 망하게 마련이다. 사업을 계속해서 유지시키고 싶다면 일단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건 대단히 추상적인 얘기라는 점을 명심하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현실에 반영하면 100% 확실하게 망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건, 자신이 하는 사업이 어느 정도 커져서 그냥 놔둬도 금방 망하지 않을 정도라면, 그것을 더 키우기 위해서 힘쓰는 부분을 줄이고 그동안 신경쓰지 못한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곳의 자원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략, 몇가지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내가 사는데 어떤 철학이라고 한다면, 이정도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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