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arket.android.com/details?id=com.lhsee
LHC의 실험을 체험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앱이 나왔다. 재밌을 것 같다. 아직 설치는 못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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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여러모로 큰 영향을 준 건 사실인데, 그렇게 큰 영향을 준 것이 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했을까?
나는 그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인생에서는 어떤 선택이라도 올바를 수 있다. 물론 틀릴 수도 있다.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증명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명언따위는 얼마든지 남길 수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언제나 증명이 어렵다. 하물며, “대충 살자”는 말조차 증명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들여야 한다. “하면 된다”라든가. “최고보다 최선을” 다한다거나.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데카르트처럼, 생각만 하면 증명이 되는 것일까?
폭탄주 마신 다음에 3시간 쉬고 찬물로 샤워하면 술이 깨나?
나는 안깨던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767
술 마시면 말을 더 잘한다니.
술을 안마시고도 잘하는 사람들은 뭐지…
누가 나보고 “너 전라디언이냐?”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적절할 것인가. 최대한 지역감정을 배제하여 생각해 보자. (비슷한 말로, 너 게이냐? 호모냐? 장애인이냐? 같이 뭔가 비하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전달하려는 말이 있다.)
대표적으로 두가지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화를 낸다 vs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경우는, 그 말이 나에게 모욕적인 경우이다. 즉, “너는 전라도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할 때, 그 속에 숨어있는 전제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표현은 모욕적이다”(진술A)이다. 그런데, 내가 “나는 전라도 사람 아니야!”라고 항변한다면, 진술A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 된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진짜 전라도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전라도 사람이냐고 물어본 사람이 아니라 화를 낸 나에게 역시 화를 낼 것이다. “전라도 사람인게 그렇게 싫어?” 애초에 “전라도 사람이냐?”라고 물어본 사람도 사실은 그러한 암묵적 진술A를 숨기고 발언한 것이지만, 그 뜻은 숨어있다. 단지 내가 화를 냈다는 것이 내가 진술A를 전제한다는 사실을 지지하기 때문에 보고 있던 전라도 사람은 나에게 화를 낸다.
아니. 난 그냥 전라도 사람이 아닐 뿐이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진술A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너는 전라도 사람이다”라고 물어본 사람은 진술A를 전제하고 물어봤는데, 내가 화를 내지 않았으니 나에게 모욕을 주려는 시도가 실패하게 된다.
문제는 이 부분인데, “너는 전라도 사람이냐?”를 질문한 사람은 분명히 진술A를 전제하고 있으나 그에게 화를 낼 수가 없다. 누구라도 그에게 화를 내면 진술A가 참이라는 것을 전제하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정확히 따지기 위해서는, “너는 진술A가 참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이때 참이라 한다면 그에게 전라도 사람들이 화를 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거짓이라 한다면 “전라도 사람라는 표현은 모욕적이지 않다”는 전제 하에서 “너는 전라도 사람이냐?”라는 질문을 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그냥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아니다”를 대답하면 된다.
아니 그럴거면 왜 물어보냐고…
(뭔가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어 보이는데 안보인다.)
어떤 계획에 대해, “아마 그거 안될거야”라고,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계획을 성공시켜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가 제안한 부정적인 점을 모두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리 알고서 대비한다면 성공에 한층 더 가까울 수 있다.
포기하는 것은 비굴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나약한 것이 아니다. 포기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것 모두 같은 크기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걸음 나아가든, 한걸음 뒷걸음질치든, 똑같은 한걸음이다. 천재와 바보는 둘 다 비정상이다.
어떤 일이 이루어질 때, 좋은 면은 저절로 잘 이루어질 것이다. 일을 이루려고 하는 입장에서, 특히 그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면, 장점과 단점을 고루 알고 강점과 약점을 두루 알아야 한다. 특히, 중점적으로 단점과 약점에 신경써야 한다. 장점과 강점은 신경쓰지 않아도 일을 잘 이루어 갈 것이다. 실패와 성공은 모녀관계가 아니다. 시도(trial)에서부터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며,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사실은 성공의 어머니이다. (물론, 동시에 실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누군가 이 세상의 나약함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어두운 면으로 앞날을 밝히고, 부정적 편견과 시선으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웬만하면 성공할 것이다.
어떤 회사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로또를 사지 않고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놈은 도둑놈 심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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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p://kldp.org/node/125873#comment-569524
이동관씨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인지는 미처 몰랐었네.
나는 정말 몰랐었네.
여전히 그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