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본격 업무시작

    본격적인 업무(=본업)가 시작되기도 전에 업무 2개가 떨어졌다.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다. -_-;

    1.

    실험실에서 사용중인 계산용 클러스터 컴퓨터를 Diskless node로 구성해라.

    Diskless node란, 컴퓨터에서 자기가 갖고 사용하는 HDD 없이 원격으로 부팅해서 원격에 있는 HDD를 자기 것 처럼 사용하는 놈을 말한다. 그분은 나에게 Open-sharedroot라는 프로그램의 Quick Installation Guide를 하나 던져주셨다. 그분조차 해본적 없으시다고…

    2.

    Deformable mirror의 컨트롤러 구동용 프로그램을 분석해서 이놈이 정상 작동하는지 검증해라.

    VC++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USB를 통해서 DAC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더라.)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 일단 사용설명서를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이건 사용설명서가 아니라 그냥 설명서다. 이해되지 않는다.

    이 두가지를 이번주 중으로 해치워야 한다. (뭔지도 모르는데)

    아마 수요일부터는 예외없이 본격적인 업무(=실험 준비)가 시작될 것이다.

    졸업논문 준비는 어느세월에 하나…

  • Hunting for you


    Togo Project feat. Megu & Scotty D – Hunting for You [English] No more will I wait
    I’ve got to make my move
    You’d never treat me wrong
    If you knew how I’m feelin’
    Baby can’t you see?
    To make you mine, oh mine
    I’ll turn things upside down (upside down)
    Hunting for you
    Why don’t you love me? (Oh oh oh) I want some kissin’ cuz you know what I’m missin’
    (Yeah) The earth goes quakin’ when you’re keepin’ me shakin’
    (Oh) Gonna start my chasing now
    I wanna catch you and make you meow You’re the sweetest
    How can I win your heart?
    In a moment I’ll crash
    Nothing will calm me down
    ‘Til you really love me
    Darlin’, hold me tight No more will I wait
    I’ve got to make my move
    You’d never treat me wrong
    If you knew how I’m feelin’
    Baby can’t you see?
    To make you mine, oh mine
    I’ll turn things upside down (upside down)
    Hunting for you
    Why don’t you love me

  • 월드컵 광고의 불편함

    요즘 월드컵 시작한다고 광고가 많이 나온다. 무슨 샤우팅 하라는 광고도 많고. 축구 응원 안하면 애국자 아닌 것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런데 그게 사실 다 돈이 되니까 광고하는 것들이다.

    2002년에 길거리 응원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섰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돈이 걸리기 때문에,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안 회사들은 2006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축구 응원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한국 축구를 응원하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 것일까?

  • 포기

    훈련소에 있을 때, 수료식 준비를 하면서 훈련병 소감문이라는 것을 발표하는 사람을 뽑는 일이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이냐 하면, 훈련병 1400명을 대표해서 단 1명이 발표하는 것이다. 훈련병 가족들이 대략 1000명 정도 온다고 치면, 다른 관계자들 포함해서 대략 250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것이다. 보통은 수료식 준비를 하는 대대에서 적당히 한명을 뽑기로 되어 있다는데, 이번 기수에서는 내가 소속되어 있던 1중대에서 뽑기로 되었다. 이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세상에, 내가 2500명이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쓴다 하더라도 방문객들 중에서 얼마나 제대로 읽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엔 내 글을 확실히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 넣어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글을 발표하는 것은 나의 자신감을 키워줄 것이다. 어쨌든 정말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 경쟁에 나만 참가한게 아니라 다른 경쟁자 1명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발표자를 선정하는 것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되었다. 투표에서 졌기 때문에 포기할 뻔 했던 나에게 어쨌든 50%의 확률로 한번의 기회가 더 생긴 것이므로 아무튼 받아들였다.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누가 먼저 제비를 뽑을지 정했는데, 내가 먼저 뽑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X를 뽑았고, 난 발표를 포기해야 했다.

    이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쉽지는 않았다. 나는 내 글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더 좋은 글이 발표되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비뽑기에서 졌기 때문에 여기서 더 밀고 나가는 것은 의미도 없고 남들이 받아들일만한 명분도 없었다. 거기서 내가 꼭 발표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여러가지로 무리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그냥 포기하기엔 정말 너무나 엄청난 기회였다.

    그러다가 취침 시간이 되어서 침상에 누웠다. 너무 큰 기회를 날려먹은 하루였기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고, 그럼 결국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일 뿐이었다. 제비를 뽑을 때, 내가 뽑은거 말고 한번만 더 생각해서 바꿨더라면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까? 이것은 로또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왜 하필 그렇게 잡았을까. 온갖 후회가 내 머리를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몇시간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났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추첨에서 떨어졌다는 것도, 내가 발표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내가 어제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나서야 어제의 감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아쉬움, 후회, 자기비하, 기타 등등.

    그리고 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요점은, 이 기회가 대단한 기회이긴 하지만 결국 포기해야 하는 것인데, 이 기회를 포기하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기회를 포기해야만 할 때는 더 힘들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그동안 내가 확률 게임에서 얼마나 낮은 승률을 보였는지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난 행운에 기대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99%의 노력으로 정말 잘 해놓고서도 1%의 행운이 부족해서 포기했던, 실패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단 1%의 행운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재수없는 인생을 돌파하려면 100%의 실력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실력 없이 성공을 논할 수 없는, 참 운도 지지리 없는 인간이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에나 쓰는 말이라는, 멋진 말을 누군가 남겼던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해야 할 때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다.

  • 타블로 논쟁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한것 아니냐 하는 논란이 아직까지 지속중이다. 별 관심 없었지만 KLDP에서 논란이 되어서

    http://kldp.org/node/115398

    관심이 조금 생겼다.

    KLDP에서 나온 얘기를 대충 읽어보니, 석사까지 받은건 맞고 학과 수석을 전체 수석 졸업인것처럼 표현했다는 얘기인 것 같다.

    스탠포드랑 중앙대학교랑 학생 수준이 같지는 않겠지만, 나도 나름 수석 졸업이라 타블로가 왜 억울한지 알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난 물리학이랑 수학 학사학위를 둘 다 갖고 있고, 물리학과 졸업생 중의 수석 졸업이다.

    (참고로 당시 전체 수석은 학점 4.47을 받은 어떤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자연과학대학 5개학과의 각 학과별 수석졸업자 중 5등을 했지만 (물리학과 학점이 가장 짜다 -_-;) 1등인 생물학과 수석이 졸업식에 못 나오는 바람에 물-화-생-수-통 순서에 의해 내가 자연과학대학 대표로 학교 전체 통합 졸업식장에서 대표로 졸업장을 받은 역사가 있다. 이래놓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물리학과) 수석 졸업했다고 자랑하신다.

    타블로도 그런 느낌으로 수석 졸업이라고 한 것 아니었을까.

  • 근황

    1.

    훈련소 다녀왔더니 글이 안써진다. 아무 생각이 없다.

    2.

    연구소에 전화를 해봤더니, 박사님이 “snowall씨가 없어서 연구가 진척이 안되더라고”라는 얘기를 하셨다. 저 말은 내가 연구에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그 참뜻은 실험 자료 분석을 처음부터 다시 해달라는 뜻이다. 연구에 진척이 없으면 내가 훈련소 가기 전에 밤새서 자료분석 해준 의미가 없잖아요 -_-;

    3.

    한달치 월급이 굳은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여기저기서 다 밥사달라고 하면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나간다.

    4.

    고전역학/양자역학 스터디는 아무래도 7월 말이나 8월부터 해야겠다. 지금 벌려놓은 일(방통대 졸업논문, 교수님이랑 논문 연구, 연구소 업무)부터 정리 좀 해야 한다.

    5.

    문제의 그 글 때문에 방문객은 50%이상 증가했고 아직도 증가추세에 있는데 댓글은 없다. 심심하다.

  • 훈련소 소감문 (비공식)

    훈련기간 28일, 헐…

    일단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일 것이고, 안 다녀온 사람들은 말해도 잘 모를테니 그 이외의 특이사항만 얘기해 보겠다.

    1. 종교행사의 최근 경향

    기독교는 싫어하니까 안갔고, 천주교, 원불교, 불교에 갔다. 미래의 훈련병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이드를 작성해 둔다.

    천주교 – 훈련소의 그분이 천주교 신자다. 따라서 군종 군기가 제일 세다. 미사 드릴때 떠들면 그자리에서 얼차려 받는다. 물론 먹을 것 주는건 가장 많이 준다. 3~4종, 또는 그 이상도 자주 나온다.

    불교 – 저녁 법회때, 당신의 종교가 뭐든지 상관 없이 저녁 불교 법회는 반드시 1회 이상 가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보안상 말할 수는 없지만, 궁금한 사람은 전화나 기타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연락하면 왜 권장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나쁜거 아니니까 아무튼 가보길 권한다. 먹을 것은 그냥 보통 정도.

    원불교 – 먹을거 가장 적게 준다. 그래서 가장 신자 숫자가 적다. -_-;

    다만, 가끔 원불교 재단에 속한 W대학의 여대생들이 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그 직전 주말에 원불교 행사에 참석한 신도들만 알 수 있다.

    2. 군장 무게와 행군

    10kg정도 군장을 메고 10km정도 걷는것이 주간행군, 20km정도 걷는 것이 야간행군이다. 현역들(5주 훈련 받는 인원들)은 25kg정도 군장을 메고 1박 3일 일정으로 30km야간행군을 한다는데, 그보다는 훨씬 쉬워야 하긴 하는데 전문연구요원들은 주간행군 끝내고 나서 거의 다 빈사상태에 빠졌었다. 25kg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싶으면, 당장 마트에 가서 20kg짜리 쌀 포대 하나를 사서 집에까지 들고 걸어와 보면 된다. 그보다 조금 더 무겁다.

    3. 소감문 발표 경쟁

    원래 소감문 발표는 연대 전체(1400여명)에서 1명도 안나올 정도로 귀찮은 일이다. -_-;

    그래서 연대장은 교육대대 중에 하나 찍어서 발표를 시키고, 해당 대대장은 중대중에서 하나 찍어서 발표를 시킨다. 해당 중대장도 중대 훈련병중에서 아무나 하나 찍는데, 이번엔 중대장이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다. “저요”

    난 글을 잘 쓰니까 ㅋ

    근데 한명 더 손들었다. -_-

    이런데서 갑자기 왜 경쟁자가…;;;

    아무튼, 그 친구랑 볼펜으로 배틀을 붙었다. 소대원들 모아놓고 한 임시 발표회에서 평가는 10대 7로, 내가 졌다. 그리고 중대장님이 제비뽑기로 결정하자고 해서 추첨을 했는데, 내가 졌다. 그래서 공식 소감문 발표는 못했고, 그냥 훈련병의 밤 시간에 소박하게 200명 앞에서 발표했다. (공식 소감문은 연대 전체, 즉 1400명과 그 훈련병들의 부모님과 간부와 기간 장병 등, 대략 3000명 정도 앞에서 발표하는 자리다.)

    아무튼, 그렇게 3000명 앞에서 발표한 그 친구도 잘 했다.

    4. 육군훈련소장 표창장 수상

    별 2개 계급인 분에게 우수 자치근로자라고 상 받았다. 아마 내가 좀 우수했나보다. -_-;

    (소대원들이랑 분대장들이 제발 사회에 나오지 말고 군대에 말뚝 박으라고 하긴 하던데…)

    5. 약속

    훈련소 가기 전, 친구에게 짐승남이 되어 돌아오겠다 다짐하고 떠났었다

    짐승이 되긴 했다.

    돼지…-_-

    살 안빠진다…젠장.

    6. 그래서 소감은?

    두번은 못가겠다.

    그리고 훈련소 아직 안간 내 친구들도 있는데, 암담하다.

  • 훈련병 소감문

    훈련소에서 제가 공식적으로 작성한 소감문입니다. (중대원 전부 모아놓고 발표도 했음 -_-)

    ——

    이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28일간의 훈련소 생활이 끝났습니다. 28일 전, 이곳에 들어오던 때의 제 모습을 돌이켜보면 많은 걱정과 불안, 글고 조금의 설레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회와 단절된다는 것, 천안함 사태로 빚어진 긴장 국면 등, 걱정스러운 일이 쌓여 있었고, 사회에서 듣고 온 많은 군대 얘기와 아직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투른 제가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들이 저를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기대와 훈련이 끝난 후 제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 지 상상하는 것은 저를 설레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5월 6일 부모님의 눈물어린 전송을 받으며 입소하였습니다.

    입소하자마자 정신없이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동화교육, 기본 제식부터 경계교육, 수류탄, 사격 등 정말 처음 경험하는 훈련과 일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에 저는 자치근무자에 지원하여 소대장 훈련병이 되었습니다. 소대장 훈련병이라는 임무는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생각을 가진 소대원들을 단합시키고, 크고 작은 다툼을 조정하는 것들, 소대장 훈련병으로서 해야 하는 추가적인 임무 등, 모든 것이 힘든 일 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대장 훈련병으로서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 전우들의 따뜻한 전우애 덕분이었습니다. 저녁 점호가 끝나고 소대장 훈련병의 임무중의 하나인 상벌점 처리를 하고 나면 항상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상벌점 표를 분대장 님께 드리고 생활실로 돌아와 보니 제 자리에 매트리스와 모포가 깔려 있었습니다. 덕분에 여유있게 씻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전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소대장 훈련병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겪은 군대 생활은 4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그 사이에 군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들을 경험하였습니다. 훈련소에 오기 전, 군대라는 곳은 병사들만 고생하고 상급자는 편할 것이라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간 행군을 하던 중, 계급이 높아 보이는 지휘관과 병사 수 명이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었습니다 이 때 지휘관 분께서 청소를 지시하고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빗자루를 들고 병사들보다 더 열심히 쓸고 계셨습니다. 또한, 배식조에 속해서 식당 청소를 할 때에도 분대장님들이 지시만 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치우고 설것이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저는 이것이 일부의 잘 하는 모습이 아니라 육군 훈련소 전체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훈련소에서, 이렇게 훌륭한 지휘관 밑에서 훈련받은 군인이라면, 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우리 국군을 믿고 안심하여 사회 발전에 전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훈련소에 들어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식사나 화장실 이용까지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군대의 규칙은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군대에 엄격한 규칙과 제한사항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 괴로움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갔습니다. 아울러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최전방에 나서서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저의 친구들, 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사회에서 맡은 임무를 더욱 열심히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갈 인생에서, 제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야간행군에서 느꼈던 완전군장보다 무거울 것이며, 흘려야 할 눈물은 화생방보다 매울 것이며, 도전해야 할 경쟁은 각개전투훈련보다 치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훈련받으며 단련한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은 제가 겪게 될 전쟁에서 저를 살아남게 하고 끝내 성공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줄 것입니다.

    이제 더 큰 세상 속에서 더 낳은 일들을 해내기 위하여 육군 훈련소를 나섭니다.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힘들 때마다 도와준 전우들, 잘못에 대한 따끔한 질책과 친절하고 상세한 교육을 해주신 분대장님과 소대장님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잊지 않으시고 저희를 이끌어주신 중대장님과 대대장님께 큰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이 훈련소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여기 계신 분들처럼 언젠가 제 아들을 보낼 때 다시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때,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제 아들에게 이 소감문을 다시한번 읽어주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소감문을 마치겠습니다.

    ——————–

    공식적인 소감문이다. 그래서 칭찬밖에 없다. -_-;

  • 공지사항

    핸드폰은 사용 가능한데 문제가 발생함.

    핸드폰의 충전 단자가 고장났음.

    핸드폰 배터리 충전 케이스는 전부 광주에 있음.

    임시 해결방법 – 동생이랑 같은 기종이므로, 동생이 집에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배터리 바꾸고 충전시킨다.

    임시 해결방법 – 친구가 쓰던 전화기랑 같은 기종이므로 친구에게 충전 케이스를 빌린다.

    해결방법 – 빨리 광주로 내려간다. (일요일날 내려갈 예정이라…)

    그래서, 지금 전화 안됩니다. 6월 3일 22시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