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nowall

  • 착한 늑대와 나쁜 돼지새끼 3마리 (거리의 시인들)

    착한늑대와 나쁜 돼지새끼 3마리

    신교)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들려주고자 하는 얘기는, 착한 늑대와 나쁜 세 마리 돼지 새끼들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지, 하지만 늑대 입장도 한번쯤 들어봐야겠지.

    옛날에 착한 늑대가 한 마리 살고 있었어. 배고프고 가난 했지만 성실하게 살았어.

    어느 날 세 마리의 돼지형제 늑대를 찾아왔어. ” 우리 집을 지어주면 식량주지 ”

    그날부터 착한 늑대는 열심히 집을 지었어, 욕심 많고 돈 많은 돼지 삼형제를 위해서

    서로 다른 돼지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 볏단, 나무, 그리고 벽돌로 집을 지었어.

    삼 개월이 지났어. 공사가 다 끝났어. 착한 늑대는 돼지들에게 집을 나눠주었어.

    식량을 달라고 했어. 돼지 문 잠궜어. 나오지 않았어. 집은 튼튼했어

    현태) 이제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 괴롭힘 당하면서 더

    이상은 못살겠어 세상엔 왜 이렇게 나쁜 놈들 많은 건지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싸워보겠어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건지, 어째서 너희들의 개가 되길 원하는지 나는 하고싶은 말하면서 살고싶어 너희들 무리 속에 들어가서 살수는 없어

    ricky) 착한 늑대는 주저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이유로 돼지들은 나를 속였을까.’

    ‘왜 내가 일한 댓가를 받을 수 없는 걸까?’ ‘내가 너무 만만해 보여 그랬던 것이었을까?’

    누가 나를 이용하려고 머릴 굴리고 있을까? 누가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있을까?

    나는 미래를 어떤 식으로 살아가게 될까? 돈, 명예, 사랑, 모두 갖을 수 있게 될까?

    학교에서 공부 못하면 사회에 나가도 낙오자가 될까? 나의 꿈을 따라가면 과연 성공할까?

    가족들, 친구들, 세상이 나를 비웃지는 않을까? 누가 나를 괴롭힐 땐 얼마나 참아야 될까?

    내가 너무 불만이 많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너도 결국 알고있지 않나?

    마음속은 나와 다를 게 없지 않나?

    현태) 이제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 괴롭힘 당하면서 더 이상은 못살겠어

    세상엔 왜 이렇게 나쁜 놈들 많은 건지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싸워보겠어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건지, 어째서 너희들의 개가 되길 원하는지

    나는 하고싶은 말하면서 살고싶어 너희들 무리 속에 들어가서 살수는 없어

    신교) 야 돼지야

    ricky) 왜? 내 말좀 들어봐 난 들을 것 없어 약속을 지켜야 될 것 아니야? 나 약속한 적 없어

    너 양심도 없냐? 그렇게 살고 싶냐? 너 이 바닥에서 살아 남고 싶냐?

    강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하고 비겁한 모습 난 보고 또 보고 더 이상은 내 정의감이 용서할 수 없고

    현태) 이제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 괴롭힘 당하면서 더 이상은 못살겠어

    세상엔 왜 이렇게 나쁜놈 들 많은 건지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싸워보겠어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건지, 어째서 너희들의 개가 되길 원하는지 나는 하고싶은 말하면서 살고싶어 너희들 무리 속에 들어가서 살수는 없어

    ricky) 시끄러 이 늑대 녀석. 왜렇게 말이 많냐? ( 뭐? ) 자꾸 시끄럽게 굴면 신고한다 ( 해 )

    난 돈이 많아 까불생각 말아 난 유리하게 말을 바꿔 책도 만들꺼야

    PS. 돼지가 만든 책은 많이 팔려나갔고, 나는 나쁜 늑대가 되었다

    ———————–

    노래가 참 흥겹다. 그리고 가사는 예리하다. 예리하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누가 나쁜놈인가.

  • 패러디

    내가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참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리 나한테 한푼 두푼 빌려달라고 말들 하는지, 얼마나 가난했던지 빈 주먹을 들어 보이며 돈을 달라고 하더라. 돈 없다고 빈 손바닥을 보여주면 마치 주먹이 보자기를 이기는 줄 알고 있는지 계속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아니, 그럼 가위를 내밀던가. 길가다 만난 처음 보는 아이도 얼마나 가난했으면 며칠간 씻지도 못한 것 같은 기름 꼬질꼬질한 더벅머리에 크기도 잘 맞지 않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었다. 가끔은 운동화도 바꿔 신자고 한다. 물론 내가 빌려주고서 이자는 고사하고 돌려받은 적도 없다.

    이런 아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은 물론 학교 근처와 학원 근처이고, 오락실 근처이며 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일 수밖에 없다. 동물은 먹이가 있어야 먹고 살 것 아닌가. 사실 학교 교실 안에서도 이러한 채무자가 항상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는 사채관계는 공공연하게 맺어지는데, 사채업자인 쪽이 채무자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이러한 관계는 사채업자의 부모님 지갑 사정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끔은 사채업자쪽이 채무자들에게 채권을 행사하려다가 폭행을 당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는데 이 경우에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흥미로운 것은 돈을 주는 놈이 잘못한 것이라고 오해를 받는 것이다. 받지 못할 것이 뻔한데 왜 빌려주냐는, 뭐 그런 논리다. 애초에 빌려가서 안 갚는 놈이 나쁜놈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돈을 빌려주는 쪽이 잘못했다고 지탄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런 빈 주먹을 가진 가난한 아이들은 매번 돈을 빌려주는 애들에게서만 돈을 빌린다. 못빌려준다고 한번 인상 팍 쓰면 쫄아서 두번다시 얘기를 안하고 그냥 빌리던 데서 빌려간다. 물론 갚을 생각은 없지만.

    그러다가 어느날 학생주임이 나타난다. 학생주임은 돈을 빌려준 놈이나 빌리고 안 갚는 놈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걸리면 양쪽 다 작살난다고 위협한다. 그럼 돈을 빌려준 놈은 억울하지. 잘못이 없거든. 가난한 아이들에게 적선한게 그리 잘못이던가? 학주



    [각주:

    1

    ]



    는 야구 방망이 하나를 위협적으로 들고 다니면서 어디 걸리는 놈 없나 주시하고 다닌다.

    예의 그렇듯, 돈을 빌리는 아이들 중에서도 두 부류가 있어서 학생주임에게 고분고분한 쪽이랑 대드는 쪽이 있는 법이다. 학생주임에게 고분고분한 부류는 사실상 학생주임에게 인정받은 가난한 아이다. 이들은 대놓고 다른 아이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녀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드는 쪽은 학주의 마음속에 깊이있게 찍힌 부류들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안해도 괜히 걸리면 방망이로 처 맞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억울하지 않겠는가. 억울한 마음에 파스라도 사서 붙일 돈이나 마련할 요량에 더 많은 돈을 빌리게 된다.

    그리고 이건 모두 아는 사실인데, 애초에 처음부터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나날이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아이들을 양산해내게 되었고 결국 이들이 돈있는 집안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현실은 현실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주가 가난한 아이들을 모두 때려 잡든가, 가난한 아이들이 모두 회개하든가, 부잣집 자식들이 절대로 돈을 빌려주지 않든가,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데 학주가 이미 가난한 아이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이상 이 세가지 일들은 모두 일어나기 힘든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갑자기 어느 학생이 현실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어째서 가난한 아이들은 혼자 먹고 살려고 하지 않고 갚지도 못할 돈을 빌려서 빌어먹고 사는가. 이러한 의문점이 든 그 학생은 돈을 가장 많이 빌려가고 학주 눈밖에 나기도 했다는 교내의 어느 가난한 아이를 직접 찾아간다.

    “넌 왜 돈을 직접 벌지 어째서 남의 돈을 빌려서 갚지도 않는거냐?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알바라도 해서 돈 벌 수 있잖냐.”

    라고.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 응. 맞는 말이다. 그러자 이 질문을 들은 가난한 아이가 대답한다.

    “넌 누구한테 돈 빌려준 적도 없으면서 그따위 헛소리를 잘도 말하는구나.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되겠냐? 학교에서는 아르바이트를 금지하고 있는데다가 걸리면 학주한테 맞아 죽지, 그렇다고 집안 형편이 좋아서 내가 쓸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지, 돈 없으면 밥도 굶어요. 넌 때려 죽여도 이해 못하겠지만, 난 부모님이 돈 내줘서 급식 먹는 자식들이 가장 부러워. 알겠냐? 얘기 다 들었으면 좀 맞자.”

    말을 똑바로 한 죄로 그 학생은 입이 삐뚤어지도록 맞고 간신히 돌아갔다. 하여, 집에 갔더니 부모님이 하는 말씀이

    “임마 넌 그런 애들한테 뭐하러 가서 얘기하냐. 애초에 상종을 말았어야지.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되는걸 어쩌자고 가서 그렇게 맞고 돌아오냐. 너 맞고 다니면 우리 마음은 편하겠냐? 걔들 마음 바꾸게 할 생각 하지 말고 너나 몸 조심하고 다니란 얘기다.”

    사실 그 가난한 아이는 집안이 가난해서 그렇지, 여기저기서 학생들에게 빌린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운동화도 최신형으로 사고 오락실도 자주 다닌다. 어차피 그렇게 돈을 빌려주게 되면 그게 그 가난한 친구 먹고사는데만 들어가는게 아니라 쓸데없는 유흥비로도 지출되는 것이다. 이것도 모두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가난한 아이에게 맞고 돌아온 사실을 담임 선생님에게 신고하였으나 담임 선생님은 자신이 학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학주는 맞은 놈이 잘못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맞고 돌아온 학생은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다시한번 그 가난한 아이에게 가서 얘기를 꺼내볼까 생각중이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는데, 이 얘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한국인 납치사건의 스토리를 패러디한 것이다.

    * 가난한 학생이라고 표현한 것이 결코 폭력을 정당화 하려는 의도는 아님을 일러둔다. 일부러 그렇게 표현하였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단지 길가는 학생들 잡아서 푼돈 뜯어먹는 양아치들이 자기 손으로는 결국 돈 한푼 벌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 학생주임의 줄인말

      [본문으로]

  •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The God Delution)”을 읽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이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책을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이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모든 악의 근원이 종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 중에 나쁜놈이 많다. 물론 착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종교인이 아닌 사람 중에도 착한 사람 많고 나쁜놈도 많다.

    그리고 세상에는 종교가 없어서 일어나는 범죄보다 종교때문이 일어나는 범죄가 더 많아보인다.

    회개만 하면, 믿음만 있으면 용서받는다는 것 때문일까.

    종교를 가진 사람중에 신의 존재를 그다지 믿고있지 않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그런 말을 못한다면, 신을 별로 믿지 않는다고 얘기해도 된다. 그래도 된다. 그런 것 때문에 인간관계가 멀어진다면, 그건 종교로 묶인 관계지 친구로 만난 관계가 아니다. 또한, 다시 신의 존재가 믿어져서 다시 돌아간다고 누가 말리겠는가. 그런 경우에 받아주지 않는 것도 속좁은 모습일 뿐이다.

  • 오만한건…

    납치된 사람들 돌아와서 그쪽 관련자들에 대한 평가는 대략 “오만하다”는 것 같다. 뭐…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제껴두고.

    갑자기 그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내게 전도를 시도했던 어떤 여자가 생각난다.

    몇년 전의 일이다.

    길 가고 있던 날 붙잡더니 막 무슨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난 그냥 내 철학을 막 얘기해줬다. 그 철학의 내용은 내 블로그 여기저기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건 없으니 잘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아무튼, 내 철학과 사상과 종교관 얘기를 쭉 듣더니 전도를 포기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다는 말이 “참 오만하시네요”였다.

    응. 나 오만하다.

    근데 내가 들은 그 말을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도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고나 할까.

  • 티스토리 관리자 메뉴 변경에 관한 snowall의 평가

    1.전체적으로 맘에 든다. 좀 더 직관적으로 변한 것 같다.

    2.특히 초대하기가 밖으로 빠진 건 티스토리 사용자 증가에 큰 영향을 줄 것이고, 자신이 초대한 사용자를 신고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티스토리 블로고스피어의 건전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또한 운영진이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조금씩 평가하게 되므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web2.0 방식의 운영법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덧붙여서, 초대해놓고 끝내는게 아니라 초대한 사람에게 한번 더 관심을 갖게 되므로 티스토리 사용자들끼리의 친목 도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티스토리 사용자가 다른 블로그 시스템으로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3.다만, 글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싶을 때 댓글/트랙백 탭이 분리된 것은 기능별로 탭을 모은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사용자가 가장 보고싶어하는 것이 자신의 글이 아니라 자신의 글에 달린 댓글과 트랙백이라는 점에서 클릭수가 1회 (= 50%



    [각주:

    1

    ]



    ) 증가했다는 점은 안좋은 것 같다.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로 들어오면 “글”탭이 최초로 노출되는데, 차라리 태터센터를 최초로 노출되게 하면 어떨까 싶다. 글 목록도 다 보이고, 댓글, 트랙백, 방명록도 얼추 다 보이고, 글쓰기 링크도 있으니 좋지 않은가? 태터 센터의 기능이 원래 관리자 페이지에서의 첫 페이지 기능 아니었던가 싶은데 말이다.

    (그런데, 왜 “글”탭이 관리자 페이지의 첫 페이지인지 모르겠다. “센터”에 티스토리 공지사항이 뜨는데, 공지를 항상 늦게 발견하게 된다)

    4.”분류”라는 용어를 “카테고리”로 바꾼 것은 한글을 영어로 바꿨다는 점에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카테고리와 분류라는 용어 사이에 의미상 차이가 있어서 이 관리자 메뉴에 어울리는 뜻이 카테고리여야만 한다면 카테고리로 쓰는게 좋겠지만, 굳이 그런 의미 차이가 없다면 한글을 쓰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건의사항1 : 글을 쓰면서 곧바로 트랙백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항상 글을 쓴 다음에 트랙백을 보내야 하는데 은근히 귀찮다. 글쓰기 화면에서 트랙백 주소를 넣을 수 있도록 하여 바로 트랙백을 보낼 수 있으면 어떨까? 이건 티스토리보다는 태터툴즈 건의사항이겠지만.

    건의사항2 : 트랙백을 보내면, 이글이 어떤 글에 트랙백으로 보내졌는지도 표시되었으면 좋겠다. (또는 선택사항으로 표시) 내가 이 글을 공지사항에 대한 트랙백으로 보냈다면, 내가 굳이 표시해두지 않는 한 이 글이 공지사항에 대한 트랙백인줄을 어떻게 알겠는가. 원래 이것에 대해서 내가 처음에 냈던 아이디어는 트랙백에 대하여 자동으로 역트랙백이 붙는 것이었지만. 물론 상대편 블로그에서 자동 역트랙백을 지원할 수도 있으니 만일 추가된다면 둘 중 하나만 표시되도록 하면 되겠다. 물론 이것도 태터툴즈 건의사항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1. 50%는 관리자 페이지로 이동하는 링크를 블로그에서 한번 눌러야 하고, 다시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와서 댓글 링크를 눌러야 해서 2회였는데, 이제 3회로 증가했으니 50%가 증가한 것이다

      [본문으로]

  • OOXML, ISO 표준 통과 반대 서명

    *

    http://kldp.org/node/85862

    에서 복사.

    Microsoft가 자신들 만의 Office 문서 포맷을 국제 표준화 하려는 시도가 ECMA를 거쳐 ISO 국제 표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Microsoft가 6,000장에 해당하는 Office Open XML(OOXML) 표준안을 5개월 만에 심사를 하는 ISO Fast Track에 제출하고, 9월 2일 국가 대표별 투표를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피스 문서 표준으로 Open Document Format이 ISO 표준으로 제정되어 있으며 OOXML이 MS 만의 표준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한데 투표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투표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단에게 OOXML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줄 것을 요청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 합니다. 아래 링크에 글을 읽어 보신 후 서명을 부탁 드립니다.

    OOXML의 ISO 표준 반대 서명

    http://channy.creation.net/antiooxml

    본 서명 결과는 9월 2일 투표 전 한국 대표단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알려 주십시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nowall의 개인적인 생각 : 생각해보니까, 이 논의는 activeX를 표준으로 만들자는 주장과 비슷한 것 같다.(실제로 그런 주장이 제기된 적은 없겠지만)

  • 문제점

    어제 친구가 자취방에 찾아와서 긴 얘기를 해줬다. 요점은 내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니까 쓴소리 해주는 건 정말 고맙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교수님이 나를 보는 시각, 후배들이 나를 보는 시각,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나를 직접 대면할 때와 나를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 다르겠지. 뒷담화가 내 귀에 들려오니 나로서는 사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져 있다. 그가 내게 물어봤다. 과학자는 왜 되고 싶은 거냐고. 그에 대해서 내가 대답하기를, “재밌잖아” 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한다. 사실 대인관계 잘 풀어 나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난 그냥 가식적이어도 다른 사람들이랑 대충 인사하면서 지내면 된다.

    사람들은 가식적인걸 싫어하면서 내게 가식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가식적인걸 싫어하길래 내 마음을 그대로 내놓고 다녔더니 다들 그런식으로 살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다 감추고 조금씩 위장하고 다니면 그걸 가식이라 부른다. 그럼 결국 가식이 아니면서 그 사람들 맞춰주려면 나를 바꿔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사람의 마음에 관한 문제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깨우침의 문제지. 내 귀가 말을 들어 처 먹어야 내가 바뀔거 아닌가.

    내가 초, 중, 고등학교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을 대학교 와서, 사회에 나와서 드러내서는 안되겠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 필요는 없는거잖아. 아는 얘기야. 근데 그게 쉽냐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얘기도 비수가 되어 가슴에 처박히고, 고민없이 툭 튀어나온 얘기는 사람 마음 속을 후벼파는데. 물론 내가 내 상처를 고쳐야겠지. 그래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 테니까. 나는 억울하다고. 이런 주장도 변명이지만. 세상에 상처 안받고 사는 사람이 어딨겠나. 그런데 나만 어긋나서 남들에게 상처 주면서 사는건 이상하다는 거다. 그래. 이상하지. 근데 그건 나잖아. 내가 다른 사람과 같아야 할 이유도 없고 상황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는 얘기가 내가 권위적이라는 점이다. 이건 사실 나도 문제라고 느끼고 있다. 내가 남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 줄 때, 사실 난 내가 그친구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점에 쾌감을 느끼며 가르쳐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남들에게 대답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공부한다. 어쩌면 강박관념인 것 같기도 하고. 좋게만 보면 베푸는 거지만, 그뿐만 아니라 사실 난 내게 질문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질문자는 기분이 나쁘겠지. 내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된 건 중,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 내가 만난 내 반 친구들은 모두 나한테서 숙제를 베껴갔다. 대학교 와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애들이 내 숙제를 베껴갔다. 별로 그걸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난 별로 힘도 없고, 주먹도 못 쓰는 아이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공부를 좀 잘했기에, 그런 힘좀 쓴다는 애들이 숙제 안해와서 나한테 보여달라고 부탁하면, 기분 좋지 않은가. 그런데서 우월감 느끼면서 숙제 다 보여줬다. 물론 숙제로 성적이 모두 결정되는 것도 아니니까 내 성적은 중상위권 정도를 유지했고. 물론 이런 우월감 느끼는 것들은 아주 유치한 정서이고, 대학교 와서도 그러면 안되고 다 커서도 그러면 안되지. 응, 나는 아직 어리다. 이걸 변명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나름대로 그동안 고민한, 내 성격이 지금 이런 상황이 된 원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진짜 문제는 내가 나보다 웃어른인 사람들에게도 이런 알량한 권위적 심리를 내비친다는 것이다. 이건 앞서 얘기한 가식/비가식 문제하고도 맞물린다. 나는 나 자신을 감추는데 굉장히 서투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내 모습을 다 받아들여주는 착한 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사람하고만 만날 수 없다. 누구나 다 만나고 다녀야 한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인간 관계가 있고, 끊기 싫어도 끊기는 관계가 있다. 가급적이면 나하고 마음 맞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 친구는 내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마음을 고쳐서 이런저런 사람하고 다 잘 지내면 어떠냐고 묻는다. 그럼 좋지. 좋아. 그런데 조금 고치기기가 왜그리 힘드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본 건데, 난 불분명한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모든걸 다 규정해 버리려는 성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조금 안보이는 정도는 그냥 다니지만 나는 안경을 항상 쓰고 다닌다. 뿌옇게 보이는 걸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도 작업 내용과 마감 날짜를 딱 정해놓고 그날까지 끝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도 얘기의 요점을 한문장 정도로 정리하고 싶어하고, 하지 않아도 될만한 얘기도 입밖으로 꺼내서 명확히 하고 싶어한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왜 이러고 있겠나. 속으로 담아두지 못하고 답답해서 어떻게든 명문화 시키고 싶으니까 그러는 거지.

    사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성공하려면 대인관계도 상당히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건 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별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나를 맞춰 나가야 과학자도 되고 성공도 하지. 내가 칭찬받기보다는 남을 칭찬해야 하고, 내가 위에 있기보다는 남을 올려놓고, 내게 권위를 돌리기보다 남에게 돌리고. 중고등학교때 반 친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핑계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느끼고는 있으나, 느끼기만 하는, 그런 거다.

    내 성격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나는 화를 못낸다는 것이다. 화가 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든다. 이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는데, 분명한건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내가 화를 낼 것을 기대하고 얘기하는데 내가 화를 내지 않게 되면 상대방이 더욱 화를 내는, 그런 악화되는 상황이 있더라. 그리고 이렇게 화를 내지 않고 화나는 일들을 쌓아두다보면 언젠가 터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홧병이라던가. 또한 스트레스 쌓이는 일을 요새는 스트레스를 기분 좋게 풀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친구는 내게 이런것이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뎌질 수밖에 없지. 내가 억울한 일들을 하나하나 모두 화내고 살다간 나 자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언제쯤 내가 원하는 공부만 하고 원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있을까. 그 친구는 내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암시하며 나 자신을 고쳐나갈 것을 권유하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이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심은 전해졌으나 내가 이미 지쳤다. 사실은 매일 사람을 만나서 웃고 떠드는게 일은 일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남들이 내게 간섭 안했으면 좋겠다. 난 그냥 재밌는 공부만 하고, 재밌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다. 안그런 사람이 없겠지. 그리고 다들 어쩔 수 없이 싫은 일도 하고 싫은 사람도 만나는 거겠지. 그렇다고 내가 그걸 포기해야 할 이유는 아닌데, 포기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짓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난 지금 과학자가 되겠다고 쇼를 하고 있으면 안되지. 빨랑 군대 갔다 와서 회사 들어가야지. 그럼 돈은 많이 벌잖아. 처자식 먹여살릴 수 있잖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지.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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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 관점에서 인간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임을 밝힌다. 좀 더 발전된 논의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 상태(Quantum state)”라는 것은, 우리가 이름붙인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추상적인 대상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기호로 $\mid state\rangle$이라고 쓰면 이것은 곧 state가 가진 특성을 모두 표현한 것이 된다. 여기다가 우리가 이 state가 어떤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해밀토니안 연산자를 적용하여 평균 에너지를 계산한다. $\langle state \mid H \mid state \rangle$ 이런 식으로. 어떤 양자 상태에 대해서,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여러가지 상태에 있을 확률이 단지 확률밀도 함수로 주어질 뿐이지만, 만약 우리가 이 상태를 특정 고유 상태로 측정해 버린다면, 다른 상태에 가 있을 확률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리가 측정한 상태로 고정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다. 단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 적당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을 표현한 것이 된다. 가령 snowall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snowall이 가진 속성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이 바로 snowall이다. 물론 이름과 실체 사이에는 대응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snowall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snowall에 대해서 말을 하면 된다. 가령 “snowall은 머리가 좋다”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snowall은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규정되며, 이것은 사실로 변하게 된다. 이 순간 “snowall은 머리가 나쁘다”는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고 한가지 가능성만 남게 된다.

  • 엽기적인 뉴스


    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w.php?type=1&no=2007082911105814232

    아니, 뭐, 보면 안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냥, 엽기적인 뉴스가 나온다는 것만 알고 클릭해 보시기를. (19금은 아니고, 임산부/노약자 등이 봐도 아무 상관 없다. 단지

    엽기적인 뉴스

    일 뿐이다. 단지…)

    진짜,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별꼴을 다보겠다.


    저기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인질은 “사람”을 붙잡아야 그게 인질로서 가치가 있거든요?

  • 있을 곳이 없다…

    사실 1 :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

    사실 2 : 어제부로 연구실을 옮겼다. 이쪽방에서 저쪽방으로 옮긴 것이다.

    사실 3 : 자취방은 길가 바로 옆이고, 하루종일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새벽 2시에 자취방으로 들어갔는데 창문을 못 열어두기에 항상 닫혀 있다. 덕분에 매연은 안들어오지만 요즘같은 날씨에, 드디어 찾아온 열대야 덕분에 잠이 안온다. 결국 아침 6시 30분에 깨서 나올까말까 30초간 고민하다가 그냥 씻고 나왔다. 덕분에 잠은 4시간밖에 못 잤다. 그건 뭐 그냥 버틸만한데, 문제는 더워서 연구실에 나왔더니 여긴 여전히 덥다. 가장 구석진 곳으로 들어왔는데, 에어컨에서도 멀어졌다. 그도 그렇지만 나 혼자 쓰자고 에어컨 켜는 것도 그렇고, 선풍기도 없고. 해서 여전히 덥다. 뭐, 이건 자취방보다는 나아서 창문을 열 수 있으므로 그럭저럭 참을만하긴 한데, 계속해서 콧물이 쏟아지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알레르기 원인물질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내 책상 바로 옆에 오래된 철제 서랍장도 있고, 그 안에는 먹다 남은 시바스리갈 17년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실험용 약품이 혼재한다.



    [각주:

    1

    ]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나서 머리도 아프지만, 콧물이 쏟아지는 것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 아니, 사실 집중이 안된다는 건 공부가 안된다는 것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런 핑계 댈 꺼리도 없어야 공부가 잘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밖에 있을 수도 없고 전에 있던 연구실로 갈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갈 곳을 잃어버렸다. 이곳의 공기가 깨끗히 정화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공부는 힘들 것 같다.

    음, 아무튼 이런식으로 일단 핑계를 대 놓고, 이제 대놓고 놀자는 거지…

    그러나 비염이 치료되거나 알레르기 원인물질이 없어지거나 하지 않는 한 놀기도 힘들다. 냄새가 나서 숨을 못쉬겠다는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숨을 못쉬겠으니, 원 난감할 따름이다.

    1. 둘이 혼합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