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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요점은, 즉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해 궁금함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갈데까지 간 막장 인생들을 살펴보면,뭘 해야하는지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른 채 시간을 보내다가 수십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잘해야 백수고, 엇나가기 시작하면 범죄자가 됩니다.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런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 하나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었으며, 자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다니다가 사형까지 당한 사람입니다.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까마득한 미래를 생각해 보세요. 역발상이라고 합니다. 쉬워요. 가까운게 안되면 멀리 돌아가는 겁니다.
딱 한가지, 미래에 대한 예언을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년 뒤에는, 반드시 우리는 더이상 살아있지 않을 거라는 점이죠. 인생은 잘 살아봐야 70년이고, 운이 좋아봐야 100년입니다. 결코 길다고 하기 힘든 시간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짧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욱 알차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알차게 사용하는 것일까요? 공부를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벌면? 예쁜 여자와 결혼하면? 그건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100년간 노숙자로 지내는 것이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알찬 방법이라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공부를 원한다면 공부를 하고, 돈을 원하면 돈을 벌면 됩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모르는 채로 놔두세요. 조급해 하면 남들이 좋다는 것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 착각에 빠져서 이것 저것 손대보다가 결국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동안 낭비한 시간이 아쉬워 되돌리지도 못할 시간을 후회하며 더욱 낭비하게 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깨달을 때 까지 확실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걸 잘 하면 “철학”이라는 걸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철학이 처음 만들어질 때 사람들이 고민했던 주제들은 “나는 누구인가?” 였습니다. 이 고민에서 시작해서, 여러가지 학문이 만들어진 겁니다. “나는 인간이다”에서 사회학이,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에서 문학이, “나는 하나고 남은 여럿이다”에서 수학이, “나를 구성하는 것은 아주 작은 알갱이다”에서 물리학이 탄생합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은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아마 그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종교 역시 이 질문에서 출발한 겁니다. “나는 하나님이 만들었다”에서 기독교가 출발하고, “나의 생명과 다른 생명의 가치는 같다”에서 불교가 출발합니다. 그 어떠한 질문도 그 본질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면, 어쨌든 답을 찾아야 하는데,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써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뭐가 있는지 생각나는대로 모두 적어보세요. 빨리 적을 필요도 없고, 많이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적습니다. 좋아하는게 없다면 언제 즐거워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 보세요. 즐거웠던 기억이 언제였는지.
마찬가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그리고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 뭔지 모두 적습니다. 느긋하게 고민하면서 적으세요. 어차피 할일이 뭔지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시간이 남습니다. 만약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이 남지 않는다면 이미 “뭔가”를 하고 있으며, 하고싶어하는 상태이므로 그게 뭔지 찾아내면 됩니다.아무튼 그렇게 세가지를 적었으면 그중 겹치는 것들을 많이 찾아보세요. 아마 한개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냥 그대로 놔두세요. 그리고 계속 목록에 추가시켜 나가면서 고민해 보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자신이 하고싶은 것 중에 할 수 있는 것과 해야하는 것들이 생깁니다. 그런것들을 잘 적어두었다가 원하는 것을 그중에서 골라보면 됩니다. 그중에 원하는게 딱히 보이지 않으면, 또 다른게 생각날때까지 꾸준히 기다립니다. 절대로 조급해 하면 안됩니다. 조급해 하다가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걸 따라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위의 세가지를 적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다음의 방법을 써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깊이있게 탐구하는 건데, 별다른건 없지만 재밌습니다. 우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느끼는 것을 해보세요. 즉, 스스로 기쁜 상태에 있을 때 잠깐동안 정신을 차리고 “아, 지금 내가 기쁜 상태구나”를 느끼는 거죠. 또는,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에도 그냥 외로움에 사무쳐 있는게 아니라 “지금 내가 우울해 하고 있구나”를 생각하는 겁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타인의 관점에서 보듯이 바라보는 겁니다. 이게 잘 되면 그 다음단계로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하게 되면, 그 다음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남이 슬퍼할 때 진심으로 같이 슬퍼해 주고, 남이 기뻐할 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 주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이게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요? 아주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가장 큰 믿음을 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 왜 웃고 있는지를 눈치채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믿습니다. 그런식으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나가면 그 사람들은 나중에
든든한 인맥이 되어 있을 겁니다.사실 할게 없으면 먹고사는 거라도 제대로 해야겠죠. 사람의 본질은 100년짜리 짧은 생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것인가를 고민하는 겁니다. 겨우 100년인데 후회만 남은 삶을 사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고, 차라리 아무생각없이 사는게 더 낫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재미있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그러나 노력하여 재미있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인간으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면 그것은 이루어집니다.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이유는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장점만 보고 자신의 단점만 보면 당연히 초라하죠. 왜냐하면 누구든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장점 하나씩은 다 있는 법이고, 역시 누구든 단점은 하나씩 다 있는 법이거든요. 따라서 그걸 남들의 장점만 보고 나의 단점만 보면 초라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나의 장점만 보고, 남의 단점만 보고 다니면 자만심에 빠져서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파악하는 겁니다. 남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보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사람들은 남의 단점과 나의 장점은 잘 보는데 남의 장점과 나의 단점에는 관대한 습관이 있습니다. 또는, 반대로, 남의 장점에 주눅들고 나의 단점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죠. 둘 다 나빠요.
타인이 가진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세요. 주변의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관대할 필요가 없고 누구에게도 잔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특징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특징을 가진 누구나 그 장점을 가졌다고 봐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 사람에게는 장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는 특징은 사실 특별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공평하게 평가하세요. 또한, 장점과 단점을 따지지 말고 그냥 특징 자체를 분석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남에 대해서 알아가다보면 나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평가한 자료는 절대로 공개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자신이 남에게 평가당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스스로만 알고 스스로의 기준으로만 여기세요. 타인을 평가한 자료를 그 당사자에게 얘기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주고,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뒷담화를 까는 것 밖에 안되므로 혼자만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서로 까대는 것들을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됩니다.
즉, 남들과 자신을 비교를 하는게 아니라 남과 자신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으라는 말입니다.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면,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해볼만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명확히 적어 보세요. 수많은 단어로 자신을 묘사해 봅니다. 여러가지 숫자로 자신을 나타내 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차츰 명확하게 만들어요.
대충 요약하자면, 현재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모르는 만큼 알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나와 타인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타인을 보는 정확한 눈을 가지세요.꿈이 없으면 없는대로 그 상황을 즐기세요. 그러다가, 평생 “이것만큼은 이뤄봐야겠다” 싶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 매달리세요.
“중독”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마약 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중독됩니다. 중독이란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끊을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하는 증상입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그 일을 하고싶지 않다면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안그러면 하는대로 마냥 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일은 못하고 삽니다.
그리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일 때, 그 결단은 어느쪽을 결정하든 용기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계속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아주 많습니다. 용감해지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위와 같은 조언을 드리긴 하지만, 그걸 모두 실천하면서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실천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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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부 vs 파업 = 치킨 게임 : 겁장이 게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고 대통령이 선언했었는데, 그건 인건비가 싼 나라라든가 규제가 적은 나라라든가 그런게 아니다. 올해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촛불집회나 파업때문이라고 탓하는 것은 정말 비겁한 일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규제, 원가, 세금 이런것들은 그 다음의 문제다. 모두가 규칙에 맞게 경쟁하고, 정부가 공평한 규칙에 맞게 경쟁을 촉진한다면 예측 가능한 미래가 가능하고, 그것이 실현되어야만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규칙의 공정성과 공평함이 없으면 게임은 그저 더 쎈놈이 살아남는 제로-섬 게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내 시장에서는 괜찮은 전략일 수밖에 없으나 시장을 국내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국제 시장은 어느 한 회사가 경쟁하기에는 너무 크다. 우리나라의 여러 회사들이 상호 협조 아래서 커나가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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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
갑자기 시뮬라시옹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원본의 복제품이 원본을 대체하고 원본은 사라진 채 복제품만 남게 되는 상황. 그리고 그 얘기가 공각기동대에 등장한다. 오, 이거 꽤 철학적인 작품이었군. -
소고기 문제의 분석
이 문제는 FTA와 관련되어 좀 복잡한 문제다. 다만,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부분만 다뤄본다. 그리고 난 전문가가 아니며, 제대로 상황을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어디든 지적해 준다면 고맙겠다.1
미국에서는 한국에 소고기를 팔려고 한다. 돈이 되니까.
한국에서는 소고기를 수입하려고 한다. 역시, 돈이 되니까.
돈이 되니까 사고 판다는, 서로의 이익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무역 행위이다. 만약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했거나 원하는 만큼의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면 단 소고기 한근조차 수출하거나 수입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두가지의 문제점이 있는데, 하나는 “광우병”이라는 위험 요소가 가능성으로서 제기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축산 농가의 붕괴”라는 도의적 측면에서의 문제이다. 참고로, 국내 축산 농가의 붕괴는 잠시 후에 다뤄볼 것이고, 일단은 광우병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광우병에 대한 여러가지 소문들은 사실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일방적으로 믿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것 처럼 보이고, 거짓이라고 일방적으로 믿기에도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건너온 소고기가 위험하다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말 만큼이나 사실인 것일까? 내 생각에는, 그보다는 좀 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은 고려하지 않겠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리 양보해도 “아직 위험한지 어떤지 가능성이 밝혀지지 않았다” 보다 물러설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말의 뜻은, 위험한지 어떤지 가능성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구강 청정제”의 예를 들어보자. 구강 청정제의 겉 표지에 써 있는 주의사항에는 “이 약은 구강 청정용으로만 사용하고 내복용이나 기타 용도로 사용하지는 마십시오”라고 써 있다. 하지만 입 안에 넣는 것이 늘 그렇듯이 아무리 주의해도 어느정도는 사람이 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강청정제는 사람이 마시더라도 안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구강청정제를 컵에 따라놓고 한번에 쭉 들이킬 사람은 있을까? 시킨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킨 놈이나 하는 놈이나 둘 다 바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광우병에 걸린 소는 분명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가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 또한 있다. 반대로,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지 않은데 광우병에 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인과율)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지 않은 소”의 고기이다. 정부의 주장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는 광우병 발생 인자를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참인가? 논리학을 아주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고등학교 정석에도 있다.) “p이면 q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q이면 p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보장은 없다. 둘은 독립된 명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장은 한층 더 나아가서 “광우병에 걸린 소라 하더라도 광우병 발생 인자를 모두 제거한 소는 괜찮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의 진리값은 “참”이다. 놀랍게도, 광우병 발생 인자를 모두 제거한 소는 광우병 발생 인자가 없는 소이므로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런 고기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제거할 수 있는가? 여기서, “모두”라는 것에는 “충분히”라는 뜻이 숨어있음에 일단 주의해 두자. 인간에게는 면역 체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병이라도 단 1번의 원인 물질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드물다. 몸의 세포가 원인 물질에 아주 많이 노출되어야 병에 걸린다. 따라서, 우리 몸이 가진 불명확성 때문에 “모두”제거한다는 아주 명확한 표현이 “충분히” 제거하면 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은 이제 “광우병에 걸린 소라 하더라도 광우병 발생인자를 충분히 제거한 소는 괜찮다”는 주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얼마나 제거해야 “충분히” 제거하는가? 광우병 발생 인자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 단백질 분자가 10000개 이하면 충분한가? 1000개 이하? 그것은 누가 세는가? 누가 보장하는가? 모두 세어볼 수 있는가?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 정부의 주장은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정부는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을 보면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느정도나 줄이고 검사해야 충분한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검역을 강화한다고는 말하는데, 얼마나 강화하고, 실질적으로 강화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믿을지에 대한 신뢰성 보증에 대한 방법이 없다. 단지 믿으라고만 하는데,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주 많은 사기꾼들은, 신뢰성을 먼저 쌓는다. 즉, 십만원, 이십만원 정도의 소액을 꾸준히 빌리고 제때 이자까지 제대로 쳐서 값는다. 이렇게 아주 많이 해서 신용을 높인 후, 갑자기 억대의 거액을 빌린다. 빌려주는 사람은 믿고 빌리지만, 원래부터 먹튀가 목적이었던 사기꾼들은 이 돈을 들고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따라서, 돈을 빌려줄 때는, 그 사람이 실제로 갚을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안전을 위해서 보증도 세우는 거고 신분증도 받아두고 차용증도 쓰고 각종 안전장치를 해 두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정부가 말하는 일방적인 믿음의 강요는 그다지 신용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건국 이래 지난 50년간 정부가 국민들에게 높여준 것이라고는 불신의 벽 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정부가 믿으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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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받아들일만한 수준의 검역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문제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발언에도 있었듯이, 소고기 수입의 목적은 “국민들에게 품질 좋은 쇠고기를 싼 가격에 맛보게 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광우병과 관련되어 국민들이 믿을만한 수준의 검역 절차를 거친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검역 비용과 통관을 못한 만큼의 공급 부족으로 그리 싼 가격에 쇠고기가 공급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 원가의 차이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는 국산 쇠고기보다 가격이 쌀 것이기 때문에 국내 축산 농가는 줄어들 것이고, 국내에서의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어찌되었든 쇠고기 가격은 올라간다. 따라서, 지금보다 크게 비싸지지는 않더라도 쇠고기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또한, 이미 우리나라는 쇠고기 가격이 높은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유통업체들이 유통마진을 그만큼 챙겨먹는다면, 실제 소비자가 체험하는 쇠고기 유통 가격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이 부분이 해결되어서, 아무런 문제 없는 품질 좋은 쇠고기가 아주 싼 값에 들어와서 국민들이 쇠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해 보자. 그것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국내 축산 농가에서는 더이상 소를 키우지 않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 키우는 소가 없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쇠고기 가격은 모두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에 좌우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쇠고기 가격의 안정성은 전적으로 미국 축산 경제 상황에 좌우되고, 이것은 어찌되었든 한국의 대외 경제 의존도를 높일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쇠고기 뿐만 아니라 쌀과 관련된 FTA 협상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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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나라가 미국산 쇠고기를 어쨌건 수입하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국익에 전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는 문제가 없는가?문제가 많이 있다. 어떤 정치가나 어떤 지도자도 집단 내의 모든 요구를 전부 다 들어줄 수는 없다. 이것은 집단이 커질수록 더욱 더 크게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그중에 어느 집단의 편을 들어줄 것인지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TRIZ라는 방법론을 이용하면 뭔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걸 잘 쓰는 사람이 없으니 이모양 이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가 어느 집단의 편을 들어줄 것인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타당한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쪽이 실제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어느쪽이 더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쪽이 더 큰 피해를 보는지, 어느쪽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 이 기준들은 그다지 타당해 보이지 않겠지만 아무튼 뭔지 몰라도 타당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타당한 기준은 누가 타당하다고 봐야 하는가? 기준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집단 내부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 즉,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을 내기 위한 여러가지 기준을 잡기 위해 필요한 합의는 편이 갈라져서는 안된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이익을 보는 쪽이 달라지고, 이때문에 기준을 잡는 것 자체가 편을 선택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선택을 위한 기준을 잡는 것은 집단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합의 없이 자신의 의견과 맞는 일부의 의견을 선택하여 강행하는 것은 권력을 위임받아서 일을 수행하는 대표 지도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역시, 신에게 선악의 구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처벌받지도 않고, 신은 책임질 필요도 없다. 신은 그냥 있으니까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