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1.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이 병역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http://etv.donga.com/view.php?idxno=201202070049874

이건 문제가 있다면 박원순 서울시장보다 병무청을 먼저 조져야 하는 문제다.

물론 그 다음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조져야겠지만.

2.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대책은 공허하다. 어른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서 그대로 처리하는 것이 순리대로 갈 듯 싶다. 어른들이 내놓은 대책은 아무리 좋은 대책이라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순간 악법이 된다.

3.

게임이 갑자기 규제를 당하고 있는데, 이건 뭔 뻘짓인가 모르겠다. 설마 애들이 게임을 못하게 하면 애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난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의 “우리나라에는 왜 닌텐도 같은 게임기가 없냐”던 발언이 생각난다. 왜 없긴. 그러니까 없지.

4.

연구비로 뭘 사려고 하면 살 수 있는게 단 하나도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물건들.

5.

나꼼수 비키니 시위가 화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암묵적으로도 명시적으로도 아무도 그런 행동을 강요한 적이 없고, 동시에 그런 행동이 금지된 것도 아니다. 성적인 부분과 함께 메시지를 노출시켜서 관심을 끌려는 것은 맞는데, 그건 성희롱도 마초주의도 아니다. 거기에 대고 가슴이 어떻고 하는 말들은 마초들이나 남성우월주의자들이 하는 말일 수는 있다. 눈꺼풀 위에 “눈알이 빠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고 적어서 웹에 올렸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누구도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노출하는데 제약을 받아서는 안된다. 거기에 나꼼수 팀이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나는꼼수다” 방송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바쁘다보니.

6.

이론과 현실은 다른게 아니라 이론을 현실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수치들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주장이 물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7.

학생인권조례는 또 왜 문제인가. 적절한 체벌을 통해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는 학생이라면 애초에 체벌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체벌을 하는 것 보다는 체벌을 하지 않는 훈육이 더 좋다. 체벌을 해도 고쳐지지 않을 학생이라면 역시 체벌이 필요가 없다. 이런 학생은 체벌이 아니라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학생들도 학생인권조례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원래 있던 자유를 보장하는 규칙이지 학생으로서(동시에 인간으로서) 하면 안되는 것들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공부좀 해라.

진짜로 나왔다 그 총

10년이면 뭐가 되도 되긴 되나보다.

27초쯤에 나오는 목표 추적 총알이 드디어 개발되었다.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20201155128

꿈★은 이루어진다.

이꿈이 그꿈은 아닌것같지만.


http://www.krqe.com/dpp/news/technology/sandia-labs-bullet-doesnt-miss


Sandia Labs” bullet doesn”t miss: krqe.com

변명

무한경쟁의 시대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력과 노력과 재능을 모두 발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심지어 운이 나쁜 것조차도 변명할 수 없는 시대이다.

살아남지 못한 자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잔인한 시대가 되었다.

앞에서는 칭찬하고, 위로하고, 동정하고, 좋게 말하지만

뒤에서는 욕하고, 무시하고, 비난할 수 밖에 없다.

나도 남들에게 그렇게 평가받고 있을 것이고,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남을 위해서 나를 죽이기만 하다가는 내가 진짜로 죽어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남을 도와주며 서로 돕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삶에는 정답이 없다. 교과서도 없다. 공략집도 없다. 재시작도 없다.

어떻게 살든, 이쪽이든 저쪽이든, 자신이 살기로 정한 삶의 방식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의 철학이라면. 끝까지 관철시키고 후회하지 말든가.

후회하겠으면 지금부터라도 바꾸고, 바꿨다는 것에 대해 변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합리화를 하든가.

이도 저도 안되겠으면 그냥 한번 크게 울고 썅 욕설한번 내지르고 포기하든가.

아무것도 못한 채, 안타까워만 하고 있는건 정말 동정조차 해줄 수 없다.

혁신

충고를 들었으면 바꾸든가, 바꿀 생각이 없으면 처음부터 듣지를 말든가.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줬더니 잘 들었다고 말하면서 바꾸지 않는다면 말해주는 사람으로서 그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잔인해져야 할 때

MBC에서 이주노동자로 있는 조선족 엄마, 아빠들과 그 아이들이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그런 방송을 보았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같이 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MBC에서 기획한 자리를 통해 서로 만나고 그나마의 추억을 만나고 아쉬움을 달래고, 그런 정도가 최선이다.

MBC에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들도 헤어짐의 잔인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만나게 한 것은 좋은 의도이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것의 잔인함은 정말로 어쩔 수 없다.

노트북을 질러야…

2006년에 처음으로 노트북을 샀었다. 후지쯔의 ST5032라는 아주 스타일리스틱한 제품이었다. 덕분에 아이패드에 전혀 관심이 없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건 팔았다.

2009년에 LG의 R410을 샀었다. 성능이라는 한마리 토끼를 잡았었다. 가격과 디자인은 뭐 그냥 그랬다.

2010년에 LG의 R510을 샀었다. 성능은 좋은데 매우 크다. 이건 어머니가 쓰시는 중이다.

2010년에 LG의 T290을 샀다. 성능과 배터리 시간이 좋았다. 디자인은 꽝이다. 아버지께서 쓰시기 위해 샀었는데, 나의 R410과 바꾸었다.

아무래도 T290을 팔고 노트북을 새로 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성능이 딸린다. 노트북을 질러야 하는 이유는 몇가지 있는데, 1. 3년주기로 내 노트북을 샀었고 2. 내 생일이고 3. 보너스도 받았고. 4. 그분이 나를 부른다. 지름신.

후보…

맥북 에어 – 다 좋은데 내가 싫어하는 맥OS를 탑재하고 있다. 리눅스를 설치하면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LG – 요즘들어 LG에 대해 좋은 소리를 못 들어서 고민중이다. 보면 알겠지만 LG빠가 아니냐고 할 정도로 LG노트북만 3번을 샀었다. 사실 그 전에 LG의 LM60도 샀었다.

삼성 – 삼성은 별로 안좋아한다. 어머니가 쓰시던 Q10이후로 결코 사고싶지 않다. 삼성 노트북을 싫어하는 이유는 키보드 때문인데, 키보드가 너무 湛?느낌이다. LG노트북은 키보드가 아주 맘에 든다. 그래서 LG만 샀었던 것 같다.

HP/컴팩 – 안산다.

델 – 안산다. 싫어함.

소니 – 디자인은 예쁜데 너무 비싸다. 그리고 삼성보다 더 한 자체제작이라 리눅스 쓰기가 괴로운 면이 있다.

레노보, 에이서, 아수스, MSI, 삼보TG – 음…

지금 지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딱히 맘에 드는 제품이 없어서…

쥐분투 11.04

집에 있는 데스크탑에 쥐분투 11.04를 설치하고 설정하였다. 여기서 쥐분투는

http://xubuntu.com

에서 배포하는 리눅스 배포판이며, 마스코트로 “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어떤 대통령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리눅스 배포판이다. 물론 그분이 쓸 수 있을 만큼 쉽고 간편하니까 추천하는 것이다. (리눅스 절대 어렵지 않아요)

여러가지로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나의 키보드 HHKP2에 있는 음량조절키가 작동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언제부터 지원되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된다.

이제 집에는 노트북 안들고 와도 될듯.

나, 버릴것인가 찾을것인가

지난번의 욕망에 이어, 밝은사람들 총서라고 한다. 욕망, 나, 마음, 몸, 이렇게 4개 시리즈가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하니까 존재한다고 했는데, 존재하니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생각도 내가 아니고, 내 마음도 내가 아니고, 내 몸도 내가 아니다. 나의 생각, 마음, 몸같은 것들이 남의 것이 아님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그 주인이 나라고 하기에는 나는 딱히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