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올리는 글의 책임

인터넷은 어느정도 익명성이 있는 공간이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있고, 나에 대한 정보도 흘러 넘친다.

따라서 이 블로그에도 그렇고, 어느 곳이든지, 내가 글을 올릴 때에는 내가 실제 현실에서 말해도 되는 것만을 말하고, 책임진다.

인터넷의 “snowall”과 현실의 “남기환”은 분리되지 않았다. (달라보이긴 하겠지만.)

이재율 관련 글도, 기독교 관련 글도, 그 외에 수많은 글들도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내 의견을 철회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고, 삭제할 수 있고, 해명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명확히 해 주어야 한다. 나보고 내 글의 문제점을 찾아내라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Fantasy

공각기동대 OST와 함께 구매한 히사카와 아야의 음반이다. 노래는 전반적으로 클래식 분위기를 담고 있다. 7곡중 6번째 트랙은 노래가 아니라 오디오 드라마이고, 7번째 곡은 약간 팝 느낌의 신나는 노래다. 나머지 1~5번 곡은 모두 클래식 풍의 곡들이다.

매우 차분하고 히사카와 아야의 목소리를 잘 느낄 수 있는 음악들이 있다. 94년도 음반이라니. 아무래도 아야의 곡들도 좀 더 구해서 들어봐야겠다. (MP3에 있는 곡들이나 다 들어야하는데…)

Stand alone complex OST 2&3

일요일에 신촌 북오프에 가서 오덕질을 좀 했다. -_-

공각기동대의 TV판인 SAC의 OST를 사서 들었다.

전반적으로 칸노 요코답다는 느낌. 음악은 무거운 편이지만 차분하지는 않다. 긴장되는 느낌이 있다. I can’t be cool을 들을 때에는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가 떠올라서 조금 웃겼다. (전혀 다른 곡이지만 -_-;)

마우스

마우스를 질렀다

2개. 모두 하드웨어의 명가 MS의 제품이다.

일단


http://www.it.co.kr/news/mediaitNewsView.php?nBoardSeq=62&nSeq=1960065&nModeC=1

MS익스프레스 마우스

이놈은 여자들에게 어필할 것 같은 녀석이다. 선이 예상보다 짧은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보통 마우스 선 길이의 절반정도 된다. 노트북에 사용하면 딱 좋다.

위쪽의 버튼을 겸한 하얀 부분이 중간의 빨간 테두리와 유격이 있어서 좀 흔들리는데, 원래 그렇다고 한다. 나름 여유를 둔 것 같은데, 짜임새 있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것 같다.


http://www.microsoft.com/korea/hardware/mouseandkeyboard/productdetails.aspx?pid=123


그냥 MS무선 마우스

무선이라서 샀다. 노트북용으로 사려고 하긴 했는데 좀 크다. 감도 좋고 배터리 AA로 1개로도 작동한다. 물론 2개로도 작동한다. 수신기는 약 1센치미터 정도 튀어나온다. 작아서 좋긴 한데 은근히 불안한 크기이다.

Tremulous하는데 매우 좋다.

다시한번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며, 개인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신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원래 하고싶었던 말은 이거였음.

설마 이 문장이 누군가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건 아니겠지.

중의적 표현

다음의 표현은 항상 참인 문장이다.

Possible is possible.

물론, 여기서 possible을 명사로 보느냐 형용사로 보느냐에 따른 해석의 차이가 있는데, 이 문장이 문법적으로 옳다고 가정한다면 possible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이다.


http://endic.naver.com/enkrEntry.nhn?entryId=cc489f0b36004798bd66cae81b045493&query=possible


명사로서의 뜻은 “가능성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가능성 있는 사람은 가능하다”고 해석하면 된다. 두개의 possible을 모두 명사로 해석한다면 “가능성 있는 사람은 가능성 있는 사람이다”가 된다.

예를 들어

Impossible is nothing.

이런 유명한 문장이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뜻이다. “Im-“은 그 다음의 말에 반댓말을 만들어 주는 접두사이므로 위의 예제를 참고하여 해석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란 없다”고 해석하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사실은

Nothing is impossible.

이쪽이 조금 더 받아들이기에 수월하다. nothing은 주로 명사로 사용되기 때문에 “어떤 존재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각주:

1

]



즉,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런데

Impossible is impossible.

이 문장은 어떨까?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가능하지 않다고 하면 되는 건가? 또는,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의도대로 문장을 써 본다면

Impossibility is impossible

이 문장은 불가능성은 불가능하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여기까지 써 놓고 난 다음의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무슨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일까?

  1. no = not + any이므로 anything is not impossible이 되어, 2중부정 구문을 이룬다. anything is possible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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